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ікірлер
@martin.k.conank7172
@martin.k.conank7172 Ай бұрын
이성계가 고려인이었음. 만주 하얼빈(회령) 출신... 전주이씨들의 본은 전라도 전주가 아니라 만주 하얼빈(회령)임.
@tsche01
@tsche01 Ай бұрын
우리 고유의 문자가 왜 없었는지 모르나? 1만년 넘게 쓴 문자를
@이불데드
@이불데드 2 ай бұрын
헛소리도 참 대부분은 기호같은 음소로만 남았고 어쩌다가 음절같은 기호 두세개 찾은걸로 한글이라고 우겨버리네 ㅋㅋㅋ 한글이 있었다면 ㄱ ㅋ 이런걸 써놓을게 아니고 돈, 노 처럼 이런 음절이 대다수이어야 하지않겠냐 돈은 뜻이라도 있지만.. 뜻있는 글자 대부분은 2음절 이상일텐데 찾아낸거 두세개가 딸랑 1음절이라는건 그냥 얻어걸린거 아니겠냐
@implantier2
@implantier2 2 ай бұрын
왜 사람들은 자기들이 유리한 것만 취하고 야구 그렇지 않은 것들은 버리고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글자는 자방 고전을 참고하여에 라는 문구는 중요하고 세종이 어제에서 말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마띠 아니할세 이거는 무시하는 건가? 고려한글이 있었으면 사람들이 문자 생활을 못했을 리가 없잖아 이 훌륭한 고려한글을 사람들이 썼다면 굳이 왜 훈민정음을 만들었겠어?
@이진호-i5l
@이진호-i5l 2 ай бұрын
한글이 워낙에 탁월한 것이라서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사실 세종은 하늘에서 내려온 외계인으로 보임니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독보적인 한글
@josangmuk
@josangmuk 2 ай бұрын
대한민국 교과서에 올려야 합니다 중국 빨갱이들은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고조선 이전의 역사도 밝혀야 합니다
@jaekunyoo8509
@jaekunyoo8509 2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감사히 잘 봤어요. 2024년 10월 27일 일 02시 태평양 시간
@jipark_2373
@jipark_2373 2 ай бұрын
*세종은 당대 최고의 학자였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언어학자였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수많은 책들을 읽었고 왕실에서 보관중인 고서적까지 모두 섭렵하였죠.. 태종이 금서로 지정하여 수거하였던 고대 사료들까지 읽었다고 생각됩니다.. 세종실록에는 강화도 마니산의 제천석단에서 단군에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 단군고기가 기록되어 있죠.. 그러한 고대사료에 기록된 단군조선때의 고문자인 가림토에 대해 세종은 알고 있었고 당시 한글을 반대하였던 집현전 학자들도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세종은 어린 백성들을 깨우치고자 배우기 쉬운 표음문자를 만들고자 하였으며 그 과정에 가림토문자의 형태와 발음법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가림토의 형태는 기록에 전해지나 사용법과 발음법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고대 한국어와 친연성이 높은 몽골, 거란, 여진, 일본의 문자를 참고하여 연구하였고 나아가서 범어(산스크리트어)의 발음이 고대한국어와 친연성이 높음을 알고 스님들로부터 산스크리트에 대해 배웠던 것입니다.. 산스크리트는 성스런 글자란 의미로 단군조선의 가림토문자에서 파생된 문자입니다.. 일본의 신대문자처럼 성스러운 글자로 숭배되었던 문자죠.. 수메르어가 고대 한국어와 매우 유사하다는 연구가 있는데 범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종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산스크리트와 가림토문자에 대한 발음법을 연구한후 자신의 언어학 지식을 접목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습니다.. 즉, 세종은 기존 사용하지 않던 옛글자의 형태에 의미를 부여하고 체계를 정립하여 사용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 훈민정음 해례본에 한글 자음의 형태를 사람의 발성기관 구조에서 따왔다고 기록한 것은 음운학에 정통한 세종 자신의 해석에 따른 것이다.. 세종은 기존 고대문자 가림토의 기본 초성인 원방각과 원방각에서 변형된 자음들이 발성기관의 모양과 흡사하다고 보았고 자모의 형태에 따른 발음법을 연구하여 초성, 중성, 종성을 합쳐 단음절로 나타내는 표음문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최초 가림토 초성의 원방각은 발성기관의 모양을 따서 만든게 아니라 천지인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형상이다.. 세종은 천지인 합일의 원리에 음운학의 원리를 결합하여 새로이 문자를 만들었고 그것은 모방의 개념을 넘는 최고의 창작물이라 볼수있다 )) - 원은 하늘이고 방은 땅이고 각은 사람이다.. 한글 초성의 자음이 원방각의 형태를 띠고 중성의 모음이 천지인의 형태를 띠는 것은 초성과 중성이 서로 통함을 나타내는 것이며 글자속에 고대 한민족의 인내천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한반도와 만주에 널리 분포된 고인돌은 천지인 합일의 사상에 따른 장묘문화이다.. 덮개돌은 하늘, 선돌은 땅, 그 아래 사람을 묻어서 천지인 합일의 고유 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일본의 전방후원분 역시 천지인의 원리에 따른 묘제방식이며 고대 단군조선, 부여의 후손들이 일본으로 넘어가서 만든 것이다.. 전방후원분의 형태는 신시배달과 단군조선의 유적지인 중국 요하문명에서 발견된바 있다) ** (한자의 한국어 발음이 왜 중국어와 다른가.. 세종 이후 정확한 표음문자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씨조선은 한자발음을 중국식으로 발음하지 않았죠.. 왜냐하면 한국어 발음이 한자의 정확한 발음이기 때문입니다.. 한자 한글자를 단음절로 발음하는 것이 정확한 한자 발음이고 중국인들은 받침발음을 제대로 못하는 혀짧은 발음으로 시대별, 지역별로 한자의 발음이 달라졌던 것이죠.. 한마디로 중국어는 편한대로 발음하는 사투리요.. 일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문자이고 최초 갑골문을 만들 당시부터 고대 한국어 예맥족의 발음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의 정확한 발음은 한국어 발음인 것입니다.. 하늘 천은 천으로 발음해야 되고 혀짧은 발음인 티엔이 아니죠.. 사랑 애는 애로 단음절 발음을 해야되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발음하는 아이가 아니죠.. 글자 하나를 단음절로 발음하는것이 한자의 정확한 발음법이지만 초,중,종성으로 표현하는 한국어만이 정확한 발음이 가능한 것입니다)
@jaekunyoo8509
@jaekunyoo8509 2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잘 봤어요. 다른 영상에 달았던 글을 드려요. 최춘태 님의 갑골음 연구 영상을 구독만 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다가 9일 전에 최신영상을 보게 됐는데 어려서부터 찾던 우리말의 어원을 찾는 방법을 보고 신세계를 봤어요. 2배속으로도 잘 들려서 평균 30분 분량 27개 영상들을 2일 만에 다 봤는데 계속 '와! 와!', '야! 야!'를 연발했어요. 갑골문의 발음은 고대한국어. 갑골음으로 밝힌 식민사학 동북공정. 최춘태 박사 kzbin.info/www/bejne/ppSafImnhMh-aqcsi=--z3wiorFfF0gcwC 언어학은 수학과 같이 엄밀하기에 주장이 아니라 증명한다 시며 노암 촘스키 님께서 수학과 교수이셨는데 언어학의 대가가 되셨다는 말씀과 함께 정확히 자료를 제시하세요.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동북공정" 책을 2년전에 출간하셨고 갑골문갑골음연구원 설립하셔서 여러 분들에게 음운학을 가르치시고 함께 우리말 어원을 찾으시고 역사 왜곡을 정정하시려 노력하고 계신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아들, 딸 등 여러 말들 발음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시고, 원 발음에서 분화해서 달리 변한 발음들이 여러 사투리로 남아 있음을 국어사전으로 보여 주세요. 日, 月을 '가라'로도 '나라', '다라'로 공 같은 구체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나라'가 '나ㄹ'로 변해서 다시 '날'로 변했는데 이를 훈으로 해서 날 일日로 읽고, 특히 해와 달은 높이 있으므로 높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어 '달동네'가 높은 데 있는 동네라는 뜻이고, '다라'가 '사라'로 변해서 둥근 접시를 '사라'라고 부르고, 진한 청색을 왜 감색이라 하는지, 불을 활이라고 같이 말해서 지금도 활활탄다 라고 한다 등 놀라운 설명들이 많아요. 댓글에서 다섯 五의 갑골음이 '가락'이라고 하신 것을 읽을 때까지도 몰랐는데 그 다음에 손가락, 발가락이라고 하셔서 그때야 알았어요. 심지어 '가라' '나라' 다라' '사라'에서 해를 따라 동으로 이동한 우리 민족 등은 국기에 해를 넣고, 달을 따라 서로 이동한 민족들은 국기에 달을 넣는다는 말씀도 하시며 몽골 등 중앙 아시아 '-스탄' 나라들도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것을 말씀하세요. 훈민정음 당시 초성에 두개, 세개의 자음이 쓰이는 이유가 갑골음 한 글자의 발음이 3음절, 4음절 였어서 시대가 변하면서 모음이 탈락하고 자음을 같이 적어서라고 설명하세요. 이를 종성(받침)에 적용하면 왜 우리말에 2개 받침 말들이 있는지 설명이 되네요. 이두가 우리 음을 적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어떤 글자의 갑골문 시대의 발음이 변해서 고유명사의 발음을 옛 발음으로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 주세요. 정확한 설명은 기니, 예를 들어 가야加耶가 원 발음이 '가라'였는데 耶가 '야'로 변해서 가라加羅로 원 발음을 찾았다는 설명하세요. 일반적인 경우는 억지 예를 만들면 가야라加耶羅로 적고 바뀐 '야'가 아니라 '라'로 읽게 하려고 라羅을 추가했으니 발음은 '가라라'가 아니라 마지막 라는 안하고 '가라'로 읽으라는 방식이래요. 대륙의 孤竹(고죽), 盧龍(노룡), 樂浪(낙랑)은 정복자에 따라 다르게 이름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갑골음은 '가라'로 일치하여 발음이 변해서 그에 맞는 다른 글자로 바꾼 것으로 설명하시며 이런 경우가 대륙에 많아 역사 회복에 큰 기여를 하리라고 말씀하세요. 우리 조상님들께서 일본 개척을 하셔서 일본어 훈독이 갑골음의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세요. 일본어 어원을 우리말에서 찾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갑골음 음운학 공부하시면 큰 도움 될 거에요. 환국 시대의 발음이 배달국과 조선을 지나 그 지류인 상商(은殷)나라까지 그대로 전수되어 갑골(시초)음에서 여러 민족들의 언어로 분화됐음을 보여 주세요. 고 강상원 님께서는 범어(실담어, 산스크리트어)가 우리말의 원형이라고 하시며 영국인들이 인도 정복후 언어 연구하여 산스크리트어가 동서 언어의 뿌리라고 했다 시며 결국 우리말이 세계 언어들의 원형이라고 하셨고 여러 사투리에 실담어가 남아 있다고 하셨는데, 최춘태 님께서는 환국시대의 시초음인 갑골음이 원형이고 산스크리트어도 그 지류라고 하세요. 風풍이 바람의 뜻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는 뱀의 뜻이 있는 것을 증명하시고 태호 복희 씨께서 이미 여러 사서에 풍씨로 동이족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래서 태호 복희 여와를 그린 인수사신人首蛇身도에 하반신이 뱀으로 꼬아 그려진 것을 보이시며 우리의 조상님이신 것을 알려 주세요. 영상들을 보고 이해하기는 글자契字(한자漢字)의 음音과 훈訓이 결국은 음은 지나(china)인들이 주周나라 이후에 글자를 이어 쓰면서 발음을 자기네 식으로 하면서 변해 가는 중에 지금의 우리 음은 당나라 시기 음이라고 하지요. 훈이 뜻을 말하는데 결국 그 훈, 뜻은 우리 조상님들께서 발음을 이렇게 하셨다는 말이에요. 어쩐지 옥편을 보면 어떤 글자들은 도대체 훈을 봐도 뜻이라는데 뜻이 이해가 안 됐던 이유가 옛 발음이나 옛 말을 모르니 그런거였어요. 어려서부터 우리말이 어떻게 생기게 됐을까,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를 매우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졌지만 공부는 커녕 관련 서적도 읽지 않고 지내다가 18년 전에 야후 검색시절 웹문서로 금청이 우리 역사라는 문구를 보고 무시하다가 계속 나타나서 뭔 개소리라며 보기 시작해서 당시 아리조나로 이사후 시간이 나서 잠자는 시간도 줄이고 평균 16시간 이상 3달 정도를 봐도 봐도 끝이 없었어요. 역사스페셜 유인촌, 고두심, 한상권 진행 전체 등 수많은 방송물 봤고 요즘은 여러 영상 제공처들을 구독만 해 두거나 제목 갈무리는 800개 이상 해두고 볼 시간을 만들지 못해 조금씩 보아가고 있어요. 요즘 황당하게 우리 민족이 동이족이 아니다, 동이족은 3천여년 전의 현재 산동반도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지 우리 민족과 무관하다 는 이들이 있어서 유전으로 갖는 쌍각지(雙脚趾 일명 며느리 발톱, 새끼 발톱의 몸 바깥쪽 옆에 작게 벌어져 나는 것)로 그치기 바래요. 저도 20여년 전까지 나는 왜 발톱이 이렇지? 하면서 아버님께서도 그러신지 여쭐 생각도 안 났었는데 인터넷에서 우리 역사에 연결되어 수많은 웹문서들을 볼 때 동이족 신체특징이라고 설명되어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동이족 풍습과 우리 민족 풍습이 동일하고 화하족(한족) 등 다른 민족과는 다른데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요. 한자 초기 시작도 우리 민족 조상님들이 하셨다는 명백한 증거 영상을 소개해요. 기가 막히고 할 말이 없어요. 도자기로 빚은 할아버지 陶祖, 구리로 만든 할아버지 銅祖를 영상으로 보시면 왜 지나인은 절대 모른다 라고 제목에 넣었나 아실 거에요. 한국인만 알 수 있는 한자의 기원 (한자 1강) 중국인은 절대 모른다! kzbin.info/www/bejne/a6DJioKZpMugq80si=jnCV1qfKJbgOgYaX 저는 10여년 전에 고 진태하 님께서 70년 이전에 여러 지나학자들이 글자는 동이족이 만들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보시고 우리 조상님들께서 만드셨으면 풍속이 녹아있겠다는 발상을 하셔서 갑골문에서 20여자 이상의 글자들에 들어있는 풍습들을 설명하시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진태하 님께서 동이족 시원설을 주장하셨다고 오도해요. 진태하 님 설명 중에 갑골문 당시의 문자를 뜻하는 말이 글(契)인데 지금은 계약할, 맺을 계이지만 처음에는 글이었는데 긋다, 그리다의 말이었고, 죽간, 목간에 글자를 새기는 작은 칼도 글鍥인데 수천년이 지나도 글, 글자라 부르고 조각하는 작은 칼을 끌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그 후손이라고 하셨어요. 집家(집면宀 아래에 돼지시豕)에 왜 사람이 없고 돼지가 있나 지나학자들의 유력한 가설이 10종이 넘는데 한중일 한자연회에서 우리 조상님들께서 대륙에 사실 때 아열대 기후라서 뱀이 집으로 들어와 고심중에 돼지가 뱀을 보면 뱀이 도망도 못 가고 돼지가 쏜살 같이 달려가서 잡아먹는 것을 보고 수상가옥 처럼 2층으로 지어서 돼지를 길러 해결하여 집에 돼지가 있어야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글자를 쓰게 됐고 우리는 그 이유는 모르고 대대로 그래 왔는데 이유가 잘못 전해져서 사람 똥을 먹은 돼지고기 맛이 좋다고 제주 똥돼지가 있었다 고 발표하셔서 기립박수를 받으셨다고 해요. 2024년 10월 27일 일 02시 태평양 시간
@jaekunyoo8509
@jaekunyoo8509 2 ай бұрын
사상 표현의 자유가 있고 이를 쉽게 실현하는 세상에 사는데 가림토, 실담어 연관성을 말씀하실 때 추정의 표현을 하시면 전혀 아니라고 밝혀져도 또한 전혀 걱정할 게 없어요. 그런데 확정적으로 말씀하시면 그 이후는 안 보는 분들도 있을테니 참고하시고 굳이 그러시려면 뒤에 두시면 좋을 거에요. 세종대왕에 대한 저의 아쉬움이랄까 쓸데없는 가정은 태종이 충녕대군의 장인까지 죽일 정도로 왕권강화를 하면서도 충녕대군을 총애하여 그의 육식 조절을 못해서 왕 붕어시에 육식을 금지하는데 태종 자신이 죽으면서 충녕은 고기없이 밥 못 먹으니 상중에도 고기주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육식 과다로 많은 병을 앓으셔서 고생하셨고 좀 더 사시지 못 한 것이 내란과 세조 등극을 불러 손수 다져 놓으신 나라의 기반이 흔들렸어요. 세종대왕의 기조대로 600년을 이어 왔다면 실학도 더 일찍 나와서 여러 분야에서 실제적인 큰 발전을 했을 거에요. 매우 아쉬워요.
@jipark_2373
@jipark_2373 2 ай бұрын
역사에 있어서 100% 진실은 없습니다.. 문헌사료, 유물, 유적 모두 일치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100% 진실인지는 알수없는 것이죠.. 그렇다하여 사료의 기록들이 모두 ~추정된다 는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것 아니고 그런식으로 기술할수도 없는 것이죠.. 믿고 안믿고는 글을 읽는 사람에게 달려있습니다.. 믿으라고 강요하는것은 아니죠.. 단지 사실에 가깝다는 근거로 사료적 기록과 역사적 정황, 유적, 유물에 대해 정보를 알리는 것입니다.. 산스크리트가 먼저인지 단군조선의 가림토가 먼저인지 100% 장담할수는 없어요.. 그러나 역사적 정황으로 가림토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단군조선과 신시배달의 연대를 봤을때 산스크리트보다 훨씬 앞서며 가림토의 기록은 명확히 사료에 나오지만 산스크리트는 그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죠.. 단순히 산스크리트는 특정시기 이후 특정지역에서 성스런 글자로 숭배받았을 뿐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글자란 것이죠.. 일본의 신대문자처럼.. 누군가 문명이 매우 앞선 사람들이 전해준 것이란 것이죠
@정국봉-h7s
@정국봉-h7s 2 ай бұрын
천자(天子)와 천손사상이 연관성이 있는 것같은데
@jaekunyoo8509
@jaekunyoo8509 2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감사히 잘 봤어요. 2024년 10월 20일 일 19시 태평양 시간
@김성겸-i2j
@김성겸-i2j 2 ай бұрын
란하 서방 장가구 장북평원과 그 서방은 아예 도외시하고 무지무식한 연구한계가 한심할 뿐이다. 4천년 쯤이전엔 과연 어느지역이 더 인구지지력이 웃 했을까? 아스타에 이어 창탕징은 어디이었을까?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는 모두 영위된 지역이 뒤틀려 있다는 걸 얼마나 알고 있을까나? 에고! 에고!!
@TV-kj2bb
@TV-kj2bb 2 ай бұрын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jaekunyoo8509
@jaekunyoo8509 3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감사히 잘 봤어요. 그동안 고구려 정신을 이렇게 느껴왔는데 확실히 정리해 주셨네요. 결과가 오히려 멸망이 된 점이 매우 안타까와요. 2024년 10월 14일 월 19시 태평양 시간
@jaekunyoo8509
@jaekunyoo8509 3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감사히 잘 봤어요. 놀랍고 위대한 홍익인간, 재세이화, 이도여치 여러 가르침이 매체 안에만 있네요. 2024년 10월 14일 월 18시 태평양 시간
@chamkms_1
@chamkms_1 3 ай бұрын
이찬구 박사님 열렬히 응원합니다.
@김태선-s9k
@김태선-s9k 3 ай бұрын
앞으로 많은 고조선 문화와 유물이 발견되리라 믿습니다.
@TV-kj2bb
@TV-kj2bb 3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jaekunyoo8509
@jaekunyoo8509 3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감사히 잘 봤어요. 2024년 10월 13일 일 22시 태평양 시간
@TV-kj2bb
@TV-kj2bb 3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이재호-s6r
@이재호-s6r 3 ай бұрын
훈민 정음 이전의 한글은 가림토 문자 입니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게 아니라 가림토 문자 38자에서 10자를 버리고 28자를 취하여 훈민정음이라 하고 훈민정음은 고전에서 모방한 글자라고 자방 고전이라 명기 하였읍니다. 훈민 정음 반포 이전에 중국대륙과 일본에도 가림토 문자 사용 흔적이 발견 되는 이유 입니다. 일본의 신대 문자, 중국 대륙에서 2천년전에 유통 됐든 칼 모양의 화폐 명도전에 돈 노라 새겨진 한글 요나라 송나라 문헌에 나오는 한글은 모두4305년전 삼랑 을보륵이 창제한 가림토 문자입니다.
@jaekunyoo8509
@jaekunyoo8509 4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감사히 잘 봤어요. 새로운 유물로 사실들이 점점 드러나는군요. 2024년 9월 18일 수 08시 태평양 시간
@jaekunyoo8509
@jaekunyoo8509 4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감사히 잘 봤어요. 놀라운 사실이네요. 2024년 9월 18일 수 07시 태평양 시간
@김영회TV
@김영회TV 4 ай бұрын
김영횝니다. 멋진TV입니다. 발전 기대합니다.❤❤
@TV-kj2bb
@TV-kj2bb 4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박재묵-t1u
@박재묵-t1u 4 ай бұрын
멍키펑 홍보영상 1
@마라도나-d6b
@마라도나-d6b 4 ай бұрын
윤내현교수님은 민족사학의 대부다 정말 올바르게 역사의식과 그정립을하신분이 아닌가!!
@송이20
@송이20 4 ай бұрын
타삼요 글자들 봤는데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울 겁니다. 기본적인 말이란 건 쉽게 변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기본어는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의사소통 하는 게 어렵지 않고 같은 말을 쓰듯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정치 문화적 대변화가 오기 전에 기본어들은 대대로 전승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5백년 전으로 거슬러가도 기본 의사소통은 할 수가 있어요. 왜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 생각하면 안 통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고려어라고 해서 다르겠냐고요. 그런데 저기 나오는 말들이 전혀 현대 우리말은 내비두고라도 조선 중세 언어하고라도 통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전혀 의미체계가 맞질 않아요. 그러니 이게 이뜻인가? 저뜻인가? 하면서 추측을 하는 겁니다. 아무리 연구해도 그 이상한 글자들 읽기도 어렵고 뜻은 더더욱 우리말에 없는 거라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朱宰寬
@朱宰寬 4 ай бұрын
거란?
@朱宰寬
@朱宰寬 4 ай бұрын
2024/8/25
@koreanum1913
@koreanum1913 4 ай бұрын
정말 광신도들은 출신을 가리지 않는구나. 총장? 동북아? ㅎㅎ 재직 시에 얼마나 또라이였을지 알만 하다.
@sungnakchu8581
@sungnakchu8581 5 ай бұрын
전해오든 옛한글을 잘 정리해서 훈민정은을 발표하여 국가시책으로 전한것은 세종대왕의 성과라할것이지.엉뚱하게 업슨 한글을 발명한것으로보는게 더우스운 일이지..훈민정음이발표됏어도 후세들은 필요에의해서 발전하고잇는중이라보면 될것같군...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흠집내서는 않될것이다..
@서북지리연구소신석재
@서북지리연구소신석재 5 ай бұрын
댓글로 장난질 말라
@서북지리연구소신석재
@서북지리연구소신석재 5 ай бұрын
댓글 지우지 말라.
@서북지리연구소신석재
@서북지리연구소신석재 5 ай бұрын
댓글을 올리는 즉시 사라지는 마법은 대체 뭐냐? 내 컴이 부실한 것도 아닌데 대체 어느 놈이 지롤하는 것이냐?
@jaekunyoo8509
@jaekunyoo8509 4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저도 다른 영상들에 글을 올리면 없어지는 일들이 많았어요. 연결 고리(link)가 많아도 안 올라가서 해당 영상 제목을 넣어서 올리기도 했어요. 댓글이 안 보이는데 정렬을 최신순으로 하면 보이기도 해서 유료가입도 해 봤는데 똑 같았어요. 다른 분들의 의견에는 구글 자체에서 검열방식으로 삭제하는 것 같다고 하네요.
@서북지리연구소신석재
@서북지리연구소신석재 5 ай бұрын
왜 고조선과 왕검조선 문화일까? 고대 기록의 태백산.개마대산.서개마산 등이 청 시기 고열눌와집.납록와집.용강(장백산).노령.천산 및 이조선의 청석령.백두산 등이였고 신시.우수하(소머리강.속말강).임검성.온덕향.비서갑 등이 청 시기 길림성 쌍양현 소알연. 길림부.신성부 등의 지역이였고 수.당 시기의 속말강이 청 시기의 송화강이며 현 화국의 요녕성 서북쪽 경계를 흘러 지금의 서요하로 합류하는 지금의 노합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전한 시기부터 청국 멸망한 1911 년을 지나 1932 년 건국한 만주국 직전해까지 요하는 지금의 란하 중.하류였기 때문이다. <청사고/지리지> 직예.봉천.길림 3 성 지역의 황하.요하 경유지 기록과 길림성 길림부.쌍양현.신성부 기록에 근거한 것이며, 이조선의 대표적인 서북강역 지리 기록인 정약용의 <강역고>와 이익.이중환의 백두산의 좌향, 해좌사향의 전언 및 신채호.계인경의 고대 요하와 패수는 란하라는 기록 등이다. 이러한 지리를 1873 년쯤부터 섬나라 일국 서향융성이 육군참모부를 동원하여 청국의 란하.황하.요하 3 물길을 1 물길로 변조하고 황하.요하를 더 동북쪽으로 3000 여 리 씩 이동시켜 지금의 서요하.요하를 위작한 엉터리 습작지도를 간행.선전하였고 1934 년 간행된 <만주국지도>를 통하여 공식화시켰으며 1949 년 건국한 화공은 <만주국지도>를 습용했기 때문에 이러한 지리 혼동이 일어난 것이다.
@노루-i8z
@노루-i8z 5 ай бұрын
이런 작자들이 세상을 혼란스럽게ㅡ하는거지. . 암튼 . . .
@서북지리연구소신석재
@서북지리연구소신석재 5 ай бұрын
하가점하층문화는 왕검조선의 문화이고, 우하량유적인 홍산문화는 환웅천왕의 고조선 문화라고 인식해야 한다.
@jaekunyoo8509
@jaekunyoo8509 4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환웅 시대는 배달 신시국으로 명시하는 것이 좋겠어요.
@하닷사-s2q
@하닷사-s2q 6 ай бұрын
바벨탑 사건 이전엔 모두가 같은 언어였죠 그때 사용한 언어를 찾아야겠죠 ㅎㅎ
@rose-gd
@rose-gd 6 ай бұрын
훈민정음=산스크리스트어=영어 한글= 라틴어 한자는 우리글자!! 😊
@dr.k6544
@dr.k6544 6 ай бұрын
강단식민사학계가 어떻게 공격해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배창희-n7n
@배창희-n7n 6 ай бұрын
한글이랑 다르네
@김태학-c4v
@김태학-c4v 6 ай бұрын
훈민정음은 세종의 발명이다. 모방이나 배꼈다는 주장은 발명자 세종을 깍아내리려는 의도를 가진것. 발명과 개발을 해본적 없는 자들의 허접한 주장
@dr.k6544
@dr.k6544 6 ай бұрын
니가 뭘 안다고 씨부려
@삶바른
@삶바른 6 ай бұрын
0:48 박찬씨 9:05 9:35 13:00 23:22 타삼오해 와 첨수도 한글 25:40 요약 28:10 다른교수님 견해 34:15 박찬씨 설명 46:05 김태경박사
@전순표-동녘이야기
@전순표-동녘이야기 6 ай бұрын
잘 보았읍니다. 한글의 역사성을 이해하게 되었읍니다. 1443년의 세종 한글이 있기까지 옛 한글인 가림토, 타삼오해를 거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참으로 고맙습니다. 또한 자음만으로 표기된 것에서 맨 마지막 글자에 무게가 있다고 일러 준 점도 큰 이해가 되었읍니다. 다시금 고마움을 전합니다.
@김태학-c4v
@김태학-c4v 6 ай бұрын
가림토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은 모방이나 배켰다는 말과 상통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죠.
@jong8515
@jong8515 7 ай бұрын
한글이 적힌 한요부 두루마리는 누가 공들여서 장난친 것 같아요. 천년된 종이가 종이가 너무 깨끗하고 한글 소리가 너무도 안맞네요. 우리 역사를 혼란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닐까..
@pj7244
@pj7244 6 ай бұрын
같은 생각이시네요. 한글의 위상을 흠집 내려는 어떤 세력이 내 놓은 계락 같다고 느꼈네요 과학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slee-01
@slee-01 5 ай бұрын
환단고기도 원고가 전부 일본인 손에 넘어갔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어요. 일본인들이 일본의 구석기 유물도 조작하는 등 조작을 잘 하니 일본인들이 만든 것 같네요.
@jaekunyoo8509
@jaekunyoo8509 7 ай бұрын
백제와 왜, 일본 관계 언어 민족 계통 1/4 일본은 新신(혹 續속) 백제지요. 일본서기에 명백히 기록돼 있어요. 아래는 대략 정리한 백제와 왜, 일본 내용이에요. 後후 백제가 더 정확할 수 있는데 백제 멸망 230여년 후에 건국한 견훤의 후 백제가 익숙해서 다른 글자를 썼어요. 20여년 전에 일본 한 대학에서 2천여년 전에 벼농사를 전한 사람들(야요이 인)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현생 한국인과 100분 92인가 같다고 발표했어요. 일본인 선조 한반도서 왔다 (연결주소가 많아 댓글이 안 올라가는 듯, 윗줄 제목을 웹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DNA검사 결과, 일본인 뿌리는 토착민과 한반도인의 혼혈 (윗줄 제목을 웹 검색란에 넣어 찾아 읽기 가능) 한국과 일본의 유전적 거리는 "zero" (윗줄 제목을 웹 검색란에 넣어 찾아 읽기 가능) 일본인의 조상은 한국인인가에 대한 세계적 석학의 생각은? 총균쇠 외전 (재레드 다이아몬드)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어느 초기 도래인 박물관에는 유골이 전라도 방향으로 매장됐던 것을 다시 그대로 전시하고 있지요. 일본에 말이 전해진 시기는 부여계인 가야가 신라를 침공하니 광개토 호태왕께 구원요청하여 5만 기병 보내서 망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말과 마구가 전해졌고 초기 왕족을 150여년 했고 이후 왕씨를 부여로 쓰는 백제계가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 시기까지였고 직후 덕천가강(토쿠가와 이에야스) 이후는 신라계가 왕족이라고 밝혀졌어요. 유인촌 진행 역사스페셜 중 한편이었다고 기억하는데 험산으로 도주한 백제계 왕족들을 신라계가 끝까지 추적하여 몰살하려 했으나 다행이 생존하여 그 후손을 취재단이 찾아서 설명하니 물려받은 기록과 보여준 기록으로 백제후손이 확실함을 알고는 얼마간 말을 못하는 장면까지 방영됐어요. 원신씨로 기억나요. 1998.10.17 ~ 2012.12.13 역사스페셜(오른쪽 "방송보기"에서 진행자 순으로 시청가능) program.kbs.co.kr/1tv/culture/historyspecial/pc/index.html 현대에도 즉위식 등은 백제식으로 하는데 행사언어를 전라도 경상도 말 비슷하게 하는데 정작 뜻은 모른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일본식 씨름 쓰모 경기에도 어느 영상에서 심판이 두 선수들에게 경기시작을 '하기요'라는 구령으로 하는데 우리는 평안도야 함경도야 바로 알지만 그들은 알까요? 지금은 대부분의 용어가 짧은 한자어지만 삼국시대에는 우리 조상님들께서 그렇게 하셨으니 전해졌겠지요. 우리말 어원 연구자들께서도 옛 우리말들이 일본어에 많이 있다며 대표적으로 아사달에서 아침의 아사가 朝에 남아 朝日아사히에서 볼 수 있다고 하지요. 히도 해가 변했을까요? 일본왕의 시조는 한국계인가? 부여기마족과 왜 청동거울의 비밀, 일본천황은 백제인인가 [역사스페셜] - 1부 / KBS 19990515 방송 청동거울의 비밀, 일본천황은 백제인인가 [역사스페셜] - 2부 / KBS 19990515 방송 미스터리 추적 일본 천황은 백제인인가? [역사스페셜] - 1부 / KBS 20020216방송 미스터리 추적 일본 천황은 백제인인가? [역사스페셜] - 2부 / KBS 20020216방송 (윗줄 제목들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고 김용운 교수님의 백제부흥군과 왜군의 백제수복을 위한 백강전투 설명에 의하면 하늘이 돕지 않아 바람이 백-왜 연합군을 향해 불어 신-당 연합군의 화공작전으로 패배하여 의자왕과 귀족들이 당에 끌려간 이후 남아있던 20여만명의 백제귀족들이 왜로 이주하여 일본을 세우고 최초의 역사책인 일본서기를 써서 이제 백제가 완전히 망했으니 어떻게 조상들의 묘를 찾아갈까라며 한탄하는 부분이 포함됐다고 합니다. 천황도 백제를 멸망시킨 당이 쓰는 황제보다 더 상위를 쓰겠다고 만들었대요. 제 추측에는 역사서를 처음 만들 때 초기 가야계 왕들을 천황으로 승격해서 연결했다고 봐요. EBS 특별기획 통찰(洞察) - 백강전투를 아십니까?_#002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EBS 특별기획 통찰(洞察) - 백강전투를 아십니까?_#003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백제서기 백제본기 백제신참을 바탕으로 저술 일본서기 이전에는 역사책이 없었던 이유는 왜가 백제의 22 담로(식민지) 중 주력 속국 내지 지방정권이었기에 필요가 없었는데 본국이 없어졌으니 이를 이어 일본 이란 나라를 세우고 백제 이전 부여 등 선대까지 원 뿌리에 이어 신화에 넣어 정통성을 세웠다고 봐요. 일본서기 제명천황 6년(660년) 기사 번역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百濟國 窮來歸我(백제국 궁래귀아) •백제가, 망하여 우리에게 돌아왔다. 以本邦喪亂 靡依靡告(이본방상란 미의미고) •우리는 전쟁으로 본국을 잃었으니, 의지할 곳이 없고 호소할 곳도 없다. 일본서기 천지천황 2년(서기 663년) 기사 번역 州柔降矣(주유강의) 事無奈何(사무내하) •주유성이 항복했다. 일이 어찌할 수가 없게 되었다. 百濟之名(백제지명) 絶于今日(절우금일)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어졌다. 丘墓之所(구묘지소) 豈能復往(기능부왕)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어떻게 다시 갈 수 있을까. 일본 최초의 역사서 고사기ㅣ일본 고사기 저자의 무덤ㅣ열도의 역사를 만든 도래인과 백제인ㅣ058 잊혀진 땅 백제 22담로의 비밀 | KBS 일요스페셜 1996. 09. 15 (윗줄 제목들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역사학자 이덕일 님께서는 일본서기의 사건들의 주체를 백제와 일본을 역으로 풀면 사실이 나타난다고 하셨어요. 저도 백제 시기에 발생한 일들을 왜로 쫒겨간 이후에 기록하면서 이전에 백제였을 때 했다가 아니라 왜에서 한 것으로 기록해서 사실을 뒤바꿨다고 봐요. 일례로 칠지도 하사건도 본국에서 식민지에 내려 주지 역으로 할까요? 어느 역사 방영물에서 한 일본교수에게 왜 백제를 글자대로 발음하지 않고 '쿠다라'라고 부르냐고 물었더니 지배계층인 백제인들에게 '당신들의 나라'라고 부르는 말이라고 대답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김용운님은 큰나라라고 해석하셨어요. 2천년 이전부터 백제계 뿐아니라 신라계, 고구려계도 다 갔어요. 건너온사람이라 하여 도래인이라 부르지요. 신찬성씨록에 도래 유력가문들이 기록되었는데 황족 씨족들 제외한 도래인 가문은 백제에 104씨족, 고구려에 41씨족, 신라에 9씨족, 가야에 9씨족 등이 있어요. 20여만명의 백제귀족들이 갔는데 104가문이라 기록됐으니 한 유력가문에 속한 많은 가족들도 포함됐겠고 왕족이라서 제외된 경우도 있겠지요. 고구려, 신라, 가야 계 인구도 많았을 것이고, 기록된 유력가문 이외의 사람들이 더 많았을 수도 있겠지요. 일본 역사학계에서 2천년전 경부터 1천5백년전 경까지 5백 내지 7백년 동안 정상적인 인구증가율을 넘는 엄청난 인구증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30여년 전에 세계사를 전공한 일본학자가 연구하여 도래인들이 오랜 기간동안 대량유입한 결과라고 발표했는데 당시에는 일본역사 전공자가 아니라고 반박도 없이 무시했으나 이제는 인정한답니다. 많은 신사에 고구려와 백제의 왕들과 왕자들을 모시고, 마찌리라는 축제도 도래인들의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것들도 많아요. 어떤 분은 일본은 1천5백년 전의 백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하세요. 제 생각에는 확연하게 남방계 사람들이 아닌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은 적어도 그들 조상은 한민족이라 볼 수 있어요. 김용운 님께서는 일본인들의 주류가 백제계여서 신라를 미워하여 무시하고 힘이 생기면 정복하려 했다고 하시는데, 개인적으로는 그에 더해 삼국에서 밀려간 이들이 남아있는 이들에 대한 원한과 증오로 정한론을 지속 거론하고 결국 개화후 30년 정도로 급속히 부국강병하여 정복욕의 첫 희생국이 됐다고 봐요. 물론 대비하지 않고 되려 매국한 우리 지배층의 잘못이 더 크지요. 최근 향가 연구가 김영회 님께서 일본 정신의 근간이라는 만엽집의 4,516개의 천황 등 지배층에서 지은 시가들이 우리 말로만 풀리는 향가 임을 확인하시고 해석하고 계세요. 137편 만엽집1번가의 비밀 시리즈 1부. 비밀의 문. 일본 황실의 뿌리에 대한 증거가 제시된다. 만엽집으로 풀어보는 우리 민족의 고대사 추적 시리즈. 210편 라인사태! 기미가요 통합. 일본은 기미가요 가사를 생각해야 한다. 김영회TV (윗줄 제목들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2024년 6월 10일 월 20시 태평양 시간
@jaekunyoo8509
@jaekunyoo8509 7 ай бұрын
백제와 왜, 일본 관계 언어 민족 계통 2/4 한국어와 일본어는 어떤 관계? 민족의 운명을 좌우한 말의 힘 - 말은 민족을 낳고 | [위대한 여정, 한국어] 2부 (KBS 041010 방송)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03:16 일본 어학자가 어원을 대륙한어 반도한어 열도한어 등 3가지로 나누며 우리말이 어원이라는 연구 08:40 일본 논과 관개시설과 주거지 초기형태 17:05 야요이 인 매장 인골 방향 20:30 송곡리의 벼농사 주거지 청동기 전파한 야요이인 23:10 일본어의 어원은 한국어라는 일본 홋카이도대학의 마크 허드슨 교수 27:21 고구려와 신라 언어가 다르게 발전했을 것이어서 한일 언어가 다르다는 허드슨교수의 가설 29:00 고구려 백제 신라의 비석문에는 목적어 다음 서술어로 모두 같음 31:30 신라 통일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명 개명하며 관련 어휘 기록으로 서로 다름 확인 33:33 뿌리는 같아서 어휘는 다를 수 있어도 의사소통 용이한 방언차이라고 간주 34:38 고구려어와 일본어 유사 특히 숫자 표현 유사 35:54 대륙의 부여어와 한조어(고대한국어?)에서 원시부여어로 발전후 원시일본어와 고구려어가 분화되고, 한조어에서 원시한어로 발전후 신라어와 백제어가 나뉘어 현 일본어가 되고 고구려어는 소멸했고 신라어가 현 한국어가 되고 백제어는 소멸했다고 추측 38:52 130여년전 한국어 교과서 현재 말과 많이 다름(북한 방언 추측) 100여년 전 말도 지금과 거의 다르지 않았어요. 조선최초의 음원, 114년전 한국인의 목소리 주인공은 누구인가 [역사실험] KBS 2010.07.18 방송(1896년 녹음)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100년 전 한국어 음성을 듣는다면?ㅣ독일군 포로가 된 조선 청년들의 '아리랑'(1917년 녹음)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고려인 전쟁포로가 부른 100년전 '아리랑'(1917년 녹음)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조선시대 발음은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 l 조선의 언어학자 이극로가 녹음한 실제 육성 (1928년 녹음)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실제음성)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꽁꽁 숨겨뒀던 100년 전 한국어 육성녹음 원본(이극로 님 약력 및 녹음)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100년전에 녹음된 한국어 육성 음성 원본(1935년 녹음)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개인적으로 접한 많은 자료들로 추측하면 삼국시대에 서로 충분히 말이 통했고, 허드슨 교수님이나 취재진의 고구려어와 신라어로 양분됐다는 가설은 아니라고 확신해요. 지나(china)의 여러 사서들에서도 우리 삼국이 말이 통했다는 기록도 있고, 어느 나라인지 두개 나라는 통해서 다른 한 나라의 말을 통역해야 한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런 경우도 있었겠지요. 지금도 제주어는 못 알아 듣지요. 배재대 스페인어학과 손성태 님께서 멕시코 원주민들이 한민족임을 발견하여 알리시는데 학생들과 역사서들을 조사하여 미주 대륙으로 마지막 대량이주한 시기가 발해 멸망시 임을 찾으셨는데 그들의 말이 지금의 우리말과 같아요. 손성태 님께서 20여년 전에 미국 아리조나 어느 대학에 연구차 오셔서 서반아(스페인)인들이 중남미 대륙 정복후 학자들이 와서 여러 연구하는 중에 초보적인 사전을 만든 기록을 발견하셔서 보시고 다 우리말이어서 놀라셨대요. 이후 역사학자들의 활동이 없자 관련역사를 전하고 계세요. 손성태 님의 많은 영상들 중에 저는 '타 마티니'와 '타 기려' 두 말만 보았고 문루이 님의 지나(china) 언어 교육영상에서 '다메네'까지는 들었는데 '타'는 모두, 다 를 로마자로 썼고 '마티니'는 맞춘이로 '다 맞춘이' 즉 점장이로 서반아어로 해석했고 '타 기려'는 제 개인 추측으로 '그려'를 특히 영어는 '으'발음이 없어서 '우'가 가장 가까운데 '이'를 쓴 것으로 추측해요. 일례로 '잉글리쉬'에서 'ㄱ' 다음에 모음 없이 'ㄹ' L 엘 발음 '을'이 붙어 '글'로 들리니 우리식으로 '글'이라고 쓰는데 사전 보시면 'g'와 'l' 사이에 모음 기호가 없이 바로 붙어 있어요. 다른 말들도 같아요. '다 그려'이니 화가의 뜻을 서반아어로 적었다고 하세요. '다 메네'는 짐꾼이지요. 사람을 말하는데 '타 마티니'는 우리 말의 이 사람의 이 이, 글쓴이 처럼 '이'를 쓰고 '타 기려'에서는 행위만 말했네요. 처음 들을 때는 저렇게 순 우리말을 썼네 하고 신기했는데 일본 씨름 영상에서 '하기요'를 먼저 봤는데 연결이 안 됐었어요.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 1 - 아스테카의 이방인, 그들은 누구인가?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 2 - 멕시코 태극의 비밀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전통놀이 등 습속도 같지요. 심지어 겨울밤에 찹쌀떡 팔던 호객구호도 같은 것을 제 개인적으로 로스 안젤레스 한인촌에서 멕시코 출신 행상이 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어 언제부터 이렇게 했냐고 물으니 조상 대대로 전해오던 것을 어떻게 아냐고 하더군요. 저 어릴 때 서울에서 밤에 '찹^쌀-^떠억-'할 때 '찹'보다 '쌀'을 약간 높고 길게 한 뒤에 '떠'를 더 올렸다가 '억'을 내려 길게 했는데 이 사람은 점심 즈음 낮에 '따^말-레-스'를 '따'보다'말'을 약간 높고 길게 한 뒤에 '레'를 같은 높이로 길게 하고 '스'로 하여 멀리서 들으니 '찹^쌀-떡-'으로 들려서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서 소리 들리는 곳으로 찾아가니 그러면 그렇지 찹쌀떡은 아니었지만 귀중한 역사 편린을 보았어요. 영상 찍게 다시 해달라니 '따^말-레-스'하더니 '꼬^레-아-노'한 것이 어딘가 있어요. 10여년 전에 들었는데 당시 10여년 미국 나성에 사는 동안 처음 들었어요. 이후 10여년 동안도 들은 적 없어요. 최근 돌아가신 옛날 말표 구두약의 강남화학 창업주 3남을 미국 와서 만나서 20여년 간 자주 대화했는데 멕시코를 한달에 한번 이상을 10여년 이상 다니셨는데 이런 우리 민족 이동설을 말씀드렸더니 멕시코 시골을 많이 다니실 때 몇몇 한인들이 놀러가서 돈을 후하게 쳐서 음식을 부탁하면 아주머니들이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오는데 광주리 아래에 머리에 얹는 둥근 것이 한국 것과 똑 같고 그것에 가는 줄을 달아서 입에 물어 떨어지지 않게 한 것도 같아서 신기했었는데 당시 우리와의 관계를 몰라 물을 생각은 못 하셨다고 해요. 주위 중남미 출신인들에게 전통놀이 물어보니 다 어렸을 때 우리와 똑같이 했대요. 말뚝박기, 윷놀이, 구슬치기, 팽이돌리기, 공기놀이, 여럿이 하는 줄넘기 등 같아요. 저는 어려서 왜 모놀이라고 하지 않고 윷놀이라고 하나 가끔 궁금했는데 여기서는 윷가락이 3개래요. 그래서 윷놀이였나 봐요. 심지어 겨울이 없는 중미 출신인이 윷놀이를 아무때나 하지않고 어느 시기에 한다고 알려주며 조상이 한국인이라니 신기해 했어요.
@jaekunyoo8509
@jaekunyoo8509 7 ай бұрын
백제와 왜, 일본 관계 언어 민족 계통 3/4 주로 고구려계가 알래스카를 통해 중남미까지 왔는데 말이 같고 습속도 같아요. 일부에서는 지금 우리 말과 습속이 삼국통일후 신라식 위주일거라고 추측하는데, 그러면 현대 우리 말과 미주 지역에 전해진 우리 말이 달라야 하는데 같으니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인도 드라비다 지역의 타밀어가 우리 말의 엄마 아빠 등 일상언어와 농사관련 단어들이 같은데 지배층이 이주해 왔다면 온 국민이 다 사용할 수 있을까요? 통신 방송시설은 물론 한글도 없던 시대에 지배층이 강제한다고 전파가 될까요? 전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지요. 말이 섞일 정도로 다수가 왔다고 추측할 수 있지요. 전파되는 시간도 걸리겠지요. 바이칼 호수 주위의 부리야트 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지요. 접미사 '야트'가 다수를 말하는 '들'을 뜻해서 '부리들'이라는 말인데 부여족과 관련이 크다는 말도 있어요. 야트와 들도 관련이 있을까요? 어느 영상에서 현지인의 옛날에 한 무리가 동쪽으로 갔다는 전설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버지, 어머니 등은 그 지역에서 왔을까요? 100여년 전의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호 사회 5면에 동아시아, 동아를 풀이한 동아해 기사에 우리 민족의 기원이 예니세이 강 상류이고 이 지역을 퉁구스(통고사 한역)라고 불러서 우리를 퉁구스족이라고 설명해요. (동아일보 디지털 아카이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검색 가능) 서울에서 북서쪽으로 바이칼호수까지 약 2,300킬로미터이고 거기에서 예니세이강 상류가 북서쪽으로 다시 약 1,300킬로미터인데 카자흐스탄 중심과 몽골 중심과 큰 정삼각형을 그릴 수 있어요. 목포 아래 최남단에서 북동 대각으로 강원도 고성까지 약 500킬로미터이고 북한 최북단 온성까지가 약 1,000킬로미터이에요. 우리 朝鮮조선이라는 地域지역이 陰山南北음산남북, 黑水以南흑수이남, 半島반도까지의 東亞동아 밋 北亞북아의 大陸대륙임은 歷史역사를 읽는 이의 다 認定인정하는 바어니와 이 地域지역에 盤根반근된 人族인족을「퉁구쓰」라 하니「퉁구쓰」는 漢譯한역하야 通古斯통고사며 그 語源어원은 漢人한인의 指稱지칭인 東胡동호의 轉音전음이라 하나 그러타하면 東亞동아와는 매우 關連관련이 잇슬 법하되 꼭 그러타 못 할지며 다시 詳考상고하건대「퉁구쓰」곳 朝鮮族조선족이 東亞동아의 西北서북에서 祖產조산됨도 事實사실이요 北亞북아의 「예니세이」河하의 上流河名상류 하명이 「퉁구쓰」임으로 東亞人種동아인종의 祖產조산된 地域지역의 河名하명을 取취하야 稱칭함이러라 通古斯族통고사족을 古고에 倍達族배달족이라 하니 그 始祖檀君시조 단군의 檀단의 我語아어를 取취함이요 次차에 肅愼族숙신족이라 하니「주신」곳 朝鮮조선을 標楞표방함이며 ᅳ에「디대」族족이라 하니 「다대」곳 韃靼族달단족이 蒙古몽고라는 이름으로 世界세계에 雄飛웅비할 時시의 稱칭인데 이에 對대하야 異人族이인족이 아닌가 懷疑회의할 이 잇슬지라 暫間說明잠간 설명할진대 龍飛御天歌註용비어천가 주에「디대」는 靺鞨말갈의 後후, 女眞別種여진 별종이니 陰山南北음산남북에 移居이거하야 熟生二部숙생이부가 되엇다 하고 宋송의 孟琪맹기이 元太祖成吉思汗원 태조 성길사한을 評평하야 「다대」人인 가온대의 特別특별히 생긴 이라 하얏고 洪原홍원의 「디대골」(韃靼洞달단동)은 女眞여진 곳 金人금인의 居生거생하던 洞名동명이며 古고의 庫頁고혈 곳 今금의 樺太島화태도와 大陸대륙 사이의 海峽해협을 韃靼海峽달단해협이라 하는 等등을 보아 그 我族아족됨이 確實확실할지며 今금에 通古斯통고사라 함에도 半島반도에 生長생장하야 祖上조상을 이즌 우리라 저의 稱呼칭호를 모르기 人인보다 甚심하니 寒心한심하기 그지없도다 지나(china)인들이 동호東胡로 부른 것을 '통구스'라 불렀고 퉁구스通古斯 명칭은 예니세이 강의 상류 명칭이고 우리 민족이 숙신이고 주신인 조선이고 그 지역에 살던 말갈, 여진(만주), 달단(몽고) 다 같은 우리와 동족이라고 용비어천가 주의 내용까지 들어 설명했어요. 숙생2부는 숙여진, 생여진으로 숙여진은 익었다는 문명여진으로, 생여진은 야생여진을 뜻하지요. 화태도는 사할린섬이에요. 당시 역사학자 박은식 님께서도 후금(청)의 건국자 누루하치가 우리 선조라고 하셨다지요. 금나라 시조도 고려인이었다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여진족도 우리와 동족이라는데 왕조의 시조는 신라인 임을 지나(china) 정사 금사에 기록했으며 '흠정만주원류고'는 청나라 제6대 황제 건륭제의 지시로 편찬된 만주족의 역사서로 숙신, 물길, 말갈, 읍루, 부여, 삼한, 백제, 신라, 발해, 여진(완안, 건주)로 이어짐을 기록하고 자신들의 선대 왕조인 금나라의 시조를 신라, 혹은 고려의 인물로 기록했어요. 만주족과 한민족은 사실상 같은 뿌리 (윗줄 제목 웹 검색창에서 찾아 읽기 가능) 고구려·원의 뿌리는 高離國 … 금·청 황제는 신라 사람 (윗줄 제목 웹 검색창에서 찾아 읽기 가능) 만주원류고 (위키 백과 참조) 법학박사 전원철 님께서 <몽골비사>, <집사>, <사국사>, <칭기스의 서>, <셀렝게 부랴트종족의 역사> 등 29개 언어로 된 사서를 분석하여 징기스칸이 고구려 왕족의 후예라는 사실을 중세의 돌궐, 몽골 등 여러 언어까지 익히셔서 책으로 밝히셨다고 여러 기사에서 봤어요. 칭기스 칸의 선조는 고구려 주몽의 후손인 발해 왕족입니다 (윗줄 제목 웹 검색창에서 찾아 읽기 가능) 작년 말에 유튜브 외국 몽골정복 영화중에 자기네 오래전 어느 왕자가 궁수부대를 훈련하여 부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대사가 있어 갈무리 했는데 영상이 없어졌는지 목록에서 사라졌고, 고구려 어느 왕자의 위 내용을 어디서 봤는데 인공지능을 동원해서 검색해도 못 찾겠어요. 찾으면 민간에서도 실례를 공유한다는 단서가 되겠지요. 국제관계학 전공 김정민 님께서 카자흐스탄에서 박사과정중에 우리 민족과 정서가 비슷한 것들을 보게 되어 처음에는 그럴 수 있겠지 하셨는데 더욱 자주 접하게 되어 뭔가 있다라고 깊이 연구하셔서 우리가 농경 정착후 잊었던 많은 유목민의 풍속, 정신 등을 찾으셨어요. 카자흐스탄이 소련 붕괴후 독립하여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역사복원단체를 만들어 연구하여 결과물로 '케레이'라는 국가 역사책을 발간했는데 그 뜻이 '겨레', '민족', '족보'래요. 김정민 님께서는 우리말 겨레와 케레이와 유사하여 연관이 있다고 추측하셨어요. 그 역사책에 자기들 선조들이 몇천년 전에 여러 유목민족들과 나라를 이루어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초지의 공평성을 위해 해마다 지역을 순환하며 살았는데 각 민족마다 주어진 책무가 있고 이를 나타내는 복색이 달라서 몽골족은 전사족으로 빨간색 옷을 입고 우리 민족은 제사장 민족으로 흰옷을 입었다고 기록되었고 현대에 남은 민족 국가로 터키는 실제 기록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기억 안나고 몽골과 한국을 지도에 큰 화살표로 표시한 것까지 책을 들어서 보여 주셨어요. 남의 족보 덕분에 왜 백의민족인지를 알게 됐어요. 이 점으로만도 김정민 님께서는 한민족에 큰 공헌하셨어요. 어느 공동체나 국가나 인간은 종교적이지만 우리 민족은 왜 이리 종교성이 강한가 생각한 적이 가끔 있었는데 이유가 있었어요. 환국 시대에도 제정일치였을텐데 종교 및 각종 지식을 관장하는 집단이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민족이었지요. 홍익인간을 국시로 내세운 배달 신시국의 바탕이 이런 놀라운 배경이었어요. 첨단기술을 가진 집단이 정복이 아니라 교화하여 문명사회를 만들어 보람을 느끼며 함께 사는, 크게 보면 신이 인간들을 구원하는 맥락이지요. 지금도 그런 말들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언제 사람되나 너 언제 사람되냐 등 뭔가 한 차원은 높은 정신세계를 지향한 민족임은 확실해요.
@jaekunyoo8509
@jaekunyoo8509 7 ай бұрын
백제와 왜, 일본 관계 언어 민족 계통 4/4 10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호 사회 5면 동아시아 풀이 동아해에서도 一步일보 나아가 特別특별히 主張주장할 것은 우리 族譜第一張족보 제일장에 이른바 弘益人間홍익인간 그것이니 더 仔細자세히 說明설명하면 널리 世界세계를 救濟구제할 양으로 난 民族민족이라는 것이라 이를 期기하랴면 爲先위선 저를 차져 저를 세워 저를 들어낼지니 이 自我자아 곳「제저」는 上說상설한 그 壯貌상모, 그 性格성격일가 아니라 더 緊着긴착히 더 簡明간명히 말하면 身신에는 洋服양복을 衣의하고 囗구로는「곤이지와」를 부르더라도 뜨더보면 洋人양인도 和人화인도 아닌 그것 곳 朝鮮人조선인이니 이「제저」를 차져, 세워 들어내는 데에는 個人개인으로도 그러 하려니와 全體전체로는 더욱 그러하여야 헐 것이매 이곳 東亞동아의 일어난 바이라 우리 東亞동아라는 큰몸, 日報일보라는 큰입으로 行행하는 바에 香향내가 나고 言언하는 바에 花화가 開개제하야 오래 잠겻던 이 世上세상으로 하야곰 새봄을 맛나고 百花백화가 피어 둥글고 私사업는 文明문명의 동산으로 化화하게 할 진저。 '한 걸음 더 나아가 특별히 주장할 것은 우리 민족 족보의 첫 장에 이른바 홍익인간 즉 인류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으로 자세히 말하면 널리 세계를 구제할 것으로 태어난 민족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조옥구 교수의 한자를 한글처럼 배우는 백자초문 제 1부 | 청동거울에 숨겨진 본심본태양앙명의 뜻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성통공완(도) 재세이화(덕) 도덕구비 홍익인간 몇년전에 우연히 개천절에 대해 생각하다가 아마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전국민이 하늘이 열렸다는 위대한 날을 기념하면서 그 연혁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50 중반에 알게 됐어요. 속칭 단군신화에 환웅께서 3천인과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을 개천이라 했는데 왜 그 시점을 단군 직책이 지도자인 조선 개국으로 모두들 알고 있었는지 도대체 학자들은 무슨 생각들이었는지 답답해요. 저도 막연히 그러려니 했었지요. 해방후 제헌국회 당시 배달국을 알던 인사들이 없었어서 개천을 단군 조선으로 보고 단기를 썼나 봐요. 단군 조선부터 반만년이라지만 반올림 못하는 4천3백년이지요. 환웅 직책이 지도자인 배달국, 신시국, 배달신시국을 알았더라면 1,565년을 더해 5천9백년이 되어가니 6천년 역사라고 할 수 있었지요. 붉은악마 치우천왕이신 14대 자오지(慈烏支)환웅이 속하신 나라이지요. 해방 당시까지 배달국을 몰랐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는 이유가 배달민족의 연원을 정확히 혹 제대로 들은 적이 없어요. 배달의 민족 나오기 전에도 우스개 소리로 배달해서냐고도 했었어요. 저는 인터넷 통해서 환단고기를 알고 환국과 배달 신시국이 있었다고 전해 들어 그제서야 왜 민족 이름이 배달인지를 20년전에 알게 됐어요. 그러나 환인 직책이 지도자인 환국이 시초 국가이니 12민족 연방체이어도 우리 민족만의 나라가 아닌 우리 나라이지요. 미국이나 다른 다민족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그 중 한 민족이라고 내나라가 아니라고 하나요. 3,301년과 배달국 1,565년과 단군 조선 2,096년을 더해 9천1백여년의 역사에요. 오래전에 어느 방송사에서 인도의 어느 지방 악기와 춤추는 발동작을 고구려 벽화와 비교하여 흡사한 것과 노래와 연주가 우리 자진모리 장단과 유사한 것을 방송했는데 남방계와 북방계의 언어, 음악, 풍습 등이 삼국시대 이전 부여 등 열국시대나 그 이전의 옛 조선시대에 융화되어 만주와 한반도에 널리 퍼졌다고 추측해요. 북방계도 히말라야 산맥 위를 돌아온 계통이 아닌 몇천년 먼저 이주하여 북상한 남방계라는 연구결과도 있어요. 8천년전 러시아 극동지방의 인골 유전자가 한중일 중 한국인과 가장 유사하다는 최근 연구도 있어요. 2천 년 전 고구려와 인도에서 무슨 일이? 고구려 음악 대탐사 제 1편. 인도에서 고구려를 만나다 (역사기행 2007.03.11. 방송)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히말라야 산맥과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을 넘어선 고구려 음악 추적기. 고구려 음악 대탐사 제 2편. 히말라야를 넘어 고구려로 (역사기행 2007.03.18. 방송)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남인도 드라비다족의 타밀어에는 우리말과 같은 어휘가 무려 1,300여개, 언어학상 같은 어족이 아니면 동사가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원 영상을 못 찾겠어요 브리야트 족, 시조 게세르 신화에 아바이는 아버지라는 뜻, 고수레, 성황당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원 영상을 못 찾겠어요 ‘한국인의 뿌리’ 밝혔다…“남·북방계 혼합”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한국인의 유전적 뿌리는 북방계와 남방계 융합 YTN(Yes! Top News)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진화28-우리는 홍산 문화인과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한국인의 기원과 이동 -고대, 현대인의 게놈 분석 박종화 교수(UNIST)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요즘 황당하게 우리 민족이 동이족이 아니다, 동이족은 3천여년 전의 현재 산동반도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지 우리 민족과 무관하다 는 이들이 있어서 유전으로 갖는 쌍각지(雙脚趾 일명 며느리 발톱, 새끼 발톱의 몸 바깥쪽 옆에 작게 벌어져 나는 것)로 그치기 바래요. 저도 20여년 전까지 나는 왜 발톱이 이렇지? 하면서 아버님께서도 그러신지 여쭐 생각도 안 났었는데 인터넷에서 우리 역사에 연결되어 수많은 웹문서들을 볼 때 동이족 신체특징이라고 설명되어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동이족 풍습과 우리 민족 풍습이 동일하고 화하족(한족) 등 다른 민족과는 다른데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요. 한자 초기 시작도 우리 민족 조상님들이 하셨다는 명백한 증거 영상을 소개해요. 저는 10여년 전에 고 진태하 님께서 70년 이전에 여러 지나학자들이 글자는 동이족이 만들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보시고 우리 조상님들께서 만드셨으면 풍속이 녹아있겠다는 발상을 하셔서 갑골문에서 20여자 이상의 글자들에 들어있는 풍습들을 설명하시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진태하 님께서 동이족 시원설을 주장하셨다고 오도해요. 한국인만 알 수 있는 한자의 기원 (한자 1강) 중국인은 절대 모른다! 동이족이 갑골문 만든 결정적 증거 - 한국인은 누구나 알수 있다! (한자10강) 제주도에 남은 갑골문의 원형 - 집 가(家)자의 비밀 비로소 풀렸다! (한자28강)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jaekunyoo8509
@jaekunyoo8509 7 ай бұрын
댓글 정렬을 최신순으로 해야 4/4가 보일 수도 있어요.
@jaekunyoo8509
@jaekunyoo8509 7 ай бұрын
댓글 정렬을 최신순으로 해야 4/4가 보일 수도 있어요.
@jaekunyoo8509
@jaekunyoo8509 7 ай бұрын
오늘 추천영상으로 떠서 다시 보니 새카맣게 잊고 있었어요. 5개월이 지났네요. 최근에 김영회TV에서 향가제작법에 의한 풀이를 보느라 재미들렸는데 백제와 왜, 일본의 관계와 언어 변천에 대한 대략 정리를 하여 댓글로 달아 무관심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게 여기저기에 올리고 있어요. 뭐든지 알면 쉽고 당연하지만 모르면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렵지요. 2024년 6월 10일 월 20시 태평양 시간
@anjwl1941
@anjwl1941 7 ай бұрын
뜻글이 아닌 다른 소리글과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유사한 글자 형태가 이미 존재해 약간 참고는 되었을지 몰라도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한글은 완벽하게 재 창조된 문자로 보아야 합니다.고려한글이라 명명함은 당치도 않다고 생각합니다.다른 표현을 찾으셔야지 고려한글이라 표함은 세종대왕님의 위대한 업적을 깎는 일입니다. 생김새를 차용했지만 전혀 다른 언어가 세상에 사용되고 현존하는 것만 봐도 같은 이치 아닐까요? 그것을 같은 글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겠죠~
@암벽등반-q4h
@암벽등반-q4h 5 ай бұрын
@@anjwl1941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한글이라 불리지 않았음
@kimbbq7462
@kimbbq7462 8 ай бұрын
고 강상원박사님께서 천산을 안산이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그리고 환단고기의 가림토가 위서라고 주장하는 한심한 꼰대들이 기겁할 만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일본의 신대문자에 훈민정음이 아닌 문자들이 바로 가람토에 있다는 사실이며 또한 그런 문자의 용례가 나왔으니 한국의 바보 강단사학자들이 얼마나 가슴을 졸일지 아니면 또 고려한글이 거짓이라고 지랄할지 함 두고 봅시다!!!
@유레카-w2f
@유레카-w2f 8 ай бұрын
ㅋㅋㅋ 세뇌를 당해서 역사를 꺼꾸로 알고 있으니 세종이전 고려 때도 한글이 있었다는 소릴하지 우리가 아는 이씨조선은 우리가 가진 기록을 바로 전 세대 라고 인식 해서 그런 것임 그걸 책 이라고 하는 것임
@calmroad
@calmroad 8 ай бұрын
전문을 인터넷으로 공개해주세요....집단 지성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kschoi7337
@kschoi7337 8 ай бұрын
ㅀ ㅌㅈ는 라하의 자 : 아들의 자, 이런 뜻으로 보면 되고, ㄽ ㅎㄱ은 라스의 구 : 이렇게 읽히는 것 아닐까? ㅎ이라는 것이 아래하처럼 우측에 붙느냐, 아랫쪽 좌측에 붙느냐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당히 재미있는 문자인 것으로 보여지고, 더 연구를 해봐야 할 사항이다.
@user-ig3wq2vp2f
@user-ig3wq2vp2f 8 ай бұрын
한글과 한국어를 구분해야 한다 90%는 문맹이었다 가림토 문자 록#문자등은 있었으나 그게 한글은 아니다 한글과 한국어를 왔다 갔다 먼소린지
@myung1082
@myung1082 8 ай бұрын
중국이 조선이여~다 암시롱 왜그려
@seungminlee1576
@seungminlee1576 7 ай бұрын
근데 조선말을 하는 넘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런지 찾아야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