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로 사라진 서울 최대 달동네. 관악산 신림7동 '마지막 달동네' 1년의 기록! [KBS 20011223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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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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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ай бұрын

■ 끝까지 난곡을 지키겠다던 효숙이네 이사가는 날
효숙이는 집 앞 판자집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 대신 집안 일을 도맡아하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다. 마을이 형성되던 60년대 말부터 가마니 장사를 했다는 할아버지, 당뇨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공장 일을 끝낼 수 없는 아버지와 다리를 저는 어머니와 직장을 다니는 언니가 효숙이네 구성원이다.
유난히 사람 챙기는 걸 좋아하는 효숙 엄마 덕에 낮이고 밤이고 늘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는 효숙이네 공장, 거센 재개발 바람 앞에서도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으며 알콩 달콩 살아가는데...
지난 겨울의 끝자락 더 이상 그냥 보고만은 있을 수 없어, 효숙 엄마를 비롯해 몇몇 가옥주들이 재산 보호 위원회를 결성하고 시위를 시작하게 된다.
여름이 지나고 지칠 대로 지친 효숙 엄마, 거기에 효숙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끝까지 난곡을 떠나겠다는 각오를 접고 이주를 결심을 하게 이르고... 이 동네가 사라지는 게 못내 아쉬운 효숙이는 기억 속에 동네를 남겨 놓기 위해 난곡동 지도를 그려본다.
■ 난향보다 짙은 사람냄새가 나는 산동네의 난곡별곡
8평짜리 다 허물어지는 집을 떠나며 못내 아쉬워하는 사람들, 춥고 누추해도 여기가 곧 가난한 사람들의 천국이라고 믿는 난곡 사람들, 그건 다닥다닥 붙은 판자촌 속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식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인데....
가난하기 때문에 서로 위로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그들만의 정서와 문화를 카메라가 포착했다.유난히 많은 독거 노인들이 이웃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모습, 공가를 뒤져 고철을 모아다 팔아 생활비를 버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추운 겨울과 다시 돌아온 봄,언제 철거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텃밭에 씨뿌리며 봄을 준비 하는 꿋꿋한 삶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 일본인 눈에 비친 서울특별시 신림7동 산101번지
신슈대학 농학부 교수로 재임중인 가토교수는 해마다 난곡을 찾는 낯익은 손님이다.그는 도시형성화 과정에서 이농민이 어떻게 도시에 정착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처음 난곡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10년간 상세한 호구 조사를 통해 연구를 계속 해오고 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난곡동은 다른 나라의 슬럼과는 차별된 공간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한 희망이 있는 주거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난곡동을 [가난한 사람의 야전 병원]이라 표현한다. 가난으로 지친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리고 어느 정도 가난이 치유되면 떠나게 되는 역할을 난곡이 해왔 다고 믿고 있다.
일본인 학자의 눈에 비친 한국의 판자촌과 도시빈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들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지는 달동네의 풍경만이 아니라, 거처를 잃은 도시 빈민의 삶에 관심을 늦추지 않는다. 떠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달동네는 없어져도 가난한 사람이 사라지는 건 아니란 사실과,그들의 삶은 상대 적 빈곤으로 더욱 피폐해질 것이란 문제 의식과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세입자들의 애타는 절규도 프로그램에 담는다.
과연 현대사회에서 가난과 소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는 것인지를, 그들이 수놓은 사계를 통해 조용하고 깊숙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영상은 2001년 12월 23일에 방영된 [일요스페셜 - 난곡의 사계, 마지막 달동네 1년의 기록] 입니다.
#부동산 #재개발 #아파트

Пікірлер: 308
@kpc664
@kpc664 7 ай бұрын
술을 먹긴 했지만... 울고 있어요. 골목만 봐도 어딘줄 알겠고... 내가 살던 집... 친구집,,, 떠나보내야 했던 모든이들... 그리워서 눈물이 납니다.
@user-nl9zj8pq1o
@user-nl9zj8pq1o 3 ай бұрын
ㅠㅠㅠㅠ
@falilganilwe
@falilganilwe 3 ай бұрын
이젠 만기해지 6개월 전에 알려줘도 세입자 안 들어오면 돌려줄 돈 없다하니 피눈물이 나는 동네에요... 전세사기 치냐고 융자없는 집에 돈을 맡겼는데 돈을 어디다 썻냐하니 여기 법이 원래 그렇다네요...
@user-ox4et3qr7k
@user-ox4et3qr7k 9 ай бұрын
신림동하면눈물이나요..나10살때천막촌으로들어와살면서.좀씩돈업어올라간게 신림밤골이였어요 난곡하면 삐죽위라고했어요 밤골보다 더꼭대기라삐죽우라고했어요.물차가오는날은물받을라고 줄서고난리났어요 저녁이어둑해지면일나간엄마기다리느라 목빠지게 처다보면 다지처가는엄마가힘업이지처서 쌀한대 연탄한장새끼줄에뀌여올라오면 그렇게반가왔는데 그때내나이가15세.나중엔공장다녔어요 동생이넷이긂고있어거든요 지금은67세지만 그시절생각하면 눈물나요...
@user-oz5rl2eu4b
@user-oz5rl2eu4b 9 ай бұрын
고생하셨네요.
@user-gl3fj8hs4w
@user-gl3fj8hs4w 9 ай бұрын
지금은 평안하시죠? 그러셨음 좋겠네요
@user-sl7ox6sk6s
@user-sl7ox6sk6s 9 ай бұрын
고생하셨네요. 앞으로 건강하셨음 좋겠네요. 공감이 가면서 가슴이 아프네요
@user-zh2zl5cz9p
@user-zh2zl5cz9p 9 ай бұрын
저도 밤골에 살았었는데 어려서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얼마나 어렵게 고생하며 사셨는지 가슴이 아픕니다~ 살아본 사람들만 아는 거죠~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user-mq7vw1oi8g
@user-mq7vw1oi8g 8 ай бұрын
눈물이 나네요 고생하셨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user-zd4xk3jc9i
@user-zd4xk3jc9i 9 ай бұрын
봉천동 달동네에서 살았습니다 5식구가 단칸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래도 이웃간에 정이 있었던시절 온가족이 따뜻한 밥을 먹던기억과 젊은시던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user-zcvb7t
@user-zcvb7t 6 ай бұрын
70년대 단칸방 6명 살았는데 부모님 3형제 누나
@Testdrivereviews
@Testdrivereviews Ай бұрын
74년생입니다. 난곡에서 7살 때 딱 1년 살았는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이였네요. 머리속에 잊혀지지 않는 곳...
@pjreboot8302
@pjreboot8302 9 ай бұрын
전 지금도 신림7동에 살고 있습니다. 7동은 단독, 다가구 주택지역과 달동네라고 하는 두지역으로 돼있었어요 지금 화면에 나오는 곳은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지만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과 놀던 그곳을 아직도 그리워합니다. 저때까지는 이웃사촌이라는게 뭔지 알던 시절이였는데...
@coffee11137
@coffee11137 9 ай бұрын
아~아득한옛날 제가소녀 중학교시절 고모집 조그만언덕베기 단독주택에 방학때갔었는데 물길로 올케랑 줄서서 물받아오던 생각 기억선하네요 아직도거기사시는군요
@idontlikelie
@idontlikelie 9 ай бұрын
재개발 하지 마. 그냥 세월에 맡겨😅
@user-tn6ic6vu4y
@user-tn6ic6vu4y 10 ай бұрын
중학생일때 나도 구로공단 삼립빵공장밑에 살 시절 한아이가 학교을 나오지안아 선생님이 찾아 가보라 해서 난곡을 감 버스종점에서 내려보니 거기서부터 물지게를 들고 올라가더만 그물에 흘린것이 얼어 빙판 그언덕들이 그냥빙판이었네요 진짜 관악산 골짜기 산꼭대기 끝에 산 친구임 그애 어머니는 일본인 어머니 병들고 숨을 못실정도 아파하심 그애는 가출한 상태고 난 정말 충격 먹음 정말힘든 시절 있였네요
@user-rr2uv9rm7b
@user-rr2uv9rm7b 9 ай бұрын
영상을 보고 글을 읽으니 그 당시 모습이 그려져서 가슴이 시립니다..
@coffee11137
@coffee11137 9 ай бұрын
난곡은 수도물안나와 물을길어먹었어요 고모네가 거기살아 물길어 오던기억있어요
@user-pc9is9rw1t
@user-pc9is9rw1t 9 ай бұрын
선생님 그게 몇년도 이야기인가요?
@user-te9mv9jd4y
@user-te9mv9jd4y 9 ай бұрын
70년중반~나도여기서 살아봤음 눈물나고 가슴시린 날들 지금다시보니 먹먹하네
@gyoon-dn2ln
@gyoon-dn2ln 9 ай бұрын
80되신 어머니가 50인 저를 부산 영도 판잣집서 낳으셨는데 아마 여기분위기랑 비슷했던지 아님 더 어려웠을것 같음ㅠㅜ 짠~~~~~~한 영상ㅜㅠ
@user-gg5zi4ev3d
@user-gg5zi4ev3d 9 ай бұрын
슬프다 가슴이 울컥한다 모두들 어디에 계신가요?
@JG77999
@JG77999 9 ай бұрын
22년이 지난 지금저분들 다 건강하시길
@user-in7lb7xc1o
@user-in7lb7xc1o 8 ай бұрын
우리효숙이 지금은 뭘 하던 행복하게 잘~살고있기를 바란데이~!^^
@Happyhan
@Happyhan 9 ай бұрын
나는 이런 아날로그 삶의 기록이 좋다. 그 시절 어떻게들 살았을 지 알 수 있는 기록이어서 좋고. 어려운 시절, 이웃끼리 서로 관심을 갖고, 챙겨주고, 의지하며 돕고 사는 모습 역시 매우 좋아 보인다. 그 속에서 배려가 묻어 나오고, 인내와 화합, 상호 봉사하는 인성도 배어 나온다. 물론 현재보다는 물질적으로 많이들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인내와 배려, 희생과 봉사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 자기 마음에 안들면 묻지마 칼부림을 하고 그 죄의 무게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가난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고, 2세들에게 가르치고 보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user-nq4pd2zg1n
@user-nq4pd2zg1n 9 ай бұрын
지금은 아련한 옛 추억이 되어버린 시절이지만 가슴이 먹먹할 만큼 그립습니다 ❤
@user-lf1qz7fk7k
@user-lf1qz7fk7k 2 ай бұрын
24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시간이 금방 지나가네요. 깊이가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예전모습을 보니 감사하네요. 정이 있고 깊이가 있는 자료 잘 보았습니다.
@tv-ig1mj
@tv-ig1mj 9 ай бұрын
78년생 난곡초등학교 다녔습니다 난곡시장앞에서 매일 학교까지 등교허기도 쉽지 않았죠~~ 달동네 진짜 많이 놀려 다녔는데요 어린시절이 생각 나네요~~ 😊
@symiso4797
@symiso4797 9 ай бұрын
저의 동생들은 난곡국민학교에 다녔었죠.
@user-dg7yw9fv4z
@user-dg7yw9fv4z 9 ай бұрын
대구 비산동도 지지리못사는 동네였죠 .😢60년도에 판자촌도 많았었고... 저 영상보니 참~~ 옛기억이 떠올려집니다.
@user-tx5ts1wm4o
@user-tx5ts1wm4o 9 ай бұрын
70년대를 살아본 세대 거의 못살아서. 고등 학교도 못가고 자아도 형성 안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남들보다 뒤처지니 자격지심에 주눅들어 살았었다. 내인생에 지우고 싶은 페이지. 그 청초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인생은 지나는 것인걸
@junesikhwang6949
@junesikhwang6949 9 ай бұрын
우와 대단하신 필력이십니다
@user-fy8cw7ww4m
@user-fy8cw7ww4m 10 ай бұрын
난곡동 ㅡ 신림7동 아련한 기역이지만 1977년 여름 전국이 폭우 장마로 피해가지 뫁한 난곡동ㅡ참 고척동 고척대교가 넘칠뻔했지 할아버님 할머니 두분들이 홀연히 여행간 난곡동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난곡동 ㅡ 가슴에 묻는다
@user-te9mv9jd4y
@user-te9mv9jd4y 9 ай бұрын
공감합니다 앞쪽 법원단지 보면서 부러워했죠 저는가슴에 묻지않고 훌훌털어버렸죠 너무배고픈 시절이라 ㅠ
@user-sb3md9mz1p
@user-sb3md9mz1p 2 ай бұрын
기역 → 기억 뫁한 → 못한
@tiny2292
@tiny2292 9 ай бұрын
나 이거 보면서 진짜 울었다...
@user-nk6hc4pu6u
@user-nk6hc4pu6u 5 ай бұрын
그냥..그냥..너무 마음이 아파요..착한 저분들 그렇지만 상처 받았을 저 분들 어딘가에서 따뜻하게 계시길 기도드립니다..
@travel001
@travel001 9 ай бұрын
박씨 할머니 옆집에 연탄불도 확인해주고 손도따주고 잔소리도 해주시는 효숙어머니가 계셔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user-cr7db4fv9n
@user-cr7db4fv9n 9 ай бұрын
효숙이도 지금은 나이 서른이넘어,,,, 누군가의 엄마로 살고있을런지도 모르겠군요… 그땐 고된삶이였어도 지금은 더 행복하기를요….
@user-mi8dn8jl1j
@user-mi8dn8jl1j 9 ай бұрын
효숙이는 지금 35살 되었겠네요. 엄마가 되어 잘살고 있겠죠^^
@user-ip4dg5vv5f
@user-ip4dg5vv5f 6 ай бұрын
35살 ㅠㅠ
@user-dx7ul6vc1y
@user-dx7ul6vc1y Ай бұрын
효숙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user-vf6pe9xv4e
@user-vf6pe9xv4e 10 ай бұрын
15:35 왠지 모르게 가슴 시린 풍경이네요.. 우리 현실은 이렇지만 눈이라도 내리니 아름다우니.... 마치 아름다운 포장지를 씌워주듯 위로같이 그렇게 느껴지는 모습이 먹먹하네요
@lanee3062
@lanee3062 9 ай бұрын
저랑 같으시네요.저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변해버린 내 자신을 돌아보니 눈물 찔끔ㅜ
@asfidnwqlfash
@asfidnwqlfash 9 ай бұрын
이런 곳에 교회가 참 정감 가고 좋음요... 저 시골 살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부유한 집이 많지 않았었고, 그래도 좀 약간 살만해졌어도 날마다 과자를 사먹거나 이러진 못하는 형편들이었어요. 교회 가면 과자도 같이 많이 먹고, 겨울에는 연극 준비하고, 여름에는 이거 저거 막 놀이 만들어서 하고 그랬어요. 당시엔 휴대용 게임기가 나왔어도 그냥 머 피하는 형식에 점수 올라가는 정도였어서, 거의 나가서 논 밭에서 뛰놀고, 초 겨울 바람 불면, 연 사와서 연 날리고, 더 추워지면 깡통 뚫어서 열심히 돌리면서 시냇물 언곳에서 썰매 타고, 눈 많이 내리면 비탈길 찾아서 비료포대에 짚 넣어서 어두워질때까지 놀았는데 ㅎㅎ... 아직도 시골집 작은 방에서 비내릴때 그 비가 흙에 부짖혀서 내는 소리를 잊지 못해요...
@user-cd9nr9tw6j
@user-cd9nr9tw6j 4 ай бұрын
어린시절도 생각나고 뭔가 애틋한 느낌이드네요. 다들 무탈하게 살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user-mo7sd8xs2v
@user-mo7sd8xs2v 10 ай бұрын
효숙이 크나큰 재능 이곳저곳에 나타나네요 지금은 어떻게살고있을까요?
@user-uo7lq7yb2o
@user-uo7lq7yb2o 10 ай бұрын
ㆍ 아 월급봉투 감성터지네요. 지방사람이지이만 저도 신림동 살아본사람으로서 달동네감성 공감이되요 파랑새는있다.서울의달 시절이 그립습니다. 특히 고두심씨의 내레이션이 정겹고 편안합니다. 세기의 명언을 남기셨죠.. 잘났어~정말
@user-fb8id9mc6k
@user-fb8id9mc6k 9 ай бұрын
추억하고 당시 젊음이 그립긴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음.
@user-jf1mk2in9y
@user-jf1mk2in9y 9 ай бұрын
젊음이 좋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음. 정말 힘들었다는 생각에!젊음도 어느정도 환경이좋을때 맘껏 누릴수 있어 행복힌거니까.
@user-up2mb1gg6y
@user-up2mb1gg6y 7 ай бұрын
동생이 이곳에 살았더랬죠...아주 추억이 많은 곳이었네요 눈내리던 추운날 삼복터널에 내려 터벅터벅 내려와 집에 도착하면 입에서 하얀입김이 얼굴을 가릴정도로 났고, 주무시는 할머니 깨실까 다락방으로 허리숙여 기어가 작은 창문밖으로 보는 불빛은 어느비싼집 테라스보다 아름다웠었죠 내리는 눈보며 술잔기울이고..아득히 멀지만..또 어제같기도 한 기억이네요..그립습니다.
@user-ht6ns9bz2c
@user-ht6ns9bz2c 8 күн бұрын
그 떄 그 시절에는 동네사람들끼리 가족처럼 잘지냈지요.... 그립네요 그 때 그 시절이...
@user-pz8ol3gk8z
@user-pz8ol3gk8z 9 ай бұрын
시흥2동 달동네 맴버 입니다... 바로 ㅇ옆 동네라....애정이 가네유 ㅠㅠ
@user-hp2ub6jy9j
@user-hp2ub6jy9j 8 ай бұрын
시흥2동 - 칼바위산 밑마을
@user-sw6kk7hc7f
@user-sw6kk7hc7f 9 ай бұрын
대학교때 실습으로 북지관에 갔던기억이 나는데 재개발이 되었다하네요 .기억이 아련하네요
@Yurina0212
@Yurina0212 10 ай бұрын
난곡동 이라고 부르기전에 낙골 이라고 했음 서울 이곳저곳에서 강제철거 당한사람들에게 산을 밀어내고 그곳에 땅과텐트를보급했음 강제적으로 낙골땅으로 와야했기에 화병 을견디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매일죽어서나갔다 한동안 즐 초상이었다 학교도 뻐스도 없었지 법원 단지 들어선곳이 산과논바닥이었다 산에서내려오는 물로 여름엔 목욕을하고 산에서뛰어놀았다 외국에 거주하기에 더욱 더 그리운 신림7동 2002년경에 가보니. 철거한 상태여서 서운했음😂 그야말로 먼옛날 이야기가되어버렸다 영상을 보니 반갑고 옛날생각 나서 댓글남겨봅니다.
@symiso4797
@symiso4797 9 ай бұрын
맞아요.
@user-nh9cc2cz4q
@user-nh9cc2cz4q 9 ай бұрын
어려서 신림동산꼭대기에서 살았는데 수도가없어 산너머 난곡가는산우물에가서 양동이에 물길어 지게에지고오다 반은 흘리고오던 기억이나네요 ㅠ😢
@user-kl1hz9xq7r
@user-kl1hz9xq7r 9 ай бұрын
져도그래는데 산넘어 우물가에서 빨래빨고그래는돼 연탄머리에 오리고나르고 그래두 그때가 좋았는되
@etn3341
@etn3341 11 күн бұрын
효숙이 언니 미인이시네
@user-ot7nm1sn5r
@user-ot7nm1sn5r 9 ай бұрын
눈물이 나와서 못보겠다 모두들 건강 하시고 삶이 풍족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hjm3531
@hjm3531 9 ай бұрын
지금 그 난곡산동네 재개발한 아파트에 거주중입니다. 저기 출연하신분 우리 성당 교우부부 나오시네요. 여기에 이런 역사가 있는줄 몰랐네요
@user-qj6vr6yd8d
@user-qj6vr6yd8d 10 ай бұрын
효숙이 라는 꼬마가 지금은35살 엄마가 되엇겠구나 지금은 무엇을 하며 살고있을까? 부모님은 모두 건강하신지 그리고 잘 살고있는지 궁굼하다....
@user-mi8dn8jl1j
@user-mi8dn8jl1j 9 ай бұрын
저도 효숙씨 궁금하네요.
@junpapa8154
@junpapa8154 9 ай бұрын
삼성동에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됬다고 뉴스에 나왔어요
@illililillli
@illililillli 9 ай бұрын
​@@junpapa8154효숙님 지인인데 거짓루머로 pdf땄고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junpapa8154
@junpapa8154 9 ай бұрын
@@illililillli 똥이나싸세요~^^
@user-yn1ew5du7q
@user-yn1ew5du7q 9 ай бұрын
1979년생 집은 신림3동이었고 난곡초등학교 난우중학교 나왔는데 학창시절에 신림7동 난향초등학교에도 여러번 가서 놀았던 기억이나네요..진짜 어린시절 신림7동 가려면 가파른 고바위 언덕이라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납니다...지금은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생기고 저는 다른지역에 살지만 그래도 그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그립고 신림7동에 살던 내또래 친구분들 다들 어떻게 살고계신지 궁금하네요 ~~
@admin-ie3mj
@admin-ie3mj 5 ай бұрын
오우 슨배님 ㅋ 그 때는 난화 국민학교도 있었드랬죠
@밤이깊었네1
@밤이깊었네1 23 күн бұрын
@@admin-ie3mj 난화 1회 졸업생입니다~
@myongm7996
@myongm7996 9 ай бұрын
제때 대한민국 구석 구석 이 다르지 않았지요 달 빛을 불빛 삼아 깜깜 한 밤 걷던 기억 무거워 앞 사람 발 걸음 딸라 걷던 시절 그래도 그때는 정이 있고 온 거족 이 모여 살던 그리운 사절 아 아 눈물 나네요 특히 이 머나먼 미국 땅에서 몇 십년 만에 추억 을 만나니
@user-tx5ts1wm4o
@user-tx5ts1wm4o 9 ай бұрын
평생을 지방에서만 살아본 사람으로 항상 서을살이를 꿈꾸며 살았는데 지금도 중년지난 나이지만 서울살이 하고픈 할머니가
@user-fb8id9mc6k
@user-fb8id9mc6k 9 ай бұрын
이 프로그램 당시 방영할 때 보고 상당히 인상 깊었던ᆢ
@yangokwhang5062
@yangokwhang5062 9 ай бұрын
지금 75세인데 이영상보니 옛날 생각나네요.
@user-df2nf8st9s
@user-df2nf8st9s 9 ай бұрын
왠지가슴이찡하네지금나도많이힘들게살아서그런가,
@user-wh8ep2hs4k
@user-wh8ep2hs4k 10 ай бұрын
영상 정말 잘찍었네요 👍👍👍👍 저땐 다들 아끼며살았죠
@Uuuu_youuU
@Uuuu_youuU 10 ай бұрын
나 태어나기도 몇년 전 영상이네… 2000년대 감성 ㅠㅠ
@jioasminkyu1207
@jioasminkyu1207 10 ай бұрын
2000년11월이면 내가 태어나기 한달 전 ㅋㅋㅋㅋ
@gsgvx
@gsgvx 9 ай бұрын
컴퓨터가 2000년을 인식 하느니 못 하느니 난리 부루스 떨던 시절이 벌써 20년이 넘었네
@user-xq7lu4vk3d
@user-xq7lu4vk3d 9 ай бұрын
효숙이란아이 그당시 꽤 당차고 똑똑한아이였네요 훌륭하게컷겠죠 궁금하네요
@user-yp6py1gt5z
@user-yp6py1gt5z 9 ай бұрын
지금은 흔적도 없는 모습에 못 살았지만 나름 서민들의 애환이 넘친곳이죠 지금도 떠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분들도 아파트가 들어서며 엄청나게 집값이 치솟아 집 떠난 분들은 살수 없지요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 살고 있을지?
@user-qw3dz1zy2c
@user-qw3dz1zy2c 9 ай бұрын
1977년 여름 심한 호우로 낙골 사람들 신대방동 문창국민학교 교실로 피난살이 하더라구요 때마침 여름방학이라 빈교실에 모여 며칠씩 마을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제 기억에 해마다 호우때 마다 일어나는 낙골 사람들에게 연례행사처럼 비만 좀 많이 오면 어김없이 문창국민학교로 와서 며칠간 머물더군요 예전엔 저 동네를 낙골이라 불렀어요 1973년에 문창국민학교에서 저 부근으로 소풍을 갔는데 쌀농사 짓는이도 있었고, 숩굽는 이들도 있었어요
@symiso4797
@symiso4797 9 ай бұрын
맞아요. 낙골이라고 했었죠!
@user-sx8nm7ph8x
@user-sx8nm7ph8x 9 ай бұрын
이런데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아파트 살고 있는건 호강하는거였네요.
@user-op2jb7dr4u
@user-op2jb7dr4u 9 ай бұрын
많이 풍족하진 않아서 힘들었던 때였죠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Anarchists2024
@Anarchists2024 9 ай бұрын
공감입니다. 그땐 따듯한 말 한마디 만 들어도 힘이 나던 시절이였죠 시간 참 빠르게 흐르네요 저기 기득권자들은 마치 천년 만년은 살거처럼 ~나쁜짓만 하며 사는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오네요 예전보다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user-op2jb7dr4u
@user-op2jb7dr4u 9 ай бұрын
@@Anarchists2024 힘내십시다 오늘하루는 그 누군가가 간절히 살고싶던 하루라는 말이 있더군요
@user-kw1dt4ln4i
@user-kw1dt4ln4i 5 ай бұрын
니가 저학력 저소득 인생이라 옛날이 그리운거야 니가 노력해서 뭔갈 이루고 잘 사는 사람이면 옛날 생각도 안나겠지
@hotsorry71
@hotsorry71 9 ай бұрын
이웃이 있던 시절...
@shanhuzhao8739
@shanhuzhao8739 2 ай бұрын
나도 처음 서울 생활 06 년부터 난곡서 살앗는데 정이 제일 많이 드는 동네였죠.
@YouTube_leekhi37
@YouTube_leekhi37 4 ай бұрын
저는 아직 신림동을 지키고 있지만..밤골 비지구 살던 친구들은 이제 다 떠났고..한달에 한번 신림동에서 만나 옛추억을 나누네요..! 정가고 따뜻했던 추억!!! 이젠 약수암 비지구 해바라기 성림교회도 다 재개발 땅 파고 있네요! 우리집 1구역 신림시장도 곧 사라질듯..
@user-qk4gp8fq4m
@user-qk4gp8fq4m 4 күн бұрын
모두들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시리라 믿어요
@iong1870
@iong1870 10 ай бұрын
지금 난향동 자리인거 같네요. 휴먼시아랑 들어온 자리.
@user-qp1bo1uo7f
@user-qp1bo1uo7f 10 ай бұрын
여보 미안하오 그간 애들 키워 다보네고 당신과 나만 남았구려 내당신 고생시켜 미안하오
@user-zh2zl5cz9p
@user-zh2zl5cz9p 9 ай бұрын
신림동 난곡 판자촌 달동네를 보면서 자랐는데 저 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라에서 정말 어려운 분들에게 편히 살 수 있는 저금리 영구 임대 아파트를 제공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이 아프다 ...
@user-zcvb7t
@user-zcvb7t 6 ай бұрын
LH 공공분양2천800가구 임대아파트 500가구 현재 난곡동 효숙이 동네. 재개발 됫다고하네요
@redzone8556
@redzone8556 Ай бұрын
난곡동.. 재개발되면서 집없는사람들 쫒겨났죠.. 파업? 그런거뉴스많이나왔는데.. 분양받은사람들은 집주인들., 서울재개발현실이죠. 90년대만해도 그냥쫒아내고 아파트짓던시절..
@user-pf4su9bh5h
@user-pf4su9bh5h 9 ай бұрын
어린시절 서울 답십리 100번지에 살았을때가 생각납니다. 철거민의 아픔을 저는 압니다.
@user-hh7to4te2m
@user-hh7to4te2m 9 ай бұрын
전 기초생활수급자에 장애인 입니다 사는게 넘 힘이 듭니다
@Andante-ot1xc
@Andante-ot1xc 9 ай бұрын
동대문구 이문1동에서 수십년을 살다 재개발로 쫒겨나 이사한 곳이 현재 마포 임대 아파트.. 이문동은 2019년에 철거를 시작했다. 고향은 아니지만 거의 20년을 살아온 동내이다보니 철거한지는 5년도 되진 않았지만 왜 이리 그리운지 모르겠다. 울고 웃으며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은 내동네 이문 1동. 그자리엔 수십층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고 철거민인 나는 여전히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고 있다.. 의문의 불난 집처럼 내 마음도 저 불속에 내던져졌다..
@user-op2jb7dr4u
@user-op2jb7dr4u 9 ай бұрын
저도 이문동이 고향이지요 연탄공장옆 전철역 지나서 기와 단독주택동네살았었죠 이문동떠난지 어언30년이 넘었네요 이문동에서의 추억을 공유할수있어 반갑습니다 고향사람만난듯 그때시절이 생각나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Andante-ot1xc
@Andante-ot1xc 9 ай бұрын
@@user-op2jb7dr4u 저도 너무 반갑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되시길 바랍니다^~^
@vynyl
@vynyl 9 ай бұрын
저는 2014년 한국외대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이문동에서 첫 서울 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문동에 방문했을 때는 제 고향 포항과 분위기가 비슷해서, 정겹고 따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10년가까이를 이문동 구석구석 다니며 참으로 아름다운 동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끄적여 봅니다 늘 건강하십시고 하시는 일 잘되시길 바라겠습니다
@user-oq7pm8ku9t
@user-oq7pm8ku9t 9 ай бұрын
그런데
@user-jg7dr8qr9n
@user-jg7dr8qr9n 7 ай бұрын
​@@vynyl20:10 20:12
@user-li5dc7fc7d
@user-li5dc7fc7d 9 ай бұрын
눈물이 난다
@david80512002
@david80512002 9 ай бұрын
저기살면서 힘겹게 사법고시합격한 선배형이 생각나네요~~
@news7324
@news7324 9 ай бұрын
아련하네요
@ockrankim3206
@ockrankim3206 8 ай бұрын
복지가 꼭 필요한 이유 ,더불어 같이 사는사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가슴아픈 영상이네요. 빈익빈 부익부가 더 극명하게 양극화되는 사회에서는 서민들은 더 고통받죠 ..그래서 더욱 정치인들을 잘 뽑아야 하는 현실입니다
@user-zg5qy4ne1x
@user-zg5qy4ne1x 10 ай бұрын
어릴적 생각이 나네요 요즘은 좋은 시절이지만 전철을 타고 학교 다니구
@user-ss3kz8xv4e
@user-ss3kz8xv4e 10 ай бұрын
우리네 인생인것을....
@hoon9440
@hoon9440 9 ай бұрын
철거용역 깡패들이 몰래 불지르고 거주자들 중에 일당발이 모집해서 철거 시켜서 주민들 서로 싸우게 하거나 말못하게 만들고. . . 돈없고 힘없는 서민들의 삶은 참 고달프고 많이도 서러웠겠네요 하지만 돈없고 힘없다는게 선악중에 항상 선은 또 아니니 ㅠㅠ
@user-be5vw1yd4t
@user-be5vw1yd4t 9 ай бұрын
서민들은 몬 서민들입니까 빈민들이지
@user-mm5ds9ix5p
@user-mm5ds9ix5p 8 ай бұрын
효숙이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근데 효숙아 공부는 니가 하는 거지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닌거 같아 ^^
@user-ye3gg6gt9m
@user-ye3gg6gt9m 9 ай бұрын
저어릴때산동네살던생각이나네요
@Jayunholy
@Jayunholy 10 ай бұрын
세이브마트 옆에 사는데 이 영상이 뜨네요 ㅋㅋ
@user-yi4nf1fy8w
@user-yi4nf1fy8w 9 ай бұрын
그래도 전 부엌 화장실 샤워할수있는 욕실 있고 방3칸에 2층 전세집 살았는데 그때 달동네 사는 사람들 많았는데 ㅠ
@user-zm7xs8ou5v
@user-zm7xs8ou5v 2 ай бұрын
80년에 난곡동101번종점내려 친구집은 맨꼭대기에 살아서 놀러 갔던기억 그립다
@xiahoudun7489
@xiahoudun7489 9 ай бұрын
2004년 난곡에 바이크를 타고 올라가던 세월이 벌써 20여년전이네요.. 세월이 무상하네요
@user-sg5hn9sz9j
@user-sg5hn9sz9j 15 күн бұрын
잘들계신가요~~ 너무ㅠ그립습니다.
@user-wp5xy1lb6j
@user-wp5xy1lb6j 10 ай бұрын
지금은 아파트 대단지 조성하고있다 그리고 신림7동에서 행정동명이 난향동 으로 바뀌었다... 난초향이 그윽하다 해서 난향동 ... 그곳에서 태어나 살다가 지금은 타지역으로 이주하여 살고있지만 ... 희ㆍ노ㆍ애ㆍ락 모두 담겨진 나의 태를 묻었던 고향 난향동 ㅠㅠ 어릴적 그옛날 추억이 그리운 내고향 난향동 아니 신림7동 애증과 사랑했던 곳 사람냄새나고 정겨웠던 신림7동 많이 그립습니다 🥺 사랑했다 신림7동 ♥️
@Seoulperson
@Seoulperson 9 ай бұрын
휴먼시아랑 푸르지오가 우뚝 솟았죠
@user-qt3lu6lk2g
@user-qt3lu6lk2g 9 ай бұрын
청춘을 돌려다오😢
@JBS491
@JBS491 9 ай бұрын
난곡은 아니지만, 2001년에 미성중학교 다니고 있었습니다. 효숙이는 꼭 의사가 됐으면 좋겠네요😢
@user-gp4yf4yi4k
@user-gp4yf4yi4k 5 ай бұрын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의 그리움이 있던 곳이 일본에서 10년 정도 살다 오고 그 추억이 그리워 무작정 찾아 갔는데 그 전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쉬웠습니다......그 당시 봉천 구세군 영문에 다니시던 모든 분들이 너무나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혹시나 그 당시 그곳에 머물렀던 분들이 제 글을 보시면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제 나이는 56세 입니다.... 김봉화 사관님이 계셨던 시절 이였습니다.
@user-tn6ic6vu4y
@user-tn6ic6vu4y 10 ай бұрын
내기억을 생각하면 저정도면 엄청난 발전했네요
@user-cz6qt1mj5g
@user-cz6qt1mj5g 9 ай бұрын
난곡지구.............. 진짜 신림동 봉천동 이 산악지대라 달동네가 많았지 서울인데 서울아닌 그런곳....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월세가 싸니까 계속 올라가던 그런곳...
@Zman158
@Zman158 9 ай бұрын
삼성산 주공아파트 가 저때도 있었군요 지금 친구가 사는 곳이 삼성산 주공아파트 바로 아래쪽의 신림주공 에 살고 있는데 난곡동 이라 그런지 산 너머로 삼성산아파트 보이네요 ㅎㅎ
@user-mr0cy1jw9
@user-mr0cy1jw9 9 ай бұрын
🦋Will spring come to NAN GOK.🦋 😭😰😢ㅡDon't cry for me. NAN GOK.👨‍👩‍👧‍👧
@symiso4797
@symiso4797 9 ай бұрын
😂 난곡에 사셨었나요?
@user-mr0cy1jw9
@user-mr0cy1jw9 9 ай бұрын
@@symiso4797 옛날에 서울대 부근에 신림동에서 자취한적 있어요,ㅡ 달동네 사시는 분, 삶의 무게를 들어주어야 할 책무와 의무가 국가에 있기때문에, 양극화로 인한 빈곤층 해소는 국가의 책임입니다,🐸🐸🐸🐸🐸
@shk6270
@shk6270 9 ай бұрын
원인불명의 화재.. 2020년대 구룡마을에도 많이 일어나고있죠..
@dkafff445
@dkafff445 9 ай бұрын
을지로에서도 일어났어요 어이가 없음
@sung-su7-3D-G
@sung-su7-3D-G 3 ай бұрын
재개발 지역 주민들 빨리 집 비우라고 협박?
@redzone8556
@redzone8556 Ай бұрын
서울달동네 다사라져서.. 친구가불광동살아 달동네자주갔는데 골목골목ㅎㅎ 어릴때 월곡동도달동네라.. 눈오면 길미끄럽고 그래도 친구네놀러가면 훤한아랫동네?ㅎㅎ 보였어요.. 그립네.. 그때그향기공기 내착각일수있어도 90년대만해도 엄청추웠던거같은데 장갑목도리다해도 손발시렸음,.
@user-yv4kn4cw6u
@user-yv4kn4cw6u 2 ай бұрын
난곡동.. 제일 가난했었지만 비교할 부유함이 없었고 어렸기에 내 인생 가장 행복했었던.. 그 뒤로 어중띠 먹고 살만한 동네들.. 거치면서 상처받고 때묻고 같이 동조하고 ㅜㅜ 80년생 난화 친구들 보고싶다
@user-ie6vb3ql7e
@user-ie6vb3ql7e 9 ай бұрын
물건은 받아 볼 수 없고 새로운 인생만 있어야 한다
@user-in6ev4fl9c
@user-in6ev4fl9c 5 ай бұрын
저는 80년에 결혼해 난곡 중학교 정문앞에 살았다오.
@hyunwoo_yi
@hyunwoo_yi 9 ай бұрын
22년전 영상 지금도 봉천동 신림동 달 동네 같은데 있는거 같던데
@hanbum11
@hanbum11 10 ай бұрын
저 임대아파트가 현재 신림 푸르지오로 재건축되어 현재 12억정도 합니다 지금 화면에 나온 할머니들 다 10억대 자산가 되셔서 세입자 받고 본인은 고향으로 가셨습니다
@shk6270
@shk6270 9 ай бұрын
저기 나오신분중에 집주인 몇안됨
@JG77999
@JG77999 9 ай бұрын
저기사람들 거의 세입자 돈없는 사람들일 텐데 ? 가짜뉴스아냐 ?
@shk6270
@shk6270 9 ай бұрын
@@JG77999 효숙이엄마? 같은 집주인은 12억대 집주인이되었겠지만 모 생활비 외 넉넉하고일정하게 들어오는 수입이 없는한 재산세 내면서 살기가 그리 쉽진않을듯요..
@didasa5039
@didasa5039 9 ай бұрын
자가 본인집이면 대출받고 구입할수있고 세살면 이사비용받고 재개발비용받고 이사가는거지 ㅋㅋ 달동네 살았고 재개발되면 저 아파트 다 사는게 아니죠
@kiianu4374
@kiianu4374 9 ай бұрын
가짜뉴스.. 지겹.. 에라이~~~
@user-nn9ye4kk9e
@user-nn9ye4kk9e 10 ай бұрын
난향동 아파트 사는데 이게뜨네요 ㅋ 노원 강북도 비슷했죠 수유리 미아리 등등 ㅋ
@user-ye2pq9un1p
@user-ye2pq9un1p 9 ай бұрын
나래이션 첨에ㅣ 누구시지 자꾸들으니..고두심 님이시네요 .
@nsy9414
@nsy9414 9 ай бұрын
보는 내 서글펐어요
@user-sv9ku8jn7o
@user-sv9ku8jn7o 2 ай бұрын
그립다ㅠㅠ.. 난곡.
@user-ed3kp5iz4x
@user-ed3kp5iz4x 9 ай бұрын
내가 살던 동네보다 부자네요. B 지구라고 들어들 보셨나 ? 판자집.타마구 지붕. 지금도 볼수 있는데 , 얼마전부터 철거중~
@user-sb5vs2gk4y
@user-sb5vs2gk4y 10 ай бұрын
아~70년대 가난한 빈농의 아들딸이 차비만 쥐고 출세할려고 상경해 도시빈민의 나락으로 떨어졌네요
@TV-hd9ik
@TV-hd9ik 4 ай бұрын
화질개선 리마스터링 됐으면 좋겠당,ㅜ
@Jake-vf2up
@Jake-vf2up 8 ай бұрын
2000년 감성 좋네요..
@user-mj9ju5sr2b
@user-mj9ju5sr2b 9 ай бұрын
효숙이는 어디서 살까요 효숙엄마 잘 계시는지요 한번 만나고 싶네요
@user-ip6cb3pq8o
@user-ip6cb3pq8o 10 ай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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