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죽으면 후궁은 어떻게 됐을까?|조선 왕실 최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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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만두

교양만두

Күн бұрын

Пікірлер: 362
@SSONGTAEWON
@SSONGTAEWON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에서 가장 사이좋게 잘지낸 왕비와 후궁을 꼽으라면 효의왕후와 의빈 성씨가 아닐까 싶습니다. 효의왕후가 세손빈 시절에 의빈 성씨는 궁녀였는데 둘이 동갑에다가 입궁시기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당시 세손인 정조가 궁녀인 의빈 성씨에게 승은을 내리자 의빈은 효의왕후가 아직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을 이유로 들어서 목숨을 걸고 승은을 거절했다고 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정조가 왕이 됐고, 의빈 성씨는 승은을 받아들여서 후궁이 되고 곧 문효세자를 낳습니다. 의빈은 문효세자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교만해지지 않고, 오히려 웃전인 효의왕후에게 더 예를 갖추고 효의왕후를 보필했다고 합니다. 효의왕후도 그런 의빈을 가장 총애했고, 의빈의 아들인 문효세자를 아주 잘 양육했다고 합니다. 의빈이 죽기 전날에는 효의왕후를 찾아가서 아들을 낳아주길 기원했고, 의빈이 죽었을 땐 효의왕후가 형제를 잃은 것 같이 울면서 슬퍼했다고 해요. 사실 정실과 첩실은 잘 지내기가 힘든 관계성인데 효의왕후와 의빈은 정말 시대를 초월한 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네일라-r6j
@네일라-r6j Жыл бұрын
하긴…통치자는 원치 않아도 정치적인 이유로 후궁을 들이는 경우가 많고, 후궁이 분수를 알고 후계자의 모후라는 걸 등에 업고, 정실왕비한테 시비를 거는 정신나간 짓을 저지르지 않으니…그나마 관대하게 본 거지…영조때에는 같은 후궁끼리의 일이지만 숙의문씨가 영빈이씨 한테 왕의 총애를 믿고 시비를 걸어서 난리가 난적이 있는 데…그 이유가 숙의는 빈 보다 3단계 아래이고, 영조한테는 두 아들이 있는 데…장남이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40대에 어렵게 차남을 영빈이씨가 낳아서 왕실 내에서 영향력이 있었고…정비 정성왕후 서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영조의 아버지인 숙종이 후궁을 왕비로 승급을 못하게 하지 않았으면 오늘내일 할 때 증손녀 뻘인 소녀를 계비로 맞이하지 않고, 영조 본인도 서출+모계혈통에 컴플렉스가 있으니 어렵게 얻을 후계자를 위해 친모인 영빈이씨를 승급시키고도 남았을듯…
@brandenpark5380
@brandenpark5380 Жыл бұрын
이게 어케 가능한거지..ㄷㄷ
@lee9717
@lee9717 Жыл бұрын
의빈 성씨가 드라마 옷소매 붉은꽃동 여자주인공인데 함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ㅋㅋㅋ
@청출어랍쇼
@청출어랍쇼 Жыл бұрын
​​@@brandenpark5380영상 내용이랑 댓글 내용 합치면 어차피 장희빈때문에 왕비 쫒아내도 왕비 못함 + 정신적으로 힘든건 왕비가 몸이 힘든건 본인보다 아랫서열인 후궁이 하니 체력,정신력소모 밸런스가 좋음 + 지금 왕이 본인 좋아함 + 왕위 계승 서열1위 세자의 친모임 + 본인 직속 상사인 왕비랑 이미 옛날에 짱친 먹어둠 이러니 굳이 왕비 자리에 욕심 안부려도 쿠태타 생겨서 하루아침에 궁밖으로 쫒겨나는거 아닌이상 죽을때까지 개꿀빨다가 가니 잘지내려한거 아닐까요
@네일라-r6j
@네일라-r6j Жыл бұрын
@@답글쓰지말기 그쳐…어느 누구도 통치자와 사랑으로 엮이지 않으니까 가능한 것이고…장희빈도 실은 남인 쪽에서 자기가 밀어준 궁녀가 후계자를 낳으면 앞으로 정계에서 유리해질 것이니 밀어준 것이고…
@anz1004
@anz1004 Жыл бұрын
영조의 첫 중전인 정성왕후와 사도세자의 친모인 영빈 이씨도 사이가 나름대로 좋았다고 하죠 정성왕후가 사도세자를 친자식처럼 아끼다 못해 영조의 질책에서 사도세자를 든든하게 보호했고 어머니인 영빈 이씨와 만나는 자리도 자주 마련했다고 합니다. 엄격한 위치도 있고 아이들(후궁의 자식들은 원칙적으로 중전의 자식으로 입적)을 통해 서로 돕는 관계인 만큼 의외로 왕후와 후궁은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같은 후궁들끼리 사이가 더 냉랭했죠
@hhh-yp9it
@hhh-yp9it Жыл бұрын
탐이 안나진 않겠지만 사극과 달리 현실 유교사회에서 중전은 후궁이 좀 모략하고 질투한다고해서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절대 아니니까... 당대의 엄청난 집안이거나 희귀한 케이스빼곤 빈이라해도 중전과의 차이는 엄청났습니다. 차라리 같은 후궁끼리는 서로 제칠 가능성이 있지만. 4품 숙원에서 1품 빈으로 올라가는 것이 쉽지 빈이 중전이 되는 게 백배 더 어려워요.
@용가리-x3l
@용가리-x3l Жыл бұрын
첩이 첩꼴 못 보니까.
@hamtolyoon6610
@hamtolyoon6610 Жыл бұрын
정성왕후랑 사도가 친하게 지내서 그게 배알틀린 영조가 사도를 뒤집어지게 괴롭혔답니다 -_-+
@SSONGTAEWON
@SSONGTAEWON Жыл бұрын
할머니 인원왕후와 법적인 어머니인 정성왕후는 사도세자를 정치적으로 보호해줬고, 영조가 총애하는 화평옹주(사도세자 누나)와 현빈 조씨(사도세자의 이복 형수)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중재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하죠 근데 이 4명 모두가 사도세자보다 먼저 죽음...
@yooun82
@yooun82 Жыл бұрын
기존쎄라는 현종의 부인인 명성왕후는... 아들이 숙종이었으며 초딩때부터 승질이 더러웠던 숙종은 궁녀들이 컨트롤하기 불가능해서 직접 옷입히고 머리 빗어줬는데... 난리피우는 초딩 숙종때문에 승질나서 뒤통수를 후렸다고ㅋㅋㅋㅋ 세자의 뒤통수를 후리던 왕비가 명성왕후
@eunsohjjk5960
@eunsohjjk5960 5 ай бұрын
어머니 멋져요
@랙돌-v5w
@랙돌-v5w 5 ай бұрын
인현왕후랑 장희빈 사이에서 와리가리친거 보면ㅋㅋㅋ
@이동현-m4n
@이동현-m4n Жыл бұрын
왕비보다는 후궁들끼리 싸우는일이 보통 후궁이 왕비와 싸운다는건 하극상이라 알려진바와 달리 장희빈도 인현왕후에게 함부로 대들지 못했다
@rak782
@rak782 Жыл бұрын
후궁끼리라해도 숙원이 빈한테 개긴다?? 내명부 뒤집어집니다
@김하나-m6n
@김하나-m6n Жыл бұрын
​@@rak782숙의 문씨가 영빈 이씨한테 대들었다가 인원왕후가 노발대발한거 보면 말 다했죠 뭐
@딩고-c4t
@딩고-c4t Жыл бұрын
장희빈은 하극상입니다 장희빈이 인현왕후에게 대들어서 인현왕후가 기강을 잡는다고 종아리를 쳤다고 함 장희빈이 인현왕후보다 나이가 많고 총애를 받고 있었고 인현왕후가 나중에 입궁했으니 뭘로봐도 장희빈이 한참 선배니까요 중전이라도 나이어리고 늦게 입궁했으면 나이많은 후궁들 눈치를 보게 되어 있어요
@user-ru7mc4wo4k
@user-ru7mc4wo4k Жыл бұрын
명성 왕후(장희빈과대립)와 명성황후(고종 와이프)는 다른 사람입니다 명성 왕후가 명성황후보다 약200년전 사람입니다!! 영상볼때 헷갈리지 마세용!!
@Aristher
@Aristher Жыл бұрын
앗 어쩐지...!!!
@어리버리-c4p
@어리버리-c4p Жыл бұрын
자꾸 명성황후보고 황후 자격없다면서 명성왕후라고 부르는 사람들 보면 속 터짐. 명성왕후는 따로있다고요...
@감자쓰-s2b
@감자쓰-s2b Жыл бұрын
계속 이잉?하던 중이었어요. ㄱㅅ 👍
@Kawaihedgehog
@Kawaihedgehog Жыл бұрын
저도 옛날에 엄청 했갈렸다는~
@이가희-x8e
@이가희-x8e Жыл бұрын
안그래도 차이점을 잘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esakaforever
@esakaforever Жыл бұрын
왕 중전 대군 공주 왕자 옹주 : 왕족. 무품 천상계 후궁: (왕족을 생산했더라도)품계가 있는 신하의 위치
@bsKim-jd4or
@bsKim-jd4or Жыл бұрын
네 맞습니다 그래서 후궁들은 자기가 낳은 친자녀들보다 지위가 아래라서 자녀에게 항상 존대 해야 했고 상석도 양보해야 했죠 요즘 퓨전 사극들은 후궁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하대는 기본이요 회초리 치는 장면도 나오는데 실제로 그랬다간 난리 나죠.
@다카우지
@다카우지 8 ай бұрын
효종때 후궁이 자신의 딸인 옹주에게 반말했다가 처벌받았었죠
@yse2454
@yse2454 6 ай бұрын
@@다카우지ㄴㄴ 효종이 노발대발해서 처벌하려다가 중전이 말려서 무마됨
@핸2-k1t
@핸2-k1t Жыл бұрын
숙종이 후궁에서 왕비가 될수 없다고 한건 장희빈과 같은 일도 영향이 있겠지만 영빈김씨를 겨냥했을수도 있다고 합니다. 영빈김씨는 엄청난 명문가 출신에다 자손도 없어 차기 왕후로 적당한데 숙종이 이 영빈김씨를 몹시 미워했고 엄청난 뒷배를 가진 영빈이 왕비가 되면 권력이 분산될거란 우려도 있었을걱니다.
@웬이엥
@웬이엥 Жыл бұрын
ㅇㄱㄹㅇ 숙빈 저격이 아니라 영빈 저격임
@핸2-k1t
@핸2-k1t Жыл бұрын
@@웬이엥 숙빈이 장희빈 고발했고 말년에 궁밖에서 살게 했다고 사실은 숙빈을 미워한거다, 그래서 숙빈 저격이다 하는 얘기들이 있는데 숙빈은 진짜 하찮은 출신이라 숙빈씩이나 된것도 어찌보면 대단.. 장희빈도 출신이 좋지 않다지만 숙빈에 비하면 명문가죠. 숙빈은 절대 왕비가 될수 없고 숙빈을 앞세운 정치가들도 인현왕후 폐위에 장희빈측 정치가들보다 더 심하게 숙빈의 왕후 등극을 반대했을 가능성이 크죠..
@Mingcream
@Mingcream Жыл бұрын
​@@C미르시아총애
@ksmb2333
@ksmb2333 Жыл бұрын
전 최숙빈을 겨냥했다는 썰을 지지해요, 영빈김씨는 신분이 높았다 해도 워낙 숙종과 사이가 안 좋았고 처세력도 낮아서 딱히 실권이 없었으니까요. 반면 최숙빈은 신분은 낮았지만 일단 아들(훗날 영조)도 있는데다, 워낙 처세술이 좋아서 노론을 사실상 장악한... 아무튼 단순히 희빈 장씨의 시기 질투에 질렸던 것이 아니라 숙종이 자신의 권력을 넘볼 수 있는 요소들은 다 쳐내기 위해 후궁 왕비 승급 금지령을 내렸던 건 맞다고 봅니당.
@김진아-c3i
@김진아-c3i Жыл бұрын
​​@@ksmb2333 영빈 김씨는 그냥 신분이 높은 게 아니고 왕이 눈치 볼 정도로 엄청난 혈통 클래스 였어요. 친가 외가가 당대 조선에서 알아주는 명문세가였고 특히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가문의 당주였죠. 역대 왕비들과 비교해도 탑티어에 들어가는 어마무시한 혈통이었고 그래서 후궁 책봉도 말만 후궁 책봉이지 정비에 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예물도 왕비의 것보다 더 과하게 마련될 뻔 하다가 어찌어찌 취소되어서 왕비 동급의 수준에서 그친 것이고요. 영빈의 초창기 승급이 빨랐던 것도 숙종이 그녀의 혈족들을 신경 쓴 탓이죠. 명분도 웃겨요, 장렬왕후의 육순 된 해를 기념해서 승급, 장렬왕후의 육순을 기념해서 승급 이런 혈통과 가문 덕분에 그녀의 실권은 대단했습니다. 당장 장희빈이 중전 되기까지 있었던 서인의 괴롭힘과 대망의 옥교 사건도 인현왕후와 서인의 짓이 아니라 영빈 김씨와 김씨 일당, 즉 노론의 짓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사실 인현왕후가 장희빈을 그렇게 괴롭힐 이유는 없어요. 왜냐면 중전은 꿈도 못 꿀 중인 신분이고 장희빈이 아무리 아들 많이 낳아도 중전이 낳을 아들 한명을 이기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인현왕후는 연적으로서 장희빈을 미워할지 언정 그 이상 크게 의미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빈은 달랐어요. 결국 같은 후궁이었고 그녀가 낳을 아들도 결국 서자라 태어나는 순서가 중요했죠. 그래서 옥교 사건을 벌인 겁니다. 옥교 사건도 자세히 퍼헤치면 노론이 가만히 있는 소론 머리 끄댕이 잡아다가 연루 시킨 꼴이었어요. 특히 옥교 사건 때, 숙종이 영빈을 겨냥해서 ㅈㄹ 몇 마디 했는데 영빈의 일당이 사직 런을 하며 영빈과 그 가문에 사과하라고 압박 넣었어요. 왕에게 일개 후궁과 신하 가문에게 고개 숙이라 한 거죠. 아마 여기서 숙종의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을 겁니다. 숙종은 왕이라는 신분에 엄청난 자긍심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으까요. 이렇듯 갓 들어온 새내기 후궁이 감히 왕과 대적하고 왕을 꺽으려 할 정도로 영빈 김씨와 그 혈족의 실권은 대단했습니다. 물론 처세술이 부족한 건 사실이죠. 숙종은 막강한 정통성으로 왕권이 강했던 임금이라 영빈 일당을 찍어누를 수 있었어요. 또 후궁은 중전과 달리 결국 아들이 있어야 권력 잡을 수 있는 존재였는데 역시나 중전과 달리 신하들이 합방을 강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죠. 자손이 부족하다면 중전을 찾으라 해야지, 어디 후궁을 찾으라 하겠어요. 중전이나 그 후궁이나 나이가 비슷하고 아직 자식이 없는데 하지만 이렇게 부족한 처세술이기에 더더욱 그녀가 중전이 되었을때 위협이 될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후궁신분으로도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는데 중전까지 된다 하면.. 거기다 영빈의 약점은 결국 왕의 뜻에 좌우되는 후궁 신분이라는 것과 아들이 없다는 것인데 왕비가 되면 이 약점들이 상쇄됩니다. 그러니 후궁은 왕비 금지 법은 영빈을 노린 게 맞을 겁니다. 물론 숙빈이 조금도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죠. 왜냐면 숙빈과 영빈은 굉장히 친한 사이였고 영빈은 영조를 지지했으니까요. 중전이 되기에는 신분이 미천한 숙빈 대신 영빈이 중전이 되고 영빈은 태어날 가망없는 자기 아들 대신 숙빈의 아들, 영조를 밀어주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왕비 인원왕후가 소론이었다는 것을 보면 숙종이 영조 숙빈 영빈 이 세사람을 견제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samgukjilover
@samgukjilover Жыл бұрын
그냥 조선 궁 안에선 지체높은 왕족 딸내미로 태어나 부모님 포함한 사람들에게 귀염받다가 때 되면 어른들이 정해준 또래 남편 만나서 시집가는 삶이 제일 나았을 듯….. (물론 경혜공주같이 예외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니까)
@confused_cat
@confused_cat Жыл бұрын
근데 남편이 어중이떠중이임.....유능한 남편을 만나게 되면 권력이 분산되는 것을 우려해서...심지어 공주나 옹주 자식들은 공무담임권, 즉 과거시험 볼 권리도 없었음...
@SSONGTAEWON
@SSONGTAEWON Жыл бұрын
그냥 경혜공주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문종이 역사처럼 똑같은 시기에 죽었다고 해도 경혜공주는 이미 성인이라서 왕위를 물려받는 즉시 친정이 가능했을 거고, 그러면 수양대군이 감히 왕위를 넘보지 못했을 겁니다. 왕위찬탈을 한 명분이 왕이 어리기 때문에 종사가 불안정하다는 거였으니까요.
@hhh-yp9it
@hhh-yp9it Жыл бұрын
@@confused_cat 대신 사이좋게 대가리꽃밭이면 부부가 조선에서 제일 행복했을듯 ㅋㅋ
@조조휴휴
@조조휴휴 5 ай бұрын
공주의 유능한 남편에 권력분산되는 걸 꺼렸다기보다 부마가 되면 조정에 입직이 불가능해서 그런 거예요. 유능한 인재를 썩히면 안되잖아요.
@もも-l2q5o
@もも-l2q5o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의 정실부인 소헌왕후도 후궁들과 정말 사이가 좋았어요 어느정도냐면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후궁들에게 양육을 맡길 정도… 생각해보면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인 세종과 정조의 정실부인과 후궁들 사이가 제일 좋았던 것 같네요. 역시 끼리끼리란 말이 있나뫄요. 그보다 교양만두의 네임드 영상이 왕비이야기였나요? 전 또, 실록에 기반한 조선 왕의 성격(?) 시리즈 영상인 줄 알았죠!! 그래서, 실록에 기반한 왕 시리즈는 언제 다음 편이 나오나요? ㅎㅎㅎ…
@SSONGTAEWON
@SSONGTAEWON Жыл бұрын
애초에 소헌왕후는 당시 세자였던 문종의 친모이고, 아들을 여덟 명이나 나은 왕비라서 후궁들은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넘사벽 왕비죠. 소헌왕후는 평소에는 자애로웠지만 내명부 수장답게 기강도 엄격하게 잡았다고 해요.
@백창민-s7o
@백창민-s7o Жыл бұрын
가화만사성ㄷㄷ
@pele2434
@pele2434 Жыл бұрын
​@@SSONGTAEWON맞습니다. 그냥 착하기만 한게 아니라 강단이 있었죠
@테라노돈1
@테라노돈1 Жыл бұрын
​@@SSONGTAEWON소헌왕후랑 효의왕후랑 성품이 비슷한가요? 입지도 다르죠?
@당근-j5z
@당근-j5z 6 ай бұрын
@@테라노돈1 소헌왕후는 집안이 태종에 의해 박살났지만 대군을 여덟명이나 낳고 그와중애 문종이라는 번듯한 세자가 있어서 입지가 매우 탄탄했어용 하지만 효의왕후는 아들은 커녕 딸조차도 없어서 꼬투리라도 하나 잡혔다가는 바로 폐위…
@anz1004
@anz1004 Жыл бұрын
덤으로 왕,왕비야 말할 것 없고 후궁조차 왕후의 조력자로서 왕실 일을 해왔다니 어떤 의미로서 조선 왕실이 참 어메이징 합니다..당장 다른 나라 후궁들 보면 일은 커녕 거의 놀자판인데요
@ganadala
@ganadala Жыл бұрын
여인천하가 많이 ㅋㅋ후궁이미지 조져먹었죠 ㅋㅋㅋㅋㅋㅋ 당시에 후궁이 감히 정비에게 개기는 장면도 나와서 고증 조져먹었다고 욕도 먹었지만 재미있어서 다들 보고 해외수출까지..
@tsg2201
@tsg2201 Жыл бұрын
후궁은 기본적으로 첩의 위치다 보니 그 입지가 항상 애매했습니다. 왕의 정식 배우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모시던 왕이 죽었을때 보호받지 못하고 정치폭풍에 휩쓸려서 죽음 당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혜빈양씨, 귀인엄씨, 숙의문씨 등등 그래도 자신이 낳은 자식이 왕이 되거나 후계자로 책봉될 경우 운 좋으면 공석인 왕비자리에 오르기도 했고 혹은 후궁신분을 유지하더라도 왕의 생모로서 왕비에 준하는 의전과 권력을 누리기도 했죠
@nalong731
@nalong731 9 ай бұрын
정식 배우자는 맞습니다. 그게 안되는게 서양이죠
@tsg2201
@tsg2201 9 ай бұрын
@@nalong731 유교원칙상 후궁은 정식배우자 아닙니다 유교원칙상 아내는 남편의 작위를 따른다고 되어있고 이말인즉 남편과 동등한 작위를 가진 자만 정식배우자 즉 본처라고 봅니다. 왕과 동등한 작위는 비입니다 후궁은 배우자가 아닌 신하입니다
@tsg2201
@tsg2201 8 ай бұрын
@@nalong731후궁은 정식 배우자가 아니고 군신관계입니다 즉 왕과 왕비를 모시는 신하(관리)신분입니다
@nalong731
@nalong731 8 ай бұрын
@@tsg2201 군신 관계 + 정식 배우자 인정 됩니다요
@tsg2201
@tsg2201 8 ай бұрын
@@nalong731 유교사회에서의 정식 배우자는 남편의 작위(지위)를 따르게 되어있고 그 작위에 대응하는 호칭이 있습니다 첩은 일단 배우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천자의 아내는 후 왕의 아내는 비 기타 제후의 아내는 부인 이런식으로 배우자는 남편의 지위에 맞는 작위를 받습니다 후궁은 부인과 처로 분류되기때문에 배우자라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정1품 영의정 정2품 판서 같은 여자 관리이고 왕에게 있어서는 신하이자 첩입니다
@net9769
@net9769 Жыл бұрын
참고로 윤씨가 성종의 얼굴을 할퀴었단 이야기는 후세에 지어진 이야기 였고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그냥 험담만 주구장창 했다고 나옵니다.
@CherryPopcorn
@CherryPopcorn Жыл бұрын
대체로 후궁이 아들낳고서 나대지않고 납작 엎드려서 왕비한테 충성충성하면 잘 지내는듯...
@jaeminryou9831
@jaeminryou9831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는 사이 좋은 편이었답니다. 중국으로 가면 특히 한나라쪽은 후궁이 황후를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 우리나란 그나마 장희빈에서 그런일이 있었지만 인현왕후가 죽진 않았죠.. (장희빈은 악녀가 아니었습니다 숙종의 정치질 희생양)
@멍-w1x
@멍-w1x Жыл бұрын
맞아요 저도 사극을 보고 중국처럼 궁중암투가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ㅋㅋ 한국에선 그런일이 거의 없었다 해서 놀랏어요 사극을 믿으면 안되는이유..
@딩고-c4t
@딩고-c4t Жыл бұрын
악녀 맞아요 그 사람(장희빈)은 매우 간사하고 악독하다. 주상이 평일에도 기쁨과 노여움의 감정이 느닷없이 일어나시는데 만약 꾐을 받게 되면 국가의 화가 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숙종실록 내전(인현왕후)이 시키는 모든일에 대해 교만한 태도를 지으며 공손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불러도 순응하지 않는 일까지 이썼다. 숙종실록 첩의 본분을 망각하고 왕비에게 방자했다 숙종이 정치질 한것도 맞고요 희생양이라고 하기엔 중인신분이 왕비가 된 사례가 전무후무 합니다 숙종 정치질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하면서 희생양이죠
@희자재여행기
@희자재여행기 11 ай бұрын
현재의 잣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감히 후궁이 중전을 모함해서 쫓아내다니요~ 현재 가정에 대입해서 첩이 본부인을 모함해서 쫒아내고 지가 본부인 자리 꿰찼다 해도 악녀입니다. 하물며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후궁이 중전을 모함하다니요? 바로 능지처참감입니다. 이 사실이 밝혀졌을 때 사약을 내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럼 세자의 입지가 좁아진다고 반대한 사람이 인현왕후였습니다. 그 후, 저주굿을 했다고 인현왕후가 죽은 건 아니겠지만 후궁이 중전을 두 번이나 모략한 건 팩트입니다. 숙종이 빡이 돌만 했어요
@hhh-yp9it
@hhh-yp9it 3 ай бұрын
장희빈케이스 결국 왕인 숙종이 원했기에 가능한 케이스에요. 숙종이 서인남인 간보고 환국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단순히 여인들의 싸움으로 중전이 바뀔일은 없어요
@강승규-o5q
@강승규-o5q Жыл бұрын
근데 조선의 궁중 암투는 의외로 스케일이 작은게 당장 중국만 봐도 천자에게 줄대기 위해 딸을 바치는 가문들이 수백 수천이라 후궁만 수십 수백명이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조선은 후궁이 많아봐야 5명 이하인 경우가 많았으니 ㅋㅋ
@phdogy
@phdogy Жыл бұрын
제후국이라고 3처 5첩 이내에서 끝임다 그나마 태종이 후궁들일려고 일부러 중국 법까지 뒤져가며 만든 규칙임
@핸2-k1t
@핸2-k1t Жыл бұрын
중국 왕조가 많아 다 같다고는 할수 없지만 청나라에서 후궁이 황후에게 도전하는건 더 불가능했을거에요. 청은 만주족, 몽골족, 한족으로 나뉘어있는데 황후는 가장 대우받는 만주족 명문가에서 뽑는게 국룰이었어요. 유일한 한족 황후 효의순황후 위가씨(영의황귀비)도 만주족으로 대기해서 사후 황후가 됐습니다. 남편 건륭제가 직접 추증했는데 위가씨를 종애하고 그 아들을 후계로 점찍었기에 출신을 받쳐주기 위함도 있지만 나중에 아들이 황제에 올라 추증하려 하면 반대가 있을까봐 직접했다고 합니다. 후궁 역시 아들이 황제가 되면 황태후가 되지만 황태후에도 위계가 있어 황후출신 황태후의 앞에 나서지 못합니다. 그래서 서태후가 동태후를 성가시게 여겨 죽였다는 얘기도 있고요.
@CherryPopcorn
@CherryPopcorn Жыл бұрын
궁중암투가 중국보다 덜했던 이유는 가문빨도 있고 숙종때 후궁은 왕비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기때문이죠. 중국은 후궁이 황비가 될 수 있기때문에 지들끼리 암투 장난아니였는데 우리나라는 왕비 죽어봤자 자기가 승진하는게 아니라 다른 배경좋은 새로운 왕비(새로운상사)가 와서 눈치봐야됨ㅋㅋ
@ebonytears6714
@ebonytears6714 Жыл бұрын
그런것도 있고 기본적으로 제후왕은 후궁이 10명을 넘을수 없게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말그대로 정식 부인을 10명 넘게 둘수 없다는 것이지, 궁녀 건드리는거야 마음대로 지만요.
@희자재여행기
@희자재여행기 11 ай бұрын
인구수 자체가 다르잖아요
@user-maniaKim
@user-maniaKim Жыл бұрын
원수되지 않으면 다행인 관계...;;
@nosaster
@nosaster Жыл бұрын
사이가 좋았을수도 있고 무난할수도 있었죠. 나쁜 경우도 있었고요. 원칙대로라면 확실하게 중전이 압도적 우위였고요.(가끔씩 인조의 귀인 조씨같은 경우도 있어서요)
@esakaforever
@esakaforever Жыл бұрын
귀인조씨가 희귀케이스긴 하지만 감히 직접 중전이 되려고는 안(못)했죠 ㅋㅋ
@pele2434
@pele2434 Жыл бұрын
인현왕후와 장희빈같은 경우나 조귀인과 장렬왕후의 경우 딱 두차례 외에는 없네요. 그만큼 법도가 엄격한거죠
@SSONGTAEWON
@SSONGTAEWON Жыл бұрын
귀인 조씨도 인열왕후가 살아있었을 땐 감히 나대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열왕후는 아들도 셋이나 있고, 인조가 가장 총애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인열왕후가 산후병으로 죽고, 세자 내외와 봉림대군 내외는 청나라고 끌려가서 인조가 의지할 가족이 사실상 없었는데 그때 귀인 조씨가 인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죠. 귀인 조씨는 질투심이 심해서 같은 후궁을 모함해서 죽이기도 하고, 본인은 서녀출신이라서 중전의 자리에 오를 수 없기에 새로 간택돼서 들어온 장렬왕후도 피부병이 있다고 인조에게 거짓말을 해서 인조가 장렬왕후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런데 인조가 죽은 뒤에 인조와 조씨의 아들인 숭선군은 장렬왕후의 사촌 조카와 부부사이였는데, 조씨는 장렬왕후의 사촌인 며느리를 미워해서 숭선군에게 자신의 시녀를 첩으로 들이게 합니다. 이를 알게 된 장렬왕후가 빡쳐서 조씨의 시녀를 잡아와서 직접 문초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조씨가 역모를 일으키려는 게 발각이 됐고, 조씨의 궁녀들을 잡아다가 끔찍한 고문을 가한 끝에 결국 이 역모계획이 사실로 밝혀졌죠. 조씨는 이 사건으로 인해서 사약을 마셨죠.
@hhh-yp9it
@hhh-yp9it Жыл бұрын
대신 중전한테 개긴 후궁들의 끝은 하나같이 안좋았죠 ㅋㅋ
@pele2434
@pele2434 Жыл бұрын
@@hhh-yp9it 장희빈은 숙종이 자진명령을 내려서 자결했고 조귀인은 저주와 역모가 들켜서 사약먹고 죽었죠. 결국 신분제 사회에서는 자기 본분을 지키지 않고 생각없이 나대면 목이 날아가더라고요. 참고로 중전한테 대든건 아니고 영빈이씨한테 대들다가 인원왕후에게 회초리를 맞은 문숙의는 정조가 사도세자에 대해 영조에게 이간질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사약내려서 죽였죠. 후궁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후궁은 어디까지나 후궁이라서 왕의 총애를 잃거나 총애하던 왕이 죽으면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라 비참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죠. 그래서인지 의빈이나 수빈은 정말 처신을 잘했던 겁니다. 의빈이야 원래부터 효의왕후와 우정이 깊었고 또 승은을 받은 이후로도 극진히 효의왕후를 모셨고 세자를 낳고 빈의 자리에 올라서도 항상 문효세자의 어미는 자신이 아닌 효의왕후라며 세자를 극진히 대하고 세자의 일은 항상 효의왕후에게 먼저 상의했다죠. 오죽하면 정조도 너무 겸손한거 아니냐고 다그칠 정도였으니 의빈이 효의왕후를 엄청 배려해주고 그렇게 했기에 내명부가 평화로울수 있었죠. 장희빈 같은 경우는 인성파탄 숙종이 남편인데다 인현왕후와는 소속당파가 달라서 장희빈 본인이 야심이 없었고 의빈처럼은 아니어도 적당히 인현왕후를 공경했다해도 숙종의 정치적 장기말로 이용되서 버려졌을 가능성이 있죠.
@young_d_y
@young_d_y Жыл бұрын
처음으로 코로나 걸리고 하루도 빼먹지 않던 헬스장도 못 가고, 학원도 못 가고, 밖애도 못 나가서 되게 우울했는대 교양만두 영상 보니 힘나네요. 감사합니다.
@고두부-p9x
@고두부-p9x 7 ай бұрын
코로나 6번 걸린 나도 있어요. 우울해 하지 말아요
@heaven_sunshining
@heaven_sunshining Жыл бұрын
역시 교양만두는 이런 콘텐츠가 재밌음 ㅋㅋㅋㅋㅋㅋㅋ
@user-ew1xy1rl8u
@user-ew1xy1rl8u 7 ай бұрын
결코 만만치 않은 고단함의 끝판인 삶 왕이 죽어야 비로소 이눈치 저눈치 안보고 왕의 명복과 낳은 자손 찿아오는 재미로 사셨구먼 😢😢😢😢😢
@드키무티
@드키무티 Жыл бұрын
변발 영상으로 알게 돼서 그 이전 이후 영상 챙겨봤는데 막상 조선 왕비편은 안 봤는데 ㅎㅎㅎㅎㅎㅎ 지금 바로 볼게요~ 1:58 갑자기 목소리가 다른 느낌이라 깜놀^^
@한상철-m6y
@한상철-m6y Жыл бұрын
이상의 이야기는 친정들이 같은 정파인 경우이고 서인,남인 식으로 갈리면 견제가 심하기도 했음. 예로 숙종때 인현왕후는 장희빈을 엄청 견제했고 숙종옆에 서인 출신 다른 후궁을 붙이려 했음
@hhh-yp9it
@hhh-yp9it 3 ай бұрын
근데 장희빈과 인현왕후 케이스는 결국 왕인 숙종이 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케이스예요. 숙중이 서인남인 간보면서 번갈아 편들었기때문에 그 배경이 있기에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싸움이 가능했던것. 결국 숙종이 둘다 이용한거죠
@cube5828
@cube5828 Жыл бұрын
역시 교양만두에서 말아주는 조선왕조 이야기는 개꿀잼ㅋㅋㅋㅋㅋ
@smartmandoo
@smartmandoo Жыл бұрын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박현종-m1w
@박현종-m1w Жыл бұрын
압도적 중앙집권을 했던 조선. 당연.... 사람 갈아넣는 그 시스템에 왕비도 갈리는데 후궁 따위야...
@YYMMDD-th2sf
@YYMMDD-th2sf Жыл бұрын
어떻게 이렇게 재밌게 만들 수 있는거죠?
@그리운그대여
@그리운그대여 Жыл бұрын
금요일 점심시간 굿타이밍이네요 잘보고갈게요~ 😄
@smartmandoo
@smartmandoo Жыл бұрын
점심시간은 교양만두와 함께~~!
@PiniCallan
@PiniCallan Жыл бұрын
오늘도 영상 잘 보고 가요!
@이동호-r1t
@이동호-r1t Жыл бұрын
조선만두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phdogy
@phdogy Жыл бұрын
아들있으면 아들네가서 살고 없으면 절에들어가야했으니 소생있으면 다행이고.. 소생없대도 친정이 부자면 친정에서 살기도하고 후대 왕이 효성지극하면 따로 거처를 내려주기도하고 case by case 임
@jonin_cunren
@jonin_cunren Жыл бұрын
어느 시대든 헬리콥터 엄마는 좋은 말을 못 들어요. 사랑할수록 믿어 주지 않으면 안돼...
@Yanyo_District
@Yanyo_District Жыл бұрын
형 어떻게 내가 쉬는날에 딱 올려줄수가 있어 형 진짜 줜나 사랑ㅎ ㅐ
@Yanyo_District
@Yanyo_District Жыл бұрын
@JahidHasan-qp2eg 미친건가
@차혜원-c6c
@차혜원-c6c 5 ай бұрын
사소하지만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주제로 영상 만들어 주셔서 궁금증이 정말 잘 해결되는 것 같아요! 영상 잘 보고 갑니다
@Light-Euntae
@Light-Euntae Жыл бұрын
왕비=빡센 회사생활 버티기, 후궁=빡센 상사 갑질 버티기
@elephant8650
@elephant8650 Жыл бұрын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dfjhbgvds
@sdfjhbgvds Жыл бұрын
자식이 딸이든 아들이든 있으면 편하게 살텐데.. 아예 없으면 비구니라 ㅠㅠ
@김민-p1i
@김민-p1i 7 ай бұрын
딸만있으면 찬밥이고 아들을 낳아야 입지가 강해지고 대우를 받았죠. 아들을 낳아야함
@C미르시아
@C미르시아 Жыл бұрын
아마 후궁들하고 사이가 좋은 왕비는 소헌왕후가 아닐까 싶어요. 신빈 김씨가 있었는데 둘째 아들 세조를 신빈 김씨한테 맡겨서 키우게 해서 세조가 신빈 김씨를 잘 따랐고 (나중에 막내 영응대군도 맡김) (덕분에 신빈 김씨 아들들도 세조 편이 됐지만), 단종은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한테 맡겼다고 합니다. 아 그리고 TMI 있다면 명성왕후하고 명성황후를 헷갈려 하시는데 둘의 시호만 같지, 한자 뜻도 다르고 시대 간 (약 200년 간의 차이가 있어요). 명성왕후 김씨, 명성황후의 성은 민씨입니다
@SSONGTAEWON
@SSONGTAEWON Жыл бұрын
그리고 신빈 김씨는 원경왕후가 궁으로 데려온 소헌왕후를 모시던 궁녀였습니다. 그러니까 소헌왕후 입장에서도 신빈 김씨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니까 자기 아들을 믿고 맡길 수 있었나 봐요.
@테라노돈1
@테라노돈1 Жыл бұрын
@@SSONGTAEWON 소헌왕후 친정이 박살났는데 후궁들이 개기지 못했나요? 자기가 소헌왕후 폐위시키고 중전자리 노릴수 있지않을까해서요
@rousemarie4275
@rousemarie4275 Жыл бұрын
사이 좋고 나쁜 건 정치 성향이나 사람 나름 인 듯 인현왕후, 영빈 김씨, 숙빈 최씨는 사이가 서로 좋았고, 영빈 김씨랑 숙빈 최씨는 또 인현왕후 사후 새로 들어온 인원왕후 김씨랑도 사이가 좋았고, 정성왕후 서씨랑 영빈 이씨도 사이가 나름 나쁘진 않았고, 효의왕후랑 의빈 성씨, 효의왕후랑 수빈 박씨도 사이가 나름 좋았고.
@pele2434
@pele2434 Жыл бұрын
당파가 같으면 친하게 지내고 당파가 다르면 서먹서먹하거나 대립하는게 보통이죠. 인현왕후랑 장희빈이 사이가 나쁜것도 서로 대립하는 당파 출신이고 거기다 숙종이 기름을 부었으니...
@Ginevra03
@Ginevra03 9 ай бұрын
2:05 숙종부터 이어지는 왕들의 예민 기질은 명성왕후 유전이라는 카더라가...큼큼
@Gioca_con_Inyoung
@Gioca_con_Inyoung Жыл бұрын
장희빈 진짜... ㅋㅋ 볼 때마다 고딩 때 답안지에 희빈 장씨라고 적어야했던거 희빈장이라고 적고 외국인 만들었던 썰 기억나네 😅
@ocean__whalee
@ocean__whalee Жыл бұрын
I love to learn the history of Korea and this video helps me learn it easy!! Thx :)
@그로밋과잼민이
@그로밋과잼민이 Жыл бұрын
어제언제올라오나기다림😂ㅋㅋ
@세인트엑소시스트
@세인트엑소시스트 Жыл бұрын
왕이 옆팀 상사라면 왕비는 우리팀 직속상사인데 사이 안좋으면 회사생활이 고달파지는것과 같겠죠? ㅋㅋㅋ
@shinwoori84
@shinwoori84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일부일처제라 왕도 예외가 아니죠. 후궁은 왕의 부인이 아니라 내명부의 관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gfuijfs
@gfuijfs 2 күн бұрын
ㅅㅅ하는 관리
@koreanwhistleplayeryiwonja329
@koreanwhistleplayeryiwonja329 Жыл бұрын
단종이 후궁? 놀랍네요
@p.p.7135
@p.p.7135 Жыл бұрын
02:10 김좌명 검색해보니 현종실록의 기록이 뜨는군요(좋은 세상이야...)."사람됨이 총명하고 재주가 많으며 모습이 아름다웠다"라고 적혀있네요(대신 성깔도 대단했다고). 아니 얼마나 잘생겼길래 문관이 잘생겼다고 기록되는거에요 장옥정도 아니고 ㅋㅋㅋ명성왕후는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후가 되었으니 시할아버지인 효종임금이 뽑으신 셈인데.... 미모를 따지는 격세 유전(효종임금→숙종)이 있었던 듯😂
@김준영-y2v
@김준영-y2v Жыл бұрын
2:10 명성왕후는 제 조상님이며 본관이 청풍김씨입니다. 김좌명 역시 같은 본관입니다. 청풍 김씨인데 빼어난 외모인 사람은 지금도 있는데, 바로 김태희입니다. 근데 제 외모는 왜이러죠?
@salm2000
@salm2000 Жыл бұрын
왕비와 후궁의 삶과... 사대부집 며느리와 첩의 삶이... 거의 비슷했죠.
@킴카일-p5v
@킴카일-p5v Жыл бұрын
비교를 사대부가 첩이랑 비교를 하다뇨 후궁이 아무리 정실이 아니라고 해도 빈같은 경우는 대비 왕비 이후 조선에서 제일 높은 직급의 여성인걸요. 사대부가 첩따위의 인생과는 비하지못할 인생입미다.
@salm2000
@salm2000 Жыл бұрын
@@킴카일-p5v // 사대부가에서도 정식 혼례를 치른 첩은 정실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첩이라면 그냥 '야합'하여 들인 경우만 생각하는데... 정실에게서 자손이 없으면, 첩이라도 정식으로 혼례를 치러서 들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의 첩은 양인/천인 첩이 아니라, 양반가의 적녀/서녀 첩입니다. 물론 경우가 아니라고 화를 내는 어르신들이 있었겠지만, 절차에 맞춰 들여야 조상들이 아이를 점지해 준다고 여겨서, 정식 혼례를 치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는 고려 시대에는 '처'를 2인 이상 두던 관습과 비슷하죠. 조선시대에는 '처'는 1인으로 하고 첩을 들이는 거라서, 첩과 혼례하는 게 드물어졌을 뿐입니다.
@tsg2201
@tsg2201 Жыл бұрын
왕비는 왕의 배우자, 후궁은 왕의 (배우자가 아닌)신하
@hhh-yp9it
@hhh-yp9it 3 ай бұрын
근데 왜 후궁은 아들이 왕이 되어도 대비가 될수없고, 수렴청정할 권리가 없었나요? 대비는 선왕 혹은 추존왕의 정실이어만 될수있어요. 후궁, 중전, 대비를 차례로 밝은 순있어도 중극 사극마냥 후궁에서 바로 대비가 될순 없어요. 그게 조선이 유난ㅅ니 적서를 따졌다는 증거임
@최은경-h5r
@최은경-h5r Жыл бұрын
오랜만에 보게되었는데 나레이션은 왜 바뀌었나요?? 이전에 익숙하게 봐서인지 어색하네용
@KIM-SIAN
@KIM-SIAN Жыл бұрын
책상 넘 예뻐용!!
@seoyeon_0131
@seoyeon_0131 Жыл бұрын
왕비편 15번봤다요 히힣ㅎ 교양만두 짱ㅇ
@eqws
@eqws Жыл бұрын
이영상 아껴놨다가 혼밥할때 봐야지
@gullmine
@gullmine Жыл бұрын
재업?
@남복-v4y
@남복-v4y Жыл бұрын
옛날 만두님? 남자분 나래이션이 그리워여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Жыл бұрын
조선 초중기는 후궁이 아들을 낳으면 왕비로 올리고 왕비를 따로 뽑지 않았는데 (세종 실록) 숙종 이후는 왕비를 서인쪽에서 다시 배출했음. 나중에 세도정치로 이어지는 안동김씨나 풍양조씨들이 그 서인의 계파이고. 후궁이 힘이 쌨던 조선 초중기는 사림들이 서로 견제했을때임. 남인 서인 동인 북인. 숙종이후는 서인이 최종 승리자가 되면서 서인에서 쌘놈이 중전 배출하는식이됨
@LaLaOlivia-q4p
@LaLaOlivia-q4p Жыл бұрын
재미있게 봅니다
@하체빌런
@하체빌런 Жыл бұрын
저의 최애영상은 '조선시대 공무원 계급도' 입니다
@smartmandoo
@smartmandoo Жыл бұрын
오 엄청 오래된 영상!
@savjeong
@savjeong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 왕족 말고 궁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조선 왕실이 해체된다음 어떻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CJ-Soloist
@CJ-Soloist Жыл бұрын
왕족 성이 널리 퍼진 스토리
@luansen0
@luansen0 Жыл бұрын
나 이영상 꿈에서 본것 같아요!! 나 거기서 '대왕대추마마 납시오!!'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혹시 이게 데자뷰?!
@배워-c4d
@배워-c4d Жыл бұрын
봐도 봐도 잼있어
@White_lucas
@White_lucas Ай бұрын
교양만두 잘 키운대며!!!!!
@참깨밤비
@참깨밤비 Жыл бұрын
티비 드라마가 망쳐놔서 그렇지... 예를들어 슈룹처럼 후궁이 중전한테 나댄다거나...그러면 그건 왕도 뭐라고 못함요 그자리에서 사약 나이스샷 각임..
@vac_room
@vac_room Жыл бұрын
3:32 개처럼 일하는 묘사 넘 웃김 ㅋㅋㅋㅋ
@elephant8650
@elephant8650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rjsxmfkdl915
@rjsxmfkdl915 Жыл бұрын
제목은 왕이죽으면 후궁이어떻게되었을까 이고 유투브 제목은 중전과 후궁은정말로 사이가 안조았을까 인데. 영상 내용이 제목과 그다지 일치하지않는 내용태반이네요…😢 좀 실망스럽습니다
@user-bv4gt1vk2k
@user-bv4gt1vk2k Жыл бұрын
제목선정을 다소 잘못했을지도
@sinamo3484
@sinamo3484 Жыл бұрын
후궁들도 극한 직업이였네요.
@southern_scepter
@southern_scepter 5 ай бұрын
어디서 보니까 장희빈이 악녀라는건 다 드라마에서 만들어낸거라던데 인현왕후가 사실 성격이 개빡셌고 장희빈을 질투했다는 기록이 많다고... 장희빈이 여우짓인지 진심인지 인현왕후한테 달려와서 숙종 시침 거부했는데 숙종이 강요한다고 일렀다는데 그거 말고는 딱히 무슨 짓을 한 기록이 없다고 함
@2345pok
@2345pok Жыл бұрын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생각이 나네여 연산군생모 윤씨와 정귀인생각도 나구
@JM-pl2qc
@JM-pl2qc 9 ай бұрын
1:20 엇 이 일러스트 누구실까요?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현-g8h
@현-g8h 7 ай бұрын
방탄 정국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보다가 어 왜 내 가수가 여기 있지 이러면서 엄청 웃었습니다ㅋㅋㅋㅋㅋ
@hyeonsseungsseungi
@hyeonsseungsseungi Жыл бұрын
2:01 순종은 정신지체 장애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누가 보면 나라 생각하다 그런줄 알겠습니다.
@eunsohjjk5960
@eunsohjjk5960 5 ай бұрын
세조왕 도 후궁안두고 왕비만 사랑했다던데 잘 조사한거 맞나여?
@윤도희-t7v
@윤도희-t7v Жыл бұрын
2:19 나래이션이 명성왕후를 명성황후로 착각하셨나봐요
@vent_0412
@vent_0412 Жыл бұрын
내가 이래서 슈룹 안좋아했음... 후궁들이 감히 1티어 중전한테 ㅈㄴ 나댐ㅋㅋㅋㅋ
@nojams732
@nojams732 Жыл бұрын
내 말이 게다가 세자포함 아들만 다섯이었는데 ;;;
@유느1
@유느1 Жыл бұрын
앗 정시에 올릴줄
@smartmandoo
@smartmandoo Жыл бұрын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ㅎㅎ
@버블버블버블
@버블버블버블 Жыл бұрын
​​@@smartmandoo 공항으로 가서 해외여행 가러왔는데 너무 궁금해 지금 보고 있는 1인입니다
@사막별꽃신
@사막별꽃신 Жыл бұрын
2:03 아직 순종인데요? 재업이라면서 안바뀌었네요 확인좀?
@flying_squirrel_
@flying_squirrel_ Жыл бұрын
어제 올라왔던거 아님?
@dark_character77
@dark_character77 Жыл бұрын
예전부터 궁금한게 왕이 아내가 많았던 시대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언제부터 여자가 많으면 바람피거나 양다리로 인식 됬을까?
@핸2-k1t
@핸2-k1t Жыл бұрын
엄밀히 말하면 아내는 오직 한명만 둘수 있었습니다. 일부다처가 아니라 일부일처다첩제였습니다. 처와 첩은 명백히 다른 위치로 후궁들 역시 첩에 불과하고 아내가 아닙니다. 아내를 여러명 두는건 대표적으로 이슬람권인데 물론 나이나 결혼한 시기에 따라 어느정도 위계는 있었겠으나 공식적으론 모든 아내는 동등하며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처와 첩처럼 대우가 다르고 그 자식이 적자냐 서자냐 하지 않습니다. 축첩이 금기시 되기 시작한건 일제강점기부터입니다.
@hhh-yp9it
@hhh-yp9it Жыл бұрын
그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죠. 한 100여년 전만해도 남자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축첩이 없었던 나라가 더 적음. 서양쪽은 정부라 불렀지만
@loess7590
@loess7590 Жыл бұрын
금요일의 교양만두???
@smartmandoo
@smartmandoo Жыл бұрын
오히려 좋아?
@RA-ci8mi
@RA-ci8mi Ай бұрын
궁금한 점이 있는데 인조의 후궁 귀인 조씨는 어땠나요? 인조의 총애가 어마어마했고, 왕비인 장렬왕후는 나이도 어린 데다 인조의 관심 밖이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귀인 조씨는 왕비에게 대들었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던 건가요?🤔
@audio3794
@audio3794 Жыл бұрын
현종도 승은상궁은 있었는데 명성왕후 쪽이 홍수의 변을...
@맑고순수한아이
@맑고순수한아이 Жыл бұрын
대추나무에 사랑걸릴수가 있다니. 워니야 우리도 사랑걸리자❤❤❤
@화조풍월-h7w
@화조풍월-h7w Жыл бұрын
아리님도 잘하네... 추추님이랑 다른 매력
@벤디잉크
@벤디잉크 Жыл бұрын
치즈마루2개,빠삐코딸기맛2개,썬키스트 자몽소다,탱크보이2개,초코에몽쭈쭈빠4개,얼음1개,간짱뽐큰컵ㅡ3
@sfk1031
@sfk1031 Жыл бұрын
아들이 없으면 친했겠지. 아들 있으면 왕으로 만들려고 싸웠을꺼고
@핑구-s5c
@핑구-s5c Жыл бұрын
과연 어디가 바뀌었을까
@잭팟-r4b
@잭팟-r4b 5 ай бұрын
명성왕후 : 숙종은 내 아들이지만 나도 컨트롤하기 어려웠다. 실제 기록 ㅋㅋ. 숙종 어린시절 머리 빗기는데 짜증내서 명성왕후가 직접 머리통 후려갈긴 기록도 있음.
@삐뽀삐포
@삐뽀삐포 Жыл бұрын
현실에서도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 엄마딸처럼 좋은 경우도 있음 드물어서 그렇지
@panchokim86
@panchokim86 Жыл бұрын
측실이 정실에 대들다 맞아 죽어도 할말이 없는 시대입니다.
@캐시퍼
@캐시퍼 Жыл бұрын
목소리가 바뀌다니....
@강희성-d2z
@강희성-d2z Жыл бұрын
발음이 명성"황"후로 들리네요 명성왕후랑 다른데요
@BitJenny
@BitJenny Жыл бұрын
0:03 당연히 봤죠 ㅎㅎ
@smartmandoo
@smartmandoo Жыл бұрын
@어휴..왜항상나만
@어휴..왜항상나만 Жыл бұрын
절로 들어가는거 당나라때 문화
@체페-b2w
@체페-b2w Жыл бұрын
3:36 아니 이거 뭐야 ㅋㅋ
@hee967
@hee967 Жыл бұрын
조금만 더 디테일 했으면 재미있었을거 같아요 예를 들어 후궁의 품계와 현재 사극이 거의 망상에 가까운에 많아서(말이 퓨전 사극이지 역사 외곡에 ㅜ ㅜ) 예를 들어 철인 왕후도 그렇고요 중전이랑 같은 탁자 자리에 앉지도 못 했는데 조르르 같이 앉아서 상의 학고 풍계 무시하며 할말 다 하는거 어의 없었거든요 내명부는 내명부 법도에 의해 일단 처벌을 했지 왕에서 쪼르르 가서 이르거나 그런거 못하거든요 종4품이 할말 다 하는거 보고 어이 없었음요 님도 드라마랑 비교 하며 제대고 역사를 전해 주는 컨텐츠는 어떨까요? 목소리도 좋으시고 알기 쉽기도 할거 같은대요 저자권 걸리면 모자이크 하시면 안될까요 오타는 죄송요 액정 반이 금이 가서 ㅜ ㅜ
@eunakimblythe9809
@eunakimblythe9809 Жыл бұрын
궁 안위 여인들은 죄다 임금의 여인이었다고 하죠..............
@junyoungoh9903
@junyoungoh9903 9 ай бұрын
1:19 ㅋㅋㅋ
@안강현-u2e
@안강현-u2e Жыл бұрын
그러면 현종 이후로는 자식 없는 후궁들이 머무를 곳이 마땅치 않았겠네요?
@카카루-o3y
@카카루-o3y 9 ай бұрын
순종은 애초애 고자였다는썰이 있어서..
@yenjulee5336
@yenjulee5336 7 ай бұрын
요즘은 후임이 탱자 탱자 출근은 업무시작 2분전 퇴근 10분전 칼
@이순신박사
@이순신박사 2 ай бұрын
장녹수도 불가능했던일이지 그천하의 장녹수도 연산군이 미치도록 더 사랑했던 폐비신씨는 함부러 하지못했다죠 실제 연산군도 장녹수에게 중전자리는 넘보지말라고 중전 자리 넘보면 처단한다고 했다고하죠
@Honey_Black_Tea
@Honey_Black_Tea Жыл бұрын
재미있다! 그래서 후궁이 누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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