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귀한 이야기를 어머니가 맛있는 반찬 손수 다 떠먹여 주시듯 현상 영상까지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적돌9 ай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ggondigi9 ай бұрын
오오~ 있는지도 몰랐던 '장성'과 관련 역사, 덕분에 배웁니다. 다음편이 기다려지네요.
@사적돌9 ай бұрын
신대리성 거의 다 돌았으니 이제 관문성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주정수-p5b8 ай бұрын
제 고향이네요 모화(모벌)라는 의미가 배울땐 불국사 들어가기 전 털을 태운다 라고 배웠지만 인터넷 어느 글에서 모기가 많은 지역이라고 해석한것도 봤었는데 그립네요 원원사 뒤편으로 해서 봉서산으로 올라가 능선따라 자주 가곤 했지요 실제 원원사 주변 도자기터와 사람길이 아닌 계곡 산길을 오르다 보면 아직도 기와조각이 나온답니다..
@사적돌8 ай бұрын
오 유서깊은 고장 출신이시군요😄 방리제흔적을 원원사 앞까지보는 분석도 있어서 신라시대에는 앞들도 모두 집으로 가득했을수 있지요😄
@d-dung9 ай бұрын
치술령은 있지만, 경주 내남면 명계리(홈실)에서 외동읍 제내리(돌매) 사이의 고개와 그 남쪽의 산도 치술령이라고 통상 이야기 했지요. 89년도 경주를 떠나기 전(취업차) 일부러 자전거를 타고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새길이 생기기 훨씬 전의 일입니다.
@사적돌9 ай бұрын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GreatJungba9 ай бұрын
다듬은 돌을 들여쌓기한 모습이 일품입니다. 멀리서 보면 옥수수를 보는 것 같아요~
@사적돌9 ай бұрын
축성이 정연하지요😄 잘쌓은 성입니다
@찢어진워커4 ай бұрын
울산이 신대리성이라고 부르는 성벽 둘러보다가 성벽 석축에거 명문이 있는 울산시청 문화재과에 전화걸어 명문을 발견했다고 말하니 학예사 왈 ” 거긴 명문이 많아요. 잘 찾아보면 꽤 찾을겁니다....“ 라는 답변을 보상금은 꿈은 사라지고 맴만 아팠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ㅎㅎㅎ 유난히 참여 인원들에대한 기록이 잘 되어 있는 성곽이지요😄
@LBY02109 ай бұрын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장성이고 그래서 참 멋있네요^^
@samueloh90269 ай бұрын
부여 나성도 그 중 하나죠^^
@LBY02109 ай бұрын
@@samueloh9026 그래서 부여나성도 멋있죠 ㅎㅎ
@4584n9 ай бұрын
울산 갈때마다 항상 지나가는 관문성이네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사적돌9 ай бұрын
오 예나 지금이나 사람과 땅은 같이 어울려있는듯합니다. 1400년전의 길과 지금이 다르지 않네요😌
@2rn5dl779 ай бұрын
가야, 백제,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당나라하고도 싸워이기던 신라가 일본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지ㅎㅎ
@사적돌9 ай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ggondigi9 ай бұрын
두렵지는 않아도 대비는 해야죠? 손놓고 방심하다 왕궁까지 털리는 것보다야. 과거에 이미 털린 경험도 있고.
@rohyt0009 ай бұрын
영상위에 점선으로 예전 모습을 그려 놓으니 이해도가 훨씬 더 좋네요.. 늘 내 조국의 역사 이해에 도움 되는 영상 감사 합니다.
@사적돌9 ай бұрын
시청 감사드려요😌
@utubebkeaton9 ай бұрын
이 채널을 알기 전까지 우리나라에 산성이 이리 많은줄 몰랐습니다. 우리나라에 돌로 쌓은 석성/산성이 총 몇개나 될런지요
@사적돌9 ай бұрын
셀수없이 많습니다, 아직 10%도 다 언급을 못했네요, 산성, 보루성, 봉화대, 목책성, 읍성 도성 다 합하면 천단위로 올라갑니다😌
@dek59989 ай бұрын
산불이 한번 휩쓸고 갔나봅니다 나무 색이…
@사적돌9 ай бұрын
오 겨울이라 그렇습니다, 걱정안하셔도 됩니다😌
@sho95119 ай бұрын
덕산읍성 남연군묘 헌종태실 설명부탁드려요
@사적돌9 ай бұрын
오 가야사지는 다녀왔습니다😄 kzbin.info/www/bejne/gHjPmatsmctgitk
@sho95119 ай бұрын
덕산읍성의 역사 알고싶습니다
@이석호-g3l9 ай бұрын
수고많으십니다 신대리성 보다는 기박산성(기백기성) 조선시대 지도에 나오는 신흥산성으로 표기가 좋을 것 같습니다.
@사적돌9 ай бұрын
오 말씀 감사드립니다😌😄
@athanasius11249 ай бұрын
부여씨가 지배했던 백제가 멸망한 이후, 한반도의 국가들과 일본 사이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주로 신라의 주도로 이루어진 삼국 통일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경이 고려와 조선 시대로 이어지며 한반도와 일본 간의 관계에 깊은 영향을 준 게 아닐까요. 일본에 넘어간 수많은 백제나 고구려 유민들에게 신라가 남아있는 한반도는... 원수의 땅이었으므로.
@사적돌9 ай бұрын
너무 급작스러웠지요, 분명 전체적인 대 신라 전황은 백제가 이기고 있었으니... 백제 유민들은 원통했을겁니다🤔
@핏빛제왕9 ай бұрын
여태 배운 국사는 도대체 뭐였는가 싶네요. 통일신라 남북국 시대에 이렇게 치열한 역사가 있었다는 걸 첨 알았습니다.
@사적돌9 ай бұрын
신라말 신라구가 괜히 일본 털고 다닌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Yun-JC9 ай бұрын
관문성 입구 근처에 할아버지 댁이 있어 어릴적 자주 놀러 다녔네요 ㅋㅋㅋ 동네에선 천리성이라고 불렀는데... 어릴적 뛰어 놀던 추억이 떠올르네요 ㅎㅎ
@사적돌9 ай бұрын
오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요, 구간구간 복원도 해놓았습니다😄
@백제근초고왕-o3t9 ай бұрын
신라의 성쌓는 기술을 보면 고구려 뺨칩니다
@사적돌9 ай бұрын
관문성 쌓을 즈음에서 거의 완숙에 이른것 같습니다😄
@TheJinNK9 ай бұрын
경주도 나라에서 중심부는 땅을 매입해서 교토처럼 복원 중건했으면 하네요 전부 매입은 불가능하겠지만 필수핵심지역만 어느정도 해도 천년을 이어갈 유산이 만들어질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