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마주서다] 1946년 시월, 잊혀진 대구. 대구의 10월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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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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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 1946년 시월, 잊혀진 대구
해방 후 이듬해인 1946년 대구는 심각한 식량난과 콜레라가 겹치고 미군정이 친일관리를 고용, 쌀 강제수집과 식량공출을 강압적으로 시행하는 것에 맞서 굶주린 시민들의 시위가 수시로 벌어졌다. 그해 9월 말부터 쌀 배급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총파업이 일어났고, 10월 1일 저녁 대구역 인근 태평로(구 삼국상회) 앞에 약 500여 명의 노동자와 100여 명의 무장경찰대가 대치하던 중 경찰의 발포로 노동자가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2일,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하기 시작했지만 미군정의 계엄령 선포로 대구에서의 항쟁은 진압되었으나 항쟁은 빠른 속도로 전국에 확산됐다. 12월 중순에는 전국 73개 시·군으로 확대되었고 대구·경북 77만 명, 전국 23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항쟁이었다. 그러나 제주 4·3사건이나 여순 항쟁에 비해 조명 받지 못한 1946년 10월의 대구. 72년 전 당시 사건의 관련자와 목격자는 모두 고령으로 그들의 기억은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 이들의 증언을 확보하는 작업은 시급하다.
▣ 아버지 이름도 부르지 못하고 숨죽인 72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석우 채충식의 손녀딸인 채영희 씨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이어 10월 항쟁에 참여하다 강제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된다. 당시 어머니와 면회하러 갔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10월만 되면 먹먹해진다는 채영희 씨, 10월 항쟁 유족회장이 되어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니 당시 가창골(현 가창댐)로 끌려가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46년 10월 경북도청공무원이자 대구상고(현 대구 상원고) 학생이었던 강창덕 씨. 그날 도청 건물 2층에서 근무를 하다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는데 당시 경찰의 발포로 공분을 느껴 교복으로 갈아입고 학생의 신분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그 후 세상에 눈을 크게 뜨게 되고 진보적 학생운동단체에 가입하여 민주화운동과 분단반대운동도 전개하였다.
▣ 소설가 현기영, 감춰진 현대사의 아픔을 되살려내다
1948년 제주 전역에 걸쳐 벌어진 가슴 아픈 참상, 4·3사건. 이 중 400여 명의 주민이 학살되어 당시 가장 큰 희생자 수를 기록한 북촌 사건을 배경으로 소설을 써 제주 4·3사건을 세상에 알린 현기영 소설가. 그는 대구의 10월 항쟁 가담자들이 한국전쟁 전후 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됐다는 가슴 아픈 사연과 마주 서게 되는데... 민간인 희생자는 대구·경북에만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민족 수난기 역사의 내부를 치밀하게 글로 써내려간 그는 국가에 의해 희생된 유족들의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Пікірлер: 61
@제경문-k7r
@제경문-k7r 9 ай бұрын
대구폭동과 제주사태, 그리고 여순반란사건 이후 6.25전쟁은 남한에서 주도권을 잡기위한 박헌영이 주도하고 쏘련이 지원한 민족의 비극적인 말로입니다. 이런비극은 베트남,캄보디아까지 연결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념전쟁의 희생자가 됩니다.
@jiminilee1463
@jiminilee1463 Жыл бұрын
대구가 다시금 원래의 정체성을 찾아 진정한 애국 성지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crystal1474
@crystal1474 10 күн бұрын
대구 10월항쟁 입니다. 10월사건아니고.
@박종휘-n4x
@박종휘-n4x 9 ай бұрын
10월폭동이지 저게 어떻게 항쟁입니까 북조선의 지령을 받은 적색테러입니다
@noboss_moremoney
@noboss_moremoney 3 жыл бұрын
기억해야 되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기억할 가치를 깎아내린다 그 결과는 비극의 반복이다
@역사잼
@역사잼 8 ай бұрын
이봐요 저건 남로당 폭동이잖아요
@juengwonkim3426
@juengwonkim3426 10 күн бұрын
기억하겠습니다.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제경문-k7r
@제경문-k7r 9 ай бұрын
박정희대통령의 비극사만 보더라도 그당시 남한은 남노당이 장악했으며 남노당의 뿌리들의 폭동을 항쟁이나 시위로 보는것은 무리가 있읍니다.
@살아남자-k4t
@살아남자-k4t 4 жыл бұрын
비극의 현대사
@지선이닷
@지선이닷 8 ай бұрын
10월폭동 43 여수순천반란 518 다들 같은 맥 아닌가? 국가전복
@은나라가고조선
@은나라가고조선 Жыл бұрын
기억하라 미ㆍ유럽의 동방학살을
@하늘섬-w1f
@하늘섬-w1f Жыл бұрын
내 고향 대구. 진보와 민주의 뿌리. 지금은 ....
@대구사람1
@대구사람1 Ай бұрын
지금 대구는 국짐지역이 되었네요
@bizfree
@bizfree 3 жыл бұрын
저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남한은 현재 북한처럼 살고 있을것
@마마-v2s
@마마-v2s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대구
@user-ds9zb8zq4u
@user-ds9zb8zq4u 3 жыл бұрын
팩트) 대구폭동이다.
@user-gg5qc3jr7xhh
@user-gg5qc3jr7xhh 2 жыл бұрын
@@user-ds9zb8zq4u 폄하 금지
@우남-l1j
@우남-l1j 2 жыл бұрын
소련군 장교 쉬티코프 비망록에 나온 팩트는 소련 지시로 남로당이 선동 및 폭동을 일으킨것 철도파업 일으킨 빨갱이들이 대구 식료품 가격 폭등 몰랐을까? 사람들 반미 선동하려고 사전 계획된 소련 빨갱이 괴뢰짓 충실히 해서 발생한 대구폭동이자
@user-gg5qc3jr7xhh
@user-gg5qc3jr7xhh 2 жыл бұрын
@@우남-l1j 빨갱이라는 용어는 일제의 잔재이기대문에 사용 금지해주세요
@은나라가고조선
@은나라가고조선 Жыл бұрын
너희는 똑바로알긴바란다 우리동방의 모든비극의 몸통이 유럽이라는것
@-dr7977
@-dr7977 9 ай бұрын
소련 !!!
@불타는왕개미
@불타는왕개미 7 ай бұрын
항쟁? 폭동이야 폭동
@신사현-h1u
@신사현-h1u Жыл бұрын
뭔항쟁이야 이나라가 북한다되어ㅛ네 엄연히 남도당과 인민위원회 주도에 폭동에 일반 무지한 국민이 부하내동에서 벌어진 소유 사태 시대 회생양이지 명분이 없는 ㅎ생이지
@koleanan1001
@koleanan1001 Жыл бұрын
박정희 친형인 박상희가 대구폭동의 주동자였단건 안비밀
@손민호-j1l
@손민호-j1l Жыл бұрын
항쟁이 아니라 폭력시위고 반란으로 다시 제목을 바꾸어 주시길 바랍니다. 민노총 남로당의 것들이 일으킨 반란이고 테러였읍니다. 그러니 이런 내용을 다룰때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됩니다.
@참맛있는-j8u
@참맛있는-j8u Жыл бұрын
옳소,,공산당의 테레입니다 나는 1945부터 대한민국의 사건을 다 알고 있다;;;박현영의 행적..김성주[일명,,김일성] 행적을 다 알고 있다 1948년제주 4,3사건는 북로당[김일성]이가 한 것이고,,,1948년 10,19, 여수 군 반란 는 남로당[ 박현영]이가 한 것 이다;;; 제주 4,3 사건은 6.25을 일으킨다
@대호임-g3f
@대호임-g3f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버러지 무뇌충들의 폭동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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Это было очень близк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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