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건축가나 다른 나라 지도자들의 지탄의 글들이나 영상 자료들이 남아 있을까요? 어떻게 표현 되고 기록이 되어 있는지 문서가 남아 있다면 보고 싶네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강용석-l9fАй бұрын
근데 이런건 어떻게 알수 있는걸까요? 관련 자료가 남아 있는게 있나요?
@agm11444 ай бұрын
경복궁을 수비하던 병력은 시위대였지 훈련대가 아니였습니다. 훈련대는 일본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부대란 이유로 배척당해 이미 해산하기로 결정되어 있었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시위대를 만들어 이들에게 궁궐 방어를 전담토록 했었습니다. 사변 당시 경복궁에는 시위대 1개 대대가 배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그토록 무기력하게 무너졌을까? 그것은 그들의 부실한 속사정 때문입니다. 훈련대는 일본의 지원하에 충분한 무기를 보유하고 잘 훈련되어있었던 것에 반해, 창설된지 얼마 안되는 시위대는 훈련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무기 부족이 심각했습니다. 훈련대와 달리 일본이나 다른 열강들의 도움 없이 조선 조정의 자금만으로 양성된 부대였습니다. 총기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탄약 부족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시위대가 사용하는 무기 상당수는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할 때 일본군에게 빼앗기지 않을려고 경회루 앞 연못에 투기해버렸던 무기들을 수거해서 수리한 것들입니다. 총기는 어떻게 수리해서 쓴다고 해도 탄약은 다시 건져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훈련대의 탄약을 시위대에 보태도록 하면 되지 않았겠느냐 싶겠지만 당시 훈련대는 일본으로부터 제공받은 무라타13식 소총을 쓰고 있었고, 시위대가 사용한 소총은 레밍턴 롤링블록이라 탄약이 서로 호환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도 레밍턴 롤링블록은 이제 구식이라서 지방 군영에서나 쓰고 있었고 경군은 마우저를 사용하던 추세였습니다. 일본의 입김으로 무라타13식을 도입하기도 했구요. 한양 한가운데서 복무하는 시위대로선 레밍턴 롤링블록에 사용할 탄약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이리저리 부족한 탄약을 수집해봤지만 1개 대대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탄약을 지급해줄 수 없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광화문 일대에서 얼마간 교전을 벌이고 나서 시위대의 탄약은 고갈되었고, 전의를 상실한 시위대 병사들은 훈련대를 피해 달아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모아라-m5c4 ай бұрын
나라가 힘이 없으면 이렇게 치욕을 당한다!
@cijjeehh23024 ай бұрын
그래서 민비 살아있는 조선시대 vs 일제시대 어디를 살래? ㅋㅋ
@이선화-z4w1l3 ай бұрын
어디에도 안살고 헌대를 살지 지도자를 잘 만나 경제대국 군사대국이 된 대한민국에
@cijjeehh23023 ай бұрын
@@이선화-z4w1l 당연하지, 근데 선택해여한하면?
@Allin7daysАй бұрын
@@cijjeehh2302 민비가 뭐냐? 쪽바리인가?
@hmjeon860924 күн бұрын
명성황후 시해에서 우범선의 역할은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네. 훈련대 2대대장이고 그가 훈련대를 동원했다고 하는데 몇명 동원한건가? 경복궁 수비는 몇명이었기에 일본 낭인들(한 10명?)에게 뚫리나? 우범선은 대원군에 의해 가담하게 된 것은 아닌가?
@레이오트4 ай бұрын
민비는, 댕같이 죽어 마땅한 인물이죠.
@정승헌-h1y4 ай бұрын
명성황후살해로 이익을 본건 일본과 친일파 뿐들 그 들 만 이익을 봐습니다.
@서동연-o3l4 ай бұрын
죽어 마땅하다고 해도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조선이 망국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해도 일국의 왕비가 시해 당한 사건이 쉽게 치부되서는 안되지 않을까요,
@지금부터는제가정-p3y4 ай бұрын
@@서동연-o3l 자업자득이죠. 부정부패때문에 일어난 민란을 진압하려고 청나라 끌어들여서 개같이 망한건데 누굴 원망해요
@gammalee26854 ай бұрын
패도 우리가 패야지? 아무리 사이 나쁜 형제라도 어서 줘터지고 오면 기분 안좋잖아.
@지금부터는제가정-p3y4 ай бұрын
@@gammalee2685 그니까 그 원인을 민비가 자초한거라고.. 애초에 부정부패로 인해 발생한 국내 봉기를 진압하려고 왜 외국 군인을 끌어들임?? 그거 자체가 내정간섭 해주세요, 나 죽여주세요 인데?? 군사 동맹도 아니고 대놓고 내정간섭해주세요. 할 말이 있나??
@이창섭-g5w4 ай бұрын
악비 중에 악비 민비
@Allin7daysАй бұрын
친일후손?
@one-h4m4z4 ай бұрын
형 나는 이 콘텐츠가 더 재밌다
@손석훈-d3f4 ай бұрын
민비가 임오군란때 뒈졌으면 저렇게 처참히 죽지는 않았겠죠?
@nannayaa124 ай бұрын
계속 낭인사무라이라고 하시는데 잘못된 표현입니다. 그들은 낭인사무라이가 아니였고 실제 신분은 기자, 대학생, 군인 등으로 이루어진 우익집단들이었을 뿐 입니다. 그리고 을미사변이 미우라의 단독 행동인것처럼 이야기 하시는데 그것 역시 잘못된 내용입니다. 미우라는 을미사변의 실행자였을뿐 그것의 기획자는 일본 정부였는데 왜 축소해서 이야기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에르브4 ай бұрын
죠수번정한론자(미우라고로)심복이랑구마모토번(국권당당수)심복이 주도했음 물론 일본정부의 암묵적인 묵인하에 진행시킨것임 그리고 암살에 개입한 낭인들은 대부분이 지식인들임 그들실체가 군인이랑 동경대출신에 하버드유학까지다녀온 고학력자들이 많았음
@매니아썬4 ай бұрын
❤❤❤
@deborahpark4303 ай бұрын
죽어도 우리 나라 사람이 했어야 했는데
@코도사냥꾼4 ай бұрын
거 민비라고 합시다
@Allin7daysАй бұрын
ㅉㅂㄹ?
@손뭐Ай бұрын
고종 멋지다 ... 지만 살면돼
@나이스맨-p3u4 ай бұрын
임오군란때 사건이 터졌어야해. ㅜㅜ
@푸른다3 ай бұрын
일본이 유일하게 잘한일....민비죽인것
@Allin7daysАй бұрын
ㅉㅂㄹ ㅆㄲ...
@파파-b3d4 ай бұрын
결국은 조선의 군사력이 몇 수십명 낭인들한테도 당하는 수준였다는 것이죠. 물론 조선팔도의 병력 수는 어느 정도있었겠지만. 모두 각자도생 방식이고 나라의 안위 및 통치자를 지킬 맘은 없었다는 것인 거죠. 그 결과 몇 십명한테도 수도 핵심 지역이 털리는 것.
@ysinah3614 ай бұрын
능욕이란..성적인 행동..여자를 강간하여 욕보임...
@윤기현-n6n4 ай бұрын
명성황후는 개뿔 고종이 황제냐?
@나이스맨-p3u4 ай бұрын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가 되면서 황후로 승격시켰단다. 공부좀 하고 글좀 올려. 대한제국은 요즘 초딩도 안단다
@나이스맨-p3u4 ай бұрын
대한제국은 알고있냐? 고종이 황제가 된거 몰라? 그때 민비도 황후로 승격된단다.
@cijjeehh23023 ай бұрын
@@나이스맨-p3u 격이 있죠. 내가 지금 황제라 칭해도 누가 알아줘요? 고종민비도 마찬가지
@Allin7daysАй бұрын
@@cijjeehh2302 ㅉㅂㄹ? 당시 호칭이 그거라 칭하는 것. 누가 알아주나가 역사를 바꾸진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