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Рет қаралды 870,170

tvN

tvN

6 жыл бұрын

tvN 알쓸신잡2 (2017)
: 분야를 넘나드는 잡학박사들의 지식 대방출 향연!
국내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펼쳐 딱히 쓸데는 없지만 알아두면 흥이 나는 신비한 '수다 여행'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알쓸신잡1] 보러가기 ▶️ • 다시보는 [#알쓸신잡] 시즌1
🔮[#알쓸신잡2] 보러가기 ▶️ • 다시보는 [#알쓸신잡] 시즌2
📜[#알쓸신잡3] 보러가기 ▶️ • 다시보는 [#알쓸신잡] 시즌3

Пікірлер: 640
@tvNOfficial
@tvNOfficial 2 жыл бұрын
언제 봐도 유익한 [#알쓸신잡] 시즌2 정주행하기😎 👉 kzbin.info/aero/PLgbB1gJhmG7BW2B6lZ4NFGLlzZTBjzfGH
@varam5787
@varam5787 4 жыл бұрын
모두가 평등하다는 현재도 학연 지연 따지는데 그땐 오죽 했을까
@user-wo4wr3qj8r
@user-wo4wr3qj8r 3 жыл бұрын
@@HIDEKILLER83 그니까 지금은 표면적으로라도 그렇잖아
@MLB2222
@MLB2222 2 жыл бұрын
@@HIDEKILLER83 ㅋㅋㅋ개똥철학 시전은 친구들 한테나 하세요
@alwaysutd589
@alwaysutd589 4 жыл бұрын
문종이 진짜 오래 살았어야 했는데...세종 업적에 대부분 관여했고 군사적인 부분은 거의 도맡아 했고 역사책도 많이 편찬해서 진짜 나라의 근본을 만든 왕인데... 진짜 두고두고 아쉽다
@guswns2494
@guswns2494 4 жыл бұрын
인정합니다 . 세종대왕을 정말 빼닮은 문종이였는데 몸 약한것까지 닮아버려서...
@ohgoo
@ohgoo 4 жыл бұрын
백현준 너무 아쉬워 하지 마세요 문종이 오래 살았으면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user-sm8vv8sh9b
@user-sm8vv8sh9b 4 жыл бұрын
심지어 너무 잘생기기까지해서 사신들이 문종보고 난리였다네요ㅋㅋㅋ
@user-of4zm7px9b
@user-of4zm7px9b 3 жыл бұрын
오구 이유는요??
@ohgoo
@ohgoo 3 жыл бұрын
@@user-of4zm7px9b 나비효과요 그냥 정말 좁게 생각해도 저를 만들기위해서는 그시간에 그정자와 그난자가 만나야하는데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이게 저뿐만 아니라 제 조상들이 모두 그래야 하니깐 확률은 그냥 제로죠
@illoeup
@illoeup 3 жыл бұрын
'어린이 과학관에 왜 글이 없을까?'라는게 이렇게 심오할지 몰랐다 ㄷㄷ
@user-ng4no5ep8b
@user-ng4no5ep8b 4 жыл бұрын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장영실같은 인물이 계속나오면 사대부들의 지위가 흔들리잖아요.
@david-ji8tw
@david-ji8tw 4 жыл бұрын
공감 강북에서 수능 1등부터 10등까지 나오면 강남 집값이 흔들림
@dtericnw1c9uw
@dtericnw1c9uw 4 жыл бұрын
David lee 강남집값이 높은 건 알고있었는데 그게 아이들 교육환경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런거였군요.. 결국 나아가서 아이들이 좋은대학가고 부를 축적할수 있게 만들어 주니깐..
@jeonggaklol2650
@jeonggaklol2650 4 жыл бұрын
근데 조선 역사로 보면 조선초기에는 왕권강화를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서 인재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오히려 신진사대부들은 능력위주로 인재를 등용시켰음 그래서 조선의 황금기가 조선 초기에 몰려있음 세종, 성종 같은 왕들의 시기. 오히려 조선후기에는 수학과 과학을 천시했기 때문에 조선이 망조를 걸은거임
@user-te8po6lj4i
@user-te8po6lj4i 4 жыл бұрын
@@dtericnw1c9uw 오롯이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건 사실이죠
@curioustore2451
@curioustore2451 4 жыл бұрын
@@david-ji8tw 비유가 너무 좋아서 댓글남김 b
@1222_W
@1222_W 4 жыл бұрын
그렇게 좋아하고 믿어주던 장영실을 죽게 두긴 싫었을 수도 있으니 어디라도 가서 살도록 몰래 도망치게 뒤로 빼돌리고 그의 흔적들을 지우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상상도 해봄..
@youtube-premium-is-free
@youtube-premium-is-free 3 жыл бұрын
차라리 그랬으면
@user-cv1ey5ik3p
@user-cv1ey5ik3p 3 жыл бұрын
조선 시대 중에 제일 궁금한 부분임ㅋㅋ 도대체 어떻게 됐을까 진짜 세종이 갑자기 판단력이 없어진게 아니라면 명 나라한테서 장영실 지키려고 수 쓴게 제일 맞는 거같긴한데
@Postpark87
@Postpark87 4 жыл бұрын
진짜 어렸을 때 위인전기 읽고 가장 존경했던 분이었는데...이런분의 인생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안타깝다 ㅠㅠ
@nolboo_korea
@nolboo_korea 4 жыл бұрын
초등학교도 못나온 노동꾼이 천재였어 청와대에 불려가서 재능을 인정받고 중급공무원까지 되었을때 거기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대졸 공무원이 자기랑 동급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의 밑에서도 일하고, 그러다 큰 사건이 터지자 잘됐다 싶은듯 곤장 제대로 5대만 맞아도 걸어가지 못하고 부축받아 끌고 갔다는데 80대면 사형선고나 다름 없음... (아마 형벌이 끝나기 전에 사망) 관련자료도 꼴보기 싫고 신분제도를 넘어선 무식꾼 자료 싹 없애야 직성이 풀렸겠지 근데 현대에도 신분제가 있다
@user1486
@user1486 4 жыл бұрын
ㅇㅇ곤장 그거 단순 궁디팡팡 이 아니라고 들었음ㅜ
@user-ig7kj4lx5z
@user-ig7kj4lx5z 4 жыл бұрын
궁디팡팡 ㅠㅠㅠ 뭔데 웃기고 슬프다...얼마나 아팠을까여 ㅠㅠ
@ubermensch8852
@ubermensch8852 4 жыл бұрын
곤장 30대맞으면 생식능력이 없어진다는 기록이 있음 50대 맞기전에 보통 사망하고
@user-qe2ek5op9j
@user-qe2ek5op9j 4 жыл бұрын
뭘 멀리서 찾아..노무현이 그랬는데...그 당시 대통령 선거 나왔는데 전모씨가 상고 나온게 무슨 대통령 한다고...이 지랄하고 당시 한나라당 것들이 난 대통령으로 인정 못해...이 지랄 하고 탄핵까지 간건데...참 멀리도 간다..17년전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godfiredragon1
@godfiredragon1 3 жыл бұрын
@@ubermensch8852 곤장맞다가 사망하면 곤장때린애도 처벌받음
@moon2078
@moon2078 4 жыл бұрын
가장 가능성 높은 이야기가 아닐지....보통 기득권 세력안에 본인만의 탁월한 능력만으로 진입한 사람은 기존 기득권 카르텔에서 언제든 구실을 만들어서 내쫓을려는 습성이 있죠. 당장은 탁월한 장영실의 능력 때문에 계속 벼슬이 높아져 가는걸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지만, 이제 확실히 단죄할 건덕지를 잡았으니, 다들 떼거지로 들고 일어나서 세종에게 이런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놈을 벌하지 않으면 왕권이 우습게 여겨지고 능멸을 당할 것이라고 아주 달달 볶았을겁니다. 현재 우리 기득권 사회 모습을 비춰봐도 아주 타당한 추론같네요.
@sshim8271
@sshim8271 4 жыл бұрын
건덕지를 잡은게 아니라 만든 것이 아닐까 싶네요..
@user-vn6nl8vx1k
@user-vn6nl8vx1k 3 жыл бұрын
80년대 자수성가한 멕시코계 이민자가 성공해서 꿈에그리던 부촌 비버리힐스에 집을서서 입주했는데 백인들이 멕시칸이 여길... 퇴거시킬 방법이없자 돌아가면서 소송검.... 백인1개가 짖어서 잠을 못잔다 법정 싸움 끝나면 백인2 밤에 불을 안꺼서 조명때문에 잠을 못잔다며 소송.. 이렇게 조리돌림 몇번하니까 변호사 비용으로 재산탕진해서 결국 거지돼서 이사간 사건도있었죠
@user-xi7wn4tr2s
@user-xi7wn4tr2s 2 жыл бұрын
@@sshim8271 장영실 하나때문에 왕의 안녕을 거스르는 행위를 하는건 좀... 그거 발각됐다간 관련된 자들은 3대를 목뽑을텐데
@user-uq3ly3xz7g
@user-uq3ly3xz7g 2 жыл бұрын
@@user-xi7wn4tr2s 세종이 타고 있던 가마가 부러진게 아니라 시운행중에 부러집니다. 그러니 더욱 이해가 안되는 결정이긴하죠
@yoy9365
@yoy9365 4 жыл бұрын
장영실이 저렇게 사라졌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릴 때 장영실에 관해서 배울 때 곤장을 80대 맞고 그 이후 기록이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함. 그리고 그렇게 과학, 기술, 천재를 천대한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도 배워야 한다고 봄. 일본에게 빼앗기기 직전에 서양사람들에게 조선은 미개해 보였고, 실제로 그랬음. 그 시기(1910년대)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했을 때임. 이 어마어마한 격차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된걸까..
@dsafsd6227
@dsafsd6227 4 жыл бұрын
공이 있는 신하는 졸기까지 적어줄 정도고 죽었다고 하면 언제 죽어서 뭘 보냈다 하는 기록도 있는게 실록인데 선대왕부터 쓰던 신하를 그렇게 보낸다라.. 유시민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네..
@josephkang6513
@josephkang6513 4 жыл бұрын
분명 천출 장영실을 두고 사대부의 여론이 좋지 못했을 거고 거기서 세종은 선택을 했어야 했었을 거다. 결국 일이 터졌을 때 사대부의 손을 들어주느냐 아니면 총애하는 장영실의 손을 들어주느냐인데 세종이 장영실을 희생하는 쪽으로 간 거겠지.
@ericjeong7213
@ericjeong7213 2 жыл бұрын
제일 가능성 있는 뇌피셜 인것 같습니다. 드라마 천문의 배경이지요?
@rhs7558
@rhs7558 2 жыл бұрын
다시봐도 좋네. 유작가님의 추론에 동의하는 한 사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리고 만드는데 그것에 대한 기본 구상부터 온갖 것들을 그리고 기록했는데 거기에 버금가는 장영실이 아무런 구상과 기록도 없다는 것은 일부러 없앴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거겠죠?!
@jygood4940
@jygood4940 2 жыл бұрын
장영실이 훌륭하지만 다빈치와 비교는 좀..
@ptalove
@ptalove 2 жыл бұрын
반대로 보면 다빈치는 구상 메모는 많지만 완성된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미술사에서 냉정하게 이야기 하는건 그가 결국 쫓겨난 삶을 산 것도 증명이 되는 배경과 팩트가 있어요. 고객이 의뢰한 거에 집중을 하거나 마감일을 지키는 건 신경 안 쓰고 이것 저것 다 깊게 들어가지 못한채 정작 할 일도 못했던 산만함은 재조명 되야 한단 의견도 많습니다. 그래서 돈을 주고 기다리던 클라이언트들의 공분을 산 것도 사실입니다. 미켈란젤로같이 소처럼 일한 사람의 작품과 한 도시에의 업적을 둔 배경과 기록의 차이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sisleymania
@sisleymania 2 жыл бұрын
그쵸 우리는 기록의 민족입니다. 온갖 것을 다 기록했는데 안했을 리 없음.
@user-en4ni8rq2i
@user-en4ni8rq2i Жыл бұрын
조선후기가면 실학자 같은 지식인들이 엄청 기록많이 남겼는데 조선전기라고 할지라도 합리적으로 기록을 안 남겼을 리가 없다고 봅니다
@user-fb1jd6lw9j
@user-fb1jd6lw9j 4 жыл бұрын
여기서 자막오류가 있는데 장영실을 발탁한 인물은 태종입니다. 천민출신이던 장영실은 원래 관직을 가질수없었지만 신분의 틀을 깨고 장영실을 발탁한 인물이 태종입니다. 참고로 태종도 장영실의 재능을 아주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ㅎㅎ
@Geh-dj2zc
@Geh-dj2zc 9 ай бұрын
그래서 난 유시민이 흐려졌다고 봄
@Wstrader_
@Wstrader_ 4 ай бұрын
@@Geh-dj2zc 영상 앞내용에서 태종 떄부터 눈여겨 보고 아꼈다고 이야기 합니다. 짧은 편집영상만 말고 풀영상 보시면 다 나옵니다.
@user-qb5xd2vz4l
@user-qb5xd2vz4l 4 жыл бұрын
그놈의 사대부들. . .
@user-bluering
@user-bluering 4 жыл бұрын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나이는 이길 수 없으니 더구나 일이 과중하기로 유명한 조선의 왕 그중에서도 일 많이하기로 유명한 왕이었으니 나이 들어서도 젊어서의 혈기, 총기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테죠.
@user-np4eb8oc6h
@user-np4eb8oc6h 4 жыл бұрын
이것이 영화 '천문'의 모티브가 되죠 ㅋㅋㅋㅋㅋ 참 궁금합니다 정말.. 무슨일이 있었을까요 ㅋㅋㅋㅋ
@chicken_run
@chicken_run 4 жыл бұрын
@@dgh06175 아...그렇네... 갑자기 사라지니까
@HIRIT08
@HIRIT08 3 жыл бұрын
천문에서 나온 정도의 사고면 사형이지... 왕 얼굴에 상처냈다고 왕비도 쫓겨나는데
@storage9353
@storage9353 4 жыл бұрын
저도 유시민님의 "더이상 세종대왕이 총명하지 않았다."에 설득되고 공감합니다.
@essekor5549
@essekor5549 4 жыл бұрын
치매가왔죠...그나이에
@user-dm6lr4ym8k
@user-dm6lr4ym8k 3 жыл бұрын
유시민 대가리에서 뭘 바라나 ㅉ
@maso3188
@maso3188 3 жыл бұрын
@@user-dm6lr4ym8k ㄹㅇ ㅋㅋㅋㅋ
@ellajung1995
@ellajung1995 3 жыл бұрын
@@user-dm6lr4ym8k 너 대가리 보단 괜찮지 않을까
@user-dm6lr4ym8k
@user-dm6lr4ym8k 3 жыл бұрын
@@ellajung1995 글쎄 난 지가 한말도 모를 정도로 횡설수설 하진 않아
@younzuluciajo6583
@younzuluciajo6583 4 жыл бұрын
크 잔잔히 깔리는 비숲 브금마저 완벽한 영상이다
@JYJ0423
@JYJ0423 3 жыл бұрын
전 세종대왕님의 총명하심이 흐려졌다기 보다는 사대부의 압박이 엄청났던 거라고 봅니다. 노비 출신이 성공한 사례로 남게 되면 양반이라는 신분이 흔들리게 되니까요.
@ldh5586
@ldh5586 2 жыл бұрын
조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던 세종이 정3품까지 올려 놨는데 이제와서 압박을 못이긴다고 죽였다는건 조금 무리수인듯 합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세종대왕 스스로 장영실을 신임할 생각이 없어졌던 것 같습니다.
@package4587
@package4587 6 ай бұрын
사대부들이 권력이 한글로인해 많이 무뎌졌나? 한글보급이 언제부터였지?
@ayj4858
@ayj4858 4 жыл бұрын
근데 참 저당시엔 인터넷도 폰도 없던 시절인데다, 왕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정말 몰랐겠다..
@MHD7105
@MHD7105 3 жыл бұрын
눈치로 바로 답하는 유현준 건축가님 ㄷㄷ
@user-jh6oy5hu5j
@user-jh6oy5hu5j 4 жыл бұрын
곤장 80대면 사실상 사형이지 뭐...
@user-fd7tu2pj5d
@user-fd7tu2pj5d 4 жыл бұрын
ㄹㅇ.. 30대만 맞아도 거의 죽음 확정이였죠
@claudeachilledebussy5625
@claudeachilledebussy5625 4 жыл бұрын
그냥 회초리 찰싹찰싹도 아니고 그 커다란 나무짝으로 풀파워로 쳤을텐데...
@user-ml9yc4qm6x
@user-ml9yc4qm6x 4 жыл бұрын
10대 넘어가면 엉덩이가 허물어 터지고 장파열로 대변까지 터진다고 하죠.
@user-sh4pq4xv1w
@user-sh4pq4xv1w 4 жыл бұрын
80대? 안죽지않나 곤장이 엉덩이치는걸로아는데 어릴적운동할때 심하게사고쳐서 코치한다 야구빠따로 풀스윙30대맞고 뒤질뻔했는데 그기억생각해보면 야구빠따풀스윙이랑 곤장더크지만 무겁고 힘이 야구배트보다 덜 들갈것같은데 80대면 죽진않고 엉덩이터지거나 혹은 허리맞고 하반신마비정도..? 하긴 저당시 의학기술이딸려서 맞아서죽는것보단 2차감염으로 죽는게 맞다보네
@user-hm2qn5lr4n
@user-hm2qn5lr4n 4 жыл бұрын
@@user-sh4pq4xv1w 곤장에 힘을 크게는 못주지만 곤장이 무거워서 그 무게가 힘을 만들어줘서 ㅈㄴ아픕니다
@munsukwon8393
@munsukwon8393 4 жыл бұрын
그 실록을 뛰어넘어 1차사료라고 할 수 있는 당시의 승정원 일기만 남아있어도 자세히 내용을 알 수 있을텐데 그 당시의 기록이 임란때 불타서 안타깝네요. 그나마 그후 일기들도 이괄의난때 불타고 또 한번불타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초서체로 쓰여진 남아있는 분량들 또한 엄청나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길게는 100년정도 걸린다네요. 혹 거기에 그래도 장영실에대한 조그만 단서가 나올지 기대해봅니다.
@nope.goback
@nope.goback 4 жыл бұрын
0:55 분위기 반전에 비밀의 숲 OST다. 찰떡선곡추 드립니다
@user-bi1mp3ld4u
@user-bi1mp3ld4u 4 жыл бұрын
😭넘나좋음 듣자마자 시모기 얼굴 떠오름
@user-ef6qm1yi4v
@user-ef6qm1yi4v 2 жыл бұрын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천안편 ㅡ생각보다 너무 감동과 재미가 있엇던 편 !!ㅠㅠㅠㅠ
@chchmm
@chchmm 4 жыл бұрын
확실히 손권처럼 말년이 노망이 났을지도 모르는일이지 총명한 군주가 끝까지 총명하긴 어려운법이니까
@Son_ssi
@Son_ssi 3 жыл бұрын
무슨 소리예요? 승하하기 4년전까지만 해도 훈민정음을 반포했는데... 장영실 죽인 것만으로 노망이 난 거예요?
@pss_dk1037
@pss_dk1037 3 жыл бұрын
@@Son_ssi 노망 치매 한순간입니다...4년이면 충분한 시간이죠
@user-xd3hy5wv7e
@user-xd3hy5wv7e 2 жыл бұрын
@@Son_ssi 이미 여러 고질병을 앓고있던 세종대왕님이니 훈민정음 만드시느라 진 다빼고 만들고보니 반발하는 세력때문에 골치이고 정신이 안이상해지는게 더 힘드시죠
@brabbit1149
@brabbit1149 2 жыл бұрын
근데 손권은 원래 미친넘이었는데 손권은 노망난게 아님
@user-xs8xw5nh6m
@user-xs8xw5nh6m 3 жыл бұрын
알뜰신잡 또 만들어 주세요 코로나 끝나면 바로요~
@package4587
@package4587 2 жыл бұрын
어딘가에 묻혀있고 언젠가는 꼭 찾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aprovinus6834
@aprovinus6834 4 жыл бұрын
장형도 아닌 곤장형이라~ 임금의 명에 따라 시행했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맞다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임 숙종때 장형의 남용을 막기위해 30대 이상은 행하지 못하게 하여 목숨을 부지하게 했는데 곤장은... 왠만하면 아마 뼈 살이 다 터지고 맞가다 죽을 가능성이 큼 세종 돌아가시기 10년 전부터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고 1450년에 돌아가시니 1440년대부터 치매와 시력이 나빠지는 내용도 실록에 나와있고...
@TONYBOTTLE
@TONYBOTTLE 4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이 54에 돌아가셨는데 40대중후반부터 치매였다구요..?
@aprovinus6834
@aprovinus6834 4 жыл бұрын
@@TONYBOTTLE 네~ 세종실록을 보면 문종이 쇠약한 세종을 대신하여 세자로 정사를 돌본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때 세종이 문종의 병약함을 걱정하는 대목도 나옵니다. 1450년에 승하는데 10년전 그러니까 1440년도 쯤에는 건강이 매우 안좋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문종이 다른 군주와는 달리 국방에 관심도 많고 여러 병감과 병법서에 능통하다 나오는데 어머니 소헌왕후 3년상과 세종의 3년상이 연달아 있어 결국 건강에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태종 이방원도 세종대왕이 세자 이도였을때 원경왕후 3년상에 세자의 건강을 매우 해쳐 걱정하는 대목이 있고 자신의 사후 3년상에 고기를 꼭 먹을 것을 유언으로도 남겼지요~
@aprovinus6834
@aprovinus6834 4 жыл бұрын
@@TONYBOTTLE 치매라는 기록은 없지만 수시로 불같이 화냈다가 하는 감정의 기복과 실명정도의 시력약화와 건강에 치명적임에도 군주로서 자신의 일에 병적으로 완벽함을 보이는 것과 여러정황으로 짐작할 뿐이에요
@TONYBOTTLE
@TONYBOTTLE 4 жыл бұрын
@@aprovinus6834 치메라기보단 편집증이나 조울증 증세를 보였을수도 있겠네요
@vovllq12
@vovllq12 4 жыл бұрын
곤장은 조선시대에 사용된 형장의 일종이다. 조선왕조실록 번역본을 검색해보면 조선 초기부터 ‘곤장’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번역상의 오류이다. 곤장은 조선전기에는 사용된 적이 없다. 곤장은 한자로 ‘곤(棍)’이라 쓰는데, 고려와 조선의 매를 치는 형벌인 태형과 장형을 집행할 때 쓰는 형장 ‘태(笞)’와 ‘장(杖)’과는 다르다. 태의 모양은 에서 보듯이 가느다란 회초리를 떠올리면 되는데, 길이가 1미터가 조금 넘고 지름이 1센티미터가 채 안되었다. 그리고 장은 태보다 지름이 약간 클 뿐 모양에 큰 차이가 없다.
@user-ec8fp7my8w
@user-ec8fp7my8w 10 ай бұрын
너무 재밋어요!!
@VoidX930
@VoidX930 4 жыл бұрын
기록의 공백은 이야기의 산파..
@user-gw2zu5do2r
@user-gw2zu5do2r 4 жыл бұрын
그렇죠.
@user-pl5wc9zt2q
@user-pl5wc9zt2q 4 жыл бұрын
장형 100대에서 80대로 감형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장영실의 나이는 세종보다 15세 높은걸로 보아 장형 받을 시기의 나이는 55이상이라 추정됨. 그 시대의 나이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기에 장형을 맞고 살아있다는게 불가능할거라 본다.
@package4587
@package4587 2 жыл бұрын
너무 슬프다....
@homerunpapa
@homerunpapa 3 жыл бұрын
좋은 흐름이라는것은 길게 이어지지 않는것 같아요.. 모든 상황이 두루 맞아야하는데..
@user-sy3ri6if5s
@user-sy3ri6if5s 3 жыл бұрын
ㄹㅇ 이건 나도 궁금함. 일각에서는 종의 쇼라고 보는 견해도 있던데.. 타임머신이 있다면 장영실의 최후는 꼭 함 보고 싶음
@bbul
@bbul 2 жыл бұрын
타임머신 타고 가도 그때 언어가 이상해서 말을 이해 못한다던데
@user-uk2xm6wd8q
@user-uk2xm6wd8q 2 жыл бұрын
조선에 다시없을 천재과학자인데 세월이많이지났음에도 후대로서 죄송하구 마음이 아픕니다 ㅜㅜ
@rogue2586
@rogue2586 4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 여러 과학적 산물이 명과의 외교 분쟁 소지가 될거 같아 처리 한거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화사상에선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며 동북아는 한자를 쓰며 중화 문명권인데 변방의 조선이 독자적인 도량형을 쓴다면 충분히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일이죠. ------------------------------------------------------------------------------------------------------------------------------------------------------------------------------------------------------------------------------------------------------------------- 기록 말살형에 처해진 이유는 당시 학문를 우선시 하며 기술을 천시,멸시하는 경향이 강해서 이를 굳이 남길 필요를 못 느껴서 아닐까 합니다. 일례로 영조시기 최천약 이라는 무관은 자명종을 한번 분해 해보고 그대로 복제해서 만들고 (이전까지는 자명종 수리나 제작이 불가능했음) 일일히 가서 측정하지도 않고 육안으로 길이와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며 국가의 과학,건축에 관여 하며 조선 후기 과학기술의 정점을 찍었는데 작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주는 포상을 안 받겠다고 거부했다고 합니다. (무관인 내가 그깟 천한일로 이름 떨치면 천한 기술자 따위로 알려지며 조롱당할까 수치스러워함) 또한 임란으로 일본에 끌려간 도공들이 조선으로 돌아가길 거부했다는 기록도 자주 보입니다. 도자기 만드는 일은 매우 힘든데다 국가에서도 천시,멸시하니 차라리 기술자 우대해 주는 일본에 남아서 대우 받으면서 살자는 생각이었죠. (일본 도자기 기술이 오늘날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 갈 수 있는 원인)
@user-ke8jk7cr5x
@user-ke8jk7cr5x 4 жыл бұрын
명나라 개입설도 장영실 죽음의 가설중 하나에요. 조공국 조선의 기술 과학 발전을 아니꼽게 보는 명나라에서 세종대왕한테 정치적 압박을 줬을 가능성도 있을것 이라는 설이 있고 이걸 재구성해서 역사저널 그날에서 얘기한적이 있음.
@user-oz2dd8vb8l
@user-oz2dd8vb8l 3 жыл бұрын
고등학교때 저 비슷한말을 국사선생이 한것같다
@arthurmorgan5486
@arthurmorgan5486 Жыл бұрын
00:46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hjhjhj1703
@hjhjhj1703 3 жыл бұрын
80대 안 맞고 숨겼을 것 같아요. 황희도 고령이 될때까지 퇴직도 못하게 했는데 자기가 아끼는 신하를 곤장 80대 사형 선고로 목숨 날려버리지 않으셨을듯
@user-yn2eb9jm2w
@user-yn2eb9jm2w 3 жыл бұрын
저도 음모론을 세울거라면 이쪽
@youtube-premium-is-free
@youtube-premium-is-free 3 жыл бұрын
그런데 숨기려면 무엇때문에 숨겼을까요 자신의 명이 얼마남지 알았다는걸 알아서 다른 신하들의 시기로부터 구해주려고?
@user-fw4bb3pn3r
@user-fw4bb3pn3r 4 жыл бұрын
이 화 덕분에 영화 을 재밌게 볼 수 있었어요 ㅎㅎ
@user-yi3sc4ou9d
@user-yi3sc4ou9d 4 жыл бұрын
무민 기여웡
@user-jk4uh9vb8m
@user-jk4uh9vb8m 3 жыл бұрын
ㄱㅇㅇ
@azuggari
@azuggari 3 жыл бұрын
80대를 찐으로 맞았으면 기록이며 업적들이 보존됬을거 같음.. 살려주는대신 없었던 사람으로 만들기로 세종 이랑 사대부가 합의한거 아닐까? 저시대 사대부들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느냐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하니 자신들보다 우수했던 천민의 기록을 지우는걸 더 원했을지도..
@ganadara9900
@ganadara9900 3 жыл бұрын
어디든 언제든 자격지심에 빠져 남을 깎아내리기 바쁜 것들이 일을 망치지.
@bbyong0246
@bbyong0246 4 жыл бұрын
당시 태종이 옹주를 시집 보낸다고 어느 군수에게 니 아들 내 사위해! 했다 군수가 아니 천한 무수리의 자식을 어디 우리집안과! 안해! 했다 그 집안 공중분해되고 아들은 평생 결혼 못하게했다는 전설이... 그 정도로 당시 양반들의 권위의식이 쩌렀는데 천한 장영실의 업적을 가만 뒀을까? 그냥 없는사람으로 만들고 싶었겠지.
@user-gg9tr9yd4p
@user-gg9tr9yd4p 3 жыл бұрын
그거 전설이 아니고 사실이에요 집구석 노비되었다가 손자대에 다시 복권되었다 하네요
@user-ce7fm8gx3u
@user-ce7fm8gx3u 4 жыл бұрын
이 이야기를 알고 영화 천문을 봤을 때 아 그랬을 수도 있겠다 설득이조금 되더라구용
@user-ii9tv8bn1s
@user-ii9tv8bn1s 4 жыл бұрын
천문은 역사왜곡영화임 ㅋㅋ
@user-up5jh2ok2d
@user-up5jh2ok2d 4 жыл бұрын
영화 보고 역사 배우는 병신이 있네 시발 ㅋㅋㅋㅋㅋ
@user-mg1ux4so5v
@user-mg1ux4so5v 4 жыл бұрын
영화를 보고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으나 그게 100% 진실이다 라고 믿으시면 안됩니다!
@user-ce7fm8gx3u
@user-ce7fm8gx3u 4 жыл бұрын
@@user-up5jh2ok2d 킴복남 제가 여럿 오해하시도록 댓글을 남겼네요, 죄송합니다. 영화적 인물이해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부가적으로 얘기하면 영화에서 인물의 행동은 이유가 았어야 합니다 허구가 가미되어 있는데 설득력이 떨어지면 몰입도가 죽잖아요 세종과 장영실의 마지막은 잘몰랐고 공교롭게 이방송에서 유작가님의 이야기로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영화만보면 선넘네 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부분이 실제기록을 어떤식으로 부풀렸는지 생각하며 여러부분에서 납득이 되었다는 의미로 댓글을 남기게되었고, 영화는 영화로만 보니 걱정마시고 댓글하나에 남을 비방하려하는 편협한 사고는 정정되셨으면 좋겠네여 타인에게 하는 감탄사에 시발은 너네 가족한테나 쳐하시길바랍니다 으휴병신아
@sanakimlove
@sanakimlove 4 жыл бұрын
킴복남 piano 우리나라 영화보고 역사배우는 개돼지들이 대부분 아닌가?? 변호인만보고 노무현 찬양하고 ㅋㅋ 변호인에 놈현이 변호하던 학생부류들이 실제로 얼마나 공산주의사상에 쩔어서 단체 행동 했는지는 영화에 전혀 안나오지
@user-zd2hg5er6l
@user-zd2hg5er6l 4 жыл бұрын
근데 곤장 80대면... 사실상 이미 그때 죽었다고 봐야... 10대만 맞아도 골반 뼈가 아작나는 마당에 그 나이에 80대 맞았으면 맞다가 죽었거나 맞고 나서 죽었거나인데...
@83Crisp
@83Crisp 4 жыл бұрын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위인이신데
@8jang875
@8jang875 4 жыл бұрын
성리학과 사대주의에 썩어빠진 사대부들이 세운 조선에 저런 임금 저런 학자가 나왔다는게 오히려 기적이지 고려때만 해도 저런 나라는 아니었는데
@user-ir7td8cw5o
@user-ir7td8cw5o 4 жыл бұрын
선조까지는 성공가도를 걸어간게 조선이엇습니다..ㅋㅋ
@user-vs6wy2rk9n
@user-vs6wy2rk9n 4 жыл бұрын
중학교 교과서만 읽어봐도 이런 소리는 못할텐데 ㅋㅋ
@YMtv321
@YMtv321 3 жыл бұрын
@@user-vs6wy2rk9n 8jang , 한성은 ? 무근 댓 보고 하는 말?
@user-kz6id3ny8u
@user-kz6id3ny8u 2 жыл бұрын
역사를 곁할기 식으로 배웠나? 고려는 더 답없었음 ㅋ 고려는 스님들이 문제였지 그리고 원나라 앞잡이들 권력쥐고 악행이란 악행다지르고 그래서 백성들 조선시대때보다 더 굶었단다 ㅋ 그리고 공민왕이 게이야 그만큼 고려말 왕들 향락에 빠졌다봐야 ㅋ
@brabbit1149
@brabbit1149 6 ай бұрын
고려까지만해도 그런나라 아닌데 무신정변에 원나라 시다바리 했나? ㅋㅋㅋ역사에 무지한 애새끠들 너무 고려 올려치기하는데
@user-cg5tj5fo3b
@user-cg5tj5fo3b 4 жыл бұрын
요즘도 변함없는게 국회의원대다수가 판검사야
@chris-sn8dp
@chris-sn8dp 3 жыл бұрын
서로 밀어주고당겨주니깐ㅋㅋㅋ
@coldghostkimT
@coldghostkimT 2 жыл бұрын
0:47 감탄을 금하셨다는거네요…ㅠㅠ
@Redstoneout
@Redstoneout 4 жыл бұрын
저떄로 타임머신타고 가고싶다 ㄹㅇ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네
@user-ti6nu9lm5k
@user-ti6nu9lm5k 3 жыл бұрын
장영실 진짜 좋아하는 위인이였는데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어.곤장 아플텐데
@lovekim4687
@lovekim4687 4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의 분별력이 떨어졌다면 비슷한 시기에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실정들이 있어야 되지 않나요? 다른 일에는 평소의 세종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유독 한 사건에만 다른 모습을 보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세종 사후 장영실을 보호하기 위해 궁 밖으로 내보낸것이 아닐런지.
@user-zb7dy2up3o
@user-zb7dy2up3o 4 жыл бұрын
장영실 보호명분은 더 말이 안됨... 사실상 저때 곤장 80대면 살아있어도 사실상 죽은거보다 못한 정도로 불구되는...
@user-pc2iu2uv3w
@user-pc2iu2uv3w 4 жыл бұрын
80대면 골반 박살남. 곤장이 되게 가벼운 형벌로 취급되는데 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합니다. 엎드리면 남아있는 골반 뼈들이 제 자리를 못잡아 앉은뱅이가 되고 박살이 나면 애초에 반신불구
@onnew720
@onnew720 4 жыл бұрын
장영실을 살리기위해 80대때리고 내보냈다기에는..당시에는 엉덩이를 정확하게 가격하는것이 아니라. 뼈또 때리는추세라..
@fgjkns6982
@fgjkns6982 4 жыл бұрын
기록만 하고 실제 형을 집행안했을수도 있는거죠
@user-lv6jy2in8u
@user-lv6jy2in8u 4 жыл бұрын
역사를 그렇게 보면 한도 끝도 없음. 상상도 실마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거는 기록 자체가 깡그리 사라진거라서.
@Bobbydonothing
@Bobbydonothing 4 жыл бұрын
사람 사는건 예나 지금이나 너무도 비슷하군. 하긴 다를 리가.....
@user-vy2sz8mj6m
@user-vy2sz8mj6m Жыл бұрын
장영실 선생은 너무 맘아파요~자랄때도 힘드셨고
@Beentomoon
@Beentomoon 4 жыл бұрын
천년전이나 천년후나 기득권자들이 문제일것이다
@KPR-dg8oe
@KPR-dg8oe 3 жыл бұрын
천문 영화에 보면 세종이 본인이 가마의 쇠를 부러뜨렸다고 하는데 장영실 데려오려는 빅픽쳐라고 알았는데 아닌가요? 진짜 가서 묻고 싶다...
@theyeomgasm
@theyeomgasm 2 жыл бұрын
장영실 어가 사건은 1442년이고 세종대왕님이 재위 후반기에 들어 각종 질병에 많이 시달리셔서 세자 문종에게 대리청정케 한 것이 또한 1442년이니 충분히 가능한 추론이라 봅니다.
@NINEBLUE86
@NINEBLUE86 4 жыл бұрын
조선왕조실록은 왠만한 공작으로는 기록말살이 안됄텐데...
@tonyzi5659
@tonyzi5659 4 жыл бұрын
네 그렇긴 합니다. 왕도 고위관직의 신하도 보는것 보차 안되는 기록이니까요. 그렇지만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세종대 실록은 세종대 이후에 만들어 지니까요. 실례로 실록 연구 학자들도 그부분에 대해서 가장 개탄해 합니다. 실록의 객관성은 인정하되 후대에 의해서 편집되는 과정에서 누설과 누락등이 있었고 2-3번 정도 개편되면서 다시 손질이 가해졌을 가능성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안따까운 측면이죠. 허나 그 어느나라에도 없는 500년의 정부에 대한 정책이 전반에 걸쳐 기록된 사료는 조선왕조실록이 전세계 유일무의합니다. 단순히 박503시절 그 7시간의 기록도 애매한 현실에서 보자면 과거의 저러한 역사 기술과 기록은 높이 평가되어 마땅합니다.
@user-fh9kw3hq7w
@user-fh9kw3hq7w 4 жыл бұрын
@@tonyzi5659 좀 다르게 알고 있네요... 당대왕의 실록을 바로 후대왕때 기록하는건 공정함을위한것이며 실록 연구학자들도 안타까워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죠. 또한 실록이 후대에 편집되어가는 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뒤지고 싶으면 몰래 실록 건들면 됩니다. ㅋㅋㅋㅋ 실록은 편집 되지 않아요... 바로 오대 사고에 복사본들 나뉘어 보관시켜 놓죠. 조선이 붕당의 폐단들이 많았아도 유일하게 지켰던게 바로 실록 작성입니다...직서주의에 기반해서 말이죠... 사관의 사초와 승정원일기 각관청의 시정기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쓴고니까요
@brabbit1149
@brabbit1149 2 жыл бұрын
@@user-fh9kw3hq7w 후대에 기록하니까 의도적으로 뺀것일수도 있는거
@user-cb5ol2vv2t
@user-cb5ol2vv2t 4 жыл бұрын
예전 방송에서 나온 내용중에.. 당시 중국과의 관계때문에 독자적으로 천문기술을 연구하는것을 숨겨야 했다고합니다. 때문에 장영실의 존재와 궁내에 있던 천문기관을 사신이 올때마다 걱정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압박때문에 일부러 내치지 않았을까..싶습니다.. 장영실이란 사람을 위해서 기록도 남기지 않고요;;;
@user-tj6pv9kx5o
@user-tj6pv9kx5o 3 жыл бұрын
삭제 됐다기 보다, 없다라고 추론하는게 일단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는 승정원 일기가 남아있지 않은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실록은 어찌됐든 다음 왕대에 작성하는 기록이고, 그때 승정원일기나 다른 1차 사료들을 기반으로 작성을 하는 거니까, 승정원 일기가 있었다면 기록이 더 남아있을 확률이 있는데, 없으니까 추론하는데 한계가 있죠. 뭐 결국 실록도 사대부들이 쓰는거니까, 장영실에 대한 양반층의 견제가 있을거고, 내용의 각색도 있겠지만, 흠... 진실은 사료부족으로 알 수 없다밖에.... 솔직히 이 정도 기구를 만든 사람이면 누구 개인 문집에라도 남겼을텐데 아무래도 기록이 없다보니 한계가... 아휴 아쉬울 뿐이죠. 기구에 대한 설명 기록같은 것도 남아있을 법한데, 전란도 너무 길었고, 세종실록 자체가 양이 많았는데, 기록 검토 + 작성 기간마저 엄청나게 길었던 지라 한계가 크기도 하고.... 답답할 따름.
@선테이
@선테이 4 жыл бұрын
문종은 너무 빨리 죽어서 안타깝고.. 하필 그 다음왕이 너무 어렸던 단종인 바람에 다시 사대부들의 힘이 강해지고...
@minkikim7034
@minkikim7034 4 жыл бұрын
지금도 마찬가지임 일개 엔지니어와 정치인 클라스가 다르지
@user-uf8zc9iu3i
@user-uf8zc9iu3i 4 жыл бұрын
여기서 또 대다수에게 잘못 알려진 내용이 노비장영실을 세종이 대려왔다라고 하는데 실은 태종부터 눈에 띄여서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상태였음 애초에 세종과 나이차가 7살이 넘음 즉 세종이 즉위할땐 이미 20대 후반이였음 물론 이미 그렇게 알려진 장영실을 제대로 쓴건 세종이였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장영실은 발명가라기보단 엔지니어에 가까웠고 지금의 삼성에서 갈려나가는 외계인 같은 공돌이였음 즉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들 특히 문종과 세종이 내고 만들어와 하면 대가리 싸매서 만들어오는게 장영실
@jjjbrian6304
@jjjbrian6304 4 жыл бұрын
그게 발명가입니다 추상적으로 만들자 하면 그걸 설계하고 제작하는게 발명입니다 대가리 싸멘다고 누구나 만들수있는건 아니겠지요
@GforceRonier
@GforceRonier 4 жыл бұрын
문종 세종이 설계도 주면서 만들라했으면 공돌이 이런거 만들어라 해서 설계부터 했다면 발명가
@jjjbrian6304
@jjjbrian6304 4 жыл бұрын
@@GforceRonier 자기가 직접설계해서 만들었던거도 많아요 공돌이라 비하하는건 왜이지요? 왕의 명에 만든것도 있지만 아닌것도 많습니다
@GforceRonier
@GforceRonier 4 жыл бұрын
brian jeong 그걸 왜 저한테 말하죠? 본문글이 왕이 설계까지 다하고 장영실은 도면대로 생산만 하는 공돌이인듯한 뉘앙스이길래 한말인데요
@brabbit1149
@brabbit1149 2 жыл бұрын
@@GforceRonier 세종대왕이 설계까지 했을까싶은데 모르는거지만 장영실이 설계부터 제작까지 안하면 저렇게 정교하게 안나옴 님은 그냥 만지면 나오는줄아는거같은데 제작의 모든 기초가 설계도를 짜는거임
@alwaysutd589
@alwaysutd589 4 жыл бұрын
에드워드 노튼이랑 진짜 닮으셨다...
@Hyuchan1002
@Hyuchan1002 4 жыл бұрын
실록에는 아무것도 안남겨놨다고 하더라도 사초에도 아무것도 없을까.
@N0CUT
@N0CUT 3 жыл бұрын
개인적인 주관으로는 누구보다 총명한 세종대왕께서 본인의 사후에 일어날일들을 예견하시고 장영실을 몰래 빼놓은거같다 기록에도 자취를 감출수있게 그렇게 아낀 장영실을 살리기위해. 광해군 꼴날까봐 임진왜란때 나라를 위해 애쓴 광해군이 중국에 인정도 못받은 구실과 여러구실등으로 뒤집어진거처럼
@heartbreaker8727
@heartbreaker8727 3 жыл бұрын
알쓸신잡 또 언제하나ㅜㅜ
@user-ud7rl2qc2y
@user-ud7rl2qc2y 2 жыл бұрын
하ㅜ 가슴아프다ㅜ 천재과학자장영실도 아깝고ㅜ 사대부 썩을놈들이 시기해서 역사기록 지웠을 가능성이 커보인다ㅜㅜ
@nvvAve
@nvvAve 4 жыл бұрын
태형이란게 사실상 사람에 따라 맞다 죽을수도 있기 때문에..
@user1486
@user1486 4 жыл бұрын
사람에따라도조건은 곤장 80대는 해당사항도 아님 .ㅜ아무리 건장하였대도 못살아남
@doublebianco5303
@doublebianco5303 4 жыл бұрын
진짜 그렇겠네.. 그 사대부가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겠지. 장영실에게 이런 숨겨진 사건들이 있었을 줄이야. 어찌보면 하품 나올 것 같은 역사학이란 것도 파고들면 정말 재미있을지도 모를 일이로군.
@anclass1176
@anclass1176 4 жыл бұрын
조선왕조 초기라 지역 영주의 힘이 강했던 시기임 이방원이 때려잡은건 사실 그 혈족과 고려 일부충신들이지 토호세력과 기득권이 아님 부민고소금지법 말해주듯 죽는그순간까지 조선에 대신이란 작자들과 일부 기득권과의 싸움을 계속하기에 지쳐겠죠 그와중에 그들에게 눈엣가시처럼 보이던 장영실님이 기록마저 말소되어 죽임을 당하신거고
@user-cr4cx9fq1f
@user-cr4cx9fq1f 4 жыл бұрын
영주?
@joshua3964
@joshua3964 4 жыл бұрын
조선 왕조 초기는 조선 건국의 방해가 되고 왕권강화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라면 모조리 숙청하여 피를 보았고, 그로인해 왕권이 강화된 상태에서 세종에게 왕위가 물려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왕권강화의 과정에서 난을 피했던 신하들은 전부 낙향하여 사림이 되었구요. 지역 영주라고 말하는 낙향한 사림들의 세력은 아직 강성했을 시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당시 집권중인 훈구파의 세력이 강성했을시기입니다. 세종은 왕권이 강화된 상태에서 신하들의 나라를 만들어갔습니다. 왕권강화와 신하의 나라가 상반되는 말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신하들의 나라였음에도 왕위가 안전했던건 세종의 아버지 즉 태종이 세종의 왕위에 방해가 될만한 인물을 전부 숙청하였기에 신하들이 알아서 물고빨고씹고해도 세종은 안전했던거죠. 이와중에 듣도보도못한 천한것이 자신들과 같은 위치에 올라 세종의 측근이 되었으니 훈구파 입장에서는 완전 눈엣가시였겠지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훈구파를 달래고 이후 있을 한글창제 및 자신의 왕권가도에 있어서 장영실을 내어주는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겁니다.
@racvert9762
@racvert9762 4 жыл бұрын
출신 태생의 한계로 인한 약점이 정치적인 약점과 거래수단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함. 당시 가히 혁명적이었던 성과를 노비 출신이 이루어냈다는 것은 사대부를 기시한 양반 귀족들의 자존심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이념의 기반이 되는 사대주의에 의거한 계급제의 역순리를 눈엣가시로 여긴것.
@user-fh9kw3hq7w
@user-fh9kw3hq7w 4 жыл бұрын
난 역사 전공하면서 생각했던게 장영실....아마도 세종이 몰래 아무대로나 떠나라 했을것이다... 사대부들의 질투는 논외로 하고 중국에서 가만 안뒀을 거기 때문일까
@crdoan6689
@crdoan6689 2 жыл бұрын
힘있는자들에.의해 남겨진 역사 ... 분서갱유가 저때도 있었군요 ...
@user-rj3xz4ep6p
@user-rj3xz4ep6p 3 жыл бұрын
공포게임도 무서운데.. 이것도 무서워..
@leemyughan
@leemyughan 3 жыл бұрын
사피엔스 스튜디오였나? 조선시대의 형벌 보시면, 곤장 80대면 무조건 죽는다고 봤어요. 많은 기록들이 전부 없는 것 또한 의도적으로 없앴다는 중요한 정황이라고 생각해요. 단지....증인이 없으면 암살이 되는 식이랄까...ㅠ
@KYYOLO_
@KYYOLO_ 4 жыл бұрын
알쓸신잡 다음 시즌 언제 나오나요???
@user-tr3jd1tu2z
@user-tr3jd1tu2z 4 жыл бұрын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거 없는듯... 어차피 권력있고 높은 위치에 있으면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아무리 능력있는 사람이더라도 칭찬하고 치켜 올려주는 것보다 깎아 내리기 바쁘니... 결국 상대방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내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면서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 자신을 어떻게 수양할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조선시대 성리학은 끊임없이 만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정치질 때문에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본질을 찾는 것에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으니...
@user-lj1tl2xn1w
@user-lj1tl2xn1w 3 жыл бұрын
세종실록의 팩트에서 더 넓게 합리적인 추론을 했으면 싶어요. ㅡ 조순생보다 장영실에게 처벌을 한 이유는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아마도 1.신분제의 주류인 신하들 2. 4군 6진 등 영토 분쟁과 천문과학기술 발달로 견제 중인 명(과 여진)에게 제스처를 쓴 것으로 해석하고 싶어요.
@sphynx2916
@sphynx2916 3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의 총명함이 사라진 어리석은 임금이 되었다는 가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냥 단 한번도 상상해본적이 없음..
@user-uk2xm6wd8q
@user-uk2xm6wd8q 2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이 70 80대 같이 장수한것도아니고 그시절도 왕케어받으면 충분히 더사실나이에 총명이 흐려져서라기보단 장영실 일가의 안위를 생각할때 얼마나 남지않은 본인의 생명을 생각하여 일부러 본인 손에서 처리하시고 기록도 없애라명하시고(장영실을 위해서) 시원미상으로 어디서 살게했을지도 난 세종대왕이 더이상총명하지않아서 모든기록을없애고 곤장80대를 허했을거라생각하지않음 그랬다고하더라도 그것이 총명하지않아서가아니라 세종이 생각한 어떤이유가 있었을듯함
@user-yu6ft7lq7t
@user-yu6ft7lq7t 4 жыл бұрын
세종도 마지막에는 사람이었네.. 다거기서 거기
@andnoah
@andnoah 4 жыл бұрын
맞아서 돌아가셨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ㅜㅜ
@ToryAghissiDo
@ToryAghissiDo 3 жыл бұрын
그놈의 파벌. 혈연.
@user-ld2hr8nj7j
@user-ld2hr8nj7j 4 жыл бұрын
세종은 영실을 살렸다.
@user-qn2nu5td1d
@user-qn2nu5td1d 3 жыл бұрын
"말씀은 내가 할께 누가 죽일래?"
@VoidX930
@VoidX930 3 жыл бұрын
일단 자료가 공백 상태임.. 뭐가 없으니 추론이나 상상으로 이야기를 만들수 밖에..
@chef2813
@chef2813 3 жыл бұрын
기록이 없으니 아무것도 모르는거지... 합리적으로 추론하든 대충 추론하든.. 결국 사실을 알 순 없음.
@user-mn3sr6gp6b
@user-mn3sr6gp6b 3 жыл бұрын
언제태어나고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다니
@xxxilmz
@xxxilmz 4 жыл бұрын
훗날 크나큰 댓가를 치르지 정조 이후에
@SO-oy2li
@SO-oy2li 3 жыл бұрын
제박 역사 이야기할땐 관련 전공자/전문가들 좀 데려오자 한국 방송들
@user-od2nb4po3n
@user-od2nb4po3n 2 жыл бұрын
저는 건국 초기에 정도전이 다져두었던 신분제 체계가 한 사람으로 인하여 다시금 불완전해지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 조선은 세워진지 100년 남짓 안 됐을 때일 텐데 벌써부터 체계가 흔들린다며 사대부들이 압박을 넣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세종이 동의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한 일이 치졸한 토사구팽이고요...
@user-nn3ll4jb2z
@user-nn3ll4jb2z 3 жыл бұрын
아 갑자기 중간에 황씨 갑툭튀머냐..
@user-zc8kk1iv1d
@user-zc8kk1iv1d 3 жыл бұрын
당시 명나라가 장영실을 요구해서 장영실은 명나라로 끌려갈수 밖에 없는상황. 세종과 장영실은 당시 최고 천재들. 장영실이 명나라에 안가도 되는 상황만들기 위해 이 두 천재들이 뭘할수 있었을까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었을까요? 장영실이 감독한 가마가 부서진것도 솔직히 이해가 안가고 사실이라 해도 임금님 안위가 걸린문제인데 처벌이 곤장 80대?? 당시 시대상황에선 역모나 다름 없는 사건인데 압슬형이나 참수형이 아니고 장형으로 처벌한게 이상함 추측으로는 때린 시늉만 하고 몰래 은신 시키지 않았을까 생각됨 명나라 입장에서 보면 의심되도 함부로 장영실 행방에 대해 물어볼수 없는 입장이고
@dlee0724
@dlee0724 4 жыл бұрын
또다른 저간의 비하인드가 있을수도..
@user-nj7tf7jl2t
@user-nj7tf7jl2t Жыл бұрын
장영실이 노비출신이다 천문과 과학에 관심도 많았고 대장간에서 농민 국민들이 사용하는 농기구 개발에도 신경을 많이 썼지요 중국한테 압박도 많이 받고 있고 중국이 장영실을 데려 가려고 하는 상황이 계속 전개되고 있었고 왕과 대화를 하면서 연구하기도 하였던 노비출신 장영실에 대한 시기 질투로 활화산처럼 부풀어 오르는 사대부세력이 장영실을 축출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가 있었다고 봐야죠 80대 맞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장영실 기록도 전혀 없다 세종대왕 첩의자식 공주와 결혼시킨 장영실의 노력으로 승승장구하여 받은 대호군 높은 관직에 올라 있던 장영실이 사라졌다면 부인과 자식들도 모두 사라졌을까요??? 몰살시켰을까요??? 장영실 미스테리도 궁금하죠
@user-ig1sf8fo8g
@user-ig1sf8fo8g 3 жыл бұрын
장영실과 그 분이 같으셨을 줄 이셨네요
@user-sr6oh9xj2n
@user-sr6oh9xj2n 2 жыл бұрын
예전에도 노비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실력있어도 주위사람들로부터 질투와 시기... 출신에 대한 차별받고 ....근데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바 없다라는거.....
HOW DID HE WIN? 😱
00:33
Topper Guild
Рет қаралды 49 МЛН
What it feels like cleaning up after a toddler.
00:40
Daniel LaBelle
Рет қаралды 56 МЛН
Я нашел кто меня пранкует!
00:51
Аришнев
Рет қаралды 5 МЛН
Спит с ОТКРЫТЫМИ ГЛАЗАМИ! 😱😴
0:25
Взрывная История
Рет қаралды 4,5 МЛН
Лайфхак с лейкой 🚿
0:37
Сан Тан
Рет қаралды 3,3 МЛН
Выйграли Много Денег с Сыном
0:55
Карман
Рет қаралды 6 МЛН
Spot The Fake Animal For $10,000
0:40
MrBeast
Рет қаралды 50 МЛН
Разбудили Любимой Песней 😂
0:14
Глеб Рандалайнен
Рет қаралды 2,9 МЛ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