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교수, 학자들은 연기법, 무아만 강조하고, 영원한 나인 불성, 본성을 부정합니다. 교수님은 최고의 명상가이자 최고의 강사인 윤홍식과 비슷한 설명을 해 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불성, 성령, 열반, 아트만, 순수의식, 참나, 진아는 걑은 말입니다.
@임기택-x2y Жыл бұрын
자칫 언어의 외형적 차이 때문에 무아와 불성을 별개의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불교는 이 차이를 넘어서고 있는 不二를 말하고 있습니다.
@jaehongkim12312 ай бұрын
궁금합니다. 그러면 제 생각엔 자기지와 대상지가 칸트의 통각개념과 유사해 보이는데요 그러면 자기지를 경험적 통각으로, (그 자기지에 대한 것을 다시)대상지를 초월론적 통각으로 봐도 될까요?
@yngsklee3 жыл бұрын
불교에 대해서 알기 쉽게 강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각을 수행없이 즉각적으로 어느 순간에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방법이 궁금합니다. 그냥 불성이 존재한다고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요.
@jyseoh3 жыл бұрын
녹음 볼륨을 이렇게 낮게 한 상태에서 광고를 처발라 놓으면 듣다가 갑자기 광고가 나오면서 볼륨이 커지니까 놀래잖아요. 진짜 엉망이네.
@metta8572 жыл бұрын
광고 너무 많다
@한마음-m4s3 жыл бұрын
일체유심조를 좀더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법륜스님, 김용옥, 이중표 등도 일체유심조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더군요. 눈으로 보는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죠. 즉 내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눈으로 산을 볼 때 빛을 통해 샨의 모습이 망막에 상으로 맺히고, 이것은 다시 전기신호를 통해 뇌로 전달됩니다. 이것은 다시 마음에 산의 모습으로 재현됩니다. 이 마음에 떠오른 산을 참나가 알아차립니다. 모든 오감 작용은 이렇게 작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