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목사님 설교에 일년열두달 매번 믿으라고 설교를 하셔서 우리가 얼마나 안 믿으면 저렇게 매번 믿으라고 설교를 하실까 생각 했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행할까 무엇을 행할까 생각하고 기도하고 노력 해야겠습니다
@jo-tn4um3 ай бұрын
귀한목사님 건강하세요 존경합니다❤
@얼음-d2n3 ай бұрын
소금과 빛. 소금으로 시작해서 빛이 됩니다.
@박명희-r5d3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우리목사님!!
@김광석-w3z3 ай бұрын
아멘
@공산-e4i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강희식-h5m3 ай бұрын
자신이 누구인가??자신의 본질을 알아야 할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디서왔는가? 나는어디로 갈것인가??를 확실히알고 있어야한다, 나는 흙으로 뭉쳐졌으며 하나님이 만드셨고 영원한 생명체이다, 이땅에 죄인으로 태어났으나 예수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죄사함을 입고 새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아버지 나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는 확고한 믿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야한다, 이땅은 소망이 없고 오직 아버지 나라에 소망을 두고 좁은길 힘든길을 기쁘게 걸어가야한다
@chrischo71783 ай бұрын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한가지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설교하시는 성경 본문을 표시해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에즈라765873 ай бұрын
이재철목사님 귀하고 귀한 말씀 감사 감사합니다 🌳 몇 년전에 새벽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교회가 아닌 예배당이라고 해라!!!라고 하셨습 니다 뒷 배경의 나무잎 들을 모두 진초록 색으로 바꿔주세요 훨씬 보기에 좋습 니다 감사합니다🌳💚🩵
@박정상-l3e3 ай бұрын
🙏
@cheegoo73 ай бұрын
어떤 종교단체든지 인간이 모이는 곳을 교회라고 한다.
@김도연-x4q7e3 ай бұрын
찾지 말라시더니 직접 찾아오시네요 ㅎㅎ
@여리첼3 ай бұрын
교회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받고 가르침 받아 세상에 나아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행하는거 아닌가요
가끔 하나님의 은혜로 매우 훌륭한 사역을 하신 분들 가운데 성경해석을 이상하게 몰고 가시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좀 과한 표현으로, 무엇인가 전통적인 해석을 넘어 홀로 톡 튀는 해석을 하시려는 분들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전통적인 정통 번역과 해석은 하루아침에 정립된 것이 아닙니다. 십수 세기 동안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를 받은 기라성같은 주의 종들이 수많은 논쟁과 여러 번의 종교(교회)회의를 거쳐서 확정된 것들인데, 한두 사람이 새로운 발견이라면서 정통 해석을 뒤엎고, 비판하고 성경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하면서 내놓는 해석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비본질적인 해석(non-essential interpretation)에서 전통해석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적어도 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성경의 큰 틀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단지 다양한 견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정통해석을 기초로 해서 최상의 해석을 위해 좀 더 발전된 해설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태초”(in the beginning)라든지 “사탄의 기원”(the origin of Satan) "방주 건축기간"(the length of Ark construction)등은 물론 “교회”(church)라는 말은 성경에 어디에도 없다며, “행회”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는 상식 밖의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리려 “행회”라는 말이 사전에는 물론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말입니다.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성경을 누구보다도 색다르게 톡 튀는 해석을 내놓으려고 성경과 신학적인 원리가 아니라, 인간 이성(reason)에 의한 상상으로 추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ekklesia, church)라는 말에 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려면 지면이 부족할 것입니다. 간단히 그 핵심만 짚어보겠습니다. 교회는 구약의 개념으로는 하나님께서 애굽으로부터 불러내신 이스라엘의 공동체로 이를 신약성경에서는 “광야교회”(한역)로 번역했고(행 7:38), 다른 영역 번역들은 “광야 회중(the congregation in the wildness, ASV, RSV, NKJV), ”광야 모임“(gathering, assembly in the wildness, NIV)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말들의 공통된 의미는 ”모임“인데, 그 모임의 뉴앙스(nuance)가 바로 ...로부터(out of, from) 불러낸(to call, to summon)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이 모임은 구약적인 개념으로는 애굽으로부터 광야로 불러낸 모임, 신약적인 개념으로는 타락한 유대인 중에서 불러낸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의 모임, 현세적 개념으로는 불신 세상에서 불러낸 신자들의 모임 등의 뜻입니다. 이를 좀 더 엄격하게 분류한다면, 세상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신령한 교회(invisible/spiritual church)를 의미합니다. “교회”(ekklesia)라는 말은 어원학적으로(etymologically) 볼 때, 두 단어가 융합된 합성어(compound)입니다. 즉 “ek”(out of, from)와 “kaleow”(to call, to summon)의 합성어로 “밖으로 불러낸” 모임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밖으로 불러낸 모임이 “무엇을 하는 곳이냐?”라는 것인데, 즉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행하는 곳이다”라는 것으로 문제 삼으셨는데, 바로 이것이 성경적으로 상식 밖의 논리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첫째로, 죄악 세상에서 불러낸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모임이 핵심이며, 둘째로, 그 모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우선입니다. 물론, 그 가르침 속에는 나가서 전도하고 봉사하고 선을 행하라는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순전히 성경적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구약에서 노아는 죄악이 가득 찬 세상에서 불림을 받아 전도하며, 가족들과 함께 구원의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의 소굴로 죄악이 가득 찬 갈대아 우르에서 불림을 받아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 가나안에서 무리를 이루고 후손들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하여 죄악 세상인 애급에서 불림을 받아 광야에 모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율법으로 교육과 훈련받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습니다. 이를 스데반은 “광야교회”(행 7:38)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과 많은 무리를 불러내서 산상과 광야에서 가르치셨고, 병을 고치시고, 먹을 것과 생명의 양식을 제공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 중에 베드로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ekklesia. church)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16:18). 요사이 성경에 "원죄"(peccarum originale)나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라는 단어가 없다고 원죄와 이신칭의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한 마디로 성경과 신학적인 식견(Biblical and theological discernment)이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대 급진 자유주의 신학(contemporary radical Liberal theology)의 서적과 강의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 @pauljang991
@pauljang9913 ай бұрын
@@9m-thursday 원죄(original sin)란 없고 "새상에 떠돌아다니는 죄를 인간이 문을 열어 받아들이니까 죄를 짓는다?" 귀하는 신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경(Bible)과 신학(Theology)의 상관관계(correlation)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집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성경=신학이라는 등식은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종관계에 있습니다. 성경은 신학의 소스(source)를 제공하는 동시에, 신학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체계적으로 정리, 설명해주는 학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 영감(inspiration)에 의해 기록되었으나, 신학은 하나님의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을 받은 주의 종들이 십수 세기 동안 여러번의 논쟁과 종교(교회) 회의를 거쳐 갈고 닥고 정리한 학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오류가 없으나 신학은 당연히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질적인 핵심 교리에 오류가 없이 통일성을 이뤄야 하며, 지엽적인, 비본질적인 문제에는 다양성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양한 교파들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원죄(peccatum originale)도 성경을 소스로 해서 정립한 신학적인 전문용어(technical term)입니다. 성경의 소스에 근거한 증거 한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로마서 5장을 정독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없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롬 5:14).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롬 5:15).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롬 5:18).
@pauljang9913 ай бұрын
@@9m-thursday 원죄를 부인하려면 신학을 깊이 연구하신 후에 부인하시기 바랍니다. 원죄는 신학용어니까요. 정통신학을 연구하여 그 신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문제는 신학의 깊이가 없이 무조건 고집을 세우는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목사나 신학자들까지도 원죄를 부인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현대 급진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도 직접적인 언급과 간접적인 언급들이 많이 있지만 이에 대한 신학적인 연구가 없이 무조건 부인하면 대책이 없습니다. 우리가 원죄를 부인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에 관하여 한 두구절만 더 언급하겠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어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이 말씀은 자신의 의지로 맘문을 열어 죄를 받아드리고 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 아담-어머니의 계통으로 원죄가 전이(유전)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 15:21).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이 말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원리)를 나타내는 구절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담이 지은 원죄(peccatum originale)와 우리가 지은 자범죄(peccatum actuale)를 동시에 해결해주셨습니다. 좀 아날로그(analogue) 방식의 전문적인 표현으로 우리는 유전된 원죄로 멸망(사망)을 받게 되고 자범죄를 행한대로 보응을 받게 됩니다. 무조건 신학을 부정하고 오로지 성경적으로 한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성경원리에서 빗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성경보다도 신학을 선호하는 사람(학자)들 역시 신학적인 이단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성경과 신학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신학을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TOOL)로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잘못된 신학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의문되는 성경구절의 해석은 특히 조직신학과 훌륭한 주석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다.
@pauljang9912 ай бұрын
@@9m-thursday Context(문맥)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아담의 범죄(원죄)와 그 결과인 사망이 아담의 원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에게도 그 영향이 미쳤다는 뜻으로, 아담의 원죄의 유전(전가)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속죄 은혜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모형 즉 표상(tuto/ectype)인 아담에게서 찾는 것입니다(롬 5:14). 아담은 인류 최초의 사람으로 우리의 조상이며 대표로서 그가 지은 죄가 마치 우리가 부모로부터 유전 인자(gene)를 물려 받는 것과 같이, 영적이며 생물학적인 유전인자를 우리 조상(Father) 아담에게서 불려받아 원죄와 그 원죄의 결과가 우리에게 미쳤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원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우리에게도 사망이 왔다는 뜻입니다. 좀 더 구체적이며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뜻입니다(롬 5:12). 이는 시공을 초월한 영적이며 디지털 방식으로 설명한 문맥입니다. 성경은 반드시 전체적인 통일된 기본 원리 하에서 문맥을 확대하며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서만 보더라도 전체적인 성경의 원리 하에 1장-11장까지 신학적으로 교리의 소스를, 12장이하에서 윤리의 소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원죄와 자범죄의 개념과 상관관계를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뚜띠-o3x2 ай бұрын
오늘날 많은먹사들을 찍어낸 신학교(직업)의 결과물이 아 닙니까?? 80년대 만해도 담 임목사가까이가면 다친다고 왜??강대상에서는 거룩한말 을 하지만 이면에는 세상 잡 배만도 못한 인간으로 보였기 때문...??실화 임. 그 결과물이 지금 나타나. 지금 어떤가요?? 중형교회 대형교회 목사를 두고 뒤엉켜 싸움질 내가 다닌교회만2군데 임..권사 장로 목사 이건 뭐 오일장 배추장수만도 못한 행동으로 ... 총회 재판 등 등 뇌물..기가참. 이분들 과연 성경공부를 안해 서 아님..믿음과 주님의 십자가로 몸소 보여주신 행함이없기 때문 임. 말로는 바울선생을 존경한다 지만..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도 값없이 전하고(상) 위하여...지금 먹사들 직업란 에 목사를 쓰고...ㅋ 바울을 존경???? 꿑으로 사람이 교회라는것. 몬2 참고 해. 콘크리트 가 교회가 아니라늦것. (먹사배출 신학교 문 많이닫길바람.)
@드림허2 ай бұрын
약간은 너무 사변적이며 교 리적인 논리비약이 느껴 지네요 그냥 편하게 들어도 될 문제 인 것 같은데요.. 이 분 얘기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은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