[십자가는 자기 합리화의 도구가 아니다]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 202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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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가톨릭(Mere Cathol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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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월)~23(토)까지 연수 관계로 복음 묵상이 없겠습니다.
2024년 나해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 십자가는 자기 합리화의 도구가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리코의 소경은 구걸하며 앉아 있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소리소리 지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네가 뭔데 그렇게 소리를 질러?”하며 나무랍니다. 그러나 소경은 더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라고 물으시고, 소경은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당시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할 일이 없었고 그러면 가난해서 구걸하는 신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요즘 그런 상황이라면, “예수님도 가난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니, 너도 네 처지를 받아들이고 수긍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눈을 떠서 일해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려는 그에게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즘에도 신앙이 약간은 지금 자신의 처지에 수긍하고 안주하게 만드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어떤 신자분들은 정말 사명을 깨닫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불쌍한 처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닮았다며 위안하기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따르면 신앙은 모든 것을 희망하고 모든 것을 믿고 믿는 것을 위해 지치지 않는 노력을 함을 의미합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은 노력, 끈기, 그리고 위험을 감수할 용기의 결과다. 성공의 열쇠는 포기하지 않고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성공으로 가는 여정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항상 가치가 있다. 성공한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저는 이 모습이 오늘 복음의 믿음으로 구원받은 소경의 모습과 더 닮았다고 봅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책이 있습니다. 1913년 이 책을 쓴 사람은 프랑스 한 마을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나무를 잘라 숯을 만들어 파는 동네였습니다. 당연히 산은 벌거숭이였습니다. 그리고 각자는 경쟁과 미움, 술과 향락 등에 빠져 전혀 행복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벌거숭이 산을 지날 무렵 한 양치기를 만납니다. 그는 도토리를 땅에 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1910년부터 나무를 심어왔고, 3년 동안 매일 좋은 도토리만 골라내서 심어 10만 개의 도토리를 심어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쉰다섯 살의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이름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내와 자녀를 잃고 이 시골로 내려와 양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도토리를 심기 시작한 이유는, 그곳에 나무가 없어서 그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땅은 그에게 어쩌면 아내와 아들과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그 땅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밤에 매일 좋은 도토리 100개씩 골라내어 낮에는 양을 치며 곳곳에 그 도토리를 심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토리 10만 개 중 2만 개가 싹을 틔웠고 그중 만 개가 조금씩 자라고 있었습니다.
지은이가 마지막으로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난 건 1945년 6월이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어느덧 여든일곱 살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예전의 그 황무지가 있던 그 지역에 있었지만, 그곳은 더 이상 황무지가 아니었습니다. 버스가 빠른 속도로 지나다니고 사람 사는 냄새,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부는 소리, 샘물이 흐르는 소리가 있는 살아있는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베르공 마을에서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고, 공동작업을 한 희망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채소밭에는 열매들이 맺혀 있었고, 그곳에는 젊은 부부 네 쌍을 포함한 스물여덟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살아있는 곳이자, 살고 싶은 곳이 되었던 것입니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여전히 예전의 그 황무지가 있던 자리에서 아직도 황무지인 것처럼 그곳에 묘목을 심고 있었습니다.
2023년 4층에 살던 두 아이의 아빠가 아래층부터 화재가 발생하여 7개월 된 아기를 안고 뛰어내리다가 아이는 살았지만, 아빠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 일이 있었습니다. 아래에서 쓰레기 분리 수거장의 푹신한 포대를 깔아놓고 큰 아이를 던졌는데 살았습니다. 그다음은 아내가 뛰어내렸고 가벼운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안고 뛰려면 아빠는 아래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고 뇌진탕으로 죽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와 같습니다. 아기에게 아빠와 같이 죽음의 십자가로 오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빠가 널 위해 죽었으니, 넌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보며 그분의 가난과 희생의 삶을 내가 꿈을 갖고 노력하지 않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참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처럼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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