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아니면 누가 이렇게 정리와 설명을 잘 할 수 있을까요?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재미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leeb9 Жыл бұрын
마지막에 Q&A 시간 좋네요
@군자불기-w9c Жыл бұрын
짝짝짝! 박수ㅡ언제들어도 신나는 이순신의 승리, 우리 수군의 용감무쌍한 전투력!
@박소영-k8w5k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교수님!!!
@황병춘-n4n Жыл бұрын
교수님 영상 잘봤습니다. 말씀하시는 톤이 너무 좋습니다.
@ZoRbAKIM2 Жыл бұрын
우리 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잘 듣고 잘 새기고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교수님 건강하세요~~
@이진혁-j2f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 관련 컨텐츠는 계속 봐도봐도 새롭고 재밌다~ ㅎ
@nsne3126 Жыл бұрын
흥미진진합니다
@유수윤-m4o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선추천 후시청합니다 ㅎㅎ
@pdoly1 Жыл бұрын
인트로에 histroty가 수정됐군요ㅋㅋㅋㅋ 오늘도 잘 보고 가겠습니다~
@jokiki-yf2ir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박유경-i5z Жыл бұрын
길어서 조아요! 오래오래 해주세요~
@5280jura Жыл бұрын
너무 재밌게 매일 들어요~!
@999seo9 Жыл бұрын
태어나서 이리도 리얼한 임진왜란 처음 입니다 부친 이정 그리고 부인이 보성군수 딸 방씨 였다는 것까지만 알고 있는대 게속해서 쭈욱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EstelleSO Жыл бұрын
궈한 기록들이 불탄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
@피부암통피 Жыл бұрын
고려 7대실록ㅠㅠ
@Ahndayha11 ай бұрын
길어서 너무 좋아요ㅠㅠ 임진왜란 다음편도 기다립니다 교수님!!
@redmoon93 Жыл бұрын
판옥선은 소나무로 만든 평저선 이라 일본의 새키부네에 비해 무겁고 단단하고 새키부네는 삼나무로 만들어 가볍고 빠르지만 단단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판옥선은 선내에서 포를 홀 수 있었으나 새키부내는 선내에서 포를 쏘기는 힘들어 매달아 쏘았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해류의 움직임에 더 잘 버티고 대응이 용이하며 포의 사정거리가 더 잘 나오는 판옥선이 유리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세키부네보다 판외선이 더 높아 일본의 주 전술인 등선육박전을 펼치기에 어려웠다고 합니다. 게다가 판옥선에 뚜껑을 덮은 형태인 거북선이 나와 돌격선 역할을 하긴도 했지요 침략당한 입장에서 철저하게 자국의 바닷길과 군함의 이점 그리고 각종 전술을 잘 버무려 싸우기도 전에 이기는 싸움믈 한것이 무패의 이순신장군님의 신화이겠지요
@user-ml7vm3lc1y Жыл бұрын
조선배 평저선 참나무소나무 무겁고 단단함 나무못 사용 충격에 강하고 밑바닥이 평평하여 화포사용에 용이하고 제자리선회가능 4방향 포격가능 속도는 느림 격군이 많은 인원이 투입 일본배 첨저선 삼나무 사용 가볍고 부실함 쇠못사용 속도는 빠르고 일본에 삼나무는 넘쳐나고 나무재질이 약하여 가공이쉬워 배만들기가 빠르고 쉬움 대신 충격에 약하고 화포는 앞뒤로2개밖에 사용불가 때문에 화포보단 해적마냥 접근해서 백병전 조선은 양보단 질이고 일본은 질 보다양 조선배,화포가 사기다 하지만 칠천량해전을 보면 지휘관 역량이 제일 중요 임진왜란 3대대첩 보면 한산해전은 비등했지만 완벽한승리였고 행주 진주 대첩은 조선이 열세 였음에도 막아냄 지휘관이 중요
@Jaypark11136 ай бұрын
1차해전을 정리하면서 조선수군의 피해가 놀랍게도 하나도 없는 것을 이야기하는 교수님의 해맑은 모습이 너무 귀워우십니다...ㅎ
@nirvanafriend Жыл бұрын
긴시간 양질의 강의 감사드립니다 거의 한시간을 교수님같은 깊은 식견의 학자의 강의를 인터넷 사용료만 내고 무료로 볼수 있다니 다만 한가지 교수님께서 아무래도 군사전문가까진 아니시다보니 탄금대 전투나 이순신 장군 해전에 대해 군사적인 관점에서의 전술이나 전략같은 딥한 얘기까지 기대하는건 욕심이겠죠 감사합니다 교수님
@AmesaGim Жыл бұрын
욕심인거 알면 속으로만 생각하지
@swwoo1955 Жыл бұрын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그런데 몇가지 말씀드릴게 있는데 위에 어떤 분도 썼지만 목선끼리 충돌해서 박살내는 건 선체에 큰 무리를 주기 때문에 양쪽이 다 위험해집니다 상대의 배를 부딛쳐서 침몰시키는 건 배에 충돌용으로 특별한 장치가 있어야 가능한거고요 배를 깨뜨렸다는 표현은 배에 불을 질러 부시고 침몰시켰다는 의미겠죠 그리고 그 당시 포탄은 폭발하지 않는 포탄입니다 따라서 돌이나 쇠덩이를 날려서 배에 구멍을 뚫고 쇠구슬을 넣어서 산탄처럼 수백발을 한번에 쏘아서 적을 죽이는거고 대포로 목재로 만든 배를 침몰시키는건 어렵죠 흔들리는 바다에서 대포로 겨냥하기도 힘드니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쐈죠
@swwoo1955 Жыл бұрын
그리고 수군의 경우도 육군처럼 상시로 군이 주둔하고 있는게 아니라 소집명령을 내려서 각 포구로 모이는 방식이라 이런식으로 대규모 적이 빠르게 처들어 올 때는 병력소집할 시간이 없죠 원균을 변명하기는 싫지만 수군모집이 안된 상태에서 전함과 무기를 파괴하고 도망치는건 당연하죠 전세계적으로 전쟁에서 후퇴시 적군에 노획될 염려가 있는 중화기나 식량의 파괴는 기본이죠 이억기도 병력소집이 늦어서 첫출정에 합류를 못한거고요 이순신 장군이 특출난거라고 할 수있습니다
@j.svaraba9193 Жыл бұрын
👍
@이파란이 Жыл бұрын
다음 회 언제 나와요 교수님?
@info-k77 Жыл бұрын
지금과 마니 다르지 않습니다...우리는 지금도 원균이나 선조 그리고 이순신의 후예들이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원균이고 선조일까요? 과연 누가 이순신 일까요? 제발 국민들!!!!!!! 이순신과 원균을 구분하는 힘! 그 힘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도 원균 같은 사람을 추종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kephas7772 Жыл бұрын
그러니 옛날 고구려 때의 유기100이나 신집5권도 도성이 점령당하며 불타버렸겠죠... 다른것은 재건 될 수 있으나 역사적 자료가 불탄 것은 정말 안타깝네요...평상시 보관하는 곳을 달리했더라면 어땠을까???
@jerics8000 Жыл бұрын
조선이 고려사를 편찬하면서 고려왕조실록도 여러 부 더 필사했다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ㅋㅋ 아쉽습니다!!
@남천만 Жыл бұрын
초반 상황에 부산진 동래와 함께 다대포도 언급해주세요~
@junheelee6664 Жыл бұрын
잘보고 있습니다 교수님 마이크가 조금 불안정하네요😂
@Ye-nv7rb Жыл бұрын
고려사가 불타고 없다고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c.c3444 Жыл бұрын
전쟁 초기 긴박감이 느껴지네요
@gayverchoi4999 Жыл бұрын
1차 출정 장계 논공에 의해서는 종2품 가선 대부로 봉작. 2차 출정 이후로 정2품 반열에 오르십니다.
@옥상현-q4h Жыл бұрын
일본인이 쓴 임진왜란 관련 책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옥상현-q4h Жыл бұрын
일본에서는 자기가 불리한 사실은 역사교육에서 제외한다고 하면 우리가 일본말로 책 또는 만화로 인터넷등에 올리면 일본 젊은이들이 많이 보지 않을까?
@jhk-oe7tz Жыл бұрын
마지막 노비는 어떻게 관리되나요? 라는 질문에 추가질문인데요... 문서상 작성말고 빼도박도 못하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나요? 예를 들면 몸에 문신처럼 노비라고 새겨놓으면 문서를 불태워도 신분박탈이 어렵잖아요... ㅜㅜ
@군자불기-w9c Жыл бұрын
내생각ㅡ노비는.한 집안에 소속된 무보수 머슴ㅡ가혹한 주인 일때는.도망갈수도, 그러나 갈곳이 없으니 그냥 붙어있을 수 밖에ᆢ
@jhk-oe7tz Жыл бұрын
@@군자불기-w9c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ㅠㅠ 제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닌데요 ...
당파싸움, 왕의 끝없는 횡음. 백성들에 대한 착취....그때 갔어야 했는데. 중국이나 일본중 하나.
@따라하기-y6k Жыл бұрын
이분 TV에서 보던 분이네
@pinetreehi60947 ай бұрын
신립은 어리석은 장군인듯.. 조총에 배수진이라 과녁이 따로 없는듯..
@seungheelee9646 Жыл бұрын
50분. 대포 폭팔은 대표적 오류. 당시 포는 폭팔물이 아니고 돌덩이 쇠덩이 대형활(대장군전) 날리는 수준.
@Zuilietzhan Жыл бұрын
사실 관노들 대다수가 처음 부터 노비가 아니고 권력투쟁에서 밀렸거나 역모로 숙청당한 양반 가문 후손들이라 당연히 리셋하고 싶었겠지..
@wonhahm Жыл бұрын
신립이 왜 문경새재에 포진을 포기했냐고요? 군기가 없는 군대는 산속에 분산 배치하면 도망병이 속출해 제대로 싸울수없으나 배수진을 친다면 편제를 유지하고 싸울수있기 때문이랍니다. 근대까지도 전투는 현대전보다 더욱 편제를 유지해야만 가능했지요
@HCIm-np6ip Жыл бұрын
그것도 추측일 뿐...
@wonhahm Жыл бұрын
@@HCIm-np6ip 추측이 아닌 전략임. 진관제로 모은 농부들이 새재에 숨어서 일본군을 상대로 잠복해있다 활을 쏠수있을거라고 생각하는 방어전술은 유성룡같이 군 운용을 모르는책상물림의 뇌내망상으로 가능한 전략임
@Laughinggas-l5w Жыл бұрын
그렇다고 개죽음을 하나요. 그건 신립을 위한 궤변입니다.
@canto-dw3gq Жыл бұрын
이논리대로 원균쉴드가능함
@nasa123464 ай бұрын
군기??편제???한국처럼 산성이 많은 나라가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될까???국토 70%가 산인데 숙명적으로 적은인구,적은군대를 유지하면서 대륙세력,해양세력,유목세력등 상대시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무조건 지형지물을 이용한 수성을 해야되는 운명이고 진법적으로 맞고 그렇게 이겨왔다. 특히 문경세제 같은 좁고 험난한 산성을 이용한 수비를 했다면 승리는 모르겠지만 왜군의 시간소비 또는 병력소실의 타격이 더 있었고 최소한 탄금대 강변은 만주벌판이 아니야.. 말도 못 달리는 진흙밭 개죽음일뿐...
@tskk614 Жыл бұрын
전쟁에서 패하고 나면 도망치는 것도 전술의 하나임. 임진왜란은 초반에 약세를 보인 조선군은 끊임없이 도망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격으로 일본군을 몰아세우기 시작함. 도망의 미학(?)이 가장 빛을 본 전쟁이 임진왜란이고, 후에 병자호란때도 같은 전법을 쓰려다가 실패해서 항복함. 근데, 항복도 전쟁의 한 수단임. 현명한 항복을 통해서 전쟁을 그나마 빨리 끝낼수 있었기에 그정도(?) 선에서 피해를 줄이고, 오히려 청과는 우호국이 되어 수천년동안 민족을 괴롭혔던 북방으로부터의 우환이 사라짐. 물론 앞서서 일본과의 전쟁땐 싸울만하니까 끝까지 싸워서 피좀 봤지만, 굴욕을 면했던 거고, 이후엔 해양으로부터의 기우를 지울수 있었음. 웃기는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누르하치가 분조의 광해군에게 편지를 보내 3000명의 병력으로 출전을 하겠다고 요청했는데, 후에 홍타이지가 침략해오자 조선은 일본에 급전을 보내 지원군을 요청함. - 이 요청이 정부의 공식요청은 아니란 얘기가 있으나, 광해군때부터 일본의 관리들이 오랑캐가 침략하면 100만의 사무라이들로 토벌해드리겠다고 외교적 수사를 늘어놨는데, 광해군은 이걸 철석같이 믿고 누루하치에게 자랑하다가 정말 조청전쟁이 날뻔 한적이 있었음. 그래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일본막부도 조선파병을 논한적이 있으나 임진란의 쓰라린 경험으로 참전하지 않기로 결정함.
@삐용삐용-s8p Жыл бұрын
근거가 뭐죠?
@다시쓰는징비록임진왜 Жыл бұрын
이번 영상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너무 개괄적이라 개인적으로 다소 아쉬운 점이 있네요.. 그런데..내용중에 조선수군의 전투방식을 설명하시면서 충파와 당파를 같이 혼용한 것 처럼 이야기 하시는 점은 현 연구 내용과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충각 등을 이용하여 배와 배가 충돌하여 적선을 침몰시키는 충파전술은 고대 서양식 전투방식이고, 아무리 한일 선박 목재의 재질에 차이가 있다해도 자신의 함선도 위험해 질 수 있는 방식이죠.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이순신의 장계나 타 기록에서도 당파는 자주 언급되나 충파로 보일만한 기록은 전혀 없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겠습니다. 조선 수군도 전투 중반이나 말미에 근접전을 수행하여 적을 살상하고 적선을 불태우거나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적의 수급을 취하거나 왜선에 붙잡힌 조선인 포로 구출을 위해 도선을 하기도 하지만 이는 충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이죠. 그리고, 일본군의 해상전투방식에 있어 단순히 등선육박전만으로 설명하기는에는 첨언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왜란 초기에는 단순히 등선육박전이 일본 수군의 기본 전술이다 할 수도 있지만 임진년 이후에는 해전은 피하는 대신 조선 수군이 진출할 수 있는 해상로의 주요길목에 왜성을 쌓고 사전에 점거함으써 조선 수군의 해상진출을 원천 차단하는 방식을 취하고, 정유년 이후에는 그간의 패전 경험에서 기반하여 조선 수군의 퇴로 시에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기동전술이나 역으로 포구에 정박한 조선수군을 공격하고, 다수의 중소형함선을 이용하여 판옥선 한척에 7,8척이 동시에 접근하여 조선의 화포 운용을 무력화 시키는 새로운 전술을 취합니다. 이들 변경된 일본군 전술로 인한 괴멸적 패전이 정유년에 있었던 절영도 해전과 칠천량 해전이죠. 조선 수군의 전술도 한산도 해전처럼 공해에서 함대함전을 벌이는 방식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전 정찰을 통해 적의 적선이 정박해 있는 포구를 급습하여 적선과 인명을 살상하는 방식이 더 많이 사용되죠...
@jhk-oe7tz Жыл бұрын
기나긴 설명 잘 보았습니다... 원균만 아니었다면 그 변화무쌍한 일본전술도 소용없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을텐데 말이죠...ㅠㅠ
@다시쓰는징비록임진왜 Жыл бұрын
@@jhk-oe7tz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건 수많은 요인이 있죠.. 전략과 전술, 리더와 참모진의 능력과 자질, 전투력과 전력의 우열, 물자 및 인력의 보급 상황, 지형지세와 기후 등 계절적 상황, 주변 전황의 유불리, 더 나아가 군사제도와 운영 상황, 정치 사회와 문화적 요인, 외교적 영향 등 전쟁의 결과를 분석함에 있어 어느 한 요인만이 다인것처럼 이야기 하는 건 전쟁사를 좀 더 깊이 공부하고자 사람에게는 너무 단편적인 사고 아닐까요.... 특히, 개별 전투에 들어가면 그 전투가 벌어진 시점과 상황별로 이런 요인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 또한 고려해야죠.. 제한된 시간에 일반 대중들 대상으로 한 개괄적 설명에는 교수님 설명 같은 이런 접근이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좀 더 깊이 전문적으로 알고자 하는 분들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겠죠..
@홍서박-d4c4 ай бұрын
언급한 날자는 음력같네요. 1592년 음력4월13일은 양력 5월 23일.
@김유빈-c9d Жыл бұрын
선조의 몽진은 현명한 선택/ 지금의 가치관으로 재단하지 말고 임금이 곧 국가라는 왕정국가에서
@군자불기-w9c Жыл бұрын
내생각ㅡ제왕학을 공부한 임금ㅡ몰리는 전쟁을 오래 하연서도 건전한 멘탈(도덕적.정신적)을 유지함 ㅡ장면:패배소식.인명산상.굶주림에 대한 장거가. 올라왔다. 뽀쪽한 수가 있을리없다ㅡ임금은 슬퍼하며 크게 울고 말없이 빠진다.그러면 유성룡등등 신하들이 고만고만한 민심 무마책을 내놓는다.
@기덕이-u2w Жыл бұрын
세재에서붙들어매놔야하는데..아숩다..
@kkuljjun-brothers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 홍범도장군 편은 재미가 없었는데, 임진왜란 관련 영상은 매우 재미있어요. 다만, 구독자가 천천히 늘어 아쉽워요. 힘내세요, 교수님. 응원합니다!
@별바래기10 ай бұрын
선조가 임란 후 논공행상에서 호종인들에게 과도하리 만큼 공신을 책봉한 심정이 일면 이해 가는 밤이 이었네요,성리학과 과도한 계급주의가 부른 참사를 제대로 고치지 못하여 안타깝지만.
@Laughinggas-l5w Жыл бұрын
무능한 장군은 전시에 드러나는 법
@이기호-y7t Жыл бұрын
우세한 판옥선을 갖고 원균은 칠찬랴메서 어찌 다 전멸당했는지 모르겠네. 그런인간의 기념관을 짓는다는 평택시는 뭐지?
@el10011 ай бұрын
이미 여러 곳에서 일본의 공격이 예측이 된 상황에서, 일이 터지고 나서 갑자기 오합지졸을 모아서 전쟁을 하겠다고.... 이균이란자와 그 아래 맹꽁이들이 하는 꼬라지라니..... 그런 오합지졸 군대로 새제에서도 어림없었겠죠.
@babyjoda1880 Жыл бұрын
선조 파천에 대한 최초의 정확한 분석….
@달붕-h4o Жыл бұрын
육군장수들 정말 개념 없네 ~ 지형 지물 활용해서 전술을 펴야지 전략도 전술도 없으니 당나라 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