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취재]100년 전 멸종된 줄 알았던 검은 소(흑우)가 제주도서 조용히 혈통 보존하며 생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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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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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오늘 영상 취재를 도와주신 제주축산진흥원 우상원 흑우연구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디씨멘터리와 구독자분들이 '제주흑우'의 명품화에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귀한 제주흑우를 맛볼 수 있게 해주신 '검은쇠 몰고오는(064-712-1692)' 유양봉 대표님께도 감사드리며,
식당위치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296-7'입니다. 도축하는 날은 꼭 육사시미와 간 등을 드셔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육회는 육지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명작입니다.
[단독취재]100년 전 멸종된 줄 알았던 검은 소(흑우)가 제주도서 조용히 혈통 보존하며 생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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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제주흑우 #제주도 #한우 #한국소 #해외반응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Пікірлер: 418
@dcmentary_official
@dcmentary_official Жыл бұрын
오늘 영상 취재를 도와주신 제주축산진흥원 우상원 흑우연구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디씨멘터리와 구독자분들이 ‘제주흑우’의 명품화에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귀한 제주흑우를 맛볼 수 있게 해주신 ‘검은쇠 몰고오는(064-712-1692)’ 유양봉 대표님께도 감사드리며, 식당위치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296-7’입니다. 도축하는 날은 꼭 육사시미와 간 등을 드셔보시고 육회는 육지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명작입니다.
@Fe-ob5ys
@Fe-ob5ys Жыл бұрын
풀먹고 자란 소고기를 먹고 싶었는데 이젠 흑우점을 찾으면 되겠네요 느끼하지 않고 소고기 본연의 맛과 쫄깃함이 한우의 매력이였죠
@upa3367
@upa3367 Жыл бұрын
@@Fe-ob5ys 호주산 소고기도 방목해서 풀먹고 자랍니다. 한우 투뿔 많이 먹으면 혈관질환 쉽게 생긴다는.
@푸른하늘-h4r
@푸른하늘-h4r Жыл бұрын
항상 귀한 정보를 알려주시는 열정 감사드립니다😊
@user-wh8vx1bc3x
@user-wh8vx1bc3x Жыл бұрын
진돗개 호구랑 같은 무늬의 얼룩소인 칡소도 있어요 맛은 흑우, 칡소가 더 좋아요
@jehajeon9727
@jehajeon9727 Жыл бұрын
누런소 검은소 칡소 점박이 다 우리소였지요.
@Real-MintChoco
@Real-MintChoco Жыл бұрын
디씨멘터리님 안녕하세요. 보잘 것 없는 저의 메일 한통으로 시작 돼, 열정을 갖고 취재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일제에 수탈 됐던 흑우가 널리 보급 돼, 우리나라 전역에 흑우가 많아 졌음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한우 = 갈색소가 아닌, 흑우도 한우라는 점이 널리 알려 졌음 하는 바람입니다. 디씨멘터리님의 선한 영향으로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가 와규의 뿌리는 흑우라는 점도 알려 졌으면 합니다. 구독자 여러분 께서도 모르시는 주위 분들께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이렇게 영상 잘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는 내내 행복 했습니다^^
@dcmentary_official
@dcmentary_official Жыл бұрын
민트초코님 안녕하세요. 이메일 드리려던 찰나에 댓글을 남겨주셨네요! 저도 제보해주신 내용 바로 다루지 못해 마음쓰이고 있었는데 제주도에 황금넙치 취재차 스케쥴을 맞추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좋은 제보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주위 분들께도 널리 공유해주시면 흑우도 한우만큼 명품이 될 겁니다! 그럼 또 좋은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디씨멘터리 올림.
@Real-MintChoco
@Real-MintChoco Жыл бұрын
@@dcmentary_official 디씨멘터리님. 이렇게 영상 잘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규의 시조는 우리나라 흑우라는 사실이 널리널리 알려져, 한우는 와규 보다 맛 없다라는 선입견이 없어지길 바라며, 또한 일제에 의해 수탈 됐던 역사라는 사실을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알려졌음 하는 바람입니다. 디씨멘터리님께 연락 드리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합다. 그리고, 제주도에 가면 섬은쇠 몰고오는 꼭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선한 영향력으로 좋은 영상 잘 부탁 드립니다^^ 알림 해 두고 항상 잘 시청 하고 있습니다. 좋아요👍도 항상 꼭 누르고 갑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며 영상 만들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q777lhs
@q777lhs Жыл бұрын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제보해 주신 민트초코님과 또한 한 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자세히 취재하여 정성스런 내용으로 영상을 만들어 주신 디씨멘터리님 두 분 모두 감사드려요~ 이런 내용은 정말 지상파 다큐멘터리로 나와야 하는데 말입니다~~^^
@user-rc7nh9zv3c
@user-rc7nh9zv3c Жыл бұрын
덕분에 좋은주제로 영상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Real-MintChoco
@Real-MintChoco Жыл бұрын
@@q777lhs 말씀 감사합니다^^ 일제가 수탈해간 우리나라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윗분에게도 널리 알려 주세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user-mb3wh8ig7x
@user-mb3wh8ig7x Жыл бұрын
좋은 정보 영상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user-mm3dl2gs3t
@user-mm3dl2gs3t Жыл бұрын
디시멘터리 감사합니다. 흑우가 귀중한 우리 소인데 자꾸 나쁜의미로 사용되서 마음이 아파요
@user-kj7zj7dk8q
@user-kj7zj7dk8q Жыл бұрын
나쁜의미의 흑우라는 것은 일본산 흑우라고 하죠 ㅋㅋ~!
@user-ze2ks2ol9z
@user-ze2ks2ol9z Жыл бұрын
흑우도있고 칡소(호피무늬)도있고 댕기견도 삽살이도 호구도 토종들 일제 강점기때 많이 사라졌지요 ㅠ,ㅠ
@hobbyholic_LoveLive
@hobbyholic_LoveLive Жыл бұрын
우리도 흑우 소비를 늘려야 할듯 싶습니다. 축산진흥원 관계자분들께서 힘내주시길.... 유양봉 대표분의 생각이 너무 멋지네요.
@석영홍-y9e
@석영홍-y9e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bt7cj3pt1u
@user-bt7cj3pt1u Жыл бұрын
1950년대 부산에서 본 한 갈비집의 외부 선전 간판에서 본 글자: "검정 암소 갈비" 지금까지 내가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자랑할만한 갈비 맛이라 저렇게 써 놓았겠지 하는 그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 그런 유사한 간판마저 본적이 없었는데... 1980년대 쯤 농업에 종사하던 친구를 만났는데 일본이 자랑하는 흑우는 원래 한반도의 함경도 지방에서 많이 키우던 흑우씨였는데 일본이 종자를 훔쳐가 더욱발전을 시켜 지금은 일본이 세계적으로 자랑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함경도건 제주도건 간에 역시 흑우의 원종은 한반도였던 것은 사실인 모양!!!!!!!!!!!!!!
@user-xj8ds9wk7t
@user-xj8ds9wk7t Жыл бұрын
정말 귀한 소식전하시네요. 감사해요. ^^
@user-rc7nh9zv3c
@user-rc7nh9zv3c Жыл бұрын
우와.... 흑우.... 직접 제주도가서 촬영하신거예요? 대단하세요 열정인정합니다 👍 감사히잘보겠습니다
@홍상진-d2v
@홍상진-d2v Жыл бұрын
축산진흥원분들의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일제한테 빼앗긴것들이 너무나많고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면서 잊혀지고 모르게될뻔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ㅜㅜ 디씨멘터리님의 컨텐츠는 이러한 면들을 소개 해주셔서 너무나 좋은 것 같습니다. 제보주시는 분들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조선총독부의 기록에 의하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국내 한우 150만 마리가 반출됐는데 이 때 조선 흑우의 양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일본은 1928년 흑우(미시마 소)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국립축산과학원 등 정부기관에서는 이 흑우가 제주 흑우였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한반도 내에서는 1938년에 누렁소(황우)를 한우 표준으로 지정해버려서 제주 흑우와 칡소 등이 한국인의 인식에서 점차 사라졌다. 일본 문화재청은 "흑우(미시마 소)는 한반도에서 도래해 현재까지 혼혈없이 사육됐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와규'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 학계에서는 미시마 소가 무로마치 시대부터 길러지고 농업에도 사용된 일본 재래종이라는 인식이 정설로 되어있고 제주 흑우와의 연관성에 관한 논란은 거의 만들지 않는 상황. 제주대 제주흑우연구센터에서 2018년 열린 ‘제3회 제주흑우 국내 심포지엄’에서 영남대 생명공학과 김종주 교수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육지의 한우, 제주 흑우, 울릉도 칡소와 일본 와규 품종, 서양 소 품종들의 유전적 진화트리를 분석한 결과 제주 흑우엔 독특한 유전적 특성이 있다”며 “일본 와규는 흑모색과 갈색으로 나뉘는데, 제주 흑우는 흑모색 품종과 유전적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고 말했다. 곧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2020년 12월 제주대학교 제주흑우연구센터에서 유전체 연구를 통하여 밝혀낸 바에 따르면, 제주 흑우는 일본 와규와는 유전적 특성이 전혀 다른 계통의 품종이며, 제주 흑우와 와규는 진화트리상 2~3세대 앞선 선조 단계에서 이미 분화가 끝난 상태였다고 한다. 제주대학교 제주흑우연구센터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와규와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것은 한우였다. 와규 중에서도 황색의 털을 가진 갈모화종이야 원래부터 한반도 유래라는 것이 기존부터 너무 명확했던 만큼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털 색깔이 황색과 흑색으로 가장 다르게 보였던 한우와 흑모화종의 유전적 근연성은 털 색깔이 같았던 제주 흑우-흑모화종간 유전적 근연성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이다. 상기의 유전체 연구를 통해서 와규 흑모화종의 기원이 제주 흑우라는 가설은 이미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황색의 한우가 일제 강점기 35년만에 와규 흑모화종으로 둔갑했을 가능성은 낮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어쨌든 일반적인 논의되는 '와규의 한반도 기원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존재한다. 우선, 상기와 같은 한국 흑우 기원설은 크게 다음과 같은 논리구조를 보이고 있다. • (1) 본래 일본에는 소 혹은 흑우 자체가 없었다. • (2) 무로마치 시대 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미시마 섬으로 한국/제주 흑우가 전해졌다 • (3) 일본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미시마 섬의 흑우를 개량하여 오늘날의 일본 와규를 만들었다. • (4)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기 위하여 미시마 섬에 살던 제주산 흑우를 억지로 천연기념물으로 만들었다. 이 중, (1)과 (3)은 상기의 내용으로 쉽게 반론이 가능하다. 일본에는 소 그리고 흑우가 고대부터 존재했음이 분명하고 검은 소 자체가 축산업계에서는 전혀 희귀하지 않다. 가장 오래된 육용종인 영국의 갤러웨이(Galloway) 품종이 검은색이고 앵거스(Angus) 품종도 검은색이다. 이건 논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오늘날의 와규(흑모화종)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로 활발하게 수십년간 외래종과 교접한 결과물이고 흑모화종 역시 미시마 소가 아니라 타지마 소를 베이스로 한다. 일본정부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산 흑우를 반출하였으며 특히 1924년 제주산 흑우를 반출한 결과 와규의 흑모화종이 탄생하였다는 주장은 고대와 중세에서 확인되는 일본 소의 역사와 품종개량의 근대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공당하기 쉽다. 그리고 1938년 와규는 검은색, 한우는 황색으로 일괄적으로 규정하여 한우 중 검은소가 강제로 사라졌다는 논리와 달리, 6년후인 1944년 와규 품중 중 하나로서 갈모화종, 즉, 갈색털의 와규가 정식으로 지정된다. 때문에 제주 한우 기원설을 위해서는 1938년 조치의 실제 파급력과 유효성을 먼저 연구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한우 항목에서 보듯이 한우중 흑우 수가 급감한 것은 1970년 한우의 털색(황색)을 심사기준으로 강화하여 황색이 아닌 한우는 실격처리한 것에 더 기인한 바가 크다. 또한 (4)번 논리와 같이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와규의 기원을 은폐 및 왜곡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성립하기 힘든데, 와규 중 2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갈모화종의 경우, 그 중 상당수가 한반도의 소에서 기원하였다고 학계에서든 축산업계에서든 대부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지마 소홍보 사이트에서조차, (사료적 가치는 낮기는 하지만) 고사기에 등장하는 신라의 왕자, 아메노 히보코(천일창 ) 기록을 언급하며, 고사기의 기록을 신라 왕자 아메노 히보코가 타지마 지방에 소를 데려왔다는 신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일본 고대의 각종 문화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을리는 없으니 이처럼 도래의 전설을 만드는 것은 일본 역사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일본 고대사에서 도래인의 존재는 꽤 빈번하고 중요하게 언급되기 때문에 일본 소가 한반도 기원이라고 해서 그것을 굳이 숨길 이유는 없다. 그리고 (2)에 대한 반론을 위해서는 미시마 섬(見島)이 어떤 곳인지를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시마 섬은 고대, 중세 일본에서 외부세계와의 통로 역할을 했던 사카이, 하카타, 데지마 같은 곳이 아니다. 야마구치현 최북단에 위치한 섬으로서 본토와는 약 45km 떨어졌고 인근의 다른 섬도 없이 외로운 시골 섬으로서, 현재 인구는 약 1천명으로 추정되는, 일본 역사에서 러일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에서 잠시 등장한 것외에는 등장한 적이 없는 작은 섬일 뿐이다. 한국 흑우 기원설에서 자주 인용되는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도 사실 별도의 근거가 없다. 그런 기록이 남을만큼 번성한 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섬의 유일한 역사문화 유적은 7세기~10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콘보 고분군이 유일한데, 이 고분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지콘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만어로 '지콘보'가 공동묘지를 뜻한다는 가설도 있고 아저씨를 뜻하는 현지의 방언이라는 설도 있다. 여기에 뭍힌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방인(防人, 백강 전투 이후 있을지도 모르는 신라와 당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서부의 최전선으로 파견된 일본 군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왜구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한국과 중국으로부터의 도래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은 그런 빈약한 역사를 채우기 위해 등장한 가설로서 그리 튼튼한 근거는 가지고 있지 않다. 지콘보 고분군에 소와 관련된 유물이 없으니 이 섬에 소가 도래한 시기가 헤이안, 가마쿠라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한반도와 비교적 가까우니 한반도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의 가설만 논의되는 섬이다. 만약에 미시마소가 일본 순수 재래종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미시마 섬에서 일본 재래종의 소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사실은 이 곳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궁벽한 외지섬이어서 일본 본토를 휩쓸었던 서양 소 품종과의 교접 열풍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1928년 일본이 이 지역의 소를 미시마소로 부르면서 천연기념물을 지정한 것도 이미 당시에 교접열풍으로 인하여 일본 재래종의 순수혈통이 사라진 시대에서 서양 소 도래 이전의 일본 재래종의 혈통을 지니고 있다는 상징성 때문이었지만 미시마 소가 오늘날의 와규 형성에 기여를 하였다는 증거는 없다. 2006년 당시 미시마 소는 미시마 섬에서만 자라며 암소 85마리, 숫소 14마리로 지극히 소규모로 보호되는 재래종일 뿐이고 오히려 192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는 도축이 엄격히 제한되는 등, 상업상 가치를 거의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4년의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쇼와 시대 초기, 즉 1920년~30년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섬에 500마리의 미시마 소가 있는 등 현재보다 오히려 번성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일본 농가의 현대화가 진행되면서는 소 대신 농기계가 농사일을 대신하게 되어 미시마 소 역시 섬에서의 수요가 적어지고 이에 따라 1976년에는 불과 33마리만 남을 정도로 급감하였다. 섬에 존재하는 미시마 소 보존회의 구성원 역시 8명에 불과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못받고 있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이렇듯 상징성과 연구적 가치 외에는 일본내에서도 관심이 적고 천연기념물에 대한 관리규정 때문에 오늘날에도 섭취할 수 있는 미시마 소는 일 년에 10마리 미만에 불과하고 대중적으로 팔리는 미시마 소는 미시마 소와 서양의 홀슈타인 품종이 교접해서 탄생된 잡종, 켄란 소(見蘭牛) 같은 소수의 브랜드가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대표 와규인 흑모화종의 유전적 기원은 너무 각종 품종이 섞인 탓에 논쟁이 활발한 분야고 미시마소의 외양이 흑모화종과 동일하게 검은색인고로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 소라는 의견도 일본 내에서 있다. 하지만 미시마 섬의 소가 정말로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 소의 아류로 유입되었을 수 있을지언정 미시마에 살았던 소가 일본 본토에 살았던 소의 기원이 될 수는 없다. 첫째로 미시마 섬은 일본 중심부에서 너무 떨어진 시골이고 교역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므로 이곳의 문물이 일본 본토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며 둘째로 상기의 역사적 기록을 보았을 때, 무로마치 이전 헤이안-가마쿠라 시대때부터 일본 본토에는 이미 흑우, 황소, 얼룩소 등 다양한 형태의 소가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도쿄농업대학의 연구처럼 현대 와규(흑모화종)의 특징인 마블링(시모후리, 霜降り)이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 소'에서도 발견된다면서, 와규의 마블링은 서양 소와의 교접을 통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재래종에서 기원한다는 식의 연구를 하는 측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연구가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소라는 소리는 아니다. 미시마소가 연구되는 것은 이 소가 서양 소에 유전적 영향을 받지 않은 일본 내에서 거의 유일한 소(독립변수)이기 때문이지 흑모화종의 직계 조상이 미시마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연구를 하는 이유는, 유일한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소에서 고도의 마블링이 발견된다면, (현재는 서양 소와의 교접으로 사라진) 일본 본토의 다른 순수 재래종에서도 마블링이 본래부터 내재되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즉, 미시마 소는 일종의 살아있는 화석인 셈이다. 추가적으로, 본 문단 처음의 코토뱅크의 설명과 같이, '와규'라는 단어는 '일본 소'라는 의미로서, 농사와 운송에 쓰이던 순수한 재래종과 고기용으로 개량된 현대의 교접종을 포괄하여 통칭하는 말이다. 육용으로 소비되기 위하여 서양 소 품종과 엄청난 교접을 시행한 오늘날의 잡종 와규(흑모화종 등)를 고립된 섬에서 농사용으로 쓰이던 미시마섬의 재래종 소를 설명하는 (문화재청 간판의) 와규와 연결하여 '미시마 소는 오래된 와규니깐 미시마 소가 와규(흑모화종)의 원조'라는 식의 주장은 제주 흑우 기원설과는 무관하게 반론의 여지가 크다. 사실 한반도와 제주도, 그리고 일본 열도의 거리가 가깝고 외양이 흡사한고로 양자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것은 의미있을 수 있다. 제주 흑우와 미시마 소가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든가, 혹은 타지마 소와 한반도의 소 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식의 연구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규의 흑모화종은 타지마 소와 서양 외래종의 교접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일본 내에서의 정설이고 이를 뒤집을만한 유력한 증거가 따로 없는만큼, 한반도/제주 흑우의 일본 와규 기원설은 아직 아무 근거없는 가설에 불과할 것이다.
@moonih007
@moonih007 Жыл бұрын
참으로 연구도 노력도 많이 하시니 많이 배우고있습니다
@user-le5sf9tt2n
@user-le5sf9tt2n Жыл бұрын
아..알고있는 사실이 이렇게나마 알려지니 디씨멘타리 최고입니다! 미소마소도 우리 품종이라니 이제 알았네요 이런 내용 너무 좋습니다! 모든 동식물 죽이고 수탈한 수가 엄청나지요 산 강 바다에 조선에 기를 죽인다고 말뚝까지 박아됐지요!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조선총독부의 기록에 의하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국내 한우 150만 마리가 반출됐는데 이 때 조선 흑우의 양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일본은 1928년 흑우(미시마 소)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국립축산과학원 등 정부기관에서는 이 흑우가 제주 흑우였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한반도 내에서는 1938년에 누렁소(황우)를 한우 표준으로 지정해버려서 제주 흑우와 칡소 등이 한국인의 인식에서 점차 사라졌다. 일본 문화재청은 "흑우(미시마 소)는 한반도에서 도래해 현재까지 혼혈없이 사육됐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와규'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 학계에서는 미시마 소가 무로마치 시대부터 길러지고 농업에도 사용된 일본 재래종이라는 인식이 정설로 되어있고 제주 흑우와의 연관성에 관한 논란은 거의 만들지 않는 상황. 제주대 제주흑우연구센터에서 2018년 열린 ‘제3회 제주흑우 국내 심포지엄’에서 영남대 생명공학과 김종주 교수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육지의 한우, 제주 흑우, 울릉도 칡소와 일본 와규 품종, 서양 소 품종들의 유전적 진화트리를 분석한 결과 제주 흑우엔 독특한 유전적 특성이 있다”며 “일본 와규는 흑모색과 갈색으로 나뉘는데, 제주 흑우는 흑모색 품종과 유전적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고 말했다. 곧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2020년 12월 제주대학교 제주흑우연구센터에서 유전체 연구를 통하여 밝혀낸 바에 따르면, 제주 흑우는 일본 와규와는 유전적 특성이 전혀 다른 계통의 품종이며, 제주 흑우와 와규는 진화트리상 2~3세대 앞선 선조 단계에서 이미 분화가 끝난 상태였다고 한다. 제주대학교 제주흑우연구센터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와규와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것은 한우였다. 와규 중에서도 황색의 털을 가진 갈모화종이야 원래부터 한반도 유래라는 것이 기존부터 너무 명확했던 만큼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털 색깔이 황색과 흑색으로 가장 다르게 보였던 한우와 흑모화종의 유전적 근연성은 털 색깔이 같았던 제주 흑우-흑모화종간 유전적 근연성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이다. 상기의 유전체 연구를 통해서 와규 흑모화종의 기원이 제주 흑우라는 가설은 이미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황색의 한우가 일제 강점기 35년만에 와규 흑모화종으로 둔갑했을 가능성은 낮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어쨌든 일반적인 논의되는 '와규의 한반도 기원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존재한다. 우선, 상기와 같은 한국 흑우 기원설은 크게 다음과 같은 논리구조를 보이고 있다. • (1) 본래 일본에는 소 혹은 흑우 자체가 없었다. • (2) 무로마치 시대 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미시마 섬으로 한국/제주 흑우가 전해졌다 • (3) 일본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미시마 섬의 흑우를 개량하여 오늘날의 일본 와규를 만들었다. • (4)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기 위하여 미시마 섬에 살던 제주산 흑우를 억지로 천연기념물으로 만들었다. 이 중, (1)과 (3)은 상기의 내용으로 쉽게 반론이 가능하다. 일본에는 소 그리고 흑우가 고대부터 존재했음이 분명하고 검은 소 자체가 축산업계에서는 전혀 희귀하지 않다. 가장 오래된 육용종인 영국의 갤러웨이(Galloway) 품종이 검은색이고 앵거스(Angus) 품종도 검은색이다. 이건 논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오늘날의 와규(흑모화종)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로 활발하게 수십년간 외래종과 교접한 결과물이고 흑모화종 역시 미시마 소가 아니라 타지마 소를 베이스로 한다. 일본정부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산 흑우를 반출하였으며 특히 1924년 제주산 흑우를 반출한 결과 와규의 흑모화종이 탄생하였다는 주장은 고대와 중세에서 확인되는 일본 소의 역사와 품종개량의 근대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공당하기 쉽다. 그리고 1938년 와규는 검은색, 한우는 황색으로 일괄적으로 규정하여 한우 중 검은소가 강제로 사라졌다는 논리와 달리, 6년후인 1944년 와규 품중 중 하나로서 갈모화종, 즉, 갈색털의 와규가 정식으로 지정된다. 때문에 제주 한우 기원설을 위해서는 1938년 조치의 실제 파급력과 유효성을 먼저 연구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한우 항목에서 보듯이 한우중 흑우 수가 급감한 것은 1970년 한우의 털색(황색)을 심사기준으로 강화하여 황색이 아닌 한우는 실격처리한 것에 더 기인한 바가 크다. 또한 (4)번 논리와 같이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와규의 기원을 은폐 및 왜곡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성립하기 힘든데, 와규 중 2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갈모화종의 경우, 그 중 상당수가 한반도의 소에서 기원하였다고 학계에서든 축산업계에서든 대부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지마 소홍보 사이트에서조차, (사료적 가치는 낮기는 하지만) 고사기에 등장하는 신라의 왕자, 아메노 히보코(천일창 ) 기록을 언급하며, 고사기의 기록을 신라 왕자 아메노 히보코가 타지마 지방에 소를 데려왔다는 신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일본 고대의 각종 문화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을리는 없으니 이처럼 도래의 전설을 만드는 것은 일본 역사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일본 고대사에서 도래인의 존재는 꽤 빈번하고 중요하게 언급되기 때문에 일본 소가 한반도 기원이라고 해서 그것을 굳이 숨길 이유는 없다. 그리고 (2)에 대한 반론을 위해서는 미시마 섬(見島)이 어떤 곳인지를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시마 섬은 고대, 중세 일본에서 외부세계와의 통로 역할을 했던 사카이, 하카타, 데지마 같은 곳이 아니다. 야마구치현 최북단에 위치한 섬으로서 본토와는 약 45km 떨어졌고 인근의 다른 섬도 없이 외로운 시골 섬으로서, 현재 인구는 약 1천명으로 추정되는, 일본 역사에서 러일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에서 잠시 등장한 것외에는 등장한 적이 없는 작은 섬일 뿐이다. 한국 흑우 기원설에서 자주 인용되는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도 사실 별도의 근거가 없다. 그런 기록이 남을만큼 번성한 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섬의 유일한 역사문화 유적은 7세기~10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콘보 고분군이 유일한데, 이 고분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지콘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만어로 '지콘보'가 공동묘지를 뜻한다는 가설도 있고 아저씨를 뜻하는 현지의 방언이라는 설도 있다. 여기에 뭍힌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방인(防人, 백강 전투 이후 있을지도 모르는 신라와 당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서부의 최전선으로 파견된 일본 군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왜구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한국과 중국으로부터의 도래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은 그런 빈약한 역사를 채우기 위해 등장한 가설로서 그리 튼튼한 근거는 가지고 있지 않다. 지콘보 고분군에 소와 관련된 유물이 없으니 이 섬에 소가 도래한 시기가 헤이안, 가마쿠라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한반도와 비교적 가까우니 한반도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의 가설만 논의되는 섬이다. 만약에 미시마소가 일본 순수 재래종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미시마 섬에서 일본 재래종의 소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사실은 이 곳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궁벽한 외지섬이어서 일본 본토를 휩쓸었던 서양 소 품종과의 교접 열풍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1928년 일본이 이 지역의 소를 미시마소로 부르면서 천연기념물을 지정한 것도 이미 당시에 교접열풍으로 인하여 일본 재래종의 순수혈통이 사라진 시대에서 서양 소 도래 이전의 일본 재래종의 혈통을 지니고 있다는 상징성 때문이었지만 미시마 소가 오늘날의 와규 형성에 기여를 하였다는 증거는 없다. 2006년 당시 미시마 소는 미시마 섬에서만 자라며 암소 85마리, 숫소 14마리로 지극히 소규모로 보호되는 재래종일 뿐이고 오히려 192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는 도축이 엄격히 제한되는 등, 상업상 가치를 거의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4년의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쇼와 시대 초기, 즉 1920년~30년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섬에 500마리의 미시마 소가 있는 등 현재보다 오히려 번성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일본 농가의 현대화가 진행되면서는 소 대신 농기계가 농사일을 대신하게 되어 미시마 소 역시 섬에서의 수요가 적어지고 이에 따라 1976년에는 불과 33마리만 남을 정도로 급감하였다. 섬에 존재하는 미시마 소 보존회의 구성원 역시 8명에 불과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못받고 있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이렇듯 상징성과 연구적 가치 외에는 일본내에서도 관심이 적고 천연기념물에 대한 관리규정 때문에 오늘날에도 섭취할 수 있는 미시마 소는 일 년에 10마리 미만에 불과하고 대중적으로 팔리는 미시마 소는 미시마 소와 서양의 홀슈타인 품종이 교접해서 탄생된 잡종, 켄란 소(見蘭牛) 같은 소수의 브랜드가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대표 와규인 흑모화종의 유전적 기원은 너무 각종 품종이 섞인 탓에 논쟁이 활발한 분야고 미시마소의 외양이 흑모화종과 동일하게 검은색인고로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 소라는 의견도 일본 내에서 있다. 하지만 미시마 섬의 소가 정말로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 소의 아류로 유입되었을 수 있을지언정 미시마에 살았던 소가 일본 본토에 살았던 소의 기원이 될 수는 없다. 첫째로 미시마 섬은 일본 중심부에서 너무 떨어진 시골이고 교역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므로 이곳의 문물이 일본 본토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며 둘째로 상기의 역사적 기록을 보았을 때, 무로마치 이전 헤이안-가마쿠라 시대때부터 일본 본토에는 이미 흑우, 황소, 얼룩소 등 다양한 형태의 소가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도쿄농업대학의 연구처럼 현대 와규(흑모화종)의 특징인 마블링(시모후리, 霜降り)이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 소'에서도 발견된다면서, 와규의 마블링은 서양 소와의 교접을 통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재래종에서 기원한다는 식의 연구를 하는 측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연구가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소라는 소리는 아니다. 미시마소가 연구되는 것은 이 소가 서양 소에 유전적 영향을 받지 않은 일본 내에서 거의 유일한 소(독립변수)이기 때문이지 흑모화종의 직계 조상이 미시마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연구를 하는 이유는, 유일한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소에서 고도의 마블링이 발견된다면, (현재는 서양 소와의 교접으로 사라진) 일본 본토의 다른 순수 재래종에서도 마블링이 본래부터 내재되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즉, 미시마 소는 일종의 살아있는 화석인 셈이다. 추가적으로, 본 문단 처음의 코토뱅크의 설명과 같이, '와규'라는 단어는 '일본 소'라는 의미로서, 농사와 운송에 쓰이던 순수한 재래종과 고기용으로 개량된 현대의 교접종을 포괄하여 통칭하는 말이다. 육용으로 소비되기 위하여 서양 소 품종과 엄청난 교접을 시행한 오늘날의 잡종 와규(흑모화종 등)를 고립된 섬에서 농사용으로 쓰이던 미시마섬의 재래종 소를 설명하는 (문화재청 간판의) 와규와 연결하여 '미시마 소는 오래된 와규니깐 미시마 소가 와규(흑모화종)의 원조'라는 식의 주장은 제주 흑우 기원설과는 무관하게 반론의 여지가 크다. 사실 한반도와 제주도, 그리고 일본 열도의 거리가 가깝고 외양이 흡사한고로 양자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것은 의미있을 수 있다. 제주 흑우와 미시마 소가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든가, 혹은 타지마 소와 한반도의 소 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식의 연구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규의 흑모화종은 타지마 소와 서양 외래종의 교접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일본 내에서의 정설이고 이를 뒤집을만한 유력한 증거가 따로 없는만큼, 한반도/제주 흑우의 일본 와규 기원설은 아직 아무 근거없는 가설에 불과할 것이다.
@살려주세요-e9x
@살려주세요-e9x Жыл бұрын
같은종친분이신데 정말흑우에대해 자부심이대단하세요 맛있어용 구독하는 채널에아는분이나올줄ㅋ
@user-ud5qp8se4t
@user-ud5qp8se4t Жыл бұрын
디시멘터리 믿고 시청합니다. 감사합니다~
@user-dk8lm9hg7v
@user-dk8lm9hg7v Жыл бұрын
학생 때 국사 시간에 선생님께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도 우연히 한번 본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영상으로 제작해 주셔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nasilin897
@nasilin897 Жыл бұрын
제주도 불법체류 외국인들 보기 싫어 발길을 끊었는데 흑우 활성화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방문해야겠군요. *^-^*
@user-nl8ls7po7d
@user-nl8ls7po7d Жыл бұрын
소중한 영상 감사히 잘 봤습니다 정말 집중해서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user-kj2td4ou3i
@user-kj2td4ou3i Жыл бұрын
요리를 하는사람으로써 흑우도 먹어보고 조리해보고 싶네요
@snowncheeselove
@snowncheeselove Жыл бұрын
일본은 참 알뜰히 우리의것을 가져갔네요. 우리의것이 잊혀질 정도로... 몰랐던 우리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user-xt3lr2hi4w
@user-xt3lr2hi4w Жыл бұрын
디씨멘터리 내용이 대부분 좋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대박입니다! 특종,단독이네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네요!...
@user-mj1ii2gw2y
@user-mj1ii2gw2y Жыл бұрын
1980년대에도 흑소가 드물게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꺼먹소라고 불렀습니다.
@user-oz9vw7tw3w
@user-oz9vw7tw3w Жыл бұрын
디씨멘터리님 ᆢ 처음듣는 귀한정보 ㆍ 넘 감사합니다ᆢ👍
@user-nf8ne3pn3l
@user-nf8ne3pn3l Жыл бұрын
디씨멘터리 채널 영상 너무 훌륭하네요
@user-wz4jm5tw8r
@user-wz4jm5tw8r Жыл бұрын
1977년 정도의 우리집에는 검은 소가 았었는데 1980년도 되면서 없어 졌어요 참 그때는 잘 몰랐지만 귀한 거네요
@junfilyun2195
@junfilyun2195 Жыл бұрын
구당서인가?를 보면 일본에는 소와 양이 없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없던게 갑자기 나타날 수는 없으니 한반도에서 가져가 자신들 것이라고 ᆢ 불쌍한 종족입니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조선총독부의 기록에 의하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국내 한우 150만 마리가 반출됐는데 이 때 조선 흑우의 양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일본은 1928년 흑우(미시마 소)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국립축산과학원 등 정부기관에서는 이 흑우가 제주 흑우였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한반도 내에서는 1938년에 누렁소(황우)를 한우 표준으로 지정해버려서 제주 흑우와 칡소 등이 한국인의 인식에서 점차 사라졌다. 일본 문화재청은 "흑우(미시마 소)는 한반도에서 도래해 현재까지 혼혈없이 사육됐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와규'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 학계에서는 미시마 소가 무로마치 시대부터 길러지고 농업에도 사용된 일본 재래종이라는 인식이 정설로 되어있고 제주 흑우와의 연관성에 관한 논란은 거의 만들지 않는 상황. 제주대 제주흑우연구센터에서 2018년 열린 ‘제3회 제주흑우 국내 심포지엄’에서 영남대 생명공학과 김종주 교수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육지의 한우, 제주 흑우, 울릉도 칡소와 일본 와규 품종, 서양 소 품종들의 유전적 진화트리를 분석한 결과 제주 흑우엔 독특한 유전적 특성이 있다”며 “일본 와규는 흑모색과 갈색으로 나뉘는데, 제주 흑우는 흑모색 품종과 유전적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고 말했다. 곧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2020년 12월 제주대학교 제주흑우연구센터에서 유전체 연구를 통하여 밝혀낸 바에 따르면, 제주 흑우는 일본 와규와는 유전적 특성이 전혀 다른 계통의 품종이며, 제주 흑우와 와규는 진화트리상 2~3세대 앞선 선조 단계에서 이미 분화가 끝난 상태였다고 한다. 제주대학교 제주흑우연구센터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와규와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것은 한우였다. 와규 중에서도 황색의 털을 가진 갈모화종이야 원래부터 한반도 유래라는 것이 기존부터 너무 명확했던 만큼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털 색깔이 황색과 흑색으로 가장 다르게 보였던 한우와 흑모화종의 유전적 근연성은 털 색깔이 같았던 제주 흑우-흑모화종간 유전적 근연성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이다. 상기의 유전체 연구를 통해서 와규 흑모화종의 기원이 제주 흑우라는 가설은 이미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황색의 한우가 일제 강점기 35년만에 와규 흑모화종으로 둔갑했을 가능성은 낮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어쨌든 일반적인 논의되는 '와규의 한반도 기원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존재한다. 우선, 상기와 같은 한국 흑우 기원설은 크게 다음과 같은 논리구조를 보이고 있다. • (1) 본래 일본에는 소 혹은 흑우 자체가 없었다. • (2) 무로마치 시대 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미시마 섬으로 한국/제주 흑우가 전해졌다 • (3) 일본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미시마 섬의 흑우를 개량하여 오늘날의 일본 와규를 만들었다. • (4)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기 위하여 미시마 섬에 살던 제주산 흑우를 억지로 천연기념물으로 만들었다. 이 중, (1)과 (3)은 상기의 내용으로 쉽게 반론이 가능하다. 일본에는 소 그리고 흑우가 고대부터 존재했음이 분명하고 검은 소 자체가 축산업계에서는 전혀 희귀하지 않다. 가장 오래된 육용종인 영국의 갤러웨이(Galloway) 품종이 검은색이고 앵거스(Angus) 품종도 검은색이다. 이건 논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오늘날의 와규(흑모화종)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로 활발하게 수십년간 외래종과 교접한 결과물이고 흑모화종 역시 미시마 소가 아니라 타지마 소를 베이스로 한다. 일본정부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산 흑우를 반출하였으며 특히 1924년 제주산 흑우를 반출한 결과 와규의 흑모화종이 탄생하였다는 주장은 고대와 중세에서 확인되는 일본 소의 역사와 품종개량의 근대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공당하기 쉽다. 그리고 1938년 와규는 검은색, 한우는 황색으로 일괄적으로 규정하여 한우 중 검은소가 강제로 사라졌다는 논리와 달리, 6년후인 1944년 와규 품중 중 하나로서 갈모화종, 즉, 갈색털의 와규가 정식으로 지정된다. 때문에 제주 한우 기원설을 위해서는 1938년 조치의 실제 파급력과 유효성을 먼저 연구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한우 항목에서 보듯이 한우중 흑우 수가 급감한 것은 1970년 한우의 털색(황색)을 심사기준으로 강화하여 황색이 아닌 한우는 실격처리한 것에 더 기인한 바가 크다. 또한 (4)번 논리와 같이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와규의 기원을 은폐 및 왜곡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성립하기 힘든데, 와규 중 2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갈모화종의 경우, 그 중 상당수가 한반도의 소에서 기원하였다고 학계에서든 축산업계에서든 대부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지마 소홍보 사이트에서조차, (사료적 가치는 낮기는 하지만) 고사기에 등장하는 신라의 왕자, 아메노 히보코(천일창 ) 기록을 언급하며, 고사기의 기록을 신라 왕자 아메노 히보코가 타지마 지방에 소를 데려왔다는 신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일본 고대의 각종 문화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을리는 없으니 이처럼 도래의 전설을 만드는 것은 일본 역사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일본 고대사에서 도래인의 존재는 꽤 빈번하고 중요하게 언급되기 때문에 일본 소가 한반도 기원이라고 해서 그것을 굳이 숨길 이유는 없다. 그리고 (2)에 대한 반론을 위해서는 미시마 섬(見島)이 어떤 곳인지를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시마 섬은 고대, 중세 일본에서 외부세계와의 통로 역할을 했던 사카이, 하카타, 데지마 같은 곳이 아니다. 야마구치현 최북단에 위치한 섬으로서 본토와는 약 45km 떨어졌고 인근의 다른 섬도 없이 외로운 시골 섬으로서, 현재 인구는 약 1천명으로 추정되는, 일본 역사에서 러일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에서 잠시 등장한 것외에는 등장한 적이 없는 작은 섬일 뿐이다. 한국 흑우 기원설에서 자주 인용되는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도 사실 별도의 근거가 없다. 그런 기록이 남을만큼 번성한 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섬의 유일한 역사문화 유적은 7세기~10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콘보 고분군이 유일한데, 이 고분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지콘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만어로 '지콘보'가 공동묘지를 뜻한다는 가설도 있고 아저씨를 뜻하는 현지의 방언이라는 설도 있다. 여기에 뭍힌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방인(防人, 백강 전투 이후 있을지도 모르는 신라와 당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서부의 최전선으로 파견된 일본 군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왜구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한국과 중국으로부터의 도래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은 그런 빈약한 역사를 채우기 위해 등장한 가설로서 그리 튼튼한 근거는 가지고 있지 않다. 지콘보 고분군에 소와 관련된 유물이 없으니 이 섬에 소가 도래한 시기가 헤이안, 가마쿠라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한반도와 비교적 가까우니 한반도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의 가설만 논의되는 섬이다. 만약에 미시마소가 일본 순수 재래종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미시마 섬에서 일본 재래종의 소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사실은 이 곳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궁벽한 외지섬이어서 일본 본토를 휩쓸었던 서양 소 품종과의 교접 열풍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1928년 일본이 이 지역의 소를 미시마소로 부르면서 천연기념물을 지정한 것도 이미 당시에 교접열풍으로 인하여 일본 재래종의 순수혈통이 사라진 시대에서 서양 소 도래 이전의 일본 재래종의 혈통을 지니고 있다는 상징성 때문이었지만 미시마 소가 오늘날의 와규 형성에 기여를 하였다는 증거는 없다. 2006년 당시 미시마 소는 미시마 섬에서만 자라며 암소 85마리, 숫소 14마리로 지극히 소규모로 보호되는 재래종일 뿐이고 오히려 192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는 도축이 엄격히 제한되는 등, 상업상 가치를 거의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4년의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쇼와 시대 초기, 즉 1920년~30년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섬에 500마리의 미시마 소가 있는 등 현재보다 오히려 번성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일본 농가의 현대화가 진행되면서는 소 대신 농기계가 농사일을 대신하게 되어 미시마 소 역시 섬에서의 수요가 적어지고 이에 따라 1976년에는 불과 33마리만 남을 정도로 급감하였다. 섬에 존재하는 미시마 소 보존회의 구성원 역시 8명에 불과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못받고 있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이렇듯 상징성과 연구적 가치 외에는 일본내에서도 관심이 적고 천연기념물에 대한 관리규정 때문에 오늘날에도 섭취할 수 있는 미시마 소는 일 년에 10마리 미만에 불과하고 대중적으로 팔리는 미시마 소는 미시마 소와 서양의 홀슈타인 품종이 교접해서 탄생된 잡종, 켄란 소(見蘭牛) 같은 소수의 브랜드가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대표 와규인 흑모화종의 유전적 기원은 너무 각종 품종이 섞인 탓에 논쟁이 활발한 분야고 미시마소의 외양이 흑모화종과 동일하게 검은색인고로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 소라는 의견도 일본 내에서 있다. 하지만 미시마 섬의 소가 정말로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 소의 아류로 유입되었을 수 있을지언정 미시마에 살았던 소가 일본 본토에 살았던 소의 기원이 될 수는 없다. 첫째로 미시마 섬은 일본 중심부에서 너무 떨어진 시골이고 교역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므로 이곳의 문물이 일본 본토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며 둘째로 상기의 역사적 기록을 보았을 때, 무로마치 이전 헤이안-가마쿠라 시대때부터 일본 본토에는 이미 흑우, 황소, 얼룩소 등 다양한 형태의 소가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도쿄농업대학의 연구처럼 현대 와규(흑모화종)의 특징인 마블링(시모후리, 霜降り)이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 소'에서도 발견된다면서, 와규의 마블링은 서양 소와의 교접을 통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재래종에서 기원한다는 식의 연구를 하는 측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연구가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소라는 소리는 아니다. 미시마소가 연구되는 것은 이 소가 서양 소에 유전적 영향을 받지 않은 일본 내에서 거의 유일한 소(독립변수)이기 때문이지 흑모화종의 직계 조상이 미시마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연구를 하는 이유는, 유일한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소에서 고도의 마블링이 발견된다면, (현재는 서양 소와의 교접으로 사라진) 일본 본토의 다른 순수 재래종에서도 마블링이 본래부터 내재되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즉, 미시마 소는 일종의 살아있는 화석인 셈이다. 추가적으로, 본 문단 처음의 코토뱅크의 설명과 같이, '와규'라는 단어는 '일본 소'라는 의미로서, 농사와 운송에 쓰이던 순수한 재래종과 고기용으로 개량된 현대의 교접종을 포괄하여 통칭하는 말이다. 육용으로 소비되기 위하여 서양 소 품종과 엄청난 교접을 시행한 오늘날의 잡종 와규(흑모화종 등)를 고립된 섬에서 농사용으로 쓰이던 미시마섬의 재래종 소를 설명하는 (문화재청 간판의) 와규와 연결하여 '미시마 소는 오래된 와규니깐 미시마 소가 와규(흑모화종)의 원조'라는 식의 주장은 제주 흑우 기원설과는 무관하게 반론의 여지가 크다. 사실 한반도와 제주도, 그리고 일본 열도의 거리가 가깝고 외양이 흡사한고로 양자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것은 의미있을 수 있다. 제주 흑우와 미시마 소가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든가, 혹은 타지마 소와 한반도의 소 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식의 연구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규의 흑모화종은 타지마 소와 서양 외래종의 교접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일본 내에서의 정설이고 이를 뒤집을만한 유력한 증거가 따로 없는만큼, 한반도/제주 흑우의 일본 와규 기원설은 아직 아무 근거없는 가설에 불과할 것이다.
@신성호-o8k
@신성호-o8k Жыл бұрын
진정한 유튜버입니다. 앞으로도 좋은취재 부탁드립니다 사랑합니당
@user-fy4wf1yj2x
@user-fy4wf1yj2x Жыл бұрын
훌륭한 취재와 귀한 영상들 잘보았습니다 제주가면 흑돼지말고 비싸도 흑우를 꼭한번 맛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ㅎㅎㅎ
@user-dy2in5rg8v
@user-dy2in5rg8v Жыл бұрын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흑우도 칡소도 잘 보존해서 후손에게 남겨주는 것이 우리 어른의 의미가 아니가 합니다
@user-mv7sy6wd5n
@user-mv7sy6wd5n Жыл бұрын
백우도 있음
@user-eu2lr6qe1i
@user-eu2lr6qe1i Жыл бұрын
반가운 소식입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는 말이 생각나네요.
@user-mt4kv7fd2l
@user-mt4kv7fd2l Жыл бұрын
항상 느끼지만 직접 취재하고 정확한자료 올려주시려 노력하시는 디씨멘터리님 감사합니다
@twin_love
@twin_love Жыл бұрын
전 마블링이 많지 않는 고기가 좋습니다. ^^ 꼭 먹어보고 싶네요
@changsuoh5996
@changsuoh5996 Жыл бұрын
디씨멘터리 당신을 진정한 우리나라 국뽕뉴스의 장인으로 인정합니다ᆢㅎ 정말 귀중한 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종국존경해요
@김종국존경해요 Жыл бұрын
많은정보 고맙습니다 제주가면 꼭 흑우맛보고 오겠습니다
@user-bi9kl8ud5o
@user-bi9kl8ud5o Жыл бұрын
아주 훌륭한 정보네요
@user-kv4vr5dc5i
@user-kv4vr5dc5i Жыл бұрын
우리 기록에는 흑우,백우,황우,청우,칡소가 있었지요...다 복원 되었는데 오직 청우만 아직도 복원이 안되어서 잃어버린 우리 전통소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 이지요...
@user-xs8ds6oy3y
@user-xs8ds6oy3y Жыл бұрын
참으로 잘보았습니다.예전에 방송에서 우리나라 동요 에나오는 얼룩소에대해서 실지 얼룩소 존재여부 에대해 방송본적이 있습니다 칡소라고 존재했다고하더군요 한반도에 세종류의 소가 존재했었다고 들었습니다.취재하시느라 고생하셨고 감사히 잘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user-wj6wl1xn2z
@user-wj6wl1xn2z Жыл бұрын
일제가 수탈을 위해 황우만 남기고 흑우 칡소는 멸종 시켰죠. 한반도 흑우가 일본 와규의 시작이랍니다.
@samk5175
@samk5175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 최고 교양채널
@user-lb6xs2jf9f
@user-lb6xs2jf9f Жыл бұрын
몰랐던 일이네요. 정말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일제는 소까지 수탈했군!!!
@dwk4028
@dwk4028 Жыл бұрын
도적놈의 일본은 이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다 갚지 못할 빚을 진 민족입니다. 오늘도 영화 귀향을 다시 보면서 그 놈들의 악랄한 시대를 더 깊이 기억에 새겼습니다. 우리소 검은소, 얼룩소, 황소가 모두 전국에 유통되어 우리 한우를 즐겼으면 합니다.
@flat-coatedretriever4033
@flat-coatedretriever4033 Жыл бұрын
꼭 일제 때문일까요? 사실은 조상님들 무지와 625전쟁때문입니다
@역마차
@역마차 Жыл бұрын
누구를 욕하겠소...! 한국관광객들이...일본놈들 먹여살리는 현실인데...... " 벨"도없는놈들이 차고넘치는데.....
@user-gi6mw9wu8b
@user-gi6mw9wu8b Жыл бұрын
제주도 가면 꼭 한번 맛 봐야 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sdfamer79
@sdfamer79 Жыл бұрын
흑우에 대해서 몇번더 해주시면 더 많은 좋은 정보가 알려질것같습니다~~
@user-fi2gb8oo2p
@user-fi2gb8oo2p Жыл бұрын
일제시대의 잔재가 아직도... 다음 제주 방문시 꼭 먹어 보겠습니다. 항상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dodo_dodo9550
@dodo_dodo9550 Жыл бұрын
꼭 제주도 가서 흑우 먹도록 하겠습니다. 곧 제주도 한번 내려 가지 싶은데 ㅎ
@엄경섭-u7v
@엄경섭-u7v Жыл бұрын
제주도에 19년 살며 흑우 직접 보고 먹어봤었는데...흔히 먹는 한우와는 씹는맛이 달랐던 기억이 있어요 적갈색 한우는 고기가 부드럽고 제주 흑우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함이 남달랐던 기억이...
@user-sr9je4te1d
@user-sr9je4te1d Жыл бұрын
홀랑 훔쳐가서 남아있지않은줄 알았는데.... 다행이고 또 흑우 축산농가를 응원합니다! 제주 흑우도, 울릉 칡소도 국가차원에서 관리해야 할 귀한 국산 품종입니다.
@user-jo2cg7pz3z
@user-jo2cg7pz3z Жыл бұрын
할머니의 할머니 이전부터 뿌리 내렸던 제주 도민 입니다 이런 영상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주도 영상만 나오면 중국인이 잠식한 땅이라고 욕합니다 중국인 자본이 침투한 땅이 제주도 뿐일까요?다른지역은요...? 저희 세금 대한민국에 냅니다 .... 그리고 생각보다 중국인 많지 않아요 용역 식당 3D업종 아니면 보기 힘듭디다 오셔서 쓰래기 버리지 마시고 예쁜 풍경 많이 담아가세요 감사합니다
@yang5713
@yang5713 Жыл бұрын
제주도에 살고 있습니다. 귀한 소식 감사합니다♡♡♡
@upa3367
@upa3367 Жыл бұрын
제주도에서 그만 서시고 앞으로는 사세요. ㅎㅎ
@yang5713
@yang5713 Жыл бұрын
@@upa3367 아. 이게 뜻인지 잠깐동안 갸우뚱~ 오타가 있었네요.ㅎㅎㅎ 수정하였습니다
@권영주-t1q
@권영주-t1q Жыл бұрын
당신을 응원합니다 화이팅
@김성학-p2q
@김성학-p2q Жыл бұрын
쌀에 대해서도 가능할까요? 우리나라쌀은 색깔도 품종도 다양했는데 일제때 일본이 쌀생산량을 늘려서 수탈하기 위해서 한가지 품종만 심게하고 나머지 다양한 쌀 품종들은 못심게 했고 그 쌀 품종들을 일본으로 가져갔고 현재 일본 쌀연구의 기초가 된거라고 합니다
@금옥신-r5g
@금옥신-r5g Жыл бұрын
전에는 마트에서도 빨간쌀 노란쌀 파란쌀?? 암튼 골고루 팔았었어요 사람들이몰라서 안사니 나중엔 안팔더군요
@flat-coatedretriever4033
@flat-coatedretriever4033 Жыл бұрын
ㅋㅋ지금 드시는 쌀 일본쌀입니다
@ulusgyore6526
@ulusgyore6526 Жыл бұрын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user-xi3sp1ju8k
@user-xi3sp1ju8k Жыл бұрын
제주도 가면 꼭 먹어봐야겠어요
@amberhyun6359
@amberhyun6359 Жыл бұрын
나라가 힘이없으면 사람도 강산도 우리 동물들도 수탈당합니다. 우리 흑우가 일본으로 끌려간걸 알고는 와규를 먹을수없었습니다. 이런 좋은 취재를 해주시고 모르는 분들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user-vi1yq9rv6f
@user-vi1yq9rv6f Жыл бұрын
황우 흑우 칡소(얼룩소)는 나름 보존되고 지켜지고 있는데 또다른 품종이 백우는 언제쯤 복원하고 지킬수 있는지..
@카오스-k5p
@카오스-k5p Жыл бұрын
귀한소식 알게해준 민트초코님 디씨멘터리님 감사합니다
@내차로아이슬란드
@내차로아이슬란드 Жыл бұрын
디씨멘테리를 보면 우리가 너무너무 몰라 던 대한민국 역사. 현대사 많은걸 알려줘서 진심 감사합니다
@이태영-i9u
@이태영-i9u Жыл бұрын
좋은내용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TV-fi4ys
@TV-fi4ys Жыл бұрын
디씨멘터리는 말로만이 아니 정말 애국을 하시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그리고 제주도 가면 꼭 흑우를 먹어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세계에서 최강국 대한민국이 되도록 좋은 발굴 만이 부탁드립니다👍👍👍
@user-xb8oc7oq8g
@user-xb8oc7oq8g Жыл бұрын
자부심을 가지게하는 새로운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시절이 다시한번 치욕스럽고 도저히 용서가않되는 저 방파제놈들을 어찌할까요
@노루뱀봐
@노루뱀봐 Жыл бұрын
내가 30년간 임진왜란, 정유재란, 일제 강점기의 수탈, 약탈 등의 손실 비용을 환산해 본 결과, 약 5,000조~8,000조원임.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배상금을 일본에 청구해야 함.
@SonofGod_Joy2701
@SonofGod_Joy2701 Жыл бұрын
'좋아요' 는 왜 한번 밖에 못 누르게 되어 있을까요?... '좋아요' 천개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꼭 알아야 하는 정보입니다
@kts8501kts
@kts8501kts Жыл бұрын
우리의 진정한 토종 흑우를 박수로 응원합니당!~♡
@user-nk4rq8jp5y
@user-nk4rq8jp5y Жыл бұрын
그놈들은교활하여 남의것을뺏어다가 지네들것이고하는놈들, 생각할수록 정말 나쁜놈들
@user-is2wc8zv7m
@user-is2wc8zv7m Жыл бұрын
먹어야 지킬 수 있다는 아이러니. 어이없는 듯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럼으로 다시 쌓이는 일본에 대한 증오. 먹으러 가야겠네요!
@user-mt6wm7ei6w
@user-mt6wm7ei6w Жыл бұрын
방송 하나 하나가 믿음이가는 방송 감사합니다
@hhmoon9498
@hhmoon9498 Жыл бұрын
진짜 신뢰의 디씨멘터리! 믿고 봅니다.
@user-yr4sb3kx2f
@user-yr4sb3kx2f Ай бұрын
유양봉 대표님 성우하셔야겠네...목소리 타고나셨다ㄷㄷ
@user-cr5uf1sp8b
@user-cr5uf1sp8b Жыл бұрын
적갈색한우일제잔재
@KimJunNyoung
@KimJunNyoung Жыл бұрын
흑우뿐 아니라 얼룩소 칡소도 있음. 송아지란 동화에도 나오는 얼룩소 칡소도 우리가 지켜내야하는 소중한 우리의 것입니다!!
@liangsaku2920
@liangsaku2920 Жыл бұрын
백만까지 응원하겠습니다
@pvp7600
@pvp7600 Жыл бұрын
얼룩배기 황소는 어디에 있나요 ^^
@fetarla411
@fetarla411 Жыл бұрын
제대로된 취재로군요. 기레기들은 뭐하는지.. 울릉도 칡소 맛도 신기했습니다. 흑우 맛 궁금
@Gosoo76
@Gosoo76 Жыл бұрын
이렇게 컨텐츠에 진심이신분!!!!구독자도 돈도 많이 ~♥
@user-bk8dn6mo2m
@user-bk8dn6mo2m Жыл бұрын
아하!!
@Js-kz1vo
@Js-kz1vo Жыл бұрын
디씨멘터리님 감사합니다 저희도 할아버지 때부터 . 제주마 소 사육했습니자 어린때 목장에서 거문쇠 흑소 보적도있고요 유난히 몸집도작고 다커도 작아보이더라고요 그때 아버지가 제주 거문쇠는 일본놈들이 다잡아갔다했던말이기억나네요 지금 제주마 한우키우고있는데 이렇게 좋은정보를위해 멀리제주도 까지와주시고 이렇게홍부까지해주셨어 감사하니다 구독자로서 늘감사합니다^^
@user-ml1kk4oe7x
@user-ml1kk4oe7x Жыл бұрын
참 유익하네요 흑우도 우리 토종 소 이고 한우라는 사실 말로들었는데 이번 영상을 통해 자세히 배울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이번영상은 자녀들에게도 함께 보여줘도 좋을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어쨌든 일반적인 논의되는 '와규의 한반도 기원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존재한다. 우선, 상기와 같은 한국 흑우 기원설은 크게 다음과 같은 논리구조를 보이고 있다. • (1) 본래 일본에는 소 혹은 흑우 자체가 없었다. • (2) 무로마치 시대 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미시마 섬으로 한국/제주 흑우가 전해졌다 • (3) 일본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미시마 섬의 흑우를 개량하여 오늘날의 일본 와규를 만들었다. • (4)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기 위하여 미시마 섬에 살던 제주산 흑우를 억지로 천연기념물으로 만들었다. 이 중, (1)과 (3)은 상기의 내용으로 쉽게 반론이 가능하다. 일본에는 소 그리고 흑우가 고대부터 존재했음이 분명하고 검은 소 자체가 축산업계에서는 전혀 희귀하지 않다. 가장 오래된 육용종인 영국의 갤러웨이(Galloway) 품종이 검은색이고 앵거스(Angus) 품종도 검은색이다. 이건 논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오늘날의 와규(흑모화종)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로 활발하게 수십년간 외래종과 교접한 결과물이고 흑모화종 역시 미시마 소가 아니라 타지마 소를 베이스로 한다. 일본정부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산 흑우를 반출하였으며 특히 1924년 제주산 흑우를 반출한 결과 와규의 흑모화종이 탄생하였다는 주장은 고대와 중세에서 확인되는 일본 소의 역사와 품종개량의 근대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공당하기 쉽다. 그리고 1938년 와규는 검은색, 한우는 황색으로 일괄적으로 규정하여 한우 중 검은소가 강제로 사라졌다는 논리와 달리, 6년후인 1944년 와규 품중 중 하나로서 갈모화종, 즉, 갈색털의 와규가 정식으로 지정된다. 때문에 제주 한우 기원설을 위해서는 1938년 조치의 실제 파급력과 유효성을 먼저 연구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한우 항목에서 보듯이 한우중 흑우 수가 급감한 것은 1970년 한우의 털색(황색)을 심사기준으로 강화하여 황색이 아닌 한우는 실격처리한 것에 더 기인한 바가 크다. 또한 (4)번 논리와 같이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와규의 기원을 은폐 및 왜곡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성립하기 힘든데, 와규 중 2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갈모화종의 경우, 그 중 상당수가 한반도의 소에서 기원하였다고 학계에서든 축산업계에서든 대부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지마 소홍보 사이트에서조차, (사료적 가치는 낮기는 하지만) 고사기에 등장하는 신라의 왕자, 아메노 히보코(천일창 ) 기록을 언급하며, 고사기의 기록을 신라 왕자 아메노 히보코가 타지마 지방에 소를 데려왔다는 신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일본 고대의 각종 문화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을리는 없으니 이처럼 도래의 전설을 만드는 것은 일본 역사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일본 고대사에서 도래인의 존재는 꽤 빈번하고 중요하게 언급되기 때문에 일본 소가 한반도 기원이라고 해서 그것을 굳이 숨길 이유는 없다. 그리고 (2)에 대한 반론을 위해서는 미시마 섬(見島)이 어떤 곳인지를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시마 섬은 고대, 중세 일본에서 외부세계와의 통로 역할을 했던 사카이, 하카타, 데지마 같은 곳이 아니다. 야마구치현 최북단에 위치한 섬으로서 본토와는 약 45km 떨어졌고 인근의 다른 섬도 없이 외로운 시골 섬으로서, 현재 인구는 약 1천명으로 추정되는, 일본 역사에서 러일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에서 잠시 등장한 것외에는 등장한 적이 없는 작은 섬일 뿐이다. 한국 흑우 기원설에서 자주 인용되는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도 사실 별도의 근거가 없다. 그런 기록이 남을만큼 번성한 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섬의 유일한 역사문화 유적은 7세기~10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콘보 고분군이 유일한데, 이 고분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지콘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만어로 '지콘보'가 공동묘지를 뜻한다는 가설도 있고 아저씨를 뜻하는 현지의 방언이라는 설도 있다. 여기에 뭍힌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방인(防人, 백강 전투 이후 있을지도 모르는 신라와 당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서부의 최전선으로 파견된 일본 군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왜구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한국과 중국으로부터의 도래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은 그런 빈약한 역사를 채우기 위해 등장한 가설로서 그리 튼튼한 근거는 가지고 있지 않다. 지콘보 고분군에 소와 관련된 유물이 없으니 이 섬에 소가 도래한 시기가 헤이안, 가마쿠라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한반도와 비교적 가까우니 한반도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의 가설만 논의되는 섬이다. 만약에 미시마소가 일본 순수 재래종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미시마 섬에서 일본 재래종의 소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사실은 이 곳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궁벽한 외지섬이어서 일본 본토를 휩쓸었던 서양 소 품종과의 교접 열풍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1928년 일본이 이 지역의 소를 미시마소로 부르면서 천연기념물을 지정한 것도 이미 당시에 교접열풍으로 인하여 일본 재래종의 순수혈통이 사라진 시대에서 서양 소 도래 이전의 일본 재래종의 혈통을 지니고 있다는 상징성 때문이었지만 미시마 소가 오늘날의 와규 형성에 기여를 하였다는 증거는 없다. 2006년 당시 미시마 소는 미시마 섬에서만 자라며 암소 85마리, 숫소 14마리로 지극히 소규모로 보호되는 재래종일 뿐이고 오히려 192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는 도축이 엄격히 제한되는 등, 상업상 가치를 거의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4년의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쇼와 시대 초기, 즉 1920년~30년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섬에 500마리의 미시마 소가 있는 등 현재보다 오히려 번성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일본 농가의 현대화가 진행되면서는 소 대신 농기계가 농사일을 대신하게 되어 미시마 소 역시 섬에서의 수요가 적어지고 이에 따라 1976년에는 불과 33마리만 남을 정도로 급감하였다. 섬에 존재하는 미시마 소 보존회의 구성원 역시 8명에 불과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못받고 있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이렇듯 상징성과 연구적 가치 외에는 일본내에서도 관심이 적고 천연기념물에 대한 관리규정 때문에 오늘날에도 섭취할 수 있는 미시마 소는 일 년에 10마리 미만에 불과하고 대중적으로 팔리는 미시마 소는 미시마 소와 서양의 홀슈타인 품종이 교접해서 탄생된 잡종, 켄란 소(見蘭牛) 같은 소수의 브랜드가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대표 와규인 흑모화종의 유전적 기원은 너무 각종 품종이 섞인 탓에 논쟁이 활발한 분야고 미시마소의 외양이 흑모화종과 동일하게 검은색인고로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 소라는 의견도 일본 내에서 있다. 하지만 미시마 섬의 소가 정말로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 소의 아류로 유입되었을 수 있을지언정 미시마에 살았던 소가 일본 본토에 살았던 소의 기원이 될 수는 없다. 첫째로 미시마 섬은 일본 중심부에서 너무 떨어진 시골이고 교역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므로 이곳의 문물이 일본 본토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며 둘째로 상기의 역사적 기록을 보았을 때, 무로마치 이전 헤이안-가마쿠라 시대때부터 일본 본토에는 이미 흑우, 황소, 얼룩소 등 다양한 형태의 소가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도쿄농업대학의 연구처럼 현대 와규(흑모화종)의 특징인 마블링(시모후리, 霜降り)이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 소'에서도 발견된다면서, 와규의 마블링은 서양 소와의 교접을 통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재래종에서 기원한다는 식의 연구를 하는 측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연구가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소라는 소리는 아니다. 미시마소가 연구되는 것은 이 소가 서양 소에 유전적 영향을 받지 않은 일본 내에서 거의 유일한 소(독립변수)이기 때문이지 흑모화종의 직계 조상이 미시마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연구를 하는 이유는, 유일한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소에서 고도의 마블링이 발견된다면, (현재는 서양 소와의 교접으로 사라진) 일본 본토의 다른 순수 재래종에서도 마블링이 본래부터 내재되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즉, 미시마 소는 일종의 살아있는 화석인 셈이다. 추가적으로, 본 문단 처음의 코토뱅크의 설명과 같이, '와규'라는 단어는 '일본 소'라는 의미로서, 농사와 운송에 쓰이던 순수한 재래종과 고기용으로 개량된 현대의 교접종을 포괄하여 통칭하는 말이다. 육용으로 소비되기 위하여 서양 소 품종과 엄청난 교접을 시행한 오늘날의 잡종 와규(흑모화종 등)를 고립된 섬에서 농사용으로 쓰이던 미시마섬의 재래종 소를 설명하는 (문화재청 간판의) 와규와 연결하여 '미시마 소는 오래된 와규니깐 미시마 소가 와규(흑모화종)의 원조'라는 식의 주장은 제주 흑우 기원설과는 무관하게 반론의 여지가 크다. 사실 한반도와 제주도, 그리고 일본 열도의 거리가 가깝고 외양이 흡사한고로 양자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것은 의미있을 수 있다. 제주 흑우와 미시마 소가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든가, 혹은 타지마 소와 한반도의 소 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식의 연구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규의 흑모화종은 타지마 소와 서양 외래종의 교접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일본 내에서의 정설이고 이를 뒤집을만한 유력한 증거가 따로 없는만큼, 한반도/제주 흑우의 일본 와규 기원설은 아직 아무 근거없는 가설에 불과할 것이다.
@srardusts_wonder
@srardusts_wonder Жыл бұрын
🙏🏻 감사합니다 👍🏻
@happinessg1062
@happinessg1062 Жыл бұрын
일제가 앗아간 모든걸 되찾아야한다
@user-mn6cc2pc3q
@user-mn6cc2pc3q Жыл бұрын
흑우 알고 있었지만, 먹어보진 못했네요. 맛있게 드세요.
@MIMT7942
@MIMT7942 Жыл бұрын
일제시대 때 흑우의 아픈 역사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흑우의 꿈의 숫자 5000두가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 오늘도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user-wm4lh3ul5u
@user-wm4lh3ul5u Жыл бұрын
어릴 적에 우시장에서 흑소, 칡소를 본적이 있습니다. 60년대였지요.
@fadi51
@fadi51 Жыл бұрын
한우 흑우 외에 칡소라는 종도 있습니다. 다소 털이길고 덩치가 큰데 많이 치질 않고있더군요. 투박하지만 힘좋고 우수한 종자인데 많이 보급되길 바랍니다
@user-mw4ni2df9d
@user-mw4ni2df9d Жыл бұрын
귀한 우리 먹거리를 일본인들의 착취로 변했던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도 됐네요. 수고하셨습니다.반드시 흑우를 먹을수있는 기회를 만들기로 하겠습니다.
@user-zz3ef3tz1y
@user-zz3ef3tz1y Жыл бұрын
아름다운 우리나라 고유의 재래닭에 대해서도 취재 한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uper_kep1er675
@super_kep1er675 Жыл бұрын
일본에서 와규라고 하는 흑우 제주도 흑우 약탈해간거죠... 17:18 육사시미 라는 표현보다 육회라는 표현으로 해주셨음 더 좋았을것 같네요
@upa3367
@upa3367 Жыл бұрын
육회의 의미가 양념을 더한 날 소고기라 양념 없는 날 소고기랑 구분해야 하기 때문에 육사시 미라고 쓰이는데 뭉티기 처럼 찾아보면 지방에 육사시미를 의미하는 단어가 있을 듯 하네요.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조선총독부의 기록에 의하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국내 한우 150만 마리가 반출됐는데 이 때 조선 흑우의 양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일본은 1928년 흑우(미시마 소)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국립축산과학원 등 정부기관에서는 이 흑우가 제주 흑우였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한반도 내에서는 1938년에 누렁소(황우)를 한우 표준으로 지정해버려서 제주 흑우와 칡소 등이 한국인의 인식에서 점차 사라졌다. 일본 문화재청은 "흑우(미시마 소)는 한반도에서 도래해 현재까지 혼혈없이 사육됐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와규'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 학계에서는 미시마 소가 무로마치 시대부터 길러지고 농업에도 사용된 일본 재래종이라는 인식이 정설로 되어있고 제주 흑우와의 연관성에 관한 논란은 거의 만들지 않는 상황. 제주대 제주흑우연구센터에서 2018년 열린 ‘제3회 제주흑우 국내 심포지엄’에서 영남대 생명공학과 김종주 교수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육지의 한우, 제주 흑우, 울릉도 칡소와 일본 와규 품종, 서양 소 품종들의 유전적 진화트리를 분석한 결과 제주 흑우엔 독특한 유전적 특성이 있다”며 “일본 와규는 흑모색과 갈색으로 나뉘는데, 제주 흑우는 흑모색 품종과 유전적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고 말했다. 곧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2020년 12월 제주대학교 제주흑우연구센터에서 유전체 연구를 통하여 밝혀낸 바에 따르면, 제주 흑우는 일본 와규와는 유전적 특성이 전혀 다른 계통의 품종이며, 제주 흑우와 와규는 진화트리상 2~3세대 앞선 선조 단계에서 이미 분화가 끝난 상태였다고 한다. 제주대학교 제주흑우연구센터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와규와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것은 한우였다. 와규 중에서도 황색의 털을 가진 갈모화종이야 원래부터 한반도 유래라는 것이 기존부터 너무 명확했던 만큼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털 색깔이 황색과 흑색으로 가장 다르게 보였던 한우와 흑모화종의 유전적 근연성은 털 색깔이 같았던 제주 흑우-흑모화종간 유전적 근연성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이다. 상기의 유전체 연구를 통해서 와규 흑모화종의 기원이 제주 흑우라는 가설은 이미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황색의 한우가 일제 강점기 35년만에 와규 흑모화종으로 둔갑했을 가능성은 낮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어쨌든 일반적인 논의되는 '와규의 한반도 기원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존재한다. 우선, 상기와 같은 한국 흑우 기원설은 크게 다음과 같은 논리구조를 보이고 있다. • (1) 본래 일본에는 소 혹은 흑우 자체가 없었다. • (2) 무로마치 시대 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미시마 섬으로 한국/제주 흑우가 전해졌다 • (3) 일본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미시마 섬의 흑우를 개량하여 오늘날의 일본 와규를 만들었다. • (4)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기 위하여 미시마 섬에 살던 제주산 흑우를 억지로 천연기념물으로 만들었다. 이 중, (1)과 (3)은 상기의 내용으로 쉽게 반론이 가능하다. 일본에는 소 그리고 흑우가 고대부터 존재했음이 분명하고 검은 소 자체가 축산업계에서는 전혀 희귀하지 않다. 가장 오래된 육용종인 영국의 갤러웨이(Galloway) 품종이 검은색이고 앵거스(Angus) 품종도 검은색이다. 이건 논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오늘날의 와규(흑모화종)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로 활발하게 수십년간 외래종과 교접한 결과물이고 흑모화종 역시 미시마 소가 아니라 타지마 소를 베이스로 한다. 일본정부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산 흑우를 반출하였으며 특히 1924년 제주산 흑우를 반출한 결과 와규의 흑모화종이 탄생하였다는 주장은 고대와 중세에서 확인되는 일본 소의 역사와 품종개량의 근대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공당하기 쉽다. 그리고 1938년 와규는 검은색, 한우는 황색으로 일괄적으로 규정하여 한우 중 검은소가 강제로 사라졌다는 논리와 달리, 6년후인 1944년 와규 품중 중 하나로서 갈모화종, 즉, 갈색털의 와규가 정식으로 지정된다. 때문에 제주 한우 기원설을 위해서는 1938년 조치의 실제 파급력과 유효성을 먼저 연구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한우 항목에서 보듯이 한우중 흑우 수가 급감한 것은 1970년 한우의 털색(황색)을 심사기준으로 강화하여 황색이 아닌 한우는 실격처리한 것에 더 기인한 바가 크다. 또한 (4)번 논리와 같이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와규의 기원을 은폐 및 왜곡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성립하기 힘든데, 와규 중 2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갈모화종의 경우, 그 중 상당수가 한반도의 소에서 기원하였다고 학계에서든 축산업계에서든 대부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지마 소홍보 사이트에서조차, (사료적 가치는 낮기는 하지만) 고사기에 등장하는 신라의 왕자, 아메노 히보코(천일창 ) 기록을 언급하며, 고사기의 기록을 신라 왕자 아메노 히보코가 타지마 지방에 소를 데려왔다는 신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일본 고대의 각종 문화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을리는 없으니 이처럼 도래의 전설을 만드는 것은 일본 역사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일본 고대사에서 도래인의 존재는 꽤 빈번하고 중요하게 언급되기 때문에 일본 소가 한반도 기원이라고 해서 그것을 굳이 숨길 이유는 없다. 그리고 (2)에 대한 반론을 위해서는 미시마 섬(見島)이 어떤 곳인지를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시마 섬은 고대, 중세 일본에서 외부세계와의 통로 역할을 했던 사카이, 하카타, 데지마 같은 곳이 아니다. 야마구치현 최북단에 위치한 섬으로서 본토와는 약 45km 떨어졌고 인근의 다른 섬도 없이 외로운 시골 섬으로서, 현재 인구는 약 1천명으로 추정되는, 일본 역사에서 러일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에서 잠시 등장한 것외에는 등장한 적이 없는 작은 섬일 뿐이다. 한국 흑우 기원설에서 자주 인용되는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도 사실 별도의 근거가 없다. 그런 기록이 남을만큼 번성한 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섬의 유일한 역사문화 유적은 7세기~10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콘보 고분군이 유일한데, 이 고분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지콘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만어로 '지콘보'가 공동묘지를 뜻한다는 가설도 있고 아저씨를 뜻하는 현지의 방언이라는 설도 있다. 여기에 뭍힌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방인(防人, 백강 전투 이후 있을지도 모르는 신라와 당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서부의 최전선으로 파견된 일본 군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왜구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한국과 중국으로부터의 도래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은 그런 빈약한 역사를 채우기 위해 등장한 가설로서 그리 튼튼한 근거는 가지고 있지 않다. 지콘보 고분군에 소와 관련된 유물이 없으니 이 섬에 소가 도래한 시기가 헤이안, 가마쿠라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한반도와 비교적 가까우니 한반도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의 가설만 논의되는 섬이다. 만약에 미시마소가 일본 순수 재래종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미시마 섬에서 일본 재래종의 소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사실은 이 곳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궁벽한 외지섬이어서 일본 본토를 휩쓸었던 서양 소 품종과의 교접 열풍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1928년 일본이 이 지역의 소를 미시마소로 부르면서 천연기념물을 지정한 것도 이미 당시에 교접열풍으로 인하여 일본 재래종의 순수혈통이 사라진 시대에서 서양 소 도래 이전의 일본 재래종의 혈통을 지니고 있다는 상징성 때문이었지만 미시마 소가 오늘날의 와규 형성에 기여를 하였다는 증거는 없다. 2006년 당시 미시마 소는 미시마 섬에서만 자라며 암소 85마리, 숫소 14마리로 지극히 소규모로 보호되는 재래종일 뿐이고 오히려 192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는 도축이 엄격히 제한되는 등, 상업상 가치를 거의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4년의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쇼와 시대 초기, 즉 1920년~30년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섬에 500마리의 미시마 소가 있는 등 현재보다 오히려 번성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일본 농가의 현대화가 진행되면서는 소 대신 농기계가 농사일을 대신하게 되어 미시마 소 역시 섬에서의 수요가 적어지고 이에 따라 1976년에는 불과 33마리만 남을 정도로 급감하였다. 섬에 존재하는 미시마 소 보존회의 구성원 역시 8명에 불과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못받고 있다.
@user-vl8tj1io6x
@user-vl8tj1io6x Жыл бұрын
이렇듯 상징성과 연구적 가치 외에는 일본내에서도 관심이 적고 천연기념물에 대한 관리규정 때문에 오늘날에도 섭취할 수 있는 미시마 소는 일 년에 10마리 미만에 불과하고 대중적으로 팔리는 미시마 소는 미시마 소와 서양의 홀슈타인 품종이 교접해서 탄생된 잡종, 켄란 소(見蘭牛) 같은 소수의 브랜드가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대표 와규인 흑모화종의 유전적 기원은 너무 각종 품종이 섞인 탓에 논쟁이 활발한 분야고 미시마소의 외양이 흑모화종과 동일하게 검은색인고로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 소라는 의견도 일본 내에서 있다. 하지만 미시마 섬의 소가 정말로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 소의 아류로 유입되었을 수 있을지언정 미시마에 살았던 소가 일본 본토에 살았던 소의 기원이 될 수는 없다. 첫째로 미시마 섬은 일본 중심부에서 너무 떨어진 시골이고 교역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므로 이곳의 문물이 일본 본토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며 둘째로 상기의 역사적 기록을 보았을 때, 무로마치 이전 헤이안-가마쿠라 시대때부터 일본 본토에는 이미 흑우, 황소, 얼룩소 등 다양한 형태의 소가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도쿄농업대학의 연구처럼 현대 와규(흑모화종)의 특징인 마블링(시모후리, 霜降り)이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 소'에서도 발견된다면서, 와규의 마블링은 서양 소와의 교접을 통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재래종에서 기원한다는 식의 연구를 하는 측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연구가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소라는 소리는 아니다. 미시마소가 연구되는 것은 이 소가 서양 소에 유전적 영향을 받지 않은 일본 내에서 거의 유일한 소(독립변수)이기 때문이지 흑모화종의 직계 조상이 미시마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연구를 하는 이유는, 유일한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소에서 고도의 마블링이 발견된다면, (현재는 서양 소와의 교접으로 사라진) 일본 본토의 다른 순수 재래종에서도 마블링이 본래부터 내재되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즉, 미시마 소는 일종의 살아있는 화석인 셈이다. 추가적으로, 본 문단 처음의 코토뱅크의 설명과 같이, '와규'라는 단어는 '일본 소'라는 의미로서, 농사와 운송에 쓰이던 순수한 재래종과 고기용으로 개량된 현대의 교접종을 포괄하여 통칭하는 말이다. 육용으로 소비되기 위하여 서양 소 품종과 엄청난 교접을 시행한 오늘날의 잡종 와규(흑모화종 등)를 고립된 섬에서 농사용으로 쓰이던 미시마섬의 재래종 소를 설명하는 (문화재청 간판의) 와규와 연결하여 '미시마 소는 오래된 와규니깐 미시마 소가 와규(흑모화종)의 원조'라는 식의 주장은 제주 흑우 기원설과는 무관하게 반론의 여지가 크다. 사실 한반도와 제주도, 그리고 일본 열도의 거리가 가깝고 외양이 흡사한고로 양자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것은 의미있을 수 있다. 제주 흑우와 미시마 소가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든가, 혹은 타지마 소와 한반도의 소 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식의 연구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규의 흑모화종은 타지마 소와 서양 외래종의 교접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일본 내에서의 정설이고 이를 뒤집을만한 유력한 증거가 따로 없는만큼, 한반도/제주 흑우의 일본 와규 기원설은 아직 아무 근거없는 가설에 불과할 것이다.
@beumkeechoi7585
@beumkeechoi7585 Жыл бұрын
흑우 울능도에도 있다 당나귀 사육을 많이 해서 등산용으로 사용하고 당나귀 식용도 좋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와 일본에 흑우 많이 있다
@pvp7600
@pvp7600 Жыл бұрын
오웃 ~~~~ 혈통 보존 하자!!!!
@kim-jm4wm
@kim-jm4wm Жыл бұрын
일제강점기 때 검정소가 제일 우수해서 몽땅 일본으로 가져갔죠.(얼룩소ㅡ칡소 도가져감)우린모르지만 검정소를 수천만마리 가져간기록이 있겠죠.호랑이97마리 .조선범60마리.ㅡㅡㅡ!
@whonattu
@whonattu Жыл бұрын
우리의 것을 점점 많이 찾아가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piesunny
@piesunny Жыл бұрын
고려시대에는 청우(파란색), 백우(흰색), 흑소, 제주흑우, 칡소가 있었음 '검은쇠' 보다는 '검은소 몰고오는' 상호가 더 좋을듯 ~
@user-zu1jk2rh9s
@user-zu1jk2rh9s Жыл бұрын
👍👍👍
@user-dx6to7wk5o
@user-dx6to7wk5o Жыл бұрын
검은소가 있다는것 오늘 처음으로 알았네요 신기합니다 그동안 누렁소만 봤었는데,
@user-ce1bk6mk9l
@user-ce1bk6mk9l Жыл бұрын
와규가 우리나라 흑우와 일본소의 육종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일본소 역시 우리나라 소란 것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내용은 전국방방고곡을 벗어나 글로벌하게 알려합니다, 흑우 육종에 정부는 많은 투자해야합니다. 흑우 시육 농가에 대한 지원도 많이 필요하고 소비자의 관심도 필요해요, 일본은 메론 1개도 50만원하는 품종이 있듯이 유명호텔에서도 한정이라도 소비 마케팅을 해야합니다, 좋은 내용 역시 디시멘터리입니다, 고맙습니다 ^.^
@vivabusan
@vivabusan Жыл бұрын
마블링과는 상관없이 스트레스 없이 자란 소가 정말 맛있습니다.
@ekang3577
@ekang3577 Жыл бұрын
저희 집(제주도)에서 검은 한우를 키웠었어습니다. 새끼도 검은색이었어습니다.
@aCapOfmorningCoffee
@aCapOfmorningCoffee Жыл бұрын
육사시미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날로 먹는 음식을 회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사시미라고 하고요. 그러니 날고기를 찍어 먹으면 육회라고 해야 하고, 야채나 배 등을 넣고 무치면 육회 무침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어느 가게에서 육회무침을 육회라고 해버리고 나서 보니 그냥 찍어 먹는 원래의 육회가 육사시미가 된듯한데 취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ireneshin828
@ireneshin828 Жыл бұрын
제주도민임. 흑우인 진심 큰맘 먹고 먹음. 남동생이 소고기를 좋아해서 집근처 흑소랑 갔음. 나는 소고기 안 좋아함 느끼해서 얼마 못먹음. 우리남매끼리 가서 6인분 먹고 나옴. 음... 씹힘은 특등급 호주산 보다 조금 더 질김. 근데 맛있음. 씹으면 씹을수록 육즙이 터짐. 소고기 특유의 육향 있음. 풀냄새 남. 뭐 말고기도 먹는 내 입장에서는 크게 개이치 않음. 근데 소고기 킬러인 우리 남동생 말을 빌리자면, 흑소먹고 나니 한우든 호주산이든 돈 때문에 아쉬워서 먹을것 같다함. 한우나 호주산 먹을 돈 모아서 흑소 한번 먹겠다함. 흑소 사줄까 물으면 첫마디가 맛있는데 비싸잖아 임. 예전에 촌에가면 외양간에서 소키워서 그소 잡아먹었었는데 그 맛과 똑같음. 진짜 우리 조상님들이 먹던 소 맛임. 누가 타지역에서 제주오면 뭐 먹어야 되냐고 흑돼지 먹으면 되냐고 물으면 서울에도 파는 흑돼지 왜 먹냐고 제주오면 흑우랑 말고기 먹으러 오는거지. 돼지고기는 고깃집에서 먹는거 아니라고 하나로마트가면 흑돼지 판다고 얘기함. 자고로 지역 주민들이 보양식으로 먹는 말고기와 흑소 먹어야지 제주에서 제대로 먹었다 하는것임. 그 두가지는 타지역에서 보기 힘드니까.
@user-vt4gd5qs1e
@user-vt4gd5qs1e Жыл бұрын
유튜브 어떤 영상에 댓글로 일본이 우리나라 흑소 쓸어가서 와규로 만들어 버렸다는 내용썼다가 다구리맞았죠. 조금만 일본을 까거나 일본에 불리한 내용을 쓰면 몰려와 비난합니다. 그 인간들 대체 어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user-uc8zu8ks1j
@user-uc8zu8ks1j Жыл бұрын
등심에서 길게 떼어낸것이 살치살 이네요
@judosin267
@judosin267 Жыл бұрын
미시마 소와 유전자 비교를 해보면 어떨까요? 미시마소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소일진데, 미시마소와 제주 흑우를 교배해 품종개량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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