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공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의식공간을 김상운님은 '오감의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몽지님은 '이거'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이 의식공간에 대해서 와 닿지 않고, 체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편으로~ 캄캄한 밤에 호롱불(옛날 등잔불)을 들고 주변을 비추면서 걸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으로 이해해봅니다. 호롱불이 비추는 곳이 지금 우리가 눈 앞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호롱불을 들고 앞으로 걸어가면 눈 앞의 장면들이 순간순간(생소멸) 바뀌기도 하고, 또한 우리의 생각은 앞으로 걸어 가고 있다고 착각을 만들어 냅니다. 여기서 초롱불이 비추는 공간을 의식공간이라고 이해하고, 이 비추는 현상과 의식공간으로 인식된 현상을 꿈 속의 내용처럼 허상으로 봅니다. 꿈속에서의 현상은 꿈속에 있을때는 실제입니다. 다만 꿈에서 깨어났을 때만, 꿈의 내용이 허상임을 깨닫습니다. 초롱불에 비추고 있는 곳에 있을때는, 그 곳이 허상임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롱불을 확~끌까요? 저는 의식공간을 이해하기를~의식작용에 의해서 본질이(의식) 현상화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어차피 본질이라는 것은 주객체를 떠난, 인식작용으로 알 수가 없는 것이고, 오로지 의식이 현상화될 때 현상화된 것은 의식작용에 의한 것으로~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상으로 드러난 의식공간이라는 것은, 그것으로써 본질(의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은 의식(본질) 아님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니 좀 길게 쓰여졌습니다. 항상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명상애찬 Жыл бұрын
어린시절 호롱불을 들고 어두운 밤길을 걷던 경험이 많아서, 호롱불 비유가 참 재밌고 실감이 나네요. 그러나 새벽별이 떠오르기 전에는 그 호롱불 마져 확 꺼버리진 마세요. 대신 우리 안에 있는 태양보다 밝은 또 하나의 빛, 불성/영성을 함께 밝혀보심이 어떨런지요. 새벽별, 그 빛을 보고 깨달으신 부처님처럼요.
@om_WHAT Жыл бұрын
@@user05398 감사합니다. 저는 김상운님 덕분에 거울명상을 해서, 많은 무의식을 정화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거울명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om_WHAT Жыл бұрын
@@명상애찬 감사합니다. 저는 호롱불과 전등불이 공존하는 세대라서 그런지.. 어릴적 꿈에서는 호롱불이 많이 등장했었습니다. 어둠캄캄한 밤에 호롱불에 비취지는 곳이 의식의 공간이라고 방편을 내 보았습니다. 어찌보면 의식의 공간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의식의 공간외에는 존재한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기억속의 상상으로만, 존재한다고 추측할 뿐이고 그러한 상상도 지금 여기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바실라-x1z Жыл бұрын
의식공간 저는 제 가슴에서 후레쉬 불빛이 나가는 상상을 합니다 마치 둥그렇게 무대위의 나를 비추는 무대조명 처럼요. 그렇게 제가 어딜가든 그 빛은(의식의 빛) 함께 움직이면서 제 의식공간(시야공간,오감의 공간)을 비추죠 그런데 그 조명의 원천이 제 가슴안에 있고 관념들이 감정응어리들 기억들 트라우마들이 그 가슴 조명의 표면에 끈끈하게 달라붙어있어서 혹은 다양한 색깔로 채색되어 있어서 현실을 왜곡시켜 비추고 있다고 상상을 하곤 합니다. 비슷하게들 상상하는것 같아 저도 적어보았구요 호롱불 상상하니 뭔가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om_WHAT Жыл бұрын
@@바실라-x1z 멋진 말씀입니다. 의식의 공간은 내 몸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몸이 움직이면 몸 주변이 의식의 공간이 형성 되는 거겠지요? 김상운선생님은 나는(내 육체는) 움직이지 않고 주변 사물들이 다가 온다고 하기도 했습니다.내 몸에 붙어 있는 오감센서들은 그 자리에서(몸에서) 그냥 있을뿐..주변에 형성된 오감의 공간이 움직인다고요~내 몸이 움직이든 주변 공간,사물이 움직이든 서로 상대적일뿐 어떻게 해석해도 괜찮을 듯 합니다. 말씀하신 가슴 조명에 대해서 좋은 표현 같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능소화정원주인 Жыл бұрын
교수님 감사합니다 모든 분들 오늘도 행복하세요 😊
@보화덕 Жыл бұрын
늘 감사합니다.
@lkm63576 ай бұрын
이걸모른다는게 더놀랍다 너무당연한것이라 너무가까이있고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오묘하고 너무나 완벽하고 그래서 알지못한다
@김효정-p8p4i Жыл бұрын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명상애찬 Жыл бұрын
중생과 부처는 모두 두 가지의 눈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중생은 에고의 눈에 갇혀 있기 때문에 현상의 표면적인 측면에만 시야가 제한됩니다. 반면, 부처는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심안/불안/영안)을 깨워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의 세계와 그 근간이 되는 영원한 본질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일체유심조) 그들은 현상의 무상함을 목격하는 동시에,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인식합니다. 이러한 심오한 이해는 그들을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중생들이 스스로 깨어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영감을 주는 지혜를 부여합니다. 언제나 공감이 가는 말씀 감사합니다.
@jis283229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의식공간! 확실합니다.
@soohyun03TV Жыл бұрын
마음공부 할수있는 인연에 감사합니다🙏🙏🙏
@u7896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지금이마음 Жыл бұрын
놀랍고 대단한 법문입니다. 눈이 뜨이는 느낌이네요 감사합니다❤
@김하늘-v5h11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윤민순-z5z11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신금주-l1i Жыл бұрын
교수님 늘 감사합니다 ❤
@점보박 Жыл бұрын
시야가 의도적 공간 인줄 안다는게 얼만큼 깊숙이 파악 할줄 알아야 하것만 쉽고 어렵다 안이비설신의
@park98143 ай бұрын
인사동 선원 찾아가는길 좀 가르쳐주시면 좋겠어요 1:04
@윤현석-g9u Жыл бұрын
❤
@젬민이의파쿠르일상11 ай бұрын
이해로서는 어럽다 본인이 딱한번 만나야된다 본래있었던것이니 어머니 하고 부를을때거기있고 본질는늘이렇게들어나 있는데 못봄는 물질세게에속아서다 본질는 변함이없는데 선생님 이법문을 내가댈때까지들어봉션댄다
@일본어강사이선영11 ай бұрын
🎉🎉😂❤❤❤❤❤❤
@김명숙-p6r5q Жыл бұрын
25:14 25:14
@젬민이의파쿠르일상11 ай бұрын
광고는 이젠그만
@자유인-w6z11 ай бұрын
시야 전체가 의식이다는 잘못된 것이다. 싯다르타도 각성이지 깨달은자가 아니다 육체는 낡으면 버리는 옷에 불과하다 의식, 카르마, 윤회의 고리 어느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