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지도_중국1. 역사공부 어떻게 해야 하나[수정본 시청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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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영상은 편집 전 버전입니다. 자막과 에니메이션이 더해진 편집본 시청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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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지형지도_중국1. 역사공부 어떻게 해야 하나
인문학 지형지도 시리즈는 역사공부를 깊이 있게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하여 '인문과학원 학림'에서 기획한 콘텐츠입니다. 여행이나 가벼운 목적으로 시청하는 분들은 필요한 구간만 보셔도 무방할듯 싶습니다.
[차례]
1.역사 기록물을 보기 위한 전제
2. 역사공부는 반드시 지형도로 시작
3. 실체가 없는 중국과 한족의 역사
4. 시대에 따라 지명과 강역은 변동
[강의 내용 중]
-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으로 고대에도 그랬고 근현대사 역시 동일
- 15세까지 그리스문명이 이집트의 영향으로 성립했다는 것은 정설
- 1911년부터 조선총독부 주도로 유물 이동, 사료 재간행을 명분으로 원전 조작 진행
- 역사를 반드시 지형지도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
① 왜? 굳이 이곳에 도성을 쌓았으며, 함곡관은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가?
② 촉 잔도(蜀棧道)는 왜? 설치할 수 밖에 없었나.
③ 실크로드 상의 오아시스 도시는 정말 척박한 땅이었나?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암기가 아닌 지형도로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것
지형도가 아닌 평면지도로는 텍스트 오류, 역사 조작 파악은 불가
- 고대문명은 자연파괴와 기후변화 영향요인의 중심 변수
- 1911년 손문의 중화민국(中華民國) 선포 전에중국이라는 국명(國名)은 無존재
- 中國의 의미는 ‘천자·황제’가 직접 통치하는 강역
- 한족은 혈연집단이 아닌, 모국어를 한어(漢語)로 쓰는 사람들
- 중국 56개 소수민족 구분도 1953년 인구 조사 후 임의로 획정
- 시대에 따라 지명과 강역은 변동
① 하동(河東)과 하서(河西), 요동(遼東)과 요서(遼西)의 위치는?
② 기만족 강족의 웅거지이자 맹장 배출 지역인 서롱(西朧)의 위치는?
③ 고대의 총령(葱岭)은 현재의 파미르고원이 맞나?

Пікірлер: 63
@ktv1
@ktv1 3 жыл бұрын
오래전에 최규석 선생님께서 오류를 지적해주셨는데 이제야 봤습니다. 26분 56초에 위나라 장수 이름을 '등유'라고 했는데 '등애(鄧艾)'로 바로잡습니다. 최선생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시간을 줄이려고 편집 없는 영상 원본을 올렸더니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다음 강의 부터는 편집본을 올리겠습니다.
@kangsunghyun
@kangsunghyun 4 жыл бұрын
중국 지도 모든 강의 중 비할 바 없이 최고입니다!
@user-ev8ro1pp8c
@user-ev8ro1pp8c 3 жыл бұрын
훌륭한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입체지도 상에서 확인해 가는 역사의 흔적들을 통해 지금까지 잘못 알았던 내용들을 다시 돌아 볼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kilseilee9693
@kilseilee9693 4 жыл бұрын
좋은 강의를 잘 들었습니다. 역사이해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jinsunkim7048
@jinsunkim7048 4 жыл бұрын
중국역사와 지리에 대하여 공부하고 싶었는데 유익하고 심도있는 정보를 제공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
@jiy1942
@jiy1942 4 жыл бұрын
훌륭한 강의 아주 흥미롭게 잘 들었습니다다음 강의가 기다려집니다 ^^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코로나 기간이라 오프라인 강좌를 개강하지 못해 연구원 교육 프로그램은 당분간 유튜브로 진행하려 합니다. 인문학에 관심 있는 분이 계시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정일두-z9z
@정일두-z9z 4 жыл бұрын
너무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중국역사. 소설. 영화 등을 보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유선-b7s
@유선-b7s 4 жыл бұрын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_()_
@user-dr3cj3hk3z
@user-dr3cj3hk3z Жыл бұрын
훌륭한 내용 감사합니다 약 오십년전에 학생때 중국사책을 공부 할때 저의 기억으론 한족은 23%인가로 하여튼 30%이하 였고 오십 몆개 종족중 한족의 비중이 가장 크다로 기억 했다가 근래엔 90%넘게 한족이라고 해 내가 잘못 기억하나 하고 혼란도 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하니 중국의 각종 공정과 더불어 한족으로 단일화 하자는 중국정부의 의도가 깔린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즉, 조선족,장좈,백족,묘족 등등과 같이 뚜렷한 문화적 특색을 가진 종족은 그대로 두고 ,북위의 효문제 이래로 삼국지까지의 진짜한족과 북방의 노마드피가 섞여 온 대다수의 민족은 그냥 한족이라 하는거 같기도 합니다
@user-km7gw7fq6n
@user-km7gw7fq6n 4 жыл бұрын
해마다 중국역사기행을하면서 궁금했던 공간적인 부분 너무 감사합니다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고 하니 반갑습니다.
@strategist1837
@strategist1837 2 жыл бұрын
한국사에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한국인의 영역이 만주와 한반도라고 하셨는데요. 고구려와 발해가 망한후 금나라가 탄생했습니다. 아골타의 금나라 발흥지인 완안부는 송화강에 있었고 누르하치의 후금 발흥지 건주여진은 한반도에 가까운 요하강 지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해는 우리민족이고 금나라는 왜 여진족일까요? 발해시대 부터 상류층은 고구려인이라고 밑밥을 까는데 고구려인 역시 다민족국가 아닌가요? 뿐만 아니라 발해 멸망후 만주지역에서 고구려족과 발해족 (예맥족)이 모두 증발했는지 서부 거란을 제외하고는 전부 여진족의 땅이 되었습니다. 인종청소라도 일어난것인지요. 여진족은 왜 우리민족이 아닐까요? 그리고 아니라고 한다면 발해 멸망후 만주전역에서 우리민족(예맥족)이 갑자기 없어지고 여진의 땅이 된것인지 궁금합니다. 도대체 우리민족의 기준이 무엇인지요. 한족과 유목민들과 다르게 예맥과 말갈+여진은 얼만큼 문명화 됬느냐 차이일뿐 소싱안링 산맥, 장백산맥, 개마고원 눈강,송화강, 요하등 거주지와 환경이 겹치고 하나로 연결된 산악부족입니다. 예맥족이라고 하는데 여진족과 확연히 구분되는것인지 애매하네요. 고구려때부터 말갈족과 뒤섞여살았고. 국가의 중심민족이 하플로 기준도 아닌데 말이죠. 언어는 삼국,발해 모두 달랐을것이구요. (고구려와 백제는 언어가 비슷했을것으로 예상). "전국민이 이부분을 교과서로 배우고난 뒤 햇갈려도 금기어처럼 질문을 잘안하고 했을때도 대답을 친절히 안해주는것 같습니다." [질문 요약] 1.무엇으로 예맥족을 구분할까요? 2.한민족을 예맥족으로 한정하고 여진족을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고조선도 곰부족 호랑이부족이 결합된 집단인데 꼭 단일민족이어야 하는가) 3.발해 멸망후 여진인은 고구려 발해유민(예맥족)이 결합된 종족인이 아닌가요? 4.여진인이 우리민족이 아니라면 서부의 거란을 제외하고 전역에서 예맥족이 사라지고 전부 여진의 땅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ktv1
@ktv1 2 жыл бұрын
제법 길게 답변 드려야 할 사항으로 보입니다. 원고 작업 마무리되면 답글 드리겠습니다. _()_
@strategist1837
@strategist1837 2 жыл бұрын
@@ktv1 아이고~ 긴질문에 답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ㅠ 모든 영상 다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user-jj6mx3tc1g
@user-jj6mx3tc1g 8 ай бұрын
조선족은 혼합민족으로 한반도로 이주한 한족+원주민 퉁구스인+남도인+몽골인+이민을 위한 부여인 구성입니다!다만 한족은 한반도에서도 동화되지 않고, 지금까지 한반도로 이주한 수천 년 동안 한족 가문은 여전히 전승을 유지하고 있다
@beeper5244
@beeper5244 Күн бұрын
​@@ktv1👍
@gaied424
@gaied424 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user-co5lj8pr5p
@user-co5lj8pr5p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le6ch1ff4p
@user-le6ch1ff4p 4 жыл бұрын
입체적인 역사 지도법... 👍👍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이 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
@user-zq3nl7vv4w
@user-zq3nl7vv4w 4 жыл бұрын
드뎌 시작하셨군요^^ 멋지십니다~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깁스한 상태로 강의 준비하려니 아직은 제약이 적지 않습니다. 통증이 심해 후속 강의를 완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박재영-y4n
@박재영-y4n 4 жыл бұрын
고구려 이후 통일국가로서 신라,고려,조선등 한반도 이북 만주지역을 점령 하였다하더라도 한반도 토대로한 국력의 한계성, 그리고 광할한 영토로 인해 중국 중원과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막아내기가 힘들다 들었는데요. 통일신라나,고려, 조선의 나라들이 만주지역까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하면 만주지역의 어느 지역의 지형형태로(산맥,강) 영토를 방어 할수 있는 실질적 영토를 어디까지였을지 궁금합니다. 혹시 이 내용도 본 영상처럼 지도의 지형을 통해 설명해 주신다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기본 콘텐트 제작은 이미 했으나 대중 채널이라서 시기/난이도/수위 등을 숙고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한국 한국사람들 중에는 한족의 실체가 없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정확하게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전제해야할 부분이 따릅니다. 동이족/한민족 등등도 상고대/고대 시기와 현대의 한국인을 동일시하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흉노, 돌궐 등등도 현대적 기준으로는 다민족 국가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고대 민중의 시각에서는 때로는 그것이 변동 불가능한 고정된 사안으로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형제국가라고 하지만 서로의 왕을 죽이는 상황까지 이르렀고 반면 중원지역의 국가들과 협력체계를 구축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핏줄, 민족이라는 개념을 21세기를 살아가는 관점에서 관념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차차 고구려와 발해, 고구려와 징기스칸의 가계도, 거슬러 올라가 삼황오제의 뿌리 등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tv---6546
@tv---6546 2 жыл бұрын
유익한 내용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마음 자세로 잘 보았습니다. '북연TV', '중국현대사'도 이 같은 방향과 내용을 추구합니다.
@user-ev8ro1pp8c
@user-ev8ro1pp8c 3 жыл бұрын
이런 훌륭한 강의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
@MrParkcool017
@MrParkcool017 Жыл бұрын
남관 상관이라고 하셨는데 일반적으론 무관이 더 익숙한 명칭이죠. 유방이 함양으로 진격할 때 무관을 경유하여 갑니다.
@user-dr3cj3hk3z
@user-dr3cj3hk3z Жыл бұрын
파의 원산지가 파미르고원이라 하더군요 그래서 파총 자를 써서 총령.... 파가 어떤 땅 어떤 열악한 환경에도 잘 사는 이유가 저렇게 높은곳에서 자생해 그런가 봅니다
@kmlee8211
@kmlee8211 2 жыл бұрын
나랏〮말〯ᄊᆞ미〮 中國듕귁〮에〮달아〮 ~~ 몇년전 훈민정음 언해를 꼼꼼히 읽어 보니 중국이라는 것이 나라가 아니고 지역을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싶어서 중국이라는 말대신 '서울'(수도=국가의 중심지역)이란 말로 바꾸어 읽어 보니 의미가 더 자연스럽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름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려고 싶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궁금하여 유명한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는데, 돌아온 댓글을 전부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답변 뿐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역사교육을 잘못 시켜서 이런사람이 나온다는둥의 비아냥도 있어 기분이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중국은 지역을 나타낸다는 말씀을 들으니 기분이 참 좋아 집니다. ^^ 1911년 손문이 '중국' 이라는 말을 처음사용했다는 걸 알았으면 그때 좀 대응이 되었을 텐데, 아무튼 그때 제 의견에 반대을 글중에 결정적인 것이, 우리나라 실록에도 '중국'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중국으로 00을 보냈다) 라는 증거에 암말도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조선왕조 실록에서 나오는 중국은 어디 일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라명이 있는데 중국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도 참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라 의심스럽습니다. 이부분에 작은 조언이라도 얻고 싶습니다.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유튜브 학림TV에 방영되고 있는 를 시청하신 분들을 위해 동영상 강의 자료 중에서 중요한 시트는 고해상도 이미지 자료로 제공 드립니다. 요청이 많은 자료는 최대한 지속적으로 공개.공유토록 하겠습니다. 자료는 개인 학습용로만 사용 부탁드립니다.[바로가기]▶ bit.ly/2Vn9N77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시청자께서 숭산의 한자에 대한 의견을 주셔서 드린 댓글을 공유합니다. 정 선생님 덕분에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감사드립니다. _()_ 정 선생님~ 소중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현대의 중국(中共)인을 포함하여 우리에게도 숭산(崇山)보다는 숭산(嵩山)이 더 익숙할 것 같습니다. 사전류를 검색해도 그렇구요. 숭(崇)자의 이형 동의자는 숭(崈)은 숭(嵩)의 고어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모두 산(山) + 높다(마루 종, 높을 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높으면서도 소나무가 많은 경우에는 숭산(崧山)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다만 현재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자 지명은 20세기에 들어와 특정 단어로 고착화 현상을 보이거나 또는 고착화시켰습니다. 때로는 고대에 오랬동안 사용하였던 한자 일부를 교체하기도 하였습니다. 때문에 폭 넓게 보셔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참조가 되시길 바라며 역사적으로 숭산(崇山)으로 쓰인 사례를 소개하였습니다. 1. 기원전 500년 전후 산동사람인 노(魯)라의 좌구명(左丘明/출몰연대는 기원전 500년 전후 추정)이 춘추전국시대의 제후 8국의 역사를 모아 찬술(撰述)한, 국어[國語 : 춘추외전(春秋外傳)] 제1권의 주어(周語) 상편 내사과신론(內史過論神) '옛날 夏나라가 흥성할 적에는 祝融이 崇山에 내려왔고 (昔夏之興也에 融降於崇山)' 2. 기원전 300년 전후 전국시대의 맹가[孟軻, 약 BC.372년 ~ 약 BC.289년]가 찬술한 맹자(孟子) 만장상(萬章上)의 만장문왈상일이살순위사(萬章問曰象日以殺舜爲事) '순 임금이 공공을 유주로 유배 보내고, 환도를 숭산으로 추방하고(舜流共工于幽州 放驩兜于崇山)' 3. 8세기 초~중반 당대의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 699? ~ 759]가 숭산에 은거한 시기에 지은 시(詩) '숭산으로 돌아겨며 짓다(歸嵩山作)' 4. 15세기 초~중반 조선왕조실록 세종15년 계축(1433) 7월 10일 '소자첨[소식(蘇軾):소동파]은 그 어머니를 숭산에 장사지냈고(然蘇子瞻葬其母於崇山)' 끝으로 일반적으로 숭산(崧山)은 한반도 개성에 있는 송악산으로만 제한적으로 지칭하는데, 이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당송팔대시인 소식(소동파 1037 ~ 1101)이 1091년 북송 재상인 문언박(文彦博)을 위해 지은 덕위당에 대한 기록(德威堂銘)에 '공이 낙양(낙사)에 계시니 숭산과 낙수가 빛나고(公在洛師 崧洛有光)'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소림사가 있는 소실산과 동쪽의 태실산을 합쳐 숭산으로 부르는데 소나무가 많은 식생분포와 산의 지세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이 숭산(崧山)이라는 명칭이라 싶습니다. 다른 강의에서도 종종 소개드렸습니다만 한중일 모두, 교과서/ 대학 등에서 배운 한자 기준으로 교차분석 없이 고대사를 해석하면, 중공/일제/식민사학계의 프레임에 갇힐 수 있습니다. 특히 지명과 관련해서는 더디 가더라도 금석/갑골문을 포함한 역사적 용례, 시대별 지명 이동 사례 등을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_()_
@user-by4so3br2v
@user-by4so3br2v 4 жыл бұрын
멋진 말씀 감사합니다.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gs4tb4oi4n
@user-gs4tb4oi4n 4 жыл бұрын
요동과 요서에 쓰인 한자 요자를 한 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댓글 감사합니다. 편에서도 황선생님이 지적하신 내용과 동일한 오타가 있어 아래와 같이 공유한바 있습니다. " 요하, 요녕의 한자가 요(멀 요/遙)로 되어 있는데, 요(멀 요, 강이름 요/遼)가 맞습니다. 둘다 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만, 강 이름 遼河와 그와 관련하여 파생된 지명을 사용할 때는 遼자를 사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 참고로 서거정 등이 편찬한 '동문선' 등 일부 고문헌에는 요하(遙河)를 병용하고 있습니다만 '遙河'로 표기할 경우 고유명사의 '요하'가 아닌 일반명사 '멀리 떨어져 있는 강' 이 되어 특정하지 못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요(遼)'로 표기하는 것이 분명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중국오천년역사서적 원문집을 교차분석한 결과도 동일하였습니다. 황선생님 덕분에 세심하게 다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user-oy9dv7gl3g
@user-oy9dv7gl3g Жыл бұрын
❤❤❤
@user-jv8gt3ue3b
@user-jv8gt3ue3b 2 жыл бұрын
지형지도를 모르고 역사공부를 한다. 특히 대외관계는 지형지도를 모르면 상상에 불과합니다.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공지] 33분37초 경에 나오는 17쪽의 지도에, 西천산산맥을 東천산산맥으로 잘못 표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점 감안하시고 시청 바랍니다.
@amorfati4631
@amorfati4631 Жыл бұрын
슨생님 입체지도는 어디서 구하죠
@yeounggerhan1563
@yeounggerhan1563 4 жыл бұрын
8:55낙양옆에있는 숭산이 嵩山입니다.
@yeounggerhan1563
@yeounggerhan1563 4 жыл бұрын
29:00서안에서 한중까지 1시간20분
@ktv1
@ktv1 4 жыл бұрын
정 선생님~ 소중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현대의 중국(中共)인을 포함하여 우리에게도 숭산(崇山)보다는 숭산(嵩山)이 더 익숙할 것 같습니다. 사전류를 검색해도 그렇구요. 숭(崇)자의 이형 동의자는 숭(崈)은 숭(嵩)의 고어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모두 산(山) + 높다(마루 종, 높을 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높으면서도 소나무가 많은 경우에는 숭산(崧山)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다만 현재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자 지명은 20세기에 들어와 특정 단어로 고착화 현상을 보이거나 또는 고착화시켰습니다. 때로는 고대에 오랬동안 사용하였던 한자 일부를 교체하기도 하였습니다. 때문에 폭 넓게 보셔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참조가 되시길 바라며 역사적으로 숭산(崇山)으로 쓰인 사례를 소개하였습니다. 1. 기원전 500년 전후 산동사람인 노(魯)라의 좌구명(左丘明/출몰연대는 기원전 500년 전후 추정)이 춘추전국시대의 제후 8국의 역사를 모아 찬술(撰述)한, 국어[國語 : 춘추외전(春秋外傳)] 제1권의 주어(周語) 상편 내사과신론(內史過論神) '옛날 夏나라가 흥성할 적에는 祝融이 崇山에 내려왔고 (昔夏之興也에 融降於崇山)' 2. 기원전 300년 전후 전국시대의 맹가[孟軻, 약 BC.372년 ~ 약 BC.289년]가 찬술한 맹자(孟子) 만장상(萬章上)의 만장문왈상일이살순위사(萬章問曰象日以殺舜爲事) '순 임금이 공공을 유주로 유배 보내고, 환도를 숭산으로 추방하고(舜流共工于幽州 放驩兜于崇山)' 3. 8세기 초~중반 당대의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 699? ~ 759]가 숭산에 은거한 시기에 지은 시(詩) '숭산으로 돌아겨며 짓다(歸嵩山作)' 4. 15세기 초~중반 조선왕조실록 세종11년 기유(1429년) 6월 8일 '우리가 받은 은혜 화산, 숭산 보다 무겁고 (我受恩重華、嵩)' 조선왕조실록 세종15년 계축(1433) 7월 10일 '소자첨[소식(蘇軾):소동파]은 그 어머니를 숭산에 장사지냈고(然蘇子瞻葬其母於崇山)' 끝으로 일반적으로 숭산(崧山)은 한반도 개성에 있는 송악산으로만 제한적으로 지칭하는데, 이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당송팔대시인 소식(소동파 1037 ~ 1101)이 1091년 북송 재상인 문언박(文彦博)을 위해 지은 덕위당에 대한 기록(德威堂銘)에 '공이 낙양(낙사)에 계시니 숭산과 낙수가 빛나고(公在洛師 崧洛有光)'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소림사가 있는 소실산과 동쪽의 태실산을 합쳐 숭산으로 부르는데 소나무가 많은 식생분포와 산의 지세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이 숭산(崧山)이라는 명칭이라 싶습니다.
@junggoowoo4298
@junggoowoo4298 2 жыл бұрын
중국지도가 필요한데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rParkcool017
@MrParkcool017 4 ай бұрын
양평관 위치가 잘못되었네요. 양평관은 면현 한수변에 위치합니다
@ktv1
@ktv1 4 ай бұрын
의견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양평관 위치의 좌표를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
@ktv1
@ktv1 4 ай бұрын
武侯镇의 古陽平關(;白馬城)을 말씀하셨군요. 아시는 내용이겠습니다만 현대 중국 지도에서는 백마하와 한수의 합수지점에 있는 양평관은 고양평관 혹은 양평관유지. 가릉강을 방어라인으로 하는 關城(陽安關口)은 양평관으로 사용 중이더군요. 관련 영상을 다음에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두 곳을 모두 표식 하겠습니다. 꼼꼼한 지적 거듭 감사드립니다.
@user-cq3lx9bm8i
@user-cq3lx9bm8i 3 жыл бұрын
매우 유익합니다. 헌데 '역사는 승자의 역사' 같은 견해는 조심해야 합니다. 역사에는 승패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sangjinnoh825
@sangjinnoh825 3 жыл бұрын
최고 최고 최고! 가공된 가짜 역사가 아닌 진실 역사를 알 수 있는 법이네요!!!
@전병봉-g6u
@전병봉-g6u Ай бұрын
중국이 언제 생긴 나라인데 자꾸 중국이라고 표현 하시나요? 그 시대 국명을 써 주세요!
@OO-to1sf
@OO-to1sf 3 жыл бұрын
춘추전국시대, 수나라,당나라도 중원민족의 역사인데 왜 이부분은 통계에 추가하지 않으셨는지... 그리고 하화족이 아니라 화하족이 맞는것입니다.
@ktv1
@ktv1 3 жыл бұрын
김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 1. 수/당은 현 중공 사학계 관점에서도 한족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만, 당의 경우는 역사적 뿌리를 농서 출신인 노자[李耳]로 연계하려 했으나 농서 지역은 이른바 한족의 줄기와 결을 달리합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족이라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이런 구분이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만간 관련하여 동이, 한족, 조선 등등의 계보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2. 하화족과 화하족은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대 기록, 현재 중공 측 용례도 그렇습니다. 1번과 연계됩니다만 그 유래를 분석하면 이 용어 자체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user-jj4vj9co4g
@user-jj4vj9co4g 2 жыл бұрын
54분 즈음에 나오는 지도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ktv1
@ktv1 2 жыл бұрын
바탕 지도는 구글 지형도 2011년도 경의 버전입니다. 구글지도도 연도별로 변화가 있습니다.
@user-jj4vj9co4g
@user-jj4vj9co4g 2 жыл бұрын
@@ktv1 감사합니다
@hasasa4241
@hasasa4241 2 жыл бұрын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자신들의 입장에서 짜집기 하고 주장하는 것을... 역사라는 학문이 무슨 필요가...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사학자라는 작자들은 사기꾼들이다. ㅋㅋㅋ
@KouyouLee
@KouyouLee 8 ай бұрын
😂
@user-dj4rw1tk4e
@user-dj4rw1tk4e 3 жыл бұрын
한강이 왜 거기서 나와
[지혜의 향연] 역사란 무엇인가 - 사마천_사기 (김병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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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 And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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汉语达人김성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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