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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th7762Ай бұрын
보다 채널 전부 다 너무 재미있어요
@younghoonkim9199Ай бұрын
여러 국가의 역사 이야기 재미 있습니다.
@snowncheeseloveАй бұрын
주말에 즐거움!! 감사합니다 ❤❤❤
@ongs5526Ай бұрын
공손세력이 있었다는것도 고구려랑 오나라 위나라 이야기도 첨들어서 너무 재밌네요
@genchickenАй бұрын
손찬이형!
@seikkim4194Ай бұрын
@@genchicken당시 요동에 있던 공손씨는 공손찬과는 관계 없는 공손도였습니다.
@jinyoungan4830Ай бұрын
삼국지 게임에선 요동 너머는 지도에 구현을 안 하기 때문에 공손도 세력이 성 1개짜리 거지 세력같이 흔히 묘사되는데 사실 낙랑군도 공손씨 관할이었고, 은근히 큰 세력이었죠..
@genchickenАй бұрын
@@seikkim4194 손도형!
@투니버스Ай бұрын
우태부여 또는 초기 백제가 공손씨 세력 하에 있다가 독립하게 됩니다
@oneandonlyetudeАй бұрын
아니 썸네일에 다른 분들은 고구려사학자, 중동학자 이렇게 쓰여있는데 민수님만 애굽민수 이렇게 되어있는거 새삼 웃기네 😂😂
@user-nonamebutexistАй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임밸류 ㅋㅋㅋ
@hder9Ай бұрын
걍 애민으로 가자
@mik8630Ай бұрын
각 필드마다 ‘민수’ 는 계속 되어야 하니까 (끄덕)
@e.s583Ай бұрын
역시 재미있는 역사를 보다!
@조준환-v4qАй бұрын
크..쥰내 재밌다 진짜ㅋㅋ
@MsMasterAsiaАй бұрын
백두산에 의한 발해 멸망설은 이미 폐기된 이론입니다. 왜냐하면 정확한 연대가 나왔기 때문이죠. 946년 +-3개월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이거는 사서랑도 교차검증이 되는 부분입니다.
@whentheygolow_wegohigh7306Ай бұрын
한국 고대사 정말 흥미롭고 재밌어요. 특히 만주 일대 역사가 제일 흥미롭네요
@silpark6501Ай бұрын
공손연 이야기는 최훈의 삼국전투기에서 처음 알게 됐는데 이렇게 또 듣게 되니 재미있네요ㅎ
@chiwooempАй бұрын
백제멸망과 발해멸망의 공통점: 지방권력이 강한 나라가 외적의 수도직공을 못 막아서 단기전에 수도점령당하고 멸망.
@채송아-v5vАй бұрын
요즘 지방시/도가 특별자치시/도로 변하던데 설마요
@forza343Ай бұрын
@@채송아-v5v무슨 편지주고 받는시대도 아니고 지방에서 개인군대키울수있는것도 아니고 무슨 걱정을...
@j.c.s7762Ай бұрын
동감합니다 중앙집권이 약할수록 지방이 따로놀 확률이 높음 고려는 지방에 절도사라는 중앙에서 파견한 행정관이 있어서 전시상황에서 군대를 모아서 집결시킬수 있었죠 이런 지방관이 제 역활을 하려면 중앙의 명령을 듣는 인사여야하고 이것이 중압집권의 기준이라고 봅니다 고려는 큰 도시 기준으로 지방관을 파견하여 넓은 범위를 관장하게 했다면 후에 조선은 작은 소도시,시골변방까지 파견하여 중앙집권력의 위력이 실로 어마어마했죠
@chiwooempАй бұрын
@@j.c.s7762 수도직공 실패해서 역관광당한 사례가 바로 고려시대때 나왔죠. 귀주대첩... 요나라는 발해상대로 수도직공성공해서 나라기틀을 마련했다면 고려상대로 수도직공실패해서 나라국운이 기울기시작한...
@j.c.s7762Ай бұрын
@@chiwooemp 맞습니다 근데 요는 고려 침공 실패로 나라가 기울지는 않았어요 고려 침공후 요 성종 시기동안 최전성기를 유지하다 성종 다음 시기부터 쇠퇴하죠
@fdeath74Ай бұрын
첨부터 끝까지 집중력 있게 잘봤습니다
@jungsuplim8643Ай бұрын
흥미롭게 시청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크로우로-x4cАй бұрын
26:48 애굽민수님 이미 오래전 네이버 웹툰에 비슷한 내용의 웹툰하나가 있었습니다 고구려 동천왕에게 등용된 주인공이 삼국동맹을 맺는....... 웹소설중에도 오나라를 뺀 촉한과 고구려가 동맹해서 대승을 거두는 것도 있고
@inhyechoi57567 күн бұрын
둘 다 제목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
@back_san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안정준 교수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발해의 주축이 되는 주민들이 말갈부족이라고 하셨는데요 고구려 멸망시기와 발해의 건국시기가 큰차이가 나지 않고 영토도 고구려 영토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면 발해가 말갈부족이 주축이라면 기존의 고구려 주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고구려인이 주축인 고구려가 멸망하고 그땅위에 그대로 발해가 세워졌는데 짧은 기간동안 순간이동에 가까운 민족대이동이 일어났다는 건가요? 그 넓은 고구려 영토에 고구려인들이 귀족 백성 할거없이 전부 다른나라로 다 이동했고 어디선가 엄청난 수의 말갈인이 들어왔다는 건가요? 어릴때 국사수업때부터 이부분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어서 고구려사 전공하시는 교수님께 정중히 여쭤봅니다.
@누하-h3jАй бұрын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윤관 편에서 여진인은 원래 고구려에 속한 부락이었는데, 이후 고려를 배신하고.. 등의 표현이 나옵니다. 고구려를 구성하던 부락입니다. 이후 망한 신라인들과 결합하여, 고려를 어버이나라로 섬기며 기왓장하나도 깨트리지 않겠다. 언플하고 금나라를 건국합니다... 언어 계통을 우리와 동일하며 같은 뿌리에서 나온 민족인데 나중에 갈리고 갈리길 반복해서 서로 갈길을 가게된 것이죠... 조선초에 태종 이후 확실히 분리된듯함...
@back_sanАй бұрын
@@누하-h3j 말갈인을 고구려의 소수부족이라는 사료가 여럿 있습니다. 고당전쟁시 고구려군의 군대편성에 말갈인의 비율에 대해 나오는 부분도 있어요. 역시 일부분이라고 나옵니다. 그럼 궁금한건 고구려때 소수부족이었던 말갈인이 갑자기 엄청난 인구폭발을 해서 발해의 주력 주민이 되었다는 건가요? 삼십년정도만에? 그럼 기존에 다른 고구려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거 같지만 그냥 그렇다고 친다면 고구려때는 말갈부족이 다수라는 사료가 없는데 왜 굳이 발해는 말갈인이 다수인종이고 소수의 고구려인이 지배계층이다라고 강조하는걸까요?
@임윤서-t1gАй бұрын
대부분추측임.과학도 마찬가지고 명확히 증명해내서 정해진것 왜에는 이럴가능성이 있다. 는건데 그 가능성중 많은 연구자들의 지지를 받는 가설이 일반인에게 알려지는거에요. 즉 가설이라는 거지 확실 하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힐링드라이빙Ай бұрын
돌궐-말갈-여진-만주족..비슷한 뿌리(계보)라 알고 있고 고구려 백성의 많은 부분도 (동)돌궐족이 차지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누하-h3jАй бұрын
@@back_san 흠 왜 지워지지.. 고려사 윤관편에 따르면 말갈, 여진은 원래 고구려에 속한 부락인데 , 배신하고 분리되어 나갔다란 표현이 나옮니다. 우리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통합되지 못한 세력입니다. 고려와 분열 싸움중에 고려에 통합되지 않은 신라유민 김함보가 세를 규합하여 금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당시 남송, 금, 고려 역사서 에 의하여 교차 검증 가능하고요. 남송 같은 경우 금나라를 신라라 부르며 신라의 예법에 따라 외교관을 맺었다라는 기록도 있읍니다. 또 청나라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 따르면 조선 태종때 조선과 여진은 남남수준으로 분리되어 나간듯 합니다.
@aleessungАй бұрын
항상 넘 재밌게 잘 보고있어요 ❤ 그런데 BGM은 굳이 안넣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 교수님들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합니당
@sarahpark-r2tАй бұрын
이거 유튜브에서 자체적으로 넣는단 이야기 들은적이 있어요;;
@uidheveyeАй бұрын
너무재밌다❤❤❤
@green_tea_piccoloАй бұрын
여러 국가의 역사 이야기 재밌네요
@zkzkdhzkzkdhАй бұрын
너무 유익한 시간 감사합니다 😊
@chichi-videoАй бұрын
13:00 돈으로 평화를 살수없다 ... 아주 중요한 내용이네요 ㅎㅎ 돈으로 평화를 사려고 하면 안됩니다
@이불데드Ай бұрын
돈으로 무기를 사야 평화를 얻는거지요 평화는 돈으로 사는게 맞습니다 외교도 돈으로 해야 .. 잘 통합니다 평화는 돈으로 산다.. 틀림없이 옳은말!!
@chichi-videoАй бұрын
@이불데드 그것도 맞긴한데 제가 생각한 돈으로 평화를 산다는건 대북송금을 얘기하는거에요 ㅎㅎ 이것저것 다 퍼줬는데 특히나 온갖 꼼수를 부려서라더 북한에 나랏돈을 넘기려 하는 매국노들이 있어서 딱 떠오른거였네요
@변형준-h1qАй бұрын
평화는 돈으로 사는 겁니다. 군대가 생산성이 있나요? 다 비용이지
@DemianVonFriosАй бұрын
돈이 부족하지 않았나를 생각해야죠. 지금 미국천하가 결국 돈으로 이뤄진거 아닌가요?
@JMJM_Ай бұрын
평화를 돈이 아니면 뭘로 사지? 돈=국력=평화
@변형준-h1qАй бұрын
7:42 백두산 폭발한 년도는 정확하게 나왔지 않나? 발해 멸망 이후로 정확하게 946년입니다.
@돈담Ай бұрын
폭발년도가 어떻게 946년이라고 확정된 사실처럼 생각할 수 있죠? 1000년전 일인데
@변형준-h1qАй бұрын
@돈담 탄소연대측정+나이테+775년에 있었던 감마선 폭발을 통해서 946년 10월~12월사이로 측정됬습니다. 자세한건 직접 찾아보시길
@임윤서-t1gАй бұрын
발해 멸망쯔음에 온 하늘이 화산재로 덮여젔다는 내용이 있다고하네요
@변형준-h1qАй бұрын
@@임윤서-t1g 946년 대분화는 확정이고 그전에 짜잘한건 있을수도있죠.
@임윤서-t1gАй бұрын
@변형준-h1q 그 확정이라는게 그들의 추측임 탄소동위원소 측정이 무적이 아님. 오류ㅈㄴ많음. 이런걸로 그때쯤일거라고 추측하는거뿐. 정확하게 몇년도다 하는건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이상 🐕 소리임.
@jhj7075Ай бұрын
고구려얘기는 아는게 없고 전부 다 모르던얘기라 너무 재밌음 ㅋㅋ 자주 오시면 안되나여
@StellaDitoАй бұрын
09:10 5대 성왕X->10대 선왕O 발음을 잘못 알아들으신 듯. 성왕은 재위한지 1년도 안되서 사망함. 선왕이 818~820 말갈의 여러부족 정벌.
@황경빈-v6kАй бұрын
백두산 화산 탄화목이랑 감마선 폭발 피폭 흔적으로 946년 폭발로 추정하던데 사학계에서는 이것도 참고 정도로 보는건가요?
@fevernova40Ай бұрын
또 어떤 과학 유튜버는 미국의 경우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원끼리 협업으로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던데 우리나라는 다른 분야 간 소통이 없고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고. 우리나라의 부족한 고대사 자료를 메우는 데 고고학이랑 자연과학이 꽤 유용할 것 같은데 역사학계에선 애써 무시하는 느낌?
@jeffpark6638Ай бұрын
너무 기록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나 싶습니다. 기록이 없으면 너무나 쿨하게 그냥 열린 결말로 놔두고 퍼즐을 맞추려고도 하지 않으니…
@박똘-n1pАй бұрын
@@jeffpark6638 그러면 소설을 쓰리?성경믿습니까?
@투투-b6qАй бұрын
백두산 화산 분화로 인한 발해 멸망설은 학계에서도 근 십여년전부터 사장되가던 가설이였습니다. 그냥 저 분이 너무 보신적으로 말씀하심
@투투-b6qАй бұрын
@@fevernova40 한국도 고고학과 문헌사학, 유물학의 교차검증이 기본이 된 세상인데요
@林成勳-t7hАй бұрын
9:47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파괴, 지진으로 인한 파로스의 등대 실전 그런 걸 꼽을 것 같았는데 아니였네요.
@치킨무-q1qАй бұрын
09:30 성왕이 아니라 선왕입니다
@greener_uzАй бұрын
이번에 책 샀는데 잘 보고있습니다~! 자기전 몇장씩 읽고자는데 너무 좋아요
@houbirdАй бұрын
화산 폭발보다 거란 기병의 특유의 기동력 다이렉트 수도 함략 전술이 맞아떨어졌고 발해 내부의 분열로 인해 순식간에 털렸다는게 더 신빙성이 높지 않을까요? 만약 화산 폭발로 무너졌다면 거란도 피해가 상당했을텐데
@검막리Ай бұрын
내부분열 후 거란의 공격으로 한순간에 멸망..이게 명확한 멸망원인이군요. 고려는 막았는데 참.
@qnfrhfbsakxmrqjqАй бұрын
가장 유력한 설이죠 발해는 그 흔한 기록서 하나 없어서 학자들도 애먹지만 파편화된 기록을 모아서 유추한 결과 짧은 시간내에 왕이 너무 많이 바뀐걸로 보아 왕권 다툼이 치열했을걸로 유추됩니다 그래서 외부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해 순식간에 무너졌을거라는게 유력설입니다 지금 상경용천부가 있던 지역은 중국정부가 발굴을 허용하지 않고 토지개발을 한다고 싹 밀어버려서 노답상태가 되었습니다
@투투-b6qАй бұрын
대조영계와 선왕계의 대립이 계속 심화되고 있었고, 고려나 중국으로 귀부한 유력 왕족이나 귀족들이 발해 멸망 10여년 전부터 계속 문헌으로 기록됨. 이후 발해부흥운동으로 생겨난 국가들이 합심하지 못하고 일부 동맹을 제외하고는 데면데면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거 보면... 내부 분열로 약화되다가 거란이 결정타를 날린게 거의 기정사실화된 가설이죠..
@mool_tissue25 күн бұрын
고려도 거란의 공격으로 멸망할 뻔 했죠. 2차 고려거란전쟁 때 개경이 털렸으니
@dogmie1Ай бұрын
관구검이랑 고구려가 싸운건 알고 있었는데 백스토리는 처음 들어보네요 ㅎㅎ
@wow88121Ай бұрын
그정도의 화산 폭발이면 분명 폭발 전 십수년간 전조 증상들도 많았을텐데 혹시 그거 때문에 발해가 내부적으로 분열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starlightt20Ай бұрын
발해는 애초에 화산 관계없이 분열이 심했음. 왕 기록이 중간에 몇대가 없을정도니 그냥 말다한거죠.
@햇살초롱Ай бұрын
@@starlightt20왜없어 왕들 있는책 있는데ㅋ
@jeonggeunkim6002Ай бұрын
공손연이 있던 시기만 해도 고구려는 약했죠 아무리 사마의라고 해도 4만명도 부풀린 것일텐데 원거리 원정이라 그중에서 식량과 화살 등의 보급병사가 절반이었을테고 전투병 정예는 2만명 정도였을텐데 고구려가 멸망직전 까지 갔으며 옥저까지 도주를 하였으니 물론 남아있던 수 도의 백성들은 죄다 도륙되어 죽거나 포로로 잡혀갔고 ... 정사 삼국지 기록조차도 100만명 하면 10만명으로 봐야하고 10만명 하면 1만명 정도 로 봐야 정상인데 4만명이면 보급부대 까지 4000명이나 갔으려나 ...
@JesusCrustPizzaАй бұрын
박현도 교수님이 어쌔신크리드 미라지 역사학자 관점 리뷰한번 해주셨으면 ..
@username71731Ай бұрын
와 이거 너무 재미있겠네요
@DannyLee11Ай бұрын
역사를 보다❤
@이순혁-b7gАй бұрын
좋아요 꼭누러주세요 제발많이 많이 먹어서 배가 고프다
@dkji5401Ай бұрын
유익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보다'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서울대 박정재교수님을 패널로 모시면 더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암튼 늘 고맙게 시청하고 있습니다. 화이팅~^^
@funziofunАй бұрын
박교수 가족이니?
@김기범-g2h6hАй бұрын
@@funziofun본인일수도..
@jeffpark6638Ай бұрын
역시 맥락을 파악해야 역사가 보이고 현재가 어떤지 파악할 수 있네요.
@_____aniАй бұрын
매주 지식이 조금씩 쌓이는 방송 일요일 오전 최고의 선택 그시절 몽골군은 얼마나 쟈닌했길래 어딜가도 나올까ㄷㄷㄷ
@nanyoungkim444Ай бұрын
역사에 객관성은 없겠지만 다양한 의견을 알게되어 항상 감사합니다
@youngjunlee3939Ай бұрын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는 자연 증거와 문헌 기록이 교차 검증되는 년도가 있죠. 발해 멸망과는 관련 없어요.
@duna0612Ай бұрын
보다 채널 너무 재밌고
@wwr-q6iАй бұрын
유목민이 주류인 공동체가 제대로 된 국가를 긴 역사로 유지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jheartu7036Ай бұрын
그거야 국가주의자들 얘기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는 유목민들임. 베르베르족도 그렇고 노마드라는 말 자체가 나온것도 유목민처럼 살고싶은 사람들이 만든 단어인데, 유목은 인간의 시작이자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잘살고 있음
@mysteryoh9585Ай бұрын
주말 점심시간 최고에 선택~
@윈윈-i5bАй бұрын
고구려가 후한 이후 삼국지 시대와 역사가 겹치다 보니 더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기록이 별로 없었다는 게 참 아쉽긴 해요.
@Charlie1017kikiАй бұрын
중국 강소성에 당태종이 연개소문에게 쫓기다 우물에 숨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났다는 얘기가 있던데, 이것도 사실인지 역사를 보다에서 다뤄줬으면 좋겠습니다.
@hpaulpaik1380Ай бұрын
현대 이슬람의 문제는 근대화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의주제도 바로 후발국이 어떻게 선도국을 극복할 수 있는가를 다루는데 박현도 교수는 매일 미국 탓만 하죠. 현대의 중동 이전에 이 지역에는강력한 오스만 제국이 있지 않았나요? 서방의 근대화가 이슬람을 압도한 것이고 오스만 투르크는 그 대항에 실패한 것이죠. 매일 미국 탓만 하면서 테러만 하면 그게 해결이 되나요. 지금 중동에는 대부분 왕정 국가고 시민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도 없죠. 남의 탓, 서방 탓을 하기 보다 이슬람은 근대화의 실패 문제를 더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moslow_southkoreaАй бұрын
26:28 교수님 자본주의? 리액션 부탁드립니다...
@조석규-q3gАй бұрын
예전에 '삵의 발톱'인가 웹툰이 있었는데 그게 고구려에서 삼국지 시대 중국과 경쟁하고 싸우고 그랬던 이야기였던게 기억나네요
@으컁-u2rАй бұрын
도대체 어떤 계절에 녹화하신거에요?
@shp3481Ай бұрын
쏘울 선생님 여기도 나오시는군요!!
@thankyou9481Ай бұрын
고구려 발해가 대단한게 이 둘 없어지고 한번은 화북 빼앗기고 두번째는 중국 전체를 빼앗김. 사실상 천년동안 고구려 발해가 여진족 막았음
@허언증말기-p4bАй бұрын
고구려 사료가 너무 적다는 게 안타깝네요
@jheartu7036Ай бұрын
북한하고 중국에 있으니까.. 문화적 교류는 해야되는데 정치적으로 한국이 너무 배척을 하니까 ㅎ
@sarahpark-r2tАй бұрын
@@jheartu7036뭐야 댓글 멍청한건가,,, 그럼 뭐 친하게 지내?
@qkrjj2079Ай бұрын
@@jheartu7036?정치적으로 배척을 우리가 했나요? 체제 유지하려고 고립 폐쇄주의 유지하는 게 쟤들인데?
@madnut1915 күн бұрын
@@jheartu7036북한하고 중국에도 없는데 뭔소리임
@코코아-v5gАй бұрын
화산폭발 전에 발해멸망했다구 과학을보다에서 봤네요
@고대경-b6dАй бұрын
고구려는 고씨 고려, 발해는 제2의 고구려로 대씨 고려, 고려는 제3의 고구려로 왕씨 고려죠.
@존버-d5nАй бұрын
청화수채널좀봣네요
@스윗쏘오Ай бұрын
저두요 ^^
@오유석victorioАй бұрын
허준이 말한 스토리의 웹툰이 이미 있음. 비록 용두사미로 끝났지만 네이버 웹툰 '삵의 발톱' 작가 사정인지 뭔지 급결말로 끝내버렸지만, 용두사미가 되기 진까진 대작이었음!
@클립아재Ай бұрын
허준씨! [위염] 은 조금 무리수!!! (그래도 곽민수소장님 말씀처럼~ IF 의 측면으로는? 소재제공 이 가능할듯!) (예전에? 허준씨채널 에서 임용환박사님 과 함께 말씀 나누셨던 내용 이네요!) 마무리말씀대로~ 고구려 는 잘 해줬는데! 손권! 이 문제였던! (그때! ↑ 에도 결론 이 비슷했던것 같은데)
@차카게살자-n9f27 күн бұрын
한국사도 재밌다
@blavla2959Ай бұрын
발해멸망은 926년이고, 백두산분화 추정연도는 946년으로 보고있습니다. 추정값이지만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것이 현 학계의 정설인데..음...글쎄요.
@돈담Ай бұрын
영상을 보시지도 않고 댓글 쓰시나보네요... 학자들 누구도 관련있다고 한 적 없어요
@qkrjj2079Ай бұрын
@@돈담학자가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글이 아니라 오히려 분화로 인한 멸망에 대해서 정설이 존재함에도 이를 학자가 확정되지 않은 듯한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지적하는 거 아닐까요?
@ilac9244Ай бұрын
썸네일은 발해인데 내용은 1분... 그래도 재밌긴합니다
@HyunaGoАй бұрын
요 채널은 항상 그게 아쉬워요ㅠ 썸네일 컨텐츠가 재미있겠다하고 들와서보면 항상 그이야기는 조금..
@cloudkim62Ай бұрын
발해(고려)의 내용은 일본사에 많이 나오는데 그 것을 계속 파다 보면 발해가 아님을 깨닫게 되므로..
@투니버스Ай бұрын
@@cloudkim62혹시 설명을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cloudkim62Ай бұрын
@@투니버스 일본사에서는 발해(중국측 호칭)랑 외교할 때 고려왕이라 칭했슴.. 우리가 일본을 왜라고 한다고 일본 자체적으로 왜국이라 하진 않지요..
@marinavi333Ай бұрын
@@cloudkim62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네요. 발해라는 국호가 중국 측 호칭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으신건가요? 아님 뭔가요
@재연정Ай бұрын
위나라가 쳐들어온 사건을 이번에 정확히 알게 되었네요^
@베텔게우스-p9iАй бұрын
“밤이되면 남녀가 모여 서로 노래하며유희를 즐긴다” 이부분을 성의 개방화로 해석 할 줄이야 ㅋ 이래서 공대가 필요한거야
@stony2350Ай бұрын
아쉽게도 우리나라 일반인이 생각하는 전근대, 고전적 성관념은 조선조 성리학적 관점에 픽스된게 사실이니 비교적 개방화되었다 하는거같아요
@봉태규-y3rАй бұрын
발해 화산 시기는 거의 밝혀진거 아닌가..발해 멸망 이후라고....다 아는 내용을
@_why_so_serious._Ай бұрын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삼국지위서동이전을 통해 우리 나라 고대 삼국의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중국의 삼국시대(위,촉,오), 그리고 그 전의 무수한 나라들, 유방&항우 등 그러한 내용들을 보면 중국은 한참 전부터 나라가 체계화되어 있고, 법과 제도가 갖춰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서기 200년 앞뒤로 우리의 삼국 초반 모습은 왜 고대부족 국가 같은 덜 체계화된 그 시대의 후진국 느낌이 드는 걸까요? 기록이 부족해서일까요? 제가 무지해서인지 몰라도, 알려진 사실들을 보면 우리의 고대 국가들이 중국의 고대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문명 같은 게 몇 백년이나 뒤쳐진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뭘까요? 궁금합니다.
@starsuper3536Ай бұрын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보니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던데 일제강점기의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를 정리할 때 신라는 내물왕 이후, 고구려는 태조왕 이후, 백제는 고이왕 이후부터 삼국사기 기록에 신빙성이 있고, 이전의 기록은 "믿을 수 없다" 정도로 무시했다 합니다. 이 기조가 국사편찬회까지 이어져 내물왕, 태조왕, 고이왕 대에 이르러서야 '고대국가'로 발돋움 했다고 교과서에 서술한다고.
@starsuper3536Ай бұрын
어렸을 때 역사를 좋아해서 교양서적이랑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왔는데요 한사군의 위치나 고대국가들 영토, 고려의 동북9성 위치 등에 대해 기존 정설과는 다른 증거들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접했는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사를 보다에 나오는 지도들을 보면 '참 엔간히도 안바뀐다' 싶습니다. 자연과학이었으면 교과서가 두 번 이상 바뀌었을 기간인데.
@지해나-s4dАй бұрын
@@starsuper3536 국경사나 강역사에 있어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부나 학계에서는 아직 바꿀 마음이 없는 듯 합니다. 모 대학교 교수님들의 말에 의하면 정부 관계자는 중국과 분쟁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하고 있고 학계에서는 우리의 국경사 강역사 연구는 이미 다 끝나는데 왜 지금에 와서 다시 연구 하느냐 다른 연구 하라고 한다네요. 한마디로 의지가 없다고 봐야겠지요.
@liebeshuetze5714Ай бұрын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님 말씀대로 고려 이전 우리 역사를 다룬 우리 스스로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역사가 텅 빈 느낌도 있습니다만, 정말로 우리 고대국가들은 중국에 비해 모든 게 느렸습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이 워낙 일찍부터 문명을 건설하고 기록문화를 발전시켰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 역사를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죠. 고대 유럽사를 공부할 때 로마인들의 기록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동아시아에 대입해보면 고대 중국이 딱 그 포지션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반도 안 낙랑군의 존재가 참으로 기묘합니다. 한사군 중에서도 낙랑군은 313년 미천왕에 축출될 때까지 400년이 넘게 존재했는데, 중국의 군현이었기에 고대 중국 대륙의 문물과 제도가 거의 동기화되던 곳입니다. 그러니 한반도 내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발전한 곳이었고 고조선의 옛 백성들도 낙랑군, 대방군의 군현민이 되어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동시에 한반도 제종족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도 수행했기에 우리 고대국가의 발전을 방해했습니다. 일본 열도는 한반도 중남부보다 중국 문화의 유입이 느렸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국가 형성은 빠른 편입니다. 백제와 신라의 건국은 문헌상으로는 기원전의 일이지만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아무리 빨라도 서기 3세기이고 실제 중국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더 뒤의 일이죠. 그래서 고구려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는 무려 기원전에 현도군의 통제에서 벗어나 발전하고 끝내 현도군을 멀리 몰아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백제, 신라에 비해 훨씬 빨리 고대국가로서 성장해 군사력으로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특히 고구려와 백제의 성장이 급속도로 빨라집니다. 낙랑군과 대방군의 유민들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중국의 문물과 제도가 그대로 전래되고 중국과의 외교에 이들을 활용하게 된 것이죠
@싼초-f3dАй бұрын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 중요한 역사가 고조선,부여등 다 중국, 북한에 걸쳐 있어서, 제대로된 역사를 조사하기 힘들어서 연구가 덜된게 아닐까 싶네요.
@EEscapEE1Ай бұрын
공손씨 얘기 하니까 그지역에서 왕과 같은 인물임 이거 머릿속에서 잊혀지지가 않네 ㅋㅋㅋㅋㅋㅋ
@mapx2100Ай бұрын
8:55 고구려 옛강역에 그 주민들 그대로 다시 만든게 발해인데 왜 발해주민 다수가 말갈족이라고 하는거죠? 고구려인들이 싹 다 죽기라도 했나요?
@최윤아-z6dАй бұрын
고구려인 북한에 있잖음
@manhan95Ай бұрын
발해 영토나 보고 말하세요 무슨 고구려 옛 강역에 그대로 같은 소리를 합니까. 위로 훨씬 올라갔고 수도도 존나 멀어졌는데
@한대웅-h6qАй бұрын
압록강이남 고구려인들은 강제이주시키고 압록강 이북 고구려인들은 흑룡강이북으로 쫒아냈는데,거기에 살게된건 고구려의 소수의 유민과 여진족이지
@최윤아-z6dАй бұрын
@@한대웅-h6q 원래 북한 패서 지방에 밀집해서 살았는데ㅡ뭔 ㅋㅋㅋ전부 이주 시켰대? ㅋㅋ 그렇게 따지면 한족은 이미 멸족
@최윤아-z6dАй бұрын
@@한대웅-h6q 고구려인 북한에 있음
@vivaso80Ай бұрын
이제 bgm 끄셨네 ㅋㅋㅋ
@쿠쿠리-c5zАй бұрын
아 관구검이 삼국지 시대때였구나 그냥 관구검침략! 국사배울때 이러고 말았는데 먼가 삼국지랑 연계되니까 더 재밌어지네요
@funziofunАй бұрын
삼국지 게임에도 장수로 나옵니다ㅎ 관구검, 장수 능력치는 평범.
@AI_NOIN_MusicАй бұрын
@@funziofun장료.장패,만총,제갈탄의 뒤를 잊는 대오전선담당 사령관직인 진동장군이었으니 무능하거나 한 인물은 아님 ㅇㅇ 마지막 상대가 너무 나빳을 뿐이지..
@곰발바닥-h6uАй бұрын
빈주,등주,래주,제주가 산동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
@RH-ky7vrАй бұрын
보다 역사편 잘 보고 있는데 철학편은 이제 방송 안하나요? 전호근 선생님 이야기 계속 듣고 싶은데.. 철학편도 방송해 주세요.
@Kim_DoohanАй бұрын
화산폭발로 인한 발해멸망설은 아얘 폐기된거 아니였나요?? 영국인가 어디 고고학자가 백두산 폭발 당시 재가 된 나무를 연대측정하니까 멸망 이후인 940년대로 나온걸로 알고있는데
@집돌이-d4gАй бұрын
영상에 화산폭발때매 멸망한거 아닌것같다고 나오는데 뭘보신겨
@Kim_DoohanАй бұрын
@@집돌이-d4g 저는 아얘 폐기된 학설로 알고있는데 여기서는 가능성이 낮다라고 하셔서요 ㅋㅋ
@변형준-h1qАй бұрын
정확히 946년이라네요.
@시크한꾸야Ай бұрын
@@Kim_Doohan 고고학이나 역사쪽은 100%라고 말할수없기때문임 나중에 부정했던 증거가나올수있기에
@ktktle2453Ай бұрын
하다못햐 대학원 입구에서 냄새만 맡았더라도 학계에서 백프로 혹은 영프로라고 단언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게돼요. 저 학자들이 단순히 할 말이 없어서 우려먹으려고, 아니면 당신들도 아는 대중적인 사실을 몰라서 저런소리를 하는게 아닐 겁니다.
@조펩시-b8xАй бұрын
자~ 착석~
@cxvcvxuoadsfjoqe9287Ай бұрын
9:10 발해 성왕이 아니라 발해 선왕이 맞을 겁니다. 발해하면 보통 무왕(2대), 문왕(3대), 선왕(10대) 시기를 대표적인 정권으로 말하거든요. 성왕(5대)는 정치적인 혼란기에 1년 집권하고 실각했던 국왕이라 통합이라는 단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정권입니다. 다시 들어보니 발음도 선왕으로 하시네요.
@용하재Ай бұрын
적군 시체 쌓아 놓고 했던 말이군요 경관 좋네 무서운말이였군요 ...
@양지욱-s6sАй бұрын
동천왕에 대해 언급하자면 굉장히 인자하고 덕이 많은 왕이었다고 합니다 관구검에게 패해 수도 버리고 후퇴 할 때 유유라는 신하가 적장과 같이 독을 먹고 죽었으며 밀우라는 장수는 동천왕이 피신 할 때까지 단신으로 막았다고 합니다 동천왕은 도망치는 와중에도 부하 장수를 두고 가는 게 찜찜해서 다시 밀우에게 갔고 밀우를 살리기 위해 통곡 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밀우는 살아 있었습니다 동천왕 다음으로 중천왕이 제대로 복수 해주는데 위나라 동쪽 지역을 박살 내 버립니다 ㅋㅋㅋ 그리고 제갈량이 건강 회복해도 촉에 인재가 너무 없었던 데다 국력차이가 어마어마 했습니다 서촉과 동오를 합쳐도 위나라 국력을 못 이깁니다 북쪽 이민족과 고구려가 개입해서 전쟁하면 모를까...
@user_sdkdbijqlketgАй бұрын
인구와 생산되는 물자의 양등 위나라에 비교가 안되죠. 제갈량 본인과 후한말 내전중 유비와 함께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명장들이 살아있으니 촉의 국력에 비해서 비대칭 전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여서 해볼만하다고 생각하고 위나라를 먼저 멸할려고 북벌을 벌였던 거죠. 그냥 촉을 틀어 막고 지키면 되는데 왜 굳이 소국이 대국을 처들어 갔을까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나 제갈량과 명장들이 다 죽어 버리면 막아낼 인물도 없을테고 위가 이때다 싶어서 쳐들어오면 결국 촉나라의 운명은 기껏 길어야 20년 아니면 30년 짜리 국가였죠. 촉나라가 살기위해서 제갈량이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살아있고 군사력이 유지되고 있을 때 무리하게 북벌을 벌인 거라고 봅니다.
@dreamdreamforestАй бұрын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하자 미국이 개입한 거 아닌가요? 그 당시는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 개발 등 의 의심을 받고 있지 않았습니까? 아무 이유없이는 아니라고 봅니다 관점이 너무 편향된 것 같습니다 사실 중동 흔들리면 우리도 오일쇼크 받았겠죠 양쪽의 관점 모두를 공평하게 제시했으면 합니다
@김영주-c6mАй бұрын
석사논문을 4세기 고구려 대외관계사를 쓰는 바람에 개고생한 기억이 생생... 동천왕때 위나라 관구검한테 당하지.. 학술적으론 라는 김한규선생님 책이 있어요.
@정우서-u6rАй бұрын
9분 8초에 성왕이 아니라 선왕입니다.
@배신-z2lАй бұрын
근데 저번 주도 그렇고 이번 주도 그렇고 강인욱 교수님 안 계신 게 너무 안타깝네요. 모른 척할테니 스리슬쩍 강교수님 편집으로 넣어서 다시 올려주세요 ㅠㅠ
@Benedicat_me_Dominus.Ай бұрын
발해의 멸망은 요나라 기습침공이 정설이라지만 그것보다 사실 고구려가 그랬듯 영토의 위치상 여러 북방민족과 얽히며 유목민과 정주민의 중간쯤 되는 나라였기 때문에 망했다고 봅니다. 요나라가 5호16국 때의 다른 민족들처럼 중원을 넘보고 싶어도 연운16주 그거 먹고 떨어지는 모양새가 된건 발해부흥운동 그러니까 발해인들의 저항 때문에 그런건데 나라 망할 때까지도 해결 못해서 그랬습니다만 골때리게도 그렇게 발해인들이 저항했으면서 성공을 못했단 겁니다. 정주민족 그러니까 중국 같았으면 대씨의 후손을 찾아내 연합하고 왕조 재창조 했을텐데 그런적이 없고 다들 독자세력만 거느리다 요나라에 각개격파 당했죠. 고구려 망할 때 끌려간 사람은 상류계급을 중심으로 한 소수엿고 백성들과 어중간한 계급의 사람들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고구려인=발해인인데 그냥 그 사람들이 발해를 포기한 거죠. 민족이란 개념이 근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장성을 기준으로 중국이 화이를 구분했듯이 옛날 사람들도 가깝게는 피붙이 멀게는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정도는 있었습니다. 국뽕 좀 차오를 대국을 만든 사람들이 부흥운동을 대충 성의없게 한건 기존의 지배층이 구심점이 될 자격이 없었던가 아니면 특유의 국민성이 있어서라는 걸로 볼수 있는데 왕족인 대씨의 내분도 있지만 그냥 그동네 사람들이 좋게 말하면 실리적 나쁘게 말하면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유목민적 습성도 있어서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죠. 몽골제국이 왜 비교적 빨리 쉽게 무너지고 잔잔바리가 되었나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HDC-gg1phАй бұрын
발해 망할 때 확실히 정주민족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혼란을 피해서 대부분 고려로 이주한거 같고 글처럼 발해에 남은 사람들은 애매하게 반농반목이거나 유목민족에 가까웠던 사람들인듯
@바르톨로메오크리스토18 күн бұрын
@@HDC-gg1ph 한국도 국내성 영토를 되찾아와야 합니다
@daeyounglim1310Ай бұрын
종교지도자가 국민들 탄압하면 폭탄 몇천개 떨궈서 수십만명 학살해도 되는 거임? 이슬람 지도자가 인권 탄압하는 거랑 폭탄 떨궈서 민간인 학살하는 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
@120kg-t2uАй бұрын
애굽민수님 너무 조아 ㅋㅋㅋㅋㅋ
@포뇨-i6oАй бұрын
최근 잔인한 역사는 홀로코스트도 있지만 일본의 난징대학살이 아닌가싶네요.. 60만명정도 되는 난징 시민이 단 6주만에 반 이상이 줄었다고하지요.. 살인 뿐 아니라 성폭행 등등 인간의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죠... 물론 우리도 말할 수 없는 잔인함 앞에 당한 민족이지만..
@만석-x6vАй бұрын
그래서 지네들도 미군한테 점령당하면 똑같이 당할까봐 지레 겁먹고 집단 자살이 속출했죠
@jheartu7036Ай бұрын
위안부도 ㅠㅠ 한국 15살 16살 어린 여자애들 포함해서 처절하게 짓밟힌 역사
@최윤아-z6dАй бұрын
난징대학살 피해자에 우리 조선인들도 있었음.
@ruvolubleАй бұрын
1950년대 티벳 봉기때 모택동이 8만 명 학살. 위구르 학살. 19세기 태평천국의 난때 중국에서 죽은 숫자는 어마어마함.
@최윤아-z6dАй бұрын
@@ruvoluble 그런다고해서 일본의 난징대학살이 없던 이야기가 되지는 않죠. 괜히 아시아 홀로코스트가 아니지ㅡ않습니까 언젠가는 아시아 역사에 씻을수 없는 죄를지은 일본도 죗값을 치루고 티베트인과 위구르인을 학살한 중국도 죗값을 치루게 될것입니다.
오래전 역사스페셜에서 일본 어느 지역에서 땅을 파고 지질을 분석하니 발해멸망 시점에 백두산에서 날아온 화산재로 밝혀진게 생각나네요. 당시 일본까지 화산재가 날아갈 위력이라면 폭발이 국가를 재앙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을거라거도 했습니다.
@davidyu9462Ай бұрын
백두산 대폭발은 2017년 영국, 스위스, 중국, 미국,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의 공동연구팀의 조사로 946년 10월~12월로 명확하게 규정됐음.
@starsuper3536Ай бұрын
8:55 말갈이 소수민족인데 고구려와 발해의 인구 상당수를 차지했다는 게 무슨 따뜻한 아아 같은 소린가요?
@훈발놈-x9nАй бұрын
명불허전 손제리 ㄷㄷㄷ
@임성순-y7m24 күн бұрын
여성이 동등한 상속제 였지 않았나요? 풍천임씨 죽애공 후손의 재산분재기 기록이 있어요? 임진와란후 3.40년후에 기록된...
@수집쟁이드라하카Ай бұрын
우리나라 역사에 한정해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치, 인물, 전쟁은 나름 빠삭들한데 문화사는 확실히 얕긴해요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만이 아닌 고려, 조선도 문화에 대해선 얕죠 무기나 고증면에서는 좀 알더라도 그래도 조금 부족하다고 이기는게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문화를 음미하고 즐기는게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를 좋아하는 이유가 정치, 인물, 전쟁으로 위상이 높다거나 뛰어난 존재를 칭찬하고 재밌어서 보는게 대다수인데 그 당시 건축물은 어떤가?, 그 당시 의복및 생활, 사고관은 어떻고 언어는 어떤가등 다방면의,문화의 측면에서는 관심이 덜하기도 하고 설령 안다한들 웨스트 타이완의 역사 왜곡과 공정의 반발로 알지 순수하게 문화를 즐기기 위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적죠 그래서 보다에서 문화사 측면에서 유물같은 사진 자료를 인용해서 설명해주면 그런 문제도 해결할수 있을거라 봅니다
@moslow_southkoreaАй бұрын
6:23 인간사회와 동물사회의 차이는 '잉여재산'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거 없이 수컷이나 암컷이나 몸뚱아리 하나가 전부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군사와 정치를 지배한 남성이 경제도 차지하게 됐고, 그걸 우위로 삼아 가부장제 같은 게 성립한 것 아닐까요. 마침 30:09 에서 석유산업이 여성 인권을 누르고 있다는 얘기 하셨네요. 물론, 개미 사회 같은 걸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elvenisarАй бұрын
아직도 귀족친구집에 얹혀살며 매일 위스키 마시고 콜걸 두명 끼고 자며 일도 안하고 당구나 치고다니던 자징천재가 27살에 쓴 책의 내욘을 믿는 사람이 있다니.... 😮
@fevernova40Ай бұрын
저 지역 특유의 남존여비 문화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보다는 저 지역의 뿌리 깊은 관습이라는 전문가도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죠. 그런데 석유채굴 훨씬 이전부터 남존여비가 강했어요. 저 지역에서 발원한 유대교, 기독교도 탈무드나 성경을 보면 여자를 하대하는 내용이 꽤 등장합니다. 무슬림인구로는 인도네시아가 최대이고 자원도 많은데 이 나라의 여성인권은 비교적 높아요.
@존버-d5nАй бұрын
발해라는 나라는 없습니다 당에서 붙여준 이름이고 발해가 아니라 고려입니다
@PowderBlue-l9hАй бұрын
발해가 아니고 대씨 (고구려,고려,고리)
@greatyisoon-sin3402Ай бұрын
전세계의 상속제도 관련해서 보면 근본은 다 똑같음 인간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에 생물의 본능임.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보관을 할 수 있는 것임. 세습 생명은 유한하고 모아놓은 재산 업적등등 죽으면 다날라가니깐 형제나 자식등등 제일 측근에게 남기려는 습성임. 이 유산을 습득하는 규칙이 어떠하냐에 의해서 형제끼리 피바람이 불던가 자식끼리 피바람이 불던가 자식이 1순위 형제가 2순위 이면 그 형제가 자식을 제거하려고 당연히 수작을 부리겠지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니깐 대의 명분 종교등등은 일종의 정치적 술수로서 질서유지 도구에 지나지 않음 당장 주변 이웃들을 봐라 부동산 투기 주식 코인 지가 노나면 그걸 정당화 시키는데 혈안이 되고 그걸 이용하는 정치꾼을 지지하게 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