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은 포병이 최고로 강력하다! 국군 포방부 전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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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Box TV, [God of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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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ай бұрын

대한민국 육군은 유달리 포병이 강력합니다.
중국과 북한을 제외한 서방국가 중에서는 그 수량도 최대 수준입니다.
K-9자주포를 비롯한 자주포는 2천여문.
그리고 견인포까지 포함하면 무려 6천 여문에 달하는 막강한 화력.
그렇다면 국군은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포방부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포병을 갖게 되었을까?
1952년 4월.
155mm 포 4개 대대를 보유한 국군 2군단의 재창설.
하지만 155mm 야포가 있다고 해서 최강의 포병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포병에 대해 무지한 일선의 사단장들.
그들은 포병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제로였습니다.
155밀리 포를 갖고 있어도
제대로 전투에 쓸 줄을 몰랐던 것이 국군포병의 현실.
국뽕에 취해있는 뻔한 내용은 지양합니다.
포방부라고 불리게 될 정도로 강력했던 국군 포병.
그 정확한 역사적 유래를 구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6.25 전쟁 컨텐츠 재생목록: • 6.25전쟁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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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플리트#국군포병#포방부

Пікірлер: 113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이 컨텐츠는 국뽕 컨텐츠가 아닙니다. 미군은 중공군에게 넘어갈까봐 강력한 화력의 155밀리 야포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1952년 4월, 최초로 155밀리 야포를 장비한 국군 자체의 포병부대가 창설되지만 그것을 전투에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인재가 없었던 국군에 대한 이야깁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3 ай бұрын
나폴레옹도 포병 출신이고 포병대를 진짜 강하게 키워서 잘 써먹었지요. 사실 대포는 과거에든 현재에든 미래에는 육군에게 진짜 꼭 필요한 존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3 ай бұрын
사실 당시 국군 군사력은 너무나 형편없었고 북한군을 자력으로 무찌르고 북진할 능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엔군이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면 적화통일 100% 되었을 게 뻔했죠 ㅜ 아무리 남의 나라 전쟁이라 우리만큼 북진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목숨을 희생해가며 싸워주신 유엔군들 덕분에 한반도의 절반이라도 자유민주주의의 품 안에 살 수 있게 된 것은 두고두고 감사할 일입니다
@user-zf5vq2fk4i
@user-zf5vq2fk4i 3 ай бұрын
9#년 전방21x 81박격포.. 당시만 해도 군장위에 포장비 올리고 훈련기동했지. 오늘도 몰랐던 좋은 정보영상, 감사합니다. 멸!! 공!!
@korealife1801
@korealife1801 3 ай бұрын
야 요즘 하도 이것저것 자극적인 유튜브 많은데 내용이 쫙쫙 달라붙게 잘 하네요 계속 좋은내용 부탁^^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응원 감사합니다 😊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3 ай бұрын
리지웨이, 밴 플리트 장군이 대표적으로 국군의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기 위한 여러 훈련들을 한국전쟁 중에 실시하였죠 ㅋ 여러 전략,전술들을 가르치고 부족한 군사장비들도 대폭 지원해주고 ㅋ 이 덕분에 중반부터는 국군의 군사력이 대폭 상승하여 백마고지 전투, 가칠봉 전투, 화살머리고지 전투 등 여러 고지전들에서 맹활약을 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국군을 하찮게 여겼던 미군 수뇌부들도 국군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죠
@514mook
@514mook 3 ай бұрын
대포는 큰 총이니까 총쏘듯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수학적 능력이 중요하고 평생 배워야 하는 병과라는거 처음 알았어요 육군 변두리부대 행정병 출신이라 대포 쏘는거 한번도 못봐서 ㅠㅠ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05:55 부분에 나오는 자료 화면에 예시 화면이 나옵니다. 정확한 포탄 발사를 위해서는 탄도 계산을 정확히 하는 전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국군에는 그런 인물이 전무했습니다. 사단장조차 이리와서 쏴, 저기 가서 쏴! 등 아예 포병에 대한 개념도 없었던 시절입니다. 자주포도 아니고 장군의 말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닐 수 없다고 밑에서 항변하면 사단장에서 끌려가 얻어맞는 것이 당시 현실이었습니다.
@taegyugweon7009
@taegyugweon7009 3 ай бұрын
유익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rlee4805
@rlee4805 3 ай бұрын
언제나 감사합니다
@HY-cb1fm
@HY-cb1fm 3 ай бұрын
정확한 정보군요 다른데는 쓸데없이 기원을 따졌네요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지금의 국군포병의 기원은 조선시대가 아닙니다. 현재 서방의 표준 규격인 155밀리 야포를 장비한 자체 부대를 보유한 것이 1952년 4월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국군의 사단장들은 포병의 원리조차도 아는 사람이 드물었을 정도였습니다. 이 컨텐츠는 이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user-fj9pj6nu5k
@user-fj9pj6nu5k 3 ай бұрын
반가워요!
@lamoking647
@lamoking647 3 ай бұрын
이번영상은 특별히 크게 성공할꺼 같네요 사실 이번 러우전쟁으로 포병의 중요성이 더 크게 부곽된거 같아서 포병에 집중이 많아지고 있는데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감사드립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국군 포병에게도 시작이 있었습니다. 이 컨텐츠는 그 직접적인 시작의 이야깁니다. 6.25전쟁 당시 국군 사단장들은 이리와서 사격해! 저기가서 사격해! 등. 포병에게 제멋대로 명령을 남발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는 K-9 자주포도 아니었고 포진지에서 사격을 해야하는 견인포였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다 말 안듣다고 구타까지 했으니 포병 전문가 1명이 아쉬운 상황이었습니다.
@user-sy9kf9kc7l
@user-sy9kf9kc7l 3 ай бұрын
국군 포방부의 근원!!
@user-sy1jw1hc9n
@user-sy1jw1hc9n 3 ай бұрын
몰랐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럼에도 상당히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good. 저는 거기에 동이족이라는 DNA도 한 몫했다고 생각합니다.
@leo-cu3hg
@leo-cu3hg 3 ай бұрын
국군은 포병“만” 강력하다 !
@user-ze3ey1gm3p
@user-ze3ey1gm3p 3 ай бұрын
만물상자 아니면 모를수 밖에 없는 컨텐츠
@user-sh8ut6rd4o
@user-sh8ut6rd4o 3 ай бұрын
약간의 양념이 있겠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재미나네요ㅎ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그러나 양념은 오히려 앞부분에 현재의 국군 포병에 대한 이야기가 양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기에 나온 것은 정확한 사실입니다. 국군 사단장들은 포병에 차량에 딸려 있기에 자신이 시키는대로 이리가라! 저리가라~ 했던 것 같습니다. K-9자주포가 있는 요즘이면 몰라도 당시는 견인포였으니 포병장교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mirnevaEule7554
@mirnevaEule7554 3 ай бұрын
2차대전은 요새 안올라는 것 같은데, 또 올리나요? 크릭스마네 이야기도 보고싶어서요..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3 ай бұрын
한국전쟁 중반까지도 국군의 군사력은 너무나 처참했고 여러 실책들을 저지른 것도 사실이죠 ㅜ 가장 대표적인 게 동부전선의 현리전투 ㅜ 유엔군 장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칫 전선은 37도선까지 아님 한강-횡성-강릉라인에서 고착화될 위험이 매우 높았을 정도입니다
@user-cx2kg8im5n
@user-cx2kg8im5n 3 ай бұрын
현리전투에서 국군이 밀린건 알몬드가 뻘짓거리를 해서임.미군과 국군사이의 방어경계를 한국군이 하려 했는데 알몬드가 못하게 막고 정작 지는 그곳을 막아주지 않아서 중공놈의 소규모 부대가 퇴로를 차단하고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국군이 지리멸렬로 무너진거임.
@user-fe7st6gv3z
@user-fe7st6gv3z 2 ай бұрын
패전 전문 일본군 출신 유재흥이 일궈낸 역사죠?
@user-fi7lh9wb4h
@user-fi7lh9wb4h 2 ай бұрын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보니까 역시 아직까지 전쟁의 신은 155mm 이네요
@sjyoon0603
@sjyoon0603 3 ай бұрын
전쟁의 신님~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daegyunkim7408
@daegyunkim7408 3 ай бұрын
그래도 절체절명의 시기에 우수한 리더들이 등장하여 나라의 운명을 살렸군요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포병은 전문적 영역이며 수학적 능력이 특히 필요한데 국군 지휘관 중에는 그런 인물이 있을 수 없다고 무시했던 미군 지휘부. 그러나 국군에겐 그런 인물들이 있었으며 이후 국군 포병은 무제한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user-ld9lg2ms2s
@user-ld9lg2ms2s 3 ай бұрын
당시 최고의 포병장교는 소련에 있는데 그사람을 장군시키는게 맞는거 아닌가?
@jmo8703
@jmo8703 3 ай бұрын
@@user-ld9lg2ms2s 누구죠?
@user-vy6dn4oh5v
@user-vy6dn4oh5v 3 ай бұрын
6ㆍ25때 북한군 야포가 먼저 불을 뿜고 남침했는데 북한은 야포가 상당히 많았다 전차도 포에 속한다면 전차 야포 합쳐서 국군보다 수배는 많아서 남침하고 국군이 밀리는게 당연한거다 국군이 포를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된게 6ㆍ25때라고 보고있다 그 뒤에 포방부라 부를만큼 야전포를 그렇게나 많이 생산한거 아닌가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03:30 부분에 밴 플리트 장군이 또 다시 서울 북방까지 내려온 중공군을 400문의 야포로 저지하는 것이 나옵니다. 특히 지금도 사용하는 155밀리 야포는 국군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1952년 4월에 155밀리 야포를 갖춘 국군 자체 포병부대가 생겼습니다. 엄밀히 말해 오늘날 국군 포병의 시작은 이때부터 라고 볼 수 있습니다.
@user-nc6ih3hr6h
@user-nc6ih3hr6h 2 ай бұрын
97군번 포병출신입니다. 1.견인포와 자주포의 차이지만 저당시는 견인포가 주류였던걸로 압니다 제작 단가가 쌉니다 이동은 차량과 결합하여서 이동합니다 2.여기와서 쏴 저기가서 쏴 자체가 말도 안되는겁니다. 포의 사정거리는 15~40km정도입니다 현제는 극악으로 쏴야할시 60~80km정도의 거리를 타격합니다 어디든 포의 거리가 닿죠. 3.포의 가장 취약점은 포의 이동시와 대포사격 임무를 수행할때 자체방어가 취약합니다 주변 적 보병들에게 당하면 죽는거죠 안전한곳이어야 사격임무를 수행할수 있습니다 견인포가 더더욱 그러한데 자주포는 비교적 덜합니다 4.포를 쏘는건 보이는적을 보며 쏘는게 아니기에 컴퓨터의 전적인 계산을 마치고 미리 영점을 맞추어놓은 판을 깔아놓고 대기타다가 명령이 하달되면 쏩니다 5.조준사격시 딱 3가지가 핵심요소입니다 편각(수평각 쉽게 동서남북) 사각(위아래 각) 장약(1~7단계로 양을 조절) 6. 적에게 가장 적은 돈으로 최 고의 고통을 안겨주는것이 대포입니다 우리가 가성비를 따지는데 전쟁에서 최고의 가성비가 나오는 무기가 대포입니다 전쟁의 신. 이라고 하는데 그말은 직접 전쟁을 해보진 않아서 모르겠네요 7.현대로 넘어와서는 견인포는 거의 제작되지 않고 자주포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3문항과 연관이 있습니다 8.대포와 전차를 합쳐만든 탱크를 만들면 안되냐고 윤대통령이 말했죠 이건 마치 비행기와 자동차를 결합한 비동차를 만들라는것과 같습니다 만들순 있어도 죽도 밥도 안되는 결과물이 나옵니다 자주포는 곡사화기고 전차는 직사화기 입니다. 자주포에게 가장 공포스런 상황은 적 전차(탱크)를 바로 앞에 맞닥드린상황입니다 자주포가 이길 확률은 1퍼센트정도 됩니다 9.현재시대에 포탄사이즈는 155mm가 이제 성격책 처럼 바이블이 되었습니다 155미리가 넘어가면 너무 무겁고 굼뜨고 장비기동자체가 제약을 받고 155 미리보다 작으면 포탄 화력이 약하고 결국 최적화가 된 사이즈가 155미리 입니다 현대전에서 소총 7.62미리 소총탄약이 성경바이블 처럼 굳어진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5.56미리 소총탄약이 사장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war-history
@war-history 2 ай бұрын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17park19
@17park19 2 ай бұрын
포병 운용의 개념 탑재가 육군 근대화의 시작이지
@user-cx2kg8im5n
@user-cx2kg8im5n 3 ай бұрын
박정희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때 포병경력을 잘 활용하였죠.전문적인 지식으로 고속도로 건설에 접목한 대단한 선구안이 있었죠. 하늘이 대한민국에 내린 인재라 생각합니다.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박정희 대통령은 대구사범학교 출신입니다. 거기다 일본 육사를 300명 가운데 3등으로 졸업한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국군을 무시했던 미군 측에서 놀라는 장면이 흥미롭습니다. 사실 박정희 대령은 백선엽보다도 나이가 3살 많았지만 대령에 불과했을 정도로 국군 내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군단 포병을 이끄는 장군이 됩니다.
@user-zr2zn9vh5z
@user-zr2zn9vh5z 3 ай бұрын
@@war-history 박정희는 국방경비대에 늦게 들어와 소위로 임관했지만 만주군관학교와 인맥과 일본육사 인맥 사이에 알려졌던 인물이고 미고문관도 인정을 했고 정일권 보다 후배지만 나이가 같았고 백선엽은 정일권을 형처럼 대우 하다 보니 박정희 도 쉽게 대하지 않는데 그의 동생인 백인엽이 함부로 대합니다. 우리나라 정서상 나이 많은 사람을 함부로 하지 않았고 정일권은 군대에서 한참 후임인 박정희에게 사적으로 동갑이고 생일도 느리니 형님! 으로 하자고 했지만 박정희는 정형! 으로 칭합니다. 박정희는 광주의 포병학교와 미국 포트실(포병학교)로 유학을 가면서 돈독한 인맥을 형성합니다. 포병으로 복무한 건 엄밀하게 말하면 영관장교 이하만 해당이 되지만 준장으로 군단포병의 수장이 되고 사단포병 사령관은 그 이후에도 대령이 맞고 포병연대라는 명칭으로 변화를 합니다. 경부고속도로를 까는데 지형분석은 포병출신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고 보병 출신 장군중에도 유능한 사람이 있었으나 인력풀에 있어 우리군이 성장을 못하다 보니 어려웠던 것이고 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 장군 또한 초창기 포병을 키운 인물이며 박정희는 시기적으로 포병을 창설하는데 큰 힘을 쏟기 보다는 6.25이후 우리군의 체계가 커질 때 사단장이나 부군단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포병학교 교장을 역임하는데 가장 오래 역임한 인물은 노재현 장군으로 우리 군 최초로 북한에 M3 105mm 곡사포를 처음 쏘았던 인물입니다.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user-zr2zn9vh5z 정확하고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user-rt1xt6qm8u
@user-rt1xt6qm8u 3 ай бұрын
만물상자님 대한민국 🇰🇷 포방부가 6.25 한국전쟁때 불렸군요😂
@user-eq8tl3xm2u
@user-eq8tl3xm2u 3 ай бұрын
6.25전쟁때 독일군에서 가장 강력한 전차가 300여대 하고 독일산 전투기500여대로 국군이 독일재. 무기를 사용했다면. 어떻게 됬을 까요?답변 부탁 드립니다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다소 황당한 질문일 수 있는 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습니다. 역시 사료에 근거한 것입니다. 국군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이승만 대통령과 가장 사이가 좋았던 사람이 밴 플리트 입니다. 이승만은 밴 플리트에게 155밀리 자주포 등 무기를 더 지원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밴 플리트의 이 대답을 듣고 이승만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국군은 무기가 없어서 전투력이 약한 것이 아닙니다. 병사들의 훈련 부족과 병사들을 제대로 이끄는 유능한 지휘관이 없어서 전투력이 약한 것입니다." 때문에 저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중공군은 탱크와 전투기도 없었지만 미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user-eq8tl3xm2u
@user-eq8tl3xm2u 3 ай бұрын
​@@war-historyㅈㅅ 저중3밖에 안되서 생각하는게. 이거 밖에 안됬네요 ㅠㅠ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user-eq8tl3xm2u kzbin.info/www/bejne/l5jZf4Cpl5tnr6s (한국군의 아버지 밴 플리트 2부) 를 추천합니다. 중 3이라 할지라도 사료 그대로 언급한 이 컨텐츠를 본다면 이해에 무리가 없습니다.
@user-eq8tl3xm2u
@user-eq8tl3xm2u 3 ай бұрын
@@war-history 감사 합니다
@user-hj1jo5pv6v
@user-hj1jo5pv6v 3 ай бұрын
이렇게 광기 수준의 포병 전력 집중을 한 덕분에 한국군은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장비로 WAP(바르샤바 조약기구) 전술로 싸우는 군대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다고 하죠.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이번 컨텐츠를 제작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포병의 수량으로는 미군보다도 많다고 합니다. 지상군 전력 중 유달리 포병이 정말 강력한 것이 대한민국 육군입니다.
@user-kn7ib3xi4x
@user-kn7ib3xi4x 3 ай бұрын
테일러 저분 설마 m16 도입 미친듯이 반대했던 분인가 ?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멕스웰 테일러. 2차세계대전 때 그 유명한 마켓가든 작전에 101 공수사단장으로 참전한 인물입니다. 케네디 정부시절 합참의장이었습니다. M16 도입을 반대한 사람은 아닙니다. 테일러 뿐 아니라 6.25 전쟁 기간 중 미군 지휘부가 평가하는 국군 지휘관들의 수준은 무척 낮았습니다.
@user-os1sl9nm9m
@user-os1sl9nm9m 3 ай бұрын
포병은 전쟁의 신이다!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3 ай бұрын
유엔군의 적극적인 도움들과 희생 그리고 훈련과 보강으로 군사력이 상승한 국군의 맹활약이 모두 합해져 북진통일은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존 38도선에 비해 영토를 약 3,300km^2 더 늘릴 수 있었고 지형,군사적으로 훨씬 더 유리해졌으며 서울을 수도로 유지하기 더 안전해졌습니다. 즉 기존 38도선에 비해 북한이 서울을 공격하기 훨씬 더 어려워지게 만들었죠
@tv-lz2vg
@tv-lz2vg 3 ай бұрын
이순신 장군때 부터 한국인은 포를 다루는 솜씨가 남달랐다.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이순신 장군만 그랬다는게 함정이죠! 이순신 장군은 너무나 예외적 인물이었으니까요.
@user-ei8vr8yn5n
@user-ei8vr8yn5n 3 ай бұрын
포탄의 장벽을 세웠네
@user-zr2zn9vh5z
@user-zr2zn9vh5z 3 ай бұрын
M3 105mm 사진을 구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틀린 사진을 올리셨군요. 포병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중학교(고등학교)를 다닌 인력이 없어 당시 남쪽으로 내려온 청년들을 모아 1개 연대를 간신히 모았습니다. 포문수가 몇 문 안되고 장기간 교육받은 이들이 없으니 장비를 줄 수 없었고 초기 155mm포병대대장이 노재현입니다.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02:40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이 사진 설명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국군의 M3 105밀리 포 훈련 장면이라고 나오는군요~
@user-zr2zn9vh5z
@user-zr2zn9vh5z 3 ай бұрын
@@war-history 75mm산포이며 낙동강전선에 급히 미군들이 공급한 것으로 M3 105mm 와 다르며 M3은 초기 대부분 유실되거나 사라지고 평택에서 화차에 실린 포탄이 폭발하면서 대포는 사용하기 어려웠고 6사단 16포병대대만 경상북도까지 가지고 내려오다. M101 105mm 곡사포로 교체합니다. 155mm M1 견인포는 화력은 쎌지 모르나 견인차가 좋아야 하고 전포 병력이 많아야 했기에 사단포병의 16문 대 6문 비율로 대부분 105mm곡사포를 사용했고 155mm곡사포는 사단일반지원과 군단포병의 기본이 되었는데 1980년대까지도 M101 105mm 곡사포가 우리군의 주력화포였고 이것을 차량화 시킨 것이 풍익이며 생각보다 105mm곡사포는 전투에서 다양한 탄종과 기동력으로 오랜시간 사용이 되었습니다. 155mm는 진지전과 벙커 파괴용에 주로 쓰였고 대포병전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user-zr2zn9vh5z
@user-zr2zn9vh5z 3 ай бұрын
@@war-history 육군 사진집에 나오는 건데 틀린 부분이며 과거 사진 보면 포의 구경이 틀린 것이 많습니다. 자료화면을 보니 보병학교 교도대도 나오고 M2 4.2"박격포도 나오는데 이 화포가 6.25 땐 극군에선 포병장비로 들어오고 미군은 화학병과에서 사용했습니다. 베트남 전에 나오는 105mm 곡사포는 미군이 운용하던 신형으로 우리나라엔 공여하지 않습니다.
@user-uc9tl1ek9i
@user-uc9tl1ek9i 3 ай бұрын
대 물 상 자 TV 그의 컨텐츠는 유익하다 그리고 진실을 알려준다 나는 멍청하지만 나는 똑똑한 사람만 구독한다 내 구독목록이 이를 반증한다 앞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제 삶에서 얼마나 있겠습니꺄??
@kangsj1977
@kangsj1977 2 ай бұрын
박정희 장군 이외 다른 15명의 이름도 궁금해지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yaliyali3991
@yaliyali3991 3 ай бұрын
포병에 대한 무개념.. 지금은? 지금은 드론에 대한 무개념이 심각하다고 하더군요. 지휘자들이 모르니깐 밑에애들에게 묻는게 쪽판린다고나 할까? 7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네요. 중국이 드론 기술수준이 100이면 한국은 10도 안될거같습니다. dji가 세계시장 90%이상 장악했습니다.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한국에 대해 애정이 상당했던 밴 플리트 장군도 국군 지휘관들에 평가는 인색했습니다. 국군의 가장 큰 문제가 일반 병사들보다도 장교들이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yaliyali3991
@yaliyali3991 3 ай бұрын
@@war-history 유튜브는 구글이 운영합니다. 구글은 cia와 다국적기업과 연계(예를들어 러시아를 옹호하면 광고차단, 계정폭파). 그러니깐 지들 꼴리는대로 운영하죠. 한국 국뽕무기 꺼리튜브,신인균 등등 전부 한국군바리들과 연관되어있죠. 그들 주장대로라면 한국은 천하무적입니다. 샤를 이세환도 국방일보 영상에서 인기얻어 한몫하는 기자고.. 비판은 전혀없고 오로지 국뽕입니다. 드론은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보여주기식 한두대 만들어 국뽕전파하고..드론은 자주포나 탱크와 달리 소프트웨어 산업입니다. 그래서 한국 중소기업이 덤비지를 못합니다. 제조업강국인 한국이 imf식민지되면서 독점재벌이 안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가 좋아지질 않는겁니다.ㅠㅠ
@yaliyali3991
@yaliyali3991 3 ай бұрын
@@war-history 국방력수준이 세계6위니 머니 떠들어도 작전계획을 못짜니 멍텅구리 군바리들은 미군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합디다. 스스로 전쟁계획을 못짜고 몸빵만 70년을 해오니 늘 하는게 대가리 박아, 옷 각잡아라 이런것만 하는 현실입니다. 전시작전권이 중요한 것도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능력을 키우는 건데...밑에서 시키는대로만 하는 군바리가 되다보니 지금도 장교들 능력이 없습니다. 미군아래 시키는대로 하는 수동인간이 별달고 하다보니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국군이 포병이 강해서 생긴 별명, 포방부. 이 별칭을 얻게 된 유래를 검색해보면 온통 국뽕 내용 뿐 입니다. 조선시대의 화포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국군 무기 소개만 주구장창 합니다. 마치 세계최강의 포병은 국군이라는 듯이... 그런데 가장 중요한 본론은 빠져 있습니다. 지금의 국군 포병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실제 역사를 보면 국군에게 155밀리 야포가 주어진 것은 1952년 4월 부터였습니다. 중공군만 만나면 도망쳤기에 중장비인 155밀리 야포를 주지 않으려고 했던 미군. 그리고 이 야포를 제대로 작전에 활용할 수 있는 인물조차 없었던 것이 실상이었습니다. 그랬던 국군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컨텐츠가 없습니다. 이 컨텐츠는 바로 그것을 말해주는 컨텐츠입니다.
@yaliyali3991
@yaliyali3991 3 ай бұрын
@@war-history 국뽕이 나쁜거는 아닙니다만 너무 과합니다. 그러니깐 여기 주인장처럼 순수한 콘텐츠가 아닌 의도적으로 시민을 개돼지처럼 세뇌하기위해 목적을 가진 자나 군바리들이 침투해서 집요하게 강요하고 떠들어대는것이 문제입니다. 몇번 여기서 말한 imf식민지 참담함.. 또 나오네요.. kzbin.info/www/bejne/mKXZnYpphbuSotk 한숨나옵니다. 투기자본이 imf식민지 총독이라 은행마저 이들이 장악한 결과입니다. 은행을 imf투기자본이 장악하니 어떻게든 수익을 짜야하니 참.. 눈물이 납니다. 여기 주인장도 나이들면 제1금융권 절대 믿지마시길..
@deokyoungkim4880
@deokyoungkim4880 2 ай бұрын
원조각하는 1917년생 이시니까, 1952년 이면 만 35세에 준장, 별 하나를 다시네요.
@user-ll1ty9mv4o
@user-ll1ty9mv4o 3 ай бұрын
정확한 사료에 기반한 양질의 콘텐츠군요 아주 좋습니다! 이런 콘텐츠가 더 많이 늘어야되는데 온통 근본없는 조회수빨이 쓰레기 국뽕콘텐츠만 넘실넘실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정확한 사료에 기반한 것 맞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포병출신이었다는 것은 웬만한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liberte94
@liberte94 3 ай бұрын
광화문에서 마포까지 5.8km인데 400문을 배치했다면 간격은 14.5m여기에 견인트럭, 포탄, 포병인원의 공간까지 유사시 즉시 마포대교로 빠질수 있게 하고, 남북으로 포를 배치한 이유는 북쪽에 북한산 때문에 중공군은 일산방면으로 주공이 내려왔기 때문이라네요.
@jeheehan7234
@jeheehan7234 2 ай бұрын
역시나 주인장이 말하는 핵심내용이 빠진 포방부 영상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거구나..... 백선엽장군이 미군 규정?을 어기는 수준으로 포격요청을 한건 알고있었지만 다른 중요인물들도..
@war-history
@war-history 2 ай бұрын
우수한 지휘관이 없는데 무기만 최신식으로 준다고 잘 싸울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 컨텐츠는 바로 그것에 대한 이야깁니다. 당시 국군 사단장들은 포병을 보병처럼 생각했기에 이리와서 쏴라! 저리가서 쏴라! 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듣지 않으면 쪼인트를 날렸던 모양입니다. 지휘관이 이 정도 수준이었으니 그나마 보병에서 우수인재를 뽑아 포병 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미군은 한국군 장교들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했기에 훈수를 놨던 것입니다.
@jeheehan7234
@jeheehan7234 2 ай бұрын
@@war-history 리더의 중요성이죠. 그런데 백선엽 장군이나 박정희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분들 없어도 잘됐다 라는 망언을 수시로 하더군요. 그런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이런 주제의 영상에서도 백선엽 장군같은 분을 누락시키는거죠
@bearangry9075
@bearangry9075 2 ай бұрын
지금은 1개 사단에 포병이 3개 곡사포대대와 연대본부로 구성된 연대로 편성되었지만 6.25전쟁이 시작될 당시에는 1개 사단에 1개 포병대대였었죠. 최초로 창설된 6개대대의 초대 대대장이 중위인 경우가 많았죠. 지금은 포병병과 중령이 보임되지만은요.(최초창설된 6개 대대중 한곳에서 군생활 했었고 자대 전입왔었을때 대대장님실에서 역대 대대장 명단은 스윽 본적이 있었습니다. 초대 대대장님은 중위로 되어 있드라구요.) 당시 박정희도 준장 진급에서 뺄려고 했던 이유가 남로당도 있겠지만 과거 적성국이었던 일본군 장교 출신인것도 있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514mook
@514mook 3 ай бұрын
주몽의 후예라 활 잘쏜다고 다들 말하고 최무선과 천자총통의 민족이라 대포 좋아한다고 선생님들 조차 그렇게 가르치는데 이런 근거가 있었군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근데 전 빡대가리 수포자라서 포병병과는 시켜줘도 못했을거같아요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최무선, 조선시대의 화포와 지금의 포병과는 냉정하게 말해 별 관련이 없습니다. 엄청난 위력의 미국의 155밀리 야포를 부러워만 했던 국군. 1952년 4월이 되서야 처음으로 155밀리 야포를 장비한 국군 포병부대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야포조차 제대로 쓸 수 있는 장성급 지휘관이 전무한 상태. 또한 미군에게까지 무시를 당했던 것이 국군의 냉혹한 현실이었습니다. 09:21 부분에 "당신들은 포병을 잘 모르나본데 아무나 포병 지휘관이 되는게 아니야" 이 말은 그래서 뼈를 때립니다.
@user-iv6eg3cw3k
@user-iv6eg3cw3k 3 ай бұрын
포방부
@shalom1981
@shalom1981 3 ай бұрын
🙌 이런 가려진 진실들, 이모든것들이 대한민국의 구심점이 될수 있는데요 이슬만 박사님 건국대통령님 박정희대통령님 이 두분은 진장 하늘이 내리신 이나라의 보배이군요 감사합니다 😂
@suwhalcha5034
@suwhalcha5034 3 ай бұрын
포병과와 박정희 인연
@leesuhan
@leesuhan 2 күн бұрын
바로 이거지, 무슨 돼먹지 못한 조선 시대 가 기원이니, 헛소리 하고 전혀 상관없는 활이 민족이니 뭐니, 개소리나 하는 유투버들만 보다가 여기 보니 , 진짜 제대로 된 역사가 여기 있네요
@war-history
@war-history 2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현재 국군의 포병 전력은 민주주의 국가 중 가장 강력합니다. 이 컨텐츠는 국군 포방부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유독 국군 병과 중 포병이 강력한 이유와 유래를 다루는 컨텐츠입니다. 국군이 선진적인 포병 운용 노하우를 습득하고 지금도 사용하는 155밀리 포를 다량 보유하게 된 계기는 조선 시대가 아니라 6.25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user-kn9zd5bi6t
@user-kn9zd5bi6t 3 ай бұрын
흠. 포방부의 영명을 얻는 시작에 백선엽과 박정희가 있어서 일부세력의 암묵적 압박에 대놓고 말을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있었나보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ulrichkesler1220
@ulrichkesler1220 3 ай бұрын
오늘도 잘 봤습니다 우리는 북괴반란군의 땡끄에 맞서 대전차 전술과 포병 전력이 발달 했고 북괴는 미제국군의 항공전력에 신나게 쳐 맞아서 대공전력이 발달 하였더랬죠 😎😆😀
@user-ke4hu4is2d
@user-ke4hu4is2d 3 ай бұрын
이걸 어캐 참음??
@user-uz5eg6cf7o
@user-uz5eg6cf7o 3 ай бұрын
국뽕 그만
@d-dung
@d-dung 2 ай бұрын
포병의 핵심교리는 2년이면 충분하다. 나는 사격지휘병출신인데 충분해. 그리고 포병은 수학이 필요한 게 아니고 산수가 필요해. 내가 공대 기계설계학과를 나왔고 사격지휘병이지만, 포병의 사격지휘나 작전지휘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수학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산수와 삼각함수 정도만 알면 된다.
@hoodrobin5532
@hoodrobin5532 3 ай бұрын
박대통령 그립습니다
@yaliyali3991
@yaliyali3991 3 ай бұрын
군사전략면에서 노태우 북방정책에 대해 영상 만들어도 좋을 듯 하네요. 탐욕이 전쟁이라면...그 탐욕때문에 서로 잡아먹을려고하니 분단 70년이 지나도 사람왕래 못하는거 같습니다. 노태우 북방정책으로 공산주의국가들과 수교할때, 왜 북한과 수교하고 남북정상회담 못했을까? 미군산복합세력, 주한미군 존재때문인듯 합니다. 노태우 북방정책만으로도 수많은 콘탠츠 만들어 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2차세계대전 독일영상만큼). 주한미군과 cia가 한국에 존재하는 이상 남북관계 참 어렵습니다. 트럼프처럼 미군철수한다고해야 반응하는 수동 노예삶을 살아가는 기득권이 있어서... 노태우와 박철언..이 두사람이 그린 북방정책..그때 남북관계 정상화 되었으면 지금 세대는 시베리아 넘어 유럽까지 기차타고 여행가고..연해주 그 넓은 곳에 천만명이 넘은 한민족이 진출해 있었을 건데...우리가 못하고 손가락 빨고있으니 그 땅은 중국인들에 의해 식민지처럼 되고있습니다. 워낙 러시아가 중국을 경계하고있어서 유지되고있습니다. 북한입장에서는 미군식민지인 남한을 못믿는거죠. 남북정상회담하고 머하고 머하고 해도 친미세력이 집권하면 다 뒤엎어버리니...김대중노무현문재인 남북정상회담하고해도 더더욱 전쟁할 거 같은 분위기...왜 그럴까? 제 개인의견은 주한미군때문입니다.
@user-ld9lg2ms2s
@user-ld9lg2ms2s 3 ай бұрын
당시 최고의 포병장교는 소련에 있는데 그사람을 장군시키는게 맞는거 아닌가?
@user-vs8mm6mt1l
@user-vs8mm6mt1l 3 ай бұрын
역쉬 부국에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각하 !!
@user-ld9lg2ms2s
@user-ld9lg2ms2s 3 ай бұрын
당시 최고의 포병장교는 소련에 있는데 그사람을 장군시키는게 맞는거 아닌가?
@user-zz3eq6ji7w
@user-zz3eq6ji7w 3 ай бұрын
박정희과거문제를 거론하지않았던이유는 백선엽자신도 일제시대 간도특설대로 독립군을 잡았던이력때문이지않을까요~~
@jmo8703
@jmo8703 3 ай бұрын
박통이 포병 출신이라 포방부가 된거군요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꼭 박정희 한 사람 때문이라기 보다는 6.25전쟁 당시 미군 지휘부가 얼마나 한국군 장교들을 무시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육군 참모총장 백선엽은 국군 내 최고의 인재만 뽑아놨으니 한번 테스트라도 해보라고 미군에게 사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본 16명이 모두 뛰어났고 그 중에서도 박정희 대령이 미군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데 일조했습니다. 박정희는 그럴 수 밖에 없었죠. 선생 출신인데다 일본육사를 나왔으니 포병 탄도학은 이미 잘 알았던 것입니다.
@user-je5cz5xc2t
@user-je5cz5xc2t 3 ай бұрын
역시 천재였던 박정희 대통령각하 .. !!
@TNT5TNT
@TNT5TNT 3 ай бұрын
천재 박정희?ㅋㅋㅋ 군사쿠테타 독재넘을 천재? 진짜 박정희시대에 살어보긴했냐?4시간통금 있던 시절에
@justpiano-mu7zt
@justpiano-mu7zt 3 ай бұрын
대박이네요 저때 준장못됬으면 우리나라가어찌됬을지...
@TNT5TNT
@TNT5TNT 3 ай бұрын
@@justpiano-mu7zt 그람 민주주의 국가가 빨리된거지
@justpiano-mu7zt
@justpiano-mu7zt 3 ай бұрын
@@TNT5TNT 오! 그러면 더 빨리발전할스있겠네요
@TNT5TNT
@TNT5TNT 3 ай бұрын
@@justpiano-mu7zt 그 뜻은 졍희가 빨리 죽었어야 민주주의가 빨리 찾아왔을거란 소리.ㅋ 전두광이 또 쿠테타 못 했음 20년은 먼저 민주주의 가 빨랐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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