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들. 그중에서도 인조 역시 나왔어는 안되는 왕이였고. 권력욕에 눈먼 중신들이 자기들 자리 지킬려고 일으킨 쿠테타로 왕이되어서 조선이 겪지도 않아도될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끌어들여 조선을 피로 물들이고 조선의 백성들을 청의 인간시장에 노예들로 팔리게 만들고 조선의 여자들을 성노예로 만들어 버린 역사의 악마들이다.
@뭘봐임마-u3x10 сағат бұрын
부탁드린 영상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권도완-p1uКүн бұрын
양호는 어떻게 되었나요 죽었나요 유일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랑 소식이 없네요
@Ting-z2j2 күн бұрын
1 국가가 강한군대를 만들 재정이 아니였다 2임금이 강한군대를 싫어했다 3사대주의로 중국의 눈치를 봐야했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듯 일본은 그에비해서 군비경쟁의 산물인듯
@Ting-z2j2 күн бұрын
어쩌다? 늘 깨어있으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전 100승 자만의 결과
@폭파-h7e3 күн бұрын
아무리 포장해도 개 쇄끼 졸장
@아이셔레몬-o6w3 күн бұрын
시마즈 저 놈도 노량해전에서 끝냈어야 했는데 정말 아쉽다. 하여간에 저런 놈은 죽음에서 잘도 도망간다니까. 쳇, 꼭 윤씨새끼같군. 그 집안도 매국노집안이라 다 멸족시켰어야 했는데. 지금껏 이어져서 남의 땅에서 대통령 해먹고 있지않나. 진짜 어쩌다 그런 쓰레기를...에휴..
@1fa1ci1shk3 күн бұрын
이순신 장군님의 안목(혜안)이 결국 옳았다! 또한 이순신 장군님의 말씀처럼 시마즈 가문도 의를 행한적 없고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
@동네형-f3u4 күн бұрын
왜곡된역사 이군요
@dreamx1386 күн бұрын
대단한 맹장 이셨군요...
@doroshi996 күн бұрын
선조가 정말 복터진 왕인게 선조시절의 인재풀이 역대급이었다는것.
@kjh717176 күн бұрын
장군의 희생에 지금의 우리들이 있습니다
@doroshi996 күн бұрын
이름만 들어도 안타까운 인물
@doroshi996 күн бұрын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의외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 그의 출신과 전공을 보면 오히려 왜 이런 인물이 많이 알려지지않았을까하고 의문이 들 정도임.
@dreamx1387 күн бұрын
대단한 어른 이시군요. 경의를 표합니다.
@파-u3g7 күн бұрын
안중근 윤봉길의사들의 앞세대들이 욕을 쳐먹어야 합니다. 일찍 개혁개방 했다면 절호의 기회를 우리가 잡았을것이고~ 고구려 옛고토를 회복했을것이고 일제에 후손들이 성노예로 징집으로 억울하게 죽지않았을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시대를 사신 어른들을 존경해야한다! 근데 지금 정치와 좌파국민의 생각은 선동질당하고 방치해주는 모습이 안타깝다! 다음 세대가 어떤 삶을 살지는 지금 보면 대충 예측 가능하다. 자유는 빼앗기고 후회 하는것이 아니다! 공산주의는 절대 자유를 주지않고 민족을 말살하는 반민족행위이고 또 다른 왜적이다! 지금 북한을 보면 민족이 개인의 자유가 있냐? 김씨 왕조와 공산당 기득권 가진자들이 아첨하고 아부하며 생존을 빌붙는 현상! 굶어죽고 자유없는 노예로 사는 안타까운 삶! 윤봉길의사와 많은 애국자들이 자유를 찾기위해 젊은 짧은 나이에 자기의 삶을 살지 못하고~생을 마감한것이 안타깝다.
@yong-gilchoi86148 күн бұрын
원균에게 화를 내면서 원희룡에게 표를 찍은 제주도민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순신 제독의 희생과 죽음에 통분하면서도 윤석렬을 찍은 자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생각하지 않는 국민은 멸망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거짓에 농락당한다. 90%의 언론방송이 거짓선동에 가득차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우리가 스스로 그런 세상을 만들었고 그런 자들이 권세를 휘두르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누가 이승만을 찍고 박정희를 찍고 전두환을 찍고 노태우를 찍고, 이명박을 찍고 박근혜를 찍었는가? 바로 우리들이다. 윤석렬은 누가 찍었는가 깊이 생각할 줄 모르고 거짓선동의 언론방송에 휘두르는 절반의 우리 국민이 찍었다. 이들이 반성하지 않으면, 이들이 참회하지 않으면, 이들이 생각하는 것을 뒤집지 않으면 이 나라는 영원히 동북아 최약체 분단 약소국으로 남을 것이다.
@모과라이스9 күн бұрын
기껏 반란군 막았지만, 결과는 유배.. 무사로서의 능력은 뛰어났으나 정치를 몰랐으니, 한신과도 같구나
@낙타-k4c10 күн бұрын
인조는 애초에 왕이 될 인물이 어니였기에 인조가 무능하고 무력한건 당연한거임. 진짜 조선과 민족의 역적들은 씹선비 유교탈레반 서인놈들임.
드라마 소설등으로 역사를 배우면 신립에 대해 비난을 할 수 밖에 없음 1.신립은 왜군을 무시했는 가? 아님 2.신립의 군대가 1만 8천 명이고 기병이 수천인가? 아님 3.조령만 막으면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님 먼저 신립 장군의 병사 숫자는 8천명 정도임. 기병은 천명이 조금 넘음, 신립 장군은 왜군을 무시하지 않았음 . 비밀리에 선조에 왜군에 대해 보고함 그리고 도성으로 후퇴하여 싸울 것을 청함. 조령만 막으면 막을 수 있을까 ...아님 계림령은 오늘 날 하늘재로 고려이전까지 충주로 가는 길이었음 조선 이후 조령을 이용함. 큰 새재, 작은 새재, 하늘재 등 몇 개의 통로가 더 있기 때문에, 우회해서 충주로 가서 왜군이 배후를 지키면 고립되어 죽게 됨. 탄금대 전투도 신립 장군이 원했던 장소가 아님 전투 중 밀리다 보니 그곳으로 간 것뿐임. ((외방의 군사는 모이지 않고 도성에는 전후하여 대부분의 장정들이 거의 징발되었으므로 도원수 역시 군사가 없었다. 상주에서 패배한 보고가 이르고 신입(申砬) 또한 비밀히 아뢰기를 ‘ 적의 기세가 매우 드세니 도성으로 후퇴하여 지키도록 하소서.’ 하였다. 내간(內間)에서는 이미 서울을 떠나려는 뜻이 있었는데, 수상(首相)만이 그것을 알았다.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4월 14일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4장 *************************** .................................................. 대전대학교 윤일영 교수의 논문 탄금대 전투 시 신립 군의 병력 수 Shin Rip(申砬)'s number of troops in the Battle of Tangeumdae 2020, vol., no.11, pp. 275-309 (35 pages) 여기 나온 내용에는 신립이 서기 1592년 음력 4월 25일 충주성에 집결시켰던 총 병력 수는 8,000명이었다. 이 병력 가운데 신립 장군이 都城에서 동원하여 충주 성까지 인솔했던 병력 수는 보병 및 기병 4,366명이었다. 그리고 충청도 內 군현에서 동원하여 충주 성까지 이동시켰던 병력 수는 보병 3,634명이었다. 도성에서 인솔했던 4,366명 가운데 기병 수는 1,152명이었고 보병 수는 3114명이었으 며 宗族은 100명이었다. 8,000명 가운데 보병 수는 6,748명이었다. 즉,신립은 1만6천명의 병력이 아니라 8천명의 병력을 가진 것.
@논스톱논스톱18 күн бұрын
한국하고 악연인 가문.
@두둠칫-p9k18 күн бұрын
그림 직접 그리시는 건가요?
@두둠칫-p9k18 күн бұрын
인물 그림들 직접 그리시는건가요?
@오에버그린18 күн бұрын
바다의 이순신이 있다면 육지에는 황진이 있었다!!
@보인짱-r7i21 күн бұрын
이괄의난에서 무쌍 찍으며 조선군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이괄에 협력했던 다른 항왜 장수(서아지)를 김충선이 1:1 일기토로 목을 베어 버림
@김태영-n2i21 күн бұрын
왜나라 같은양반들
@Kerasy021 күн бұрын
댓글들 보니 저주,비난 밖에 없네.. 시마즈 가문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어리석은건가?
@ktkim894521 күн бұрын
실전에서 이순신장군의 명령을 받아 적의 진을 깨면서 돌진하는 돌격장들과 함께 타고 있던 장졸들의 비장한 마음 가짐이 느껴집니다.
@Koreaphotograper22 күн бұрын
조선최악의3대군주하나인 인조.청태종이 병자호란때 인조를 폐위 시켜야했다.
@고양이앞발-s9s22 күн бұрын
이괄의 난은 인조 가 일으킨거나 다름 없음
@the-time-rich23 күн бұрын
1인칭 너무좋네요
@kkkorea-q6c23 күн бұрын
여러분! 서양의 식민지 노예신분제도가 바로 조선의 상놈ㆍ노바천민 신분제도와 일치합니다.이런사실은 국내사학회중 참역사회에서만 밝혀낸 팩트라서 현재 국사계지배층인 이왕손분들이 가장 미워하여 악플달고 다른분들은 시기.질투로 폄하한다는 사실입니다.역사 국사는 죽은내용을암기만잘하는게아니라 생각하는것이며 역사는 소설이나 승자의 기록만이 아니라,후세사가들의 냉정한 평가(국리민복ㆍ홍익인간)로 살아있고 진행된다라는 점 알려드립니다.감사합니다.
@ykl417523 күн бұрын
이게 ㅈㄴ ㅂㅅ 같은게... 일본군 조총 때문에 조선이 패한게 아님... 편전이 조총보다 사거리나 연사속도가 빨랐다... 부장이 조령에서 편전 가지고 농성하자고 했는데... 기병을 쑤고 싶어서 였는지... 아님 정말 충주성 버리고 도망가다 생각보다 빨리 온 일본군한테 잡힌 건지... 조총이 뭔지도 모르고 모래판인 탄금대에 배수진 쳐서 스스로 기병 기동력 없애 버릴 만큼 멍청했던 건지... 당시에 기병 6천이면 차라리 도망치는게 나았음... 도성에 모인 경기지역 5만이 와키자카군 3펀에 도룩당한거 생각하면... 신립이 정예기병 6천에 5만 대군 데리고 농성했으면 한양은 몰라도 평양성은 지킬 수 있었음...
@yong579524 күн бұрын
임짐왜란 주세력 = 일제 시대 주세력 입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진 이후 메이지유신으로 다시 일본을 장악하면서 다시 침략한거죠. 그 세력이 아직도 일본을 장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