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본군, 사무라이들이 "방패"도 없이 전투에 나갈 수 밖에 없던 이유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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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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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docs.google.co...

Пікірлер: 306
@user-co3yt6uf5k
@user-co3yt6uf5k 5 ай бұрын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고증 좀 신경써주세요.. 기사 얘기하면서 자료화면은 군단병과 바이킹이고, 방패에 대한 개념도 안맞고. '일본군'이라고 하면 군사 중 다수인 병졸들의 경우를 이야기해야 할텐데 전국시대 소수의 사무라이들이 사용했던 나기나타를 일본 병사들이 방패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로 들기엔 적절하지 않습니다. 크게 휘두르며 베는 무기인 나기나타는 밀집진형에 적합하지 않은 무기입니다. 때문에 나기나타는 소수의 사무라이들에 의해서나 사용되었던 것이고 아시가루들은 나기나타가 아닌 긴 창의 형태인 야리를 사용했으며, 또 영상에서 언급된 기마궁수의 경우 또한 말을 대규모로 운용할 수 없었던 일본 지리 특성상 기마궁수는 일반 병사들이 아닌 소수의 사무라이들이었고, 고구려나 다른 국가들의 궁기병과 다르게 일본식 장궁은 길이 때문에 기마궁술에 적합하지 않아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쏠 수는 없고 말을 타고 이동 후 말에서 내려 활을 쏘는 방식을 이용했습니다. 당시 왜인들의 신장은 150cm 내외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거의 자기 키만한 활을 말을 타고 달리면서 유연하게 몸을 돌려가며 쏜다는 게 가능할 것 같으신가요? 한편 궁기병을 대규모로 운용했던 다른 국가들 중에도 일반 보병들은 방패를 이용했던 국가들이 많습니다. 10세기는 앞섰던 고구려만 해도 그렇죠. 이러한 차이가 일어나는 이유는 지형과 군사 편제 상의 차이 때문인데 이런 주제를 다루면서 편제에 대한 내용은 왜 없나요? 중세 일본군이 방패를 잘 운용하지 않았던 점을 설명하기 위해선 사무라이의 특성이 아닌 아시가루라는 병종의 특성과 당시 일본의 군사편제에 대해 분석했어야 합니다. 영상에서 언급된 근거인 나기나타와 기마궁수, 갑주의 경우가 모두 일반 병사들이 아닌 중간지배층이자 장수포지션인 사무라이의 경우이기에 예시로 전혀 적절하지 않아요. 중세 기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기사와 사무라이는 일반 병사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유럽보다도 동시기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던 동아시아권 국가들과 비교를 해주셨어야 적절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연구자료까지 들여다볼 자신이 없으셨다면 하다못해 나무위키라도 참고하셨음 영상내용이 이렇게까지 엉망은 아니었을텐데요. ps. 게다가 오오요로이라... 국내에 주요 철광석 산지가 없어 사철에서 철을 제련해야하는 한계에 부닥쳤던 당시 일본의 조악한 야금술로 어떻게 모든 병사들에게 전신갑주를 입힐 수 있을까요? 야금술의 한계 때문에 형태상으로는 우월해도 조선의 환도보다도 내구성이 떨어졌던 게 타치였는데 말이예요.
@user-qy6lb1dm5w
@user-qy6lb1dm5w 5 ай бұрын
이사람 영상 틀린거 원래 많았음 열대지역국가는 왜가난한가 영상보니깐 농사가 너무 잘되서 부족함이 없어서 라는 말도 하더만 ㅋㅋ 알고리즘 타고왔는데 여전한듯
@user-ug9ux1hq7o
@user-ug9ux1hq7o 5 ай бұрын
와 님이 훨씬 전문가네요 혹시 추천영상이나 게시글 같은 거 링크 있으시면 남겨주시면 가서 꼭 보겠습니다.
@user-co3yt6uf5k
@user-co3yt6uf5k 5 ай бұрын
@@user-ug9ux1hq7o 저도 얕게 알아서 어디 가서 내세우진 못해요. 요즘 역전다방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추천드려요.
@jaychung8218
@jaychung8218 5 ай бұрын
누가 그러더군요 덕중에 제일 무서운게 밀덕이라 밀리터리관련 정보는 어설프게 함부로 쓰는 아니라고 ㅋㅋㅋ
@toddpark0927
@toddpark0927 5 ай бұрын
이 채널은 차단해야 겠구만 ㄳㄳ
@hedgehog2140
@hedgehog2140 5 ай бұрын
유럽의 방패도 똑같이 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적당한 무게의 방패를 사용했는데요...;; 유럽인은 아시아인보다 몇배나 강력해서 막 전금속제 방패같은걸 쓴건 아닙니다.
@user-cs6qg5po7p
@user-cs6qg5po7p 5 ай бұрын
가운데와 가장자리에 금속제가 없어서 그렇게 표현한거 아닐까 싶음
@hedgehog2140
@hedgehog2140 5 ай бұрын
@@user-cs6qg5po7p 유럽의 방패도 그런 금속 보강제 없는 경우도 많았는데...ㅠ
@user-ne1hq3gk9y
@user-ne1hq3gk9y 5 ай бұрын
방패를 철로 만들면 의미가없어짐 걍 방패만 낑낑대면서 옮기다가 탈진함
@ggict77
@ggict77 5 ай бұрын
질 낮은 무기야 어디에나 있지만 일본처럼 아예 없는건 드뭄. 부실한 방패만 쓰다가 나중엔 아예 없어지니..
@hedgehog2140
@hedgehog2140 5 ай бұрын
@@ggict77 사실 부실한 방패도 아니었고 없어지지도 않음 어깨에 넓은 갑옷의 한 판 처럼 달고 다니는게 사실 방패임
@elvenisar
@elvenisar 5 ай бұрын
1. 서양의 방패 무겁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방패도 버클러처럼 특수한 경우를 빼고 대부분 나무방패였어요. 테두리에 얇은 금속띠를 두르거나 가운데에 작은 버클러같은 금속돔이 있는것도 생각보다 흔하지 않았고 그냥 나무판자 이어붙인게 보통이었죠. 가죽을 씌운 경우도 흔하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나무에 손잡이 달고 색칠을 한거었어요. "그런걸로 어떻게 강한 공격을 막나?"생각하시겠지만,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막아서는건 서브컬쳐에 나오는 멍청한 케릭터들 뿐이죠. 방어의 기본은 상대방 공격을 흘리는 겁니다. 예를들어 배기 공격을 막을때는 평평한 면이 아니라 살짝 기울여서 테두리로 갖다대는겁니다. 그러면 테두리에 맞아서 힘이 일정부분 흡수되고, 검의 궤적이 변하고, 그러면 상대방을 죽일수 없는 약한 공격이 되는거죠. 2. 나기나타는 승병들이나 군족집 여성들이 쓰던 무기였지, 전쟁무기는 아니였습니다. 일본 병사들이 쓰던 주력무기는 야리(창)이었죠. 유럽의 파이크(5~7미터)처럼 무지막지하게 길지는 않았지만 꽤나긴(3m이상)길이를 가졌기 때문에 휘두르기는 말도 안되고, 밀집대형으로 스크럼을 짜고 전진하거나 버티는게 기본이죠. 찌르기를 하더라도 현대펜싱의 런지처럼 길게 찌르는게 아니라 살짝 팔을 뻗는정도. 3. 기사나 사무라이나 검은 어디까지나 평상시의 호신용, 신분의 표현도구 정도였지 전장의 주역이 아니었습니다. 사무라이의 주무기는 활이었죠. 화살이 다 떨어지면 그때서야 창을 들고 돌격하는거고, 창이 부러지면 그제서야 칼을 뽑아드는겁니다.
@user-hs1gh6nv6c
@user-hs1gh6nv6c 5 ай бұрын
1.보통 방패 종류마다 용도가 다르긴하나 기본적 목적은 막아내는게 맞습니다. 멀리에서 날아오는 투사체부터 시작해서 나에게 근접무기 또한 포함이죠 물론 흘려내는것도 가능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단편적인겁니다. 전쟁은 1vs1 아니기 때문에 괜히 흘려보냈다가 아군이 그걸 맞아 죽을 확률도 있고 흘려보내는걸 성공하더라도 옆에 적군에게 죽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보통 많은 인원들이 싸우는 난잡한 전쟁 상황에서 상대 무기 각도를 보고 흘려보내야겠다!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user-co3yt6uf5k
@user-co3yt6uf5k 5 ай бұрын
나기나타는 물론 주역은 아니었지만(주역은 아시가루의 야리겠지요) 전국시대엔 사무라이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알고(물론 사무라이들의 일반적인 무장은 장궁과 타치였겠지만요), 말씀하신대로 승병과 여성들에게로 밀려난 건 에도시대부터로 아는데 알음알음 알던 제 지식이 잘못된 건지 궁금하네요.
@user-qy6lb1dm5w
@user-qy6lb1dm5w 5 ай бұрын
나기나타가 여성들이 쓰는무기가 된건 에도시대고 사무라이가 활이주력인 시절은 가마쿠라시대 센고쿠시대부터 사무라이는 검을 주력으로 많이 쓰기시작함
@user-wh6rm8ik9y
@user-wh6rm8ik9y 5 ай бұрын
우치카타나와 와키자시는 전투용으로 부적합한 물건이었지만 타치 이상으로 가면 전투용이었습니다. 임란에서 노타치로 말과 기수를 한번에 베어서 죽인 경우도 있습니다.
@user-ig6pr8ej4y
@user-ig6pr8ej4y 3 ай бұрын
2. ㄹㅇ 정답 군집대형에서 수백 수천개의 창날이 교차되고 그 혼전중에 용감하게 들어가는 아시가루는 단 한사람도 없죠. 3 5미터 거리에서 견제하면서 특히 3미터 이상 넘어가면 창끝이 찌르고 휘두를때마다 살짝씩 휘어집니다. 그 반동으로 머리를 쿵쿵 내리치죠 그게 작은 안면을 정확히 찔러 죽이기보다 상두부 어디를 타격하든 유효타를 낼수 잇기에 그 공격이 주로 하는 거였죠
@Dust-xm5yi
@Dust-xm5yi 5 ай бұрын
이 채널도 시간이 갈수록 지식세포가 노화하는것 같아
@user-ex4vg8qq3u
@user-ex4vg8qq3u 5 ай бұрын
요즘 고증 관련 오류가 점점 늘어나는것 같아요...
@noojkahmik5785
@noojkahmik5785 3 ай бұрын
유튜버들의 복붙이 문제. 공부하지도 않고 조회수만 나오면되는거니 진실따위 중요하지 않음.
@user-jz3es5jp4q
@user-jz3es5jp4q Ай бұрын
그냥 ai 써서 읽는거일듯
@psnlwatcher1371
@psnlwatcher1371 5 ай бұрын
일본 방패 많이 썼습니다. 그것도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을 해가면서, 조총이 나오면서부터 그냥 나무 방패로는 감당이 안돼서 대나무 다발로 만든 방패도 나오고, 무쟈게 많이 썼습니다. 게다가 아시가루가 나기나타를 쓰고... 아이고 이건 뭐 영상에서 지적 안 할 기술을 찾는 것도 쉽지 않군요. ㄷㄷㄷ 칼로만 싸우는 사무라이들이 대두되면서 방패로부터 멀어졌다는 전문가 누가 있는지 이름 거명 부탁합니다.
@gatsbyl7216
@gatsbyl7216 5 ай бұрын
아시가루들이 나기나타 사용한거 맞습니다. 실제 나기나타와 나가마키는 아시가루같은 미숙련 보병들에게 들려주면 제 위력을 발휘한다는 기록이 있고요. 전장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임란 때 조선 측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무로마치 후기부터 백병전에 대두되면서 대 사격전 무장이 간소화 된것도 맞습니다. 오오요로이 같은 갑옷은 사실상 양어깨에 방패 두개를 단 갑옷이니까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죠.
@user-gz5ik4ev3t
@user-gz5ik4ev3t 5 ай бұрын
3:00 아시가루는 나기나타를 사용하기보다 야리 즉 일반적인 창을 사용하였습니다 나기나타는 보통 사무라이들이 사용했습니다
@ilovecarrot215
@ilovecarrot215 5 ай бұрын
나기나타사무라이
@CN.01467
@CN.01467 5 ай бұрын
ㄹㅇ 나기나타는 사무라이 계층이나 승병들이 사용한 걸로 알고있습니다 일반적인 일본 아시가루 보병들은 야리라는 찌르기용 창을 주로 사용했죠 그마저도 일본 창의 날은 짧은 편이라 내려치기용이었죠
@Gaygaygayya
@Gaygaygayya 5 ай бұрын
나기나타사무라이니 고자이마스!
@user-ig6pr8ej4y
@user-ig6pr8ej4y 3 ай бұрын
맞습니다 신장의야망에서 나오는 삼간창이라는 3~5미터 긴 창은 야시아시가루의 주무기였죠. 그 긴 창으로 서로 대치하며 상대의 목부분을 노리며 견제하면서 싸움을 하고 창끝으로 머리를 내리치는 공격도 나옵니다 보통 전투는 상대가 대치중일때 죽기보다는 한쪽이 어떤 이유에서든 창을 놓치게 되면 바로 죽는거죠
@big-gamehunter6285
@big-gamehunter6285 5 ай бұрын
일본 갑옷이 방패를 대신 한다는 얘기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 갑옷은 척 보기에도 비싸 보여서 일반 보병이 보편적으로 착용하지 않았을것 같아요 그럼 저런 갑옷이 없는 일반 보병은 왜 방패를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user-eu5ff9pb9b
@user-eu5ff9pb9b 5 ай бұрын
일본의 인명경시사상이지않을까
@user-tg2jh2xt7v
@user-tg2jh2xt7v 5 ай бұрын
장창드느라 방패잡을 손이 없어서 그런듯
@user-gv6rg7oi8b
@user-gv6rg7oi8b 5 ай бұрын
아예 방패가 없는건 아니었으나 진짜 기초적인 방패나 설치물(파비스 형태)로 사용됨 다만 징집병 혹은 기본병인 아시가루는 영상에서 나왔듯이 창병이라 흉갑과 투구를 주로 장비하였고 거기서 전공을 세우거나 재능을 입증하면 무사계급(사무라이)이 될 자격이 생겼음 그런데 중세는 일부 제식장비를 제외하곤(아시가루라면 보통 무기인 창과 투구정도?) 자비마련이 기본이라 출세하면 사무라이는 생존에 유리한 좋은 갑옷을 사지 방패를 사지 않음 이러다보니 또 방패 자체도 발달하지 않아 좋은 방패 구하기 힘들고 좋은 갑옷을 사는게 생존성이 더 좋아지는 환경이 만들어짐
@user-gv6rg7oi8b
@user-gv6rg7oi8b 5 ай бұрын
결국 일반 보병은 창병이라 방패대용인 투구가 발달하고 방패가 발달하지 않아 대신 갑옷이 더 발달하고 그래서 무사계급이 갑옷을 찾아 양성피드백으로 심화 되었다로 정리되겠네요
@user-ph9jm6nz7v
@user-ph9jm6nz7v 5 ай бұрын
카타나가 양손검이라 그럼
@user-vf9ei5ps1s
@user-vf9ei5ps1s 12 күн бұрын
일본군은 임진왜란 당시 궁술이 뛰어난 조선군과 의병을 상대로 공성전에서 방패를 사용했습니다.
@Mi-vy3rx
@Mi-vy3rx 4 ай бұрын
일본 기마궁수는 처음 들어보네요 ㅋㅋㅋㅋㅋ 일본활은 엄청 큰데 그걸들고 말에서 싸울수가 없습니다
@hslee0715
@hslee0715 3 ай бұрын
일본 기마궁수가 아주 예전엔 성행했습니다. 전국시대보다 더 까마득히 전이죠. 그래서 이 영상은 거의 헛소리지만 일본활로 기마궁술을 하긴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활이 아랫장이 극단적으로 (윗장에 비해) 짧아요.
@user-md4wk2ey6w
@user-md4wk2ey6w 19 сағат бұрын
사무라이의 시초가 기마궁수인데요?? 본인이 처음듣는다고 아예 없는소리 취급하시면 안됩니다
@HwanggumTalgut
@HwanggumTalgut 5 ай бұрын
아시가루가 나기나타를 주로 썼다는 부분에서 재생 멈췄다 ㅋㅋㅋㅋㅋ 크게 웃고 갑니다 ㅋㅋㅋㅋㅋ
@user-se-19x
@user-se-19x Ай бұрын
5-6미터짜리 장창이 주력이었죠..
@user-cd9qp7sg8b
@user-cd9qp7sg8b 5 ай бұрын
사무라이를 떠나 일본군의 주력 무기는 긴 창임. 긴 창을 쓰는 보병들에게 방패는 들 수 없는 거임. 사무라이들의 일본도는 실제 전장에서 쓰였다기보다, 소규모 근접전에서나 유용한 무기였음. 임진왜란에서도 조선이나 명군에게 일본군의 가장 큰 위협은 조총이나 일본도보다 긴 창이었음.
@gatsbyl7216
@gatsbyl7216 5 ай бұрын
잘못된 정보입니다. 카타나는 거의 모든 전장에서 쓰였습니다. 실제로 기록이 여러개 있죠 일본인들이 장도를 무장하고 흩날리듯 돌진하면 그 번쩍이는 모습에 우리 군대는 이미 용기를 잃었다. 일본인들은 힘차게 뛰어오르며 한 발을 내딛으면 한 자 이상, 장도의 길이가 다섯 자(척)이면 총 일곱 자(척)까지 순식간에 돌격해온다. 이들의 검은 날카롭고 양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무게가 강력해, 우리 군대는 짧은 무기로는 그들의 무기를 받아들이기 힘들고, 긴 무기로는 빠르게 대처하기 어려워 그들과 맞섰을 때 무릎 꿇는 경우가 많았다. ㄴ기효신서
@gatsbyl7216
@gatsbyl7216 5 ай бұрын
조익의 '포저집'에는 왜적은 실로 상대하기가 어려우니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왜적은 철환(鐵丸)을 비 오듯 퍼붓는데 한번 맞기만 하면 곧바로 쓰러지고 근접해서는 칼을 사용하는데 그 검술이 지극히 기이하니 이들은 참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라고 하겠다. 최기남의 '무예제보번역속집' 에는 왜군들은 전투시에 멀리 있으면 총을 쏘아 맞히고. 가까이 있으면 칼을 뽑아 돌진하니 천하에 그 칼끝을 당할 자가 없었다.
@captainguts7009
@captainguts7009 4 ай бұрын
@@gatsbyl7216 애초에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는게 창만 전쟁용 주력 병기고 검은 보조병기라고 생각하는 점임 당장 임진왜란 조선 기록 보면 죄다 조총이나 일본도 얘기만 가득하고 장창에 대해선 언급도 없음
@bungbung692
@bungbung692 3 ай бұрын
다른나라는 창을 주력이었겠지만 일본만큼은 검이 주력이었음 임진왜란때 조선의 기록은 거의다 일본의 검술에 대한 내용 창술을 하나도 없다 오죽하면 선조가 일본검술은 무조건 배워야한다고 일본인 교관을 검술교관으로 들여 훈련도감에 정식으로 등록함
@btx4267
@btx4267 5 ай бұрын
남곤이 말하기를, "방패 안에 있었다면 너희들이 어떻게 쏘아 맞혔는가?" 하니, 나사항이 말하기를, "그 방패 위에 두 귀[耳]가 있었는데, 왜인들이 반드시 이를 통하여 엿보았으므로 쏘아 맞힐 수 있었습니다." 실록에 나오는 일본 군인들이 사용한 방패 이야기는 뭐죠?
@ptahoteff
@ptahoteff 5 ай бұрын
헤이안 시대, 아직 관군이 멀쩡하던 시절의 일본에선 방패와 직도를 들었던데.
@user-ug2vj9ru2s
@user-ug2vj9ru2s 5 ай бұрын
갑옷이 발전하지 못한 시대니까요
@ptahoteff
@ptahoteff 5 ай бұрын
@@user-ug2vj9ru2s 예. 걍 면갑. 그나마 징집 병졸들은 맨 옷에 창만 달랑.
@fishdope3666
@fishdope3666 5 ай бұрын
전국시대때도 한손도검과 방패로 무장한 병종이 있긴있었습니다. 역활이 전방의 창병들끼리의 방진싸움에서 밀려서 도망병이 생길때 방진 후방에서 이를 단속하는 역활이라고 하더라구요 필요할때에는 즉결처분까지 하는
@daug_jang
@daug_jang 5 ай бұрын
오오요로이(大鎧)는 13세기 일본갑옷의 한 형태이고, 그냥 요로이(鎧)로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림에 보이는 요로이는 오오요로이가 아니라 토세이구소쿠(当世具足)네요.
@treepark1783
@treepark1783 5 ай бұрын
시도 때도 없이 서로 싸우는 나라는 그상황에 맞게 무기와 갑옷이 발전하는 법이죠.
@bighole9136
@bighole9136 5 ай бұрын
이 채널에서 봤던 영상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상 퀄리티
@user-uf1ef7vw9c
@user-uf1ef7vw9c 5 ай бұрын
일본 사무라이 장점 중 하나가 실력만 있으면 천민도 가능한 능력제죠. 대표가 토요토미. 이게 대비되는게 이슬람이 인도 침공 개시하는데, 크샤트리에만 칼을 들고, 하위계급은 천하다고 배제하니 쪽수에서 이슬람 군대와 상대도 안돼서 힌두교, 불교 대살육이 일어납니다. 유일신 알라의 이름하에
@choichoimj
@choichoimj 5 ай бұрын
사무라이의 군장을 영주가 지급하나요? 저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재력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user-gz5ik4ev3t
@user-gz5ik4ev3t 5 ай бұрын
거 아시가루랑 사무라이도 구분 못함서 이런 말도안되는소리를 하는교?
@user-zp3en8pk7m
@user-zp3en8pk7m 5 ай бұрын
토요토미가 천민이였나 하급무사 걔급아닌가?
@user-gc8qz5br8u
@user-gc8qz5br8u 18 күн бұрын
철저히 사무라이는 신분제임 말같지도 않은 소리 하네 천하통일을 했어도 풍신수길은 쇼군이 되지 못했다 사무라이 출신이 아니기에~~ 그래서 만든 관직이 태합이다
@user-ch7ol7bb5h
@user-ch7ol7bb5h 5 ай бұрын
중세 일본군 사무라이의 갑옷이 진짜 대단한 이유가 기동력이 엄청나게 뛰어나서 빠르고 날쌔게 팔, 다리를 움직이면서 칼싸움을 하는 것이 가능하면서도 방어력까지 뛰어났다는 점임. 그래서 중세 일본 사무라이 갑옷은 중갑옷인 동시에 경갑옷의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음. 중세 유럽 기사의 갑옷의 경우 방어력은 높은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바로 형편없는 기동력과 한번 쓰러지거나 엎어지면 거북이처럼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음. 반면에 중세 일본군 사무라이 갑옷은 기동력, 유연함, 민첩성을 극대화하면서도 방어력까지 강화시키는 형태로 발전했음. 원래 옛날부터 일본이 장인정신과 기술력의 민족이라는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실이니까 넘어가고, 어쨌든 그 기술력이 집약된 갑옷이 바로 중세 일본 사무라이 갑옷임. 즉, 일본 사무라이 갑옷은 세트로 맞춰서 제작한 갑옷이 아니라 팔, 다리, 목, 어깨 등등등 각 부위별로 제작해서 마치 레고 조립하듯이 최종적으로 모든 부위들을 전부 다 연결해서 제작하는 갑옷임. 그렇다보니 기동력이 뛰어나면서도 방어력까지 뛰어났었음. 그렇기에 중세 일본 사무라이들이 방패없이 백병전에 나가서 적군의 공격을 검의 코등이나 갑옷으로 튕겨내거나 막아내고 검으로 빠르게 적을 공격하는게 가능했음. 그리고 여기 영상 내용의 설명처럼 중세 일본 사무라이 갑옷은 각 부위별로 탈부착이 가능했기에 방어력을 더 강화하고 싶은 부위를 더욱 더 강화시키는 것도 가능했고, 아니면 기동력을 더 강화시키고 싶으면 특정한 부위의 방어구만을 따로 탈착시켜서 기동력을 더욱 더 극대화, 강화시키는 것도 가능했음.
@AJ_00850
@AJ_00850 5 ай бұрын
중세 기사갑옷을 입으면 쓰러지면 스스로 못일어난다는 루머는 어디서 듣는거임? 역사적 사료가 있음? Mobility in Medieval Plate Armor/ Armour 검색해보세요. 영상자료보면 당시 중세갑옷을 착용하고 뛰어다니고 구르고 점프 하는 영상이 얼마나 많은데. 어린애나 근력이 약한 사람 기준임?
@바람7막이
@바람7막이 5 ай бұрын
대체 무슨 와칸다 신기술을 도입하면 경갑옷이면서 중갑옷이 될 수 있음? ㅋㅋㅋㅋ 경갑이면 경갑이고 중갑이면 중갑이짘ㅋㅋㅋㅋㅋ 이 기준으로 치면 기원전에 나왔던 로리카만 입어도 중요부위는 다 가릴 수 있으니까 경갑이면서 중갑의 장점을 가질 수 있는데 중세인들은 굳이 겁쟁이같이 풀풀레이트 아머를 입어서 철로 둘둘 만 바보들임? ㅋㅋㅋㅋㅋ
@gatsbyl7216
@gatsbyl7216 5 ай бұрын
@@AJ_00850 일어나기 힘든 거 맞습니다. 서양에서 한국 국뽕에 해당하는 애들 찌라시 몇개 주워듣고 우매한 봉우리에 빠지지 마세요. 우선 플레이트 갑옷은 사실상 석궁의 대두로 인해 나온 갑옷이고, 실제 신체에 입어서 충격을 흡수하려면 갬비슨과 체인메일을 안에 잔뜩 입어야 하죠. 솜갑옷을 입고 위에 철판으로 막은 것인데 습기차고 땀도 나면 완정군장 이상의 무게가 체감될 거고요. 갑옷 자체도 현대에 제조한 갑옷 이음새보다 훨씬 뻑뻑하고 실제 전장에선 플레이트가 이리저리 휘는데다가, 신체 말단 부위까지 무게를 고루 덮으면, 누웠다가 일어나는 등의 작업을 할때 가방 같이 무거운 물체를 특정 부위에 부착한거보다 훨씬 많은 힘이 들어갑니다. 현실성이 결여된 판타지 세상에 사는게 아니라면, 맨몸으로도 칼을 5분 휘두르기 힘든데, 모든 몸에 철판이 삐걱대는 채로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지적능력 결여 아닌가요? 실제로 기사들이 관절부위까지 덮는 플레이트 갑옷을 입는 경우는 절대 백병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격전에서 높은 지위의 인간이 죽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머지 병사들은 흉부, 머리 등만 플레이트로 보호하는 등의 무장하면 잘입은 거고요.
@gatsbyl7216
@gatsbyl7216 5 ай бұрын
@@바람7막이 지식이 짧고 든것이 없을 때 과격한 단어로 포장해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 라멜라 아머는 중갑옷이 맞죠. 그게 오오요로이 시절에는 말에 탔기 때문에 무게가 엄청나게 무거웠고 통짜 판갑 갑옷을 쓰듯이 입어 말 안장위에 얹는 식으로 사격무기에 대한 방어력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전투 규모가 커지고 백병전이 대두되면서 의도적으로 끊임없는 경량화 작업을 거듭했습니다. 이후에 대두된 도마루나 하라마키의 형태를 보면 어떻게든 근접전 방호력을 유지하면서 경량화 하기 위해 무게를 분산시키고, 허리에 둘러매고, 오오소데를 경량화 하는 등의 작업을 거치죠. 즉 중갑옷으로 시작해서 극한의 최적화를 반복한게 일본 갑주의 변천사이다 보니 중갑의 경갑화가 완전 틀린말은 아니죠. 일본 갑주는 중갑옷이 확실하지만, 발전방향에서 백병전을 염두한 경량화와 기동성에 중점을 둔 수준이 다른 어떤 갑옷보다 남달랐다. 이렇게 표현하는게 정확하겠죠.
@바람7막이
@바람7막이 5 ай бұрын
@@gatsbyl7216 무게분산은 걍 갑주의 상식 아닌가요? 하다못해 구시대 사슬갑주도 허리띠 졸라매고 여기다 하반신쪽 갑주 메다는건 중세 들어 나타난 전신갑주에선 당연한 거였고 풀플은 걍 제작단계에서 이 무게 분산에 열올려서 사슬갑주보다 가볍게 느껴졌는데? 이걸 보고 기동성에 신경써서 풀플과는 다른 방향성 이러는 것도 어이없네욬ㅋㅋㅋ 그리고 애초에 님 말이 다 맞다 쳐도 기동성에 무게를 둔거지 중갑은 팩트잖아요ㅋㅋㅋㅋ 자기가 글 이해를 못한거면서 선비마냥 지식이 짧고 든거 없고 이러고있네ㅋㅋㅋ
@Kang-kg3ux
@Kang-kg3ux 3 ай бұрын
일본은 활이 너무 커서 수성전 외엔 활 많이 안쓴거 같은데요?
@enjoyyourlive
@enjoyyourlive 5 ай бұрын
장창이 주무기인 아시가루는 방패들 손도 없고 애초에 장창의 길이 자체가 방어력임. 중세유럽 파이크병들도 방패안씀. 그리스 호플라이트의 창이 길어지면서 그나마의 작은 방패도 없어진게 그 예. 일본도도 양손으로 쥐므로 방패들 손 없는건 매한가지.
@user-up7ue3jj2p
@user-up7ue3jj2p 5 ай бұрын
보는순간 맨몸 반자이돌격이 생각나는뎅 ㅋㅋㅋㅋㅋㅋ 기관총 앞으로 그짓을 한게......
@user-hj3yr5xm7d
@user-hj3yr5xm7d 4 ай бұрын
2차대전때 미국한테 반자이돌격했던 일본보면 얘들 무섭다는 생각이듬
@user-mn8ms9wx8m
@user-mn8ms9wx8m 3 ай бұрын
2차대전 때는 반자이돌격 말고 방법이 없었으니까 태평양 전쟁 보면 주전투지가 태평양 한가운데 고립된 섬임 섬에서 미군한테 둘러쌓여 밤새도록 함포 맞고 공중에서 폭격 날라오고, 추가 증원은 없고 보급은 말라가니까 반자이 돌격말고 선택지가 없었던거지
@user-fv7xu7uz4o
@user-fv7xu7uz4o 2 күн бұрын
정신나간 저글링들이라 생각하죠
@user-mk9yj1pq1e
@user-mk9yj1pq1e 11 күн бұрын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전혀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뭐야 이거..
@user-pj1iv7hp9y
@user-pj1iv7hp9y 5 ай бұрын
방패가 방어가 우선인 장비이지만 공격도 가능한 장비입니다. 제가 89년도 6월 군입대후 전경으로 차출돼 30개월 복무기간 내내 거의 매일 시위진압에 동원돼 돌과 화염병 최루탄이 난무하고 쇠파이프와 각목을 든 시위대와 진압봉과 방패를 들고 서로간에 육탄전을 벌이며 극렬 시위를 강경진압을 했었는데 졸병시절에는 주로 최선두에서 방패를 들고 시위대의 각목과 쇠파이프를 막아내기도 하지만 역으로 방패의 날을 날카롭게 갈아서 찍어버리면서 시위대를 공격하면 뒷선에 있던 진압봉을 든 조가 합세하며 시위대를 제압하면서 시위진압을 했었습니다.
@user-qi6uu7on7d
@user-qi6uu7on7d 5 ай бұрын
일본이 왜 방패를 쓰지않았다고 생각할까요? 활이 있는 이상 방패, 움직이는 목책은 기본이고 기병이 있는 이상 참호와 장애물은 기본이었음. 기동성이 떨어져서 별도 방패부대가 있었고 근접전에서는 장창이 주무장이라 방패를 쓰지않았을 뿐임. 일군은 전통적으로 기동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음.
@user-ot5tf4pv6r
@user-ot5tf4pv6r 4 ай бұрын
방패가 사라진 결정적인 원인은 화승총대포등의 화약무기의 발달이지 갑옷의 발달이 아니다. 당시 유럽의 기사들도 총의 보급으로 풀플레이트 갑옷이 총에 뚤려나가자 머리와 가슴등 급소 부위만 가리는 갑옷으로 바뀐다. 고대의 장창 보병진을 보면 그리스 로마 때는 장창과 방패로 군집보병진으로 접근전은 창으로 화살은 방패로 방어했지만 대포 화승총등의 발달은 대포 한방이면 사람도 뚫고 한열을 증발시킬정도로 강력한데 무겁고 기동성에 방해되고 쉽게 뚫리는 방패는 더이상 전장에서 필요하지 않아 도퇴될을 뿐임. 우리가 알고있는 왜군은 이런 대항해시대 이후의 화승총이 보급된 임란직후의 군대인데 방패가 사용하지 않는게 당연하다.당시 유럽의 패르시오 대형에서도 장창보병과 총병조합으로 장창으로 접근하는 기병을 제압하고 접근해서 총으로 적의 대열을 무너뜨려 도망가는 적은 기병 돌격으로 제압하는 방식이 주류였다.은근히 니뽄 갑옷이 마치 대포와 총도 막는 강한 갑옷이라서 방패가 사라졌다고 개구라 치는데 열받네. 헐
@user-ig6pr8ej4y
@user-ig6pr8ej4y 3 ай бұрын
ㄹㅇ 한시대의 주류무기가 쇠퇴하는건 압도적으로 좋은 무기나 전술이 나와야 가능함. 일례로 참호돌격전이 더이상 무의미하게 된것은 1차대전이후 맥심기관총이 나온후 솜전투에서의 참극에서처럼 더 이상 인명을 바탕으로한 전투는 없어지게됨. 단 예외적인 경우가 두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2차대전 모스크바공방전때 소련군의 우랴돌격전술과 한국전에서 짱개들의 인해전술이 그것임. 오죽하면 참전용사분이 당시 얼마나 많은 중공병사가 쳐들어왔나 회상하는 내용중 쏴도쏴도 끝없이 내려오는 짱개때문에 미군기관총 총열이 붉게 달아올라서 그 자리에서 오줌으로 식히고 다시 쏘고 할정도였다 함
@user-gc8th5tu7r
@user-gc8th5tu7r 5 ай бұрын
고증이 어질어질 하네...
@user-dg6ig5zs8c
@user-dg6ig5zs8c 16 күн бұрын
일본이 방패가 발달하지않은 이유는 갑옷때문이 아니라 기후에 있다고 봐야죠 고온다습한 일본의 숲에는 질 좋은 나무를 찾기 힘들고 상대적으로 장력이 활을 사용할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일본의 활은 사거리도 짧고 위력도 약했습니다. 그러니 원거리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막기위한 방패는 도태되고 자연스럽게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먼 거리에서 싸울수있게해주는 장창이 주류무기가 되었습니다. 아시가루가 경족병인데 사실 그냥장창한자루들고 싸우는 경보병이라보시면됩니다. 영상에 언급된 진가사의 경우에도 머리에 맞으면 치명적인 장창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위해서 만들어진것이며 방패를 대용하는게아닌 머리를보호하는 헬멧이라봐야죠
@wincup
@wincup 5 ай бұрын
항상 사무라이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부분. 잘 보겠습니다.
@user-zq7xy2pu4r
@user-zq7xy2pu4r 4 ай бұрын
고구려의 개마무사들도 방패를 안들었음... 진짜 일본은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StarShevron
@StarShevron 5 ай бұрын
화살을 맞춰야x 화살을 맞혀야o
@user-fl9zh5nv6q
@user-fl9zh5nv6q 5 ай бұрын
일본의 양손검 애용은 열도라는 전장의 특수성과 검술의 발전으로 신검합일 원리가 확립된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실제로 환경이 비슷했던 필리핀 군도도 아예 방패를 버리고 제식무기로 쌍수도를 쓰는 곳이 많았다고 하던데
@user-vm9ib8xf8j
@user-vm9ib8xf8j 5 күн бұрын
기동전사 건담 디자인은 사무라이 갑옷에서 가져온것처럼 보입니다.
@hsk4468
@hsk4468 5 ай бұрын
음.. 보다가 중간에 멈췄습니다 뭔가 제가알던거랑 많이 다른것 같아서요 댓글보니 많이들 지적해주시네요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제가 잘못 알고 있을수 있지만 많은 댓글이 지적하는것 보면 확실히 오류가 있는걸로 보이네요
@TititititititititiT
@TititititititititiT 5 ай бұрын
아시가루가 나기나타 사용때문이 아니라 창길이가 길어서 아닌가유? 점점 길어져서 전쟁씬 보면 차으로 내려치던데... 그리고 나기나타는 사실상 일본도에 창자루를 단 느낌이라 농민 병사들인 아시가루가 쉽게 휴대할 물건은 아닌듯 한데...
@user-ge5mu5nf7o
@user-ge5mu5nf7o 3 ай бұрын
가장큰이유는 유럽은 인구가 적어 대규모 전투보단 소규모 전투가 활발함 그래서 유럽은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이 무척 중요했음 그런대 일본은 인구가 많아 전쟁할때 전쟁에 나갈 병사보단 돈이 문재였음 그래서 장창을 나눠주는게 더 싸게 먹혔음 그리고 일본은 내전이 많아서 병사를 바로 전선에 보내야 하는데 활은 훈련기간이 너무 길어 차라리 활병을 양성하는것보단 창을 들리고 전선에보내는게 이기는 확률을 올렸음 그러면 어자피 활도 없으니까 방패의 값어치는 크게 떨어짐
@user-kv2di7nm4p
@user-kv2di7nm4p 5 ай бұрын
일반 병졸인 아시가루가 양손무기인 나기나타를 사용해서 방패를 들수 없었다는 건 도데체 어느 이세계관의 일본인지??? 방패를 사용안하는 이유를 진짜 소수의 일본기마궁병, 진짜진짜 극소수만 써서 있는지도 모르는 일본의 둔기무기를 예를 들고있네
@jesusismylord7364
@jesusismylord7364 Ай бұрын
일본 활은 사거리가 형편 없었고(20~30m) 관통력도 형편 없어서 그리 큰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 손으로 싸우는 방식이 발달한 것입니다.
@granatepom5401
@granatepom5401 5 ай бұрын
중세만 다루면 왤케 잘못된 영상들이 나오는건지 모르겠네
@Ulsan_Bug
@Ulsan_Bug 5 ай бұрын
전국시대의 전투 대부분이 그랬던건 아니겠지만 당시 일본은 어찌든둥 영주를 사로잡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수성, 공성 전술이 굉장히 뛰어나고 발달한 전투 환경을 갖고 있고 야전도 실상 토성을 쌓거나 해자를 만들면서 수성, 공성 형태로 진행하느라 그 과정에서 방책에서 엄폐가능한 지물을 활용해 활이나 조총같은 원거리 무기를 사용했던 부분을 눈여겨 봐야하지 않나. 그리고 공성 병기로는 방패와 비슷한 갑차가 많이 활용된 점에서 방패의 효용가치가 떨어진게 아닌가 하는데 그리고 기마궁술은 그냥 일부 사무라이들의 무예 놀이정도였겠지, 그게 무슨 농민에서 징집된 일반 군사들에게까지 유행했을리가; 없는데; 일본이 기병을 엄청 많이 쓰는 전쟁 양상도 아니었고, 일본 활 만드는 기술은 형편없어서 우리나라 전통활 처럼 작게 만들지도 못해서 지 키보다 더 큰 활을 들고 쏴야했을텐데 그게 전쟁에서 활용 가치가 있어봐야;; 그리고 전쟁에서는 언제나 수세적 유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공세적 유리를 차지하는 쪽이 전세를 잡기가 좋기 때문에 갑옷, 방패 이런거 투자하는 것보다 무기의 정밀성이나 화력에 투자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지 영상 속 사무라이들 갑주는 그냥 그 영주나 사무라이들의 부를 과시하는 게 목적이지 중세 기사들도 석궁에 안 뚫렸다고 하는데 뭔 의미가 있음 한창 기사들이 설쳐먹을 무렵에 영국이 장궁으로 프랑스 다 털어먹고 다녀서 한철 접은 것도 그렇고 기사들 방어력 몰빵해서 안죽으니까 좋아보였지 아주 간단하게 몽골한테 폴란드 털려먹힌 것만 봐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 로마군은 방패를 벽처럼 잘 활용한 군대인 것도 맞고 테스투도 포메이션 활용 잘한 것도 맞는데 로마군의 상징은 압도적으로 글라디우스고 앞서 언급한대로 로마군은 잘 훈련되고 전열을 유지해서 일종의 작은 성벽형태로 사용한거라 개인의 전투력에 도움이 크다고 할 수가; 오히려 거추장스럽지 그리고 그 로마군 방패 어쩌고 저쩌고도 파르티안샷에 디지게 쳐맞으면서 파르티아한테 활로 농간당한거 보면 일본이 방패 안쓰는 이유는 답이 나옴. 방어를 암만 열심히 하려해봐도 무기의 발전이 더 성과가 좋음 ㅋ 전쟁만 디지게 하면서 그걸 배운거지
@hotwo7021
@hotwo7021 5 ай бұрын
이런 무기역사 너무좋아요
@noseelongtime1044
@noseelongtime1044 5 ай бұрын
방패는 모너크가 짱
@user-ck4xm9on8y
@user-ck4xm9on8y Ай бұрын
그것이 "낭만"이니까
@user-ds4ke9ne7w
@user-ds4ke9ne7w 3 ай бұрын
유럽의 기사들도 투핸드 소드를 들면 방패를 들 수 없습니다. 간단한 이치,
@karaszet
@karaszet 5 ай бұрын
말타고 방패든건 마상시합에서나 본거 같음. 대충 버무려서 말을 하는 듯 한데
@user-yh1xv9mf1w
@user-yh1xv9mf1w Ай бұрын
무슨 자꾸 유럽의 기사들은 방패타령인지. 후대로 갈 수록 갑옷이 발전하고 방패의 크기는 작아져만 갔구만. 좀 역사 지식좀 있는 사람이 이런것좀 만들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역사 좋아하는 사람보다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이런걸 만드냐
@junyang8117
@junyang8117 3 ай бұрын
그리고 궁이 만들기 번거로와서 일본에는 궁이 많지안태요. 검도 수손으로 베는게더 단칼에벨수잇으니 공격을더 중시햇죠
@user-gs4we8bu3r
@user-gs4we8bu3r 5 ай бұрын
영상에 좀 맞지 않은 내용이 많은거 같네요ㅎㅎ
@user-ne1hq3gk9y
@user-ne1hq3gk9y 5 ай бұрын
방패를 철로 만들면 의미가없어짐 걍 방패만 낑낑대면서 옮기다가 탈진함
@user-fv7xu7uz4o
@user-fv7xu7uz4o 2 күн бұрын
로마군 기록이 행군 죽을맛임ㅋㅋㅋ
@user-uz1yp4ho7u
@user-uz1yp4ho7u Ай бұрын
기마궁수가 일본에...있었던가요? 각궁도 아닌 그 큰 활을 말을타고..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네요
@user-md4wk2ey6w
@user-md4wk2ey6w 19 сағат бұрын
사무라이의 기원이 기마궁수임 칼쓰는 이미지는 에도시대에 공무원화 되고나서 생긴거고 원래 말타고 활쏘는 애들에서 시작된거
@user-db2mm7og6f
@user-db2mm7og6f 5 ай бұрын
일본도는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되어 있어 가속도가 붙으면 더 빨라 지나, 실패하면 상대의 공격에 불리 할 수 밖에 없죠. 1격 필살 아니면 죽음.
@greenwave2199
@greenwave2199 5 ай бұрын
일본 활은 성능이 형편 없습니다. 유효 사거리가 20~30도 되지 않을 지경이라더군요. 따라서 방패가 더 필요 없었을 수도 있죠.
@kofnik
@kofnik 4 ай бұрын
일본군 성격상 방패 뒤에 숨는걸 수치스럽다고 여겨서 방패를 안쓰는줄 알았는데
@user-ss4ed3pd6k
@user-ss4ed3pd6k 3 ай бұрын
창 같은 양손 장병기가 주종이라도 칼 같은 한 손 단병기가 일부라도 쓰었고, 그럼 방패도 같이 쓰일 수 있는데...
@user-sb7xj8sd3h
@user-sb7xj8sd3h 5 ай бұрын
보통 무기는 환경에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활.....이죠..... 활시위는 덥고 습한 곳에서는 거의 힘을 발휘하기가 힘들죠... 그래서 일본의 활공격은 상당히 부실한 것입니다....크기는 엄청 커도 공격력이 약하니 굳이 무거운 방패를 들고 싸우기 보다는 공격력과 기동성에 투자한 것이죠.... 또한 활은 비, 바람, 더위, 습기, 등등에도 약하니 일본에서는 공성이외에는 잘 쓰기 어렵죠...
@hill7656
@hill7656 Ай бұрын
유럽기사라고 말하면서 군단병이 왜 나옴 ㅋㅋㅋ
@Inmoon-haek0871
@Inmoon-haek0871 5 ай бұрын
로마의 스쿠툼 방패 또한 나무 위에 가죽을 덧대고 중앙부와 하단 모서리 만 금속으로 보강 했으며 이외의 유럽 문명의 방패들 또한 나무+금속or가죽 아니면 only 나무 였습니다. 아시가루는 경무장 보병을 총칭하는 폭 넓은 단어로 나기나타는 승병,여성 병사,특수 보직의 일부 병사에 한해서만 사용 되었고,대부분의 아시가루는 야리 아시가루(장창병),유미 아시가루(궁수),뎃포 아시가루(조총병) 입니다. ^^ 또한 일본은 산지가 많고 기후가 습해서 궁기병은 귀족들이 선호했지 전쟁에서 널리 이용된 병종이 아닙니다. 일본의 방패가 도태된 이유는 전국 시대에 갑옷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아시가루가 상비군 형태가 아닌 용병의 형태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갑옷은 대부분 가벼운 식물성 재료로 제작한 기동성 위주의 갑옷이며 투구 만이 금속제인 경우가 열 중 아홉 입니다.
@dhj3470
@dhj3470 5 ай бұрын
틀린 내용이 너무 많은데 검수를 제대로 하셔야 할듯
@user-yn6ed4sx7e
@user-yn6ed4sx7e 5 ай бұрын
가타나는 분명한 양손검임.. ㅡㅡ
@elvenisar
@elvenisar 5 ай бұрын
롱소드처럼 한손/양손 다 쓸수있는 무기죠. 관습적으로 "한손반검(Hand-and-a-half-swords)"라고 부릅니다.
@user-fv7xu7uz4o
@user-fv7xu7uz4o 2 күн бұрын
​@@elvenisar양손검이 기본이고 한손으로도 어느정도 쓸수있다 정도지 바스타드 소드처럼 아예 아밍소드와 롱소드의 중간 길이와 적정무게 아니면 그냥 양손검이 기본입니다
@agnomy2543
@agnomy2543 9 күн бұрын
일본은 조선 침략시기 말고는 자기들끼리 소소하게 쌈질하던 수준이고 궁수로 부터 공격받는 대규모 전쟁 같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1차적인 방패의 역할이 필요가 없었다고 봅니다. 활이 발달하지 않은 일본에서 기동성을 살린 공격형태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외부로 나가는 군대라고 해봐야 빨리치고 도망가는 해적 수준이니 당연히 방패는 필요가 없는 것이죠
@user-fv7xu7uz4o
@user-fv7xu7uz4o 2 күн бұрын
일본 열도 환경자체가 안좋아서 복합궁인데도 성능이 영국 롱보우보다 못함
@user-vf9vg3yf5u
@user-vf9vg3yf5u Ай бұрын
??? 일본 대나무로 방패 많이 만들었는데? 대나무 둥그렇게 묶어서 조총탄까지 막았었음
@user-oc7gl4uf1t
@user-oc7gl4uf1t 5 ай бұрын
일본이 2차 대전 인간방패 써먹는 전술 여전한거 보니까 변하지도 않았다
@RUSLAN0426
@RUSLAN0426 4 ай бұрын
이건 뭐 맞는 말이 하나도 없네 ;;;
@Akaris001
@Akaris001 5 ай бұрын
이 채널 재밋는 주제들 다뤄서 구독햇엇는데, 보면 볼수록 고증 실패나 어그로는 끌고 내용은 생각보다 빈약하거나 잘못된게 많음. 나무위키보다도 신뢰못할 정확도입니다 여기....
@user-up7ck3hc8b
@user-up7ck3hc8b 5 ай бұрын
이분 틀린 정보를 많이 포스팅하네요.. 좀더 자세히 알아 보고 업로드 하세요
@wnb7276
@wnb7276 4 ай бұрын
일본 역사를 보면 아...ㅅ.ㅂ.건들지 마라...어...이 ㅆㄲ가 너 기다려 하고 아무 무기나 잡고 싸우는 역사 같다..
@user-yd6lu4it1f
@user-yd6lu4it1f 16 күн бұрын
닛뽄의 활이 강력하지않기에 저정도 수준의 갑옷으로도 충분했다.조선의 각궁앞에서는 그냥 뚫릴거다.왜냐고? 각궁 쏴봐라.알것이다.
@antbank12345
@antbank12345 4 ай бұрын
역사, 군사 내용을 다룰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면 역덕, 밀덕들에게 참교육 당할 것이다.
@dubu999
@dubu999 5 ай бұрын
뭐 갑옷 방호력의 증대로 인해 방패가 사라졌다는 주제의 관점은 동의합니다. 우리 실록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일본 갑옷이 동북아 기준에서는 기밀성이 높긴 했지요
@user-vs7lb8ml8m
@user-vs7lb8ml8m 5 ай бұрын
길게 이야기 하셨는데 일본에서 방패를 많이 쓰지 않은 이유는 활이 엉망이라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섬나라라서 복합궁이 발전하지 못하고 단일소재로 만든 장궁으로 발전을 하였는데 장궁인 만큼 화살도 길고 무거워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었음 실제 날아오는 화살을 칼로 처낼수있을만큼 느리게 날아갔다함
@gatsbyl7216
@gatsbyl7216 5 ай бұрын
길게 이야기 하셨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만 뽐내시네요. 일본 활은 복합궁입니다. 실제로 측정하면 한국에서 쓰던 활과 비교해서 성능이 전혀 밀리지 않고요. 흔히 국궁이라고 부르는 각궁은 유라시아 지역 전체에서 쓰던 합성궁으로, 특출난 활이 아닙니다. 한국 활은 만주hornbow의 미니버전, 터키활과 비슷하죠. 또한 일본은 합성궁을 이미 만들줄도 알고 수입해서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여진족같은 유목민족 들도 죄다 쓰는게 각궁인데, 일본이 그걸 만들 기술이 없었다고 생각하는게 참 지능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일본이 합성궁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먼저 합성궁은 아교로 부착하는데, 이것이 온난다습한 기후에 맞지 않습니다. 네, 맞습니다. 한국의 기후에도 맞지 않는데 한국이 억지로 사용한 케이스라, 실제로 장마철에는 전투수행을 못할 정도 였고, 각궁들을 보관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했습니다. 또 hornbow에는 물소뿔이 필요한데 이 생산량이 적습니다. 근데 이것도 한국이 더 심하죠? 결국 한국은 물소뿔을 전량 수입해서 써야했는데, 당시 상업 수준을 생각하면 역시 가성비가 맞지 않은 거죠, 황소뿔, 사슴뿔로도 만들었지만 흑각궁에 미치지 못해, 실패한 군수체제였습니다. 실제로, 조선은 임진왜란 즉시 거의 각궁을 전부 버리다시피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빠르게 화승총으로 갈아탔죠. 국궁이 우수하다 어쩌다 하는데, 지금은 만드는 기술조차 전해지지 않습니다 ㅋㅋㅋ 조상들은 와 이거 못써먹겠네 하고 바로 버린것을 후손들이 추켜세워주는 그런 상황이죠 ㅋㅋㅋ.
@user-fv7xu7uz4o
@user-fv7xu7uz4o 2 күн бұрын
​​​@@gatsbyl7216복합궁인데 성능이 븅1신인 일본활ㅋㅋ 근데 왜 일본에선 한국 활 사격 사거리 보고 무슨 총쏘냐는 소리가 나옴? 넷상 자체가 무지인데 님도 무지해보임 일본은 편전 없는 점에서 겜 끝난거임
@Panorama-memory
@Panorama-memory 3 ай бұрын
방패를 쓴다는 이야기는 다른 손에는 적당한 크기의 칼을 들었다는 뜻이고, 접근전이라는 뜻임. 즉,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거.. 검투사나 뭐 그런 전문전투병과 라는 이야기. 근데 대규모 전투에서 대부분 농사짓던 아무나 다 끌고 온거라 그냥 창이나 하나 들려주고 싸우라 하는거지. 개못싸우니까 싸고 저렴한 창을 긴걸 줘서 슛슛 찌르라 시켰고. 긴창 들고 무슨 방패를 드나.. 이게 서로 유리하려고 창은 점점 길어졌을거고. 결국 적당한 선이야 결국 거기서 거기일테고.. 나란히 서서 깨짝깨짝 하며 라인만 지키고 있는거지. 그러다가 후방이나 측방으로 기마대가 돌격하면 우르르 무너지고 도망가는거고. 아마 방패 비스무리한 뭔가는 있었을거임. 화살 일제 사격 날아오면 그건 막아야 하니까. 등에 뭐 하나 짊어지고 다녔겠지. 화살비 막는 용도로. 아니면 그냥 몸으로 버티고 죽던가. 이런걸 뭐 딱히 사료를 찾아봐야 아는 건가? 그냥 잠깐만 생각해봐도 뻔한거.
@user-qu6cr8ug1z
@user-qu6cr8ug1z 4 ай бұрын
🤔🤔🤔🤔🤔🤔🤔🤔🤔🤔🤔🤔🤔🤔🤔🤔🤔🤔🤔🤔🤔
@user-yt2op3hi7x
@user-yt2op3hi7x 5 ай бұрын
오오말구 오~라구 길게 읽으셔도 괜찮아요 ㅋㅎㅋㅎ
@oncoffee9733
@oncoffee9733 Ай бұрын
가오를 중요하게 생각한 니뽄
@user-lw2zt6me9f
@user-lw2zt6me9f 3 ай бұрын
스파르탄 같은 강한 체력이 못되서 창과 방패중 방패를 포기한 거고요.(무기를 포기할 순없으니) 중 갑옷은 현장 지휘관들의 나는 꼭 살겠다는 의지의 산물이지. 전투목적은 아니라는 것. 멋도 모르고 중갑옷 입은 채 적진에 뛰어들면 금방 꼬꾸라져 일어나지도 모하고 계속 밟혀 흙에 얼굴이 파묻혀 죽게됨.
@leonheart7576
@leonheart7576 5 ай бұрын
공격무기가 약해서?
@CGR2
@CGR2 5 ай бұрын
다 감안해도 방패 쓰는 게 더 안전해보이는데
@user-sv2sl9jz3x
@user-sv2sl9jz3x 4 ай бұрын
철을 다루는 기술이 떨어졌어 방패가 없는것~~~
@mjkim9193
@mjkim9193 5 ай бұрын
나무방패를 입고 다니는데 방패가 왜필요해? 키가 작아서 방패는 의미가 없지.
@just4Utub
@just4Utub 5 ай бұрын
형이 말해줄께. 가장 중요한 건 일본인들의 외소성 때문이야. 일본인의 성인 남자 키가 당시 160을 못넘어서 방패까지 들고 다니기가 힘들어. 또한 견고하고 성능 좋은 활을 만드ㅡ는 기술이 모잘라서 활이 엄청 크기만 해서 명중률이나 휴대성이 나뻐.
@jongjin39
@jongjin39 5 ай бұрын
6:11 이것은 머리로 찔러 죽이려고 쓰는건가?
@user-op7gf7lk3m
@user-op7gf7lk3m 5 ай бұрын
안전모 착용 상태 좋아!
@user-tq4lh8vo5x
@user-tq4lh8vo5x Ай бұрын
방패는 짜치니깐..
@KJ11-DAFS
@KJ11-DAFS 5 ай бұрын
방패와 한손검을 쓰는 병사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로마 군단병은 전쟁만 하는 조직이었습니다.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 결국 훈련이 쉬운 창을 들게 됩니다. 고대로 갈수록 싸움만하던 집단이 존재했기 때문에 방패사용이 가능했지만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창을 든 훈련도가 낮은 병력이 생겨나게 됩니다. 유럽에서도 농민출신들은 창을 들었고 그마저도 제법 훈련을 해야 전쟁터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많은 병력을 정예병으로 키우는건 힘드니까요. 임진왜란때 원앙진에서도 등패수는 정예병이었습니다. 양손검도 훈련을 많이 해야 하지만, 사무라이계급은 밥먹고 검도만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별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일반병력까지 양손검을 무장시키는건 전국시대 일본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방패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습니다. 몽땅 철로 만들어진 방패를 한손으로 드는건 불가능합니다. 대부분 가죽이거나 나무이고 일부분만 철입니다. 아니면 얇게 철을 펴서 가볍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게임에서도 나오지만 양손검이 방패를 든 병사보다 우월합니다. 다만 방패를 든 병사보다 숙련도가 더 높아야 하는게 문제죠. 때문에 유럽에서도 기사계급정도는 되어야 양손검을 제대로 써먹습니다. 원칙적으로 창이나 방패병은 기사나 사무라이를 제압하지 못합니다. 양손검을 든 사무라이나 기사를 제압하려면 동양에서는 언월도, 유럽에서는 둔기에 가까운 할버드를 들어야 합니다.
@user-fv7xu7uz4o
@user-fv7xu7uz4o 2 күн бұрын
양손검이 더 익히기 어렵다 검방은 병사 양산하기가 쉬움 일본은 과거부터 전쟁보단 결투성향이 큼
@WooCur3787
@WooCur3787 5 ай бұрын
맞다 그리고 아시가루는 나기나타가 아니라 야리썼음 알고 써라 진짜 그리고 야리도 기본적으로는 찌른다기보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충격무기였음 그래서 뚜껑을 보호한거임 방패가 무슨 존나 철덩어리인줄 아는 모양인데 주 역할은 화살막는거고 근접공격은 흘리거나 맞받아치는용도임 아무리 존나튼튼한 철로 만들어봐야 도끼로 찍으면 장사없는데 뭐하러 무겁고 비싸게만드나? 진짜 할말이 한트럭인데 다른분들이 가루가 되도록 깔테니 난 여기까지 하겠음
@user-dc6rc8wd1q
@user-dc6rc8wd1q 5 ай бұрын
일본이 방패를 안 쓴 이유는=간지 가 안 나서....
@wincup
@wincup 5 ай бұрын
이건 절대 아님.
@user-on5dz4ro8w
@user-on5dz4ro8w 3 ай бұрын
임진왜란때 방어구 차이도 있었군요
@user-mb2ro9ve1x
@user-mb2ro9ve1x 2 ай бұрын
폴암으로 찍어도? 팔기군 갑옷은 안튼튼해서 3겹씩 껴입었나?
@kyuchulnoh3008
@kyuchulnoh3008 Күн бұрын
활도 못쏘고 합성궁도 못쓰는 놈들이 기마궁수 ㅋ
@user-xk5tj1pl1o
@user-xk5tj1pl1o 17 күн бұрын
칼싸움에 자신이 있었나?? 일본활이 약하니 갑옷만으로 방어가 가능했을까나?,
@user-lf8dz1gy8t
@user-lf8dz1gy8t 5 ай бұрын
삼나무는 약해서 방어가 안되
@TENGU13
@TENGU13 5 ай бұрын
작고 힘 약한 인종특성 때문이 아닐까
@seobang18wang66
@seobang18wang66 5 ай бұрын
그 후예들이 반쟈이 돌격을 감행하다 녹아내렸지
@jhs4652
@jhs4652 5 ай бұрын
그래도 조선인들은 잘 썰어넘겼죠 그거면 된거 아님?
@wan-juyim1919
@wan-juyim1919 5 ай бұрын
인명경시 문화 의 산물 인듯.
@aasschl
@aasschl 5 ай бұрын
온몸이 방패 ㅋㅋㅋㅋ
@jhs4652
@jhs4652 5 ай бұрын
나기나타를 아시가루가 주로 사용했다는건 또 첨듣네 전국시대만 해도 5미터가 넘는 야리를 사용하지 않았나? 나기나타는 그보다 훨씬 짧은걸로 알고 있는데 일본 사극만 봐도 나기나타를 들고 있는 아시가루는 없습니다
@user-vb2ei3qq1g
@user-vb2ei3qq1g 4 ай бұрын
일본이 부대급 궁기병을 운용했었나요?
@sae77777
@sae77777 28 күн бұрын
기마군 기술은 고구려 왕이 들어가면서 기술이 전파됐어요
@user-fv7xu7uz4o
@user-fv7xu7uz4o 2 күн бұрын
그냥 고증 오류야
@user-wv3vb8vu8n
@user-wv3vb8vu8n 5 ай бұрын
기마궁술같은소리하네 일본애들 지 키만한활들고 말에서 잘도 쏘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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