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 세종의 원래 묘 자리에 대한 탐구가 많이 부족한 듯 합니다. 세종의 원래 묘 자리는 지금의 인릉(순조의 묘) 자리이고, '구 세종대왕릉 자리'라는 표지석이 있는 곳은 중종 계비 장경왕후 윤씨 초장지 (구 희릉 터) 입니다.
@김영석-r2q Жыл бұрын
왕묘관리비용은어떻하나궁금해요 국민세금으로관리하나?
@하이쿵-z5m8 ай бұрын
전주이씨가 알아서 해야 하는데 문화재청 즉, 세금으로 관리하죠. 조선왕족 유교뽕에 취해서 발굴조사도 못하게 하는데 세금으로 관리받는 양아치죠.
@ILSEONGJEON Жыл бұрын
궁금하네요 👍😘
@ILSEONGJEON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 응~ 너의 조상들이 모셨잔아, 알고싶지 않나..ㅋㅋㅋ 역사는 바로알아야 하기때문인디..🤔
@ILSEONGJEON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 저도 조금은 알죠. 조선 이조의 만행 "고려 시대 태조왕건의 왕씨 의 친인척 가계을 200년간 말살"했죠~ 그래서 옥.전 씨가 생겼죠~
@ILSEONGJEON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 한글문맹 이야기 까지 하심 넘 깊이가...ㅎㅎ
@jib7231 Жыл бұрын
흥선대원국의 아버지 충남 예산군의 남령대군 묘를 가보시오.. 대한민국 최고의 명당인데 두 임금을 낳았으니 고종과 순종이니라.. 다만 거기서 사찰터인데 그 자리를 빼앗기 위해 불질럿다는데 그때 주지승이 노여워했다는데 그래서 조선이 망했는지도..
@홍보경-g8y Жыл бұрын
류선생님의 사유의 세계와 천지지간의 교감, 응기반응과는 많은 격차가 있는듯 합니다. 관점을 포인트로 결과 중점와 연기 중심으로 보자면 차이가 많겠지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관점 차이랄까 싶습니다.
@OverclassIdentity5 ай бұрын
한가지 드는 의문이 왕이 죽어서 릉까지 계속 상여를 메고 갔나요? 서울(한양) 근교면 그래도 왕이니까 하고 좀 힘들어도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어떤 릉은 경기 남양주시 같은데에 조성이 되어있으니 한양 -> 남양주까지 지금과 같이 좋은 도로 사정도 아닐꺼고 대체로 명당이면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해서( 물론 조성할당시 어느정도 작업은 하겠지만) 접근성도 그리 좋지 않았을꺼 같은데. 그점이 좀 궁금하군요.. 그렇다고 유교나라에서 왕의 관을 수레에 싣고 질질 끌고 가는건 불경하다고 생각했을듯 한데... 아시는 분 답변좀....
@kyodeokkim2527 Жыл бұрын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조선이주 수인초 - 대륙조선의 량반들은 한반도로 리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취록 2015. 6. 24. 20:10 조선이주 수인초 - 대륙조선의 량반들은 한반도로 리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대륙은 혼란상황이었다. 1926년 조선황제 순종폐하 승하 이후 장안일대는 고립무원이었다. 당시 그 이전부터 조선이주수인초를 각 일본지서에 배포했던 조선통감부는 이 조선의 이주 갑지 중국에서 을지 청구반도로의 이주를 어떻게 돈을 줘서 마차와 배를 리용하라는 문구도 나온다. 이 메뉴얼은 곧 청구반도로의 이주를 장려하는 일본당국자들의 의도가 숨어 있었고 당시 대륙은 홍군 홍귀 紅鬼들 즉 빨갱이가 이 홍귀에서 나온 단어 귀신 귀가 대륙조선어로는 괴 로발음된다.과 국민당의 부정부패 특히 화적단 마적단들은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조선량반들을 특히 테러대상으로 삼았고 실제 이 시기에 수많은 조선량반들이 피해를 당했다. 당시 한반도는 이런 피해를 안받을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었다. 당시에는 일본제국 헌병대들의 보호가 그들에게는 더 필요했다. 대륙조선이 분열된것에는 이런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조장된 내부갈등 방조된 조선량반들에 대한 린치 등이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조선을 보호할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라는 의식이 심어지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빨갱이들에 대한 인식이 안좋아졌던 리유가 벌써 한반도에 들어왔던 대륙조선량반들이 이 홍귀들에 대한 반감이 후에 해방직후 좌우 리념대립당시 백색테러가 일어났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다. 이 홍귀들에 의한 대륙조선량반들의 갈취와 테러는 이들로 하여금 한반도로 리주를 하게 한 원인이었고 이들이 김일성같은 조선을 표방하는 대륙조선인들을 한반도 조선으로 파견하여 한반도영구분단으로 대륙조선의 부흥을 막고자한 것이다. 당시 참전한 중공군들 대부분은 대륙조선인들의 후손들이었으며 이들을 전쟁에서 소비하고자 전쟁에 참전한 것이었다. 전쟁에 패배한 김일성이 군부에 의해 제거되지 않은 것은 중공군 50만이 남아 있었고 중국은 김일성을 버리지 않았다.그가 오히려 뛰어나지 않았기에 김일성은 중국에 의해 살아남았던 것이다.역설적이게도. 조선을 한반도에 묶어 두고 통치할 중국공산당 휘하의 총독이었고 자신들의 국호도 조선공화국으로 하였기에 더욱 북한은 중국에게 필요한 나라였다. 신중국파들은 조선이 력사의 진실을 깨닫고 자신들의 령토로 들어오겠다고 하는것을 가장 두려워 하였다. 그래서 나라를 세운지 1년도 안되서 군대를 한반도로 파견해야했던 것이다. 중국은 이 전쟁비용 메꾸는데 30년이 걸렸다.왜 그런 출혈을 감수했을까.조선의 부흥은 신중국파들의 새로운 중국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던 것이다.력사를 왜곡하고 동북공정하는 이유다. 한반도로 조선을 고착화 하기 위한 의도가 그 내면에 숨어 있기에 한국전쟁 중공군참전의 력사가 발생했던 것이다. ........................... "지금의 중국이 한국, 현 중국은 본래 없었다"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교수- 들어가며 한민족의 역사를 바로 정립하지 못하고 중국과 일본에 역사를 도둑맞고 왜곡당하는 것을 보는 구미학자와 중국,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까지도 바른 한국역사를 알려주는 역사의 진실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의 역사가 1만년이 넘는데도 중국과 일본이 우리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한 것을 어찌해서 한국의 강단 사학자들은 자기나라의 역사를 폄훼하며 중국.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지 상식적으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양심적인 외국학자들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가 말도 되지 않을 만큼 왜곡되었슴은 물론 우리가 유라시아와 중국의 중원은 물론 세계를 주도한 최초 최고의 시원국(始原國) 인데도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에 의야해 한다. 중국과 일본은 상고사가 없는 나라다. 지금 중국과 일본의 상고사는 거짓되고 왜곡된 허구의 역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진실을 아는 학자들은 상대적으로 우리를 나무라고 있다. 그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역사의 무지로 잠을 자고 있는 우리를 일깨워 주지만 한국사학을 장악한 학노(學奴)들이 연구도 하지 않고 있음을 한탄하며 우리에게 역사를 바로 알려주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고사와 고대사를 깊이 연구한 이들 세계여러나라의 석헉들은 한민족이 인류 최초 최고의 국가를 건국하고 인류에게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시원국(始原國)임을 무감각한 한국인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naver.me/xBpUVAmo 그들은 중국과 일본은 없는 역사도 조작하고 우리역사를 도둑질하기 위해 가진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데도 우리나라 학자들은 어찌해서 그들의 수족노릇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다. naver.me/xBpUVA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