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자루 잡았다고 칼을 함부로 사용하다가 그칼에 자기 ㅁ가지가 날라감 작금의 나라꼴도 가관인데 역사를 직시해야
@강대봉-e9d Жыл бұрын
신돈에 관하여는 학자들은 물론 역사 유튜버 사이에도 그 평이 천차만별이고 시대와 시기에 따라 특히 국내 정치환경의 추이에 따라 널뛰기하듯 변하는 우리 역사상 호불호가 가장 심한 인물 중 한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프로에선 김순자 교수가 신돈의 등장 배경을 당시 명나라의 급부상과 원나라의 쇠퇴 과정에서 공민왕의 개혁 대리인의 필요성을 짚어주셨는데 제 소견엔 그 점도 있지만 당시 공민왕은 좋게 말해 왕권강화이고 쉽게 말해 자신의 개인적 보신책이자 '총알받이'가 가장 절실한 시기였는데 그 때 신돈이란 땡중이 튀어나왔다고 봅니다^^ 즉 공민왕은 반원정책을 펴면서 기철 일당을 숙청하면서 인생 최대의 적수가 되버린 기황후가 사실상 측천무후 급으로 황제 역할을 하전 시절이었고, 기황후의 아들이 정적들을 타도하고 황태자로 확고히 원나라 조정을 장악한 시점에 공교롭게도 노국대장공주마저 죽었으니 엄폐 은폐할 데 없이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을 지휘해야하는 절체절명의 처지였는 게 신돈이란 총알받이. 화살받이를 기용할 수 밖에 없는 외통수에 처했던 게지 '개혁'은 개뿔 양두구육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명나라가 원나라를 확실히 북으로 밀어내고 신진사대부 등이 신돈을 배척하자 '반역음모'를 조작해 신돈을 처내는 소위 친위쿠데타로 제거한 게 확실하기에 신돈의 개혁에 관해선 김인호 교수의 평이 팩트에 가까울 것으로 보입니다. 신돈의 개혁은 공민왕의 철저한 기획하에 마치 드라마 대본 쓰듯 보여주기용으로 기획되었을 뿐 신돈은 공민왕의 술수에 놀아난 꼭두각시거나 좋게 말해 드라마 배우였다가 연극이 끝나자 죽임을 당한 것 뿐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