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사견]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와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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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한국 근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거대했던 인물 흥선대원군 이하응.
그의 정책 가운데 쇄국 정책은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하며, 흥선대원군이 꼰대라는 인식이 대중들에게 많이 퍼지게 된 원인이 되었는디요.
이 영상을 통해 쇄국 정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어디까지나 역사에 대해 바라보는 개인적인 사견이니 만큼 재미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차]
1. 개국을 하여 통상하면 조선은 무역 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가? (feat. 최익현)
1-1. 통상을 했던 청나라와 일본, 베트남이 겪은 피해
2. 흥선대원군은 본래 서양 문호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2-1. 오페르트의 남연군 분묘 도굴 사건은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3. 흥선대원군이 쇄국을 펼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
3-1. 흥선대원군의 불안한 입지
3-2. 개방 이후 외세에게 박살난 청나라의 광경
3-3. 이필제의 국가 전복 시도
4. 그렇다면 조선이 개국을 하기 가장 좋았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5. 흥선 대원군 쇄국 정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정리

Пікірлер: 7
@user-hy2kr8bc9f
@user-hy2kr8bc9f 5 ай бұрын
또 한가지 중요한 점으로 일본은 매우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봅니다. 혹자는 에도시대 경제부흥을 근대화로 연결시키는데 그점에는 동의할수가 없는것이 단순히 상공업부흥만을 가지고 근대화를 논할수는 없어서 일본이 에도시대때 근대화성향을 지향하는 정치사회개혁을 한적은 전혀 없스며 일본이 제한적이나마 서양과 통상을 했다라는 점을 들지만 그렇게 서양을 잘 알고 국제정세를 잘 알았다면 왜 1853년에 가서야 강제로 개항을 당했슬까요? 그리고 에도시대도 겐로쿠시대를 지나면서 경제가 쇠퇴해지고 각종 정치적 비리가 난무하면서 민생이 파탄에 빠지고 각종 민란이 횡횡합니다. 19세기 전반 정치가 혼란해지고 민생이 파탄으로 가는 현상은 한중일 삼국이 공통현상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대원군 집권초기만 하더라도 일본이 향후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을 할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개항후 아직 명치유신에 이르지 못한 상태의 일본역시 혼란정국이었기에 당시에 일본은 순탄히 발전하는데 조선은 쇄국을 해서 발전을 못했다라는 비교는 말이 안됩니다. 일본의 순탄한 발전의 시작은 적어도 1871년 보신전쟁을 종결한후부터라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dwd76
@dwd76 Жыл бұрын
혹시 1:48 여기에 지도는 어디서 뽑으신건가요? 토론 대회중이라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kmstv1810
@kmstv1810 Жыл бұрын
구글에 조선 무역 방곡령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시면 이미지가 많이 나옵니다.
@dwd76
@dwd76 Жыл бұрын
@@kmstv1810 혹시 저기 사치품 이란 단어가 정확하게 무슨 뜻인가여??
@kmstv1810
@kmstv1810 Жыл бұрын
@@dwd76 상류층에서 쓰는 고급품이요. 조선 시대 하층민 기준으로는 비단도 사치품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이장훈-q7y
@이장훈-q7y 2 жыл бұрын
저도 이런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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