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복수를 위한 홀리컴뱃 10 라운드ㅣ총신대 박재은 교수 VS 감신대 장재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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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ascus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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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Пікірлер: 271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본 이벤트는 홀리컴뱃2 펀딩 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go.missionfund.org/holycombat2
@pentatonic1533
@pentatonic1533 Жыл бұрын
두분 토론 매우 잘 봤습니다. 유신진화론의 경우 아담의 창조 이전에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있었음을 믿어야 하는데 이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한 죽음의 탄생과 충돌이 생긴다고 생각하네요
@theology153
@theology153 Жыл бұрын
토론에 참여했던 장재호 교수입니다. 제가 박재은 교수님께 배우는 귀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토론 때에는 조직신학적 주제들을 주로 다뤘는데요, 기독교에 대한 종교철학적 변증, 과학신학적 변증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제가 운영하는 "과학과신학연구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간단히 차이를 말하자면, 변증의 대상이 기독교 내부자를 향한 것인지, 외부자를 향한 것인지에 차이가 되겠네요. 토론에서는 졌지만, 토론 이후 구독자 수가 하루 만에 100명 이상 증가했고, 그 이후로도 매일 수십 명씩 늘고 있어서, 토론에서의 민망함은 감사함으로 바뀌어 가는 중입니다^^ 기독교 내부자들을 향한 조직신학적 변증도, 무신론자들을 포함한 기독교 외부인들을 향한 종교철학적, 과학신학적 변증도 모두 다 소중하다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배틀 형식을 통해 기독교의 진리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려는 다마스커스tv 채널을 변함없이 응원합니다. (앞으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 채널 홍보는 계속 하겠습니다.)
@iktusTV
@iktusTV Жыл бұрын
구독만 한것이 아니고 영상들을 매일 매일 보고있습니다. 하나 하나요... 신앙생활 40여년...최근 10여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분을 만나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요 ^^;; 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보고나서 은혜가 되는 영상들을 하나씩 올리고있습니다. 부산에 살고 나이가 많아서 감리교신학대학에 갈 방법이 없는데 대신 교수님의 영상을 다 볼 계획입니다.(추신 : 저는 40년동안 장로교회만 다녔답니다 ㅋ)
@theology153
@theology153 Жыл бұрын
@@iktusTV 감사합니다. 부족한 제 강의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신다면 제겐 큰 기쁨이겠습니다. 영상 보시다 언제든 편하게 질문 주시면 제가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댓글에 감사드리며 행복한 새해 되세요^^
@최성우-n9s
@최성우-n9s Жыл бұрын
저는 총신대를 졸업한 목사입니다. 제 딸이 박재은 교수님 제자라서 듣게 되었고요. 실시간으로 거의 다 들었는데 제 느낌은 박교수님은 총신의 신학을 말쓴하셨고, 장 교수님은 감신의 신학을 말씀하신 것 같았습니다. 제 딸과 토론 마치고 한 이야기는 지금 청취자 중에서 총신 입장인 사람이 55%였다는 것이고, 그랴서 교수님이토론에 지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theology153
@theology153 Жыл бұрын
@@최성우-n9s 댓글 감사드립니다. 신학에 따라 강조점은 약간 다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이 더욱 풍성해지고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해 조금씩 더 다가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말에 마음 열도 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theology153
@theology153 Жыл бұрын
@와이즈 리 이렇게 이해해 주시고 힘이 되는 댓글 남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thoma2028
@thoma2028 Жыл бұрын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분 다 좋아하는 교수님들인데(박교수님 책도 있고, 장교수님 유튜브도 잘 보고있습니다) 이렇게 한 주제에 대해 두분의 의견을 동시에 듣는 좋은 기회가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기획해주시고 출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oramtheo
@coramtheo Жыл бұрын
모두 감사드리지만 교단 내세우고 선뜻 이런 자리하시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교수님 두 분 특히 감사드립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관심 갖고 있는 주제들은 명확히 답변하기 힘든 질문들이 많다 보니 거기에 대한 정답을 얻거나 하는 건 당연히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몰랐던 내용들, 크게 관심 안 가졌던 주제들, 주목하지 않았던 관점들에 대해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안되게 이런 콘텐츠가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그러기 위해서 점점 반응이 뜨거워지길...!
@child00
@child00 Жыл бұрын
어제 방송을 보며 이전에 패널들의 말을 적지 않고 듣기만 하니 취사 선택하며 듣고 있더라고요. 이번 교수님들 말씀을 들으며 개념을 더 이해하고자 요약을 해보며 듣는데, 장로교단의 교회에 있는 저에게 감리와 장로 교단의 그...뉘앙스?를 알게 되는 시간이었고, 과학을 배척하는게 아닌 그들의 언어로 다가가려는 장교수님의 말씀에 혼자 생각하던 부분들을 정리하고 제대로 마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장교수님 유튜브를 알게 되서 정말 좋은 시간있고요.ㅎㅎ 박교수님, 장교수님 늦은 시간, 복음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pscver123
@pscver123 Жыл бұрын
두 교수님의 답변이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이 3라운드였는데 박교수님께서 영원성과 불변성으로 구원의 취소의 답변도 좋았지만, 장교수님의 말씀처럼 매일의 일상속에서 “흔들림”을 겪는 사람들에게 더 와닿는 답변은 웨슬리의 성화의 답변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hannakimkoo
@hannakimkoo Жыл бұрын
장재호교수님과 박재은교수님께서 변증해주시는 내용을 듣고 있으니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장재호교수님의 성격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 그동안 고민하던 부분을 풀어나가기 위해 생각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고, 박재은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러나 우리가 결국 돌아가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찾게 된 것 같았습니다. 귀한 자리 준비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긴장 가운데서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선택해 변증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려요!
@Doubting.Thomas
@Doubting.Thomas Жыл бұрын
두 분 토론 잘 봤습니다. 저는 한때 교회를 떠났다가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다시 회심한 케이스인데, 그러다보니 약간은 보수적인 신앙색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각 이슈에 대한 입장 자체는 총신대 교수님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다만, 의견을 피력하는 방식이나 시청자들을 설득하는 방식은 감신대 교수님께 더 높은 점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교리나 신학적인 용어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건 상대의 마음을 여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무신론자였거나 예수님을 믿은 초신자였다면 감신대 교수님의 말씀에 마음이 많이 움직였을것 같습니다. 출연자로써 두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ㅎㅎ 구독자분들께서도 시즌2 많이 사랑해주세요.
@susieoh8464
@susieoh8464 Жыл бұрын
공감공감입니다
@hahahaha2334
@hahahaha2334 Жыл бұрын
공감갑니다.
@jameskim9855
@jameskim9855 Жыл бұрын
저도 공감합니다.
@박사라-t9w
@박사라-t9w Жыл бұрын
공감입니다. 저도 감신측에서 예수님을 믿었지만 결국 교회를 떠나있다가 나중에 칼빈의 5대강령을 통해서 거듭남의 체험을 하였습니다.그러면서 깨달은것은 가장 주님을 가까이 하는 신학이 칼빈주의임을깨닫고 늦게나마 총신대를 다니고있는데 모든 신학과목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이렇게 서로 소통하면서 교단이 서로 이해를하고 포용하는 것같아서 보기 좋고 많은 분들이 구독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명숙-u3w
@정명숙-u3w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근거한 것이 예정론! 예정론은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신뢰하는 것!! 구원은 취소될 수 없다. 구원이 불완전한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총신대 교수님의 구원론을 들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 여러 부분에서 감리교와 장로교 교리 차이를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두 교수님 늦은 시간까지 10가지 질문과 답변들 감사하구요, 마지막 질문을 복음으로 마무리되게 이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
@차현주-p7f
@차현주-p7f Жыл бұрын
재미있었어요^^ 교수님끼리 배틀 쉽지않은데 이걸추진하셨네요ㅋㅋ 역시. 다양한 컨텐츠로 다음세대에게 새로운 시각을 경험하게 해주는 다마스커스 화이팅!!♡
@raynoh7351
@raynoh7351 Жыл бұрын
10대 때 감신 교단 교회를 다녔다가, 20대에 총신 교단을 다닌 저로서는 참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양측의 입장과 논리가 제 신앙 세계관 안에서도 섞여 있는가 돌아보기도 했네요ㅎㅎ
@성이름-l2k4w
@성이름-l2k4w Жыл бұрын
예정론에 관련한 토론은 언제나 흥미진진한것같습니다! 별개로 교수님들이라 그런지 이해하기쉽고 귀에 잘 들리네요ㅎㅎ
@jj-hc7sf
@jj-hc7sf Жыл бұрын
사회자분에게도 박수드리고 싶어요~ 재치와 민첩함 등등 보기좋았습니다👍
@tiamoshin863
@tiamoshin863 6 ай бұрын
이 영상을 보고 확실해 지는게 있네요 구원이 취소가능한가 아닌가? 이 말이 나오는 이유가 죄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요 죄가 무엇인지 모르니 무엇으로부터 구원인지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여 복음을 알지 못하기에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천국의 복음이 아니라 진리 아닌 진리를 말하는 것이 지금의 교회라 불리는 집단이라는 것을요 이번 영상 너무도 감사합니다
@goodtree9334
@goodtree9334 Жыл бұрын
실시간으로 시청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너무나 신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두분 교수님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어요. 정말정말 감사합니다♡홀리컴뱃을 지지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새미기픈-w6r
@새미기픈-w6r 8 ай бұрын
감리교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배워 알고 있던 감리교 교리보다 더욱 더 인본주의적이며, 나 중심적이며, 인간적 논리인 것 같습니다.
@chan_yang
@chan_yang Жыл бұрын
꿈을 꾸고 음성을 들어도 계시(말씀)의 평가를 받아야한다는 박재은 교수님의 말씀은 상당히 좋네요.
@Rahab-f9s
@Rahab-f9s Жыл бұрын
두분다 넘 멋지심❤ 박재은교수님.. 눈빛 카리스마..
@하늘-r6x7u
@하늘-r6x7u Жыл бұрын
두 분 교수님들 너무 좋은 토론을 해 주셨네요. 제가 보기에는 총신대 박 교수님이 말씀을 더 잘하시지만 뭔가 논리에 허점들이 자꾸만 보이는것 같습니다(특히 예정론과 진화론 부분 발언은 좀 충격). 그에비해 감신대 장 교수님의 논리에는 탄탄한 지식이 많은것 같네요 뭔가 비판점을 찾아내려고 해도 잘 찾아지지가 않습니다(특히 진화론에 대해 설명을 너무 잘하심). 아마도 시간 제한 없이 진행했다면 결과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서로 다른 관점으로 신학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두 분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hahahaha2334
@hahahaha2334 Жыл бұрын
공감합니다
@sj1354
@sj1354 Жыл бұрын
공감
@jameskim9855
@jameskim9855 Жыл бұрын
저도 공감합니다.
@정영훈-k4x
@정영훈-k4x Жыл бұрын
감명 깊게 토론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susieoh8464
@susieoh8464 Жыл бұрын
우선 방송해주신 두분 교수님들 진심 너무 멋지시고 많이 배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장교수님 의견이 훨씬 설득력있었네요. 총신교수님의 화려한 언변과 화법 카리스마가 인상깊었지만 약간 상대 교수님을 가르치시려는 뉘앙스가 강해서 조금 듣기 그랬던게 사실인것 같네요 ㅎㅎ이것도 나름 토론의 장인데 말이죠ㅎㅎ 대답시간이 짧게정해져 있어서 수박 겉핱기식으로 끝난것같아 아쉽습니다.여러 주제를 짧게 다루기보단 몇가지를 심도있게 토론하는게 도움이 많이될 것 같네요. 두 분 다 고생많으셨습니다.
@jacob-ez1ji
@jacob-ez1ji Жыл бұрын
박재은 교수님 너무 반가워요👍👍👍🤗🤗
@paul_park3340
@paul_park3340 Жыл бұрын
총신의 보물 박재은 교수님!! 너무 멋져요~~ 교수님께 배웠다는게 자랑스럽습니다!
@flyingstock1987
@flyingstock1987 Ай бұрын
확실히 감리교는 인간중심이 강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어요.
@David_Kim_
@David_Kim_ Жыл бұрын
홀리카운터 되게 좋고 재미있기는 한데, 정보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보니 자꾸 예고편만 보고 끊기는 기분이라 아쉽네요 ㅠㅠ 더 깊고 좋은 대화가 이어지기 이전에 너무 단편적인 대화로 끊어지는,, 뭐 싸다 끊긴 기분 😂 두 분 개인 유튜브나 다른 곳에서라도 더 깊은 답변들을 보고 싶네요!
@noah88family
@noah88family Жыл бұрын
이거... 가면쓰고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하는것도 좋겠네요 그렇게 하고 끝나고 밝히는것으로요... 어차피 아는 사람이라면 말만들으면 어느 쪽인지 대체로 파악이 가능하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때는 좀 더 메세지 자체에 집중할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Masked홀리컴뱃 ㅋㅋ
@박진만-e1k
@박진만-e1k Жыл бұрын
대박이네 이런 신박한 배틀이 잇엇다니 강추 와우 나이스
@김민호-r2b
@김민호-r2b Жыл бұрын
왕이 노예에게 ‘물을 마셔라’라고 말합니다. 노예는 그 명령에 의해 ‘물을 마시고 싶은지에 관계없이 물을 마십니다.‘ 혹 물 속에 독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이 든 컵이 똥오줌을 받는데에 쓰이던 거라 물이 더러워서 먹으면 배탈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이니 노예는 물을 마십니다. 여러분 이건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에 대하여 잘 표현한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브루스 올마이티를 보면 신이 브루스에게 장난으로 ~하라고 하자 브루스가 ’제가 왜요?‘이렇게 대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신은 웃으며 ’바로 그거야! 그게 자유의지야!‘라고 말합니다. 다시 돌아갑니다. 왕이 노예에게 물을 마시라고 권합니다. 이번에는 물에 꿀이 가득하게 들어있고, 컵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예가 말합니다. ’제가 왜요?‘ 그럼에도 왕은 노예를 그자리에서 죽이지 않습니다. 그게 자유고, 그게 사랑입니다. 처음 비유에서 노예는 스스로 컵의 물을 마십니다. 이것을 자유라고 하셨죠. 그러나 왕의 명령에 기인한 것입니다.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하지만 그 잔이 달콤하다면 찬송이 나오겠지만, 비유와같이 독이 든 잔이라면 왕을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고민은 그들에게 희망이 될 정도로 세상이 각박합니다. 그런데 그 책임이 다 신에게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선 우리가 그런 이웃을 사랑함으로서 선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정론에서는 모든 악의 책임은 신에게 있고, 그것을 타파할 선을 이루는 자들도 따로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중예정론은 자연스럽게 자유의지론과 맞물리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자유‘에 대한 깊은 나눔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예정에 대한 부분도 모순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싶습니다.
@댕멍이-v2y
@댕멍이-v2y Жыл бұрын
이해하기 좋은 비유인것 같습니다! 저도 예정론이 머리로 다 이해가 되진 않지만, 총신교수님이 말씀하신 인간의 관점에서의 선과 악의 기준으로 예정론을 이해하려 하면 안된다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비유가 총신교수가 지적하시는 인간의 관점과 기준이 들어간 비유인 것 같아서요
@김민호-r2b
@김민호-r2b Жыл бұрын
@@댕멍이-v2y 그 부분은 이중예정론에서 말하는 '신의 섭리를 인간의 잣대로 이해하려하지 말아라'입니다. 토기장이의 비유 (로마서 9장 21절~24절) 이 대표적으로 주장하는 본문입니다. 그러나 비슷한 취지는 욥기에도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삶이 의로운 삶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신의 시험을 받아 괴로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욥이 친구들과 논의하기도하고, 신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신이 나타나 하는 말은 '인간이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입니다. 두가지 구절 모두 '신의 잣대가 인간의 잣대와 다를 수 있다' & '인간이 싫다고 해서 신의 의지를 거스를 수 있겠느냐, 그냥 받아드리는게 옳다' 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중예정론은 성경 내에서도, 또는 성경 밖에서 보았을 때에도 모순이 많습니다. 목적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을 신의 권리라는 불가지론의 영역으로 도망가는 방법이 바로 '인간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다' 입니다. 마치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더이상 답이 없을 때 '그냥 신이 그렇게 만들었나봐' 라고 말하는 거랑 같은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문제는 진짜 몰라서 인정하는게 아니라, 욕먹고 있는 이론을 강행하기 위해 신의 권리를 이용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과 인간의 관점은 어떤 차이에서 오는가, 선과 악은 무엇인가, 선악과는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였는가 성경은 하나하나 해석하려면 장황할 수도 있겠으나 그 중심 진리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쉬운 교리이기도 합니다. 이중예정은 쉽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나 그 안에 독이 있습니다. 이중예정 4글자 딱 박아넣고 그냥 아무것도 안해도 됩니다. 신이 짠 각본대로 다 진행될거니까요. 그런데 이래저래 교리적으로 많은 내용이 있죠? 이중예정이 아니라면 예수가 말한 '들을 자는 들을것이다'는 들을 자는 진짜 자기가 들어야함을 이야기합니다. 이중예정에서는 들을자가 따로 태초부터 정해진 각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뭘 할 필요가 없죠. 결국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의미가 사라지게 되고 죄값도 온전히 신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신이 각본을 그렇게 짰으니까요. 지금 당신이 친구를 칼로 찔러죽여도 당신의 죄가 아닙니다. 토기장이, 욥기를 보세요. 신이 하려는것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겠냐, 거스를 수 있겠냐 그럽니다. 신의 각본에 당신은 친구를 찔러 죽이게 되어있었던겁니다. 그럼 당신의 죄가 아니죠. 모든 죄의 원망은 신에게 돌아가게됩니다. 그럼 회개는 왜 하는거죠? 지금 어떤 남자가 여성을 강간하는 것도 신의 각본입니다. 강간한 남자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강간당한 여자는 강간범이 아니라 신을 원망해야하는 것이죠. 자 이런식으로 신을 또라이로 만드는게 이중예정입니다. 그래서 욕먹는거구요. 그런데 이것을 인정할 수 없으니 한다는 말이 '인간의 잣대로 신을 판단하려들지 말라' 라는 식으로 도망간다는 겁니다.
@David_Kim_
@David_Kim_ Жыл бұрын
저도 장로교에서 사역중이지만,, 이중예정은 지성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받아들이기 어렵네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서, 작정과 예정이 중요한것은 알겠어요 어쩌면 조금 웨슬리에 가까울지는 모르겠지만 그 예정의 선상에 모든 인류가 오른것이 더 납득가능한 것 같아요 모두가 예정되었으나 인간은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선을 택하지 않고 악을 택하여 완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개인적으론 맘속에 이런 생각이 있네요
@김민호-r2b
@김민호-r2b Жыл бұрын
@@David_Kim_ 웨슬리안이냐 칼빈주의냐 하는것은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주체적인 삶을 살고, 주체로서 자신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칼빈주의를 믿는' 이라는 수식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david님께서 보시는 관점이 건강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댕멍이-v2y
@댕멍이-v2y Жыл бұрын
@@김민호-r2b 성의있는 답변 감사드립니다!
@grantgucci6644
@grantgucci6644 3 ай бұрын
하나님의ㅡ차원을 우린 다 알수 없다 우리의 한계를 알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경외해야한다 우리의ㅡ삶은~
@veritaslibertas6031
@veritaslibertas6031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 박재인 교수님 개혁신학의 풍성함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주셔야 했는데...너무 그냥 신앙적으로 믿어라 쪽으로 가서 다소 아쉬워요. 예정론도 물마시는 것까지 포함...극단적인 결정론과 다를바 없는 것처럼 논리성이 매우 결여되어 있어요...반면 감신대 교수님은 생각보다 신학이 건전하고 겸손하시네요...아무튼 총신 출신들이 많아서 점수에서는 이겼을지 모르지만 논리적인 면에서는 감신대 교수님이 더 낫네요.
@veritaslibertas6031
@veritaslibertas6031 Жыл бұрын
총신대 조직신학은 정말 반성 많이 해야 합니다. 성경적 조직신학이 아니라 전통에 근거한 주입적 교육...나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안타깝네요...그마나 김광렬 교수님과 최홍석 교수님만 성경을 많이 인용하고 논리적 사고를 증진시켜주셨어요...그외 분들은 그냥 딱 박은재 교수 스타일.....논리적 모순도 적당히 해야지...아니면 겸손모드로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던가....물 마시는 것고 다 예정되어 있으면 로버트가 아니고 뭐야! 정말 답답하기 기지 없네요. 그냥 칼빈, 뭐 청교도 종교개혁자들...인용은 하지만 실상 성경의 교리에 대한 실제적 이해가 대단히 결여 되어 있는 듯 합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chan_yang
@chan_yang Жыл бұрын
@@veritaslibertas6031 맞습니다.. 개혁주의는 은혜없으면 우월주의에 빠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본인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예정론은 너무 아쉽네요...
@홍정욱-r4b
@홍정욱-r4b Жыл бұрын
삼위일체는 종교개혁적 전통에 서있는 킹제임스성경, 흠정역으로 보면 좋습니다. 특히 요한일서 5장 6,7,8절을 보시면 각 번역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직접 찾아보시길...
@새미기픈-w6r
@새미기픈-w6r 8 ай бұрын
이 구절의 보존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아, 이 구절로 삼위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또 요한일서 5장의 문맥을 볼 때, 이것은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이지민-r3q9x
@이지민-r3q9x Жыл бұрын
둘다 맞는 것입니다 관점이 다를뿐이고요 둘중 하나만 맞다고 하면 극단에 빠지게 되고 결국 오류가 생깁니다 이런면도 있도 저런면도 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삼위일체를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믿고 가듯이 하나님의 커다란 손에 예로 모세같은 자도 있는겁니다 모세는 만들때부터 그렇게 살다 죽기로 되어있을수밖에 없는 하나님이 세상의 주재로서 이루시는 인류구원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의 복음도 하나님아버지께서 경륜을 가지고 이루신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님앞에 순종하고 주님을 믿고 사는 것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서는 자로 살면 택자건 불택자건 그런것은 더이상 말할 논조가 되지 못하고 우리는 그저 예수 안에 구원받아 천국가는 자가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다가 뒤로 물러가 멸망하는 자가 될수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계속 자주 비를 내려주시고 로뎀나무도 찾아오시지만 끝까지 거역하는 자들의 끝이 불사름이 되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해서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루터기같이 주께서 심은 터에서 구별된자가 되고 또 많은 이웃들을 초청해야 합니다 그런자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 말했던 모압여인 룻과 같이 다윗의 족보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장로교 출신으로서 감신대 신대원 th.m을 전공하고 다시 총신대 m.div를 공부하고 현 장로교 목사가 좀 적고 갑니다.
@LewisClub
@LewisClub Жыл бұрын
총신대학원 출신 양시무스님의 예정론 토론 중에서… “구원 받은 자가 예정되었다고 믿으면서, (예정되지 않은 자들이) 유기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델포스님이 뭘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정을 믿으면 이중예정은 (논리적으로) 필연적 결론입니다.” (너무 자명한 논리적 필연성을 버리고 모순을 믿는 것은 인식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으로 보임). 박재은 총신대 교수님의 예정론 토론 중에서… “예정론은 논리적인 접근을 하면 안된다고 믿습니다….예정론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입니다…하나님은 모든 것을 작정하시고 모든 것을 계획하시기 때문에…신앙의 접근으로 예정론을 접근해야된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믿으면 논리적 필연성을 버리고 모순을 믿을 수 있으며, 그것을 못받아들이는 것은 신학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앞세운 인간학이라고 주장하심) 감신대학원 출신 아델포스님 예정론 토론 중에서… “저는 예정론자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받아들여요…제가 비판하는 것은 이중예정입니다.” (이중예정론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반하는 것이 반대의 가장 큰 이유로 언급하시는 것으로 보임) 장재호 감신대 교수님의 예정론 토론 중에서…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셨다는 예정 정도는 신앙적으로 고백할 수 있지만, 미래가 완전히 정해져 있다는 이중예정론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중예정론은 과학주의적 결정론과 다를게 없다는 것이 반대의 가장 큰 이유로 언급하시는 것으로 보임) 일단, 감신대 팀이 총신대 팀보다는, 스승과 제자간에 일관성이 있네요ㅎㅎ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박수보다는 논리적인 일관성을 잃지 않으시려고 끝까지 노력하시는 양시무스님에게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자유의지를 확실히 믿기에, “자유의지의 존재가 (어떠한 종류의) 예정론(결정론)도 배격한다”고 분명하고 용기있게 주장하실 수 있는 신학전문가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토론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언제나 합리적이시군요. 저 또한 자유의지의 존재를 믿습니다. 다만 논리적으로 전지전능과 조화시킬 방법을 모를 뿐입니다 ㅋㅋㅋㅋ
@LewisClub
@LewisClub Жыл бұрын
@@sheep_maximus 홀리컴뱃 얼굴 천재 양시무스님이 직접...ㅎㅎ 글쎄요, 제 생각에는 자유의지(선택가능)과 예정론(선택불가능)은 하나님의 전능함으로도 조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전능하면 자신이 들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난센스일 뿐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해 보자면, 본성이 로고스(로고스의 속성에는 logical sense가 포함되었다고 봄)이신 하나님이 자기부정을 하는 것이 전능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전능은 항상 의미에 부합하는 쪽(making sense)으로 일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의 전능은 인간의 운명를 예정하시든지, 아니면 인간의 운명을 인간이 결정하도록 허락하시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실 자유가 있으시고, 하나님의 또 다른 속성인 하나님의 선함은 인간에게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신의 속성/하나님의 그림자)를 나누어 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논리적이면서도, 하나님의 속성에 부합하는 결론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성경에 그렇지 않게 표현된 부분은 어떻게 할거냐?'라는 말에 대답을 해야겠지요. 그런 면에서 '자유의지를 믿기에 예정론을 배척한다'는 생각은 전통적 종교개혁적 입장의 일반적 발현과 다른면이 있기에 용기가 필요한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성경을 쓰여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라는 입장으로의 전환이 (지금까지보다) 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입장이 사실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했고 충분히 지지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말합니다만,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제가 보기에는 (통시적/공시적 양면 모두) 항상 누가 더 많이 성경의 문자적 입장을 더 많이 고려해서 해석했느냐가, 가장 성경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제 생각에는 잘못된 답답한 성경주의일 뿐임)이 한국 기독교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성경(계시)의 올바른 해석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조금씩 더 깊고 정확히 알아가게되고 (성경해석의 가장 좋은 방법론은 진정한 대화라고 생각함), 대화가 가능하려면 논리(로고스의 또 다른 핵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논리에 진심이신 양시무스님을 응원합니다. 생각이 달라도 대화가 가능하니까요.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LewisClub 예정론을 포기하고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이중예정과 예지예정을 구분하는 소모적인 작업보단 훨씬 낫지 않을까 싶네요 ㅋㅋㅋㅋ
@LewisClub
@LewisClub Жыл бұрын
@@sheep_maximus 예지(미리 앎, 이성적 영역)과 예정(미리 정함, 의지적 영역)은 논리적으로 의미있는 구분이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다를 게 없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이성과 의지라는 가장 명확히 구분되는 영적인 영역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쉽게도, 감리교에서, 이것을 구분하려는 노력보다는 같은 것으로 퉁치려는(? 죄송합니다)시도 때문에 말씀하신 소모적 논쟁으로 치닫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 부분이 잘 구별되고 나면, 훨씬 더 의미있고 생산적이 토론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즉, 정말 예정이 하나님의 속성과 의지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자유의지가 그런지를 더 진지하고 의미있게 토론해 볼 여지들이 생겨나리라 기대해 봅니다.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LewisClub 오후 루이스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ㅎㅎㅎㅎ 의미있는 작업인 걸러 해두죠 ㅋㅋㅋㅋ
@LimTurtle1999
@LimTurtle1999 Жыл бұрын
동물의 부활에 대해서 c.s.루이스는 영혼을 '자아'라는 영역으로 생각하면 가능하다고 했죠. 알게 모르게 산에서 죽음을 맞이한 들개는 천국에서 못 보겠지만, 한 인간이 키운 개는 주인을 통해 하나의 자아상이 생기고, 그 자아상이 일종의 영혼이 되어 천국에서 볼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얘기였어요. 그리고 이 얘기는 인간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듯이, 인간은 동물들의 그리스도라는 전제에서 나왔죠.
@김찬영-d3u
@김찬영-d3u Жыл бұрын
과거적 구원 칭의 현재진행적 구원 성화 미래적구원 영화
@우남-l1j
@우남-l1j Жыл бұрын
장로교에 속해 있지만 감리교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언더우드, and 아펜젤러)
@새미기픈-w6r
@새미기픈-w6r 8 ай бұрын
언더우드는 장로교 아닌가요? 새문안 교회와 관련이 깊죠?
@우남-l1j
@우남-l1j 8 ай бұрын
@@새미기픈-w6r 네 언더우드 선교사님 맞구요, 새문안은 장로교 통합측입니다.
@art0411
@art0411 Жыл бұрын
잘 봤습니다~~~
@노랑-b2t
@노랑-b2t Жыл бұрын
자막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기에 사운드 잡음 때문에 너무 불편,,,,
@장순용-r2e
@장순용-r2e 10 ай бұрын
총신대 교수님의 말씀은 주로 믿음의 영역이니까 이성적 논리적 감정적 접근은 옳지 않아 그냥 믿어 믿음으로 구원받고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고 믿어 라는 식의 권위에 의지하는 느낌이 듭니다 반면 감신대 교수님은 총신대 교수님의 권위주의적 주장에 무조건 저항하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즉 권위주의적 주장에 논리적인 반박이라기 보다 권위주의가 옳지 않으니 단정짓지 말고 열린 주장을 하라 라는 식의 좀 덜 권위주의적인 느낌의 주장을 펼치시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신학교 교수님들이라 더 신학적 교리적 주장을 디테일하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겨우 2-3분 정도의 시간으로 주장을 한다는 게 교수님들의 신학 지식을 맘 껏 펼치기에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수님들의 말씀들이 너무 포괄적이고 개론적인 영역에 머무는 듯한 느낌이라 아쉽습니다 다음엔 좀 더 심오한 영역의 수준까지 깊이 내려가는 끝장토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다뤘던 주제들은 짧게는 수백년에서 길게는 이천년 가까이 오래 된 것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교수님들이 그 정도 역사의 깊이가 있는 논쟁들에 대해 얼마나 깊이 숙고하고 연구했었는지 그 고뇌의 과정들이 담긴 말씀이 나와야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교단 신학에 종속된 교수님들의 말씀은 교단 신학이 결정한 결론적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단지 여기서 원하는게 어느 교단 신학이 더 쎈가에 있다면 그것은 아쉬운 목표일 것이고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불신자들과 초신자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이라면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란 의문이 듭니다 애초에 목표가 두 교단 신학의 맹점을 낱낱이 드러내고 한 교단 신학 홀로 하나님과 성경을 모두 완벽하게 설명하는데 충족되지 않음을 인정하고 상대 교단의 도움을 청하거나 상호보완이 되어야 함을 인정하는 것이었다면 초신자나 불신자에게 더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교단 신학이 하나님의 복음을 헷갈리게 하거나 혼란을 주는 상황이라면 이를 정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기독교 신학의 약점이라고 여겨집니다 오히려 교단 신학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교단 신학이 폐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법도 시간이 지나면 폐단이 생긴다는 성어가 있습니다 또 폐단을 고치려다 새로운 폐단을 만든다는 성어도 있습니다 오래된 폐단을 없애려다 새 폐단을 만드는 게 인간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할 거 같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까지 논리적으로 교리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철학적 사고의 결과입니다 이거 아니면 안된다는 주장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전능하심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마치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다 아는 체 하는 것과 같지요 하나님의 불변성과 영원성이 하나님의 자유의지를 제한하다면 자유의지가 다른 속성보다 약한 가치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신학의 폐단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믿는 것 뿐입니다 구약은 이 사실을 비밀로 간직한 그러나 계시한 책이고 신약은 이 사실이 어떻게 인간 세상에 전파되고 보존되는지 알려 주는 것입니다 바울의 서신들이 각 교회에 보내는 상황에 맞는 내용들이라는 것에서 그때는 맞고 오늘은 어색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위에서 말한 복음은 항상 동일하다는 점에서 바울은 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비판을 받은 베드로의 입장에서 이방인과의 식사를 피한 것은 동족에 대한 이웃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바울의 말처럼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라면 수용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앞에 세우면서 결국 칼빈이나 웨슬리를 따르는 것은 결국 아볼로파 베드로파 바울파 그리스도파로 나뉜 분열의 영의 열매일 뿐입니다 사람의 신학을 따르는 것은 결국 종교화와 세속화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폐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을 목표로 토론과 논쟁이 있다면 한국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 아래 모두 무릎 꿇고 잠잠히 기다림을 통해 올 것이며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될 것입니다
@KHBang-smile
@KHBang-smile Жыл бұрын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 구원취소 관련 얘기 재밌네요 장교수님의 얘기가 좀더 와닿는거 같음 박교수님 얘기는 말을 잘해서 혹 하긴하는데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내가 어떻게 확신하지? 라는 의문이들고 개인적 경험으로 구원받았다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치고 제대로 인간구실하는사람 못봄.(못난놈은 지하철에서 외치고 잘난놈은 부동산이랑 주식투자하며 얘기하더라) 차라리 구원을 향해 가고있고 매일 그완성에 정진하는것이 설득력있어보임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 관심 가지고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bumjinhwang7150
@bumjinhwang7150 Жыл бұрын
구원의 확신은 인간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신자에게 구원을 주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들을 보내주신 성부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과 기뻐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확신을 갖는겁니다 그니까 확신은 내가 갖는거는 맞지만 확신의 근거는 인간에게 잊지 않고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박청암
@박청암 3 ай бұрын
장교수님 마이크 상태가 잡음이 많읍니다
@진성호-h3x
@진성호-h3x Жыл бұрын
오우 대장전이군요 ㅋㅋㅋ 두 분 모두 많이 배워갔습니다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어요!!
@새하늘-e4g
@새하늘-e4g Жыл бұрын
진리는 하나인데 진리에 이르는 방법론은 가지각색~
@skyskysky777
@skyskysky777 11 ай бұрын
하나님의 전권을 가지신 예수님이 구원을 취소시킬수 있다고 일곱교회에 말씀하셨는데요... 거기에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나요? 구원파적 관점은 이방인적 관점입니다.
@새미기픈-w6r
@새미기픈-w6r 8 ай бұрын
구원파를 알기나 하시는지? 개혁주의는 거짓된 구원의 망상이 아닌, 참 구원을 말합니다. 참된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죄인에게 오며, 절대 사람의 어떠함에 의해 무너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판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에 있고, 사람의 한계로는 하나님의 결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누구는 구원 받았다, 누구는 구원 받지 못했다 등등 헛된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구원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매일매일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며, 물밀듯이 밀려오는 회개와 하나님의 반드시 용서하심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심과 부르심과 거듭 나게 하심과 의롭다 하심은 결코 한순간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seanpark9970
@seanpark9970 Жыл бұрын
두분 교수님의 토론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만 진화론에 대한 주장은 전문성이 부족한 피상적인 주장과 반과학적인 입장까지 보여서 아쉬웠습니다. 지금 진화론은 어느 한사람의 주장이 아니라 여러 가설과 입증을 위한 실험 설계와 검증을 통해 유력한 이론이 우세하게 되고, 일부 이론은 폐기되면서 발전합니다. 10년 전과 오늘 진화론은 또 다릅니다. 유전자 연구를 통해 더 세부적으로 인류의 기원에 대해 연구하고 있고 슈퍼컴퓨터까지 동원해서 인류의 확산이 모델을 세우고 있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발전하는 힉문을 기독교와 대치되는 믿음의 영역으로 정의한다면 자동설 논쟁의 전철을 밟을 것 같습니다. 신앙이 과학과 컴뱃해서 이긴적은 없습니다. 진화론을 공격하기 위해 등장한 젊은 지구론, 지적 설계론, 미싱 링크는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과학과 지속적으로 대화해야 하며 진화론도 대화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공격적 무신론을 반박한 영국의 전 생화학자이자 Bristol Baptist College 성경 튜터인 Ernest Lucas가 쓴 "Can we believe Genesis today?"를 읽어보시도록 추천드립니다.
@seanpark9970
@seanpark9970 Жыл бұрын
@밤마다목살생각 감사합니다. 만약 성경 내용이 현대과학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면 미래과학과는 맞지 않겠죠. 공룡 모습만 봐도 털이 없다가 치킨처럼 변했다가 새끼때민 털이 있다고 했다가. 새가 공룡의 후예라고 했다가 지금은 새는 멸종하지 않은 공룡이라고 하죠. 결국 과학은 계속 이론을 수정해가며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신학은 과학 자체에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시조새를 교과서에 삭제하려고 반대운동할 필요가 없다는거죠. 그 시대 과학에 대응한 신학에 대해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새벽새벽-o5g
@새벽새벽-o5g Жыл бұрын
장재호교수님. 동물에 대한 구원의 문제를 닫아 놓는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라고 말씀 하시는건 아닌거 같네요. 단지 피조물은 예수님 재림후 구원의 완성이 될때 썩어질 것들이 회복되는 현상일 뿐이지 구원의 대상은 사람뿐입니다.
@새벽새벽-o5g
@새벽새벽-o5g Жыл бұрын
사람이 먹는 육고기. 생선들에게도 구원이? ㅋㅋ 구원의 대상을 사람이 먹는다?? 아무리 신학이란 이름으로 아무 생각이나 책으로 내고 얘기하면 되는 세상이라곤 하지만 넘 나간거 같다. 사람을이 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시대다 보니 마치 개와 사람이 상관하여 아이를 낳을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김병현-s6j
@김병현-s6j 3 ай бұрын
천년 만년 계속 연구해도 지구밖에서는 절대로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천륜의 법칙입니다. 1000년 후에는 아마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끝나기에 지구는 물질이기때문에 사라지지 않을까 저의 생각입니다.
@hansangkim1996
@hansangkim1996 Жыл бұрын
절대 예정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땅의 삶에서는 내가 선택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고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봐야 알 수 있다는 것. 칼빈의 예정론은 카톨릭 교리의 기초를 세운 어거스틴이 주장한 철학에 불과함. 그래서 웨슬리는 칼빈의 예정론을 지옥에서 가져온 교리라고 죽을 때까지 설교했음. 칼빈교리와 웨슬리교리는 정말 다르다.
@새미기픈-w6r
@새미기픈-w6r 8 ай бұрын
영이 없는 짐승이 사람과 같은 구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제를 생각하면, 하나님이 만물을 괜히 만드시지 않았을 것이기에 어떤 빙식으로든 천국에 남겨지리라 (회복? 어떤 완전함으로의 발전?) 생각합니다. 만일 천국이 오직 구원 받은 사람만 있다면, 사람 이외의 아무 것도 없는 세상, 집도 없고, 나팔도 없고, 나무와 물도 없는 곳을 천국이라고 말해야 하는 모순에 이르게 됩니다. 또 피조물도 구세주의 오시는 그 날을 함께 열망한다는 말씀을 생각할 때, 모든 피조물도 사람의 구원에 동반되는 축복을 받을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leelee-hb9cg
@leelee-hb9cg Жыл бұрын
하...재밌따..
@noah88family
@noah88family Жыл бұрын
라쿤 넘 좋아 ㅋㅋ
@성민교회-n8c
@성민교회-n8c 9 ай бұрын
장재호 교수님 감리교 신학의 최근 스탠스를 보여주셔서 감사한데, 본인도 생물학을 전공하신 분이 아니신데 상대교수님이 생물학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례한 말씀이네요 창조과학도 깊이 공부하지 않으셨는데 창조과학을 일방적으로 단언하시는 것도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youngbaeson
@youngbaeson 3 ай бұрын
동성애 구원 문제에 대한 접근에서 동성애자들은 스스로의 동성애를 자신의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정면으로 성경을 위배하는 것이라면 별 것 아닌 사소한 문제로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동성애자들 자신이 그 문제를 자신의 핵심으로 보는데 동성애가 정면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괜찮다고생각하는 것은 논리상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땅하늘-i3o
@땅하늘-i3o 10 ай бұрын
인간들이 왜 하느님 여호와를 믿어야 하는지를 먼저 알아야한다. 인간들의 생각으로 나는 그냥 하느님이 좋아서 믿기만 할거야 찬양하는 것으로 만족해 이러한 믿음은 차라리 무신론자들보다 더 손해다. 왜냐면 무신론자들은 지맘대로 편히살면서 멸망될것이지만 인간들의 맘으로 하느님을 잘못 믿으면 시간과 돈을 낭비하며 고생만하고 멸망되버릴테니까. 예수께서는 하느님 여호와의법을 알려주시면서 지키라고 했다. 그러면 왜 인간들은 굳이 여호와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는 계 22: 12-15 예수께서 생명나무가있는 여호와의나라 성안으로 들어갈수있는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했기때문에 영원히 살고자 하는이들은 상받기 위하여 예수께서 알려준대로 행하라 하는것들은 행하고 행하지 말라고 하는것들은 안하면서 순종하여 상받을 자격을 갖추며 심판때까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믿음에서 떠나지 않게 악과 싸워 이겨내야 할것이다. 행 1:8
@jeonghyeonchoi3530
@jeonghyeonchoi3530 4 ай бұрын
하나님의 예정은 개개인의 구원에 대한 예정이 아닙니다. 개개인을 어떠한 방법으로 구원을 하는가 하는 방법이 예정된 것입니다. 이 예정에 대한 것은 엡 1-3장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정은 하나님의 경륜에 의한 것이고 하나님의 경륜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는 것입니다. 이 통일에는 계획이 있고 이 계획에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기업이 된 것입니다. 곧 예정을 입은 자들은 기업이 된 우리입니다. 여기의 우리는 앞에서 택함을 받은 우리입니다. 그러니 이 택함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예정하신 것입니다. 이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시는 것이니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업이 어떠한 기업인가? 이 기업에 대한 보증이 너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업은 너희가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예정을 입은 자들은 우리이고 너희는 예정을 입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니 택함 받은 우리만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대상도 구원의 대상입니다. 그 구원의 조건이 복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우리와 너희가 등장하고 우리는 택함과 너희는 복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택함 받지 못한 너희는 유기가 아니라 복음에 의하여 구원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이고 너희는 누구인가? 엡 2:11에서 너희는 이방인으로 이스라엘 밖의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러면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는가? 엡 2:12에서는 이방인은 분명히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하나님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밖에서 어떻게 택함을 받았고 하나님도 없는데 누가 택하여 주었는가? 그러니 이중 예정론은 택함 받은 우리 곧 이스라엘을 제하여 버리고 그 택함을 이방에 적용시킨 것입니다. 그러니 예정론자들은 이스라엘을 말하는 성도를 그리스도인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롬 8:26이하의 예정론은 롬 8:27에 의거 성도에 대한 것입니다. 성도는 엡 2:19의 성도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니 이중 예정론은 성도인 이스라엘을 그리스도인으로 대체하였기 때문에 생긴 오해로 인하여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정론은 이 택함을 우리인 이스라엘에게 적용하지 아니하고 너희인 이방인에게 적용하여 복음을 믿을 대상이 미리 예정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택함은 언약에 의합니다. 언약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법인 복음은 언약을 얻는 방편으로 언약을 범한 자나 언약이 없는 자들이 언약을 얻을 수 있는 방편입니다. 그러니 복음은 언약이 아니며 언약을 얻는 방편으로 언약을 폐하지 못합니다. 복음은 이방인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상속자가 되게 하고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여 이스라엘과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택함을 받은 자는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을 구원하는 기업이요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은 유기가 아니라 복음으로 구원하는 대상입니다. 그리고 택함은 무조건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자손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복음으로 보면 원수 같으나 택함으로 보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새미기픈-w6r
@새미기픈-w6r 7 ай бұрын
구원은 하나님의 언약에 뿌리를 둡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을 하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의 언약에 대해 말하면, 하나님께서 베푸시고자 하신 사람들에게는 그 구원의 언약이 영원하고 취소될 수 없는 것만큼, 구원의 유효성이 확실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면, 구원의 언약도 쓰레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요? 언제나 사람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지, 하나님은 지금도 창세 때의 그 약속ㅡ 인간이 쓰레기로 알고 버렸던 그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반복 맹세하시며 지키시고 있습니다.
@김민호-r2b
@김민호-r2b Жыл бұрын
구원의 취소 부분에서는 애초에 구원이라는 단어가 어느정도의 범위를 가지는지에 대하여 논의하면 좋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구원은 크게 두가지 쓰임이 있었습니다. 같은 단어이지만 조금 다른 의미였죠. 먼저 비유하자면 여러분은 망망대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이때 어떤 나룻배가 지나가는데 뱃사공이 여러분을 물에서 건져 배에 올려두었습니다. 여러분 물에 빠져 죽을 여러분을 배 위로 건져준것도 구원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배가 온전히 뭍에 닿아서 지상에 살아 올라가야 비로소 진정한 구원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만약 뱃사공이 당신을 다시 물에 밀어버리거나, 배가 침몰해버리면 결국 여러분은 물에 빠져 죽을것입니다. 그럼 배에 올라탄 짧은 시간은 진정한 구원은 아닐 수도 있겠죠. 그러나 내 상황에서 뭍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 뱃사공이 나를 배에 올려주어야 합니다. 무슨말이냐 구원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면 배에 건지는 것, 뭍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 두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구원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무엇입니까? 그냥 자살쇼입니까? 영적 전쟁입니까? 일단 예수가 주장했던 것은 만민공동체입니다. 혈통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서, 야훼(창조주 신)는 유대인의 신이 아니라 전 인류, 이 세상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목적만을 이야기한다면 이방인들에게도 유대인의 신을 확장한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믿음으로서 구원받는것은 유대혈통이 아닌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유대인들의 말을 근거로 야훼를 믿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주장은 유대혈통만의 구원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다는것은 야훼가 이방인을 포함한 전인류의 신이라는 것을 믿는다는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서 물에서 배에 건져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배가 뭍에(천국에) 도달할 때까지 배에 잘 타고 있어야합니다. 물론 신적인 요소로서 뱃사공(야훼 혹은 예수)이 우리를 배에서 떨어뜨리기보단 우리가 사서 배에서 뛰어내린다고 보는게 맞겠지요. 요점은 우리가 구원의 취소라고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잘 보아야한다는겁니다. 구원이라는 단어를 두가지로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중예정은 저거 설명 못합니다. 배에 올라타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 구원의 취소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이중예정이 아니라면 배에서 뛰어내리는것은 나지만, 뱃사공은 나를 다시 건져주시려고 합니다. 그리고 배가 뭍에 도착할 때까지 배에서 잘 있으면 뭍에 도달할 수 있겠죠. 이중예정이라면 뱃사공이 저를 물에 빠뜨리는 겁니다. 그리고 물에서 다시 건지고, 다시 빠뜨리고 그러는 겁니다. 모든 주권, 모든 책임이 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뭍으로 도달할 사람은 정해져있습니다. 무슨말이냐면 뭍까지 데려가주는 척 하고 뱃사공이 물에 밀어버려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정된자가 아닌 것이죠. 혹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도 그냥 지나간다는 말입니다. 유기된자인가 봅니다. 이중예정은 성경을, 신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게합니다.
@박바울-u8l
@박바울-u8l 4 ай бұрын
감신대 교리는 인간이 으뜸 본이 되는 냄세가 너무 짙다.
@jesuslovesyou3228
@jesuslovesyou3228 Жыл бұрын
에큐메니컬 wcc를 중심으로 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셨는데, 그렇다면, 장재호교수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종교는 하나의 신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하는것입니까? 무서운 발상이네요. 그래서 ncck 소속으로 기감이 큰 주축으로 남아있는것입니까?
@고재욱-j3d
@고재욱-j3d 9 ай бұрын
둘중에하나는가짜네 기독교가얼마나 타락했나 좁은문으로가는이가 지극히 적다고 했는가 어쩌다믿음이 토론을해서 찾을수 밖에없는가 참 씁쓸하네
@TV-dv3ck
@TV-dv3ck Жыл бұрын
삼위일체는 유일신론을 위한 교리 아닌가요
@coramtheo
@coramtheo Жыл бұрын
인간 관점에서는 모순으로 보일 수 있는 두 가지가 성경에 분명하게 나오기 때문에... 한분이시다 하는 유일신 사상도 성립되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같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여러 구절들도 있으니 둘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로 본다면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필요하죠. 세 위격 구절만 집중해서 삼신론처럼 주장한다든가 한 하나님만 생각하고 양태론 주장한다든가 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겨나다보니 공적으로 방법을 찾아 흔들리지 않을 핵심 교리가 된 것인데...(니케아 공의회) 문제는 인간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불가능에 가까운 개념이라 듣고 이해하는 입장에서나 남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서나 조금 답답함이 생기는 것이고요.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좋게 되는 경우를 못봐서... 실수에서 안그치고 심취해서 이걸 흔들기까지하면 기독교 신앙이 아니게 되니... 모두 신비라는 조심스러운 설명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고요.
@coramtheo
@coramtheo Жыл бұрын
@@박두환-m2c 신론에 있어서 핵심부분이다보니 한 하나님이신 것도 너무나 중요한지라... 말씀하신대로 오류가 생기면 안되는 부분이라 방법을 찾아낸 거라고 봐요. 그걸 누군가는 억지로라고 보실 수 있다고 보구요. 세 위격이 한 하나님이 아니면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아예 별개의 하나님이 되어버리는 것인데... 그건 치명적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범죄한 대상과 대신 죄값을 지신 분, 그걸 믿게 해주시는 분이 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고백하면 그건 우리가 받아들이는 기독교 신앙이 아닌 기괴한 무언가가 되어 버리니까요. 부정적인 관점으로는 억지로 끼워 맞춘다 할 수 있고 그러면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에서 멀어지게 되겠지만... 믿어지는 입장에서는 확실히 두 사실 모두가 진리이니 결국 신비(완벽히 이해하기 전까지)가 되겠죠.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방법은 계속 찾아야 할 것 같지만요. 비현실적으로 읽히는 모든 것들을 점점 다 설화적 기법으로 읽다보면 우리 신앙 자체도 무의미해지지 않을지요.(일단 비신앙인이신지 신앙인이신지 모르겠어서...)
@coramtheo
@coramtheo Жыл бұрын
@@박두환-m2c 사실 삼신론을 자꾸자꾸 반박하다보면 하나의 본질을 이야기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양태론적 뉘앙스는 생길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그 반대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성경에서 세 위격을 나타내는 것만큼 한 하나님을 증거하는 여러 구절들도 존재하고 그게 제가 신앙하는 기독교 신앙이기에 저도 그리 고백할 수밖에 없네요. 저의 잣대로 하나님의 속성을 축소시키길 원하지 않습니다. 저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에 답답함이 있지만... 말씀하신대로면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만 취하고 그리 와닿지 않는 것은 버리고 그저 다 설화, 비유, 과장으로 치부해야하는데 그런 방식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마찬가지로 가감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어떤 부분을 읽을 때는 '아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진리다 아멘'하고 어떤 말씀을 읽을 때는 '아 이건 그냥 비유야, 설화적 기법으로 읽을 필요가 있어, 과장된 표현이야' 해버리면... 결국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것만, 내가 납득되는 것만 믿게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냥 나의 생각과 사상을 펴고 강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도구화 하는 것이 되어 버리고 그건 조금(?) 오만한 것이라고 생각해요.(불편한 표현일 수 있지만...) 어떻게 해야 조금이나마 이해해볼 수 있을까 방법을 찾아보되 삼위일체에 대한 고백 자체가 흔들리시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리우스파,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등 삼신론스러운 여러 시도들은 결국 성자의 권위가 어쩔 수 없이 축소되고 그를 지극히 신성화하지만 결국 피조물 구원자에 불과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해서... 계속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coramtheo
@coramtheo Жыл бұрын
@@박두환-m2c 삼위일체를 한 구절 안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도 좋지만 '세 위격의 하나님', '한 본질의 하나님' 각각을 증거하는 구절이 셀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중에 전자만 믿는 것이 오히려 편집(취사선택)이 아닐지요. 우린 마치 양립불가할 것만 같은 두 진리를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뿐입니다. 구약에도 우상들과는 구별되는 유일한 하나님으로의 표현이 수도 없이 나오지만 말씀하신 논지대로면 거기엔 크게 의미를 두시지 않을 것 같네요. 신약에서도 한 하나님을 증거하는 구절들이 수도 없이 많으나(엡4:4-6, 고전8:4, 롬3:30, 갈3:20, 딤전2:5 등등) 이것들도 또 그런 의미가 아니다 하고 받아들이신다면 어쩔 수 없죠.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해가 되어서 믿는 것보다 믿기 때문에 이해되는 것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도 조금이라도 복음을 훼손하지 않고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고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해가 안된다고 해서 특정 말씀들을 외면하고 우화로 만들고 사실상 거세하려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보입니다. 혹시라도 드리는 말씀이 공격적이거나 고집적으로 보이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다른 주제면 충분히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싶고 받아들이겠지만 전 기독교에서 삼위일체가 양보할 수가 없는 중요한 핵심교리라고 생각하고 그걸 흔드려는 시도가 제겐 크나 큰 위험성으로 느껴져서요. (실제로 과거에도 지금도 그걸 그저 실수가 아닌 진지하게 가져가고자 하는 부류들은 이단으로 분류되고 있고요.)
@seanpark9970
@seanpark9970 Жыл бұрын
@@박두환-m2c모순을 신비로 포장하는거 아니냐는 생각이 있는 것 같으신데요. 현대 물리학도 이성으로 아해가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성을 동시에 기지고 있고, 입자 하나가 이중 슬롯을 동시에 통과합니다. 이해가 안되는데 그게 사실이거든요. 파인만이라는 최고 천재 과학자는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우주의 속성도 인간의 논리로는 모순이지만 사실이 발생하는데 창조주의 본질에 이성으로 풀리지 않는 신비가 없다고 할 수 없죠.
@새하늘-e4g
@새하늘-e4g Жыл бұрын
깊이 있게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은 거진 독일 영국에서 공부~~
@캭하
@캭하 11 ай бұрын
박재은 교수님 진화론 토론에서 정말 소름돋았습니다. 말은 진짜 오지게 잘하시는데 설득력이 하나도 없음... 뭐 진화론을 부정하는 게 결국 그런 일이기 때문이겠지요.
@Jesus_repent91
@Jesus_repent91 10 ай бұрын
진화론은 사실상 이론이라 보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조직신학에서 신학은 믿음으로 한다.가 기본 기조이기 때문에 다양한 논쟁이 있는 주제에 관하여 설명할 때 신정론적 해석이 많이 나타날 수 밖에 없죠. 인간이 신을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도전하는 일 아닐까요?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인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그에 수반한 내용들이 다 이해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해로 인해 믿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믿어서 이해에 이른다고 합니다.
@johnpark6045
@johnpark6045 Жыл бұрын
예정론에 대한 박교수님의 답변부터가 논리적이지 않네요. 예정은 신앙의 영역이지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면 그런 관점으로 토론이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나는 유기라는 표현보다 지나치심이 더 좋은 표현이다? 말만 다르지 유기랑 지나치심이랑 결국 똑같은 의미 아닌가요? 하나님의 지나치심이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 부각된다? 어떻게 하나님의 지나치심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부각되나요? 그 부분을 그냥 넘어가기 보다 왜 지나치심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부각되는지 설명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박교수님의 말투는 논리적인데, 말의 내용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아요. 그리고 신앙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말은 자제해주세요. 그러면 토론 자체가 성립이 안됩니다.
@bumjinhwang7150
@bumjinhwang7150 Жыл бұрын
예정론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신비의 영역, 감추어진 영역입니다 인간의 논리체계로 설명이 안됩니다 단지 이중 예정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재욱-l9w
@이재욱-l9w Жыл бұрын
구약시대의 애굽과 바로 그밖의 이스라엘의 수많은 적들, 역사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수많은 민족들.. 논리적으로 어떻게 풀어가실건지요? 분명한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지금 우리 이 영상을 듣는 많은 신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외에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지체들도 자유의지를 주셔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지않고 그 의지에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청함은 있되 택함 받지 않을 거란것도 예정하셨구요.. 예정이든 신앙이든 뭐든 성경 내의 계시를 통해 우리는 받아들여야지 자꾸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가둬두려고 하는것 자체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폄하하려는 행동이 아닌가 싶네요.
@Jesus_repent91
@Jesus_repent91 10 ай бұрын
@@이재욱-l9w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 100%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느낌이라고 말씀을 드린다면 불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는 먼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논리적으로 다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재욱님이 설명하고 주장하시는 내용도 결국 인간의 지식과 이성이 결부될 수 없는, 삶에서 학습되고 경험한 가치에서 자유로 울 수 없는 내용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신다면 그 누구도 예정론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욥기 40~42장을 읽어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 욥기 42장 1~3절 말씀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고린도전서 1장 20~25절 말씀 -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 전도서 7장 23~29절 말씀 -
@미애강-v1h
@미애강-v1h 10 ай бұрын
기독은 종교가 아닌것부터 출발해야 말씀의 진리가 보입니다 성경을 백독해도 종교적으로 흐르기쉽기때문입니다 문자적 해석으로는 절대 알수가없어요 주해가 아닌 강해의 바른복음안으로 들어가야 알수있습니다 단지 성경에관한 지식은(교리 역사 성경적인물....) 예수님을 제대로 알기 위함이지 전적으로 지식만으로 예수님을 알수없습니다 머리만 커지고 지식나열 지식자랑밖에 안됩니다 말씀을 알아가면 갈수록 자기영적우월주의 선민사상에 자칫 빠지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심을 깨부수러오신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경건주의 거룩주의. 율법주의 인본사상주의 모두 배제하러 오신것입니다 그래야 영안을 열어주십니다 일반종교처럼 신을 찾아다니며 비는 샤머니즘적인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는 이교도가 아닙니다 이것이 기본토대입니다
@김기대-w3x
@김기대-w3x Жыл бұрын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39) 성경은 인간을 구원하는 책이 아닙니다. 즉 십자가 지신 주님은 자신을 증거하시러 육신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고 구원은 심판 속에서의 구원이며 오직 성령을 받은 자들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의 공통적 특징은 오직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삼위일체는 성경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이 구원받고자 만들어낸 단어이지요. 구약은 오실이 즉 십자가지신 주님을 증거하기위한 그림자입니다. 신,구약의 모든 인물들은 십자가지신 주님을 증거하기위한 도구들로 사용될 뿐입니다. 성령받은 성도는 오직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즉 인간의 종교적인 어떠한 행위도 십자가 앞에선 죄로 들통날 뿐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6:14)
@chan_yang
@chan_yang Жыл бұрын
박재은 교수님은 신앙인이지만 동시에 신학이라는 학문을 하는 교수인데 신앙으로만 치부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신앙과 신학은 다릅니다..
@leedongh1362
@leedongh1362 11 ай бұрын
신앙의 고백이 곧 신학입니다 교리라는 이름으로 신학과 신앙을 구분하는것이 아니라 신학은 올바른 신앙에 기초하는것입니다
@Jesus_repent91
@Jesus_repent91 10 ай бұрын
신학은 믿음으로 한다.가 신학의 기본입니다. 앞에서 댓글로 말씀하신 내용처럼 신앙의 고백이 곧 신학이지요. 우리는 올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 신학을 하는 것이지 신학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amd761
@amd761 19 күн бұрын
위의 대댓글 다신 두분 의견에 완전 동감입니다
@주광현주우광
@주광현주우광 Жыл бұрын
총신을 나와서 목회를 하는 입장에서 총신교수님의 신앙관이 참 아쉽네요. 예정은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예정하셨디는 의미이지요. 어떤 사람을 선택하고 유기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구원계획의 방법을 예정한것입니다. 물마시는것으로까지 예정을 말하는것을 보고 참 총신의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지네요 또 그런 입장에서는 구원의 취소도 불가능하지요. 아니 취소란말이 성립이 안되지요. 창세전부터 예정되었는데 어떻게 취소가 있을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또 약속은 책임이란 말을 하고 있네요. 그리고 삼위일체를 신비요 믿음의 영역이라 말하는데 성경에도 없는 교리로 더 혼동스럽게 하네요. 물론 감신대도 행위중심의 신앙이기에 한계가 있지요. 결국 신학이 신앙을 이끄는 현신은 결코 히5장에서 의의 말씀을 경험할수 없지요. 마치 수박의 겉을 핥고 속은 못먹어본 사람들이 수박에 대해 나누는 대화같습니다.
@thoma2028
@thoma2028 Жыл бұрын
목사님 궁금한 것 몇가지 질문드립니다. 1.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예정하셨고, 인간의 자유의지로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없고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2. 또, 개개인을 선택하고 유기하시지 않는 하나님이라면 누군가가 구원받지 않을지(믿다가 떠난 경우) 미리 알고 계실텐데도 그 사람이 믿을 적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교통하신다고 봐야하나요?
@thoma2028
@thoma2028 Жыл бұрын
3. 예정의 문제를 지나지체 사소한 문제까지 끌고와 갖다 붙이는 것을 안좋게 보고 계신데, 이를 통해 추측해보자면 하나님께서 미리 알고 계시는 것과 미리 '정하신'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이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계획의 방법 이외의 모든 것들은 그저 미리 알고 계실 뿐, 인간의 자유의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신다고 봐야할까요?
@김민호-r2b
@김민호-r2b Жыл бұрын
@@thoma2028 지나가다가 잠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뭐 원댓 목사님께선 따로 말씀 해주실겁니다.) 1. 신이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했느냐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Yes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건 인간이 가능하냐 아니냐 이전에 신이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느냐를 말하면 해결되는 부분입니다. 마치 천국와 지옥을 믿느냐?라는 질문은 신을 믿느냐?라는 질문에 답을하면 자동으로 해결되듯이 말입니다. 신을 믿는다면 신이 천국과 지옥을 만들었기때문에 자동으로 천국과 지옥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다면 반대로 천국과 지옥은 없다고 보는게 합리적인 생각이겠지요. 마찬가지로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까지 이어지는 것)이 인간의 결정으로 가능한 것인가? 여기에서 인간 스스로 구원받아 천국에 이른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게 이중예정쪽에서 상대를 극단적으로 비판할때 쓰는 논지인데 저는 마지막 결정권은 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출발지점은 인간이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취지이지요. 이 논지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신이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하였느냐를 기반합니다. 이걸 해결하면 자동으로 답이 나옵니다. 우리는 오히려 왜 BC,AD 0년에 그리스도를 보내셨는가? 왜 중동지역이 선택받았는가? 라는 질문을 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2. 신과 인간의 교통, 혹은 관계라고도 이야기하는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예정론을 믿건 믿지않건간에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부분은 공통된 견해가 있습니다. '인간과 신은 이미 관계가 있으며, 인간이 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자신과 관계 중인 신을 마주하는 상태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인간과 신은 관계되어있습니다. 인간이 신을 마주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지요. 3. 미리 알고있다 vs 미리 정했다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미리 정했다도 미리 알고있는점에서는 전지하다고 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전지(미래를 앎)전능(시간선을 정하거나 조정 가능)한 신이 얼마나 세상에 개입하느냐에 대한 논제가 적당합니다. 미리 정하고 변치않는것 (이중예정이죠)은 전지전능에서 개입하지 않는 신을 주장하는 점이지요. 반면 개입하는 신을 본다면 개입의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겠죠. 모든것에 개입하느냐, 특정 상황에 개입하느냐. 그거랑 상관없이 저의 경우 그리스도를 통한 무언가를 보여주셨고, 인간에게 자유도 허락하였다고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thoma2028
@thoma2028 Жыл бұрын
@@김민호-r2b 답글 감사합니다! 저도 1번은 특히 동의합니다. 인간이 믿기로 작정하면, 그 뒤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혹은 그렇지 않기로 중간에 결정한다고 해도 2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 여전하겠지만 인간이 바라보지 않는 설명이 될 수 있겠네요.
@김민호-r2b
@김민호-r2b Жыл бұрын
@@thoma2028 역사를 알면 현재를 볼 수 있다. 유대교의 부패로 인해 발생한 바리새인의 종교지도자로서의 모습(예수 당대의 모습), 가톨릭의 부패로 인해 발생한 교황청의 종교지도자로서의 모습(루터의 종교개혁 당대의 모습) 이들을 분석해보면 교회(혹은 집회)에 의존하게 만들어 권력을 잡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지금의 개신교 또한 절벽 앞에 서있습니다. 이성계가 고려를 갈아엎고 조선을 세웠지만 조선 또한 망하지 않았습니까? 개신교도 각성해야할 때입니다. 칼빈의 경우 극단적인 자세(반 가톨릭)로 신학적 견해를 내놓은 사람 중 한명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노자는 '도가 사상'을 만들게되는데, 이 시스템이 기독교의 신과 거의 흡사합니다. (놀랍지요. 인간이 야훼를 전달받지 않아도 신을 알 수 있는 사건 중 하나로 봅니다. 이 부분은 또 다른 이야기를 낳기때문에 여기까지만) 그러나 도가의 시스템은 100% 기독교적으로 가지 못하는데, '인격적 신'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도가 사상이 '유가 사상(유교)'를 비판하기 위해 나온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유교사상의 기본이 인격적 신이거든요. 즉 극단적 스탠스가 온전한 진리를 전하지 못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칼빈의 논리에서도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칼빈이 말하는 튤립교리는 그 형태가 잘못된것은 아닙니다. 진리입니다. 그러나 튤립을 해석하는 관점에서 오류가 발생하니 온전한 진리를 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은 선하다고 했습니다. 선하다는것은 무엇일까요? 선과 악은 무엇일까요? 거두절미하고 답만 드리자면 선한것은 어느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공의(중심)입니다. 즉 우리는 칼빈의 모든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게 아닙니다. 칼빈또한 훌륭한 신학자지요. 다만 칼빈이 온전한 진리를 전하지 못한 이유를 치우친 스탠스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우리는 칼빈이건 웨슬리건 간에 그들 안에 공통적으로 내제하고 있는 신적인 요소, 진리, 중심을 바로보아 온전한 진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장황하게 하느냐면 현 개신교에서 인간과 신의 관계성이 '이미 있다'라고 하면 욕먹습니다. 중세시대 교부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럽인 입장에서 성경을 해석하여 나온 결론입니다. 3000년전 야훼를 몰랐던 아메리카원주민들은 왜 야훼를 몰라서 지옥에 갔어야하는겁니까? 이런 질문에서 우리는 우리의 조상의 구원에 대한 고민도 해보게됩니다. 구원받을자가 정해진것도 아니고, 신앙고백이 나와 신의 관계를 생성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떠나 방황한다고해서 신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부터 연결되어있었고, 우리가 바로보느냐 배척하느냐입니다. 진리는 모든 것에서 설명이 가능해야 합니다.
@강수아-f5k
@강수아-f5k Жыл бұрын
성경 내용으로 이중예정교리를 파해보겠습니다 일단 이중예정 교리는 한번 구원 받은 자는 그 받은 구원이 그에게서 영원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도 자동적으로 성립이 됩니다 왜냐면 구원 받은 자는 예정으로 구원 받았으니 만약 받은 구원이 취소 되면 그 미리 예정한 일이 번복 되는 일이 발생함으로 이중예정교리로 볼때 예정된 일이 상황에 때라 번복되는 일이 일어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엔 구원 취소되는 일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혹시 이중 예정론자들이 그들은 처음부터 구원 받은적이 없었다라고 자신이 가진 신학의 사고에 따라 변명을 할수 있겠지만 그러나 성경엔 구원을 완벽하게 받은 자가 그 받은 구원이 취소 되는 일이 있음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부터 그 내용을 소개 해드리겠습니다 계3장에 보면 사데교회 대부분의 성도들이 타락한 상태로 살고 있는 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너는 겉으로는 살았다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체는 죽은 자다라고 그들을 평가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그들이 타락하여 주 앞에 온전한 것이 없었다라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돌이키라고 회개를 촉구하며 만약 회개치 않고 끝까지 그 타락한 상태를 고집하면 너가 영적인 잠자는 타락한 벌거벗은 상태에서 갑자기 돌발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되어 큰 낭패를 당하게 될것이다라고 회개해야될 이유와 경고까지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타락한 사데교회 가운데 일부 타락하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사람들의 좋은 본보기의 사례를 타락한 대부분의 사데교회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데 그들은 예수님과 흰옷을 입고 거닐게 되는 영광에 참여하게 될것이다 이유는 그들은 그 보상을 받기에 합당한자들이기 때문이다라고 좋은 본보기의 예를 타락한 사데교회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죠 이렇게 소개가 끝난 뒤 예수님이 타락한 사데교회 사람들에게 또 다시 강조하시기를 너희 중 타락한 삶을 회개하여 돌이켜 이기는 자는 그도 마찬가지로 앞에서 소개한 좋은 본보기의 사례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또 그렇게 돌이킨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기록한 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보상을 받을 것이요 아울러 하나님의 보좌와 그 천사들 앞에서 내가 그를 모른다고 외면 하지 않고 그를 안다고 시인할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다 타락한 자가 회개하여 돌이켜 이겼을 때에 받는 보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보상의 내용 중 우리는 회개하여 돌이켜 이기면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지 않겠다라는 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내용으로 일단 사데교회 사람들은 타락하였지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상태임을 알수 있습니다 왜냐면 지우지 않고 기록된 상태를 유지 시켜 주겠다라는 말은 기록된 사람에게만 사용할수있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타락한 삶을 회개하여 이기는 조건에서 기록된 이름을 삭제하지 않고 유지 시켜 주겠다라고 하며 타락한 사데교회 사람들에게 조건을 걸고 있습니다 이것은 계속 타락한 삶을 고집하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린다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생명책에 이름이 한번 기록되면 그 기록한 상태가 영원히 보장되면 이릉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것인데 예수님이 굳이 번거롭게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지 않겠다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도 그렇게 될 조건을 제시하면서 조건에 맞는 보상의 개념으로요 아니죠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기 때문에 지워지지 않을 수 있는 조취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타락한 그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조건에 부합되지 않았을 때 이름이 지워진다라는 내용이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라는 것은 이미 구원을 얻었다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절대 생명책에 기록될수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라는 것은 구원취소와 연결되는 것이고 구원 취소는 이중예정론이 잘못되었음을 알려 주는 것이죠 계3장은 짧은 내용이라도 구원론의 성격을 말해주는 중요한 글이라서 성경의 구원론의 성격을 알수있게 하는 짧고 굵은 내용입니다 그래서 글의 성격이 이러하니 짧은 내용으로 어떻게 전체를 정의하려고 하냐?고 반박하는 사람들의 반박도 안통합니다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짧게 설명할 걸 길게 설명하시네요. 1. 성경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고 말한다. 2.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과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한다. 3. 성경은 하나님이 생명책에서 사람의 이름을 지운다고 말한다. 4. 성경은 하나님이 구원받을 신자들에게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1-2번이 한 세트, 3-4번이 한 세트입니다. 단순한 논리로 보자면 1-2번과 3-4번은 모순됩니다. 1.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미래는 바뀔 수 없으니 구원은 취소될 수 없습니다. 2. 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구원은 취소될 수 없습니다. 3. 신이 구원받을 자를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운다면 신은 마음을 바꾼 것입니다(미래에 대한 신의 지식도 틀렸고요). 4. 신이 구원받을 자에게 회개를 촉구한다는 것은 구원이 취소될 것을 암시하며, 이는 신이 마음을 바꾼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제를 선택해야 합니다. 1-2. 신은 전지전능하기에 미래는 결정되었도 마음을 바꾸지 않으신다. 구원 탈락에 대한 내용은 신이 짐짓 경고하는 것일 뿐, 사실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3-4. 신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은 신앙고백일 뿐 사실이 아니다. 신은 신중하게 마음을 바꿀 뿐이다. 구원은 취소된다. 이 두 가지를 지지하는 성경 구절은 다양하게 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어떤 입장이 더 우세한지를 입증하셔야 이 토론이 끝납니다. 단 하나의 말씀으로 이 논쟁을 마무리하려는 생각은 논지를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민규-i2e
@민규-i2e Жыл бұрын
이중예정론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경외해야되는 영역이지 성경에 인간이 이해할 정도로 완전한 뜻가운데로 나타난 것이 아닌 은밀한 뜻 가운데 속한 영역인데 이걸 이성적 접근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손상이 옵니다.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민규-i2e 물론 그러합니다. 다만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기에, 합리적인 토론의 장에서는 예정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김민호-r2b
@김민호-r2b Жыл бұрын
@@sheep_maximus 신의 전지전능에서 전지를 기반으로 고정된 미래를 말씀하시는 관점이신것같습니다. 모든것을 안다 -> 과거 현재 미래를 안다 -> 문제는 미래를 안다는 것,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고있기때문에 미래는 정해져있는 어떤 것이 있다. 이렇게 해석되는 관점이지요. 그런데 만약 깨끗한 물에 잉크를 한방을 똑 떨어뜨린다고 생각해봅시다. 여기서 잉크를 떨어뜨리는것은 '신의 개입'을 의미합니다. 원래 이 물은 깨끗한 물로서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했어야했습니다. 그런데 신이 잉크를 떨어뜨림으로서 물이 잉크색으로 물들게 되겠지요. 즉 신의 개입으로 인해 미래의 모습이 바뀔 수 있다는 것 + 그렇게 바뀐 미래에 대해 인간은 불완전한 예측밖에 할 수 없지만 신은 완전한 관측이 가능하다는 관점은 어떨까요? 이런 관점에서도 신은 전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지개념에서 가장 큰 문제는 '미래에 대한 앎'이니까요. 그러므로 미래가 고정된 것이냐, 신이 개입함으로서 변화하는 미래인 것이냐 두 가지 모두 가능한 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고정된 미래건, 신의 개입으로 변한 미래건 신이 미래에 대한 완전한 관측이 가능하여 '전지 한 신'이라는 개념을 잃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김민호-r2b 아 물론 신이 전체 시간선을 바꾸고 흔들어버릴 수는 있습니다. 허나 그 세계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과는 아예 다른 세계입니다. 바뀌는 것이 미래만이 아니라 과거도 포함될 수도 있고요. 과거-현재-미래는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의 컵에 담긴 하나의 물이자 하나의 흐름이라고 봅니다. 잉크가 떨어진 세계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존재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지금의 시간선 안에 있는 나의 미래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TheChrisMong
@TheChrisMong Жыл бұрын
목소리,마이크상태 총신대 교수님 완승
@hoingikingan2849
@hoingikingan2849 Жыл бұрын
이렇게 신학적인 토론을 지향하는 장에서 동성연애라는 시대착오적 단어를 버젓이 사용하는 게 좀 의아하네요. 왜 시대착오라고 생각되는지 궁금하시다면 동성애, 동성연애, 성소수자, 성적 지향 등의 단어들이 갖는 뉘앙스의 미세한 차이들을 알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이쪽 분야는 로 퉁칠 수 없을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논의들의 진행중입니다. "동성 연애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라니요.
@yoosook501
@yoosook501 Жыл бұрын
..........
@calvinkim7223
@calvinkim7223 Жыл бұрын
그와 관련해서는 퀴어신학자들이 논의 중에 있습니다. 퀴어성서주석도 출간되었고요. 물론 매우 마이너한 영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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