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서 진사시에 합격한 뒤 원나라에 건너가 원나라 국자감에서 처음 성리학을 배워서 연구하였고 이후 원나라에서 과거 시험을 쳐 회시에서 장원으로 급제, 전시[6]에서는 2등[7]으로 합격했다.[8] 앞서 통일신라 시기 최치원, 최승우 등도 당나라에서 급제했다고 하지만 외국인 대상의 빈공과에 합격한 것이므로 다소 격이 떨어지는데 비해 이색의 전시 2등은 그야말로 클라스가 다른 어마무시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나무위키에서의 이색 항목의 내용입니다. 교수님 설명과는 정반대라서... 진실이???
@Genghis_Khan74 ай бұрын
정도전도 컨닝금지
@블루마운틴-k4j3 сағат бұрын
정도전이 목달라날짓 했네ㆍ왕조국가에서 위험하네ᆢ
@수집쟁이드라하카5 ай бұрын
참.......... 아무리 고려후기가 문제점 투성이라 해도 그걸 고친다는 작자들이 이런 더러운 짓거리나 하니........... 지금 현재 우리가 봐도 어이가 없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더 어이가 없었을듯 괜히 사람들이 고려를 그리워 한다는 말이 생기는게 아니란 말이죠............. 특히 이방원이라 이름 붙인 공을 차며 이방원 대가리 날아간다고 노는 아이들 이야기는............ 당시 민들이 바라보는 조선이란 나라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알수 있죠
@postrockful5 ай бұрын
길에서 공차기를 하는 아이들이나 그 부모들이, 왕조교체기 같은 혼란한 시절에 글자를 쓸 줄 알았을까요..? 의문이 좀 생깁니다.
@수집쟁이드라하카5 ай бұрын
@@postrockful 고려시대 민들의 기본 교육이 어느정도인지 확실히 감이 안오기는 하는데 최항같은 인물들을 보면 민간에 학업 열풍이 부니 읽고 쓰기 정도는 하지 않을까요? 더군다나 상업이 발달되니 여러 정보를 알고 있을 공산도 크고요 이건 추측인데 지팡구처럼 불교사찰이 기본 학습을 가르쳐 주는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고요
@postrockful5 ай бұрын
@@수집쟁이드라하카 글자를 쓸 줄 알았을지도 의문이지만, 당대 권력자, 심지어 차기 지존이 유력한 권력자, 심지어 살인을 밥먹듯이 하던 이방원의 이름을 차고 다니다가 눈에 띄면 목숨부지가 가능했을지 깊은 의문이 듭니다. 조선에서 간관들이 권신이나 지존을 깔 때, 백성이 어쩐다고 이야기를 만드는 데 그런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존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강상의 죄가 되는 시대에, 이름을 쓴 공을 차고 다닐 정도의 베짱을 가진 일반 백성들이 있었을까..싶습니다. 무엇보다.. 권력자들 간의 대권다툼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백성들이 관심이나 있었을까..싶습니다.
@ramremram5 ай бұрын
뭐가 진실인지 판가름 할 순 없지만, 그 당시에도 여론 선동은 있었을 거 같아요 기존 고려 기득권이 여론을 끌었을거라 생각되네요
@수집쟁이드라하카4 ай бұрын
@@ramremram 둘다죠 뭐 고려 기득권, 권문세족이나 기존의 질서를 얻는 혁명세력, 신진사대부나 비방, 왜곡, 거짓 선동 다 하죠 그저 그 지저분한 싸움에서 신진사대부나 이겼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