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간 옛이야기 듣듯 정리하는 '고려 역사 5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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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om Writer's Knowledge Dictionary

Ssom Writer's Knowledge Dictionary

Күн бұрын

Пікірлер: 2 900
@Minerva908
@Minerva908 2 жыл бұрын
광종이 다 교통정리 해두고 뒤에 성군이 나오는건 역사의 진리인듯. 항상 불도저 군주가 나온 다음엔 그 자식들 중에 똑똑한 애들이 국가를 발전으로 이끌더라. 소수림왕-광개토대왕-장수왕, 광종-성종, 태종-세종
@CurryWurst19
@CurryWurst19 2 жыл бұрын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더럽혀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이걸 모두 해결해두면 후임이 일하기 편하죠. 혹은 어쩌면 선대가 휘두르던 위압감에 대한 기억이 후대에의 훌륭한 협조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네요
@khkhlee404
@khkhlee404 2 жыл бұрын
ㄹㅇ 나라의 틀을 잡은 후엔 성군이 많이 나오는 듯 백제 고이왕 근초고왕, 신라 법흥왕 진흥왕, 고려 광종 성종, 조선 태종 세종 세조 성종, 고구려 소수림왕 광개토대왕, 발해 문왕 선왕
@HBJR87
@HBJR87 2 жыл бұрын
그런데 이 나라는 왜 이럼? ㅋㅋㅋ 이렇게 강하고 도덕이 넘치던 나라가 왜이리 자기네 나라 것도 아닌데 우기는 나라가 됬고(중국,일본) 정치인들끼리 싸우는 나라가 됬음 경제 빼면 후진국 인 이런 나라를 외국인들이 왜 좋아하는 지 이해가 안감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광개토대왕-장수왕라인은 교통정리후 성군이 아닌거 같아요. 광개토가 일찍 죽는 바람에(이거 말고도 많은 이유가 있지만) 장수왕 초반에 국론 분열되고 내전했던걸 보면
@dlwlrma_solo
@dlwlrma_solo 2 жыл бұрын
@@로갓-i8w 소수림왕-광개토대왕 이죠..
@ttuii12345
@ttuii12345 2 жыл бұрын
고려조 사극 드라마 시청순서 태조왕건 -> 제국의 아침 -> 고려거란전쟁&천추태후 -> 무인시대 -> 무신 -> 신돈 -> 정도전&용의눈물(초반)
@용용해피-i1g
@용용해피-i1g 2 жыл бұрын
번외로 보보경심 ㅎㅎㅎㅎ
@grandeurzz
@grandeurzz 2 жыл бұрын
기황후 무시하노 이기
@ttuii12345
@ttuii12345 2 жыл бұрын
@@grandeurzz 기황후는 아무래도 몽고 배경이라 제외했습니다. 신돈에도 기황후 나오긴 합니다.
@Praise_kim
@Praise_kim 2 жыл бұрын
육룡이 나르샤도 좋은데...
@노르웨이의숲-s5z
@노르웨이의숲-s5z 2 жыл бұрын
내가본 보보경심 기황후 육룡이나르샤는 왜없노
@24해파니스
@24해파니스 Жыл бұрын
고려라는 나라는 멸망한지 오래되었지만 외국에선 여전히 우리를 고려라고 부르는게 참 재밌네요
@suninjang247
@suninjang247 4 ай бұрын
서구 문화에서는 왕조가 바뀐다고해서 국체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카페 발루아 부르봉 바뀌도 프랑스는 프랑스고 잉글랜드도 마찬가지죠 서구에서는 국가가 있고 왕조가 있는것이며 동북아지역은 왕조가 곧 국가인 것이죠
@lenda-3-i2md
@lenda-3-i2md 2 ай бұрын
고려가 극동지역 역사상 가장넓고 많은교류를 하던나라라 그렇습니다 이러한 교류의 영향은 통일신라의 인프라를 이어받아 발전시킨것이고요
@UltimateTruthChannel
@UltimateTruthChannel 2 ай бұрын
서양에서 사람들이 아직도 영국 (United Kingdom)을 잉글랜드 (England)라고 부르고 미합중국 (United States)을 아메리카 (America)라고 부르는 것과 똑 같습니다. 정치체제와 집권세력, 공식국가명이 바뀌어도 일반인은 그냥 옛날 쓰던 이름으로 계속 부르는게 사람 습성입니다. 특히나 잘 모르는 먼 나라의 경우. 유럽은 원나라 시대에도 중국을 카타이 (Cathay) (기탄) (거란)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미 거란은 무너지고 몽고가 원을 세운 후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중국 일반인들이 계속해서 조선을 고려 (까올리)라고 불렀기 때문에 서양애들도 조선을 그대로 고려라고 부른겁니다. 심지어는 중국인 상당수는 아직도 한국을 부를때 한꿔 (한국)라고 부르지 않고 까올리 (고려)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욕할때 까올리 빵즈 (고려 새끼)라고 부르죠. 이는 일본애들이 한국을 아직도 조센 (조선)이라고 부르며 욕하는거과 마찬가지이며, 한국인이 중국을 짱꼴라 (진나라 청나라) 라고 욕하는것과 마찬가지인데, 그러니 무식한건 동서고금 전혀 다를게 없습니다.
@suninjang247
@suninjang247 2 ай бұрын
@@UltimateTruthChannel 너무나도 잘못된 사례
@suninjang247
@suninjang247 2 ай бұрын
@@UltimateTruthChannel UK=/=잉글랜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과거) 등 정체성이 다른 국가를 동군연합으로 묶어 연합왕국이라 부른겁니다. 미합중국을 영어로 하면 USA(United States of America) 입니다 US라 하든 아메리카라 하든 편의상 부르는 이칭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왕조가 바뀌면 대부분 국호도 바뀌죠 공식 명칭이 바뀝니다 민간에서 편의상 또는 비하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된다고 해서 국호가 안바뀌는게 아니죠 중국이나 일본에게 한국은 그냥 한국입니다 조선이나 고려가 아니라
@죠죠-g9l
@죠죠-g9l 2 жыл бұрын
외워야 한다는 압박 없이 들으니까 왕꿀잼
@wincup
@wincup Жыл бұрын
지방 호족들이 세던 시대고 사찰들도 막강한 자체 승군등 (정규군보다 더 센 적도 많음)이 있던 시대라, 사실 진짜 흥미로운 드라마나 영화소재가 많을 수 있는 시대인데 너무 조선시대처럼 묘사해서 아쉬움. 전혀 다른 감성과 마인드로 묘사할 수 있으니 앞으로 그렇게 좀 나와주면 좋겠네요.
@쓰읍-h7s
@쓰읍-h7s Жыл бұрын
사료가 부족함
@wincup
@wincup Жыл бұрын
@@쓰읍-h7s 무슨말씀인지 알지만, 적어도 고려사에서는 다룰 수 있다고 봅니다. 문화 미시사는 부족해도 삼국시대도 다루는 마당에 고려시대를 못다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네요.
@kidandLaPuta
@kidandLaPuta Жыл бұрын
ㄹㅇ 중세시대 그자체인데 너무 궁 위주로만 나옴
@remido9321
@remido9321 Жыл бұрын
@@쓰읍-h7s 지금 님이 보는 조선 배경 역사도 고작 실록에 적힌 한 줄로 상상의 나래를 편 영화도 많음. 사료 부족이 아니라 그냥 작가 이해도와 수준이 못 미치는거지.
@로갓-i8w
@로갓-i8w Жыл бұрын
@@remido9321 조선은 야사가 많이 남아서 야사를 주제로 많이 만든것도 없지않아 있음. 정사만 보면 딱딱해서...
@최명희-y6s
@최명희-y6s Жыл бұрын
깔끔한 고려역사 정리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집행인-h3t
@집행인-h3t 2 жыл бұрын
우리가 아는 고려의 역사는 조그마한 한부분 뿐입니다. 몇분동안 많은 내용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이름-m5v1v
@성이름-m5v1v 2 жыл бұрын
고려땅은 지금의 심양이상입니다.......잘알고 작성합시다?
@kisangsong
@kisangsong 2 жыл бұрын
@@성이름-m5v1v 뭘 말하고 싶은건지? 어그로인거 뻔히 보이긴하는대 심양이 어딘가 했네 말이나 똑바로해요 말의 주재가 뭔지 모르겠네 뭐 고려가 중국 역사라 말하고 싶은건지 고려가 땅이 심양보다 크다는건지 한국말 쓰려거든 말이나 똑바로 해요 조선족인가?
@양멍멍이-u3u
@양멍멍이-u3u Жыл бұрын
@@kisangsong 중국역사 한국역사가 따로 있나요??민족이란 개념이 들어선건 한참후 같은데 한반도의 역사로 보는게 맞지 않을까요? 한국역사는 1945년 이후~
@user-pt6uf1kx2g
@user-pt6uf1kx2g Жыл бұрын
@@양멍멍이-u3u 그건 서양사 기준이구요. 서양사도 백년전쟁 이후부터 민족개념이 실체화되기 시작합니다. 한국사로 치면 통일신라시대부터 민족개념이 정립되기 시작되서 이비,패좌-최광수-이언년의 난 이후에는 단일적 민족의식이 완전히 확립된것으로 보입니다
@lenda-3-i2md
@lenda-3-i2md Жыл бұрын
@@양멍멍이-u3u 서양식 개념으로 하루빨리 중공이 12개로 나눠지길 바랍니다
@네임-n8p
@네임-n8p Жыл бұрын
고려가 한반도의 전성기였는데 역사자료가 많이 없어 안타깝.. 장신구, 옷 엄청 화려했던 것 같은데.. 제대로 고증해서 드라마 만들면 진짜 국뽕 올라올듯..
@vivivi3865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한 5달 뒤에 고려거란전쟁 사극 나옴
@user-jc62a7v28
@user-jc62a7v28 Жыл бұрын
나 처음에 고려 드라마 봤는데 진짜 처음엔 우리역사 개조 빡세게해서 판타지로 만든줄 알았음... 너무 화려하고 예쁘고 사람들도 다 깨끗해서... 신라도 부자나라에 ㅈㄴ 화려했는데 사람들은 조선만 보고 한국역사 보잘것없다고 하는거 진짜 답답해 죽겠음
@vivivi3865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user-jc62a7v28 그마저도 당대 실제 생활상 반의 반도 제대로 구현 못한 거... 다 불타 없어져서 그렇지 걍 건축 규모부터가 조선이랑은 천지 차이였음. 심지어 조선시대 선비조차도 이렇게 말함. >>> "생각해보면 고려에서 나라를 세운 이래 물력의 풍부함은 우리 조선이 거의 미치지 못할 바이다. 석물을 세운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다[고려]를 보고 나면 다른 물[조선]은 시시하게 보인다더니 정릉의 석물을 보고 나니 길가의 소소한 석물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게 무슨 애들 장난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유만주, 흠영』
@누리곤
@누리곤 Жыл бұрын
갠적으로 고구려 고려시대때의 사극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조선시대 사극은 솔직히 너무 많이나왔구요.... 태조 이성계부터 순종 이척까지 대중매체에서 안다뤄진 왕이 1명도 없을정도로 조선시대 사극은 너무 많이 나왔음
@holidaysummer9256
@holidaysummer9256 Жыл бұрын
@@누리곤지겨워요 맨날정도전 당파쌈
@h지영
@h지영 2 жыл бұрын
역사 배울때마다 기억에 남는건,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위기때마다 지배층들은 도망가도 민중들이 나라 지키고 살려냈다는얘기....이번 고려편에서도 여지없네요😅
@user-gq4lg5ox3b
@user-gq4lg5ox3b 2 жыл бұрын
역사는 반복됩니다 지금 한국이 비슷하지요ㅎㅎ
@hamiltongold8798
@hamiltongold8798 2 жыл бұрын
625도 마친가지 앞으로도 그럴것임 성남비행장 김포공항 도 그럴 용도는 재명이가 똘똘한 쫄이없어 아니겠지
@yi01471
@yi01471 2 жыл бұрын
의병장이나 관군 장군들은 거의 전부 양반이었는데요?
@joyfulkim2653
@joyfulkim2653 2 жыл бұрын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SovietPikachu1945
@SovietPikachu1945 2 жыл бұрын
왕이 잡히면 패전이니깐 기회를 노리는 것이고, 충분히 수비나 수성을 할 수 있는데 왕이 떠나서 졌다는 의견은 당시 현장지휘관이 적군과 아군의 형세를 비교해 내린 판단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꼴입니다. 설령 수비가 성공적이래도 왕이 고립되면 명령체계가 단절되는데다 군대 목표는 왕 구출 하나로 모이게 되고 이는 곧 적군에게 전략이 노출됬음을 의미하죠. 시대나 환경에 따라 직접 왕이 야전지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안전한 곳에서 군사적 판단을 지휘관에게 주는 경우도 있는데 때에 따라 장단점이 다르기에 이게 정답이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user-sunflowerr
@user-sunflowerr Жыл бұрын
최고예요 진짜 제가 본 고려 역사 설명 영상 중 단언컨대 최고예요 이런 식의 영상으로 조선을 정리해 놓으신 것도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요!❤ 사랑합니다 초면이지만
@이경재-n9m
@이경재-n9m Жыл бұрын
이때 고려는 남녀가 어느정도 평등한사회 여자가 재혼도 가능하고 재산도 남녀 차별없이 분배했으며 재혼한여성이 자식이 있으면 현남편이 동의 하면 같이 살수도 있었다!! 그리고 부모를 여자가 모실수도 있었다!! 지금하고 비슷함
@djdijesjkxkskqpuznd
@djdijesjkxkskqpuznd Жыл бұрын
조선 전기까지만해도 아니 17세기까지만해도 그랬음
@arrow-master-
@arrow-master- Жыл бұрын
그만큼 ... 전쟁으로 많이죽어서 이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바라보면 좋아만보이죠.
@jsgun6170
@jsgun6170 Жыл бұрын
​@@arrow-master- 고려는그래도 유교 공자맹자왈은 안해서 국방력은 조선전체보다 고려전기가 더쌔었슴 조선은 공자맹자가라사대하다 지랄하고자빠진 무능한나라인건 확실함
@치타는웃고있다-k9o
@치타는웃고있다-k9o Жыл бұрын
@@khbmedia 인류의 보편적이 아니라 현대의 보편적아님?
@김우-s1o
@김우-s1o Жыл бұрын
성리학, 유교사상 개쓰레기
@영태손-r4c
@영태손-r4c 2 жыл бұрын
긴 고려사를 정말 간단명료하게 정리해주시네요~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잘 보고 있고 응원합니다~~
@김시연-t2k
@김시연-t2k 2 жыл бұрын
명분없는사대주의 시작이 나라를 훔친자들이 결국 자기들의 욕망을채우기위해 만든 조선 이라는이름 후손들을 두고두고 괴롭혔네요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안핑 시(Anping City 안평성安平城), 그리고 타이욘 시(Tayoan City 대만성台灣城)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STARGATE_SGC
@STARGATE_SGC 2 жыл бұрын
@@김시연-t2k 고려시대에는 노비가 없었는 줄 아나보네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지배층이 있으면 피지배계층이 있기 마련인데요! 고려 광종의 개혁은 결코 백성들을 위한 개혁만을 한게 아니죠! 광종의 정적이 되는 권세가들을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을 한 거죠! 그 와중에 권세가들에게 불쌍하게 당한 백성들이 개혁의 수혜자가 된 것이고요!
@천리안-u5v
@천리안-u5v Жыл бұрын
한글 만든거 빼고 칭찬할거 없는여자
@offsent3782
@offsent3782 Жыл бұрын
고려사가 길게 뭐있나요? 조선보다 짧은데
@yongjj9348
@yongjj9348 2 жыл бұрын
李: 나무 밑에 자식 王: 하늘 아래 어른
@떠울-h2r
@떠울-h2r 12 күн бұрын
공부 하기전, 하고 난후에 이 영상으로 시대별로 정리하고있어요 목소리도 넘 듣기 좋아요 많이 올려주세요
@하나용이-z9x
@하나용이-z9x 2 жыл бұрын
핵심 및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대외적인 활동적인 역사를 보니 아이들이 보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정신교육대-p7u
@정신교육대-p7u Жыл бұрын
최신순 내글 참조
@okgreen22
@okgreen22 2 жыл бұрын
???? 이거 16분짜리 영상이였어요? 한 5분 지난거같았는데 ㅋㅋㅋㅋㅋ 정말 혼까지 퓩 빠져서 듣게됐네요 정리도 잘하시고 발성(?)도 좋으시고 나도 이렇게 설명 잘했으믄 좋것당!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사요는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을 치고 들어가 보십시오 원문공부하세여
@로디-m5w
@로디-m5w 11 ай бұрын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앞두고 밥 먹으면서 가볍게 볼려고 켰는데 .. 고려사가 정리되어버림 ㅋ
@이상혁-w4k
@이상혁-w4k 2 жыл бұрын
이야..재밌다 한국사 준비중인데 정말 알차게 시청했습니다
@Epic_Ssom_History
@Epic_Ssom_History 2 жыл бұрын
상혁님 감사합니다:D
@절대복지
@절대복지 5 ай бұрын
이거 보고 공부 하셨으면 성종 목종 현종부분은 다 틀리시었겠네요
@박종민-e7z
@박종민-e7z 2 ай бұрын
엉터리 역사 보지 말고 시험보려면 수험서로 친일왜곡사관이라도 확실히 공부하시구요. 제대로 공부하려면 원문사서를 읽어보세요.
@이상혁-w4k
@이상혁-w4k 2 ай бұрын
@@박종민-e7z 원문사게 돈좀줘요
@이상혁-w4k
@이상혁-w4k 2 ай бұрын
@@박종민-e7z 어디서 어디까지 엉터리역사인지 설명해주세요
@intros5693
@intros5693 2 жыл бұрын
고려 철령위가 요동에있었는데 금나라 서쪽으로 이동할때 우리나라 고구려 회복했어요 철령위에서 동쪽 선출령 동북9성이잖아요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한국고전종합에 가시면 있습니다 모든 실록
@Epic_Ssom_History
@Epic_Ssom_History 2 жыл бұрын
👉3:28 오타 정정합니다! 성종11년(992)에 설치한 고려시대 국립대학 [국자감] 고려의 전성기를 연 성군, 제8대 현종의 시대는 구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방대한 양을 압축한 영상이라 구체적인 인과관계는 생략돼있다는 점 참고 바랍니다. 💚쏨작가 신간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한국사] - 교보문고: bit.ly/3Vu27hq - 예스24: bit.ly/3VJX8dP - 알라딘: bit.ly/4epkuwq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 - 교보문고 : bit.ly/45MEx3l - 예스24 : bit.ly/3RgQd9Z - 알라딘 : bit.ly/44QHO0h
@번개구름-b5z
@번개구름-b5z 2 жыл бұрын
고려 아니고 고리다. 그리고 영토는 조선보다 넓었음
@이동환-h6d
@이동환-h6d 2 жыл бұрын
@@번개구름-b5z 1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국자감이라고 하였소 거 중국땅에 버젓이 있다오 더 공부하시오 원문공부를 더 하시오
@dynamo3590
@dynamo3590 Жыл бұрын
🤠🤠 👋 👋 😎😎 👍👍
@CrabTastingMan
@CrabTastingMan Ай бұрын
8:50 패전국이라니요? 😂 미국은 참정권 없이 영국에게 세금 갖다바치다가 프랑스 도움으로 독립을 얻었는데 고려는 세금도 안 내면서 쿠릴타이로 당대 세계최강 제국에서 가능한 최대 참정권을 얻었습니다 (원나라 황자 몇 제치고 제국 황족 서열 4위까지 간 적도 있죠). 강화 협상하면 다 패전국인가요? 여진정벌에서 고려의 침공을 패퇴시킨 여진족도 이겼음에도 강화 사절을 보내고 사죄하러 왔습니다. 고구려 수나라 전쟁 때도 고구려가 이겼는데도 먼저 강화 협상을 합니다, 누가 보기에도 고구려가 승전국인데. 그리고 고려는 몽골의 토곤테무르 같은 황자 같은 고위 인사를 대청도 같은 곳에 볼모로 데리고 있었습니다. 원 말기 내현이라는 한족은 “내가 고려인으로 태어나지 못한 게 한이로다”라는 시도 썼습니다.😅 동군연합으로 심양왕도 되어 영토도 넓히고 원나라 내 모든 고려인은 치외법권도 얻었죠. 원나라가 기근 때 고려에 쌀도 보내주고, 실크로드 교역도 터줍니다. 고려왕이 몽골 이리친발라 공주가 코피나도록 때려도 장인이 와서 말리기만 할 뿐 아무 조치도 없었습니다. 혼인으로 황권을 누리니 다루가치는 고려왕의 말을 들어야했기에 다루거치도 다 물리고 쿠빌라이는 고려왕 보고 귀찮으니까 몽골인 주둔군도 그만 요청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몽골인 누가 고려인 해치려고 하면 직접 알려달라고도 했죠. 이에 몽골 장군들이 알아서 몸을 사렸다고 나옵니다. 명나라 초기에 주원장이 고려와 조선을 싫어한 이유가 다 있는 겁니다. 원말에 고려 군대도 원나라에 보내서 홍건적 한족 노비 반란을 진압 할 때 도왔으니. 공민왕은 원나라를 타도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실익을 더 챙기자는 주의 였습니다. (사실 입성책동 하라고 한 것도 대개 원나라에 붙은 북쪽 고려인들이었죠 몽골인은 별 관심 없었음. 스위스 출신 합스부르크왕조가 외국에서 출세하더니 고향땅도 편입시키려고 침략하다 실패한 것과 비슷하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하는 것도 그렇고. 우크라이나는 원래 러시아인들이 몽골인에게 지배당하기 전까진 중심지였죠.) 공녀도 100명일뿐입니다. 몽골인 황족 공주를 8번 보낸 것과 비교 되지도 않습니다.
@dhkim410
@dhkim410 2 жыл бұрын
멸망 직전까지도 영토 확장을 한 고려 멋있다.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황금함대-c8n
@황금함대-c8n 2 жыл бұрын
심양은 고려땅임 조선이 개국하면서 잃어버린거임 위화도회군하는 이성계가 철령이북 지키려고 나가는데 고려지도가 저리 작은데 그럼 강원도로 진군하지 요동을 뭐하러가나 지금의 한반도를 한참넘어가 고려의 영토임 역사서가 다 타버려서 찾기가 어려울뿐
@송밀리터리
@송밀리터리 2 жыл бұрын
근데 멸망 직전 까지 갔다는건 국력이 쇠약해졌다는 얘기인데.. 국력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영토확장이 가능함??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고종도 간도 침공 😆 😆 😆 😆
@꿀잼영상-s7h
@꿀잼영상-s7h 2 жыл бұрын
@@송밀리터리 음 당시 명나라 국력 보건데 성공해도 바로 명나라 한태 찢길듯
@강형님-j4k
@강형님-j4k 2 жыл бұрын
우리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금이나마 느껴봤습니다. 좋은 내용 잘봤습니다.
@공부용-d6d
@공부용-d6d 2 жыл бұрын
한국사 공부하면서 고려사 파트가 되게 복잡하고 어려웠었는데 이 영상 보니까 아 삼별초 항쟁이 저때 나왔구나 하고 머릿속에서 그냥 알고만 있던게 흐름 정리가 되네요!! 재밌어요ㅠㅠ 다음편도 보고싶네용 정말 유익했습니다 감사해요
@SanseoTV
@SanseoTV 2 жыл бұрын
....... ㅡㅡㅡㅡㅔ.0 ㅔ
@mimik8846
@mimik8846 Жыл бұрын
고려 공부하셨으면 한국인은 고려조선인이 맞음니까? 아니면 초창기부터 한국 따로 고려 조선 따로 있었음니까? 대부분 한국인들은 조선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user-cn7qn8ij3n
@user-cn7qn8ij3n Жыл бұрын
@@mimik8846 직금의 독일인들이 자기자신을 프로이센인이라고 하지않고 튀르키예인이 자기를 오스만인이라고 말하지않고 러시아인이 소련인이라고 하지않듯이 한국인도 현재의 국호에 따른 명칭을 쓰는것 아닐까요
@k7886
@k7886 Жыл бұрын
그작은 강화도섬에서 30년동안 몽골군을 막았다고 믿는것인가?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한가? 고려의 영토는 대륙동부해안과 만주에 이어 한반도 였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삼별초는 그후 오키나와까지 점령하여 류큐왕국을 만듭니다 그작은 강화도에선 그게 가능할까요 강화도의 본래땅은 지금의 산동일대입니다 자세한 내용 유튜브 책보고
@lalala5819
@lalala5819 Жыл бұрын
@@mimik8846 ㅁ
@il4033
@il4033 2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 고려역사가 조선보다 재밌음 ㅋㅋㅋㅋ
@쿤보라고다괴물은아니
@쿤보라고다괴물은아니 2 жыл бұрын
재밋긴해도 개고생했지..유목민들 전성기라..
@UltimateTruthChannel
@UltimateTruthChannel 2 ай бұрын
조선이 뭐 한게 있나? 어떻게 조선을 고려량 비교를 하냐 애초당시에.
@송밀리터리
@송밀리터리 2 ай бұрын
@@UltimateTruthChannel 조선이랑 고려랑 비교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죠 비교를 할꺼면 조서전성기 vs고려 전성기 이렇게 비교를 해야하는게 맞죠
@il4033
@il4033 2 ай бұрын
​@@송밀리터리전성기도 고려가 더 좋았다고 생각함. 고려는 자력으로 통일 + 거란과 혼자 싸워서 승리하고 150년동안 문화가 꽃피우는 전성기를 누렸는데, 조선은 태종 세종 50년 제외하곤 전성기라고 볼 시기가 영 없음 초기 이후로 쭉 하향세타고 외세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털리기만 해서
@송밀리터리
@송밀리터리 2 ай бұрын
@@il4033 조선은 태종,세종,문종,성종때 전성기였음 그냥 15세기전체가 조선의 전성기라고 생각하면됨 50년은 더 됨.. 그리고 고려도 거란전쟁하고 100년정도 전성기를 맞긴한데 이후에 원나라 간섭을 100년정도 받아서 외세에 영향을 받은건 마찬가지라.... 물론 조선처럼 국가를 완전하게 빼앗긴간 아니긴한데 간섭받은 시간이 100년으로 긴걸 감안하면 조선이나 고려나 전성기 이후에 쇠락하고 국가가 망한건 똑갘은듯......
@룰루랄라-m7f8x
@룰루랄라-m7f8x Жыл бұрын
최고입니다. 재밌어어요❤
@sjpark497
@sjpark497 Жыл бұрын
와 진짜 정리 개 깔끔하게 하셨네요
@정화이-m4h
@정화이-m4h 2 жыл бұрын
1차 여요전쟁 때의 성종도 나쁘지 않았지만 제3차 여요전쟁에서 승리한 8대 현종에서 14대 헌종까지는 고려의 최전성기로 영상에서 말한 벽란도가 활성화되고 고려사신이 송에 갑질하던 어떤 분의 말대로 한반도 최전성기죠. 예종과 인종 시기에 외척이 등극하고 서경파가 몰락하면서 망테크 타다가 의종 때, 무신란으로 위기로 가죠.
@geumgwang6662
@geumgwang6662 2 жыл бұрын
성종은 성군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해요 현종~헌종까지가 최전성기가 맞는듯요~ 특히 8대 현종이 초반에는 기반이 없어 고초를 겪었지만 후반에는 고려 최고의 기반을 닦아 탄탄대로를 여는 초석이 되었지요 ㅎ 당시 거란 금 송 등이 고려에 쩔쩔매는 상황이었지요 ㅎ 송나라 소동파가 고려사신이 횡포를 부리는 것을 비판을요 ㅎ
@장세영-p8w
@장세영-p8w Жыл бұрын
@@geumgwang6662 고려가 거란의 세 차례 침입을 막긴 했으나, 이후에도 군사력으로 거란을 압도한 적은 없습니다. 당장 보주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상황에서도 고려는 거란군에 이기질 못했어요. 요ᆞ금은 고려의 상국으로 있었는데 뭘 쩔쩔맸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johnpark9523
@johnpark9523 Жыл бұрын
​@@장세영-p8w찐따 씨 그 형식적 상국이라는 건 아무 소용 없어요. 고려는 송에 갑질했고 요에게는 당당하게 할 말 했습니다. 조공책봉체제가 실질적인 상하관계인줄아나봐요. 요나라도 형식상 북송을 상국으로 모셨는데 요나라가 북송똘마니국가였던가요?
@johnpark9523
@johnpark9523 Жыл бұрын
​@@장세영-p8w병자호란 후에 조선이 청에 보낸 조공사절하고 귀주 대첩 직후에 고려가 요에 보낸 조공사절이 같은 의미인줄 아나봐요 ㅋㅋ
@명탐정꼼수
@명탐정꼼수 2 жыл бұрын
예쁜목소리로 국사를 들으니 국사 6년배운것보다 쏙 들어오넹 .. 잘때 또 들어야징
@lllklkkkk
@lllklkkkk Жыл бұрын
작년에 합격한 현직 7급 공무원입니다. 솔직히 한국사 공부하면서 조선보다 고려가 훨좋은 나라라 생각했습니다. 고려는 이혼한 여자 재가 자유. 남녀차별 없고 유산도 균등 분배. 조선은 후반갈수록 더 발전하긴 커녕 더 이상해짐. 아들만 재산주고 양자입양 친영제도 동족마을.. 등
@lllklkkkk
@lllklkkkk Жыл бұрын
젤 이해 안되는게 서얼 차별. 애비가 딴여자랑 바람펴서 낳은건데 자식이 왜 직업의 자유 없어야하지? 아무명분도 없는 차별임 도저히 이해안감 . 사회적으로 시선나빴다 수준이면 모를까 법적으로 과거응시불가. 대체 왜 과거 못보게하는지 이해자체가 안감
@maple4801
@maple4801 Жыл бұрын
조선도 우리가 아는 모습은 후기 때나 나온 모습입니다. 조선도 초 중기에는 성차별이 별로 없었어요. 실제로 여자인 신사임당이 상속자로 기록된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어요
@langsam2931
@langsam2931 4 ай бұрын
@@lllklkkkk윗분말씀처럼 임진왜란때 쳐망했어야하는 조선이 살아남은 부작용이 성리학 강화임. 왜란,호란 이후 나라개판에 지배명분이 약해지자 들고나온게 성리학주의로의 회귀임. 이거의 선두주자가 정조. 왜 최근 미디어에서 정조를 개혁군주로 묘사하는지 몰겠음. 성리학강화시키고 한글못쓰게하고 천주교잡아죽인 원리주의자 틀딱 딸피가 정조인데 말이여.. 이때부터 조선은 이미 돌이킬수없는 망국으로 들어섬. 일본은 개항하고 유럽돌면서 벤치마킹하고있었는데.. 넘나아쉽
@이도형-x9x
@이도형-x9x 9 сағат бұрын
@@lllklkkkk 고려보다는 서얼대우가 좋았습니다 고려는 일천즉천이어서 아버지 선택받은 몇 명 빼고는 사생아 취급 받았습니다 조선은 그 대우를 격상시키되 한계를 준 정도입니다
@이도형-x9x
@이도형-x9x 9 сағат бұрын
고려 남녀차별 쩝니다 애초 불교가 성리학보다 남녀차별이 더 심한데요 실제 여성 성리학자는 기록되어도 비구니 승려는 기록에 없습니다
@user-skdkfktnenwh
@user-skdkfktnenwh 2 жыл бұрын
저도 항상 고려역사는 흐름이 잘 안잡혔는데 이걸로 좀 정리가 됩니다. 잘보고 갑니다
@식당장사재밌나요
@식당장사재밌나요 2 жыл бұрын
짧지만, 고려 500년 역사 너무 잘 봤습니다~~ 대단합니다!!
@user-xh8tw9su8f
@user-xh8tw9su8f Жыл бұрын
조선의왕은 쿠데타의명분을위해 고려와왕들을 깍아내리는 역사를썼다 하지만 고려는 강한나라였다 세계최강이던 몽골에게 나라를지킨 유일한나라였고 일본은 넘볼수조차없었다. 한편 조선은 쿠데타왕을 왕이라생각하지않았고 간신만 넘쳐나 결국 굶어죽는패망국가가되어 일본의침략이아닌 조선의왕은 이완용이란꼭두각시를 세워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팔아먹은거다.
@정신교육대-p7u
@정신교육대-p7u Жыл бұрын
최신순 내글 참조
@monsuwoo8251
@monsuwoo8251 2 жыл бұрын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패망이후 중국의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나라~ 그런데 끝까지 자주국방과 멸망 직전까지도 옛고토 찾으려한 고려 이게 현시대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 고려는 코리아 우리는 이걸 잊고 살았는지 모르겟네요~~ 진짜 고려 최고~
@---837
@---837 2 жыл бұрын
중국영향력 없었습니다 명나라 초기는 이성계가 쳐들어올까봐 벌벌 떨었고 청나라는 중국 역사가 아닙니다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대부분에서 조선>고려인건 사실인죠. 근데 세금 뜯어내는 능력과 동원능력 이두개만은 고려가 위긴하죠.
@초코퍄이
@초코퍄이 2 жыл бұрын
@@로갓-i8w 개소리하네
@guarantee9773
@guarantee9773 2 жыл бұрын
@@---837 이성계한테 벌벌 떨어서 조선 역사가 명ㆍ청의 제후국이었군요 🤣🤣🤣🤣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guarantee9773 청의 제후국인건 거의 팩튼데 명의 제후국인건 반쯤 틀린 말임.
@어벤투스-i5p
@어벤투스-i5p 2 жыл бұрын
한국사 시험 직전에 들으면서 내용정리하면 딱 좋을것같아요
@장경환-x6v
@장경환-x6v 2 жыл бұрын
싫을거 같음
@lhj2276
@lhj2276 2 жыл бұрын
우리나란 조선의 정신이 아닌 고려의 정신을 본받았어야했는데... ㄲㅂ
@와우-p4e
@와우-p4e Жыл бұрын
고려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면 둘중 하나일듯. 지금 우리가 중국인이거나, 아니면 영토도 더 넓고 진취적인 민족이거나.
@taeinyi2123
@taeinyi2123 8 ай бұрын
팩트 : 고려의 정신이었으면 지금 나라 갈갈이 다 찢어졌다 호족들때문에
@UltimateTruthChannel
@UltimateTruthChannel 2 ай бұрын
@@와우-p4e우리나라가 어떻게 중국이 되냐? 그럴거였으면 벌써 옛날에 중국이 됬겠지.
@박종민-e7z
@박종민-e7z 2 ай бұрын
@@와우-p4e 그럼 지금 중국인은 현 중국인이 아니겠지 ㅎㅎ
@123-r5x
@123-r5x Ай бұрын
@@taeinyi2123 ㅋㅋㅋㅋㅋㅋ지랄하네, 고려였으면 서구문물 빨리 개방해서 오히려 일제강점기 안왔다.
@shanestory3879
@shanestory3879 2 жыл бұрын
씀작가님 최고!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안녕하세요-1l
@안녕하세요-1l 2 жыл бұрын
오 심심한데 딱 올라왔다!!
@Epic_Ssom_History
@Epic_Ssom_History 2 жыл бұрын
타이밍 잘 맞췄군여 ㅋㅋㅋ
@쌍칼-c7y
@쌍칼-c7y 2 жыл бұрын
우와 고려왕조 500년 역사다~ 마침 심심했었는데 올려주네 고마워 누나~~ 그리고 나 누나팬이야~~❤️
@Epic_Ssom_History
@Epic_Ssom_History 2 жыл бұрын
염라대왕님 땡큐우
@a.marcus7970
@a.marcus7970 2 жыл бұрын
말투가 586
@영등포총사령관
@영등포총사령관 9 ай бұрын
조선같은 신석기시대보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고려가 훨씬 더 값지고 의미있지.
@xzxzxzxz9892
@xzxzxzxz9892 8 ай бұрын
당연함 일본에서 따라한 한반도 특유의 금박문화 , 자체적인 도자기 기술, 군사력,경제력,민속문화등 화려함과 웅장했는데 중국 뒤에 숨어서 성리학만 부르짖던 조선때 전부 없어지고 씨가 마름 조선왕조와 그밑의 신하들은 진짜 욕만 나온다
@KS_Knowlege
@KS_Knowlege 2 жыл бұрын
역시 믿고 보는 채널입니다~~ 굿굿!
@매월2일빵은
@매월2일빵은 2 жыл бұрын
외교적, 대외적 유연성은 고려가 훨씬 앞섰지
@user-fn9fc1hi1p
@user-fn9fc1hi1p 2 жыл бұрын
한반도에서 자주적이던 시절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인듯
@cadillacgolden9713
@cadillacgolden9713 2 жыл бұрын
너무 좋다 이런거 쉽게 설명해주시고 장황하지도 않고
@팔괘장
@팔괘장 2 жыл бұрын
쏨 작가님의 내레이션 그리고 일러스트 , 역사 풀이 전개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다음 아편 전쟁도 보고 싶어예 ^^ 건강 하세요^^
@usersuperdopa
@usersuperdopa 2 жыл бұрын
뒤질날도 얼마 안남으셨는데 뭘 그렇게 아등바등하슈? ㅋ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안핑 시(Anping City 안평성安平城), 그리고 타이욘 시(Tayoan City 대만성台灣城)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정신교육대-p7u
@정신교육대-p7u Жыл бұрын
최신순 내글 참조
@efefaw457
@efefaw457 11 ай бұрын
정리 지리네여...요즘 고려 거란전쟁 보는데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믿습니다 최수종!
@keke-bv2tz
@keke-bv2tz Жыл бұрын
고려가 참 복잡하기도 하지만 현재 외국이 코리아라고 부르는게 우연인게 아닌게 강대국이 였음..나름...원 이전엔 칭제하여 황제국이였고(물론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약한 송나라 시대 영향도 있지만 거란 물리친게 결정적), 그 원한테도 어느정도 국권을 유지하는 등 현재 코리아도 강대국이 된거 처럼 ㅎㅎ
@vivivi3865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현재 한국은 솔직히 아직 강대국이라 부르기는 부끄럽죠.. 국력이나 국제위상이나 영향력이나 고려 문종 시기에 비하면 한참 멀었습니다. 최소 통일은 하고 안정이 좀 되어야..
@XiJinping_anus_loves_democracy
@XiJinping_anus_loves_democracy Жыл бұрын
@@vivivi3865 무지성 고려빠 검거
@homeworkout127
@homeworkout127 Жыл бұрын
​@@vivivi3865통을을 왜해 그 비용 니가 다 낼래?
@maple4801
@maple4801 Жыл бұрын
@@vivivi3865대한민국 정도면 국제적으로 위상이나 영향력이 엄청난 국가입니다. 우리가 몸으로 잘 못느낄 뿐인거죠. 왜 미국과 중국이 대한민국을 서로 자신의 영향력에 두고 싶어 하겠습니까? 한국이란 나라의 영향력이 자신들의 이익에 매우 상충하기 때문이죠. 아시아의 단 둘뿐인 선진국이라는 것도 상당히 메리트가 있고요.
@sweetfan3250
@sweetfan3250 9 ай бұрын
적어도 영국면적이 되야 될건데 통일시 휴전선 막고 북발전후 개방 그럼 니 세금 안내도 된다
@smgm1293
@smgm1293 2 жыл бұрын
찬란한 고려 500년의 역사를 잘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송이버섯-k6q
@송이버섯-k6q 2 жыл бұрын
춘식이당
@joyfulkim2653
@joyfulkim2653 2 жыл бұрын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g4df74g1h
@g4df74g1h 2 жыл бұрын
찬란하지는 않음. 거란한테 복종했고 차례대로 여진 원 명에 복종함. 충선왕 충혜왕등 굴욕적인 이름을 하사받고 일본한테 원정갔다 학살당함
@1000유토피아
@1000유토피아 2 жыл бұрын
@@g4df74g1h 학살같은 소리한다.ㅋㅋㅋ 태풍으로 조진거지 무슨 학살 정말 웃기다.
@JKJ0509
@JKJ0509 2 жыл бұрын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역사학 교수들,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위,촉,오의 분열을 끝낸 나라는 사마염이 건국한 진나라 입니다 [태강]은 진나라 무제였던 사마염의 연호입니다 사마염은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의 지방행정조직을 점검하기 위해 [태강지리지]라는 지리서를 편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태강지리지]는 낙랑군이 현존했을때의 책이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태강지리지]가 당나라때에는 존재했기 때문에 사마정이 그 책을 인용해서 [사기색은]에 기록한 것입니다 갈석산은 하북성에 있는데 아주 유명한 산입니다 고조선의 영토가 거기까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한사군이 북한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석산이 평양에 있습니까?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내려왔나요? 평양에 있었던 것은 낙랑군이 아니라 고조선의 유민들이 건국한 낙랑국입니다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낙랑공주는 낙랑국 왕의 딸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라가 고조선을 식민 통치하기 위해 세운 낙랑군은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지방 행정 기관입니다 따라서 지방 행정 기관인 낙랑군의 수령은 낙랑왕이 아니라 낙랑태수입니다 따라서 낙랑태수의 딸은 낙랑공주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북성에 있었던 낙랑군과 평양에 있었던 낙랑국은 서로 다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갈석산이 있는 하북성이 고조선의 땅이였기 때문에 광개토태왕때 고구려가 옛 땅을 되찾기 위해 거기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가 고대의 요하였고 난하의 동쪽이 요동, 서쪽이 요서였던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 애국심이 생기지도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어떤 의무나 희생을 치를 가치도 전혀 못느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처럼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인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영달만 좇는 것입니다 이게 다 우리 역사의 뿌리가 잘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의도대로 민족정신이 말살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서 제대로된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현재의 코로나 방역, 한류열풍, G8국가로의 진입 가능성이 타진 되는 상황등 우리의 자부심을 높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우리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는 현상이 바로 K방역, 한류열풍, G8국가로의 진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도 제대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게임하는감쟈냥
@게임하는감쟈냥 Жыл бұрын
귀에쏙쏙 들어왔어요^^
@vovocafe
@vovocafe 2 жыл бұрын
우리 역사는 재미있네요. 아쉽기도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Harry_Mione
@Harry_Mione Жыл бұрын
사실 세계사에 한 국가가 영토와 국민을 보전하면서 같은 왕조로 500년씩 존속하는 일은 꽤 드문 일인데 고려나 조선이 그게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로 건국 초기 광종이나 태종 같은 강력한 왕이 최고권력자인 왕이라는 자리의 정치적 기반을 안정시키고 중앙집권을 공고히 한 데에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음.
@원담-u3p
@원담-u3p 2 жыл бұрын
부족했던 고려사 정리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권력자의 리더쉽이 항상 문제가 되는 군요,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user-xh8tw9su8f
@user-xh8tw9su8f Жыл бұрын
조선의왕은 쿠데타의명분을위해 고려와왕들을 깍아내리는 역사를썼다 하지만 고려는 강한나라였다 세계최강이던 몽골에게 나라를지킨 유일한나라였고 일본은 넘볼수조차없었다. 한편 조선은 쿠데타왕을 왕이라생각하지않았고 간신만 넘쳐나 결국 굶어죽는패망국가가되어 일본의침략이아닌 조선의왕은 이완용이란꼭두각시를 세워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팔아먹은거다.
@정신교육대-p7u
@정신교육대-p7u Жыл бұрын
최신순 내글 참조
@정신교육대-p7u
@정신교육대-p7u Жыл бұрын
최신순 내글 참조
@HSO8424
@HSO8424 Жыл бұрын
kzbin.info/www/bejne/lX-VfWeEl8mNsKMsi=QXE2vHbWsmrFgrn1
@늘상-f6i
@늘상-f6i Жыл бұрын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은 ‘고려 독립’이 자신의 꿈이라 적은 적 있죠 ㅇㅇ 조선왕조가 개국했을때 백성들은 꽤 오랜기간동안 자신들 나라 이름이 고려라고 생각했다고 하구요.
@maple4801
@maple4801 Жыл бұрын
독립운동가들 중 좌익 급진계열은 조선이란 말을 즐겨썼고 좌익 온건 계열은 고려라는 말을 즐겨썼고 우익은 대한 이란말을 주로 썼습니다.
@taeinyi2123
@taeinyi2123 8 ай бұрын
대한이 맞지 예맥이나
@진도환-u4h
@진도환-u4h 2 жыл бұрын
나레이션 쵝오!!!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한국고전종합에 가시면 있습니다 모든 실록
@숲-y8n
@숲-y8n 2 ай бұрын
고려의 모든 내용을 축약해서 이야기해 주니 고마워요. 500년의 고려는 어쩜 조선 500년보다 앞섰다는 생각이 드네요. 거란,여진,몽골 등 이들과 전쟁을 하고도 굳건하게 지켜나간 역사.
@user-iw9jm5bz8u
@user-iw9jm5bz8u 2 ай бұрын
진지빨면 고려는 진짜 조선보다 답도 없이 미개했습니다. 행정체제도 잘 잡히지 않았고 농업기술은 미비했으며 대부분이 움집수준에 거주했죠.
@il4033
@il4033 2 ай бұрын
​@@user-iw9jm5bz8u일반인들의 생활 수준은 조선보단 당연히 떨어질수 밖에 없죠. 다만 자력 통일, 여요전쟁 승리로 인한 높은 국제적 위상, 유교원툴이었던 조선보단 개방되고 더 다양한 문화가 꽃피웠다는 점에서 고려가 고평가 받는거죠
@송밀리터리
@송밀리터리 2 ай бұрын
@@user-iw9jm5bz8u 그거는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임..고구려는 진짜 움집에서 생활하고 고대부족사회에서 이제막 벗어난 상태였음...
@붕붕이-c4n
@붕붕이-c4n Ай бұрын
​@@user-iw9jm5bz8u그냥 개 소 리
@hisjusthis
@hisjusthis 5 ай бұрын
정말 좋은 영상이네요 👍 정리가 너무 좋아요
@블레어-n6w
@블레어-n6w 2 жыл бұрын
쏙쏙 들어와요 최고예요 진짜
@usersuperdopa
@usersuperdopa 2 жыл бұрын
뭐야 이 강민경스런 말투는?
@Lookhischiu375
@Lookhischiu375 2 жыл бұрын
제대로된 역사라면 고려는 몽고이전까지 강국이고 영토또한 조선보다 훨씬 넓었으며 무엇보다 무역강국이었다. 책보고영상 참고 지명을 통해서 알기쉽게 파악 할수 있을 것 . 삼국사기와 고려사 복원에 힘을 기울이는 채널. 지금 우리가 배우는 고려사는 고려사를 분석조차 하지않고 내피셜에 가깝고 왜곡 누락이 많음. 무엇보다 우리역사 고려사가 국보로 지정되지 못한 실정.그 이유는 여러분이 찾아보면 알것.누가존재하는지.
@maple4801
@maple4801 Жыл бұрын
그리고 고려사는 보물로 지정 되어있다.
@jemerytim6507
@jemerytim6507 2 жыл бұрын
하아 쏨작가님 잘되는 모습에 제가 너무 좋아요!!! 조카 크는거 보는 기분ㅋㅋㅋㅋㅋㅋ
@Epic_Ssom_History
@Epic_Ssom_History 2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jemery tim님 너무감사해요>
@ellaatticbar5082
@ellaatticbar5082 3 ай бұрын
한국사를 너무 재미있게 설명하셔서 영상 끝나는게 아쉬울 정도에요!!
@ppangjo3013
@ppangjo3013 9 ай бұрын
고려거란전쟁보고 여기까지 와버렸네요ㅎㅎㅎ
@sooahtz
@sooahtz Жыл бұрын
알고보면 모두 정치가 날려먹은걸 지금도 우리나라는 저때의 정치태세를 가지고 있다는게 참 마음이 아픕니다
@uunvoid
@uunvoid 2 жыл бұрын
세종이 고려왕들 관련 유물들 없애버린건 아쉽네요. 초상화도 모르니 그리고 gdp 보니까 고구려, 고려가 평균8위•최고 5위 하던 나라 였습니다.
@vivivi3865
@vivivi3865 2 жыл бұрын
아쉬운 게 아니라 울화통이 치미는 일이죠. 세종이 고려의 문화재를 파괴함으로 인해 우리는 고려 최고의 성군이라는 현종대왕의 얼굴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송밀리터리
@송밀리터리 2 жыл бұрын
조선도 초기 한정이긴한데 경제력이 10위권정도 했을꺼임
@송밀리터리
@송밀리터리 2 жыл бұрын
@@vivivi3865 그건좀..아쉽긴함..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vivivi3865 그건 ㅇㅈ
@homeworkout127
@homeworkout127 Жыл бұрын
내가 세종을 진짜 않좋아함. 왜 이렇게 미화됐는지 의문일 정도로 조선 백성들을 버러지처럼 생각하던 왕이었음. 물론 공식적으론 다 너네를 사랑해서 하는거라고 이쁘게 말했지만 ㅋ
@seamandogman
@seamandogman 2 жыл бұрын
훌륭한 영상입니다 짝짝짝 짝짝짝짝.
@최연숙-b6o
@최연숙-b6o Жыл бұрын
중3아들역사시험어려워하는데 잘이해가되겠어요^^ 콘텐츠간단요약 넘감사합니다
@윤광호-t7e
@윤광호-t7e Жыл бұрын
보내주신 스벅쿠폰 좋았고 책도 잘 읽고 있습니다. 쏨 화이팅!!
@Epic_Ssom_History
@Epic_Ssom_History Жыл бұрын
광호님 후기 남겨주시니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Gojong_Emperor_Qianlong
@Gojong_Emperor_Qianlong 2 жыл бұрын
조선을 싫어하는 건 이해하지만 적어도 태조 ~ 단종까지는 좋게 봐줍시다. 이 시기에 우리의 귀중한 한글도 만들어졌고 한반도 단일 국가 최대 강역을 이룬 것도 이 시대의 일이니깐요 아 물론 세조부터는 존나 욕하셔도 인정
@텐-w5u
@텐-w5u 2 жыл бұрын
사실 다들.. 조선초 조선초 그러지만...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그나마 나았던 시기가 조선초였지.. 그 시대가 중후기에 비해 뭐 딱히 대단한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조선초는 오히려.. 고려말기의 피폐해진 국토를 회복시키는 시기였죠..
@dydghl0078
@dydghl0078 Жыл бұрын
난 이방원은 인정 못함 베테랑 군사들을 다 숙청시켜버렸지
@네네-s7h
@네네-s7h 2 жыл бұрын
와 진짜 정리 짱이다!👍👍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사요는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을 치고 들어가 보십시오 원문공부하세여
@Taiwan___No.1
@Taiwan___No.1 Жыл бұрын
와 고려사 진짜 어려워 했는데 감사합니다!
@hackchorry
@hackchorry 9 ай бұрын
캬..한국사 공부중인데 이게 더 집중되는 이유는 뭘까요😂
@lljljljlljll
@lljljljlljll 2 жыл бұрын
방장님 일제강점기 영상 만들어 주세요!😆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Tripleaxelyang
@Tripleaxelyang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현종부터 숙종까지가 진짜 전성기
@빵떡-v2n
@빵떡-v2n 2 жыл бұрын
2:15 광종 이야기는 이미 다룬적 있어으셔서 떠오르네요
@Epic_Ssom_History
@Epic_Ssom_History 2 жыл бұрын
오기억해주시네요!!ㅎㅎ
@dustone
@dustone 2 жыл бұрын
역사에서 미래를 배웁니다^^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mahadeva563
@mahadeva563 2 жыл бұрын
고려가 한반도가 제일 빛났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하고 교과서에서 봤던 고려청자를 처음본 순간 느꼈었습니다
@LL-br7jm
@LL-br7jm 2 жыл бұрын
개소리 오지네ㄷㄷㄷ
@송밀리터리
@송밀리터리 2 жыл бұрын
고려청자가 멋있긴 하죠 ㅎㅎ
@장경환-x6v
@장경환-x6v 2 жыл бұрын
@@송밀리터리 얼마임?
@송밀리터리
@송밀리터리 2 жыл бұрын
@@장경환-x6v 그건 청자 상태마다 다르겠죠
@squidward_tentacles92
@squidward_tentacles92 2 жыл бұрын
@@LL-br7jm 조선이 저 시기있었으면 거란에 합병됐음
@홍종수-w7b
@홍종수-w7b 2 жыл бұрын
정리 지리네..첨 2분 보고 보고 바로 구독
@컴일산
@컴일산 2 жыл бұрын
좋은영상입니다. 참고기록 몇가지 첨언합니다. 고구려 장수왕때 국호를 "고려"로 바꾸었습니다. 고려사 지리지 서문 - "고려가 다스리는 주군은 모두 580여 개였으니, 우리나라 지리의 융성함이 여기서 극치를 이루었다" " 그 경계선의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때보다 확장된 것이다." 고려사 지리지, 3동계 제 58권 - "비록 연혁과 명칭은 같지 않지만 고려 초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험 이남에서 삼척 이북은 통틀어 동계라 일컬었다." 고려사 지리지, 동계 - "예종 2년(1107) 평장사 윤관이 원수가 되어 지추밀원사 오연총을 부원수로 삼아 병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쳐서 쫒아내고 9성을 두었는데, 공험진 선춘령에 비석을 세워 경계로 삼았다." 세종실록지리지, 함길도 길주목 경원도호부 - "두만강 경원 복호봉 북쪽으로 공험진에 이르기 700리, 동북쪽으로 선춘현에 이르기 700여 리를 관할하였다." 명사 지리지, 철령위 - "봉집현이 있는데, 곧 옛 철령으로서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홍무 초년에 봉집현을 설치했다가 곧 폐지했다." "철령은 서쪽으로 요하가 있고 남쪽으로 범하가 있고, 또 남쪽으로 소청하가 있는데 모두 흘러서 요하로 들어간다" 정리하면 고대 문헌의 기록상 고려의 서쪽 경계는 철령, 북쪽 경계는 두만강 북쪽 700리에 위치한 공험진입니다.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고려시대가 벽란도를 통해 해상무역이 발달한건 사실이나 조선때와 마찬가지로 공무역 국가였고 단지 조선은 명이 쇄국(비단길, 바닷길 통제)을 하였기에 무역을 못한거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고려때 송과 원은 대외무역을 활발히 했기(이때 정크선, 나침반등이 개발됨)에 같이 하게 된거죠.
@joyfulkim2653
@joyfulkim2653 2 жыл бұрын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POKRYEOL-THE_MAD_WIZARD
@POKRYEOL-THE_MAD_WIZARD 2 жыл бұрын
당초 말을해도 의미가 없는게 사람들이 당시 명나라 파워랑 해금령이 뭔지도 모름 ㅋㅋㅋㅋㅋ
@서클맨
@서클맨 2 жыл бұрын
항해술의 변화도 영향이 컸죠. 연안항해의 거점이었던 고려시대와는 다르게 항해기술 발전으로 한반도가 중간경유지로서의 가치가 하락했으니까요. 신라,고려 둘다 장보고를 제외하면 주도적인 무역을 했다고 보긴 힘들죠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POKRYEOL-THE_MAD_WIZARD 진짜 명을 개조밥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쵸. 초기 명나라는 진짜 미국급 나라였는데...
@info_biz
@info_biz 2 жыл бұрын
명과 조선이 쇄국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흑사병” 때문일 겁니다. 특히 조선의 경우 흑사병과 관련 된 기록이 없는데 기록덕후라는 조선이 이를 빼먹을리는 없고 봉쇄를 통해 유입을 막았다고 보는게 맞겠죠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볼 때, 당대의 환경을 연결시켜 봐야 하는데, 오로지 “성리학” 하나만 가지고 보면서 비하하기에 급급한 이들이 꽤 많더군요
@youngpyokim3441
@youngpyokim3441 2 жыл бұрын
그림을 직접 그리신건가.....?? 귀엽다~
@김광종-t4s
@김광종-t4s 2 жыл бұрын
혜종이 침실에 잠입한 자객을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무력은 대단했음 왕을 노릴 정도의 자객이라면 무력이 엄청났을텐데 최정예 호위병들을 상대해야 됐으니
@배호윤-y7y
@배호윤-y7y 2 жыл бұрын
전쟁터에서는 아버지인 왕건보다도 더 용맹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네요 무력만큼은 최고의 왕이라고
@코드선
@코드선 2 жыл бұрын
현종 내용이 없는게 아쉽네요. 대한민국 역사상 손에 꼽을정도의 성군인데
@vivivi3865
@vivivi3865 2 жыл бұрын
잘 모르나봐요ㅎ
@코드선
@코드선 2 жыл бұрын
@@vivivi3865 그런거 같네요 고려사는 현종을 빼고 얘기할 수 없는데.. 고려 성군의 대표격인데 아쉽네요
@vivivi3865
@vivivi3865 2 жыл бұрын
@@코드선 개인적으로 한국사 최고의 성군으로 보고 있습니다.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ㅇㅈ
@siyann9960
@siyann9960 2 жыл бұрын
역사적으로 고려가 최전성기일때는 중국과 거의 대등한 관점에서 외교가 가능했고 간섭없이 제후국들을 거느렸다고 하죠
@fuuspj-zn5rg3uo9t
@fuuspj-zn5rg3uo9t 2 жыл бұрын
고려가 중국과 대등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중화의 지배자인 송나라가 문화는 막강했지만 군사력이 약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원) 조선시대(명,청)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군사력의 통일왕조때는 꿈도 못꾸웠죠
@淸田儒松
@淸田儒松 Жыл бұрын
@@user-kr8rt1bt9h 제주도?
@dydghl0078
@dydghl0078 Жыл бұрын
@@fuuspj-zn5rg3uo9t 그것도 있지만 조선의 군사력이 점점 약해졌던것도 컸습니다 조선을 말하자면 중국의 송나라라고 볼수 있죠
@dydghl0078
@dydghl0078 Жыл бұрын
@@fuuspj-zn5rg3uo9t 특히 상비군 제도가 아닌 부병제
@homeworkout127
@homeworkout127 Жыл бұрын
​@@dydghl0078송나라는 문화적, 기술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룬 나란데 감히 조선을?
@TV-jm7fd
@TV-jm7fd 2 жыл бұрын
와우! 고려편!! 정말 감사합니다!!
@김재박-l7o
@김재박-l7o 2 жыл бұрын
역사는 늘 되풀이된다.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사요는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을 치고 들어가 보십시오 원문공부하세여
@장세영-p8w
@장세영-p8w 2 жыл бұрын
아니요. 비슷하게 보일 뿐, 전혀 다른 개개의 사건들일 뿐입니다.
@온연호
@온연호 4 ай бұрын
고려가 진짜 우리역사의 원점이라고 생각합니다.이씨조선의 그 역사 지우기와, 일제 역사왜곡. 정말 역사 바로세우기가 시급합니다.
@mvue09
@mvue09 3 ай бұрын
근데 왜 이씨 조선 부산물로 댓 담?
@a_s_a_.
@a_s_a_. 3 ай бұрын
고려는 진짜 조선보다 훨씬 후진국인디
@온연호
@온연호 3 ай бұрын
@@a_s_a_. 알고 하는 말인가? 당신 이씨거나, 조선왕조 부역자 집안이지?
@user-iw9jm5bz8u
@user-iw9jm5bz8u 2 ай бұрын
​@@온연호고려인 대부분 움집살았음
@마속산악회
@마속산악회 Ай бұрын
@@온연호 고려 토지제도는 고려 망할때까지 못고친채로 남았는데... 그리고 양반이라는 지위가 세습이 보장되지 않고 학식 증명하지 못하면 양반 지위도 잃는 조선vs공음전, 음서제로 무능해도 수저만 잘 물면 어느 정도의 권력이 보장되던 고려랑 비교해보슈.
@right-J-2020
@right-J-2020 Жыл бұрын
오 이영상 보니깐 고려역사가 머리의 쏙쏙 들어오네요! 감사합니다!
@ragdo5186
@ragdo5186 2 жыл бұрын
외적 쳐들어오면 의병 일어나는게 이게 별거 아닌것 같은데 정말 대단한거임.. 지금 우리나라가 아무리 서로 욕하고 싸우고 그래도, 갑자기 부산에 일본 놈들 상륙하면 혹은 북한군 혹은 중공군이 휴전선 넘어오면 나부터도 k-2 들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음.
@무제-b7z
@무제-b7z Жыл бұрын
그냥 영상만 봐도 다 이해되는것들이 학창시절엔 어찌나 안외워지던지~~ 재밌게 보고 가요
@절에사는개
@절에사는개 Жыл бұрын
선생이라고 다 잘가르치는건 아니지요 ㅋㅋㅋㅋㅋ
@user-ee1kp3zh4n
@user-ee1kp3zh4n 4 ай бұрын
그땐 흥미가 없으셨어서 그래요 특히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보통 별 관심없는 문화와 정치제도 유물 등의 비중이 커서
@티마르포포카
@티마르포포카 2 жыл бұрын
위화도 회군은 아무래도 지원이 안와서 따지러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어쨌거나 결과는 역으로 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나왔던거 같네요.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안핑 시(Anping City 안평성安平城), 그리고 타이욘 시(Tayoan City 대만성台灣城)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티마르포포카
@티마르포포카 2 жыл бұрын
@@derbyace1225 더 자세한 사항을 확인 못한다는거죠. 그런데 상상이 없으면, 진짜 왜 그랬는지 더 확실한, 막타를 치는 조건이 되는 이유를 모릅니다. 그건 그래요. 잘한것도 같이 봐야하는데, 그건 또 못하죠. 그러니 그것들이 어쨌거나 확실한건 우리가 확인할 자료가 많이 없다는건 확실하네요.
@freesia4597
@freesia4597 2 жыл бұрын
그때 압록강 건넜으면 그냥 다 죽었을거임.. 말도 안되는 원정이었음.. 가서 싸우기도 전에 가다가 지쳐죽고 병들어죽고.. -_-;; 최영이 말년에 노망나서 말도 안되는 어거지로 떠밀어서 ..
@티마르포포카
@티마르포포카 2 жыл бұрын
@@freesia4597 우선 지원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제때 안오는거 같으니 돌아간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정확한 기록이 남은게 없으니.. 애초에 전쟁은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죠. 군사 인원 지원은 그렇다 쳐도, 먹을거, 무기등은 지원해 줘야지.. 아무래도 이쪽이 없으니 돌아온게 아닌가 싶어요.
@장세영-p8w
@장세영-p8w Жыл бұрын
아니요. 애초부터 요동 공격은 우왕과 최영의 독단일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신료들은 부정적이었어요. 그래서 최영이 신료 중 하나를 처형하기까지 했고요. 고려사 기록을 보면 최영이 원정을 떠난 장수들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두려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출정한 장수들부터 다른 마음을 품을까 우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원이 있든, 없든 간에 애초부터 고려는 그럴 상황도 아니었고, 그렇게 해줬다 한들 이미 만주를 평정한 명의 대군에 금방 박살났을 겁니다. 게다가 명은 철령 이북의 영토가 고려땅임을 인정한 상태인지라 명분마저 없어졌고요.
@북두칠성-i2f
@북두칠성-i2f Жыл бұрын
돌대가리도 알아듣기쉽게 설명을 아주잘하네요
@baaaaaboooooo
@baaaaaboooooo 5 ай бұрын
개인적으로 국사중에 고려사가 제일 재밌는거같음
@송성룡-f6r
@송성룡-f6r Жыл бұрын
1:20 훈요십조는 왕건이 작성한건 손실되었고 후대에 조작된걸로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박종민-e7z
@박종민-e7z 2 ай бұрын
아님. 저게 한반도를 의미하는게 아님
@jhsphinx81
@jhsphinx81 2 жыл бұрын
역사 관심 있으신 분들 책보고 채널 추천합니다
@jksmm1
@jksmm1 2 жыл бұрын
한국고전종합에 가시면 있습니다 모든 실록
@Ha-uw5do
@Ha-uw5do 2 жыл бұрын
와~~~ 이언니 요약 짱! 흐름을 이해하기 쉽게 넘 좋다!ㅎㅎ
@정신교육대-p7u
@정신교육대-p7u Жыл бұрын
최신순 내글 참조
@박성준-y3s
@박성준-y3s 7 ай бұрын
목소리 너무 좋아요!
@꾀꼬리재백숙
@꾀꼬리재백숙 9 ай бұрын
항상 나라를 구하는 건 백성이었네요. 지금도 어찌 변화하지 않을까...한타스럽네요
@FrostSilver-w8w
@FrostSilver-w8w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조선처럼 문약하고 폐쇄적이고 사대적이지 않았죠 어떤 한반도 국가보다도 강인하고 개방적이고 자주적이었던 나라입니다 한국인이라면 조선을 수치로 알고 고려를 본받아야 합니다
@leeston7874
@leeston7874 2 жыл бұрын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아들 세종대왕 없었으면 아직도 한자 쓰고있었을텐데 고마워 할줄 알아야됨.. 조선건국은 한민족에겐 축복이었다고 봄.. 이렇게 한글을 쓰면 살수있게해준덕에
@dydghl0078
@dydghl0078 Жыл бұрын
@@leeston7874 그건 사실인데 군사력이 약해지고 가난해져서 일본한테 먹힌건 팩트
@dydghl0078
@dydghl0078 Жыл бұрын
@@leeston7874 근데 나는 세종대왕 원망안함 임진왜란 끝나고 광해군 밀어내고 인조부터가 조선이 망해가는 시기임 결국 그때부터 조선왕들이 문제였음 몇몇 좋은 왕들은 있었는데 대세에 아무런 영향은 없었음
@dydghl0078
@dydghl0078 Жыл бұрын
@@leeston7874 임진왜란 전까지도 조선은 군사력이 약하지는 않았지
@kaelayondrasen
@kaelayondrasen Жыл бұрын
고려는 강인하다기보단 굉장히 똑똑하고 유연했다고 봐야됩니다. 전쟁이 일어나지않기위해 항상 중립적외교의 입장에서 생각을했기때문에요. 조선이 잘못된건 신하들이 정치적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유교가 변모한게 잘못된거죠. 시쓰는 글쟁이들이 정치를 어떻게 알수있겠나요. 조선이 군사력이 망한 결정적 원인은 세조가 군사진법하는것이 귀찮다하여 매월마다하는 군사진법을 내팽겨쳐버리고 후에 군인을 밭일이나 잡일하는데 썻기때문에 망했죠. 또한 실학을 배제한 결과 과학,경제,교육이 개판났습니다. 한나라에서 지도부가 똑똑하지 못하고 고집만세고 국제정세가 어떤지 모른다면 어떻게되는지 조선이 보여준거죠.
@Jerry-e7p
@Jerry-e7p 2 жыл бұрын
꿀잼입니다!!
@happy-rich_5
@happy-rich_5 2 жыл бұрын
시원하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인다면 광활했던 고려 영토를 최소한 고려 황제가 심양왕 이라면 심양을 중심으로 나라가 있었어야 하는데 조선과 일제와 식민사학자들이 축소해도 너무 축소함 고려는 옛 광활한 고구려 고토를 회복하자 했으니 동서 6천리 였던 거라면 적어도 하북성과 만주는 기본이고 서희가 담판으로 얻은 땅인 강동6주는 거란과 마주한 대륙의 어느 강의 동쪽이라야 말이 됩니다.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흐음 심(양)왕은 원 간섭기때 충선왕이 원으로 부터 받은 작위이지 그전부터 고려의 땅이였던게 아닐텐데요?
@물소추적-j6c
@물소추적-j6c 2 жыл бұрын
심양왕은 그냥 명예직인데
@애계인
@애계인 11 ай бұрын
합리와 패기가 어우러진 자긍심을 가진 나라 고려를 배신한 민족의 역적 이성계
@golden_radix4354
@golden_radix4354 Жыл бұрын
너무 교과서적이긴 하지만 정리는 깔끔하네요. 후삼국시기 고려가 패자가 된것은 실력으로 된건 아닙니다. 엄밀히 후백제가 더 우위에 있었던건 사실이고 후백제가 내부에서 붕괴되고, 신라 또한 후백제에게 병합되는니 왕건을 택한거고요. 어부지리로 삼국의 패자가 되었지요. 역사에 만약이라는건 없지만 후백제가 통일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yck-c1t
@yck-c1t Жыл бұрын
우리가 아는 고려 영토. 발해가 멸망하면서 거길 거란만 차지했다는건 말이 안된다고 본다. 고려가 힘의 공백이 생긴 곳을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는건
@vivivi3865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발해 영토 상당 부분은 고려가 간접지배했습니다. 발해 멸망 이후 엄청난 규모의 발해인들이 고려로 귀부해왔는데 귀부라는 것이 애시당초 명목상이든 실질상이든 영토를 들고 오는 개념입니다. 즉 고려가 무력으로 발해의 영토를 빼앗았다기보단 거란이 제한된 인구를 가지고 그 넓은 땅에 거주하는 발해인과 여진인을 직접지배할 명분도, 역량도 없었기에 각지의 상황에 따라 자연스레 고려와 거란 양쪽으로 흡수된 것이죠. 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과 그 땅을 무조건 100% 지배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는 거예요. 한편 고려의 간접영토는 귀주대첩 이후 더욱 확장되었고 고려 문종 시절에 절정에 다라 매우 광대한 제국을 완성했습니다. 고려사에는 고려의 동북 경계가 고구려보다 확장되었다고 기록됐을 정도니까요.
@로갓-i8w
@로갓-i8w Жыл бұрын
고려의 행정능력이 ㅈ밥이여서 불가능합니다. 당장 한반도 내 호족 세력도 정리 못한게 고려고 현종때 지방제도 확립하면서 누를여고 하긴했는데 성공이라고 보긴 힘듭니다. 교과서에서 후삼국이 걍 그 셋이서 경쟁하고 빠르게 훅 지나간것 처럼 말해서 그렇지 군소세력이 ㅈㄴ 많았고 그 호족들이 ㅈㄴ 셌습니다. 고려국왕이랑 비빌정도의 병력을 가졌던 호족도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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