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치 이치 전투에서 막았기 때문에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님이 활약 할 수 있었음 전라도가 살아 남았기에 보급을 할 수 있었고 경상도에 의병들이 왜군들을 계속 괴롭혔기에 임진왜란을 이길수 있었음 이렇듯 어느 한지역 때문에 이겼다기 보단 다같이 뭉쳐서 대항했기에 우리가 이길수 있었던 전쟁임 지금 우리나라도 지역감정으로 서로 싸우지말고 잘 뭉쳐서 헤쳐나갔으면 하는 바램임
@conut933 Жыл бұрын
ㅇㅈㅇㅈㅇㅈㅇㅈㅇㅈ
@SWAM551 Жыл бұрын
근데 정치인이라는 ㄱㅅㄲ들이 자꾸 분란을 조장하죠
@황조-d2b Жыл бұрын
👍👍👍👍👍
@간다르바-j8z Жыл бұрын
저 시대에는 쌀이 음식중 8할이라고 할정도로 중요했고 심지어 화폐역할까지 했는데 전라도 지방이 최대의 곡창지대였으니...
@풋볼매니저-h4x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입장에서 잘한건 쓰고 못한건 감추는게 아니라 잘한건 잘했다 못한건 못했다 ㅂㅅ짓 한건 ㅂㅅ짓했다 솔직히 알려주니 오히려 더 재밌네요
@김태우-c2z Жыл бұрын
4:24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잘 나왔죠
@archangel7882 Жыл бұрын
사실 여기가 이순신 해전과 더불어서 임진왜란 최고 분기점이라고 봅니다. 두 곳 중 하나라도 망했으면 조선은 끝났을 겁니다. 그래서 권율이 행주대첩따위보다 이치전투가 인생전투라고 한거고요
@KKang_KK11 ай бұрын
행주대첩이 당시 조선에서도 중요하게 평가한 이유는 평양으로 회군하던 명이 행주산성 승리 소식에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것이 엄청나게 큼. 결국 한양 탈환 할 수 있었던 것이 행주대첩의 대승이라 대중들 입장에서 엄청난 전공으로 다가 오는 거죠. 물론 이치전투는 사실상 전쟁 초반 조선의 생사를 가른 전투라 뭐가 더 중요하다 라는 의미가 없는 것이 이치전투가 패했으면 애초에 행주대첩 까지 가지도 못 했음......그런대 권율이 사위에게 이치전투가 더 자랑스러운 전공 이었다라고 한 것은 전략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행주대첩은 직급도 더 높았고 병사들도 경험이 많아 잘 싸우고 병력도 충분 했고 반대로 왜군은 초반에 비해 기세가 많이 꺽인 상태여서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의미로 이야기 한 것,. 이치전투는 병력도 적고 애들도 어디서 모아 왔는지 훈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병력차도 10배인대....내가 그걸 이겼어!! 이 정도 마음 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항복의 책에 그런 의미로 말씀 하셨다고 나와요. 권율 마음에는 병력도 적고 훈련도 덜되어 있는 애들 대리고 내가 현장 지휘관으로 왜군 때려 잡았다고 이런 의미에 가깝다는ㅋㅋㅋ
@user-s1dfzv57ns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 전라도 군은 일본군도 무찔렀지만, 병자호란 때 무려 청나라 칸이 직접 이끄는 군대와도 싸워서 승리했음.. 게다가 선봉장까지 사살하고..
@강태윤-j4u Жыл бұрын
1차 평양성 전투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일본군과 대치하면서 조선군이 시간을 끌었다면 상황이 어느 정도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대동강 전투 이 후 평양성을 점령하고 조선군이 버리고 간 쌀 10만석을 확보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무릎을 쳤을 정도로 기뻐했다고 합니다.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 1차전이라고 볼 수 있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던 전세가 유리하게 바뀌게 된 계기는 전라도 방어 성공이었습니다. 의병장 고경명, 곽재우의 금산 전투와 정암진 전투, 조선 관군 정담, 권율, 황진의 웅치, 이치 전투가 있었기에 바다에서 연승을 거두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전라 좌수군이 해전에 전념할 수 있었죠. 참고로 웅치를 돌파했던 일본군은 그곳에 널려 있는 조선군 시체들을 모아 매장하고 충신의 푯말을 세워 주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비록 적이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희생에 경의를 표했던 것이죠. 전라도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룬 일본군도 이 전쟁이 시간이 갈수록 많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영상도 잘봤습니다.
그 이야기는 사위인 이항복이 쓴 책에 나오는 이야기...그런대 더 중요한 전투라기 보다 행주대첩때는 군최고 사령관이고 군사들도 경험이 쌓인 베테랑으로 잘 싸우고 이치에 비해서는 병사 차이도 할만했고 반대로 왜군은 전쟁 초기에 비해 사기가 많이 낮아진 상태라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의미....이치전투 내가 직접 지휘 하면서 전쟁 경험도 없는 병력을 대리고 10배나 많은 일본군 때려 잡았다고!! 라고 자랑 스럽게 이야기한 것. 이치전투때 권율은 광주목사로 그리 높은 자리의 지휘관은 아닌대 자신이 직접 주도한 중요한 전투에서 10배난 많은 적을 막았으니 얼마나 자랑 스럽겠어요.ㅎ
@suktubes Жыл бұрын
한국전쟁 초기 낙동강 방어때도 호남병력이 주축이었다고 하죠(백선엽 장군 회고록에서...)
@도깨비15922 ай бұрын
당시 호남에 있던 병력들 다 빼서 낙동강 방어로 돌려버렸죠 그래서 호남은 거의 무혈로 북한군이 점령해버렸습니다.
@dorosa1729 Жыл бұрын
1:03 내가 잘못들은줄
@이헌용-t9n Жыл бұрын
금산전투와 이치전투가 순서가 바뀐거 같아요 이치전투를 치루던 고바야카와가 금산쪽에 고경명의 의병군이 진격해 온다는 소식에 피해도 커서 본거지인 금산을 지키기 위해 후퇴한걸로 알고있어요 다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다닷-u9g2 ай бұрын
금산이 먼저가 맞음
@고등어자반 Жыл бұрын
전라도 거점이 중요한이유는 식량도 식량이지만 육로로 산과 거점을 안넘고 바로 한양까지 다이렉트로 칠 수 있고 수로를 이용하기 편해서 그렇다고 하네요
@markjeong6467 Жыл бұрын
황진, 황박, 고경명 장군님 감사합니다.
@박호두-m5y Жыл бұрын
황진장군님 너무 안타깝습니다. 제2차 진주성 전투에 철수하셨다면 후에 더 큰일을 하셨을 분인데..ㅜㅜ
우리나라는 패전 역사를 이건 패전이다 하면서 제대로 안 짚어주는게 문제임. 왜 졌는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말 안하고, 열심히 싸웠으나 순국했고 '아마' 적에게도 피해를 줬을 것이다 따위로만 가르침. 애초에 잘 안 가르치는게 이 시점 기준으로는 1차 평양성 전투와 용인전투고, 미화만 가득한 것이 1,2차 금산전투임.
@jhy.90211 ай бұрын
윤두수, 이자도 희한하네, 도망갈때 식량을 두고가다니.. 작전도 모르는자.
@rdmmechguy3361 Жыл бұрын
고경명은 이치로 가서 권율과 합류했어야 했다. 물론 소통이 힘들었겠지만.
@okeyjjang Жыл бұрын
바다에선 이순신!! 땅에선 황진장군!!!!
@장희조-z8h Жыл бұрын
권율:?? 힝 ㅜㅜ 나 도원수였는데... 조선 육군 수군 총지휘관 이었는데... ㅜㅜ
@우원식-s6r Жыл бұрын
일제 치하에서 친일파가 제일 많았던 지역이 어딘지. 아시나요?또 중국에 가서 납작 엎드리고 친중하는 정치인이 제일 많은 지역이 어딘지는 아시나요?
@SoWhatSOB Жыл бұрын
@@우원식-s6r잣이나 까집솨
@우원식-s6r Жыл бұрын
@@SoWhatSOB 짐작하고 발작하나 보네? 구체적으로 말안하고 특징만 지적했는데, 거긴지 찔끔하신가봐요잉
@megaroad82 Жыл бұрын
@@우원식-s6r 어딘데요?
@최병택-k9i4 ай бұрын
임진왜란 3대첩이라하면 한산도대첩 행주성전투 1차 진주성 전투라 하는데 저는 임진왜란 4대첩이라고 고쳐서 웅치 이치 전투를 추가해야 본다고 봅니다. 만약에 전라도마저 왜군에 넘어갔다면 이순신 장군이 바다에서 싸우는 데에도 큰제약이 있었을 뿐더러 명군과 조선의 반격도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계사전공자 Жыл бұрын
참고로 제1차 평양성 전쟁 때는 군 총사령관이 광해군이었음.
@광팔-g4b Жыл бұрын
이때 고경명의 아들들도 전사한 걸로 압니다.
@conut933 Жыл бұрын
1명만 생존함
@김민철-z5q Жыл бұрын
무능의 끝판대장….
@axeyes88 Жыл бұрын
재밋네요. 근데 사기 충전이 아니라 사기 충천. 사기가 하늘을 꿰뚫는다
@Lupin_Salary Жыл бұрын
고바야카와는 수달장군 닮았네
@yankeesg67167 ай бұрын
지금의 군대도 심히 염려가 됨
@j8e-k5c Жыл бұрын
웅치와 이치 전투는 태어날때부터 교육 시켜야 함
@맑은눈의광인-j6c Жыл бұрын
쌀 원툴임 사실상..보리 조피 다 해봐야 쌀하나를 못이겨먹고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같은 작물도 당시 조선엔 없었음. 한반도서 쌀 대량으로 지을곳이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가 끝임.
@호두구속 Жыл бұрын
전라 충청보단 적지만 경상도도 쌀 생산량 높음
@올리브-b5n Жыл бұрын
선조 -> 한의학 발전 허준 동의보감
@장희조-z8h Жыл бұрын
역시 금산 웅치임 정작 권율 본인은 행주대첩보다 웅치전투가 훨씬 치열했고 중요했다고 회고함
@방주-y3h2 ай бұрын
전라도가 없었다면 우리민족은 여진족처럼 흩어져서 소수민족으로 살았을것인데 황진.권율.이순신 김시민장군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군사와 물자를 자급자족 하면서 군졸로 왜군을 물리쳐 주신 전라도 분들 감사합니다
@곰불-p6f Жыл бұрын
조선판 북아일랜드
@conut933 Жыл бұрын
좋아요 늘어나라 뿅★
@제이2013 Жыл бұрын
전라도 최고!역주행-조선왕조실록 최고!
@asdfishkkhoqwer Жыл бұрын
거긴 다른 나라 자치구로 알고있는데? ㅋㅋ
@비알리-g8m Жыл бұрын
@@asdfishkkhoqwer 선대에 일본군에 당해서 그쪽 DNA가 있는거야?? 아니면 발정이나서 스스로...
@보노보노-g4f Жыл бұрын
권율장군님 나중에 결국 망했어요 ㅠㅠ
@conut933 Жыл бұрын
???: 에헤이
@Seok.Chong.I Жыл бұрын
초반 평양성 주둔군 개트롤이네
@골방철학자-n4v Жыл бұрын
1등
@뜨개-b1d Жыл бұрын
경상도가 빼앗겻으면 지금같은 삶 못누렷겠지
@호두구속 Жыл бұрын
경상도는 전쟁 시작하자마자 뺏겼는데 무슨 소리
@user-zx7vs5rt4d Жыл бұрын
대신 625때 빨갱이들로 부터 끝까지 나라구한 지역임
@뜨개-b1d Жыл бұрын
미안 625때 이야기
@내동박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논하는데 웬 625? 핀트 좀 맞춰서 댓글 답시다~
@jimchoi8750 Жыл бұрын
이씨 조선은 국민의 70프로가 넘는 서민들을 부정부패로 착취하고 굶겨 죽이던 시대였다. 부정부패로 서민들은 쌀을 양반들에게 다 뺏겨서 화전민이 되서 떠돌거나, 목숨 걸고 간도로 도망치거나 아니면 굶어 죽거나 아니면 성기를 낫으로 잘라 자살하거나, 아니면. 임꺽정의 난을 일으켰다가 양반들에게 잡혀죽거나 했다. 그러다가 일본이 들어와서 강제로 상투를 잘라내 신분제를 없애버렸고 , 굶주림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노비 백정의 자식들까지도 다 초등학교에 보내쥤던 거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