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부산 도심ㅣBusan City Center in the 19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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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여지도 Korean Geographic

대한여지도 Korean Geographic

Күн бұрын

1910년대 부산 도심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도시가 워낙 커지고 도처에 높은 건물이 가득하지만
부산이 도시화되던 초기에는 지금의 중구, 특히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가 개발되며 도심을 형성했었죠.
바다를 계속 매축하면서 당시와는 지형이 달라진 곳도 있고, 다른 곳으로 이전한 기관도 많습니다.
110년 전 부산 중심은 이런 모습이었구나,
도시의 역사를 보는 마음으로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산 #1910년대 # 역사사진 #BusanKorea #부산어시장 #남포동 #광복동
사진 출처 : 한국저작권위원회(www.copyright....)
각 사진 밑의 제목은 제공된 사진에 있는 그대로 적었습니다.

Пікірлер: 248
@koreangeographic3860
@koreangeographic3860 3 жыл бұрын
바로잡습니다! 04:00 경찰서로 표시된 곳은 일본인 거류민단 사무소였던 곳이고, 경찰서는 맞은편 건물입니다.
@---uk7je
@---uk7je 3 жыл бұрын
원래 부산의 행정중심은 바닷가가 아니라 내륙에 있던 동래부였지요. 해변쪽은 그야말로 조그만 어촌일 뿐이었습니다. 수산시장 등에 조선사람이 많이 안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일 겁니다. 개항후 일본인들이 바닷가쪽에 자리를 잡으면서 선진문물이 대거 들어오자 조선인 가운데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바닷가쪽으로 이동하며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지요. 부산에ㅅ 본격적으로 상수도가 들어온 것도 개항 이후인데 원래 보수천물을 이용했으나 상수도 수요가 많아지자 대한제국과 일본인 거류민단이 반씩 돈을 부담해서 만든 것이 초읍에 있는 성지곡수원지이지요. 그 외에 용미산을 깎아 바다를 매축해서 항구를 넓히는 등 부산의 근대적인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가내수공업 수준에 머물렀던 조선의 산업과 고리대금업 수준에 머물던 조선의 금융으론 일본의 앞선 산업과 금융을 막을 힘이 없었지요.
@shibato4733
@shibato4733 3 жыл бұрын
성지곡수원지보다 더 일찍 일제는 대신동 현 동아대학병원 자리와 구덕국민학교 위에 그리고 재만디 (현 대신동 꽃동네) 에 3곳의 수원지를 만들어 대신동, 부민동, 부평동, 보수동, 대청동, 동광동, 창신동,에 상수도를 공급하였지요 부산항 1부두 2부두 3부두의 매립은 복병산 현 중부경찰서 건물 바로 뒷부분을 절개하고 또 중부경찰서 앞에 있던 조그만한 산 하나를(현 교보생명자리 ) 전부 밀어 매축용 토사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현재 영주동 봉래국민학교 옆에서 동광동으로 가는 언덕 샛길 밑의 절개지 전부를 깍아 매축용 토사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30여년전 중앙동 현 부산우체국옆의 빌딩 터파기 공사를 하던중 지하 10m를 정도 파내려가 보니 매립용토사를 그냥 바다에 부어 매립한것이 아니라 1m 간격으로 지름 10cm 정도 길이 한 2m 정도의 나무를 촘촘하게 박아 놓았던 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일제가 아주 일을 촘촘하게 잘해놓았습니다 참고로 부산항 개항이후 부산에서 단 한번도 침수와 하천범람이 된적이 없는 동네가 부평동, 부민동, 창신동, 대신동,보수동,입니다
@amoregang7280
@amoregang7280 3 жыл бұрын
부산을 꼭 홍콩 / 마카오 처럼 어떠한 특구나 특별 무역시로 만들었음 좋았을꺼 같아요 ㅎ 카지노라든지 S 산업도 적극 허용하구 ㅋ
@---uk7je
@---uk7je 3 жыл бұрын
@@shibato4733 고수분의 내공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집니다. 몰랐던 내용이에요.
@user-fd7li1br1l
@user-fd7li1br1l 2 жыл бұрын
대신동 지금도남아있는꽃마을에제3저수지 74년ㄷ 뚝이터져 철거되고 구덕터널이생긴 제 1저수지 지금은매립되어 주택이들어선 동아대병원올라가는길에 왼쪽편 제2 저수지가있었지요
@shinwoori84
@shinwoori84 2 жыл бұрын
인천과 부산의 역사가 거의 비슷하네요 . 조선 시대까지 내륙에 있던 행정중심지가 개항 후 항구 주변으로 옮겨졌다가 현대에 들어 다시 원래 자리로 옮겨진것까지 완전 비슷합니다.
@cjh742
@cjh742 17 күн бұрын
잘 봤습니다^^ 100년도 넘은 부산 원도심의 풍경ᆢ바닷가라 왜국에 의해 조성된 건물들과 거리를 보니 안타깝고 씁쓸하네요
@user-zt7zh9ye2b
@user-zt7zh9ye2b 3 жыл бұрын
귀중한 자료 고맙습니다. 다음도 기대할께요
@TheGene1225
@TheGene1225 3 жыл бұрын
오래 전에 돌아가신 제 부친이 1910년 부산에서 태어나셨는데, 동래중학교를 다니셨었고.. 그 당시의 부산 모습을 보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감사합니다.
@user-vs9dm1gv6j
@user-vs9dm1gv6j 3 жыл бұрын
부친께서 동래중학교 다니셨어면, 동래쪽에서 태어나셨는지요? 부산에서 수대에 걸쳐 살아온 토박이를 잘 접해보질 못해서 궁금하네요. 저의 부친은 1928년 초장동(町) 태생입니다.
@TheGene1225
@TheGene1225 3 жыл бұрын
@@user-vs9dm1gv6j 제 부친은 1910년생인데,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정확히 동래에서 태어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부산에서 일제시대에 관리생활 하셨답니다.
@user-vs9dm1gv6j
@user-vs9dm1gv6j 3 жыл бұрын
@@TheGene1225 1910년 강제병합 해에 태어나셨어면 제적등본에 출생기록이 없을까요? 저는 부친 그리고 조부님께서 부산 어디서 태어나셔서 죽 생활하셨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네요. 부산의 역사는 예전에 부산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사람들이 주인공이라 생각합니다. 제주변에 진정한 부산토박이가 없어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드렸습니다. 수고하세요 ~
@user-ix9rh1xv2z
@user-ix9rh1xv2z 2 жыл бұрын
동래중학교를 다니셨다면 공부를 잘 하셨던 분이네요
@TheGene1225
@TheGene1225 2 жыл бұрын
@@user-ix9rh1xv2z 말씀을 하시니 제 아버님의 학력에 관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 등에 엎혀다니며 한자를 배우시고, 동래중학교 재학중 월반도 하여 일찍 졸업, 일본에 가셔서 대학에 입시하려고 했더니,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일본 고등학교에 다시 다니라고 하여 교또에 있었던 제3고등학교를 들어가시고, 후에 교또 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 그러나 유학생들의 대한독립운동에 가담하셨다가 퇴학당하고, 감옥생활후 동경제대 법학부에 응시, 합격하여 1937년에 졸업하셨습니다. 제 조부님 말씀에 의하면, 아버님의 일본에서의 학생시대의 별명이 ‘한또노 슈샤이’. (반도의 수재), ‘대한 반도에서 온 수재’ 이었다며, 저희 꼬맹이 손자들 ( 11, 9, 7, 3 세) 네 아비처럼 공부 잘 하라고 격려하며 얘기하시던 ( 6.25 피난시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의 자랑이셨던 아버님이셨습니다. 다음에 한국 방문하면 옛 동래중학교 한번 찾아가볼 작정입니다. 동경대학과 경도대학, 제3고 등은 지난 수년간 동안에 방문하였었습니다. 너무 장황히 얘기한 것 같습니다만, 언급을 하셨기에 말씀드린 것이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user-db5bo2bb4t
@user-db5bo2bb4t 3 жыл бұрын
귀한 사진들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
@jonghopark8185
@jonghopark8185 3 жыл бұрын
사진 속 남포, 자갈치, 부산역 부근을 보니 지금의 부산이 어느 정도 그려지면서도 신기하군요. 바다와 산이 맞닿아 있는 곳.
@user-wd7jx7rd8d
@user-wd7jx7rd8d Жыл бұрын
소막마을 비석마을 일본만행곳곳처처.
@kidultvideo1504
@kidultvideo1504 3 жыл бұрын
항상 잘 알려지지 않은 사진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user-ft7xh1xq6n
@user-ft7xh1xq6n 10 ай бұрын
대단합니디. 부산 역사 정말 알차고 좋습니다 역사적 가치가 충분한 영상이라 생각됩니다.
@userd0513
@userd0513 2 жыл бұрын
나의 고향이 부산인데 부산 영상을 흑백으로 보니깐 이상해요 옛날 부산이 저랬구나 생각도 했어요 1910년이면 제가 태어나기 전이네요 옛날 영상도 보관 하고 신기해요 옛날 부산은 어떻게 생겼나 궁금 했는데 유튜브로 검색 하니깐 나오네요 유튜브는 뭐든지 다 있네요 궁긍증이 풀렸네요 아주 오래된 부산 영상 잘 보겠습니다
@davysihn2633
@davysihn2633 15 күн бұрын
좋은 자료 감사히 잘 봤습니다.
@bluerose6658
@bluerose6658 3 жыл бұрын
저 부산역 건물은 참 아깝단 말이지 정말... 건축미가 뛰어난 건축인데 저게 전쟁통에 불타 사라졌으니 참 아쉽도다... 비록 일본이 지은 건물이지만 그것또한 우리 한반도의 역사이고 해방후 우리가 쟁취한 전리품중 하나였을 것인데
@user-wd7jx7rd8d
@user-wd7jx7rd8d Жыл бұрын
확실하게 지워야할 일본잔제건물을 애매히 곳곳에두면 일본은 곡해할것. 싹없애야함.
@atoz274
@atoz274 Жыл бұрын
부산역은 일본 건축가 다쓰노 긴고의 작품이고 이사람이 몇년뒤에 지금도 있는 동경역을 설계했죠. 부산역은 준공당시는 동북아 최대규모였는데 53년말 화재로 불탄게 아까웠다는.
@user-em5yw1yi5i
@user-em5yw1yi5i 11 ай бұрын
일본인이 지었다니 조선인들이 재료 구하고 조선인들이 지었는데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그렇다면, 그 부산역을 복원하면 안될까요?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력이라면, 충분할텐데! 글쎄요? 아무리생각해봐도 정치권에서, 가만두지않겠지요?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평가받는 건축물이라고하더라도 일본이라면, 앞뒤로 생각해보지도않고 주구장창, 반일프레임으로 정치권에서, 그동안 수도없이 짭짤한 재미를 봐왔던, 민주당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아마도, 입에 게거품을 물고 덤벼들겠지요?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user-wd7jx7rd8d 허허, 그렇다고 일제가 36년동안 지배한, 우리나라의 흔적이 사라집니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건축물들을 보존하는것이 현명할텐데, 1979년에 철거한 르네상스풍의 부산세관 건물도 참, 안타깝네요! 당시의 부산시 공무원들의 행정처리가 정말로 어처구니가없습니다!
@user-lr9gs6kh8i
@user-lr9gs6kh8i 3 жыл бұрын
초량왜관이 있던 용두산 인근은 원래부터 조선인이 거의 살지 않았고 일본인 거류지 였어요 조선시대 부산의 중심은 동래이고 남쪽으로는 조방앞 인근 (범일동 좌천동) 이 부산진성이 있어서 동래 다음으로 큰 고을 이었죠 저 시기의 사진에 용두산 인근에 유독 일본인이 많고 일본풍인 것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애초에 조선인이 살지 않았던 곳이기 때문이죠
@user-gv1jr7nu5l
@user-gv1jr7nu5l 3 жыл бұрын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Mghjfhjkk
@Mghjfhjkk 2 жыл бұрын
예전 부산역. 세관. 우체국 건물 참 이뿌긴 하네요.
@miralee7888
@miralee7888 Жыл бұрын
흑백 100년전이지만 생선더미시장의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난다 그리고 내가 이때 태어나 부산에 처음 갔다면 느꼈을 느낌이 부산이 굉장한 산업도시였을거 같다
@user-xi7ql8lf8k
@user-xi7ql8lf8k 3 жыл бұрын
와 진짜 신기하다 지금 모습이랑 상상도 안되네여.. 현재 사진이랑 비교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user-bw6gc9rf4q
@user-bw6gc9rf4q 2 жыл бұрын
부산이 우리나라 제2 도시인 만큼 사통팔달의 도시이기도 하죠. 부산이 제2 도시답게 방언도 서울말 즉 표준말 다음으로도 부산말 즉 경상도사투리도 많이쓰고...경상도사투리하면 다른 경상도지역들도 통틀어 포함하지만 경상도말이 부산말로도 가장 잘알려졌죠.
@Lily_of_the_valley93
@Lily_of_the_valley93 3 жыл бұрын
110년이면 지금 살아 계신 분도 계실텐데 진짜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상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ㄷㄷ
@user-gkstjd04
@user-gkstjd04 3 жыл бұрын
아무도 없을거 같은디
@user-gw2zu5do2r
@user-gw2zu5do2r 3 жыл бұрын
손으로 꼽을 정도겠지만 계실 것 같네요.
@user-wm4wy1sq2p
@user-wm4wy1sq2p 3 жыл бұрын
냥!! 싸우지 말자냥!! 더이상 불필요한 감정낭비 말자냥!! 더 좋은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냥!! 좋은 선례를 만들자냥!!
@user-wm4wy1sq2p
@user-wm4wy1sq2p 3 жыл бұрын
냥!! 싸우지 말자냥!! 더이상 불필요한 감정낭비 말자냥!! 더 좋은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냥!! 좋은 선례를 만들자냥!!
@user-wm4wy1sq2p
@user-wm4wy1sq2p 3 жыл бұрын
냥!! 싸우지 말자냥!! 더이상 불필요한 감정낭비 말자냥!! 더 좋은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냥!! 좋은 선례를 만들자냥!!
@lowlanz
@lowlanz 2 жыл бұрын
부산은 6.25 피난처가 되면서 제 2도시가 된거라 그 전과는 많이 다를듯. 지금 부산사람들도 이 시절부터 부산출신 조상인 경우는 별로 없을거임. 사실 제 2도시가 1도시랑 지도 정 반대편 수준으로 너무 먼것도 다른 나라에서는 드문일. 6.25만 없었더라면 서울 평양으로 나름 분산도 되고 수도가 국토의 중심에 있어서 더 볼만했을텐데
@user-yn8zx5ie9f
@user-yn8zx5ie9f 2 жыл бұрын
신라시대때는 동래 고려시대때는 현재지명으로 동래,동구,다대포 조선시대 군대가있던곳이 동래(동래부경상좌수영)동구(만호가있던부산진성)다대포(경상우수영다대포성)처음왜관은 부산포항 동구 좌천동과범일동 인근인 부산포왜관(1407년) 두번째왜관 두모포항 동구 수정동 두모포왜관(1607-1678년) 마지막왜관이 부산항 용두산공원인근 초량왜관(1678-조선말)입니다 두모포왜관자리는 초량왜관으로 옮겨진뒤 용두산공원과 더불어 부산3대공원인 고관공원이 있었으며 조선후기부터 고관공원중심으로 좌천동(부산제일부자가 살던 능풍장이있던곳)수정동,초량동(부산철도관사터)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많이거주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일정시대 부산의중심은 위쪽은 동래 남쪽은 부산진성(범일동)부터 용두산공원까지입니다
@user-zp4ty9wl6q
@user-zp4ty9wl6q 2 жыл бұрын
절영도((영도)에 임시왜관이 있었지요 임진왜란 끝나고..조정에서 외교협상 중인데도 생계가 급한 동래상인들은 이미 일본인들과 거래가 빈번했던지라.. 1601~1607년 두모포왜관 이전의 왜관입니다 지금도 수정동 왜관있던 곳은 고관입구 라는 지명을 쓰고 있습니다
@goditto5694
@goditto5694 17 күн бұрын
잘 봤습니다. 귀한 자료네요.
@user-wu9hl4kb5m
@user-wu9hl4kb5m 3 жыл бұрын
잘봤습니다
@user-ix9rh1xv2z
@user-ix9rh1xv2z 2 жыл бұрын
1971년 부터 동광동, 토성동에서 자라서 남포동, 광복동은 머리속에 훤하게 꿰고 있을 정도인데....
@user-gt7gd9jl8z
@user-gt7gd9jl8z 3 жыл бұрын
0:58 도대체 일본이야 한국이야...
@stayfitkeeptraveling
@stayfitkeeptraveling 2 жыл бұрын
귀한 사진들이네요
@user-td2yf2fd6o
@user-td2yf2fd6o 2 жыл бұрын
이거보면 영화 국제시장이 얼마나 잘 만든 영화인줄 알겠다. 고증이 너무 잘됐다.
@SamsungKimPro
@SamsungKimPro 3 жыл бұрын
부산출생이지만 바다빼고는 다 다른건물이네 ㄷㄷ
@user-vw1rv9qq2z
@user-vw1rv9qq2z Жыл бұрын
시간 여행 실제로 있다면 한번 다녀 보고 싶군요
@user-si7ot9mp2d
@user-si7ot9mp2d 3 жыл бұрын
부산이 진짜 우리나라 밥벌어 먹고살게해준 1등도시다.
@user-yb7wu5kx7h
@user-yb7wu5kx7h 3 жыл бұрын
1910년이후 사진마다 전신주 1915년 부산동구 초량에도 전신주가 들어섰네요?
@user-zp4ty9wl6q
@user-zp4ty9wl6q 2 жыл бұрын
조선에 전깃불이 도입된 것은 1887년(고종 24년) 입니다. 경복궁의 건천궁에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해로부터 불과 7년 5개월 만에 ... 베이징의 자금성은 물론, 일본의 궁성보다 약 2년 앞질렀습니다
@user-yb7wu5kx7h
@user-yb7wu5kx7h 2 жыл бұрын
@@user-zp4ty9wl6q 그렇군요 좋은 정보 감사해요🙂
@821marcello
@821marcello 3 ай бұрын
@@user-zp4ty9wl6q 일본 도쿄에서 전등이 시작된 것은 1882년입니다. 화력발전소에 의한 본격적인 전력공급이 시작된 것이 1887년입니다.
@user-oh3zx2wm3p
@user-oh3zx2wm3p 3 жыл бұрын
어렵겠지만 현재모습이랑 과거모습 같이 비교하며 올리면 더 좋을거 같습니다..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tomboy8144
@tomboy8144 3 жыл бұрын
중앙동 2가 에서 육이오 때 낳으니 어릴때 놀던 우남 공원 광복동, 동광 국민 학교
@user-bt3tu9nk1u
@user-bt3tu9nk1u 3 жыл бұрын
동광선배님 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제가 다닐때만해도 교복에 모자쓰고 다녔습니다 항도에 가슴속에 용두를타고~
@tomboy8144
@tomboy8144 3 жыл бұрын
@@user-bt3tu9nk1u 반갑습니다. 학교가 없어졌다고 들었어요
@user-bt3tu9nk1u
@user-bt3tu9nk1u 3 жыл бұрын
@@tomboy8144 네 동광국민학교는 없어지고 그자리는 지금 공영주차장으로 쓰고있고 학교는 남일초등학교와 합병이되어서 광일초등학교로 바뀌었습니다 학교위치는 옛날 남일국민학교 자리입니다~
@tomboy8144
@tomboy8144 3 жыл бұрын
@@user-bt3tu9nk1u 네, 감사합니다
@user-vz3th5gc4h
@user-vz3th5gc4h 17 күн бұрын
전 남일국민학교 졸업​@@user-bt3tu9nk1u
@park-ps8jm
@park-ps8jm 2 жыл бұрын
감사 합니다ㅡㅡㅡㅡㅡ
@yjrm7634
@yjrm7634 2 жыл бұрын
부산역과 세관 우체국 한국은행 건축물은 서울역과 못잖게 예술적이고 아름답네. 불타도 석재와 벽돌로 지은 건물이라 다시 복구할 수 있을텐데 철거해 버렸나 보군? 설계는 일본이 했겠지만 우리 땅에서 나는 건축재료로 우리 노동자가 지었으니 우리 것인데 아깝다 살렸으면 근대문화제인데.
@user-zp4ty9wl6q
@user-zp4ty9wl6q 2 жыл бұрын
네. 아쉽지만... 그때와 지금의 부산역은 위치도 다릅니다 일본인들은 편의 때문에 중앙부두 항구와 인접한 곳에 철도와 연계해야해서 바닷가에 역을 지었습니다 옛날사진 보면 잔도에서 배에서 내리면 해안선을 따라 철로가 깔려 기차가 달렸습니다 일본인은 밀려들어오고.. 수탈물자는 열차로 실어 배타고 일본으로..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허허, 그러면 그 부산역을 복원하면 어떨까요?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력이라면 충분할텐데! 그리고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공감대가 이루어져도 정치권에서 반발이 심하겠죠! 그러니까, 즉 주구장창, 반일프레임으로 정치권에서 그동안 많은 재미를보고 짭잘한 이익을얻었던, 민주당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 사람들은 일본이라면, 앞뒤로 생각해보지도않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영상에나오는 부산역의 자리는, 그 건축물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바닷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중앙동 일대부터 부산진역까지는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있었던 그곳을, 영주동 일대의 산들을 깎아서 그 바다를 매립하였던것이지요! 아무튼 부산이라는 도시는, 일본사람들이 근대화시킨 도시였습니다!
@yunsikjeong4246
@yunsikjeong4246 3 жыл бұрын
현 시점에서 보면 광복동 일대를 원도심이라 할 수 있지만, 1910년대를 기점으로 본다면 '부산 도심'보다는 '일본인 거주지'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자료 사진에 보면 초량 장면에서 한국인들 모습이 보이지만, 다른 사진은 대부분 일본인들이 많이 나옵니다. 일본인들의 거주지이고 상업 중심지였고 한국인들은 이곳에서 노무자 또는 사업 관계로 드나드는 경우가 많았을텐데 '1910년대 부산도심'이라 하기에는..... 예를 들어서 1940년대라면 부산 도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인 중심 상권이긴 했지만 한국인들도 많이 있었을테니까요. 그러나 1910년대 당시 부산항은 일본인들이 만든 일본식 신도시 아닌가요? 그곳에 약간의 조선인들이 드나들었을뿐이었을텐데...
@koreangeographic3860
@koreangeographic3860 3 жыл бұрын
원도심이란 현시점에서 말한 거였습니다. 그곳의 1910년대 모습이란 거죠. 말씀하신 내용은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vs9dm1gv6j
@user-vs9dm1gv6j 3 жыл бұрын
그래서 광복동 일대를 일본인들 전관거류지라고 했지요..
@user-bt3tu9nk1u
@user-bt3tu9nk1u 2 жыл бұрын
제가 동광국민학교 졸업생인데 당시에 우리학교 학생들은 중학생들이 쓰는 그런 모자를 쓰고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저희학교가 광복전에는 일본사람들이 다녔던 학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참고로 옛어르신들 말로는 현재 중앙동에있는 40계단밑이 바닷가여서 그분들 어릴때 거기서 멱을감고 수영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traveleye1001
@traveleye1001 7 күн бұрын
아이고 부산아 ❤❤❤
@doldoggi3060
@doldoggi3060 2 жыл бұрын
용두산의 명칭역시 일본문학자의 시에서 나온 명칭으로 압니다 본디 귀두산, 즉 거북이 머리산이라 알고있고 뒤쪽 복병산을 넘어 구봉산이 있으니 거북이 몸이 되지않을까 합니다 구봉산을 넘어 낙동강에 이르면 구포 구명 구남 명칭역시 거북이고 근처 가 사상, 즉모래가 쌓이는 위쪽이 됩니다 사상, 사중, 사하가 나오지요 양산으로 올라가면 다시 물금증산이 나옵니다 그산역시 거북이를 이야기하고 주변은 옛가야입니다. 즉 육란귀부터 시작하는 거북의 이야기들이 산재한곳이지요
@user-td2yf2fd6o
@user-td2yf2fd6o 2 жыл бұрын
1:40 부산역 건물 너무 예쁜데 그냥 놔두지
@user-zp4ty9wl6q
@user-zp4ty9wl6q 2 жыл бұрын
부산역은 1953년 화재로 불탔습니다. 세관건물과 영주동 조흥은행건물이 멋있었는데 헐어버려 아쉽습니다
@user-td2yf2fd6o
@user-td2yf2fd6o 2 жыл бұрын
@@user-zp4ty9wl6q그렇군요. 그 이후에 지은 뭔 상가처럼 지은 부산역 건물 진짜 별로였는데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user-zp4ty9wl6q 그렇지요! 1970년대 후반이라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인식이있었을텐데, 왜 그런 부산세관, 영주동 조흥건물이 철거되었을까요? 부산세관은 부산역못지않게, 르네상스풍의 훌륭한 건물이었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당시의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수준이 그것밖에안된다는것이 한심합니다! 거기다가, 지금 민주당의 반일프레임에 갇혀있는것처럼 그때는 훨씬 더, 심했겠지요? 아무튼 졸속적으로 행정처리를한 그 당시의 부산 공무원들을 향한, 분노감을 어찌할까요? 지금와서 어쩔수없지만! 하여튼, 글쎄요?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력이라면! 그리고,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공감대가 이루어진다면? 부산역, 부산세관을 복원할수는없을까요?
@Todn-so1oj
@Todn-so1oj 2 жыл бұрын
건물 분위기 있고 이쁘네요. 지금은 네모네모 빔
@user-db5bo2bb4t
@user-db5bo2bb4t 3 жыл бұрын
1910년의 부산역, 부산세관, 부산우편국 건물들이 모두 화재로 불타버렸나요 ?
@tomboy8144
@tomboy8144 3 жыл бұрын
저가 3살때 불 낫죠. 우리 집도 타고 기억 납니다
@user-bt3tu9nk1u
@user-bt3tu9nk1u 2 жыл бұрын
원래 부산역자리가 중앙동 한진빌딩 자리라고 들었습니다~
@jongsoochung1155
@jongsoochung1155 16 күн бұрын
정부에서 과거의 유적들이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다 없애버렸습니다. 아픈 기억도 역사의 한부분입니다. 꼭 좋은 기억만이 보존 가치가 있는 유적이 아닙니다. 저는 부산 봉래국민학교를 1970년 61회 졸업생으로 졸업했습니다. 70년에 61회였으니 지금은 110 회가 족히 넘었습니다. 지금 다시 모교를 가보면 옛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과거 학교 본관이 일본인들이 지은 붉은 벽돌로 된 건물이었습니다. 이것 일제 잔재라 해서 다 밀어 버리고, 콘크리트 건물로 다시 지었습니다. 부산에서 제일 오래된 국민(초등)학교인데, 지금 학교에는 "그 오래됨"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이나 건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제 처가 이학교 초등교사였을 때, 일본 교사들이 부산을 방문 "부산에서 제일 오래된 학교"를 방문하기를 원했데요. 그 사람들이 학교을 방문하고는 다를 "고개를 갸우뚱"했데요. 학교의 역사를 느낄만 한 것이 하나도 안보이기 때문이었지요. 또 다른 아쉬운 것은 그 학교 뒷편의 당시 조흥은행 건물입니다. 위치는 부산역에서 남포동방향으로 진행하다 부산터널로 가려면 우회전해야 하는데, 바로 그 우회전 코너에 있었습니다. 건물의 모양은 지금의 한국은행 축소판 (물론 일제가 지었겠지요) ... 그것 도로 확장한다고 다 밀어 없애 버렸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픈 기억도 크게는 역사의 한 부분이다".
@Burbleish
@Burbleish 3 жыл бұрын
그 흔한 상수도 하나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앗던 나라...굳이 일본이 아니라도 선진국가가 들어와서 한번 정리 좀 했어야했음
@user-zp4ty9wl6q
@user-zp4ty9wl6q 2 жыл бұрын
그니깐요... 조선을 위해서가 물론 아니지만 상수도건설과 철도건설에 나름 본토인의 막대한 투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제 때의 항만건설로 625전쟁 때 유엔군이 들어오고 전쟁물자수송과 무기나 장갑차를 부두에서 일본으로 실어날라 수리했으니..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그러니까, 민주당사람들처럼 일본이라면 무조건하고, 주구장창 반일프레임으로 반발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안타까울뿐이죠! 일제의 36년 통치는, 정치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한 식민지였지만 그외의 산업정책과 우리나라를 근대화시킨 공로는 별개로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user-dn3hv4xp5o
@user-dn3hv4xp5o 3 жыл бұрын
귀중한자료네요
@user-cl5iv3si9j
@user-cl5iv3si9j 7 ай бұрын
틈새로 보이는 산들이 모두 민둥산이네요 😢
@user-nh5nc5qz6m
@user-nh5nc5qz6m 2 жыл бұрын
저때 건물들이 감성이 있긴하네요 요즘은 유리로 도배하는게 유행인데
@user-jc8xo4nh7u
@user-jc8xo4nh7u 3 ай бұрын
원래 그런거 아니고 이렇게 바뀌어 변화가 굉장히 비교가 되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user-zv9do8vt5h
@user-zv9do8vt5h Жыл бұрын
위대한 사진, 역사에 기록되다
@sinchong8
@sinchong8 2 жыл бұрын
야 저 부산우편국과 조선은행 건물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진짜 역사가 오래된 건물이군요. 지금도 보면 엄청 튼튼하게 보이던데 일본놈들이 뭐 짓는 거 하나는 여물게 짓네요. 하기사 남포동인가 거기는 일제시대 때 지은 아파트가 아직도 남아 있고 사람들이 다 살고 있음. 그 아파트가 일제 동양척식주식회사 직원들이 살던 아파트였다고 하던데..거기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돈이 없는 분들이 아니라 실제로는 남포동과 충무동등 부산 여기 저기에 건물과 점포들을 여러 개 씩 가지고 있는 알부자들이라고 하더군요 .
@cjfl9242
@cjfl9242 3 жыл бұрын
부산토박이로서 뭔가 가슴이짠하네
@user-xs2yg2bt3t
@user-xs2yg2bt3t 2 жыл бұрын
100년뒤에는 또 어떤 모습일지
@Copperdragon76
@Copperdragon76 2 жыл бұрын
지금 저는 동광동에서 커피를 하고 있는데 재밌네요.
@user-lu2uk3jm6e
@user-lu2uk3jm6e 3 жыл бұрын
부산의 시작은 100년 전 일본이 만든 계획도시였네요.
@user-no9fl8vn6f
@user-no9fl8vn6f 3 жыл бұрын
100년전 부산만 그럴까 서울이나 전국이 다 그랬지 믄 소리하는지..
@soonhan1
@soonhan1 2 жыл бұрын
수탈을 하려면 철도도 만들고 역사도 짓고 시장도 만들고... 그래야 하는거죠.
@user-fr4or1ut1j
@user-fr4or1ut1j 2 жыл бұрын
@@soonhan1 조선총독부는 항상 일본 국가예산의 10-20프로를 타다쓰는 입장이었던지라 일본입장애서는 수탈이 아니라 적자였습니다. 단순한 식민통치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대륙을 잇는 요충지로 영구흡수한다는 방침으로 통치했기때문에 적자도 감수한것이고.
@soonhan1
@soonhan1 2 жыл бұрын
@@user-fr4or1ut1j 수탈이 아니고 적자였다 ㅋㅋ그래서 일본이 고마우신가 봐요? 적자까지 봐가면서 우리나라를 식민지해줘서...이래서 식민지 교육이 무섭다는거..
@user-fr4or1ut1j
@user-fr4or1ut1j 2 жыл бұрын
@@soonhan1 고맙다고는 안했는데. 다만 일본의 조선통치는 단순한 단기적인 식민통치 개념으로 접근한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병합을 목적으로 두다보니 민심을 저해할 수탈같은 행위는 하지 않았다는거지. 인프라도 일본본토과 동등한 수준으로 깔려고했고. 다만 순수한 목적은 당연히 아니고 일본이라는 국가의 국력증대차원에서의 영토확장과 영구적인 국토확보차원에서일이고. 그리고 일본이 가장 중요시여기던 만주와 직결되는 교통의 요지였으니까.
@taekyukim2853
@taekyukim2853 2 жыл бұрын
정말인지... 일제 강점기이후 근대화가이뤄지며 발전한 모습을 부인할수 없네요. 정치인과지도층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다시한번 우리나라를위해 싸워준 열사분들 미국정부에 감사합니다
@user-ox6mn6io1z
@user-ox6mn6io1z Жыл бұрын
부산이당 나두부산
@ky4286
@ky4286 3 жыл бұрын
되게일본같다
@slavsquatmaster2178
@slavsquatmaster2178 3 жыл бұрын
아 부평이 부산에도 있구나
@user-ix9rh1xv2z
@user-ix9rh1xv2z 2 жыл бұрын
인천 부평을 두고 말씀 하시는건가요?
@user-lr5jg9gl8c
@user-lr5jg9gl8c 3 жыл бұрын
불과 100년전만 해도 이렇게 이웃나라한테 지배당한 나라였고 독립하고 나라 세운지 100년도 채 되지 않는 국가가 GDP 세계 10위, 군사력 세계 6위, UN에서 인정한 선진국 계열까지 된 거보면 진짜 한국의 성장 속도가 매우 빨랐다
@ogschris1844
@ogschris1844 3 жыл бұрын
박정희가 다만들었지ㅋ 김일성을 보면 알지
@쬬
@쬬 Жыл бұрын
ㄷㄷ
@amoregang7280
@amoregang7280 3 жыл бұрын
야 멋지다.... 진짜 노스텔지어가 느껴지는 흑백 사진... 솔까 해방이후 어수선했던 시절보다 110년전이 더더더 멋지네 !!! 이게 더 고급문명의 힘을 빌리면 탄생하는 문명의 기적이다 ㅋ 진짜 19세기 똥구린내 풍기던 이조에서 탈출해서 불과 몇십년만에 이룬 최대의 성과이자, 문명의 기적이였다 진짜 1970년대 부산보다 더 멋진거 같다 ㅋ 그렇다면 반도는 과거 수십년간 퇴행? ㅋㅋㅋ
@user-fp6rd8zu7t
@user-fp6rd8zu7t 3 жыл бұрын
독립운동가 보기 부끄럽지 않으냐
@user-bt3tu9nk1u
@user-bt3tu9nk1u 3 жыл бұрын
조금있으면 일본을 누르고 아시아 제일의 나라가 될겁니다~ 벌써 선진문화 대한민국이 일본을 지배하고있습니다
@reply-xb6wt
@reply-xb6wt 2 жыл бұрын
너무 왝우 티를 내심.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user-fp6rd8zu7t 허허, 위의 댓글도 일리가있는 말인데!
@tamim1083
@tamim1083 3 жыл бұрын
키이야 신기하네
@HKPark-kr5ud
@HKPark-kr5ud Жыл бұрын
서울보다 부산이 더 발전되었던 시기
@user-do5rl4yr7u
@user-do5rl4yr7u Жыл бұрын
진교지의 순항지 같은 곳
@쬬
@쬬 Жыл бұрын
ㅘㄷㄷㄷㄷ...
@jktt9406
@jktt9406 3 жыл бұрын
동남아국가는 식민지 건물유적이 많은 데,유럽풍,,,
@user-uw5pd7ox8z
@user-uw5pd7ox8z 3 жыл бұрын
일본,중국도 많음 한국만 열등감때매 일제잔재라며 때려부숨
@user-bt3tu9nk1u
@user-bt3tu9nk1u 3 жыл бұрын
다른건 모르겠는데 부산역옆 고가도로밑에 조흥은행(신한은행)건물은 그대 두었으면 좋겠더니만 없애버렸더라구요
@user-uw5pd7ox8z
@user-uw5pd7ox8z 3 жыл бұрын
@@0kumin 모든의미에서 이제나는 빛보다 어둠을 선택함 애국보수를 내새워왔던 내신념은 문재인이 당선되고 사라졌음 어떻게보면 반체제적인 주체민족주의 민주당의 똑똑한 승리임 나는 다음대선에서 민주당을 뽑을것임.
@user-ss7xh2nk2z
@user-ss7xh2nk2z 3 жыл бұрын
@@user-uw5pd7ox8z 그 시절 안 살아보고 열등감 ㅇㅈㄹ 하네..ㅋㅋ 그때는 일본 관련된 것만 보면 화나지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user-ss7xh2nk2z 허허, 위의 답글내용은 일제 36년의 역사도, 우리나라 역사니까 허물지말고 보존하여야한다는것임!
@jsm9252
@jsm9252 3 жыл бұрын
일제강점기 당시 부산도 인천만큼 발달된 도시였네요
@GGolfemiKimchiboGDetector
@GGolfemiKimchiboGDetector 2 жыл бұрын
아니 부산이 더 큰도시임;; 부산 망했나보네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그러게말입니다! 부산은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시킨 도시였습니다!
@Bobbydonothing
@Bobbydonothing 3 жыл бұрын
일본인지 구분이 안가네….진짜
@user-gr4sr9wy9s
@user-gr4sr9wy9s 3 жыл бұрын
한국을 또다시 일본으로 만들려는 세력이 아직도 참 많죠
@Haeundae72
@Haeundae72 3 жыл бұрын
@@user-gr4sr9wy9s 요즘은 훠훠 아저씨가 중국으로 만들려고 해요 ㅠㅠ
@elsid1014
@elsid1014 3 жыл бұрын
일본인지 구분안가는게아니라 우리가생각하는 조선은 일본이었음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Haeundae72 그리고, 또 이재명의 그 발언을 듣고나서, 그 옛날의 위안스카이(원세개)가 떠오르던군요! 3일천하인, 갑신정변을 진압하였던 위안스카이는, 고종 앞에서 안하무인 격으로 조선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총독처럼행세한 인물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 청나라 군대들이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얼마나, 온갖 횡포를 부렸는지 그 사실들을 모르고있더군요!
@user-jc8xo4nh7u
@user-jc8xo4nh7u 2 жыл бұрын
부산광역시 변화가 생기는거
@user-ud5td4yo8k
@user-ud5td4yo8k 2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 애기 아닌가요?
@user-vq3hq6xm9i
@user-vq3hq6xm9i 3 жыл бұрын
모든 현대식 건물 산업시설 집 건물. 일본 양식 건축믈이네 강점기란 말 쓰기가 뭐할정도로 발전시켰네
@stern121
@stern121 2 жыл бұрын
예를 들어 봅시다. 당신 집에 강도가 들었어요. 아부지 엄마, 여동생을 볼모로 잡고 죽기 싫으면 말들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골방에 가둬두고 인형 눈알을 붙이라고 하고 엄마는 밥과 요리...그리고..흠흠 여동생도..흠흠.. 당신은 또 다른 방에서 하루종일 노동을 합니다. 그런데 강도들이 심심하다고 티비를 사서 설치 했어요. 그리고 날씨도 더우니 에어콘도 설치하네? 지들 볼라고...물론 일하면서 당신도 힐끔힐끔 보기는 합니다. 그렇게 당신과 당신식구들의 노동력은 물론 집의 권리까지 싹다 이용해 먹다가 36년뒤에 경찰이 오는 바람에 도망갔어요. 근데..개x도 모르는 당신의 자식이 태어나서 우와..우리집엔 에어콘도 있고 티비도 좋은것 있었네..하면서 그 강도들이 좋은일 많이 했네....라고 하면 당신의 자식이 참 자랑 스럽겠습니다.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허허, 그렇게도 볼수가있겠네요! 하지만 아저씨 정도의 나이가되면 일제 강점기에대한, 학교에서배웠던 그런 근시안적이고 편협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큰 눈으로 더 넖은 세상을바라보는 안목도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그 시절의, 국제적인 질서상 제국주의가 난무하던 국제정세를 한번쯤 생각해보세요! 다시말해서, 매일 KBS 17:10에 방송하는 "동물의 세계"를 훑어보세요? 지금처럼, 세계가 글로벌화되어있지않고 민주화가가 되어있지않았던, 엉혹한 그 시절에는 사람사는 세상이나, 동물들의 세상이나 똑같이, 약육강식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니까, 1904년 러일전쟁에서 설령, 일본이 패망하였다고하더라도 조선이라는 국가가, 온전하게 살아남아서 독립국가를 유지할수 있었겠습니까? 당연히, 국제질서상 우리나라는 러시아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을것입니다!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허허, 그렇게도 생각할수있겠지요! 하지만 아저씨 정도의 나이가되면? 일제 강점기에대한, 학교에서배웠던 그런 근시안적이고 편협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좀더 큰 눈으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도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그 시절의 국제적인 질서상 제국주의가 난무하던, 국제정세를 생각해보세요. 다시말해서, 매일 KBS 17:10에 방송하는 "동물의 세계"와 똑같다는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글로벌화된 세상도아니고 민주화되어있지않았던 그 엄혹한 시절에는, 사람들이사는 세상이나 동물들의 세계는 똑같이 약육강식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1904년 러일전쟁에서 설령, 일본이 패망하였다고하더라도 조선이라는 국가가, 과연 온전하게 살아남을수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죠! 당연히, 국제질서상 우리나라는 러시아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을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보다도 훨씬 더 혹독한 통치를 받았을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베리아의 광할한 지역인, 벌목장같은 곳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서 혹독한 핍박을 받았을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땅은, 공산국가로 바뀌어겠지요! 그리고, 당신 답글처럼 일본을 굳이 강도라고 표현하는 방법이 타당한지 판단이 잘 안됩니다! 결과적으로보면! 과정이야어찌되었던간에 일본은 우리나라를 근대화시킨 주체세력들이었습니다! 누구 말처럼 대한제국이 유지되었다고해서 우리나라가, 자주적이고 빠른 시일내로 근대화시킬수있었다고 당신은 100% 장담할수있습니까? 그리고, 가령 일본에는없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정착되었던 노비제도만하더라도, 일본사람들이 그 낡아빠진 봉건적인 노예제도를 없애주었습니다. 그 고리타분한 양반세력들이, 순순히 자기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우리나라의 근대화작업을 일본사람처럼 순조롭게 추진할수있었을까요? 일본은 명치유신을 전후로해서, 국가의 근대화작업을 이룰때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엄청난 내전을 치루면서까지하면서 겨우 국내정치를 안정시킬수가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나이 어린, 꼭두각시인 천황을 이용해서 국가개조를한 하급 사무라이들의 단결력이 있었다는것입니다. 그와반면에 과연, 그 당시의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수있는 여건이되었을까요? 결국, 혁명이라고하는것은 아래부터의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성공할수있는것입니다!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허허, 꼭 그렇게 생각하여야만하겠습니까? 아저씨 정도의 나이가되면! 일제 강점기에대한, 학교에서배웠던 그런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좀더, 큰 눈으로, 더 넖은 세상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안목도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그 시절의 국제적인 질서, 즉 제국주의가 난무하던 국제정세도 바라볼줄알아야한다는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매일 KBS 17:30에 방송하는 "동물의 세계"를 보시면 이해가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지구가 글로벌화가 되어있지않았고 민주화가되어있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사람사는 세상이나 동물이사는 세상이나 똑같이 약육강식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1904년 설령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였다고 허더라도, 조선이라는 국가가 온전하게 살아남아서 독립국가를 유지할수있었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히 국제질서상 우리나라는 러시아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을것입니다! 만약, 그렇게되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보다도 더 혹독한 식민통치를받았을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베리아의 광활한 지역인 벌목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서 혹독한 핍박을받았을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땅은 공산국가로 바뀌어겠지요! 그리고, 위의 당신 답글처럼 굳이 일본을 강도라고 표현하는것이 타당한것인지 아리송할뿐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보면! 과정이야어찌되었던간에 일본은 우리나라를 근대화시킨 주체세력들이었습니다! 누구 말처럼 대한제국이 유지되었다고해서 우리나라가, 자주적이고 빠른 시일내로 근대화시킬수있었다고 당신은 100% 장담할수있습니까? 가령, 일본에는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정착되었던 노비제도만하더라도, 일본사람들이 그 낡아빠진 봉건적인 노예제도를 없애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리타분한 양반세력들이 순순히, 자기들의 기득권을포기하면서 우리나라의 근대화작업을 일본사람들처럼 순조롭게 추진할수있었을까요? 일본은, 명치유신을 전후로해서 국가의 근대화작업을 이룰때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엄청난 내전을 치루면서까지하면서 겨우 국내정치를 안정시킬수가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나이 어린 꼭두각시인 천황을 이용해서, 국가개조를한 하급 사무라이들의 단결력이 있었다는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싶은것은, 결국 밑으로부터의 혁명이 이루어져야만 근대화라는 작업이 성공할수있다는것입니다!
@erectro3593
@erectro3593 3 жыл бұрын
繁栄してる。 今より良い。
@user-bs6ty3uw8f
@user-bs6ty3uw8f 3 жыл бұрын
사진들을 보니 일본에 있는 도시 같네요 ㅜㅡ
@kokekuka24
@kokekuka24 3 жыл бұрын
일본이 부산에 문명을 전파해줬지
@Kevin-br6wd
@Kevin-br6wd 3 жыл бұрын
@@kokekuka24 지럴을 해요
@user-bs6ty3uw8f
@user-bs6ty3uw8f 3 жыл бұрын
@@kokekuka24 내가 말한건 일본어로 적어놓고 기모노 입고 다니니 그렇게 말한건데?! 일본에게 한자 불교 조선술 의술 청동기 철기 전파하고 가르친건 한국임을 명심해라! 문명?! 문명같은 소리하네! 7세기까지 빤스 바람으로 다니다 백제 덕에 겨우 기모노 입은 것들이!
@user-bt3tu9nk1u
@user-bt3tu9nk1u 3 жыл бұрын
@@kokekuka24 옷도 안입고 짐승처럼다니던 일본것들을 옷입혀주고 문화를 전파해쥤더니만 헛소리를 하네~ 하여튼 머리검은 짐승은 거두는거아니다
@sower37
@sower37 3 жыл бұрын
부산 원도심은 그 당시 작은 어촌이라 사람이 잘 안살던 동네라서 더더욱 그럴겁니다. 그 당시 부산의 중심은 내륙인 동래였으니까요. 사람이 잘 안 살던 동네에 일본인들이 유입되고 집을 짓기 시작하니 일본 도시와 유사해질 수 밖에 없죠.
@joncert4844
@joncert4844 2 жыл бұрын
부산포는 강화도 조약 전에도 왜와 교역을 했어요 강화도 조약 전엔 문닫고 잇던거 처럼 인식시키는 개항이란 표현은 상당히 일본 입장에서 말하는 용어죠
@user-fp2if2iq5f
@user-fp2if2iq5f 3 жыл бұрын
요즘은 부산에 왜색이 다 사라졋지. 이천년대초반까지만해도 곳곳에 왜색이 남아있었는데....한이십년전까지도 탹시타고 초량왜관 이요 하면 알아서갓고 그앞에서 약속도잡앗는데
@user-me2ig3gu9c
@user-me2ig3gu9c 3 жыл бұрын
유교탈레반의 사슬에얽메여 탐관오리착취로 개보다못한삶을 살다가 근대화된 일본이 조상들을 살려줬구나. 민중을 구한다는 미륵 정도령은 바로 다름아닌 일본이었다
@EMEVAS-pd9ob
@EMEVAS-pd9ob 3 жыл бұрын
ㄹㅇ 근대화 등한시한 조선왕족 양반들 싸그리 참수시켜야됨
@user-qt9ce6bv5n
@user-qt9ce6bv5n 3 жыл бұрын
미친놈인가 가미카제로 끌려가고 위안부로 끌려가봐야 정신차리지
@mysuperpower7161
@mysuperpower7161 3 жыл бұрын
일본은 싫은데 단발령으로 상투 없애준것은 정말 감사함. 부모가 주신 몸이라고 강제로 머리카락 안자를려고 자살한 사람도 있다던데, 일본아니였음 우리나라 아직 상투틀고 이상한 사상 가지고 생활했을듯.
@reply-xb6wt
@reply-xb6wt 2 жыл бұрын
왝우 티를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거부감 생김.
@sosalsa5350
@sosalsa5350 2 күн бұрын
일제 시대가 더 아름다웠던 도시 같은데 이떡하다가 도로 사정 개판이고 지금 처럼 슬럼 도시가 되었는지 무능한 한국 기성세대들
@user-kf6wu8zs9q
@user-kf6wu8zs9q 3 жыл бұрын
잃는다는것은. 바보
@m.revolution
@m.revolution 15 күн бұрын
양아치 너무 많아
@taewoocho507
@taewoocho507 4 ай бұрын
부산 원도심은 동래! 남포동이 원도심이라니 황당하네. 왜 동래부사가 임진왜란때 자주 등장하는지 생각해보세요.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허허, 아저씨! 역사인식이 조금 모자라네요. 임진왜란때와 한일합방 이전의 동래부와 부산포라는 지역은, 전혀 다른 행정구역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사람들이 그 부산포라는 작은 어촌을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화시킨 도시로 발전하면서, 부산이라는 도시이름으로 발전하였던것입니다. 그리고 일제시대때, 부산시는 동래지역을 부산으로 흡수하였던것입니다!
@taewoocho507
@taewoocho507 3 ай бұрын
@@user-yp5mk7tw6y 그렇다면 1950년대 부터 일류 고등학교로 불리던 동래고는 어떻게 설명되나요? 부산포는 지금의 인천처럼 항구로서 중요성이 있었지 행정중심의 역할은 있었나요? 할아버지에게 들은 말이 해방 후에 남포동은 그냥 해안 수산 시장이고 왜관(지금의 초량)은 일본인 거주지일 뿐 모든 행정과 교육의 중심지는 동래였다고 합니다.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taewoocho507 허허, 나원참! 위의 답변내용으로 당신은 젊은사람으로보이는데! 1910년경에 이미 경부선철도가 개설되었고, 남포동 부근인 중앙동일대에 훗날에 세워질 경성역(서울역)보다도 규모가, 훨씬 큰 부산역이 건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중앙동 옆이며 용두산 근처에 부산부청(지금의 부산시청에 해당하는 행정기관임)이 설치되면서 그 일대가 부산의 중심지로, 도심지로 발전되고, 남포동일대는 최고의 번화가로 변모하게됩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는 우리나라가 해방되어도, 그 지역일대는 부산시의 중심지역할을 계속하게되는것이지요! 그러니까, 부산시청도 계속해서 그 자리에있었다는것이죠! 다시말해서 해방되었어도, 일제시대의 모든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1990년대쯤가서야, 비로서 서면일대가 부산의 중심지역할을하였으며 부산시청도 동래 조금 아래지역인 연제도으로이전하였다는것입니다! 그리고, 1950년대면 동래지역은 부산의 변두리지역에 불과할뿐입니다. 6.25전쟁때의 피난민들도 동래가아니라, 부산역일대로 몰려와서 거처를 마련하였고 부지가 좁은 관계로해서, 산중턱까지 판자촌을 이루고 살았다는것입니다!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허허, 나원참! 위의 답글로보면 당신은 젊은사람으로보이는데! 1910년경에는, 이미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어있었고 중앙동에는, 훗날에 세워질 경성역(서울역)보다도 규모가 훨씬 큰, 부산역이 건립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중앙동 옆이며 남포동 근처에 부산부청(지금의, 부산시청에 해당함)이 들어서게되면서, 부산은 본격적으로 근대화된 도시로 발전하게되는것입니다!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해방될때까지 남포동 일대는, 부산시의 중심지역으로 발전하였다는것입니다. 해방되고나서도, 여전히 남포동일대는 부산의 최고 번화가로서 번영을 누리고있었고, 아마 1990년대에 동래 조금 못미친 지역인, 연제동으로 부산시청이 이전하면서 비로서, 서면일대가 부산의 중심지역할을 하게된다는것입니다. 그리고, 1950년대면 동래는 부산시의 변두리에 불과한 지역이라서 6.25전쟁때의 수많은 피난민들도 동래가아니라, 부산역 일대로 모여들었지만 지역이 좁은 관계로 그 부근의 산중턱까지 판자촌을 이루고살았던것입니다!
@dakzang
@dakzang 3 жыл бұрын
부산에 있는 일본인들 사진으로 보니 일제시대 한국인으로 살면서 일본인 은근 눈치보며 사는게 얼마나 더럽고 부조리했을지 글로 읽을때랑은 다르게 느낌이 확 오네요 ;;
@kimtaiyoung2020
@kimtaiyoung2020 3 жыл бұрын
천멸조선 !!!
@elroyguitars4425
@elroyguitars4425 2 жыл бұрын
왜 화가 날까요?
@user-lc3gw1ff8c
@user-lc3gw1ff8c 3 жыл бұрын
부산에 일본 피 많이 섞였을듯...ㄷㄷ
@user-oy9pu5pp8f
@user-oy9pu5pp8f 3 жыл бұрын
터진 도너츠같은 소리.. ㅉㅉㅉ
@user-oh8em7dm9k
@user-oh8em7dm9k 3 жыл бұрын
생각하는 수준....
@United_KR
@United_KR 3 жыл бұрын
생각하는 수준이 참...
@user-br9fx8kz4d
@user-br9fx8kz4d 3 жыл бұрын
일. 본. 놈들. 사 정. 하고나오먼서. 일. 본. 새끼. ㅋ ㅋ
@user-ij7wu1im1q
@user-ij7wu1im1q 3 жыл бұрын
고향이 부산이지만, 일본인 혼혈들을 못봤습니다. 나이든 어르신들한테도 일제시대에 일본 혼혈들이 부산에서 많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못들었고요. 그흔한 강간이야기도 못들어습니다. ................의외로, 일본 남자들이 한국여자들을 거의 건들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남자들도 일본여자들 건들지 않았던거 같고요. 서로서로 조심했던것 같습니다.
@treekit554
@treekit554 3 жыл бұрын
저당시 일본이 세운건물을 부시지않고 존치시키는게 맞다라는놈은 매국노다.
@user-yp5mk7tw6y
@user-yp5mk7tw6y 3 ай бұрын
무슨 귀신 신나락까먹는 헛소리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진 낡아빠진 소리를! 나원참 어이가없구먼. 멀리 나갈 필요도없고 대만을비롯한, 동남아 국가를 가봐라! 그 옛날, 식민통치를받았던 시절에 건립되었던 건축물들을 그 나라사람들은, 온전하게 역사적으로, 문화적인 가치로생각해서 온전하게 잘 보존하고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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