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지금 41]_생각할 때만 나타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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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il Seonwon

Samil Seonwon

Ай бұрын

삼일선원 - 선불장(選佛場)
[영원한 지금 41]_생각할 때만 나타나는 세상
- 본래 없는 것이 지금도 없다 本無今無본무금무
2024년 4월 14일 선재 박준수 선생님의 조사선 법문입니다.
*법회 장소 : 서초동 서울변호사회관
*법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 12시
*야단 법석 : 법회 후 오후 1시 ~ 3시
*교재 : 『영원한 지금 - 마음을 밝히다』, 선재 박준수 저, 좋은땅 펴냄(2023), (p306-313)
제10장 출세간의 안목으로 세간을 살다(入鄽垂手) 92. 나 이외의 다른 신(神)을 섬기지 말라 93. 은산철벽(銀山鐵壁)은 나(ego)였다
*『영원한 지금』 법문집은 온라인 서점에서 또는 동네 서점에서 미리 주문하시면 구하실 수 있습니다.

Пікірлер: 11
@user-zp6ww9tt9y
@user-zp6ww9tt9y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user-rq9lb4sp2r
@user-rq9lb4sp2r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 🙏🏻
@user-cz4jz1zv8m
@user-cz4jz1zv8m Ай бұры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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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gj4lo5ui7u Ай бұрын
선생님 감사합니다🙏🙏🙏🪷
@user-ig4nc2ct1r
@user-ig4nc2ct1r Ай бұрын
삼일선원 - 선불장(選佛場) 선재 박준수 선생님의 조사선 법문입니다. *법회 장소 : 서초동 서울변호사회관 *법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 12시 *야단 법석 : 법회 후 오후 1시 ~ 3시 *교재 : 『영원한 지금 - 마음을 밝히다』, 선재 박준수 저, 좋은땅 펴냄(2023). *『영원한 지금』 법문집은 온라인 서점에서 또는 동네 서점에서 미리 주문하시면 구하실 수 있습니다.
@ASMR-dt3ce
@ASMR-dt3ce Ай бұрын
생각하든 안 하든 세상은 여여하게 굴러가지
@user-uu8bd8gc3u
@user-uu8bd8gc3u Ай бұрын
🙏🙏🙏🪷
@user-ig4nc2ct1r
@user-ig4nc2ct1r Ай бұрын
2024년 4월 14일 [영원한 지금 41]_‘생각할 때만 나타나는 세상’ 선재 박준수 선생님 법문 중에서(1) 선거가 끝났죠.^^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어디냐에 따라서 우리가 이제 기뻐도 하고 화도 나고 그랬을 텐데, 사실은 세상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 답은 내가 분별을 통해서 만들어낸 답 아니에요? 다른 답은 둘이 아닌 지금 여기에 있지. 자유로운 입장에서, 분별로부터 놓여난 입장에서 쓸 때, 쓸 때, 자유롭게 쓸 때, 답으로부터 벗어나서 답을 쓸 때, 그게 답이지. 그러니까 뭐 이제 그런 것은 다 끝났고. 지금 여기 일이니까. 다 지금 여기 일 아니겠어요? 세상일이 아니고. 세상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지금 여기 일이지. 지..금..여..기.. 그 시공간이 그렇듯이 옳고 그른 것이 다 지금 여기 내 일 아니었어요? 너 없는 내 일. 그러니 둘이 아닌 안목으로 이제 세상도 바라봐야 되겠죠. 내가 과연 내가 답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말 둘이 아닌 안목에서 바른 선택이었는가? 이것은 우리가 모르지. 그러나 우리가 이 공부를 하면서 세상이 주는 답으로부터 놓여나서, 내가 그 답으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에서 답을 쓸 때, 그게 정답일 거야. 이제 우리 안목을 키워가는 일밖에 없어요. 그것만이 安心立命處(안심입명처)니까. 어떠한 결론에도 안심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다시 둘이 아닌 안목을 이제 부지런히 키워가야지. 우리가 쉴 곳은 지금 여기뿐이니까. 오늘은 그 제목을 ‘생각할 때만 나타나는 세상’ 그랬습니다. 우리가 생각이 없으면 나타나겠어요? 생각을 안 하는데. 마치 깊은 잠에 든 것과 같지. 꿈은 본래 있는 세상이 아니죠. 꿈은 본래 있지 않아요. 본래 있는 게 아니야. 꿈꿀 때만 나타나는 세상이죠. 이것은 동의하시죠? 그 본래 있는 세상이 아니라면 그게 어찌 꿈을 꿀 때만 나타나겠어요? 그런 것을 보면 꿈꿀 때만 나타나는 것을 보면 본래 있는 세상이 아니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몸을 담고 사는 이 세간인 이 세상도 본래 있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본래 있는 세상인 줄 알았는데, 본래 없는 거야. 내 분별이 동서남북을 만들고 과거 현재 미래를 만들었던 거야. 그러니까 이 현실도 생각할 때만 나타나는 세상이에요. 꿈하고 똑같아. (법문 동영상 3분 45초) * 入廛垂手(입전수수) 이제 卽見如來(즉견여래)한 눈으로 時空間(시공간)을 살아간다. 이제 둘이 아닌 出世間(출세간)의 눈으로 둘로 만물로 나누어진 世間(세간)을 살아간다. 이제 모를 수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이름과 槪念(개념)으로부터 自由(자유)로워 이들의 從이 아니라 이들의 主人(주인)으로 이들을 부리고 쓰면서 살아간다. 隨處作主 立處皆眞(수처작주 입처개진)이다. 市井(시정)에 머물러 하되 한 바 없이 無心(무심)히 오늘을 살아간다. 이제 모를 수 있어. 이제 진정 모를 수 있어. 그게 아주 중요해요. 모를 수 있다는 것이 관념적으로만 알면은 그것은 아는 것이죠. 정말 모를 수 있어서 알고 있는 모든 이름과 槪念(개념)으로부터 自由(자유)로워서 아는 것으로부터 종이 되지 않고 그들을 부림을 받지 않고, 이제 내가 삶의 주인이 된 거야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그 주인으로서 이름을 부리고 쓰면서 살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진정 자유이고 안심입명처라요. 그것을 隨處作主 立處皆眞(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 했잖아요. 가는 곳마다 주인이고 서 있는 곳마다 진실해. 우리가 진실을 떠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시정에 머물러서 세간법으로는 가고 오고 하는데 가고오고 한 적이 없어. 그러니 모순되죠. 세간법에서는 가고 오는 것이 분명하지만 출세간법에서는 전부 지금 여기 일이라 가되 간 바 없고 오되 온 바 없어. 하되 한 바가 없는 거야. 그 안목으로 이제 살아가게 되는 거야... 마음대로 희노애락하고 그렇게 살아. 그게 자유로운 경지라요. 그놈들한테 이름에 묶여서 살지를 않고 이름에 놓여나서 그 이름을 쓰면서 사는 것. 그러니까 우리는 늘 있는 그대로 살아왔어. 단지 우리가 망상을 하고 살았을 뿐이라요. (법문 동영상 21분~24분 12초) * 向上一路(향상일로) 理卽頓悟(이즉돈오)이나 事非頓除(사비돈제)다. 그러므로 둘이 아닌 안목을 익혀가는 向上一路(향상일로)의 길을 가야하는 것이다. 實體(실체)가 없어 꿈일 뿐인 境界를 바꾸려 할 것이 아니라 둘이 아닌 眼目(안목)에 힘쓸 일이다. 이것이 向上一路(향상일로)의 길이다. 그러나 생각이라면 境界(경계)를 바꾸려 함도 꿈이요, 그냥그냥 살고자 함도 꿈이다. 積極(적극) 消極(소극)에 無心(무심)할 수 있다면 비로소 어떤 삶도 無爲(무위)라 할 것이다. 理卽頓悟(이즉돈오)이나 事非頓除(사비돈제)다. 이치는 분명하잖아요. 여기 깨닫지 못한 분이 어디 있어? 그렇다고 해서 “아 내가 깨달았다.” 하고 공부를 멈추면 안 돼. 그것은 다시 그냥 ‘모른다고 아는 것’으로 공부를 삼아. ‘모른다고 아는 것’은 그거 그냥 아는 거야. 참말로 모를 수 있어야지. 참말로 모를 수 있어야, 알고 모르고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아 진리는 모른대.” 하면 그 모르는 것으로 진리를 삼고 있지. 알고 모름을 넘어선 모름이지 여기서는. 그러니까 理卽頓悟(이즉돈오)이나 事非頓除(사비돈제)라고 한 거예요. 이 이치야 뻔하잖아요. 그 이치에 동의하지 않는 분 계실까? 그런데 실재는 자꾸 모른다는 것을 쥐고 살아. 그것은 자유로운 것 아니라요. 모른다는 것에 묶여 사는 것이지. 理卽頓悟(이즉돈오) 둘이 아닌 백척간두진일보한 안목을 얻는 것은 頓悟(돈오)이나, 세간에 대한 習(습)은 한꺼번에 제거되지 않아 그게 事非頓除(사비돈제)라요. 우리가 중독되어온 시간이 삶이 얼마나 길었는데, 그 중독이 그렇게 풀리겠어요? 불교 용어로는 業障(업장)이라고 하는데 그 중독이라는 말도 여기서 쓸 수 있고 자기 암시에 걸려있는 것이죠. 내가 옳다 내가 보는 내 생각이 옳다고 하는 암시에 걸려있어. 그러니 그 습은 한꺼번에 제거되지 않는데. 그러므로 낯선 출세간은 낯익게 하고, 세간은 우리가 익혀온 세상이야. 그러니까 우리 공부는 낯선 것은 낯익어가야지. 낯익은 세간법은 낯설어가고, 출세간법이 낯익어가는 공부라요. 二句(이구)는 낯설어가고, 一句(일구)는 낯익어가야지. 말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세상이고, 일구는 낯설잖아요. 그러니 어떤 게 낯익어가야 해요? 一句(일구)는 낯익어가고 二句(이구)는 낯설어가야죠.‘ 이게 悟後工夫(오후공부)예요. 그러니 向上一路(향상일로)라 그러지. (법문 동영상 24분 12초~27분 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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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ig4nc2ct1r Ай бұрын
2024년 4월 14일 [영원한 지금 41]_‘생각할 때만 나타나는 세상’ 선재 박준수 선생님 법문 중에서 (2) 公案(공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公案에 대한 見處(견처)를 스승께 말씀드려서 한 번에 통과되지를 않잖아요. 한 번에 통과되는 것은 아닐 거야. 자꾸만 그거 씨름을 해야 해. 한 번에 통과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대답도 안 해줘. 고개만 이렇게 절래절래 흔들면은 그거 아닌 걸로 알아야 돼. 자기 주장을 하면은 그거는 잘못된 거라요. 내가 “아 이거 아닙니까?” 하니까, 스승은 “아니면 아니야.”만 하시지 더 이상 대답을 안 해줘요. 그게 禪家(선가)의 풍습이야. 그러고 그것 제자를 가르키는 아주 오랜 역사적인 것이지. 거기서 말을 진전시키면은 서로 못할 짓 하는 거야. 그러니까 공안과의 접촉에서 한번 만나서 자기 견처를 말하는 것을 一合(일합)이라고 합시다. 왜 삼국지에 보면은 장수끼리 만나서 싸움이 一合에 끝나지 않고 二合(이합) 三合(삼합) 그렇게 가잖아요. 공안을 한번 뚫어내는 것을 一合이라고 해봐. 그런데 번번이 실패하거든. 그러니까 다시 칼을 갈아가지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 二合이 되겠지. 이합 삼합 사합 오합... 결투가 끝나지 않아. 그 공안이 그렇게 다루기가 힘든 거라요. 그 공안을 너무 가볍게 생각 마세요. 그냥 아니라면 아닌 거야 그냥. 그렇게 우선 따라야 돼. 그러니 지난 번 시간에 얘기한 庖丁(포정)이라는 백정이 소 한 마리를 잡는데 처음에는 다섯 번 칼을 갈았다잖아요. 그것이 일합 이합과 같은 얘기일 수 있어. 일합에 안되고 이합에 안되고 삼합 사합 오합까지 가지. 그런데 그게 칼이 점점 날카로워지니 이제 中道(중도)를 얻었어. 양변에 치우치지 않는 中道(중도)를 얻었어. 一句(일구)를 얻었어. 그 一句는 쓰면 쓸수록 날카로워지는 거예요. 갈면 갈수록 날카로워 지는 거야. 그 一句(일구)를 얻으니까 소 백 마리를 잡아도 칼을 갈 필요가 없다고 해. 그게 그런 거야. 世間(세간)의 분별에 걸려버리면 칼이 자꾸 무뎌지는데, 세간분별법에서 빠져나오니까 칼이 점점 새로워지는 거야. 그 이 공부의 길이 임제가 그랬잖아요. 마치 칼날 위를 걷고 사는 것과 같다. 칼날 위를 걷고 사는 것과 같아. 그렇지 않으면 금방 분별에 빠져버려요. 그래서 오랜 연마 끝에 이제는 아무리 많은 소를 잡아도 살과 살 사이 뼈와 뼈 사이 힘줄과 살 사이를 가게 되었어. 그게 中道(중도)를 이제 걷는 거야. 一句(일구)를 얻은 眼目(안목)이라요. 우리가 이제 公案(공안)을 대하는 태도도 그래야 해. 公案과 씨름을 해야 돼요. 그냥 一句(일구)다 해서 다 통과되는 것 아니야. 그 공안의 구조를 볼 줄 알고 이것은 왜 이런 말이 나왔고 이것은 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을 깊이 볼 수가 있어야 돼요. 中道(중도)를 얻어서 分別(분별)의 兩邊(양변)에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 공부의 길일 겁니다. 시간과 공간인 분별만을 아는 우리로서는 둘이 아닌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한 지금은 알 수가 없어. 그러니 言語道斷(언어도단)이고 不可思議(불가사의)하고 心行處滅(심행처멸)이야. 마음 갈 곳을 잃어버렸어. 백척간두가 마지막 희망이 거기였는데 그것마저 거부당하니까 마음을 어디다가... 그 但知不會(단지불회) 단지 모를 수 있는 것에 도달해야 되는데, 그것은 모른다고 아는 것과는 전혀, 여기서 말하는 모를 수 있다는 것은 달라. 그러니 銀山鐵壁(은산철벽)이라는 거야. 알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은산철벽이야. 그 알 수가 없는 것을 알려고 하니까 은산철벽이지. 그러니까 자꾸만 물어야 돼. 질문을 갖고 살아야 돼. 그 질문을 갖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질문 없이 사는 것은 여러분이 알고 있다는 거예요. 모른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질문 없이 사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질문이 나를 깨어있게 하지. 모른다고 아는 것은 그냥 답이야 답. 모른다고 아는 것이 아니라 진정 모를 수 있어야 돼. 진정 모를 수 있어야 돼. 모를 수 있는 길이 어떤 걸까? 모른다고 아는 것이 아니라 진정 모를 수 있는 길이 뭘까? 질문을 놓치지 말아야 해요. 질문을 하면은 모를 수 있는 사람이에요. 질문 없이 사는 사람은 모른다고 아는 사람이에요. 그렇지?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알 수 없다고 치부해버리면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야. 그냥 “이뭣고 이뭣고..”가 끊임없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아는 것으로부터 놓여난 사람이에요. 그렇지 않겠어요? 질문 없는 사람이 무슨 아는 것으로부터 놓여났겠어? 그러니까 우리 마음속에서 “이뭣고”라는 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늘 살아있어야지 그게 알고 모르는 데서 벗어나 있는 거예요. 살아있지 않으면, 질문이 살아있지 않으면 알고 모르는 데 떨어져 있는 거예요. 그래 그 질문을 갖고 산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러니까 우리 공안도 그래서 중요한 거야. 그 질문을 놓지 않게 하니까. (법문동영상 27분 20초~35분 15초) 고칙 118 도명선사(道明禪師)는 육조(六祖)가 대유령(大庾嶺) 꼭대기에서 “좋다고도 생각하지 말고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바로 이러한 때에, 무엇이 명상좌(明上座)의 본래면목(本來面目)입니까?” 하고 말하자, 즉시 크게 깨달았다. 고칙 119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禪師)가 처음 육조(六祖)를 찾아갔을 때, 육조가 물었다. “어디에서 오느냐?” “숭산(嵩山)에서 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오느냐?” “한 물건과 같다고 한다면 맞지 않습니다.” “닦아서 깨달음에 의지하느냐?” “닦아서 깨달음이 없지는 않으나, 본래 오염(汚染)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오염되지 않는 것이, 모든 부처가 호념(護念)하는 것이다. 네가 이미 이러하고, 나 역시 이러하다.” 고칙 120 어떤 승려가 남악회양에게 물었다. “예컨대 거울이 영상(影像)을 만들 때, 영상이 이루어진 뒤에 거울의 밝음은 어디로 갑니까?” 회양(懷讓)이 말했다. “스님의 경우 어렸을 때의 모습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법안(法眼)은 달리 말했다. “어느 것이 스님이 만든 영상인가?”) 그 승려가 다시 물었다. “영상이 이루어진 뒤에는 무엇 때문에 비추지 않습니까?” 회양이 말했다. “비록 비추진 않으나, 그것을 조금도 감출 수 없습니다.”
@user-rp1hz2wq7b
@user-rp1hz2wq7b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user-kt6sn7xh3k
@user-kt6sn7xh3k Ай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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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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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low @karina-kola plea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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