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ікірлер
@KoreaNyangTiger
@KoreaNyangTiger Сағат бұрын
선생님, 최소한의 서양고전 전자책도 내주시면 안될까요...?ㅜㅜㅋㅋ
@civil_travel
@civil_travel Сағат бұрын
제가 하는게 아니라서 ㅎㅎ 출판사에 말해 볼께요...
@KoreaNyangTiger
@KoreaNyangTiger Сағат бұрын
오해를 바로잡는 설명 감사합니다!
@civil_travel
@civil_travel Сағат бұрын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영자-t8g
@영자-t8g 2 сағат бұрын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흐루쇼프는 쿠르스크 출신이죠. 물론 쿠르스크가 우크라이나 지역에 접해있어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친화적이었던 건 맞지만.
@civil_travel
@civil_travel Сағат бұрын
감사합니다...
@deuk_cheol
@deuk_cheol Күн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civil_travel
@civil_travel Сағат бұрын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nadaiMel-o6g
@nadaiMel-o6g Күн бұрын
"대 애국 전쟁"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civil_travel
@civil_travel Күн бұрын
러시아의 대조국 전쟁은 러시아어로 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 (벨리카야 오테체스트벤나야 보이나)라고 합니다. 소련과 독일이 싸운 이 전쟁에 대한 공식 명칭입니다...위대한 조국 전쟁이란 뜻입니다...
@nadaiMel-o6g
@nadaiMel-o6g Күн бұрын
아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sungilkim8360
@sungilkim8360 Күн бұрын
정말 유익한 채널입니다. 앞으로도 양질의 정보 맗이 알려주세요
@civil_travel
@civil_travel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jisungpark8952
@jisungpark8952 3 күн бұрын
트로츠키는 애초에 러시아인도 아니었고, 유태인 세력들에 의해 러시아로 보내어진 유태인 스파이였지 않았나요? 러시아에서 권력잡기가 힘들었겠죠. 그리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그렇게나 이상적 체제였으면 이스라엘이 먼저 시범을 보여줘야지 남들을 공산화시키면서 자기들은 자본주의 체제인거 자체가 유태인들의 사기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임.
@김화순-p7w
@김화순-p7w 3 күн бұрын
외국의 입장에서 보면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주장이 오히려 트로츠키의 국제공산주의 운동보다 안전하게 판단할 수 잇었을텐데, 대숙청 이후에 서구에서 소련에 대해 철의 장막을 쳐서 고립시키는 것은 온당치 않은 처사로 보입니다. 즉, 스탈린은 혁명의 수출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보면 한국에서 6.25전쟁도 처음엔 머뭇거리며 승인을 하지 않다가 결정한 것은 혁명의 수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중국과 미국을 이간질하기 위한 전략일 뿐이었다..고 하는 주장이 맞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소련에 대한 서구의 경제제재조치(철의장막)는 그의미를 새겨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김화순-p7w
@김화순-p7w 3 күн бұрын
레닌의 편지를 읽어보면 레닌도 후계자를 정하는데 고민을 하고잇다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즉, 스탈린은 이렇고 트로츠키는 이렇고 하니.. 당 또는 정치국에서들 의논하여 정하시오! 라는 내용 같이 보입니다.
@김화순-p7w
@김화순-p7w 3 күн бұрын
트로츠키의 약점이라는 유대인 정체성은 어폐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시월혁명은 유대인의 혁명이며 소련은 유대인이 건국한 것이란 말이죠. 예로서 군대 요직은 모두 유대인이 잡고 있었고,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의 멤버 24명중에 23인이 유대인이었다는 점입니다. 24명중 단 한사람 스탈린만 유대인이 아니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인 혈통은 당시로선 오히려 장점이 되는 거죠.
@윤종구-o1k
@윤종구-o1k 3 күн бұрын
총서기 혹은 서기장이 처음 부터 막강했던건 아닙니다. 총서기의 가장 큰 임무는 이름 그대로 회의록을 작성하고 그 결과를 실행 기관에 전파하여 집행시키는 것이죠. 중앙위원회를 보좌하는 비서의 기능이었습니다. 내전 기간중 중앙위원회는 정상적으로 소집될수 없었고 레닌의 결정하면 이것이 중앙위원회의 결정으로 문서화되어 서기장이 배포하였습니다. 그러다 1919년 3월 유명한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레닌의 제안으로 5인으로 구성된 정치국이 설치되고 당조직이 정비됩니다. 5인의 정치국에서 스탈린이 회의 결과를 문서화하는 서기직을 맡게 되는데 이는 스탈린이 가장 연소하여 실무를 담당하기 적합하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절대적 권위의 레닌이 쓰러지자 서기의 권위가 막강해 집니다. 중앙위원회든 정치국 회의든 거기서 무슨 토론이 있었든지 간에 서기장이 발행한 문건이 아니면 공식 문건이 안되는 거에요. 트로츠키가 회의에서 어떤 반대 의견을 내도 스탈린은 그걸 회의록에서 누락 혹은 편집할수 있었고 이에 반하여 트로츠키등이 독자적인 문서를 만들어 돌리려하면 그건 불법 문서및 해당 행위가 되는거지요. 단시간에 권력이 서기장 스탈린에 쏠리게 되고 레닌의 정신이 돌아 왔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소련- 공산주의 시스템은 말 그대로 소비에트 - 평의회 체제 입니다. 어떤 정부나 심지어 기업체에도 당위원회가 죄고 의사 결정 기관이지요.회의를 주관하는 서기가 1인자가 될수밖에 없습니다. 레닌도 처음부터 약간 우려는 했지만 이렇게 까지 될줄은 몰랐을 겁니다. 중국의 경우는 다른게 모택동의 권위가 레닌처럼 절대적이고 훨씬 오래 살았기 때문에 당총서기는 말 그대로 서기 역할 밖에는 못했습니다. 총서기 등소평은 당주석 모택동의 지시를 받아 여러 회의를 열고 심부름을 했습니다. 문혁 전 총서기 등소평의 당내 서열은 7-8위 정도 였어요. 총리 주은래 보다도 한참 밑이었습니다.
@이창원-q5t
@이창원-q5t 4 күн бұрын
이것들은 공업화해야할데 농노가 노동계급이였으니 농노를 해방시켜 공장노동자노 만들고싶었던거지 돈이되니까 유태인 자본과 노동자 가 이들의 돈벌이 수단이 된..
@팀킬-w1q
@팀킬-w1q 4 күн бұрын
고구려가 육로로 남조에 말을 보냈으면 북위가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pocket_math
@pocket_math 4 күн бұрын
너무 어렵다
@AgeOfAndrei
@AgeOfAndrei 4 күн бұрын
독소 전쟁의 요약 • 독재자 히틀러 : 독재자 스탈린 • 히틀러는 1933년 정권을 잡자, 레벤스라움 (영토 확장) 연설과 목표를 설립 = 유럽과 소련을 점령. • 스탈린은 두 행동을 취함: 소련 내에 친 나치 스파이들 척결로 붉은 군대가 대숙청으로 피해 받음. 히틀러가 체임벌린 총리와 뮌헨 회담에서 히틀러가 회담 내용을 어김. 히틀러는 그의 측근 리벤트롭을 모스크바에 보내 스탈린의 측근 몰로톱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8월 23일에 맺음, 일주일 후, 폴란드는 독일군의 침공으로 2차 대전 시작. • 스탈린은 붉은 군대를 보내 폴란드와 1940년 핀란드를 침공. 폴란드는 분할 점령, 핀란드 침공은 대실패! 1941년 6월 22일 히틀러가 독소 불가침 조약을 어겨 소련을 침공! 스탈린은 여러 히틀러의 침공 소식들을 무시함. 대규모 독일군들이 레닌그라드, 모스크바와 우크라이나 겸 코가소스 산맥에 침공. 히틀러의 오판들: 병력 이동, 동복 무보급, 소련 시가지 전투와 공방전, 동유럽 점령하여 유대인 학살에 집중 그리고 소련의 저항. 스탈린의 계산들: 밀려오는 독일군을 최대 저지, 조르게의 일본 침공 정보, 주코프 장군의 활약 그리고 병력 개선. 체스나 장기처럼 병사들을 이상한 곳에 배치, 과잉 소모와 희생들을 마구 하다보니 엄청난 희생들이 많음. 1943년 7월 소련은 쿠르스크 전투에 승전하여, 베를린으로 갈 길을 확보함, 이 틈에 소련은 독일 침공 복수로 재빨리 동진함.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처칠, 루스벨트 대통령과 스탈린이 회담을 펼침. 그 중, 스탈린이 동유럽에 점령을 차지하기로 어쩔 수 없이 동의함. 1945년 4월 30일 소련 대군은 베를린에 포위하여 일주일 동안 공방전을 펼침. 히틀러는 소련 대군의 포위망을 직감하고 있는 남녀노소들을 끌어모아 저항을 지시함, 히틀러는 벙커에서 에바와 동반 자살을 택함. 결국, 소련군은 베를린 의회당을 소련기를 꽂고 승전 퍼레이드, 독일은 5월 1일에 무조건 항복함.
@ISRAELSUPPOTERSKOREAN
@ISRAELSUPPOTERSKOREAN 6 күн бұрын
이런 좋은 영상을 이제야 보았습니다^^ 감사드리며 더 많은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civil_travel
@civil_travel 5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ISRAELSUPPOTERSKOREAN
@ISRAELSUPPOTERSKOREAN 6 күн бұрын
시리아 전쟁 사망자 100만명! 시리아 난민 630만명! 이슬람 시리아를 해방시켜준 가장 큰 공로자는 🇮🇱 이스라엘 입니다! 이제 자신들의 조국 시리아로 돌아오는 모든 시리아 국민들은, 이스라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투르키에는? 쿠르디스탄의 독립국가 건국을 허용해야 합니다! 쿠르드족에 대한 박해와 학살을 자행하는 투르키에의 전쟁범죄들.... 투르키에는 그 뿌리가 중국 북서쪽이거늘, 어찌하여 중동까지 침입하여, 원주민 쿠르드족을 학살하고 땅을 빼앗고 군림하는지? 투르키에는 또한 아르메니아를 짓밟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범죄를 반성조차도 안합니다! 중동의 일본이 바로 투르키에 입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에게 친선과 복종을 맹세해야 합니다! 물론 골란고원은 고유한 이스라엘의 영원한 영토입니다! 시리아는 자신들이 일으킨 1967년 전쟁으로 빼았겼다고 주장하나, 그 골란고원은 수천년전부터 이스라엘 민족들이 활동하던 땅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골란고원은? 우리 대한민국의 고구려! 그 만주수복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을 절대 사수할것이며, 이스라엘의 水資源 대부분이 골란고원입니다! 시리아가 만약 골란고원을 핑계삼아 분쟁이나 전쟁을 일으킨다면? 시리아는 이번에는 진짜로 이스라엘과 미국에게 멸망당할 수 있습니다! 시리아의 유일한 살길은? 적의적은 나의 편이라는 원칙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충성 맹세한후 적극 협력하여, 시아파로 시리아를 삼키려 독재자 아사드를 도왔던, 페르시아 시아파들의 침략으로부터 시리아를 지켜야 합니다! 페르시아 이란은, 곧 아사드의 패잔병들을 모아, 2025년도쯤 대대적으로 시리아를 재침략할것입니다! 시리아를 잃은 이란 정권의 위기로, 시아파 신정독재 정권을 지지하던 이란 국민들과, 이란 혁명수비대마저 자신들의 신정독재자, 아야툴라 하메이니에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를 외부의 적을 만들어 돌리기 위해, 이란의 독재정권은 시리아를 재침략할것입니다! 시아파 이슬람으로 세계정복을 노리고 끊임없이 테러와 전쟁을 일으킨 페르시아 이란은? 내부 불만을 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킵니다! 감히, 이스라엘과 미국, 유럽을 적으로 돌린 이란은, 북괴와 핵개발 공범 입니다! 그리하여 이란의 경제는 파탄이요, 이란의 패배감의 절망은 패닉상태로 외부의 적! 먹잇감을 찾고 있습니다! 이란의 시리아 재침략에는, 아사드의 시리아군 잔당들! 시아파 헤즈볼라잔당,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시아파 예멘 후티 반란군등.... 이란 혁명수비대와 시아파 이슬람 테러집단들의 총공격이 있을것입니다! 또한, 푸틴의 러시아는 해군기지와 공군기지를 되찾기 위해, 이란을 적극 지지할것입니다! 이번에 승리한 수니파 시리아 반군은?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인 내부의 분열을 잘 치유하고, 이스라엘과 미국에 충성 맹세후 보호를 요청해야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조만간 내부 세력중 하나인, ISIS와 알카에다의 대대적인 내부 숙청이 시급할것입니다! 물론, 이 진실을 이란의 장학생이자, 이란의 대변인 노릇에 충성(?)하는, 이스라엘을 악마화 하려 수많은 방송들에 출몰하는, 로마 카톨릭 계열의 대학 교수들이라는자는, 앞으로도 입도 뻥긋하지 않을것입니다! 오늘 처음 뵈오나, 진실된 영상 감사드리며, 10만 유트버 되시길 응원하며, 구독과 좋아요^^누르고 갑니다^^ 앞으로도 진실된 영상 기대합니다^^
@sunnypeter3050
@sunnypeter3050 6 күн бұрын
스탈린은 박정희의 위대한 스승이지요. 물론 그 발끝도 못 좇아가지만!
@sunnypeter3050
@sunnypeter3050 6 күн бұрын
박정희보다 몇십 배는 뛰어난 사람임.스탈린 시대가 없었더라면, 러시아는 후진 동구권 국가로서, 독일의 식민지로 전락되었을 것임
@sunnypeter3050
@sunnypeter3050 6 күн бұрын
전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이 소련을 멸살코자 덤벼드는 상황에서... 국가를 살리고자 10여년만에 급속한 공업화, 문화발전, 국가보전을 이룬 역사상 세계최고의 지도자임.
@sunnypeter3050
@sunnypeter3050 6 күн бұрын
현실론자 스탈린이야말로 위대한 지도자
@user-qr2wu8vn5f
@user-qr2wu8vn5f 7 күн бұрын
트로츠키는 살인마 관상이 아니라서 탈락
@식빵집사-n4c
@식빵집사-n4c 7 күн бұрын
아사드가 알라위 파로서 소수파 였기 때문에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기독교와 손잡았다고 하던데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civil_travel
@civil_travel 7 күн бұрын
영상을 보세요..
@진재종-q1q
@진재종-q1q 7 күн бұрын
스탈린이 만들어 넘겨준 나라를 후손들이 말아 먹었다고 봐야 할 듯. 경제적 번영과 유럽에서 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혁신하지 못한 후르시초프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를 거치면 쫄망의 길을 갔지여
@진재종-q1q
@진재종-q1q 7 күн бұрын
독재자이기도 하지만 2차대전의 승전의 최고의 영웅이지요. 2차대전의 떨거지 영국 프랑스가 승리자가 아니고 소련이 최고 공헌 최고의 승자지요 미국은 소련의 1/10 정도였고!! 경제적으로도 훌륭한 성괴를 거두었고!
@성태춘-p3r
@성태춘-p3r 8 күн бұрын
이 인간 논조가 좌익 성향이 드러나는군
@그대와단둘이서
@그대와단둘이서 8 күн бұрын
트로츠키의 순수성, 스탈린의 음흉함.
@AgeOfAndrei
@AgeOfAndrei 9 күн бұрын
솔직히 레닌은 유언장을 쓸 때, 엄청 고민 했을 지도... • 스탈린: 거친 행동과 폭언적인 말투, 1900년 대 부터 레닌 곁에서 측근 역할, 은행 마차 털이, 밑바닥부터 서기장 승진 그리고 조지아 출생 콤플렉스. • 트롯츠키: 붉은 군대 창업자, 1917년 이전은 멘셰비키 파였으나 1917년 러시아 혁명 겸 내전이 터져 레닌의 볼셰비키 파로 가입. 연설 솜씨는 뛰어나, 그의 오만함과 잘난 척하는 태도 때문에 인기가 없음.
@user-ht2gd3lu8d
@user-ht2gd3lu8d 9 күн бұрын
트로츠키.........그는........대체.........
@seeker-rj8qi
@seeker-rj8qi 9 күн бұрын
1) From the Soviet official statistics, the average annual GNP growth rate between 1928 and 1940 was about 14%. However, the statistics in the Soviet era are not reliable because they were often falsified both at the central level for the purpose of propaganda and at the local level for personal advancement, avoiding a reprimand when not meeting the quota, corruption, systematic and/or human errors, etc. According to some more objective and reliable studies, the average annual GNP growth rate between 1928 and 1940 was estimated about 5.8% which I find far more realistic than 14%. A more recent study suggests that the growth rate would be less than 4%. The heavy industry during that time made a huge progress, but the other areas of the economy were either stagnant or developing at a very slow pace because the lion share of the available resource was allocated to the heavy industry. Also, the Soviet Union made huge investment in the military such that the annual growth rate of military spending during that time was 26%, which negatively impacted the future growth of the economy. International loans were not available to the Soviet Union because 1) they decided not to honor and pay the debt accumulated under the previous Russian regimes, 2) it was the time of Great Depression such that other advanced economies were suffering, 3) the advanced capitalist countries were reluctant to help the socialist state and so forth. Combined with other factors, therefore, the overall growth rate of the economy could not be as high. Nevertheless, it is undoubtedly true that Stalin managed to develop heavy industry greatly and sufficiently enough to win over the Nazis and compete with the US militarily. 2) The emphasis on heavy industry required reinvesting a huge portion of the surplus value in heavy industry. That meant the inadequate supply of food, housing, consumption goods, etc. Therefore, the welfare of the people was stagnant or improving sluggishly at best. It was even deteriorating in many rural areas in the beginning period. Furthermore, the Soviet exported grains in addition to other natural resources to finance importing machinery and technologies. So, they often over-requisitioned grains, which was one of the causes of the famine. The 5 year plans were not thoroughly prepared and implemented. The government basically set quotas for various industries and higher quotas for heavy industry. But it was often done without procuring and delivering adequate amounts of resources. So, the local managers started falsifying the reports to keep or advance their personal interests. And it helped to cause or aggravate the famine. These problems got amplified because the whole process was centrally planned and complemented by those who were not knowledgeable about the local situations. Stalin adopted Trotsky’s plan of industrialization and collectivization, but a critical difference was that Trotsky’s plan was based on economic “decentralization” while Stalin on central control.
@이재홍-k1n
@이재홍-k1n 10 күн бұрын
지구사 최고의 경제대통령 스탈린.러시아를 진정한 근대국가로 만든 경제천재
@civil_travel
@civil_travel 9 күн бұрын
긍정과 부정의 역사평가가 있는 것이지요.
@이재홍-k1n
@이재홍-k1n 9 күн бұрын
@civil_travel 독재자와 경제천재 두가지 양면이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죠
@페드로마르티네스-i6l
@페드로마르티네스-i6l 9 күн бұрын
미국과 더불어 2차 대전 승리에 가장 큰 공을 세운 나라
@taebumkim3997
@taebumkim3997 10 күн бұрын
스탈린 없이 소련이 중공업 국가 전환 독소전 승리가 가능했을까요?
@civil_travel
@civil_travel 9 күн бұрын
결과적으로는 그렇습니다.
@jinmo2821
@jinmo2821 10 күн бұрын
러시아 혁명 성공 시킨 사람은 레닌과 트로츠키다. 레닌은 정신적인 리더였고 트로츠키는 필드에서 백군에 대한 군사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civil_travel
@civil_travel 9 күн бұрын
네, 그러네요.
@soo-hongmin9060
@soo-hongmin9060 10 күн бұрын
감사 드립니다,,,,😊
@civil_travel
@civil_travel 9 күн бұрын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anthraxchoe5274
@anthraxchoe5274 10 күн бұрын
트로츠키가 권력을 잡았더라면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실험이 있었을 것이고 그 유산을 통해 다양한 수정주의들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civil_travel
@civil_travel 9 күн бұрын
네, 감사합니다.
@이승주-v7p
@이승주-v7p 11 күн бұрын
러시아 부분 재밌게 보구 있습니다~ 재생목록 순서 꺼꿀로 되어있는데 순서대로 배치 가능할까요??
@civil_travel
@civil_travel 11 күн бұрын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cahmahkkang63
@cahmahkkang63 11 күн бұрын
트로츠키를 이용해서 유대인들이 소련을 접수할려는걸 스탈린이 모를리가 없지
@seeker-rj8qi
@seeker-rj8qi 11 күн бұрын
Although Marx used the term, permanent revolution, Trotsky’s theory of permanent revolution is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Marx. 1) Marx thought a society would evolve through stages (i.e., the theory of stagism or for instance, feudalism to capitalism to socialism). However, Trotsky observed the followings: 1) different sectors of an economy were developing at different rates (i.e., a specific industry develops into an advanced stage, and the other industries are underdeveloped at the same time) and were integrated or combined into a single economy, 2) the pattern of uneven development varied across different economies/countries and 3) the world economy was integrated in a way that developing or underdeveloped economies/ countries would not get to the stage of advanced capitalism. Therefore, the theory of stagism may not apply universally, and each country has its own unique way to achieve socialism because each economy or country has a unique path of the uneven and combined development. That is, proletariat revolution is not restricted by the Marxian prerequisites such as advanced capitalism and goes on continuously and “permanently“ until socialism/communism is achieved. That is the core concept of Trotsky’s permanent revolution. It was a "major revision“ of the mainstream Marxism at the time. Simply put, it laid down a theoretical foundation that the revolution toward socialism could be successfully realized by proletariat guiding peasantry in an underdeveloped country like Russia with a bourgeois class too weak to carry out a bourgeois revolution to achieve capitalism and democracy. 2) The natural manifestation of Trotsky’s permanent revolution in the context of the Marxian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is permanent proletarian international revolution. However, once Trotsky realized that all the socialist revolutions in other countries had failed, he argued for rapid industrialization in Russia first and foremost. At the time of Bukharin putting forth socialism in one country, Bukharin, a proponent of the New Economic Policy, argued that industrialization should come at a slow pace while reforming the agricultural sector by allowing capitalism to a degree. Stalin, still in the midst of power struggle, sided with Bukharin against Trotsky and Zinoviev who argued for planned industrialization. After completely consolidating power and expelling Trotsky out of the party, Stalin almost immediately adopted and implemented the nearly identical industrialization policies Trotsky argued for. (Just in case, socialism in one country did not exclude the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The internationalism was just postponed until successfully building socialism in Russia first since all the socialist revolutions elsewhere had failed.) 3) The democracy of the Bolsheviks meant democratic centralism in the party. And it was not a true democracy. Not even proletariat democracy as opposed to bourgeois democracy. The Bolsheviks ruthlessly suppressed anyone including proletariat and peasantry who opposed them. One of the reasons that the mainstream western European socialists believing in democracy severed ties with the Bolsheviks was that they thought the revolution led by a small group of vanguards would inevitably translate into an authoritarian political system. And it did and eventually turned into the absolute dictatorship of Stalin. 4) It was Trotsky, not Stalin, who made the greatest contribution to the October Revolution along with Lenin. Trotsky was the one who took down the provisional government and got Petrograd under control of the Bolsheviks, which was critical for the success of the revolution. Subsequently building and leading the Red Army to lead the Bolsheviks to victory in the Russian Civil War, Trotsky’s contribution arguably matched or even surpassed that of Lenin. In addition to his capabilities, that was the main reason that Trotsky was considered by many to succeed Lenin even though he joined the Bolsheviks late.
@freeyourmind5430
@freeyourmind5430 4 күн бұрын
!
@교양-l4l
@교양-l4l 12 күн бұрын
공산주의야말로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하는데 실제로는 가장 비민주적이었던 게 역사의 진실
@civil_travel
@civil_travel 9 күн бұрын
네, 그렇죠...
@교양-l4l
@교양-l4l 12 күн бұрын
그루지아의 인간백정을 드디어 다루시는군요
@thomaslim8720
@thomaslim8720 11 күн бұрын
비슷한 살상숫자로는 히틀러 모택동 폴포트가 있습니다. 단순 정치숙청으로는 단일살인으로 제일 꼭대기에 있겟죠
@미국심마니이시화
@미국심마니이시화 12 күн бұрын
세계관에서는 스탈린이 소련 지도자가 되는게 더 좋았나? 트로츠키는 더 똑똑해서 그가 소련 지도자였으면 나폴레옹같이 공산혁명을 더 더욱 세계에 퍼트렸을것같애요 나폴레옹은 시민혁명을 이용했듯이
@civil_travel
@civil_travel 12 күн бұрын
스탈린의 무자비한 대숙청이 없었을지도...지나간 역사에 대한 상상은 얼마든지 해도 되죠.
@일엽생
@일엽생 12 күн бұрын
2월은 혁명이지만 10월은 쿠데타로 보는게 맞지않나
@civil_travel
@civil_travel 12 күн бұрын
그렇게 보는 것도 맞겠죠. 아마 마땅한 번역어가 없을 듯...
@thomaslim8720
@thomaslim8720 11 күн бұрын
똥이나 된장이냐의 문제
@고양이행복한-m3g
@고양이행복한-m3g 9 күн бұрын
​@@civil_travel"혁명","쿠데타"라는 말이 있는데,"마땅한 번역어"가 없어서, 라는 게 말이 안 되지요. 체제의 근본적 변혁,민중들의 지지 여부,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10월이야말로 혁명이라 할 수 있겠지요.
@han1231
@han1231 8 күн бұрын
10월은 전형적인 쿠데타임. 군대 끌고가서 강제로 몰아낸거임. 당시 집권 과정을 보면 전형적인 현대 쿠데타의 교과서임
@juneankit
@juneankit 13 күн бұрын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이 유대인이라면 시온주의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 시온의정서엔 맑스를 높이 평가했으니까요. 궁금합니다. 진짜.
@civil_travel
@civil_travel 13 күн бұрын
레닌은 외할아버지가 유대인이었으나 정교회로 개종했습니다...레닌은 서른이 될때까지 자신이 유대인 혈통인지 알지 못했고 따라서 유대인의 정체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트로츠키는 유대인 아버지를 둔 것도 맞지만 그도 유대인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종교는 몰아내려 했던 마르크스의 충실한 추종자였으니까요...스탈린은 조지아 태생의 그루지아인입니다...
@juneankit
@juneankit 9 күн бұрын
@@civil_travel 아 감사합니다. 님의 컨텐츠는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짱퀴벌레유사인류
@짱퀴벌레유사인류 13 күн бұрын
역설적이게도 스탈린이 권력을 잡게된걸 다행이라 생각. 스탈린이 권력을 잡았기에 NWO를 그나마 늦추었지 만약 트로츠키가 권력을 잡았더라면 대한민국은 이미 공산화 되었을거고 지금쯤 인류 전체는 빅브라더(유대금융자본) 아래에서 노예로 살아가고 있을듯.
@seeker-rj8qi
@seeker-rj8qi 13 күн бұрын
There is a theory that Stalin wanted Lenin to be embalmed and preserved to promote his own interest in the power struggle after the death of Lenin. It is true that Stalin emphasized that he was the true Leninist and attacked Trotsky during the power struggle for not being so. However, the decision to preserve Lenin's body was made a long before the height of power struggle between Stalin and Trotsky. It is also true that there were not many who wanted preservation of Lenin's body, but there was another powerful backer of preserving Lenin's body, Dzerzhinsky, in addition to Stalin. Although the cult of personality around Lenin is generally thought to have started posthumously, it actually started 1918 at the latest, and Lenin disapproved of it yet did not make a lot of efforts to stop it. Hence, preserving and displaying Lenin’s body were for the purpose of socialist propaganda taking advantage of the personality cult and socialist heroism around Lenin. I believe that it is a more satisfactory explanation.
@김원길-m1t
@김원길-m1t 13 күн бұрын
트로쯔끼는 유대인이다 그래서 권력 못잡은거야
@짱퀴벌레유사인류
@짱퀴벌레유사인류 13 күн бұрын
스탈린도 유대인이야 스탈린의 본명이 "쥬가슈빌리" 유대인의 이름
@hajokjulius5226
@hajokjulius5226 13 күн бұрын
제정러시아를 연속되는 시위와 혁명으로 무너뜨린 러시아,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으로 바뀌었지요? 그런데 왜 우크라를 침공한 러시아,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우크라를 침공했는데? 젊은 러시아 애들이 죽어나가는데 왜 러시아 국민들은 시위한번 안하고 집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일까? 탄압과 감시가 심해서?
@짱퀴벌레유사인류
@짱퀴벌레유사인류 13 күн бұрын
러우전은 미러의 대리전 그리고 러시아인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침공 지지
@civil_travel
@civil_travel 13 күн бұрын
러시아가 보기에 우크라나와는 분리만 되었을 뿐 하나의 나라처럼 가까운 사이입니다...그런데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했으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손봐줄 필요가 있었습니다...푸틴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작은집다락방
@작은집다락방 13 күн бұрын
이건 사상교육도 보란듯이~~??
@civil_travel
@civil_travel 13 күн бұрын
100년전의 역사이야기일 뿐입니다...
@chatmrl
@chatmrl 4 күн бұрын
@@civil_travel 피곤하시겠습니다 😅
@VitorJKhan
@VitorJKhan 13 күн бұрын
트로츠키는 조국같이 행동보다는 주뎅이만 너무 발달한 수다쟁이
@푸른소나무한솔
@푸른소나무한솔 14 күн бұрын
유익하고 잢진 문화유산 배울수 있어 감명깊습니다~^^
@civil_travel
@civil_travel 13 күн бұрын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