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에서 해 위를 바라보다 (2) (전도서 1:8-11) --- 안성삼목사 주일설교 - 목자들의교회 - 20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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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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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육신의 법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이 없습니다. 불신자가 기도 안해서 고민이 많아졌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불신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다고 갈등하는 것 봤습니까? 육신의 법대로 살기 때문에 거룩한 고민과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은 사람은 고민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와 사망의 법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 사람을 자꾸 고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해아래 없는 것들 다섯가지를 우리들에게 본문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1. 해 아래서는 확실한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2. 해 아래서는 영원한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3. 해 아래서는 만족한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4. 해 아래서는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5. 해 아래서는 기억될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3. 해 아래서는 만족한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전 1: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해아래의 모든 것은 만족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해 위 곧 하나님의 나라에는 만족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바라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만족함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그가 소유하고 싶은 모든 것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소유의 근원이시고 생명의 근원이시며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만족이 없을까요? 아모스 선지자는 일찍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고 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어나 욕망이라는 길을 숨이 막힐 듯이 달려가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손을 폅니다. 롯의 아내가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불타는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창 19:23~26)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8절) 만족을 모르는 인생! 불만스러움에 심신이 다 피곤하고 지쳐있지 않습니까? 한번이라도 의미있는 일을 해 보셨습니까? 아! 내가 주님을 위해 참으로 귀한 일을 한번 해보았구나 하는 거룩한 성취감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가 만족하지 못한 이유를 진정한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4. 해 아래서는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전 1:9~10)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습니다.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다 똑같습니다. 유행도 옛것을 조금씩 변화시키거나 의미를 부각시켜 나가는 조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새로운 것입니다. 새것이 없다면 “인생은 다 그렇고 다 그런 것이다”라며 회의주의, 아니면 냉소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것이 있습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과 한 몸이 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근본의 변화, 새로운 존재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덧입은 고귀한 존재로의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아담 생명]이 아닌 [예수님 생명]입니다. 예수님 생명을 소유하면 새로운 품성, 새 사람, 새 인격이 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자신을 왕 같은 제사장이요, 새 언약의 일꾼으로 보게 됩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배로 여깁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로 여깁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여기에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더 본질적인 질문은 "하나님께서 나를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 삼으셨는가? 하는 성경의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5. 해 아래서는 기억될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전 1:11) 사람들은 ‘나’란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전 세대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해 두시고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이는 것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집니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 보고 경험한 세계,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은 영원히 잊히지 않습니다. 오랜 훗날 우리 스스로, 우리 후손이 나의 삶에 묻는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기념비가 무엇일까요? 말씀과 예수님을 중심으로 사는 것만이 영원한 기념비가 됩니다. 젊음도 가고, 아름다움도 지나가고, 재물도 사라지고, 재산도 건강도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오직 성경 말씀과 예수님의 은혜로 산 삶만이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드리는 시간과 물질과 진심을 모두 다 기억하고 역사화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헌신과 사랑을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다 받으셔서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수고를 결코 헛되이 여기지 않으십니다(고전 15:58). 하나님 안에 참된 지혜와 참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새로운 지식이 참된 가치가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in Him)에 영원히 기억될 새생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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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rf8fn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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