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싸리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랐답니다. 요새는 싸리빗자루 만들 만큼밖에 안 자라지만. 옛 목수들의 노고가 눈에 보이는듯 합니다 자재가 온통 울퉁불퉁 제 멋대로인데.....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놀라울뿐입니다 감사합니다~^^
@user-wi2wh4tj8t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
@okkitv69054 жыл бұрын
가로수 터널길에 햇빛이 비춰서 너무 이쁘네요~ 자연을 맘껏 느낄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네감사합니다~~
@user-sn5vy3gh4q4 жыл бұрын
영상 감사합니다. 항상 안전운전하시고 건강하세요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retu99844 жыл бұрын
이방송 보고나면 옛날을 회상 하게해줘요....돌이키면 그때가 행복이엇는데....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저도옛날생각이 많이나죠 돌아갈수만있다면 ~~^^
@tv-tt3ks4 жыл бұрын
잘 보고 갑니다 수고 하셧습니다~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ㅎ 감사합니다~~^^
@시인의뜨락4 жыл бұрын
초가집도 굉장히 오랫동안 건재하네요. 저도 어릴 적에는 초가집에 살았어요. 정겹습니다.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저도초등학교까진 초가집에 살았네요~~^^
@kdw.22084 жыл бұрын
오지인데도 길은 의예로 넓 고 좋네요 본체 초가집은 기와만얹으면 양반 가옥 못지않네요 덕분에 잘봤습니다 . 수고 하셨습니다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길은 버스도다닐정도입니다 감사합니다~~^^
@user-eb1of3or8u4 жыл бұрын
잘봤습니다 수고하세요 ^^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zp9le1sv9b4 жыл бұрын
오늘도 시골길따라 힐링하며 즐거운 나들이였습니다. 주변은 자연속이라 더 평온해 보이고 지난번 창녕에서 본 가옥이랑 깔끔한 느낌이 갠적으로 비스무리하게 느낌 받았습니다.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초가집은 모양이 거의 비슷하죠 감사합니다~~^^
@chelysvlogs41604 жыл бұрын
Pone mucho esfuerzo en sus videos son muy interesantes saludos😀🤗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
@user-ve2pl3pp6z4 жыл бұрын
그냥 내가 차에 타고 달리는 기분이네요...그만큼 영상이 안정감이 느껴진다는 얘기죠...보기는 별거 아니라도 영상올리는 일...보통 일이 아니죠... 수고많으신 덕분에 앉아서 잘 구경합니다... 감사합니다...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ㅎㅎ 그러신가요 관심감사합니다~~^^
@user-xu5rd8jy8m4 жыл бұрын
내고향가창정대리입니다....오십년전에 떠나왔지만 아직도 생생합니다..가고싶어도못가는고향... 어쩜어릴때살던집이랑 똑같은지.자세히설명해주시니 고맙습니다...지금은 해외에살고있어요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좋은곳에 사셨네요 오지지만 대구와 멀지않아 살기좋은곳이네요~^^
@user-ep4yp1dl7i3 жыл бұрын
가창은 이제 대구시내와 딱붙어있습니다 저도 정대리몇번갔다온적이있습니다
@jyl03054 жыл бұрын
싸리나무로 집을 짓지는 못 합니다.^!^ 옛날 분들이 싸리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렸다고 하는 것은 잘 못 전해진 것 입니다. 송광사에 가면 커다란 구시가 있는데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사해 보니 느티나무였습니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기둥도 싸리나무로 세워졌다고 하는데 이 또한 느티나무 입니다. 송광사 구시가 싸리나무로 불렸던 것은 구시에 '쌀이' 들어 있어 '싸리'나무라고 불렀다고 하고, 마곡사 대웅보전 기둥은 스님이 열반하시면 화장을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사리를 사리함에 보관하는데 사리함의 재료가 느티나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느티나무를 사리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싸리나무로 변형되었다고 합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기둥을 옛날에는 모과나무로 세웠다고 전해졌는데 이 역시 느티나무 였다고 합니다. 경상도 출신인 제가 보기에는 모과나무가 아니라 모개나무라고 했겠지요. 못생긴나무 모개나무.ㅎㅎ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그럴수도있을겁니다 저도 싸리나무가그렇게 자라지않을거같아 의문이 생기드라구요 상세한설명 감사합니다~~^^
@user-jw3el3nt2f3 жыл бұрын
자세한 설명 기억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user-ok9lm5sn5l4 жыл бұрын
옛날분 들이 키가 적으셔서 그런지 집도낮고 방문도 엄청 낮즈으막 하네요? 이런집 처음 봤습니다 신기 하기도 하고 재밌고 이런집엔 어떤 신분을 가진 분들이 살았을까?상상 하며 봤습니다^^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예전집들이 대체로 지붕이낫드라구요 감사합니다~~
@user-zh2pb9rz9j4 жыл бұрын
대구 가창까지 오셨네요 버스는 미술관입구까지가지요 울집에서 차로 이십분 거리에있고 가끔갑니다 우째여기까지 알고 오셔ㅆ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우리영감님 덕에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는 길은 포장이 되고 비교적 넓어서 자동차가 오르는데 어렵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조길방 초가를 해발 500m 정도 높은 곳에 지었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네요. 농경시대에 볏짚을 구할 수는 있다 해도 높은 곳까지 운반해 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요. 안채의 사각기둥이나 서까래, 대청마루는 지체 높은 양반들이 사는 기와집을 보는 느낌입니다. 또 사랑채와 안채가 있고 부속채가 더 있는 걸로 보아 더욱 그렇습니다.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정성이많이 들어간 집이드라구요 그러니 문화재가 되었겠죠 이곳은 논은없어서 짚구하기도 쉽지않았을듯하네요~~^^
@user-rs4ud1ox3y4 жыл бұрын
캬~~~ 초가삼간 그립네요 참~~ 좋은곳으로 다니시네요 사시는곳은 어디신가요 함 같이하고 싶은 맘 저는 울산입니다 고향은 오지로 탐방하신 곳이 두곳 있는 김천입니다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user-vj3rl3xp3j4 жыл бұрын
@@user-kf6mf5zz5y 트레일님은 구미에 계시죠^^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네구미입니다~~^^@@user-vj3rl3xp3j
@user-xp2fr2qs6q4 жыл бұрын
역사탐방도 쪼끔 곁들어주시면. 그 산골에 어떻게 상당히 재력도 있는 사람들이 살았을까요 ? 교지도 있고요.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문서가 교지였군요 ~~
@retu99844 жыл бұрын
잘보고 잇습니다...근대 김천구성의 오지마을 상거리 2020. 4. 20.자 보면 마을사람이 나와서 동네 애기해주는데,,,동네분이 애기해주니 귀가 더 솔깃해졋어요..가능하면 동네분이 말해주는 동네역사도 같이 담아주세요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그렇죠 동네분이 예기해주는게 더좋죠 감사합니다~~^^
@yjrm76344 жыл бұрын
임금으로부터 받은 교지가 있는 걸로 봐 괘 지체높은 양반가옥 같네요. 그런 걸 좀 설명해 주셨으면. 민속학을 좀 공부해 오지에서 만나는 전통 주택양식이나 그지역 설화나 지명유래 등 민속자료를 좀 설명하면 학생들 공부에 도움될 듯!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교지였군요 상세한 설명감사합니다~~
@user-wx8oh9ud2f4 жыл бұрын
가창댐상류 위로 올라가서 좌측으로 올라가면 나옵니다..헐티재가는길입니다..
@user-kf6mf5zz5y4 жыл бұрын
오르는곳 저수지가 가창댐이었군요~~
@user-vj3rl3xp3j4 жыл бұрын
헉 저희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곳이네요. 10여년전에는 경사가 급해 4륜도 올라가서는 내려 올때면 상당히 아찔한곳이었죠. 지금은 도로 포장과 확장이 되어서 좀은 수월해 보이네요. 그당시만 해도 거의 폐가 수준에 집주인이 거주 하셨구..근처 2~3가구가 거주 한걸로 기억 납니다.또한 천주교 박해때 일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거주 하신걸로 기억 납니다. 지금은 너무 정형화 되어있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