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수없이 말로할수 없을만큼 이지메를 당했다고 하는 14대 심수관의 말을 듣다가 눈물이... 조선인의 도자기 기술로 도시전체가 부를 이루었어도 조선인 이라는 이유로 이지메를 당했네요ㅜ
@jufit48655 ай бұрын
:우리가 알고있는 ~1945,8.15이후=Tokyo전범재판👨✈️👩✈️🧑✈️:일본:군부 실세=됴죠 히데키 👓 조상이 ~16세기:임진왜란 때 강제끌려간~ 조선도공⚱️의 후손이 라고 나오던데..
@user-dorga5 ай бұрын
@@jufit4865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대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jufit48655 ай бұрын
@@user-dorga :🏫👨🏫역사&KBS1TV 역사저널그날🖥📚📖🔍및 뉴스 방송 매스컴 에~하도록 지겹게~📽🎞🎥🎬📸🕵♀️예기하는구만~시비걸일인가~ 쓸데없이 끼어들지말고~가던길가~
@hungri743 жыл бұрын
정말 훌륭하다.. 대한민국
@tomjudykim20663 жыл бұрын
감동적입니다.
@가로세로-r2o3 жыл бұрын
누가 그대들의 한을 대신하겠소 조선도공의 혼, 대를 이어 오면서 조선을 잊지 않음 가슴 저릴 뿐이네 그래요 저 타오르는 불꽃으로 그대들의 한은 이제 다 풀어졌으니 또 다른 예술창조로 길이 만국에 부와 명예를 누르시길 바랍니다
@smilegia93593 жыл бұрын
와 ~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이 계시다니 👏🏻👏🏻👏🏻👍👍👍 멋있네요 ~~ 감사합니다 . 더 많은 축복이 계실꺼에요 ... 🙏 🌸🌸🌸💕 기분이 참 좋은 아침이네요
@단디살자-l8u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 참 많습니다 저들도 독립군들이넹‥~
@김한섭-p8g3 жыл бұрын
도예가 심당길의 14대손 심수관 남원을 방문 했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발전적인 미래를 만들어 나가면 좋겠네요
@김동석-g6y3 жыл бұрын
전주 MBC 정말 좋은 프로그램 많이 하네요. 기대이상입니다. 아니 최고입니다.
@polyonomata11 ай бұрын
15대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심씨를 간직하고 살아온 이 분께 존경심이 듭니다. 청송 심씨하면 국구기도 하고 이름난 양반가문인데 심수관씨 집은 어쩌다가 도공이 됐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조선건국 후 고려의 의리를 지켜 조선의 벼슬은 받지 않겠다고 낙향한 향파쪽 같기도 하고 아무튼 사연은 많겠지만 일본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고국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 마찬가지로 타국에서 살고있는 제게도 감동적입니다. 제 후예들도 우리의 뿌리를 잃지 않고 살았으면 합니다.
@이동연-c6d3 жыл бұрын
일본에 의해 잡혀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 중에서는 심수관 가문과 이삼평 가문처럼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의 도공들은 기본적으로 억류되어 있었으며 대다수는 자신의 기술이 있음에도 그 기술을 발의하지 못하고 노예로 매매당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본업과 다른 일을 종사하기도 했음.
@강상문-m7h3 жыл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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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iloveyou2 жыл бұрын
포로의 삶이란.. 사명대사가 포로반환을 노력한 것도 이런 부분 때문.. 그리고 기술자들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고 그저 슬퍼 울 뿐이었으니~~~
@우앙청심환-n8r2 жыл бұрын
심수관 가문은 도공출신이 아닌 양반출신 (고려시대때부터 고위 관직을 했던 집안)이며, 임진왜란때 끌려오고 조선인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되었을때 마을 리더로 마을 사람 중 도공출신을 뽑아 도자기소를 설치하여 도자기 판매로 생활고를 이겨낸 것임. 대부분의 도공들은 사농공상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사람 취급 못받는 천하디 천한 계급이였음. 오히려 일본으로 끌려간 후 영주로부터 보호받는 기술자로 조선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좋은 대우를 받음. 실제로 조선통신사 기록을 보면 임진왜란 후 포로송환을 위해 갖은 노력을 했으나, 오히려 도공들이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 것이 대부분임. 조선에 돌아가봤자 천민 취급 받고 첩자 취급 받으며 차별받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이동연-c6d2 жыл бұрын
@@우앙청심환-n8r 그건 심수관 같이 순왜 노릇을 해서 잘 보인 사람들과 그 사람들 밑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마스터급 도공들 이야기고 나머지 도공들은 그런거 알짤없이 죄다 일본 영주들과 포르투갈 노예상에게 노예로 팔림.
@우앙청심환-n8r2 жыл бұрын
@@이동연-c6d 와....14대째까지 심수관이라는 조선 이름을 지키며, 한복을 입고 도자기를 구워서 400년 넘게 정체성을 지킨 심수관 가문에게 순왜라는 명칭을 사용하다니... 일제시대때는 조선인 후손이라고 길가다가 돌까지 맞을 지언정 집앞 문패에 심수관이라는 명패를 절대로 내리지 않았던 강직한 가문인데 뭐가 어쩌고 저째? 순왜가 무슨 뜻이나 알고 하는 말인가? 심수관 가문이 자발적으로 일본에 갔냐? 병자호란때 끌려간 조선남자들이 지켜주지 못한 여자들이 죽을 고생을 하여 귀국하면 화냥년이라고 돌을 던지고 자살을 강요하던 족속들이 딱 너같은 인간들이였다. 그게 조선을 결국 망하게 했지.
@eunryeahn81433 жыл бұрын
전주Mac굿.거기에맞는대우를햐줘야전통을살리고 세계에도 알릴수있는좋은기술을 나라에서 그분들께 그에향응하는처우를해줘야된다본다
@mgj29473 жыл бұрын
전주MBC 육식의 반란 최고의 프로그램 너무 감사합니다~ 방송시청 후 삼겹살 안먹음~
@tvmapoajae89892 жыл бұрын
정말 명품다큐네요
@슬기로운-r2s3 жыл бұрын
정말 놀랍습니다 정체성이 도대체 이렇게 무서운거구나 양반이었다고 하던데 피는 못속이겠군요 우리자손도 자기를 자신의 뿌리를 지키면서 살았다는게 무서울 정도네요 존경스럽고 조국에대해 자녀들에게 초등부터 교육을 잘 시켜야겠습니다
@대광성3 жыл бұрын
도공은 양반이 아닙니다. 천대받는 기술자 일 뿐 이지 예나 지금이나 기술자 라면 기름밥 먹는 무식쟁이로 평가받고 있는게 우리 사회 입니다. 이런 배경이 그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라 시대에 여러 기술 장인들은 모두 왕정 소속으로 편입되었고 그 맥을 잇기 위해 많은 인재들을 키워내었고 그 결과로 고려와 조선을 거쳐 왔지만 결국 그 많은 장인들로 인해 천대받기 시작했습니다. 우수한 장인을 왜 왕정에서 관리했는가는 바로 시장성에 있습니다. 자율적인 자영업이 가능했던 신라 시대의 시장에선 그 자신의 사업에서 기술 및 기술자의 부재가 곧 수익성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 부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정에서 해당 기술자를 파견하여 맞춤 교육을 해주는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애시당초 기술이라는 개념이 번성하지 못하는 한계점 때문에 늘 그 것에 대한 동경이 있어왔지요 본디 일본에서도 신라와 백제의 왕족들이 최초에 터전을 잡으면서 문명사회를 이끌었어도 기술자가 없었기 때문에 해당 본국에서 기술자와 선무(가구라)를 지원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일부의 기술자들만 건너갔을 뿐 모든 기술자들이 건너가진 않았습니다. 그것이 오랜 세월 일본은 부재로 이어졌고 우리는 계속 계승 발전되어 나아갔습니다. 과거 조선이 영토가 크게 축소되어 만주의 소규모 일대와 한반도에 국한되어 기술자들이 대량으로 사라지긴 하였지만 그래도 그 맥은 꾸준히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많이 존재하였지요 그랬기에 천대받아 왔던 것 입니다. 너희 몇 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인 것 이었습니다. 대체할 인력은 차고 넘쳤다는 것 이죠 반면에 일본의 사정은 너무 달랐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까지도 일본은 기술자들을 우대하고 높이 평가하는 인식이 있습니다.
@パクヘヨン3 жыл бұрын
무능한 당시 임금과 나라는 그들을 위하지도 보호도 못한! 남은 도공의 기술과 예술성을 알아 보지도 보존의 필요성도 모르는 무지스런! 천대와 빈곤을 격으면서도 나라를 잊지 않고 있음이! 너무 존경 스럽고 마음으로 위로를 드리고 싶다
@jonctmaga14863 жыл бұрын
먼 헛소리냐
@young-jabang-cho21853 жыл бұрын
민간인의 힘은 국경을 없앨수있는 독일,동 유롭의 기적이1989년이었습니다. 일본으로 끌려갔던 도공들의 자손이 선조를 모시어 한국까지 찾아온 심수관외 도공들의 후손께 감사드립니다. 남원에 도공의 자취도 없어졌는데 일본 에서 발표한 우리선종의 기술을 이어받은 도공가문.감사합니다.독일 함부르크에서 방조영자
Dearest Honorable Japan and China, WHY, stealing, bullying & bigotry toward small countries like Korea CONTINUE till today....?!?! Jealousy is evil to rich culture with so much talent & fun... Koreans are Righteous & Proud people...
@박득규-o3r3 жыл бұрын
역사왜곡 사죄하고 진정한 반성과 일본 은사죄해야할것이다.역사왜곡 은망국으로 갈뿐이다.😰😨😭
@koreailoveyou2 жыл бұрын
25:34 내가 나로서 만족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가 존재할 수 있기까지 일련의 시간들이 내릴 수 없는 등짐처럼 어깨 위에 가득 얹혀 있음을 깨닫고 나면 내 만족만 쫓는 식으로 세상을 가벼이 살아갈 수 없게 되지요
@냥이-g6h3 жыл бұрын
심수관 가문은 도공이 아니라 청송 심씨 양반가문 입니다 청송 심씨중에서도 양반의 절개를 지키고 고향으로 낙향해 구휼을 하는등.. 이후 연구에 밝혀짐 왜란이 발발하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삼촌과 함께 전쟁에 나갔고 포로로 잡혀간후 일본 해안에 버려진 상태로 살아남은 조선인들끼리 뭉쳐서 촌락을 건설하고 살았음(대다수의 조선인들은 노예로 거래됨 끌려간 양반자제들 극소수가 사무라이 집안에 입양되기도 했지만 죽임을 당하는일이 잦음 당시 조선인 노예로 인해 세계 노예가격이 폭락했다고함) 그이후 일본인의 텃새로 마을을 옮기기를 여러번 도자기 기술이 귀한것임을 알고 끌려간 도공들의 기술을 이용하여 자리를 잡았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조선인들과 이후 1천여명이 넘는 대규모 촌락을 형성하여 지금껏 살아 남았습니다 최근대에 와서야 조선인이 없어 일본인과 혼인하였다고 합니다 (메이지 유신쯤 도자기 기술이 차츰 필요없어진 시대상과 맞물려 조선인에 대한 조직적 차별로 촌락민들이 뿔뿔히 흩어짐) 아베총리의 외할아버지인 일본초대 총리가 죽기직전 즈음 13대 심수관에게 찾아와 대나무 숲에서 둘만 있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한반도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한일은 유명하지요 아베의 지역구인 야마구치는 보수극우 우익 혐한 으로도 유명하지만 한편으론 백제계 후손들이 대규모로 자리잡은 지역으로 예로부터 중앙정치에 진출한 사람들이 많은 지역입니다
@中村4557223 күн бұрын
야마구치 입니다
@냥이-g6h23 күн бұрын
@@中村45572 오타 모르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User-DarkHorse876511 ай бұрын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ㅈ 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에야 일본인 선생님께 심수관 도자기에 대해 알게되었네요 일본에 유명한 도자기 라고.. 임진왜란때 끌려간것일거라 했더니 15대째 이끌어가는 도자기 가문이고 일본 website 에도 조상이 한국에서 끌려왔다라고 적혀 있다네요.. 대단한 가문이네요 한국얼을 버리지않는
@진도개-k9e3 жыл бұрын
도자기는....지금의...반도체 만큼 혁신이였다
@장기원-m7m3 жыл бұрын
조선의 문화의 우수성, 원조 이런게 대단한게 아니고 심수관 가문의 정신이야말로 아름답고 고귀하다고 본다.
@슬기로운-r2s3 жыл бұрын
역사를 배울때 사,농,공,상 의 순서로 배워서 무시했던 교육의 잘못된 점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박득규-o3r3 жыл бұрын
역사문서에대마도ㆍ확실이한대한민국것이라고문서에입증서류로남아있다.😀😃😄😁😊
@장미-y7s3 жыл бұрын
이런 방송은 많이 시청해야 진정한 역사가 보입니다 짝짝짝 일본여행 계획은 심수관과로 가야겠네요 ㅎ
@장미-y7s3 жыл бұрын
언젠가는 한일관계가 다시 완화되길 바랍니다 짝짝짝
@화성가즈아-x3k2 жыл бұрын
그냥 기술접근이 힘든거였지. 조선의 도자기 기술은 꽃을 피우진 못 했네!!....금속활자, 금속기술, 한글도 그렇고 지리적, 문화적 한계성이 있었음.
@오재훈-w2t3 жыл бұрын
근대 우리도 반성 해야할게 도공들이나 기술자들 천대해서 일본에서 잘 대접해주니 안돌아오고 남은 사람도 많다던대... 일본에서 명품 도자기 만들어내고 그게 지금도 유물이고
@김봉수-w2v3 жыл бұрын
민간외교문화교류★ 도자기 야끼?? 매년 연례행사로.할순? 감동의 물결이 역사로 남겠다 대단한 심수관 족보 조선의혼 명치유신의근간★
@BLACK-hh6ih9 ай бұрын
한국이 버린 도공이 일본에서는 장인이 된 업적은 인정 받아야지!
@dsmhan52892 жыл бұрын
그들을 한국에 이주할면 절대 안을 겁니다 처우 대우가 아주 열악하니까요~~~
@임수리-r4o5 ай бұрын
유대인이 2천년간 정체성을 지켜낸게 얼마나 대단한일인지 새삼스럽다
@김장곤-w5m20 күн бұрын
우리는 그렇게 못하죠. 우리도 침략하면 됩니다.
@장미-y7s3 жыл бұрын
일본 천왕도 백제의 후손이라 이미전에 밝힌바 있어요 일본 현지 인중 한일 혼혈이 아닌 이가 몇이나 될까요
@gwaksdGSDulsan9 ай бұрын
도기에 영혼을 담고 이어가기 위함이라, 영혼의 품질ㆍ이라는 특성을 가지기 위한 일본의 야심 이었을것이다.
일본 정치가들도 이런 도공, 도자기 뿐만 아니라 일본 고대 역사의 뿌리도 백제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사람이 건설했다는 것을 인정하면 좋겠는데 안타깝네요
@의사양반과무쇠덩어리3 жыл бұрын
에휴 도예가가 왜 그동안 안왔을까 기술자 천시하고 정치질 하는 사람들만 받드는 나라에 뭐가 좋아서 지금도 공무원은 죽어라 파는데 정작 나라 먹여 살리는 기술자들은 쳐다도 안보지? 적어도 전기 정책에는 정치질 전문가 말고 기술 고문 불러다가 해라 좀 이상한데다 원전 짓는다고 하지말고
@dsmhan52892 жыл бұрын
일본으로 끌려간 본인들에게는 잘된일 한국에 있었으면 천민으로 대대손손 살았을 텐데~~~ 노동 기술예술을 천시한 조선 이였으니까~~~
@소피아-m6y3 жыл бұрын
일본은 지들이 억지로 데려가놓고 괴롭히면 안되지
@어울림-x4n3 жыл бұрын
배은망덕한 일본놈들 역사왜곡을 일삼고 반성도 없고 호시탐탐 우리땅을 넘보고
@jkb36213 жыл бұрын
조선에선 천민으로 살다가 일본에서 영지도주고 마을을 다스릴수있는 권한며 상급 사무라이 대우 해주니 조선으로 오고싶은 생각이 없겠죠 심수관 이삼평 입장에선 오히려 잘됀듯 조선에 있었으면 이름모를 천민으로 죽었을텐데
@jonctmaga14863 жыл бұрын
ㅂㅅ아 장인은 평민이다 무식해서 용감하군
@jkb36213 жыл бұрын
@@jonctmaga1486 조선시대 신량역천이라 하여 장인이 신분상 양인 일지라도 천민대우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재물을 모아봤자 양반이나 지방관에 이런저런 이유로 빼앗기다보니 그저 먹는거입는거 외에는 재산을 모을 이유도없고 의지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인 노비들은 교육을 받지못해 글도모르고 그저 자신들의 처지가 팔자라 생각하며 그저 양반을 마땅히 주인으로 모시며 살다보니 조선이 500년동안 권력을 유지할수있었고 또한 양인에게 만 국방의무가 있어 소작농 양인은 국방의무 하랴 농사지랴 재산을 모으기도 힘들었고 먹고살기 힘들어 차라리 노비가 돼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니 조선사회가 국력이 약할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조선시대 양반 빼고는 대부분 소작농인 양인이나 노비나 사는건 매한가지 일본 사무라이대우 해준건 조선으로 치면 양반계급 으로 신분상승인데 조선에선 꿈도 못꾸는 일이죠 참고로 일본은 노비제도가 없었고 국방의무는 사무라이 계급이 하고있었으니 농민이나 상인들은 자기분야만 열심히 하면돼었고 또한 재산을 모으면 그재산을 사무라이라도 함부로 빼았을수 없었고 오히려 오사카 재벌급 상인들에게 다이묘들이 급한돈을 빌리는 일도 많아 오히려 오사카상인들에 다이묘들이 고개를 숙이는 경우도 있으며 이 오사카상인 가문중에 지금끼지 이어져 현재 미쓰이그룹 스미모토그룹 등이 있습니다 이글의 요지는 조선은 사농공상 을 철저히 적용하여 농공상은 조선 망할때까지 천대받고 무시받고 살았다는것이고 일본은 사농공상 이 있지만 그 구분이 느슨하고 때로는 상업계급 공업계급 이 사무라이 계급을 고용하는 경우도 많았고 일본에서 어느정도 영양력있는 세력이 됄수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jkb36213 жыл бұрын
@@jonctmaga1486 그리고 과연 심수관 이삼평 이 조선에 있었으면 지금처럼 이름이나 역사에 남겼을까 하는겁니다 과연 조선이 접시하나라도 수출해서 산업으로 육성해 발전식킬 의지나 노력있었냐는겁니다 그리고 조선의 도공들 대부분은 임진왜란후 조선에 돌아오길 거부했다는건 사료에도 많이 나옴니다 그리고 이삼평 심수간 후손은 한국인이 아니고 완벽한 일본인으로써 일본에서 존경받으며 살고있는 사람들이며 각지방 단체 에서 해마다 그들을위해 축제를 열고 떠받늘고 있습니다 그들의 조상은 조선인이 맞지만 지금은 어면히 일본 국민으로 살며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존경받으며 살고 있는사람 들입니다 단적으로 한국에 한번 방문했다고해서 그후손들이 한국으로 귀화해서 한국에살 생각 할까요 그들이 일본에서 차별받고 무시받고 살았다면 한국으로 귀화해 사는게 당연하겠지만 아마 절대 한국에와서 살 일은 없을겠지요 저후손 입장에선 자기조상의 유언을 이루어주기 위해 조선에 불을 가져가위한 상징적인 행사인거지 그불이 있다고 도자기가 잘구워지겠습니까 불을 가져가기 위해 한국 지방단제 도움을 받고 한국언론에 나오다보니 한국언론의 입맞에 맞게 일본에 차별받았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하지않았나 합니다 일본 지방단체 사람들 보면 이삼평 심수관 같은 사람들 자랑스러워 하고 고마워하는 거를 느끼실겁니다 제가 볼때도 그후손 들도 지금 일본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만족하며 살고있는거 가습니다 우리역사에서 도자기 기술이 있음에도 조선에선 그걸 활용해 부국강병을 이룰 생각조차 않했다는점이고 일본은 조선에서 크게 의미를 두지않는 도자기 기술을 가져다 공업화하여 유럽에 수출하여 부를 축적하였다는점 아무리 똑똑하고 손기술이 좋은 민족이라도 이런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못하는 지배층의 사상과이념은 일본과 조선의 큰 차이 이며 지배층 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는 교훈이라 할수있지 않을까합니다
@아베똥구멍친일앞잡이3 жыл бұрын
쿤타킨테가 웃고가것네 미국흑인이 지금잘먹고 산다고 납치를 정당화 할 수 는없는법 당신 논리라면 아메리카 흑인은 당시노예상인들이 은인인가? 울 자식도 재용이한테 입양보내야 잘사는건가
@jkb36213 жыл бұрын
@@아베똥구멍친일앞잡이 미국 흑인은 노예로 잡아가 노예로 부려먹은 경우이고 조선의 도공들은 농민보다 천대반던사람들 을 일본에 데려가 양반계급인 사무라이신분을 주었고 이삼평같은 사람은 3000석 사무라이 계급을 주었지요 연봉 3000석이 작은겁니까 당시 1만이면 지방번의 영주급 이지요 그리고 이삼평같은 경우 죽은후 사당을세우고 신 으로 모시고 있지요 이게 미국흑인과 조선 도공이 같은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