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밤골에 살았었는데 어려서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얼마나 어렵게 고생하며 사셨는지 가슴이 아픕니다~ 살아본 사람들만 아는 거죠~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추억-r9q Жыл бұрын
눈물이 나네요 고생하셨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최윤호-h5g Жыл бұрын
봉천동 달동네에서 살았습니다 5식구가 단칸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래도 이웃간에 정이 있었던시절 온가족이 따뜻한 밥을 먹던기억과 젊은시던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user-zcvb7t11 ай бұрын
70년대 단칸방 6명 살았는데 부모님 3형제 누나
@임진영-m3o3 ай бұрын
이런 휴먼 다큐 너무나 좋아합니다. 우리들 삶을 기록으로 꼭 좀 남겨주세요. 남는 것은 기억 저 편으로 흘러간 우리들의 시대입니다. 생각 날 때마다 꼭 꺼내보는 앨범과 같은 추억들은 영원히 기억할겁니다.
@나나리-j9k Жыл бұрын
우리효숙이 지금은 뭘 하던 행복하게 잘~살고있기를 바란데이~!^^
@pjreboot8302 Жыл бұрын
전 지금도 신림7동에 살고 있습니다. 7동은 단독, 다가구 주택지역과 달동네라고 하는 두지역으로 돼있었어요 지금 화면에 나오는 곳은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지만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과 놀던 그곳을 아직도 그리워합니다. 저때까지는 이웃사촌이라는게 뭔지 알던 시절이였는데...
나는 이런 아날로그 삶의 기록이 좋다. 그 시절 어떻게들 살았을 지 알 수 있는 기록이어서 좋고. 어려운 시절, 이웃끼리 서로 관심을 갖고, 챙겨주고, 의지하며 돕고 사는 모습 역시 매우 좋아 보인다. 그 속에서 배려가 묻어 나오고, 인내와 화합, 상호 봉사하는 인성도 배어 나온다. 물론 현재보다는 물질적으로 많이들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인내와 배려, 희생과 봉사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 자기 마음에 안들면 묻지마 칼부림을 하고 그 죄의 무게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가난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고, 2세들에게 가르치고 보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JG77999 Жыл бұрын
22년이 지난 지금저분들 다 건강하시길
@사명대사-n3g Жыл бұрын
난곡동 ㅡ 신림7동 아련한 기역이지만 1977년 여름 전국이 폭우 장마로 피해가지 뫁한 난곡동ㅡ참 고척동 고척대교가 넘칠뻔했지 할아버님 할머니 두분들이 홀연히 여행간 난곡동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난곡동 ㅡ 가슴에 묻는다
중학생일때 나도 구로공단 삼립빵공장밑에 살 시절 한아이가 학교을 나오지안아 선생님이 찾아 가보라 해서 난곡을 감 버스종점에서 내려보니 거기서부터 물지게를 들고 올라가더만 그물에 흘린것이 얼어 빙판 그언덕들이 그냥빙판이었네요 진짜 관악산 골짜기 산꼭대기 끝에 산 친구임 그애 어머니는 일본인 어머니 병들고 숨을 못실정도 아파하심 그애는 가출한 상태고 난 정말 충격 먹음 정말힘든 시절 있였네요
@안재준-w9r Жыл бұрын
영상을 보고 글을 읽으니 그 당시 모습이 그려져서 가슴이 시립니다..
@coffee11137 Жыл бұрын
난곡은 수도물안나와 물을길어먹었어요 고모네가 거기살아 물길어 오던기억있어요
@시롤TV Жыл бұрын
선생님 그게 몇년도 이야기인가요?
@윤정도-c2s Жыл бұрын
70년중반~나도여기서 살아봤음 눈물나고 가슴시린 날들 지금다시보니 먹먹하네
@gyoon-dn2ln Жыл бұрын
80되신 어머니가 50인 저를 부산 영도 판잣집서 낳으셨는데 아마 여기분위기랑 비슷했던지 아님 더 어려웠을것 같음ㅠㅜ 짠~~~~~~한 영상ㅜㅠ
@tv-ig1mj Жыл бұрын
78년생 난곡초등학교 다녔습니다 난곡시장앞에서 매일 학교까지 등교하기도 쉽지 않았죠~~ 달동네 진짜 많이 놀려 다녔는데요 어린시절이 생각 나네요~~ 😊
@symiso4797 Жыл бұрын
저의 동생들은 난곡국민학교에 다녔었죠.
@빠다-m4o3 ай бұрын
저도 78년생 난곡 초등 졸업생입니다
@jobobbiАй бұрын
79년생이고 난곡초등학교 졸업했습니다..개미문방구의 추억의 떡볶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개미 문방구 옆에 있던 또다른 문방구의 장애우 아저씨, 갈고리 손이 어렸을때 그로테스크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걸 기억하고 계신 분이라면 필히 난곡초등학교를 80년대 겪어보신 분일듯요...
@이웃어요10 ай бұрын
그냥..그냥..너무 마음이 아파요..착한 저분들 그렇지만 상처 받았을 저 분들 어딘가에서 따뜻하게 계시길 기도드립니다..
@주바라기역 Жыл бұрын
지금은 아련한 옛 추억이 되어버린 시절이지만 가슴이 먹먹할 만큼 그립습니다 ❤
@코스모스-m5m Жыл бұрын
대구 비산동도 지지리못사는 동네였죠 .😢60년도에 판자촌도 많았었고... 저 영상보니 참~~ 옛기억이 떠올려집니다.
@박현욱-u5x Жыл бұрын
15:35 왠지 모르게 가슴 시린 풍경이네요.. 우리 현실은 이렇지만 눈이라도 내리니 아름다우니.... 마치 아름다운 포장지를 씌워주듯 위로같이 그렇게 느껴지는 모습이 먹먹하네요
@lanee3062 Жыл бұрын
저랑 같으시네요.저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변해버린 내 자신을 돌아보니 눈물 찔끔ㅜ
@최성석-i4z7 ай бұрын
24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시간이 금방 지나가네요. 깊이가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예전모습을 보니 감사하네요. 정이 있고 깊이가 있는 자료 잘 보았습니다.
@물흐르듯이-u1o Жыл бұрын
70년대를 살아본 세대 거의 못살아서. 고등 학교도 못가고 자아도 형성 안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남들보다 뒤처지니 자격지심에 주눅들어 살았었다. 내인생에 지우고 싶은 페이지. 그 청초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인생은 지나는 것인걸
@junesikhwang6949 Жыл бұрын
우와 대단하신 필력이십니다
@Testdrivereviews5 ай бұрын
74년생입니다. 난곡에서 7살 때 딱 1년 살았는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이였네요. 머리속에 잊혀지지 않는 곳...
@tiny2292 Жыл бұрын
나 이거 보면서 진짜 울었다...
@울랄라-l6f Жыл бұрын
슬프다 가슴이 울컥한다 모두들 어디에 계신가요?
@김기범-u2d2 ай бұрын
박효태 할머니는 납골장이요...
@쭌쭈니-i2h Жыл бұрын
동생이 이곳에 살았더랬죠...아주 추억이 많은 곳이었네요 눈내리던 추운날 삼복터널에 내려 터벅터벅 내려와 집에 도착하면 입에서 하얀입김이 얼굴을 가릴정도로 났고, 주무시는 할머니 깨실까 다락방으로 허리숙여 기어가 작은 창문밖으로 보는 불빛은 어느비싼집 테라스보다 아름다웠었죠 내리는 눈보며 술잔기울이고..아득히 멀지만..또 어제같기도 한 기억이네요..그립습니다.
난곡동 이라고 부르기전에 낙골 이라고 했음 서울 이곳저곳에서 강제철거 당한사람들에게 산을 밀어내고 그곳에 땅과텐트를보급했음 강제적으로 낙골땅으로 와야했기에 화병 을견디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매일죽어서나갔다 한동안 즐 초상이었다 학교도 뻐스도 없었지 법원 단지 들어선곳이 산과논바닥이었다 산에서내려오는 물로 여름엔 목욕을하고 산에서뛰어놀았다 외국에 거주하기에 더욱 더 그리운 신림7동 2002년경에 가보니. 철거한 상태여서 서운했음😂 그야말로 먼옛날 이야기가되어버렸다 영상을 보니 반갑고 옛날생각 나서 댓글남겨봅니다.
@symiso4797 Жыл бұрын
맞아요.
@절대풍선 Жыл бұрын
눈물이 나와서 못보겠다 모두들 건강 하시고 삶이 풍족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user-cr7db4fv9n Жыл бұрын
효숙이도 지금은 나이 서른이넘어,,,, 누군가의 엄마로 살고있을런지도 모르겠군요… 그땐 고된삶이였어도 지금은 더 행복하기를요….
@변강석-y1w5 ай бұрын
효숙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빛한줌 Жыл бұрын
영상 정말 잘찍었네요 👍👍👍👍 저땐 다들 아끼며살았죠
@YouTube_leekhi379 ай бұрын
저는 아직 신림동을 지키고 있지만..밤골 비지구 살던 친구들은 이제 다 떠났고..한달에 한번 신림동에서 만나 옛추억을 나누네요..! 정가고 따뜻했던 추억!!! 이젠 약수암 비지구 해바라기 성림교회도 다 재개발 땅 파고 있네요! 우리집 1구역 신림시장도 곧 사라질듯..
@윤경노-d1e Жыл бұрын
1979년생 집은 신림3동이었고 난곡초등학교 난우중학교 나왔는데 학창시절에 신림7동 난향초등학교에도 여러번 가서 놀았던 기억이나네요..진짜 어린시절 신림7동 가려면 가파른 고바위 언덕이라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납니다...지금은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생기고 저는 다른지역에 살지만 그래도 그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그립고 신림7동에 살던 내또래 친구분들 다들 어떻게 살고계신지 궁금하네요 ~~
@admin-ie3mj10 ай бұрын
오우 슨배님 ㅋ 그 때는 난화 국민학교도 있었드랬죠
@밤이깊었네15 ай бұрын
@@admin-ie3mj 난화 1회 졸업생입니다~
@물흐르듯이-u1o Жыл бұрын
평생을 지방에서만 살아본 사람으로 항상 서을살이를 꿈꾸며 살았는데 지금도 중년지난 나이지만 서울살이 하고픈 할머니가
@홍재명-i3o Жыл бұрын
효숙이 라는 꼬마가 지금은35살 엄마가 되엇겠구나 지금은 무엇을 하며 살고있을까? 부모님은 모두 건강하신지 그리고 잘 살고있는지 궁굼하다....
@딲어 Жыл бұрын
저도 효숙씨 궁금하네요.
@junpapa8154 Жыл бұрын
삼성동에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됬다고 뉴스에 나왔어요
@illililillli Жыл бұрын
@@junpapa8154효숙님 지인인데 거짓루머로 pdf땄고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junpapa8154 Жыл бұрын
@@illililillli 똥이나싸세요~^^
@asfidnwqlfash Жыл бұрын
이런 곳에 교회가 참 정감 가고 좋음요... 저 시골 살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부유한 집이 많지 않았었고, 그래도 좀 약간 살만해졌어도 날마다 과자를 사먹거나 이러진 못하는 형편들이었어요. 교회 가면 과자도 같이 많이 먹고, 겨울에는 연극 준비하고, 여름에는 이거 저거 막 놀이 만들어서 하고 그랬어요. 당시엔 휴대용 게임기가 나왔어도 그냥 머 피하는 형식에 점수 올라가는 정도였어서, 거의 나가서 논 밭에서 뛰놀고, 초 겨울 바람 불면, 연 사와서 연 날리고, 더 추워지면 깡통 뚫어서 열심히 돌리면서 시냇물 언곳에서 썰매 타고, 눈 많이 내리면 비탈길 찾아서 비료포대에 짚 넣어서 어두워질때까지 놀았는데 ㅎㅎ... 아직도 시골집 작은 방에서 비내릴때 그 비가 흙에 부짖혀서 내는 소리를 잊지 못해요...
지금은 흔적도 없는 모습에 못 살았지만 나름 서민들의 애환이 넘친곳이죠 지금도 떠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분들도 아파트가 들어서며 엄청나게 집값이 치솟아 집 떠난 분들은 살수 없지요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 살고 있을지?
@hagley-g6i Жыл бұрын
1977년 여름 심한 호우로 낙골 사람들 신대방동 문창국민학교 교실로 피난살이 하더라구요 때마침 여름방학이라 빈교실에 모여 며칠씩 마을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제 기억에 해마다 호우때 마다 일어나는 낙골 사람들에게 연례행사처럼 비만 좀 많이 오면 어김없이 문창국민학교로 와서 며칠간 머물더군요 예전엔 저 동네를 낙골이라 불렀어요 1973년에 문창국민학교에서 저 부근으로 소풍을 갔는데 쌀농사 짓는이도 있었고, 숩굽는 이들도 있었어요
@symiso4797 Жыл бұрын
맞아요. 낙골이라고 했었죠!
@yangokwhang5062 Жыл бұрын
지금 75세인데 이영상보니 옛날 생각나네요.
@정지혜-r5w Жыл бұрын
어린시절 서울 답십리 100번지에 살았을때가 생각납니다. 철거민의 아픔을 저는 압니다.
@케이드나이트 Жыл бұрын
전 기초생활수급자에 장애인 입니다 사는게 넘 힘이 듭니다
@카라-n8t Жыл бұрын
많이 풍족하진 않아서 힘들었던 때였죠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Anarchists2024 Жыл бұрын
공감입니다. 그땐 따듯한 말 한마디 만 들어도 힘이 나던 시절이였죠 시간 참 빠르게 흐르네요 저기 기득권자들은 마치 천년 만년은 살거처럼 ~나쁜짓만 하며 사는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오네요 예전보다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카라-n8t Жыл бұрын
@@Anarchists2024 힘내십시다 오늘하루는 그 누군가가 간절히 살고싶던 하루라는 말이 있더군요
@이재명지지자-k3q10 ай бұрын
니가 저학력 저소득 인생이라 옛날이 그리운거야 니가 노력해서 뭔갈 이루고 잘 사는 사람이면 옛날 생각도 안나겠지
@미친-r3v Жыл бұрын
이런데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아파트 살고 있는건 호강하는거였네요.
@gsgvx Жыл бұрын
컴퓨터가 2000년을 인식 하느니 못 하느니 난리 부루스 떨던 시절이 벌써 20년이 넘었네
@남성최재영-g4s Жыл бұрын
왠지가슴이찡하네지금나도많이힘들게살아서그런가,
@Uuuu_youuU Жыл бұрын
나 태어나기도 몇년 전 영상이네… 2000년대 감성 ㅠㅠ
@jioasminkyu1207 Жыл бұрын
2000년11월이면 내가 태어나기 한달 전 ㅋㅋㅋㅋ
@SH-rm7xf18 күн бұрын
70년생 신림3동 난곡초 남강중 졸업 그때 그시절에 교회에서 7동3동 크리스마스2부날 돌아다니면서 고요한밤~~ 노래부르던 기억이남 아직도 동창들 많이 살고있음 눈오는 겨울철엔 나무썰매 만들어서 언덕위에서 타고 놀던기억도 그립네요
@Ann-bc5kg4 ай бұрын
76년생 난곡국민학교 그립다😊
@김쭌-o3w4 ай бұрын
모두들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시리라 믿어요
@iong1870 Жыл бұрын
지금 난향동 자리인거 같네요. 휴먼시아랑 들어온 자리.
@taock2024 Жыл бұрын
복지가 꼭 필요한 이유 ,더불어 같이 사는사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가슴아픈 영상이네요. 빈익빈 부익부가 더 극명하게 양극화되는 사회에서는 서민들은 더 고통받죠 ..그래서 더욱 정치인들을 잘 뽑아야 하는 현실입니다
@hotsorry71 Жыл бұрын
이웃이 있던 시절...
@Andante-ot1xc Жыл бұрын
동대문구 이문1동에서 수십년을 살다 재개발로 쫒겨나 이사한 곳이 현재 마포 임대 아파트.. 이문동은 2019년에 철거를 시작했다. 고향은 아니지만 거의 20년을 살아온 동내이다보니 철거한지는 5년도 되진 않았지만 왜 이리 그리운지 모르겠다. 울고 웃으며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은 내동네 이문 1동. 그자리엔 수십층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고 철거민인 나는 여전히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고 있다.. 의문의 불난 집처럼 내 마음도 저 불속에 내던져졌다..
저는 2014년 한국외대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이문동에서 첫 서울 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문동에 방문했을 때는 제 고향 포항과 분위기가 비슷해서, 정겹고 따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10년가까이를 이문동 구석구석 다니며 참으로 아름다운 동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끄적여 봅니다 늘 건강하십시고 하시는 일 잘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정낙숙 Жыл бұрын
그런데
@김미례-r6w Жыл бұрын
@@vynyl20:10 20:12
@wooL-x7n Жыл бұрын
신림동 난곡 판자촌 달동네를 보면서 자랐는데 저 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라에서 정말 어려운 분들에게 편히 살 수 있는 저금리 영구 임대 아파트를 제공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이 아프다 ...
@user-zcvb7t11 ай бұрын
LH 공공분양2천800가구 임대아파트 500가구 현재 난곡동 효숙이 동네. 재개발 됫다고하네요
그래도 전 부엌 화장실 샤워할수있는 욕실 있고 방3칸에 2층 전세집 살았는데 그때 달동네 사는 사람들 많았는데 ㅠ
@나이스맨-g9l Жыл бұрын
여보 미안하오 그간 애들 키워 다보네고 당신과 나만 남았구려 내당신 고생시켜 미안하오
@hoon9440 Жыл бұрын
철거용역 깡패들이 몰래 불지르고 거주자들 중에 일당발이 모집해서 철거 시켜서 주민들 서로 싸우게 하거나 말못하게 만들고. . . 돈없고 힘없는 서민들의 삶은 참 고달프고 많이도 서러웠겠네요 하지만 돈없고 힘없다는게 선악중에 항상 선은 또 아니니 ㅠㅠ
@이상원-m9n Жыл бұрын
서민들은 몬 서민들입니까 빈민들이지
@JBS491 Жыл бұрын
난곡은 아니지만, 2001년에 미성중학교 다니고 있었습니다. 효숙이는 꼭 의사가 됐으면 좋겠네요😢
@shanhuzhao87396 ай бұрын
나도 처음 서울 생활 06 년부터 난곡서 살앗는데 정이 제일 많이 드는 동네였죠.
@ootamanabu3 ай бұрын
99년에 야간에 윗길을 자동차로 지나가다가 우연히 밤의 오랜지색 불빛 보고 놀라서 차를 다시 유턴시켜 안쪽에 차를 넣고 주차한 다음 주변 돌아본게 전부입니다. 그때 추억이 있어서 다음날 토요일도 차를 가지고 다시 찾아가봤습니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주거지였군요.... 개발될때 신림7동이란걸 알았습니다.
@왕인현-c8n2 ай бұрын
기다리셔요 언젠가 좋은일이 있을겁니다
@david80512002 Жыл бұрын
저기살면서 힘겹게 사법고시합격한 선배형이 생각나네요~~
@샤월-k5eАй бұрын
서울 중구 신당동은 건물들과 동네 배경은 지방광역시 서민동네고 시세는 지방광역시 부촌동네던데
@617shnam3 ай бұрын
너무 슬프다 . 누군들 가나하고싶어가난한가 ? 근데 이것이 이십여년전일이군 . 다들 어디서 살고계실까 ! 효숙엄마! 그리고 효숙아 지금 어디있니 ? 눈이내리고 캐롤이 들리고 눈물난다 .....
@김기범-u2d2 ай бұрын
일을해라.
@여담-y4u Жыл бұрын
눈물이 난다
@골골골-c9d4 ай бұрын
그 떄 그 시절에는 동네사람들끼리 가족처럼 잘지냈지요.... 그립네요 그 때 그 시절이...
@Jayunholy Жыл бұрын
세이브마트 옆에 사는데 이 영상이 뜨네요 ㅋㅋ
@고은마음-j8z Жыл бұрын
지금은 아파트 대단지 조성하고있다 그리고 신림7동에서 행정동명이 난향동 으로 바뀌었다... 난초향이 그윽하다 해서 난향동 ... 그곳에서 태어나 살다가 지금은 타지역으로 이주하여 살고있지만 ... 희ㆍ노ㆍ애ㆍ락 모두 담겨진 나의 태를 묻었던 고향 난향동 ㅠㅠ 어릴적 그옛날 추억이 그리운 내고향 난향동 아니 신림7동 애증과 사랑했던 곳 사람냄새나고 정겨웠던 신림7동 많이 그립습니다 🥺 사랑했다 신림7동 ♥️
@Airkorea1995 Жыл бұрын
휴먼시아랑 푸르지오가 우뚝 솟았죠
@설익은곰10 ай бұрын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의 그리움이 있던 곳이 일본에서 10년 정도 살다 오고 그 추억이 그리워 무작정 찾아 갔는데 그 전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쉬웠습니다......그 당시 봉천 구세군 영문에 다니시던 모든 분들이 너무나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혹시나 그 당시 그곳에 머물렀던 분들이 제 글을 보시면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제 나이는 56세 입니다.... 김봉화 사관님이 계셨던 시절 이였습니다.
@잿빛날개-h6j Жыл бұрын
우리네 인생인것을....
@우주태양별달희망 Жыл бұрын
어릴적 생각이 나네요 요즘은 좋은 시절이지만 전철을 타고 학교 다니구
@명훈-l1b Жыл бұрын
난곡지구.............. 진짜 신림동 봉천동 이 산악지대라 달동네가 많았지 서울인데 서울아닌 그런곳....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월세가 싸니까 계속 올라가던 그런곳...
@news7324 Жыл бұрын
아련하네요
@xiahoudun7489 Жыл бұрын
2004년 난곡에 바이크를 타고 올라가던 세월이 벌써 20여년전이네요.. 세월이 무상하네요
@상백-p5h Жыл бұрын
내기억을 생각하면 저정도면 엄청난 발전했네요
@user-mr0cy1jw9 Жыл бұрын
🦋Will spring come to NAN GOK.🦋 😭😰😢ㅡDon't cry for me. NAN GOK.👨👩👧👧
@symiso4797 Жыл бұрын
😂 난곡에 사셨었나요?
@user-mr0cy1jw9 Жыл бұрын
@@symiso4797 옛날에 서울대 부근에 신림동에서 자취한적 있어요,ㅡ 달동네 사시는 분, 삶의 무게를 들어주어야 할 책무와 의무가 국가에 있기때문에, 양극화로 인한 빈곤층 해소는 국가의 책임입니다,🐸🐸🐸🐸🐸
@라운지-k4n7 ай бұрын
난곡동.. 제일 가난했었지만 비교할 부유함이 없었고 어렸기에 내 인생 가장 행복했었던.. 그 뒤로 어중띠 먹고 살만한 동네들.. 거치면서 상처받고 때묻고 같이 동조하고 ㅜㅜ 80년생 난화 친구들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