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 제국' 역사 400년 톺아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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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선생의 역사공장

두선생의 역사공장

Күн бұрын

참고도서
실크로드 사전 (정수일, 2013, 창비)
유라시아 역사 기행 (강인욱, 2015, 민음사)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김호동, 2021, 사계절)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이형구, 2012, 새녘출판사)
유목민 이야기 (김종래, 2005, 꿈엔들)
두산백과 두피디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00:00 계승자
02:06 [01] 흉노의 기원 (feat. 사마천)
04:52 [02] 흉노 제국의 전성기 (feat. 유방)
09:55 [03] 흉노 제국의 쇠퇴 (feat. 왕소군)
14:31 [04] 흉노와 훈족의 관계 (feat. 절충안)
17:12 [05] 신라 경주 김씨의 흉노기원설
22:49 흉노의 역사적 의미 (feat. 단군)

Пікірлер: 796
@user-ux4bi1ge1w
@user-ux4bi1ge1w Жыл бұрын
참고용 지도는 동북공정용 지도이네용 기존 흔히 인식한 만리장성은 산해관이 끝인데 그것도 명나라때 만들어지고 완성되었다는게 기존인식이고 진나라시기 장성은 토성으로 지금의 북경쪽이 아니라 오르도스쪽을 막았던거구 차후 왕조들이 차츰 연결시키고 완성한건데 저 지도는 동북공정에서 사용하는 백두산 밑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자료에 이용되는 거네요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 жыл бұрын
스키타이 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여러 부족들과 이합집산 하면서 중국 북쪽에 도달했을때 흉노족이 된것이고, 그 흉노족이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여러 부족들과 이합집산 하면서 유럽에 도달했을때 훈족이 된것이죠. 그러니 같으면서도 다를 수 밖에 없는것이죠.
@j3459
@j3459 2 жыл бұрын
아틸라가 박혁거세 자손입니다 성이 박씨입니다. 훈족이라고 두리뭉실말하는데 훈족이 한족(한민족) 우리민족이란말입니다 중국한족을 말하는거 아닙니다 그리고 게세르칸 박혁거세를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공감합니다.
@candleproducer
@candleproducer 2 жыл бұрын
그렇죠. 이합집산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 жыл бұрын
@@j3459 한나라 가 흉노족과 고조선을 별개로 봤기때문에, 흉노족이 한민족 이란건 말이 안되는 소리. 기록이 부족하지만, 흉노족이 고조선을 복속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한나라가 고조선이 흉노족의 왼팔 이라고 한것이겠죠. 흉노족과 고조선 과의 관계가 어땠는지는 알기 어렵고. 또 동호=고조선과 몇몇주변 부족들 일 가능성이 높고.
@user-tj7ht7sp3n
@user-tj7ht7sp3n 2 жыл бұрын
@@davidjacobs8558 고조선은 흉노의 속국이었고 그 내용은 사기에서도 나오기 때문에 부정이 될 수는 없음. 신라인들이 고조선을 시조로 삼는 역사를 보면 피꺼솟한다는 이야기임. 자기들 속국을 주인으로 모시는 역사관을 신라의 조상들이 받아들이겠냐라는것. 그래서 조선사관을 분쇄시켜야 한다는거임.
@user-dr3cj3hk3z
@user-dr3cj3hk3z 2 жыл бұрын
혼자 책읽고 이정도 요약하려면 어마어마한 분량을 단번에 요약해 버리네요 또한번 더 들어서는 절대 머리 남지 않습니다~^^ 감탄하고 감사하고 복습 잘 했습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부족한 영상 재밌게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mihyangha9718
@mihyangha9718 Жыл бұрын
재밌고 유익한 강의 항상 감사합니다
@user-iq6el7je8r
@user-iq6el7je8r 2 жыл бұрын
오랜만에 올라온 두선생 역사이야기, 많이 유익한 우리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보는 이야기..감사하고 또 대단합니다. 널리 알려지기를 빌고 또 기대 할께요...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격려 감사합니다. 저도 더 좋은 역사 이야기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alsweet7
@realsweet7 2 жыл бұрын
진짜 쉅게 재미있게 거부감없는 강의 잘보고 있습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user-px6dn9qz1j
@user-px6dn9qz1j 2 жыл бұрын
강의도 그렇고 지도는 중공 놈들이 만든 동북공정 지도를 사용하면 곤란합니다. 연나라가 언제 발해만 쪽까지 나왔습니까? 저들이 쓴 열국지 지도에도 연나라가 산해관을 넘은 적이 없는데, 최근 중공 놈들이 만든 지도를 사용하면 안되지요~! 열국지 지도도 믿을 수 없는 영토 확장인데~!
@jlee5401
@jlee5401 2 жыл бұрын
고고학에선 기원전 3세기경부터 천산산맥 서쪽 요동지역은 확식히 연나라가 먹었다고 보는데요
@user-px6dn9qz1j
@user-px6dn9qz1j 2 жыл бұрын
@@jlee5401 어느 나라 고고학자가 그렇게 주장하는지 논문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요가 이디인지 정확히 알고 계신지도 알려주시고요. 그 당시 연나라가 황하 이북을 침범한 기록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user-kt2ep3lt1q
@user-kt2ep3lt1q 2 жыл бұрын
@@jlee5401 여기서의 요동은 지금의 요동이 결코 아닙니다. 10세기경 遙나라 이후에 지금의 요하가 생기며 지금의 요동도 나타납니다. 고대 요동은 영정하에서 난하 사이로 남쪽의 燕(偃)이 밀고 올라와 점차 난하에 도달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난하 동쪽 갈석산 인근 산해관(옛 고죽국)에는 위만조선(낙랑 왕험성)이 있었습니다. 대릉하 바로 서쪽에는 진번조선(진한)이 있었고, 낙랑과 진번 사이에는 임둔(조선)이 있었구요. 이들이 BC109년에 한사군이 됩니다. 또 단군조선은 위만조선 북쪽 상곡을 경계로 한 東胡(예맥조선)로 흉노에 밀려 선비와 烏桓으로 나뉘고 이 오환의 일부가 동쪽으로 가서 辰國(진한)이 됩니다. 그리고 기자나 위만은 중국인이 아닙니다. 漢族은 BC2세기경에 나타나며 지배층은 漢族이라도 주민은 동이족(韓)이었습니다. 그들이 위만조선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들이 나중에 최씨 낙랑국 유민과 함께 사로6부가 됩니다. 박혁거세는 辰國(진한)사람으로 단군조선의 정통입니다.
@jlee5401
@jlee5401 2 жыл бұрын
@@user-kt2ep3lt1q 고대사는 워낙 기록이 적고 특히 고조선은 스스로 남긴 기록도 없고 진나라가 연나라 사서를 불살라서 연나라도 기록이 부실하기 때문에 고고학을 기준으로 볼 수 밖에 없음.기원전 4세기 즈음부터 중국 청동기 양식이 천산산맥 서쪽 요하유역에서 굉장히 많은 수가 확인되고 있어서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요동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연나라한테 2000리의 영토를 잃은 것이 인정되는 것이지 고고학적 증거가 없이 중국측에 그런 기록만 있으면 인정되지 않음. 그와 동시에 한반도에선 저 시기부터 요동식 토기 및 청동기가 한반도 전역에서 급격하게 늘어나서 많은 고조선인들이 전쟁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대게 마한계통의 성읍국가들이 저 시기부터 이주해온 고조선계 유민들이 세운 성읍국가구요. 요동반도 전역을 연나라가 장악한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연나라 양식의 청동기가 요동에 계속 확장되는 모습이 확인 되기 때문에 연나라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넓히고 있던 것으로 보이구요. 님이 말하고 있는 건 유사역사학자들의 상상의 영역임. 한4군 중 다른 군은 확실하지 않지만 낙랑군은 평양일대에 존재한 것이 사실상 확실한 상황이구요.평양 시내에서 수천기 이상의 중국식 목곽묘가 지금도 계속 발견되고 있어서 국뽕 사학자들만 있는 북한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임. 기자조선에 관해선 존재 자체를 학국 사학계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구요.위만은 정황상 연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 피난가지 않고 연나라 지배하에 놓여져 살던 요동지역의 조선인이였을 거구요. 낙랑군이 평안도 지역에 있었던 것이 확실하니 낙랑,진번,임둔도 그 근처에 있는 것이 당연하죠.애초에 고조선이 고대국가로서 어느 정도 레벨의 국가에 도달했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요서지역은 당시에도 이미 사막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해안지역은 갈대와 늪으로 무성한 지역이고 강수량이 매우 적은 지역이라 한국인의 조상들이 신석기시대 거쳐지나온 곳일 뿐임. 동이족이라는 표현을 쓰시는 것부터 동이의 개념 조차 안잡혀있으신 것 같은데 님 말대로면 자신들은 동이가 아니고 신라는 동이라고 여긴 고구려는 예맥계가 아니라 중국인이겠네요.
@user-kt2ep3lt1q
@user-kt2ep3lt1q 2 жыл бұрын
@@jlee5401 1. 우선 고조선과 연나라 기록이 없다고 하셨는데, 사기 소진열전에 "(BC334년경) 燕나라는 동쪽으로 朝鮮(위만조선)과 요동-가까운 곳이 요동, 북쪽으로 임호와 누번, 서쪽으로 운중과 구원, 남쪽으로 역수(易水)가 있다"고 했습니다. 모두 오늘날 베이징(燕京)을 둘러싼 지역입니다. 2. BC4세기경부터 중국 청동기 양식이 요하유역에서 확인되므로 燕나라에 2000리를 잃은 것이 인정된다고 하셨습니다. 우선 중국식 청동기 양식이 무엇인가요? 지금의 요서지역에는 殷나라 기자의 후예와 燕나라 사람 위만이 와서 조선을 세웠습니다. 조선상 역계경이 동쪽 진국으로 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들의 유물이 중국식 청동기인가요? 그리고 중국이 무엇입니까? 漢나라 사마천이 만든 華夏族인가요? 漢族인가요? 漢나라는 BC202년에 세워집니다. 그 이전에 중국이란 나라는 없었습니다. 東夷族이 흩어져 살던 땅입니다. 이를 燕나라의 식민지라고 하신다면 오늘날 한국에서 일제나 미제 제품이 발견되므로 대한민국은 그들의 영토입니까? 3. 유사학자들의 상상력? 역사 해석은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님은 강단, 식민사학이라는 용어를 원하시나요? 저는 싫습니다. 이제는 모두 협력해야 합니다.
@sformld
@sformld 2 жыл бұрын
신라의 경주 김씨는 흉노의 후손일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신라시대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면 중앙아시아 유목 민족들과 문화적으로 비슷하고 닮은 것들이 많이 나왔지요 신라가 유목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였다고 보는게 맞을 듯
@griffithbalt9632
@griffithbalt9632 2 жыл бұрын
유독 왕실유물이 흉노와 거의 비슷하고 또 고대사 유물이 전부 북방유물이 많음 뭐 알다시피 고조선도 북방인이고 당연히 북방인이 조상임 100프로 맞지만 기록이 없다는것인데 문제는 엣날 기록책은 거의 절반이 구라라는 사실
@sformld
@sformld 2 жыл бұрын
@@griffithbalt9632 삼국사기 삼국유사 모두 사대주의 관점에서 쓴 역사책이니 그럴 수 밖에...
@jlee5401
@jlee5401 2 жыл бұрын
@@sformld 삼국사기가 어떻게 사대주의자가 쓴 기록임 ㅋㅋㅋ 삼국사기 한번도 안읽어봤죠? 중국 위주의 편협한 기록을 비판하고 억지로 국뽕짜내고 세나라 모두 황제에게만 붙이는 본기라고 달아서 송나라황제한테까지 보냈는데 ㅋㅋㅋ
@sformld
@sformld 2 жыл бұрын
@@jlee5401 얘야... 니가 아는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란다 ㅎㅎㅎ
@jlee5401
@jlee5401 2 жыл бұрын
아직도 이 역사왜곡 믿는 사람들이 많네요..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가 고구려 속국이던 시절이라 고구려의 돌무지무덤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게 정설이고 유목민영향 받은 출토물은 당시 신라뿐 아니라 가야나 백제에서도 나오고 유목민한테 양자강으로 쫓겨난 한족왕조 고분에서도 출토됨.교류가 있었으니 당연히 관련 사치품이 나오죠. 신라는 공식적으로 고조선유민 이 세운 국가임을 밝혀왔고 고고학적으로도 평안도식 청동기등의 부장품이 출토되어와서 문헌상으로도 고고학적으로도 완벽한 고조선계통 집단임
@MrParkcool017
@MrParkcool017 Жыл бұрын
스스로가 직접 무덤 비문에 흉노 출신이자 한무제 때의 대신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적어놨는데 그걸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좀 웃김…. 승조사업을 할 거라면 적어도 해모수나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거나 해야 하는 거 아닌지?
@user-zu5rq9jt2e
@user-zu5rq9jt2e Жыл бұрын
균형접힌 강의 정말 감사합니다 딕션이 좋아 듣기가 좋네요. 구독 좋아요 누르고 앞으로도 많이 배우겠습니다
@user-yf4tr4gn6g
@user-yf4tr4gn6g 2 жыл бұрын
수준 높고 깊이 있는 강의 입니다 참 좋습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부족한 영상 알차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gamblerrisky4708
@gamblerrisky4708 2 жыл бұрын
많이 배우고 갑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sangjinkim567
@sangjinkim567 Жыл бұрын
신라성립시기에 내려온 부족의 유물은 스키타이유물과 상당히 유사성이 있는 걸로 알고 이습니다.
@leedinggoo4350
@leedinggoo4350 Жыл бұрын
경주지역 민족 중 토착민과 다른 민족이 꽤 된다 우리집안도 그러하고 경주 특정지역은 페르시아 혼혈이 집단 거주한 지역도 있는데 일반인은 알턱이 없고 책만 달 달 외워제낀새낀 탁상공론의 패책론에 쉽게 빠져 있지 기록물이 없는 고로 보는 시각이 한정도 있기에
@june_joy
@june_joy Жыл бұрын
흉노와 훈의 관계를 절충적으로 설명해낸것 👍
@user-cw6ur3zd2y
@user-cw6ur3zd2y 2 жыл бұрын
매불쇼 출연 잘봤어요 ^^ 예전에 몇 번 봤었는데 이번에 구독해요 매불쇼에서도 자주 봤으면 좋겠어요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아이고ㅜ.ㅜ 많은 분들 앞에서 라이브 영상을 하려다보니 많이 떨렸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다음에 또 뵈어요~~!
@user-xm6dn7zl2c
@user-xm6dn7zl2c 2 ай бұрын
매불쇼.나오는 사람은 거르는 것이 진리!
@user-pd1ju5oi9t
@user-pd1ju5oi9t 2 жыл бұрын
매우 좋은 강의입니다. 고맙습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재밌게 봐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user-mm3cb3ng1g
@user-mm3cb3ng1g Жыл бұрын
교수님좋은강의멋저요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Жыл бұрын
교수는 아니지만,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david_j9436
@david_j9436 Жыл бұрын
역사스페셜에선 동복, 금관 등 유사한 생활양식의 증거가 더 많이 나왔었죠. 단일민족+한반도 중심 사관자들이 믿고 싶지않은 대목이겠지만, 훨씬 더 설득력있다고 봅니다.
@lowbudgettravel2148
@lowbudgettravel2148 2 жыл бұрын
다소 어려운 내용같은데 깔끔하게 정리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두강생중 두린이인 저에겐 최소 재재재수강각입니다ㅠ 감사합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아이고... 잘 모르는 분들도 편하게 시청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는데 조금 어렵나 보네요. 앞으로는 조금 더 쉽게..ㅜ.ㅜ 주무시면서 편하게 들어주셔요:)
@lowbudgettravel2148
@lowbudgettravel2148 2 жыл бұрын
@@두선생의역사공장 아닙니나~~제가 무지해서요. 수준차가나는 두강생이라 더욱 수강잘해보겠습니다!! 제말은 무시해주세요~~ㅠ괘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TV-DOCJON
@TV-DOCJON 2 жыл бұрын
흉노는 투르크계의 조상+몽골계의 조상+호의 조상 +시베리아 조상+기타의 혼합체죠. 역으로 따지면 어렵죠
@jipark_2373
@jipark_2373 2 жыл бұрын
(( 몇가지 잘못 알고 계신점이 있는것 같아 글을 올립니다 )).... 신라 시조였던 박혁거세 역시 외부에서 이동하여 온 세력이었습니다.. 당시 경주지역 사로 6촌의 사람들은 고조선 유민이었으므로 외부에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많았죠.. 삼국유사 시조설화에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나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북부여 천제 고두막한(단군조선 마지막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고 당시 고조선 유민들을 모아 한나라에 대항하고 북부여 해부루를 쫓아내어 동부여로 옮기게 한 사람이며 조선유민들로부터 동명성왕이라고 불리워진 인물입니다)의 딸인 파소였고 북부여 공주였던 파소는 미혼모로서 왕실에서 쫓겨나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하여 경주 지역에서 박혁거세를 낳게된 것이죠.. 고조선 유민이었던 사로6촌의 촌장들은 파소가 단군조선을 이은 북부여 고두막한 천제의 딸이었으므로 그녀의 아들인 혁거세를 신라의 왕으로 추대한 것입니다... 박혁거세의 왕호는 거서간이었으므로 초대왕부터 신라는 간(가한, 칸)이라는 왕호를 사용했습니다..가한은 단군조선시대 제후왕의 호칭이었습니다.. 유목민들의 왕호에 칸이라는 명칭이 나타나는 것은 수천년전 단군조선 시기부터 동북아 유목민들이 단군조선에 정치,종교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일수도 있습니다... 한무제가 멸망시킨 고조선은 고조선이 아닙니다... 위만조선이죠... 위만조선은 쿠데타로 번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워진 나라입니다... 나라이름은 조선으로 유지했으나 이민족 연나라의 위만이 세운 쿠데타 정권이므로 실질적으로 조선으로 볼수 없습니다... 위만의 손자인 우거에 이르러 위만조선이 멸망한 것도 한무제에게 군사적으로 패한것이 아니라 신하였던 조선인들에게 우거가 죽임을 당하고 한나라에 항복하였던 것이죠... 단군조선(고조선)에 대한 우리 역사서를 읽어보기를 권해드립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정도는 읽고 동북아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이 고대에 어떠했는지 올바른 이해를 가지기 바랍니다 ... (흉노 김일제가 신라김씨의 조상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왕의 비문에 자신의 족보를 새기는데 있어 조상을 팔아먹는 왕은 없습니다.. 왕가를 떠받들기 위해 공신들이 신화를 만드는 경우는 있으나 왕 스스로가 자신의 족보를 허위로 만들어 비문에 새기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또한 당시 흉노 김일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고 한나라에서는 김일제의 후손들이 왕망과 함께 신나라를 세워 한나라의 역적으로 처단되었고 일부가 한반도로 망명을 온것입니다... 신라김씨왕가가 흉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흉노 반대론자들의 억척스런 근거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남겨주신 댓글들 열심히 읽었습니다. 아직 부족한 지식 열심히 채워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jipark_2373
@jipark_2373 2 жыл бұрын
@@두선생의역사공장 매번 유익하고 재미있는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zt4iy2su5j
@user-zt4iy2su5j 2 жыл бұрын
@@jipark_2373 선생님이라 부를께요 근데 이게 유튜브에 떠든다고 됄일이 아닙니다 교과서가 바껴야 됍니다,
@user-te2fs4pl6v
@user-te2fs4pl6v 2 жыл бұрын
휴저왕(休屠王)[1]은 흉노 이치사 선우 때의 번왕이다. 반고(班固)가 쓴 《한서(漢書)》 권68의 곽광김일제전(霍光金日磾傳)에 따르면, 휴저왕은 번왕, 즉 제후 겸 장군이었다. 이치사 선우는 휴저왕과 혼야왕이 한나라와 전쟁에서 계속 패배하자 이들을 소환하여 사형으로 그 죄를 물으려 하였다. 이에 혼야왕은 휴저왕을 설득하여 한나라에 투항하려 하였으나, 휴저왕이 결정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휴저왕을 살해하고 곽거병에게 투항하였다. 이 때 휴저왕의 부인인 알지(閼氏)와 장남 일제, 차남 윤이 한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 휴저왕은 금인(金人)을 가지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 일에서 비롯하여 자신의 장남인 김일제가 한나라 무제로부터 김(金)씨의 성을 하사받았다. 여기서 김일제가 경주김 시조, 김윤이 김해김 시조
@user-ee3bw5yt2t
@user-ee3bw5yt2t Жыл бұрын
흉노라는 명칭과 그 묘사도, 이를 싫어하는 중국측의 기록과 관점일 뿐입니다. 여기에 의존하는 것부터, 크게 잘못된 것 같습니다.
@changseokhan4628
@changseokhan4628 2 жыл бұрын
질봤습니다 재밌네요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부족한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user-lv8zu2lw2e
@user-lv8zu2lw2e 2 жыл бұрын
우린 기마민족의 피가 많이 섞여 있어요 민요가 3박자 계통의 노래가 대부분입니다 고대 선사 시대부터 역사시대 긴 세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생 살동안 따가닥 따가닥 말발굽 박자 속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3박자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리랑 도라지 타령 한오백년 등 거의 3박자 계통의 노래가 대부분입니다
@kirayamato8309
@kirayamato8309 Жыл бұрын
대다수가 토착민이며 소수의 북방계가 유입되어 지배계층이 되었다는게 정설 입니다 토착민의 세력권은 한반도 및 남만주와 요서 요동 아무르 지역인데 이 곳은 O2b 분포도와 빗살무늬토기 출토 지역과 일치합니다
@user-lv8zu2lw2e
@user-lv8zu2lw2e Жыл бұрын
​@@kirayamato8309우리민족의 혈통은 3집단으로 분류 되는데 북방계 남방계 중서계로 나누어 집니다 북방계는 유목민계열로 얼굴의 이목구비가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이목구비가 작아 정주영씨 같은 얼굴이며 남방계의 대표적 얼굴은 포철을 세운 박태준 씨이며 중서계는 중국에서 이주하여 온 사람들로서 얼굴 모양이 눈매 사이가 가까운 특징이 있습니다 한반도에 혼혈집단이 되어 우리민족의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반도국가라 여러곳에서 들어온 기록이 있습니다
@user-tu9yj8vt4j
@user-tu9yj8vt4j Жыл бұрын
아따 왈츠 쓰던 쇼팽도 우리민족이랑께
@user-ud4rf6kn5j
@user-ud4rf6kn5j 2 жыл бұрын
역사 부전공자로서 한마디, 두선생 유튜브가 역사유튜브 중에서 가장 재밌고 사실적이며 듣고나면 아는척하기에 도움이 많이됨.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과찬이십니다..ㅜ.ㅜ 아직 많이 부족한데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해서 더 좋은 콘텐츠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jinulee7299
@jinulee7299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의 강단사학계는 지금도 그 뿌리가 일제의 식민사관으로부터 연결되어 있어...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user-mb3zq4lo2r
@user-mb3zq4lo2r 2 жыл бұрын
Ride on 매불~~~ ㅎㅎㅎ 예전에 두선생 방송 자주 보다가 매불 나와서 반갑 깜놀!!!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저도 얼떨결에 출연해서 엄청 떨면서 방송했습니다 ㅋㅋㅋ 반갑습니다!.!
@user-sp4wz4jm6u
@user-sp4wz4jm6u 2 жыл бұрын
돌궐,튀르크 역사도 빨리 알려주세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flowerflame2161
@flowerflame2161 2 жыл бұрын
쌤 태블릿 내가먹었습니다ㅋㅋㅋㅋㅋ 재세공과금 6만원 내고 수요일에 택배 받았어요 두강생 덕질 3년만에 최고의 선물이야 짜릿해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세상에나... 진짜 축하드려요! 부럽다ㅠㅠㅠ (참고로 이벤트에는 제가 1도 개입하지 않았습니닼ㅋㅋㅋㅋ)
@flowerflame2161
@flowerflame2161 2 жыл бұрын
재세공과금 입금하라고 010개인번호로 문자오길래 보이스피싱인줄 착각하고 한참을 찾아봤네요ㅋㅋ
@crimecatdog
@crimecatdog 2 жыл бұрын
오오 축하합니다ㅋㅋ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flowerflame2161 아ㅋㅋㅋㅋ 그렇게 오면 진짜 스팸으로 생각할거같네요ㅋㅋㅋ
@eonk5703
@eonk5703 Жыл бұрын
신선한 세계관인데 또 묘하게 설득력이 있으십니다. 많은 부분은 역사적 사실이기도 할것같군요
@hsjeon7071
@hsjeon7071 2 жыл бұрын
평소에 궁금했던 주제인데 정말 흥미롭게 봤습니다! 특히 경주김씨-흉노 관계설에 대한 반론까지 소개해주셔서 더 깊게 생각 해 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jipark_2373
@jipark_2373 2 жыл бұрын
(( 몇가지 잘못 알고 계신점이 있는것 같아 글을 올립니다 )).... 신라 시조였던 박혁거세 역시 외부에서 이동하여 온 세력이었습니다.. 당시 경주지역 사로 6촌의 사람들은 고조선 유민이었으므로 외부에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많았죠.. 삼국유사 시조설화에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나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북부여 천제 고두막한(단군조선 마지막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고 당시 고조선 유민들을 모아 한나라에 대항하고 북부여 해부루를 쫓아내어 동부여로 옮기게 한 사람이며 조선유민들로부터 동명성왕이라고 불리워진 인물입니다)의 딸인 파소였고 북부여 공주였던 파소는 미혼모로서 왕실에서 쫓겨나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하여 경주 지역에서 박혁거세를 낳게된 것이죠.. 고조선 유민이었던 사로6촌의 촌장들은 파소가 단군조선을 이은 북부여 고두막한 천제의 딸이었으므로 그녀의 아들인 혁거세를 신라의 왕으로 추대한 것입니다... 박혁거세의 왕호는 거서간이었으므로 초대왕부터 신라는 간(가한, 칸)이라는 왕호를 사용했습니다..가한은 단군조선시대 제후왕의 호칭이었습니다.. 유목민들의 왕호에 칸이라는 명칭이 나타나는 것은 수천년전 단군조선 시기부터 동북아 유목민들이 단군조선에 정치,종교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일수도 있습니다... 한무제가 멸망시킨 고조선은 고조선이 아닙니다... 위만조선이죠... 위만조선은 쿠데타로 번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워진 나라입니다... 나라이름은 조선으로 유지했으나 이민족 연나라의 위만이 세운 쿠데타 정권이므로 실질적으로 조선으로 볼수 없습니다... 위만의 손자인 우거에 이르러 위만조선이 멸망한 것도 한무제에게 군사적으로 패한것이 아니라 신하였던 조선인들에게 우거가 죽임을 당하고 한나라에 항복하였던 것이죠... 단군조선(고조선)에 대한 우리 역사서를 읽어보기를 권해드립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정도는 읽고 동북아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이 고대에 어떠했는지 올바른 이해를 가지기 바랍니다 ... (흉노 김일제가 신라김씨의 조상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왕의 비문에 자신의 족보를 새기는데 있어 조상을 팔아먹는 왕은 없습니다.. 왕가를 떠받들기 위해 공신들이 신화를 만드는 경우는 있으나 왕 스스로가 자신의 족보를 허위로 만들어 비문에 새기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또한 당시 흉노 김일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고 한나라에서는 김일제의 후손들이 왕망과 함께 신나라를 세워 한나라의 역적으로 처단되었고 일부가 한반도로 망명을 온것입니다... 신라김씨왕가가 흉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흉노 반대론자들의 억척스런 근거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jipark_2373
@jipark_2373 2 жыл бұрын
김일제는 흉노족 우현왕의 아들로 전쟁중에 한나라에 포로로 잡혀서 처음 노예생활을 하다가 한무제의 눈에 들어서 높은 관직을 받게됨.. 김일제의 후손들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과 손을 잡았다가 신나라가 망한후 대부분 처형당하고 일부가 한반도로 망명 온것임... 그들중 일부는 신라땅에서 살고 일부는 남쪽 변한지역으로 가서 가야를 세우게 됨.. 신라 문화와 언어에 동화된후 김알지의 후손중 한명이 신라왕의 사위가 되었고 왕의 후계자가 없어서 김씨 사위가 신라왕에 즉위하게 됨.. 신라 13대 미추왕임.. 그후 세습을 유지하지는 못하였으나 17대 내물왕부터 김씨가 세습을 하게 됨... 신라후기 진성왕, 효공왕 이후 혼란했던 나라를 되살리고자 박씨가 왕이 되나 후백제 견훤이 죽이고 김씨를 다시 허수아비 왕으로 세워서 신라 역사는 끝나게 됨 ... 신라는 흉노 김씨가 말아먹은 나라임... 흉노김씨 왕조의 한민족 고대역사(단군조선, 부여)의 부정으로 인해 민족 역사의 정통성이 끊어진 점이 가장 안타까운 일임... 김씨왕조는 고조선과 부여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역사서를 편찬하지 않았으며 신라 멸망후 고려시대 김부식마저 삼국사기에 고조선과 부여의 역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음... 고구려, 백제의 멸망과 함께 신라 김씨왕조의 역사관은 한민족 고대역사서가 이어져 내려오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임... 물론 좀더 직접적인 원인은 이씨조선 왕조의 사대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으로 인해 수많은 역사서가 소실된게 원인임.. 그러나 신라 김씨왕조의 역사관이 기원전 수천년 배달민족 고대사가 배격된 근본적 원인이라고 봄
@user-vx6he1rc2i
@user-vx6he1rc2i Жыл бұрын
신라는 고조선 부여유민과기존의 토착세력 진나라시황제의 만리장성노역을 피해건너온 6부촌장의 진 나라유민 선우묵돌후손인 김일제 흉노족과 후에 고구려고국원왕 에패해 동해안루트를 따라내려온 흉노의피가섞인 모연선비족이내려와 내물마립간으로 본격적 역사무대등장 대릉원 무덤의 DNA가 흉노족과동일함 신라는 백제고구려와달리 흉노의 피가진함
@lionoosupa2081
@lionoosupa2081 Жыл бұрын
@@두선생의역사공장 책만 달 달 달 달 외운티가 디룩디룩 경주사람들 특징을 알턱이 없지 기술직 아닐경우 절대 알리가 없기땜에 훈족을 평가하기엔 한계가 보인다
@hataway4313
@hataway4313 2 жыл бұрын
태블릿사서 강의 잘 듣고있습니다 알기싑게 강의하셔서 머리에 속속 들어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오...태블릿 너무 좋죠~ 많이 부족한 강의 재밌게 들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gimgankoomg4168
@gimgankoomg4168 2 жыл бұрын
사실 우리들이 북방 유목민과 관련이 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혈통에는 중국과 일본과도 관련이 아주 깊죠. 저도 광산 김씨인 탓에 결국 경주 김씨 후손인데... 그런데 사실 한국 사람들은 누구라도 일정 부분 경주 김씨 피가 흐르겠죠. 하지만 더 넓고 합리적으로 보자면 제 조상중 누군가는 전주 이씨였고, 또 누군가는 밀양 박씨였고, 또 누구는 천씨나 방씨 지씨 축씨 였죠. 그리고 성도 없는 듣보잡 조상님들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누구라도... 그 조상을 따지고 올라가면 수많은 갈래를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뿌리는 모두 섞여 있을 수 밖에 없죠. 결론은 사람들은 모두 잡탕이고 모두 친척이라는 것. 이런 부분도 유전적 계보를 따져서 영상 만드시면 재밌을 듯.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댓글들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ㅎㅎㅎ
@gimgankoomg4168
@gimgankoomg4168 2 жыл бұрын
​@@두선생의역사공장 전형적인 영국인처럼 생긴 왓슨은 동료의 연구를 가로채 dna 발견자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왓슨이 나중에 흑인 비하발언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왓슨 유전자를 분석하니 조상 중 1/3이 흑인으로 추정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발현되지 않고 잠재된 유전자들이었기에 얼굴은 그냥 일반적인 서구인처럼 생겼던 것이죠. 지금 터어키인이나 그리스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들은 돌궐의 후예라거나 혹은 터어키와는 전혀 무관한 그리스인이라고 믿지만, 그들 사이의 유전자들은 극히 가깝죠. 터어키인들은 돌궐인 유전자 보다 오히려 당시 그 지역에 살던 페르시아인의 유전자가 더 많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이전부터 살던 여러 종족들 (히타이트 라던가) 유전자가 다 섞여있을 겁니다. 심지어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쿠르드족의 유전자도 꽤나 섞여있을 겁니다. 그리스가 유럽이라는 이념의 버팀목이기에 온갖 과장이 되지만, 실상 그들 고대 조상들 대부분은 아나톨리아반도에서 농사 짓던 사람들일 겁니다. 왓슨처럼 영국인 혹은 북구인도 그런 혼혈에 대해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리고 애초에 백인 이전에 유럽에는 파란눈을 가진 흑인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그들과 혼혈은 필연적이었을 겁니다. 또 유전자 추적으로 이주의 역사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반도를 타고 유럽으로 쭈욱 올라간 것으로 나오기도 하더군요. 또 영국인들이 페르시아 계통 유목민과 피가 섞였다느니 고대 주석무역을 통해 수메르인과도 관계를 가졌을 거라느니 등 여러 이야기가 있더군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우리 한국인들은 일본인을 싫어하지만 그 일본인과 아주 근연적 관계죠. 그리고 중국인에 대한 증오심과 혐오감은 극에 달하지만 중국에서 대규모 변란이 벌어지면 무리를 지어 한국으로 넘어온 것은 조선시절 기록에도 있었을 정도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과정이었을 것이니, 특정 시점의 조상이 아닌 긴 시간을 통해 보자면 일본보다 오히려 훨씬 많이 혈통적으로 혼혈이 이뤄졌을 겁니다. 물론 북방 유목민도 그렇고요. 이런 연구들은 보통 유전학에 의해 간접적으로 이야기 되는 데 이것들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이념의 역사 (정통성, 정체성, 상상, 이론, 후손 군중의 착각 등)에서 실제 역사를 재구성하고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정 종족 등에 대한 극단적인 인종주의 같은 거의 제노사이드에 가까워지는 야만적 태도와 혐오감을 완화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것 같습니다.
@mercigarden3022
@mercigarden3022 2 жыл бұрын
그림에서 만리장성 우측위치를 중국의 억지주장에 근거한 위치가 아닌 중국 고대 역사서에 언급 및 유적으로 증명된 갈석산지역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유투브 올리시는 분들은 철저히 역사자료에 근거해서 자료 검증이 필요하며 중국의 억지주장자료는 배제를 해야 합니다
@dddk236
@dddk236 3 ай бұрын
통합적 학제적이고 객관적인데다 간명한 설명을 해 주시는 역사학자이시네요 소위 현금의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면서 역사를 역사답게 가르친다는 어처구니 없는 저와 비교됩니다 🎉
@hun226
@hun226 Жыл бұрын
고대사에서 700년은 긴 역사가 아니다. 탱리고도선우(撑犂孤塗單于)의 "撑犂"는 '텡그리'(*tengri)의 음차이며, 흉노어로 '하늘'을 뜻한다. 이 말 탱그리tengri의 어원은 BC 3,000년 이전 수메르의 신(하늘) 을 뜻하는 딩기르(diŋir)에서 나온 말이다. 수메르 역사에는 이 딩기르(diŋir)가 황제에게 쓰이게 된 이유가 나온다. 훈족의 텡그리와 수메르의 딩기르(diŋir)가 2,000년의 시간차가 있다. 700년 격차는 고대사에서 시간도 아니다.
@user-iu2uh7dc7n
@user-iu2uh7dc7n Жыл бұрын
왕가의 무덤에서 유리잔.황금보검.사슴뿔 모양 금관이 출토된걸봐서 흉노의 왕족이 신라를 다스리지않았나 싶네요.
@jinulee7299
@jinulee7299 Жыл бұрын
유리잔은 페르시아 왕족 중 일부가 이슬람세력에게 패망한 뒤 중국을 거쳐 신라로 들어와서 정착하면서 남긴 유물입니다. 처용가의 처용 역시 그때 들어왔던 페르시아인 입니다.
@jung.k
@jung.k Жыл бұрын
문무왕비에 흉노의 후손이라는데 흉노가 다스렸 다느니 주장이라느니 별 개소리가 많네?
@yonghanmo9178
@yonghanmo9178 Жыл бұрын
신라인이 흉노의 후손이라는 움직일수 없는 증거가 있는데도 10원 짜리 엽전 유튜버가 그 사실을 부정하네. 그럼 자신이 있으면 논문을 발표하든가.
@KAMI7632
@KAMI7632 3 ай бұрын
​@@yonghanmo9178닌 무슨근거로 그러는데? 유튜버가 거짓말 하냐? 어떤 근거로 말하는거고 넌 그 반대인걸 보고 말하는건데 둘 다 맞을수도 아닐수도 있는건데 너가 알고있는거랑 반대면 10원짜리 헛소리냐? 넌 내생각 반대인데 한냥짜리 개소리로 들리는데?
@Qwerttdfh
@Qwerttdfh 3 ай бұрын
골품제도 지배족이 피지배족과 다르다는걸 설명함
@lllIlIllI
@lllIlIllI 2 жыл бұрын
진짜재밋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ㅜ.ㅜ
@saranghaja
@saranghaja 2 жыл бұрын
*흉노는 단일민족의 국가가 아니라 북방 유목민 계통의 수많은 부족들이 연합해서 만든 제국입니다*
@saranghaja
@saranghaja Жыл бұрын
@@user-ho6jj4zh747f 흉노가 유럽에 진출하죠.
@saranghaja
@saranghaja Жыл бұрын
@@user-ho6jj4zh747f 아닙니다. 원래부터 몽골초원에서 살던 주역들인데 한무제때에 망해서 유럽으로 진출해 나갑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는 아시아 민족들이고 유럽계가 아닙니다.
@saranghaja
@saranghaja Жыл бұрын
@@user-ho6jj4zh747f 몽골은 그 후에 나온거죠. 흉노는 고조선 후에 그 몽골초원을 지배하던 민족이라는 말입니다. 즉 오늘의 몽골 초원이라는 말이지 그 당시에는 몽골이라는 말이 없었죠.
@saranghaja
@saranghaja Жыл бұрын
@@user-ho6jj4zh747f 중앙아시아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 5개국을 말합니다. 아시아의 가장 중심을 중앙아시아라고 착각하시나 본데 러시아 연방의 투자자치공화국 수도 크즐이라는 도시에 가면 아시아 중심 기념비가 있습니다. 그 크질 이북이 바로 대초원이고 그걸 몽골초원이라고 요즘 말합니다.
@user-ho6jj4zh747f
@user-ho6jj4zh747f Жыл бұрын
@@saranghaja 아리아계통입니다몽골엄청좋아하세요
@shim2517
@shim2517 2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정착문명과 기마민족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민족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점이 아니라 놀라운 장점이라 생각이 듭니다. 신라는 확실히 스키타이 많은 유물들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신라는 서양과 더 깊은 관계가 있지 않을 까요?
@user-vd6fp5gq9q
@user-vd6fp5gq9q 2 жыл бұрын
스키타이 유물? 예를 들어주셩
@shim2517
@shim2517 2 жыл бұрын
@@user-vd6fp5gq9q 신라왕릉의 상감구슬, 장신구, 황금보검, 로만글라스, (코발트블루 유리구술)마노제 굽은 구술, 등 로마와 카작스탄...의 국가에서 만들어진 유물드이 많이 출도 되었습니다. 구굴에서 찾아보면 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lalago7496
@lalago7496 Жыл бұрын
고구려의 운조(雲祖)는,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 ★ 高句麗가 高氏의 姓을 使用하게 된 것은 高陽氏로부터라는 說이 있고 또한 高辛氏라는 說이 있다. ◇ 三國史記 高句麗本紀 19代 廣開土王 17年 3月의 記錄에는 고구려가 고양씨(高陽氏)로부터 내려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十七年 春三月, 遣使北燕, 且敍宗族, 北燕王雲遣侍御史李拔之, 雲祖父高和句麗之屬, 自云高陽氏之苗裔』 17년 봄 3월에 북연(北燕)에 使臣을 파견하여 종족의 예를 베풀었다. 북연의 왕 雲도 시어사 이발을 보내어 답례했다. 운의 조부 고화(高和)는 고구려에 속한다고 여겨, 스스로 말하기를 고양씨(高陽氏)의 후예라고 했다.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B.C.2554년)씨는 황제(黃帝)의 손자이다.
@nguoidancamau6112
@nguoidancamau6112 2 жыл бұрын
무녕왕릉의 비석 김씨 부인의 비석에 써 있는 기록을 부정한다면 광개토대왕의 비석 해석의 정당성을 어떻게 주장할 것인가? 역사 연구하는 학자들의 일관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군요. 지금은 비석에 써 있는 대로 역사를 역사를 인정하고 혹여 더 막강한 증거가 나온다면 그 관점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의 자세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jipark_2373
@jipark_2373 2 жыл бұрын
맞음
@jipark_2373
@jipark_2373 2 жыл бұрын
김일제는 흉노족 우현왕의 아들로 전쟁중에 한나라에 포로로 잡혀서 처음 노예생활을 하다가 한무제의 눈에 들어서 높은 관직을 받게됨.. 김일제의 후손들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과 손을 잡았다가 신나라가 망한후 대부분 처형당하고 일부가 한반도로 망명 온것임... 그들중 일부는 신라땅에서 살고 일부는 남쪽 변한지역으로 가서 가야를 세우게 됨.. 신라 문화와 언어에 동화된후 김알지의 후손중 한명이 신라왕의 사위가 되었고 왕의 후손이 없어서 김씨 사위가 신라왕에 즉위하게 됨.. 신라 13대 미추왕임.. 그후 세습을 유지하지는 못하였으나 17대 내물왕부터 김씨가 세습을 유지하게 됨... 신라후기 진성왕, 효공왕 이후 혼란했던 나라를 되살리고자 박씨가 왕이 되나 후백제 견훤이 죽이고 김씨를 다시 허수아비 왕으로 세워서 신라 역사는 끝나게 됨 ... 신라는 흉노 김씨가 말아먹은 나라임... 흉노김씨 왕조의 한민족 고대역사(단군조선, 부여)의 부정으로 인해 민족 역사의 정통성이 끊어진 점이 가장 안타까운 일임... 김씨왕조는 고조선과 부여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역사서를 편찬하지 않았으며 신라 멸망후 고려시대 김부식마저 삼국사기에 고조선과 부여의 역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음... 고구려, 백제의 멸망과 함께 신라 김씨왕조의 역사관은 한민족 고대역사서가 이어져 내려오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임... 물론 좀더 직접적인 원인은 이씨조선 왕조의 사대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으로 인해 수많은 역사서가 소실된게 원인임.. 그러나 신라 김씨왕조의 역사관이 기원전 수천년 배달민족 고대사가 배격된 근본적 원인이라고 봄
@BURADER
@BURADER 2 жыл бұрын
공감가는 의견입니다
@youngyoung1111-n6l
@youngyoung1111-n6l 2 жыл бұрын
비석에 써있는거 하나만 보고 다 믿으면 내가 우리 할아버지 무덤에 이순신 장군 후손이다 이렇게 써놓으면 그거도 그냥 다 믿어야 됨?ㅋㅋ 문헌이나 비석에 허무맹랑한 얘기 써논 것들 수두룩한데 그것도 그냥 다 맹목적으로 믿으라고? 역사는 철저하게 검증해야 하는 학문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게 역사왜곡임
@jipark_2373
@jipark_2373 2 жыл бұрын
@@youngyoung1111-n6l 왕의 비문과 일개 잡인의 비문을 동일시 할순 없죠... 인간의 역사는 지배자의 역사입니다.. 그 지배자가 수천년후 사람들에게 명성을 얻으려고 자신의 조상을 조작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는게 상식이겠죠
@사적돌
@사적돌 2 жыл бұрын
와 참 잼나네요 개인적으로야 흉노핏줄이 있을거라고보고 인도핏줄도 있으리라 봅니다만 오염안된 유전물질을 구할수 있어야 확실해 지것쥬 대성동 여전사출신지는 충격이었습니다 ㄷㄷㄷ
@sekeilu
@sekeilu 10 ай бұрын
"훈누(HUNNU)"로 표기합시다. 흉노(匈奴)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지고 썼던 중화문화권 용어입니다. 훈누(HUNNU)는 몽골 지역에서 후손들이 지금도 자부심을 가지고 쓰고 있는 북방문화권 원어(original) 입니다.
@zach214able
@zach214able 2 жыл бұрын
아프리카 대륙의 노예제에 대해서도 부탁드려요. !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오...아프리카 역사도 다시 해야하는데..알겠습니다!.!
@lsgwon
@lsgwon Жыл бұрын
후손들이 조상을 정의했는데, 마음에 들든 아니든, 꼴보기 좋든 싫든, 심술이 나도, 자기들 정체성 인정해 주자. 경주김씨는 흉노제국 후손으로. 여진족 말갈족도 신라나 고구려 부여 후손이라고 스스로 말했는데 제발 그대로 인정해 주자. 우리조상이 흉노가 아니라야 할 이유도 없고 같은 조상아래 다른 집안이 생긴다고 핏줄을 부정해도 안되는 거다.
@haepark5434
@haepark5434 3 ай бұрын
맞습니다. 제 조상을 거짓으로 꾸미진 않아요 ☆☆☆
@haepark5434
@haepark5434 3 ай бұрын
제 조상을 거짓으로 꾸밀이유가 없어요. 맞는말씀입니다 ☆
@deanchae4313
@deanchae4313 2 жыл бұрын
수고 많으셨습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ph8nf6bu5h
@user-ph8nf6bu5h 2 жыл бұрын
썸네일에 나와있는 가 무슨 뜻인가요?
@roamer2891
@roamer2891 2 жыл бұрын
국어사전 검색해봐요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사전에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라고 나와 있네요:) '조금 더 깊게 살펴 보다'라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user-op1ph4wt9w
@user-op1ph4wt9w Жыл бұрын
신라 김씨 왕조가 멸망한후 이들은 만주로 가서 당시 여진족 (그들 발음으로는 주센족) 과 힘을 합해 북중국에 금(김)나라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user-px6to5ge2m
@user-px6to5ge2m 2 жыл бұрын
너무 재미있습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정말 감사합니다!.!
@youchunchung2461
@youchunchung2461 Жыл бұрын
임금이 죽으면서 묘비에 새긴 글을 믿지 않으면 고고학 자체가 부정되는거임...
@SA-og7lf
@SA-og7lf 11 ай бұрын
다큐에서 신라무덤에서 백인여성이 나왔으며, 유전자 분석결과 스키타이랑 DNA적으로 거의 일치했다는 내용은 뭐일까요? 두 성씨중에 하나가 스키타이 계가 이주해들어온건가요?
@user-fu1qi2do3b
@user-fu1qi2do3b 2 ай бұрын
스키타이의 유전자를 찾았다고요? 진짜?
@SA-og7lf
@SA-og7lf 2 ай бұрын
@@user-fu1qi2do3b KBS 다큐 영상 있음. 몽골 일본보다도 더 가까운 DNA 사체가 나왔다는. 지배층은 유목 기마민족이었고, 피지배층은 남방계였던 것. 그 이전 시대에 빗살무늬토기 같은 거 만들던 사람들은 남방계 조몬계열이고, 그 후에 북방계 지배층이 유입됨.
@hisoryrx
@hisoryrx 2 жыл бұрын
중국이 정한 흉노 등의 이름 21세기에도 쓰는 역사학자들의 의식도 고쳐야 합니다
@Yh-xv1ep
@Yh-xv1ep Жыл бұрын
영상은 합리적인데 시청자는 외골수네.우리나라 역사서가 적어서 흉노를 뭐라 불렀는지 모르니 중국사서에서 북방이민국가를 흉노라 불러서 그거 따라 쓰는거 잖냐.지금 역사학자들이 고대시대에 살다온거도 아니고 한국 고대의 역사서도 뭐라고 불렀는지 써진게 없는데 지금학자들이 흉노의 한국적 호칭을 어케알고 또 뭐라 고칠까?소설이라도 쓰라는거야 뭐야.ㅋㅋ
@user-jr2qs8kh6h
@user-jr2qs8kh6h Жыл бұрын
에휴 답답 언어의 기원과 사회성을 구분못하는 미련함
@hisoryrx
@hisoryrx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 21세기인데
@West_wind-g1q
@West_wind-g1q Жыл бұрын
차라리 우리는 몽고어로 '훈누'족이라고 부르는게 낫지 않을까
@user-ko1di6np4p
@user-ko1di6np4p Жыл бұрын
​@@West_wind-g1q몽고도 중국이 몽골을 비하하여 부른 표현입니다. 몽골이라 불러달라고 하네요.
@gimgankoomg4168
@gimgankoomg4168 2 жыл бұрын
쉽게 말하자면 흉노와 훈은 거의 70-80퍼 같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일 듯.
@tv-yv3kn
@tv-yv3kn Жыл бұрын
역사 스폐셜에서 dna 분석까지 한걸로 알고 있었는데 . .
@user-se6ib6up9m
@user-se6ib6up9m Жыл бұрын
춘래불사춘의 어원을 정확히 알게되었네요
@jaehojang1077
@jaehojang1077 2 жыл бұрын
신라가 기마민족의 특성이 금관련 유물이 많이 나오고 특히 신라 기마상에 나오는 동복을 설명해 줬으면 더 좋았을듯 싶네요
@user-oq2fv8tl8v
@user-oq2fv8tl8v 2 жыл бұрын
용맹한 화랑의 조상임이 확실하다고 전하거라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그 부분도 넣었는데 고고학적인 내용이라 저도 제대로 다루는 지 확신이 없었고, 흉노 전반을 다루는 영상이라 편집했습니다. (_ _)
@user-vx6he1rc2i
@user-vx6he1rc2i Жыл бұрын
@@두선생의역사공장 신라는 문화나 사회적관습 불교가들어오기전 샤머니즘과 언어자체가 특이함 어떤이유로든 흉노와 관계가 있읍니다
@lionoosupa2081
@lionoosupa2081 Жыл бұрын
@@user-vx6he1rc2i 헝가리 언어를 들어보면 투박한 경상도 톤의 언어임을 알수가 있지 관습 음악
@user-vx6he1rc2i
@user-vx6he1rc2i Жыл бұрын
@@lionoosupa2081 오.....그래요 시간이 되면 그에대해 알고싶네요
@user-wl9se1bq5f
@user-wl9se1bq5f 2 жыл бұрын
05:44 왜 만리장성이 자꾸 산해관이 아닌 요동으로 넘어오지??
@user-tj7ht7sp3n
@user-tj7ht7sp3n 2 жыл бұрын
만리장성은 현재의 평양까지 들어와 있었음.
@user-li6jr5mp3t
@user-li6jr5mp3t 2 жыл бұрын
평양에서 서쪽대륙까지 고조선 동쪽은 일본 아닌가
@rokseong3984
@rokseong3984 2 жыл бұрын
@@user-li6jr5mp3t 일본이 왜 거기서 나와?
@BURADER
@BURADER 2 жыл бұрын
저도 불편하더라고요
@user-zt4iy2su5j
@user-zt4iy2su5j 2 жыл бұрын
우리 유튜버들이 신경써야 할부분 제발 동북공정의 지도는 쓰지 않았음 좋겠네요
@user-nf1ln5qf2l
@user-nf1ln5qf2l Жыл бұрын
비석에 새겨 둔 것을 부정한다면 튀르키에게 오르혼 강에 새긴 비석까지 부정해야 하는가. 말이 안 된다. 칸이 아니라고????
@lalago7496
@lalago7496 Жыл бұрын
김유신(金庾信) 는 그가 헌원씨(軒轅氏)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annekim4718
@annekim4718 2 жыл бұрын
원주민도 어딘가에서 왔겠지요.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들이 백인계 dna를 가졌다는것과 이젠 더 이상 단일민족을 주장하기 어렵겠네요.ㅎ
@user-lr4fq3yz6z
@user-lr4fq3yz6z 2 жыл бұрын
고조선이 요하근처가 아니고 압록강으로 지도에 나와있는데 맞는건가요???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지도 설명에 '중국측 주장'이라고 나와있습니다
@user-tf4em3vg8h
@user-tf4em3vg8h Жыл бұрын
매우 유익합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de2ps3ip8k
@user-de2ps3ip8k 2 жыл бұрын
지도에 연나라의 영역이 요서의 요택지역(습지)까지로 표현됐는데요. 만리산성도마찬지. 중국측 주장아닌가요? 요즘은 압로강까지 뻗어있다고 우기는 중이긴 하지만요.
@user-tj7ht7sp3n
@user-tj7ht7sp3n 2 жыл бұрын
만리장성의 동북 종단은 평양지역까지임.
@user-fl3dw4fv9i
@user-fl3dw4fv9i 2 жыл бұрын
@@user-tj7ht7sp3n 만리장성이 평양 지역까지 쌓아다는 사료적 근거와 장성의 위치는 현재 어디서 볼 수 있나요?
@JiNo-JiNo
@JiNo-JiNo Жыл бұрын
신라유적의 흐름과 중앙아시아 동유럽 튀르크까지위 유물을 보면 흉노족인걸알구있고 훈족은 흉노족이고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의 초대 왕의 동상이나 그림을보면 동양인인걸 알수있죠
@user-mo2de4he9f
@user-mo2de4he9f 2 жыл бұрын
지금까지 봐 온 역사 선생님 중 최고 이십니다. 헛소리 주구장창 떠벌떠벌 거리는 것들 때문에 정말 쪽 팔립니다.
@sungminkim6309
@sungminkim6309 2 жыл бұрын
중국놈들이 부른 '흉노' 대신에 진짜 이름인 '훈족'이라고 부릅시다
@user-gu9yv1pc3h
@user-gu9yv1pc3h 2 жыл бұрын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수업에 써도 좋을만큼 너무 훌륭한 영상입니다. 사학과나 역사교육전공이신가요? 깊이 있는 식견과 강의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자주 보러 와야겠네요^^~~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오 반갑습니다~ 역사 선생님이신가 보네요^^ 제 전공은 일반 교육학이고, 역사를 좋아해 취미로 공부를 하는 사짜 크리에이터입니다ㅎㅎ
@user-gu9yv1pc3h
@user-gu9yv1pc3h 2 жыл бұрын
우와, 근데 너무 대단하세요..다른 영상들도 보면서 진짜 너무 놀랬습니다! 겸손하시기까지...절대 사짜아니십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승승장구하세요^^~~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user-gu9yv1pc3h 아유 감사합니다ㅜ.ㅜㅎㅎ 역사지킴이님도 승승장구하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jipark_2373
@jipark_2373 2 жыл бұрын
(( 몇가지 잘못 알고 계신점이 있는것 같아 글을 올립니다 )).... 신라 시조였던 박혁거세 역시 외부에서 이동하여 온 세력이었습니다.. 당시 경주지역 사로 6촌의 사람들은 고조선 유민이었으므로 외부에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많았죠.. 삼국유사 시조설화에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나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북부여 천제 고두막한(단군조선 마지막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고 당시 고조선 유민들을 모아 한나라에 대항하고 북부여 해부루를 쫓아내어 동부여로 옮기게 한 사람이며 조선유민들로부터 동명성왕이라고 불리워진 인물입니다)의 딸인 파소였고 북부여 공주였던 파소는 미혼모로서 왕실에서 쫓겨나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하여 경주 지역에서 박혁거세를 낳게된 것이죠.. 고조선 유민이었던 사로6촌의 촌장들은 파소가 단군조선을 이은 북부여 고두막한 천제의 딸이었으므로 그녀의 아들인 혁거세를 신라의 왕으로 추대한 것입니다... 박혁거세의 왕호는 거서간이었으므로 초대왕부터 신라는 간(가한, 칸)이라는 왕호를 사용했습니다..가한은 단군조선시대 제후왕의 호칭이었습니다.. 유목민들의 왕호에 칸이라는 명칭이 나타나는 것은 수천년전 단군조선 시기부터 동북아 유목민들이 단군조선에 정치,종교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일수도 있습니다... 한무제가 멸망시킨 고조선은 고조선이 아닙니다... 위만조선이죠... 위만조선은 쿠데타로 번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워진 나라입니다... 나라이름은 조선으로 유지했으나 이민족 연나라의 위만이 세운 쿠데타 정권이므로 실질적으로 조선으로 볼수 없습니다... 위만의 손자인 우거에 이르러 위만조선이 멸망한 것도 한무제에게 군사적으로 패한것이 아니라 신하였던 조선인들에게 우거가 죽임을 당하고 한나라에 항복하였던 것이죠... 단군조선(고조선)에 대한 우리 역사서를 읽어보기를 권해드립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정도는 읽고 동북아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이 고대에 어떠했는지 올바른 이해를 가지기 바랍니다 ... (흉노 김일제가 신라김씨의 조상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왕의 비문에 자신의 족보를 새기는데 있어 조상을 팔아먹는 왕은 없습니다.. 왕가를 떠받들기 위해 공신들이 신화를 만드는 경우는 있으나 왕 스스로가 자신의 족보를 허위로 만들어 비문에 새기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또한 당시 흉노 김일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고 한나라에서는 김일제의 후손들이 왕망과 함께 신나라를 세워 한나라의 역적으로 처단되었고 일부가 한반도로 망명을 온것입니다... 신라김씨왕가가 흉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흉노 반대론자들의 억척스런 근거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damonkim2921
@damonkim2921 2 жыл бұрын
@@jipark_2373 ? 당신은 무슨 근거로 님 말이 맞다고 확신하세요? 환빠같은데. 그거 사이비 정신병이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복붙하지마세요.
@jungilpark895
@jungilpark895 2 жыл бұрын
청나라의 황족역사서인 금사에는 청황족은 신라왕족이며 김씨라고 하는데요..어떻게 보시는 지요..그리고 송나라는 금나라를 신라라고 하였는데 역사적 관점은 어떤지요
@user-nh3tv7ck6e
@user-nh3tv7ck6e 2 жыл бұрын
신라말기 김함보라는 장군이 만주로 가고, 그의 8대손인가하는 후손이 금나라의 왕이 됩니다. 바로 완안 아골타입니다. 그리고 후에 자손인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고,아들인 태종 홍타이지가 청이라 바꾸고 명나라를 멸망 시킵니다. 청왕실은 애신각라(아이신기오로라고 불리고, 애신은 금Gold라는 뜻입니다 )라는 성을 씁니다. 몇년전 중국에갔었는데 중국인이 애신각라는 황실의 성이라고 하더군요. 청말기 황실사람들은 박해를 피해서 김씨로 성은 바꿉니다. 2009년 역사스페셜에 나온거 본적이 있고, 네이버 검색해도 나옵니다.
@jangseokhan1984
@jangseokhan1984 2 жыл бұрын
어디서 환빠 찌라시 보고 오셨나 본데, 이미 유전적 연관성이 없다고 밝혀졌습니다. "어떻게 보시는 지요..."
@j3459
@j3459 2 жыл бұрын
관련있어요. 조상적계보로.. 그래서 후금 청으로 이어집니다. 더불어 고려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킨것도 여진족 이성계입니다. 큰틀에서 보면 다같은 한민족인데 계파가 다르다고 봐야죠 고려고구려 몽골 이쪽과는..
@user-jn5ip6zt4k
@user-jn5ip6zt4k 2 жыл бұрын
신라 또는 고려 출신의 함보라는 인물을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사서마다 기록이 조금씩 다릅니다. 원나라때 편찬한 금나라 사서인 금사에는 성씨 자체가 언급이 없고(금사는 청나라 황족역사서가 아닙니다. 특히 금과 청의 황실간 혈연적 연관성도 없을 뿐더러 청은 금을 문화적으로 계승한 국가일 뿐입니다) 당대 남송시절 기록인 송막기문에는 완안씨라고 적혀있어요. 김씨 기록은 훨씬 후대의 우리측 사서인 고려사에 나오는데 여기서도 신라왕족 출신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저 김씨 성을 가진 승려의 후손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적혀있는 것 뿐. 청나라 시기의 만주원류고에 본인들 조상이 신라왕성인 김씨성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추측을 했을뿐 결국은 완안씨라고 했고요. 일단 금 황실의 뿌리가 한반도 출신인 것은 여러정황상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중국에 가서 몇 대를 살아 중국문화에 동화되면 이건 한국인일까요 중국인일까요? 이 중간지점에 있는 게 지금의 중국거주 조선족인데요. 이들도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표현하죠. 또한 한국의 성씨들도 족보를 타고 올라가면 중국에서 이주해온 경우가 많은데. 그럼 이들 성씨들은 중국인이라 해야 할까요? 마찬가지로 금 황실이 신라 또는 고려에서 건너온 후손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극소수 일부의 지배층에 불과하며 이미 여진에 동화되어서 사실상 여진족의 정체성을 갖고 있기에 이런 의문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jungilpark895
@jungilpark895 2 жыл бұрын
@@user-jn5ip6zt4k 대단하시네요^^ 감사합니다
@iljinshin9352
@iljinshin9352 Жыл бұрын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신라의 성씨중 박씨는 북방 민족과 관련에서 제외하셨는데 '홍사한은'을 보시면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성모의 고향이 동부여의 수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박씨역시 간접적으로는 북방 민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user-jx2qc1hs9i
@user-jx2qc1hs9i Жыл бұрын
흉노 맞아요 신라는 왕을 칸 이라 불렀습니다 거서칸.마립칸 심지어 유럽을 휩쓴 아틸라와 같은 이름 아달라왕도 있어요
@user-ih7oe5km5x
@user-ih7oe5km5x 2 жыл бұрын
답사는 가보고, 원서는 읽을줄 알까? 공통점은 우리역사를 한반도에 가둬버리는 신공이 있다는것.
@user-oq3th4mf4d
@user-oq3th4mf4d 5 ай бұрын
👍👍👍👍
@user-oq3th4mf4d
@user-oq3th4mf4d 9 ай бұрын
❤❤
@user-li5uj4kv2b
@user-li5uj4kv2b 2 жыл бұрын
지금 당장 경주에 가서 비석을 살펴봐 훙노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해마다 북서쪽을 향해 제사를 올려라 이게 유언이다 신라 시조의 유언
@jipark_2373
@jipark_2373 2 жыл бұрын
신라시조는 김씨가 아니라 박씨다
@user-lq2vc2ru4k
@user-lq2vc2ru4k 6 ай бұрын
흉노는 투르크계인데 코카서스와 몽골의 중간적 모습이죠. 서부 투르크족일수록 코카서스에 가깝고 동부로 오면 몽골계에 가깝고, 시각을 현재의 예맥족과 삼한족이 만난 한국인 시각이 아닌 고대 고조선으로 간다면 그 당시 거란과 부여가 말아 통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바이칼에서 몽골에 남은 사람은 흉노의 일원이 되눈 몽골계가 되고, 더 내려와 중화 동이족과 만나 반농반목을 한 고조선 예맥이 되겠죠. 고조선은 산융과 가까웠고 산융은 동호의 일파란 말이 있습니다. 흉노는 투르크가 주종족이지만 몽골계도 포함하고 있었죠. 따라서 흉노에서 분리된 선비족은 흉노라고도 말할수 있고 흉노적 유전자도 있고 몽골계 유전자도 있을테지요. 또한 거슬러 올라가면 뿌리와 바지 문화 텐그리사상이 비슷한 고조선의 땅애 쉽게 동화될수 있을겁니다. 선비족은 중국에서만 용병을 한게 아니라 고구려에서도 많아했죠. 고구려가 파견한 용병집단 선비가 살라딘처럼 현지세력과 손잡고 독립한게 신라의 김씨라고 보는게 고고학적이나 문헌등의 이해를 하는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Jeong-eun
@Jeong-eun 2 жыл бұрын
우리고대사는 기록이 전무해 지금 우리가 배운 역사는 중국역사고 일존 역사야
@monkKJang
@monkKJang 2 жыл бұрын
자료로 쓰시는 만리장성 워치 좀 수정해서 사용해 주세요~~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어떤 지도 말씀하시는 건가요?
@monkKJang
@monkKJang 2 жыл бұрын
@@두선생의역사공장 만리장성이 고조선, 고구러 영토까지 연장된 그림으로 보여서요..ㅎ 좋은 강의 계속 부탁드립니다..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monkKJang 앗 그 지도는 원래 만리장성과 중국 측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만리장성을 나타낸 이미지입니다. 오해를 하셨을 수 있겠네요ㅜ.ㅜ 주의하겠습니다ㅎㅎ 피드백 감사합니다!.!
@yeongtakkim5762
@yeongtakkim5762 Жыл бұрын
지금도 대구지역 또는 김씨들 보면 서양얼굴이 보입니다.
@belleepoquela3271
@belleepoquela3271 2 жыл бұрын
왕소군 초상화 그려준 화가가 처형됐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네요. 돈을 안줘서 못생기게 그려준 거였다고...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ㅎㅎ 호한야만 수혜를..
@j3459
@j3459 2 жыл бұрын
왕소군은 우리민족의 미녀죠.. 그래서 기러기 가 떨어졋다고 하는거죠 기러기 까마귀 삼족오 같은 새는 북방민족을 상징하죠. 우리쪽 민족인데 한나라때 우리민족을 탄압하니까 도망쳐서 한나라로 들어간거에요 어쩔수 없이 먹고살려니까 입을 줄여야되서 궁녀가되었는데 어린시절을 겪으면서 한나라에 대한 반감은 있었어요 당연히 돈줘서 초상화 그릴필요도업죠 애시당초 궁녀가된이유가 집이 너무가난해서 입줄일려고 궁녀로 들어갔으니.
@mongByul
@mongByul 2 жыл бұрын
잉? 알람이 고장이라니 ㅠ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오잉. 왜 그러세요 ㅜㅜ?
@user-kt2ep3lt1q
@user-kt2ep3lt1q 2 жыл бұрын
텡리고도 선우의 텡리고도가 하늘(텡그리)의 아들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單于는 분명 우리가 읽기에는 단우인데 왜 선우일까요? 저는 원래는 漢字 표기로 單干(당칸=단군=天王)이었는데 선우(單于)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만다린어로 天은 티엔입니다. 또 金씨는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소호금천씨의 고향은 산동성입니다. 흉노의 발원지는 황하 만곡 부위 남쪽인 오르도스 지역이구요. 김씨의 조상이 흉노로 들어갔을 수도 있구요. 김일제는 휴도왕(소도왕=부도왕)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말을 잘 다뤘구요. 또 삼국유사에는 金씨를 찰리종족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석가모니(사카무니)의 사카족(스키타이족)이라는 뜻으로 흉노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이런 인식이 있었고, 金씨 왕족부터는 금관 등 金 장식물이 많이 나오고, 혼인 풍습도 족내혼으로 바뀝니다.
@user-mx9rc4jp6q
@user-mx9rc4jp6q 2 жыл бұрын
오오 저 항상 이게 궁금했어요. 단우인데 왜 선우라하는지...
@benkim8053
@benkim8053 Жыл бұрын
4~5세기 경주지역은 신라가 아닐 수도 있어요. 태종 무열왕 시대 대륙신라에서 자신의 조상을 높이려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letitbe2125
@letitbe2125 10 ай бұрын
그럼 신라 왕계보에 갑자기 튀어 나오는 갈문왕과 결국 그 손자가 신라왕의 계보를 이은 것은요? 엄격한 혈통신분제로 근친혼 까지 하며 성골만 왕이 될 수 있었던 신라에서 갑자기 단기필마로 나타나 양자로 입적해 성골이 되고 그 자손들이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kevin60to30
@kevin60to30 Жыл бұрын
흉노는 고조선일부입니다 고조선은 구이 9부족으로 구성되며 중국 고서에 동호와 후기고조선을 구분치 않고 고구려를 동호로 칭하기도 해서 모호하여 맥족으로 묶어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흉노 후예이며 일본기마민족과 같은계열입니다 흉노도 동일민족이 아닙니다 스키타이인도 유럽형과 몽골계가 섞여 있으며 헝가리 조상은 몽골계에 가깝습니다 그도 그런게 유목민은 동유럽부터 한반도까지 세력 이동합니다 무열왕뿐아니라 중국사서 금석문에 흉노 한반도 이주가 분명히 적혀 있는데 반증근거도없이 이를 부정하는 배짱은 학교에서 배운겁니까
@bleee1
@bleee1 7 ай бұрын
묵돌(모돈)이란 을지문덕의 문덕은 같은 이름입니당. 유목이름을 한문으로 음차하는 과정에서 여러 글자로 쓰여짐
@user-vw1eh5ek5w
@user-vw1eh5ek5w Жыл бұрын
흉노를 신라와 연결짓는것은 국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던 신라가 비록 당나라와 연합했지만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 시켰기 때문이고 일본이 고대 국가에 백제의 유민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게 어느정도 사실 (일본 역사 학계는 애써 미미하게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지만 ) 위 두가지 학설은 공통점이 있다고 봄 실제 경주 김씨의 대부분 모습은 북방계를 빼닮은건 흥미롭다
@gn.l3762
@gn.l3762 10 ай бұрын
역사스페셜에서 문무대왕 비문을 자세히 소개 설명했는데 김알지의 조상이 한무제때 사로 잡힌 흉노왕의 아들 김일제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모든 유적등을 볼때 수긍이 가던데요.ㅡ
@user-wh7ry2mb3s
@user-wh7ry2mb3s 2 ай бұрын
신라인 조상 은 몽골 만주에서 말타고 도둑질 살인 저지르던 북방 유목민족 흉노족 붉은악마 오랑캐 김일제 후손 후예들 입니다 한나라 한족에 전쟁에서 패해 한반도 동남쪽으로 피난 내려와 세운 나라가 신라 경주김씨 김가네 가야국 김수로왕 입니다 빨강색 넥타이 빨강색 모자 쓰고 다니는 인간들이 흉노족 붉은악마 오랑캐 김일제 후손 추종자 후예들 입니다
@user-bc9bm5qm7c
@user-bc9bm5qm7c Жыл бұрын
신라 김씨가 모두 경주 김씨가 아닙니다. 경주 김씨는 경순왕 후손입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김씨는 다 신라 김씨이고 (김해 김씨 빼고 - 김해 김씨 흉노 관련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심지어 안동권씨도 신라 김씨 후손입니다.
@user-im1ke5od1t
@user-im1ke5od1t 2 жыл бұрын
신라 왕관을 보면 사슴뿔인데 이는 중앙아시아의 문화와 연관성이 많습니다. 저도 경주김씨인데 ^^
@thesanctuary225
@thesanctuary225 2 жыл бұрын
김해김씨 문경공파 24대손입니다. 신라왕족 경주김씨와 신라귀족 김해김씨는 모두 훈누족 출신 맞습니다. (흉노족이 아니라 훈누족입니다.) 머나먼 옛날 드넓은 초원지대를 말달리던 유목민족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우리 김해김씨는 하나같이 역마살 낀 사람이 많습니다. 농경민족은 한곳에 정착하여 살지만 유목민족은 이동생활을 하죠. 그래서 집안에 있으면 근질근질 좀이 쑤시고 어딘가 떠나고 싶은때가 많습니다. 이상입니다.
@user-fj1lx7zn7o
@user-fj1lx7zn7o 2 жыл бұрын
일본으로 가보세요 .... 조상들이 친했으니까 친척집에온 느낌이 들꺼요 ..ㅋㅋ
@jipark_2373
@jipark_2373 2 жыл бұрын
김일제는 흉노족 우현왕의 아들로 전쟁중에 한나라에 포로로 잡혀서 처음 노예생활을 하다가 한무제의 눈에 들어서 높은 관직을 받게됨.. 김일제의 후손들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과 손을 잡았다가 신나라가 망한후 대부분 처형당하고 일부가 한반도로 망명 온것임... 그들중 일부는 신라땅에서 살고 일부는 남쪽 변한지역으로 가서 가야를 세우게 됨.. 신라 문화와 언어에 동화된후 김알지의 후손중 한명이 신라왕의 사위가 되었고 왕의 후손이 없어서 김씨 사위가 신라왕에 즉위하게 됨.. 신라 13대 미추왕임.. 그후 세습을 유지하지는 못하였으나 17대 내물왕부터 김씨가 세습을 유지하게 됨... 신라후기 진성왕, 효공왕 이후 혼란했던 나라를 되살리고자 박씨가 왕이 되나 후백제 견훤이 죽이고 김씨를 다시 허수아비 왕으로 세워서 신라 역사는 끝나게 됨 ... 신라는 흉노 김씨가 말아먹은 나라임... 흉노김씨 왕조의 한민족 고대역사(단군조선, 부여)의 부정으로 인해 민족 역사의 정통성이 끊어진 점이 가장 안타까운 일임... 김씨왕조는 고조선과 부여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역사서를 편찬하지 않았으며 신라 멸망후 고려시대 김부식마저 삼국사기에 고조선과 부여의 역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음... 고구려, 백제의 멸망과 함께 신라 김씨왕조의 역사관은 한민족 고대역사서가 이어져 내려오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임... 물론 좀더 직접적인 원인은 이씨조선 왕조의 사대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으로 인해 수많은 역사서가 소실된게 원인임.. 그러나 신라 김씨왕조의 역사관이 기원전 수천년 배달민족 고대사가 배격된 근본적 원인이라고 봄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 жыл бұрын
@@user-fj1lx7zn7o 김일제 후손이 왕망 의 외척이라, 신나라 당시 한가닥 하다가, 신나라가 후한 한테 멸망 당하니, 살기위해 한반도로 도망와서 가야를 세우고, 그중 일부가 서라벌로 진출해서 박씨와 석씨를 몰아내고 신(나)라 를 세운거죠. 또 가야의 무리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원주민들 학살하고 여러 왜국을 건설했고. 그러니 신라와 일본이 직접 연관이 있는게 아니고, 가야가 둘의 조상이죠. 김해 김씨. 김대중도 김해 김씨.
@user-te2fs4pl6v
@user-te2fs4pl6v 2 жыл бұрын
휴저왕(休屠王)[1]은 흉노 이치사 선우 때의 번왕이다. 반고(班固)가 쓴 《한서(漢書)》 권68의 곽광김일제전(霍光金日磾傳)에 따르면, 휴저왕은 번왕, 즉 제후 겸 장군이었다. 이치사 선우는 휴저왕과 혼야왕이 한나라와 전쟁에서 계속 패배하자 이들을 소환하여 사형으로 그 죄를 물으려 하였다. 이에 혼야왕은 휴저왕을 설득하여 한나라에 투항하려 하였으나, 휴저왕이 결정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휴저왕을 살해하고 곽거병에게 투항하였다. 이 때 휴저왕의 부인인 알지(閼氏)와 장남 일제, 차남 윤이 한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 휴저왕은 금인(金人)을 가지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 일에서 비롯하여 자신의 장남인 김일제가 한나라 무제로부터 김(金)씨의 성을 하사받았다. 김일제가 경주김 시조, 김윤이 김해김 시조
@jipark_2373
@jipark_2373 2 жыл бұрын
@@user-te2fs4pl6v 김일제는 한나라 관리인데 무슨 경주김씨 시조란거냐.. 경주에서 살아본적 없는 사람이 경주김씨 시조란 정신나간 말은 하지 마라.. 경주김씨 시조는 김알지고 김해김씨 시조는 김수로왕이다
@agibag2266
@agibag2266 Жыл бұрын
난 그 흉은 한이고 노는 따르는 사람 , 즉 조선의 방계다 라고 봅니다. 한나라가 흉노를 치고나서 조선의 오른 팔을 없앴다고 했고, 즉 조선의 수하 였다는 말이지요 라틴어 영어에 많은 한국어, 한자어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한의 방계 흉노등 북방 유목민이 언어적으로 당시까지 비슷한 걸로 추정합니다.
@user-gx8ey4of1i
@user-gx8ey4of1i 2 жыл бұрын
말과 글의 변화도 참고할만 하겠죠. 예를들어.... 영상 멘트중에 '십진법' 있었죠? 호우총에서 발굴된 호우의 명문에 십(十)이 등장합니다. 그게 십(十)인지 다른 기호인지 아리송 하나 호우십(壺于十)으로 본다면? 같은 그릇을 열개 만들었다거나...혹은.. 열번째 만든그릇 이라는 뜻이겠죠. 경주에서 발굴된 유물이지만. 명문의 내용은 고구려 관련 유물입니다. 고구려 유물이죠. '을묘년 국강상 광개토지 호태왕 호우십' 광개토대왕이... 떠억! 등장하죠. 신라 경주에서. 이로서 추정할수 있는것은? 1.신라와 고구려간의 교류가 초기부터 있었다. 2. 고구려에서 십진법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광개토대왕 시기 즈음에... 이렇듯... 글자와 발음으로 유추할수 있는것은 의외로 적지 않습니다. 호우에 于라는 글자... 매우 고대부터 등장하는 글자입니다. 선우(單于)도 于가 등장하죠? 어조사라 합니다만. 고대에도 어조사일까요? 일단. 접어두고... 선(單)이라는 발음은 어때요? 單이 글자의 발음은 단이거든요. 단. 모바일 검색해보죠... 자원이 매우 모호하게 나오는군요. 旦 ㅡ 亘 ㅡ 宣 ㅡ 亶 ㅡ 單 ㅡ 檀君 단 긍 선 단 선(단) 단군 串 ㅡ 阜 ㅡ 皐 ㅡ 蒿 ㅡ 高 곶 부 고 호 고 串 ㅡ 阜 ㅡ 皐 ㅡ 貫 ㅡ 革 ㅡ 華 ㅡ 卑 ㅡ 鼻 관 부 고 관 혁 화 비 비 꽂다 곶(串). 꿰다 관(串). 여기에 활문화를 염두에 두고 본다면? 곶(串)은 화살이 꽂히다. 또는 화살이 꿰뚫다. 단군문화는 활문화와 관계가 밀접하죠. 홍익인간(弘益人間)... 弓부터 등장합니다. 현재 弘은 넓다. 크다. 에 의미라 하지만. 집울릴 횡(宖)자를 보시면? 울릴 홍(弘)자임을 알수 있습니다. 즉. 弘은 "울" 이라는 발음과 연관되며 의미는 활과 활줄. 궁(弓)현(弦)이죠. 그래서.... 활시위 크게 떨처울릴 홍(弘) 으로 봅니다. 떨치다에서... 널리라는 의미가 나왔겠죠. 單은 宣+阜 로 볼수 있겠습니다. 활문화를 염두에 두고 볼 필요가 있을겁니다. 단(丹)과 정(井)은 상고시대에 혼용되던 글자였지요. 우물 정(井)자도 가운데 점이 있었어요. 네이버 자원에는.... 수은광산의 입구라는 설명이 있는데... 갑골이나 금문을 보면 솔포 모습입니다. 활터의 과녁이라고요. 가죽 혁(革)... 솔포의 화살받이 가죽이죠. 과녁 적(的) 과 통하는 의미고 발음입니다. 즉. 가죽혁 이지만 가죽이란 의미보다는 과녁이란 의미로 쓰일겁니다. 적(的)은 적중(的中)이라는 말로 쓰이죠. 백(白)은 일광(日光)이고 햇살...살입니다. 구기 작(勺)... 구기 라는것은 말구유 라는 말이 있듯이 나무로 만든 국자입니다. 그것을 말이라 하여 두(斗)죠. 북두칠성(北斗七星)에 두(斗)가 작(勺). 상투를 상두(上斗)라고도 하는데... 역시 북두칠성의 의미가 있지요. 호우 명문중에.... 국강상(國岡上). 이를 묘지가 있는 지명으로 보는듯 하지만. 국강상왕 검색하면? 고국원왕이 등장합니다. 설마...... 광개토대왕과 고국원왕이 같은 지역에 뭍혔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지명은 아닐듯 합니다. 國岡上 ㅡ 聖上 ㅡ 主上 ㅡ 上 이런 변화로 여겨집니다. 즉. 고구려때 왕을 높혀부르던 호칭으로 추정해봅니다. 여기서... 국강상의 강(岡)자가 주목돼요. 산등성이 강(岡)으로 보니 지명을 떠올리죠. 명문에는 岡이 아니라. 四+正 입니다. 넉 사(四)도 아니고 그물 망(罔)이라더군요. 그물망 머리에 바를정 한것이 명문의 강. 북두칠성 강(四+正) 입니다. 언덕이나 산등성이가 아니라. 북두칠성 이라는거죠. 그구려 천정벽화에 북두칠성 있죠? 오늘날도 시신을 안치하는 널판지를 칠성판이라 부릅니다. 또 북두칠성이 그려진 홍포를 덮기도 하죠. 오늘날의 활터에는.... 정간(正間)이라 쓰여진 목패를 걸어두고 활터에 드나들때 예를 표합니다. 그리 오래된 풍속은 아닌듯 하지만요. 세종대왕은 井間보를 만들기도 하셨죠. 정(井)과 단(丹)은 혼용되던 글자라 합니다. 우물 정(井)...... 움울 정(井)이지 않았을까요? 우물에서 물이 수(水)에 의미라면? 우는 또 뭐겠습니까? 움울이죠. 움울의 앞뒤말을 바꾸면 울움이 됩니다. 울움/움울 이것이 우리말의 원형이라 봅니다. 움은 움막 과 같이 집이라는 의미가 있고 울은 울림이고 홍(弘)이죠. 청동기 유물중에 8주령이 유명하죠? 방울입니다. 청동방울. 용도는? 소리를 내는거죠? 울리는겁니다. 홍익(弘益)이란? 울림을 더하라는 의미죠? 누구에게? 우리 인간세상에... 그래서 우리인거죠? 울이들이라고요. 울이. 이세상은 울이들 세상인겁니다. 여기서 울 발음이 시작되는 것이죠. 악성 우륵? 울윽은 아니였을지... 우르 라는 발음도 들어본것 같군요. 을파소.... 을지문덕.... 올치씨... 일본애니... 오르치마루? 홍(弘)을 파자하여 궁(弓)을(乙)가(歌)를 만들기도 했었잖아요? '궁궁을을 궁을리 궁을보고 도통하소.' 날 일(日)자...... 가운데 들어있는 점을 새 조(鳥)자로 쓴것도 있죠? 태양의 흑점? 삼족오? 을(乙)입니다. 울 홍(弘)에서 비롯되었다 보고요. 신라시조.... 김알지. 알영. 알천. 나정. 가로막을 알(閼)자를 씁니다. 글자 모양으로는 연관성을 찾기 어렵죠. 거란(契丹).... 계란으로 읽어도 되죠? 글안이라 하기도 했고요. 글란이겠죠? 丹 ㅡ 卵 ㅡ 閼 단 란 알 契 ㅡ 鷄 ㅡ鷄林 계 계 계림 丹과 井은 혼용 되었으니... 나정의 정(井)도 단(丹)과 연관되죠. 호우 명문 다시 떠올려 볼까요? 맨위에 정(井)문양이 있지요? 마름모꼴로 회전한 형태지만요. 결승문. 복희와 여와의 뱀꼬리가 돌돌말려 교미하는 모습으로 생산을 의미하는 문양. 뱃사람들이 밧줄을 묶어 의사를 전했던문양. 고싸움놀이. 차전놀이. 연관되죠? 옥장식 매듭이기도 하고요. 단(丹)은 산악문화.... 수렵. 채집. 가축. 정(井)은 농경문화....... 농경. 축성. 결승(結繩)은 해양문화......해양상단. 해적. 유목문화는? 가장 늦게 형성됐겠죠? 왜냐하면? 인구밀도가 낮았으므로... 숲이나 들판이 있는데 왜? 삭막한 벌판을 터전으로 삼았겠어요? 이웃마을 가려면 말타고 몇일을 가야할 지경인데 문화는 무슨.... 그러다가.... 유지상단 떼거리들이 유목인들을 규합하게 되는겁니다. 풍백. 하백이 먼저죠. 상단 떼거리. 말이 상단 떼거리지 여차하면 도적놈들 떼거리가 되기도 하는거죠. 복희가 대표적인 인물이고.... 성씨가 풍이란 얘기도 떠돌아요. 풍백이나 풍월주등과 연관지어 볼수 있을겁니다. 복희라는 말도 그래요. 부엌이 봌이였죠. 복남이 복희는 복복(福)자를 쓰지만. 흥부는 박에서 복을받죠? 또.... 고고학 에서는 무덤의 양식중 하나. 구조가 시골의 부엌과 유사하죠. 즉. 복희 ㅡ 부엌 ㅡ 복 ㅡ 동복 ㅡ 박 ㅡ북 등의 연관성입니다. 박은 밝과 연관되고.... 북은 붉과 연관되죠. 붉은태양 / 밝은하늘. 아사죠? 조(朝). 아침. 동방에 해뜨는나라.
@lionoosupa2081
@lionoosupa2081 Жыл бұрын
개십소리고
@weifan9533
@weifan9533 Жыл бұрын
The ancient Sinitic people themselves may have derived from a pre-proto-Mongol or pre-proto-Tungus lineage, the Q-M120 haplogroup detected on Bronze-Age Central Plains Sinitic samples had also been detected on Neolithic Slab Grave samples from Mongolia. As a modern Chinese person, when I look at the faces of Qin terracotta warriors and Han clay figurines, I see a strong resemblance to certain Koreans and Mongols.
@bblack6066
@bblack6066 Жыл бұрын
2:52 깔깔깔깔... 흉노는 "민족"이 아님. 흉노는 Federation 임. 이걸 알지 못하면 흉노가 뭔지를 이해 못함.
@user-hd3sx4pp7n
@user-hd3sx4pp7n Жыл бұрын
지도 연나라영토는 요서까지 요하강동쪽은 아니니까 수정바람
@user-zi5qv4sx3h
@user-zi5qv4sx3h 2 жыл бұрын
근데요....흉노의 김일제가 경주로 와 마립간이 되었다 하면 드는 의문이 국경을 접한 고구려나 바다만 건너면 닿는 백제를 두고 굳이 반도의 구석진 곳에 자리한 경주까지 내려 왔을까요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 жыл бұрын
무주공산 이었으니까 그런거죠. 고구려, 백제 세력이 차지한 땅에 어떻게 가서 나라를 세웁니까? 왕망의 신나라때 한가닥들 하던, 왕씨, 김씨, 허씨 들이 신나라가 후한에 멸망당하니까 배타고 바다건너, 왕씨들은 개성 주변에 정착, 김씨들은 김해에 정착 가야를 건설. 그중 일부는 서라벌로 진출해서 박씨, 석씨 몰아내고 정권잡고 신(나)라 건설. 가야유민들 일부는 일본에도 건너가 원주민들 도륙 내고 여러 왜국들 건설.
@user-oh1it2lg4q
@user-oh1it2lg4q 2 жыл бұрын
한나라에서 투후를 지낸 김일제의 후손이 왕망의 신나라를 세웠는데, 곧바로 후한이 들어서면서 그 후손이 대거 한반도로 이주한 겁니다. 시기가 딱 맞아 떨어집니다. 산동성에서 배를 타고 남해를 거쳐 온것으로 KBS에서 방송되었습니다.
@user-zi5qv4sx3h
@user-zi5qv4sx3h 2 жыл бұрын
@@user-oh1it2lg4q 남해를 거쳐 왔다는것도 그렇게 추정하는 것이지 확실한건 아니고요 내가 갖는 의 문은 선박 제조기술이나 항해관련 지식 그리고 지리 지도등에서 깜깜이나 다름 없었을 그당시 설사 배를 타고 건넜다 하드래도 산동성에서 고구려 영토였던 예성강 하구가 있는 해주지방은 중국과 가장 가낍고 아래로 내려와도 백제영토가 가끼울텐데 남해를 돌아 경주로 갔디는게 이상하다는거죠...그리고 당시엔 김수로가 세운 가야욍국도 존재 했었죠...따라서 남해를 돌아 다시 동해로 치고 올라와야 만날수 있는 경주에 그들이 도착했다는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된다 보는 겁니다...
@user-kt2ep3lt1q
@user-kt2ep3lt1q 2 жыл бұрын
신라가 초기부터 경주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만주지역에서 한반도 중부, 서남부로 이동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김알지 설화의 계림도 만주 길림설, 中 남부 계림설 등이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민족의 여러 국가들은 지나대륙과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동해 왔습니다.
@kwang-holee4766
@kwang-holee4766 Жыл бұрын
스스로 자신들이 흉노 왕인 김씨의 후손이라고 동네 방네 밝힌 것은 근거 없이 그런 소리를 했다고는 볼 수 없고, 추사 김정희도 법흥왕인가요, 그가 스스로 흉노 왕의 후손이라는 비문을 보고서 의아하게 생각했다는 일화도 있고, 화랑 제도와 비슷한 호휘무사제도 역시도 흉노들에게 있었고, 이런 호위무사제도를 화랑제도와는 무관하게 독일 학자가 잘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말입니다!
@user-gb8mc6yg8d
@user-gb8mc6yg8d 3 ай бұрын
중국은 중화사상으로,일본은 식민사관으로 역사왜곡에 골몰하는데도 끌려 다니기만 할건가요?.
@midwestl7417
@midwestl7417 2 жыл бұрын
유튜브 보다 보면 서엉~공했네!... (유튜브 안했으면 빠바라밤 철가방이 제격인 분들) 싶은 채널이 태반인데, 두선생은 마땅히 성공하실 분이 성공했으나 충분히 취하지는 못해서 항상 마음으로 나마 밀어 올리고 싶은 분.
@두선생의역사공장
@두선생의역사공장 2 жыл бұрын
너무 과찬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ㅜ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해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겠습니다...!!!
@8llowme
@8llowme 8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역쉬 신라는 흉노 후손 맞네요 자랑스럽네요 세계를 지배한 후손 자랑스럽게ㅜ삽시다
@user-wp8gu2zv6g
@user-wp8gu2zv6g 10 ай бұрын
간단하게 생각하면 신라는 그냥 해외에서 유행하는 것들을 따라하는 국가라고 생각하면 됨.
@user-iu2uh7dc7n
@user-iu2uh7dc7n Жыл бұрын
중국에 없는 우리의 몽고반점만 봐도 우리는 몽골흉노족 맞는거같아요.
@Ssaintcho
@Ssaintcho 10 ай бұрын
유전자분석 결과 흉노족에 가까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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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1
_vecto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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