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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청렴결백의 상징이었습니다.
무려 24년간 정승으로 일하고 18년을 영의정으로 지낸 명재상이니 분명 부자일거라 생각되지만
그의 집은 장마철에 비가 샐 정도였고 관복도 달랑 한 벌만 주구장창 입고 다녀 정승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형색이 초라했다고 합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종이 황희를 도와줄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숭례문을 열어 문을 지나는 상인들의 물건들을 모두 사서 황희에게 주겠노라!"
그런데 그날은 폭풍우가 몰아쳐 드나드는 상인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딱 한사람 어떤 노인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왔는데 세종은 이 달걀이라도 사서 황희에게 주었습니다.
황희가 집에 가져가서 삶아 먹으려 했는데 달걀은 모두 곯아터진 것이라 한 알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송남잡지에 실려있는 일화로 황희의 청렴한 이미지를 잘 나타냅니다.(계란유골)
다음은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어느 날 황희가 소 두 마리로 농사짓는 이를 보며 물었습니다.
"두 마리 소 중에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농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황희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로 대답했습니다.
"실은 누런 소가 검은 소보다 일을 더 잘합니다."
"아니 그냥 말하면 될 것이지 굳이 이렇게 귓속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농부의 대답에 황희는 큰 깨달음을 얻고 그날 이후부터는 언제나 언사를 무겁게 하였습니다.
그 외 비가 새는 날이면 그릇을 놓아 비를 담고 우산을 써서 비를 맞지 않았다는 이야기...
노비의 아이가 정승인 자신의 수염을 잡아당기며 장난을 쳐도 그저 허허 웃기만 해서 허허 정승이라는 별명이 생겼다는 이야기... 모두 황희의 청렴함과 훌륭한 성품을 잘 나타내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대대손손 오늘날까지 이어져 우리는 황희를 떠올리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청렴결백한 재상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운 재상, 오직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자애로운 재상...
동물에 비유한다면 티끌만한 때도 묻지 않은 우아한 백로 한 마리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실록에 묘사된 황희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야사에서 전해지는 황희와 실록의 황희는 어느정도 차이점이 있습니다.
실록에서는 황희의 다른 면모도 꽤 많이 다루었는데요
지금부터는 실록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 #한국사 #황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