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로 다른 결과에 베팅했던 두 지도자. 과연...(드골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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Жыл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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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 세상을 뒤바꿀 음악 -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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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 Title : Final Impact
⁃ Music by yblmusic library
⁃ Track Link : • FINAL IMPACT | 비장하고 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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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457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진짜 드골은 강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1944년 파리 해방 직후 드골과 르클레르 장군이 파리 시내를 걸으면서 파리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누군가가 드골을 향해서 총을 쏘고 그 총성에 다들 엎드렸지만 드골은 태연한 모습으로 걸어서 노트르담 성당에서 미사를 본 뒤 다시 태연한 모습으로 파리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자 그 순간 파리 시민들은 드골의 이름을 외치면서 열렬한 박수를 쳐 주었고. 그것을 본 한 프랑스 언론인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바로 이 날 드골은 프랑스를 완전히 손에 넣었다.' 진짜 그 정도로 배짱이 두둑했으니 나중에 프랑스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알제리 문제로 군부의 극단세력이 드골을 암살하려고 여러 차례 습격을 했지만 드골은 태연하게 그런 암살시도에 굴하지 않았다고........ 오죽하면 차량으로 이동하다가 암살자들이 기관총으로 차를 벌집으로 만들고 총탄 하나가 머리 바로 근처를 스치는 상황에서도 고개도 숙이지 않고 '또 시작이군!' 이라고 투덜거리고 나중에 안잔지역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린 뒤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 놈들은 총도 제대로 못 쏘는 놈들이군.' 이라고 한 마디 던지고는 비행기를 타고 갈 정도면....... 그런 부분은 영화 자칼의 날에 묘사되기도 합니다.
@user-sm9lt8il6c
@user-sm9lt8il6c Жыл бұрын
ㄹㅇ 씹상남자네 ㅋㅋ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한마디로 무골!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저 당시 세대들이 다 그러했다는...굉장하다는 말밖엔...
@user-iy4if2we1b
@user-iy4if2we1b 8 ай бұрын
근데 막상 자기들을 살린건 페텡인데 ㅅㅂ 종신형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pedrogim6952
@pedrogim6952 4 ай бұрын
1차 대전에 소위로 참전해 전투에서 부상당한 경험과 포로가된 경험에 두려움이 없이 없었을것
@user-he4hx6mz3s
@user-he4hx6mz3s Жыл бұрын
페탱은 구시대 귀족출신이라 전쟁의 승패를 지금의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했죠. 세상에 무조건 항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2차대전때 나온 겁니다. 항복이라는게 그렇게 어려운게 아닙니다. 페탱은 항복이 조건부 항복이고, 전쟁배상금을 지불하고 외교적으로 항복조건을 이행하기만 하면 되는 걸로 생각한 겁니다. 지금 처럼 국민국가와 국가총력전, 무조건 항복 개념으로 이 전쟁을 대한게 아닌 겁니다.
@truth1472
@truth1472 Жыл бұрын
나도 그런 생각이 좀 들더군요! 그렇지만 1차대전을 겪고도 몽상을 꿨다는 게 용서가 안 됩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truth1472 나이가 들면 자신이 믿는 그런 부분을 절대로 바꾸지 않는 옹고집에 사로잡하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으니까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 현명해진다...... 사실 그 부분은 군사적으로는 절대적으로 조심해야하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2차대전 당시 프랑스 전역이니까 말입니다. 지휘관들이 모두 나이가 들어서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옹고집만 부리는 동안 프랑스는 완전히 아작이 나버렸으니........
@YOPY-mu7gh
@YOPY-mu7gh Жыл бұрын
@@truth1472 반대로 1차 대전을 겪었기에 그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승전 후 '다들 고생했어! 전시상황 해제!' 하고 보니 프랑스의 한 세대가 전멸했고, 그 전멸을 진두지휘한게 자신이니까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 염전과 자기혐오로 질식했을 것 같습니다. 군대만 봐도 향후 프랑스군을 이끄리라 기대했던 초급간부 대부분이 전사했고, 사회로 고개를 돌리면 살아있는 참전자보다 죽은 참전자가 더 많았을테니까요. 그리고 그건 자기 손으로 돌파해 낸 1차 대전이기에 자괴감이 더 컸을 것 같습니다.
@kkoonn_
@kkoonn_ Жыл бұрын
@@truth1472 마지노선 그렇게 까면서 1차대전을 겪고도 몽상 같은 드립을 치네 ㅋㅋㅋㅋㅋ 마지노선 자체가 1차대전 참호전의 결과물인데? 오히려 참호전을 겪었으니 그런 방어적 교리가 나온건데 ㅋㅋ 그리고 용서는 왜??? 님이 뭘 용서하고 자시고 할 입장인가?
@khackers
@khackers Жыл бұрын
@@kkoonn_ 닉네임 보면 무슨 사상 가진지 견적 나오지 않노
@yoonhyunglee8538
@yoonhyunglee8538 Жыл бұрын
정말 씨네모리님 영화 설정 설명 그리고 평가는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좋은거 보고 갑니다.
@johnmj1004
@johnmj1004 Жыл бұрын
패탱은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항복을 생각했지만 드골은 폴란드, 체코의 사례를 보며 국토의 완전점령을 생각했네
@jisuw2747
@jisuw2747 Жыл бұрын
근데 드골의 예상이 훗날 실현 되어버리죠.... 프랑스 합병 초기에는 패탱의 친 나치 괴뢰 정부인 비시 프랑스를 인정해주지만 그 마저도 합병 당하고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먼지나게 털리고 연합군이 파리를 수복 할 때 까지 나치 독일군에 직접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 국토를 차지하고 있었죠
@user-qf1qz1rc5d
@user-qf1qz1rc5d Жыл бұрын
드골의 성품이 어떤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행적에서 잘 드러납니다. 당시만해도 독일 장교는 귀족출신이 담당했기에 포로가 된 프랑스 장교들도 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포로수용소에서 티타임과 짧은 산책도 즐겼다는데 드골은 '포로가 된 장교의 임무는 수용소 탈출'이라 주장하시며, 탈출과 붙잡힘을 반복하다 전쟁 끝날때까지 수용소 감옥을 전전하셨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그 에피소드는 영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나온 적도 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와 드골이 나중에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해서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다가 드골은 잡히고 인디아나 존스는 진짜 아슬아슬하게 탈출하는 부분이 진짜 재미있었는데......
@rnc3249
@rnc3249 Жыл бұрын
사실 드골이 2차세계대전 격전중에 한건 크게 없죠. 레지스탕스는 점조직이었고, 공식정부는 비시였으니. 근데 전쟁말 나치 몰락직전 프랑스는 나치부역국이 아닌 승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근거가 필요했고, 그때 시민들이 드골의 자유프랑스에 충성을 하게됩니다. 그결과 전쟁때 크게 한거없던 프랑스가 승전국이되었죠. 드골이 독립운동에 직접적인 무력이나 외교를 했다기보단, 드골의 명분이 승전국으로 만들었기에 드골이 의미있고 중요한 정치인인겁니다.아무리 할수있는게 없어도 조국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가 나올수 있는것이지요.
@user-te8uj7ry4k
@user-te8uj7ry4k Жыл бұрын
씨네모리님 전쟁영화 리뷰는 👍 진심으로 이렇게 훌륭한 채널에 구독자가 안느는게 속상하네요.
@dal22
@dal22 Жыл бұрын
항상 고맙습니다 ❤️ ❤️
@TV-jg2kj
@TV-jg2kj Жыл бұрын
프랑스 식민지에서 특히나 많이 도움을 주었죠. 아프리카 식민지 부대가 자유프랑스에 합류하면서 아프리카 방향의 비시프랑스 지역을 모두 석권하고 그곳에서 나온 인력과 부대들로 전쟁 승리의 기초를 마련했죠
@korea-lily
@korea-lily Жыл бұрын
그리고 전쟁 끝나자마자 입을 싹 씻고 나치와 별 다를 바가 없는 짓을 하려다 식민제국이 망했지요.
@Video-hr2ig
@Video-hr2ig Жыл бұрын
하지만 20년도 안가 식민지들이 독립하기 시작한 게 이런 전쟁 경력이 도움이 되어버렸으니 결국 부메랑으로 프랑스 머리에 꽂힘 ㅋㅋㅋㅋㅋㅋㅋㅋ 알제리는 프랑스 땅이라고 포기하지 않으려던 짓하다가 드 골은 수백여만 피해자를 겪게하고 지금도 알제리에서 히틀러 드 골이라는 비아냥으로 불림
@TV-jg2kj
@TV-jg2kj Жыл бұрын
@@Video-hr2ig 드골이 군부의 정점에 있었지만 알제리의 독립에 결정적인 역활을 한것이 드골인 것도 맞습니다. 드골이 투표로 알제리 독립여부를 결정한다고 했을때 군부에서 반발도 심했고 일부 공수 연대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공수연대들은 알제리군하고 프랑스군이 동시에 진압해버리고요.
@TV-jg2kj
@TV-jg2kj Жыл бұрын
@@Video-hr2ig 또한 FLN이 MNA같은 같은 독립주장 파벌에 대한 학살과 공격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야하고요. 그래서 MNA당원들은 프랑스군에 협조적이었고 프랑스의 좌익계열은 알제리 독립군에 투항하거나 자금을 대주는 경우도 있었고 일부 부사관 장교 장군까지 알제리에서 벌어지는 잔혹행위와 학살에 지쳐서 알제리독립군에 투항하거나 군복을 자진해서 벗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muktongx
@muktongx 11 ай бұрын
@@TV-jg2kj 뭐 확실히 그런 문제도 있었지만 드 골이 알제리는 프랑스 영구 영토라고 주장해댄 것도 있으니까요 영국과 미국에게 알제린 우리 땅이니 마구 포격하지 말아달라 하던 터
@harrychung6638
@harrychung6638 Жыл бұрын
진지한 역사해설이 감동을 배가 시키는 군요.
@hellcat3721
@hellcat3721 Жыл бұрын
씨네모리님! 씨네모리님 영상을 보고 또 한주 잘 버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gapdorry87
@gapdorry87 Жыл бұрын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 설명뿐아니라 역사적 부연설명도 너무너무 좋아요
@user-vu7rk3os8d
@user-vu7rk3os8d Жыл бұрын
이 채널 널리 알려졌으면 역전다방하고 이거하고 제 최애에요.
@user-ur1no3pm8n
@user-ur1no3pm8n Жыл бұрын
현재 대한민국에에게도 의미있는 메세지를 던져주는 영화네요. 국가가 위험에 처해있을때 국민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blackdragonangrycat
@blackdragonangrycat Жыл бұрын
사실 전후에 드골은 정치적 조류를 잘탄감도 있는데 대외적으로는 서방이 인정한 자유 프랑스의 수장이였던 점도 있지만 실제로는 프랑스 본토에서 활동하던 파르티잔들 즉 레지스탕스들 7할이 좌파 단체 및 공산당원들이였던 이유가 큽니다. 만일 프랑스가 공산당에게 떨어지면 독일(서독)은 사실상 양면으로 적에 둘러 쌓인것이 되고 반공전선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버리게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도 서방은 드골을 강력히 밀어줘야 했고 실제로 그리했으며 반면 본토 내에서 저항군을 짜면서 갖은 고초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공산당은 당시 원내1당에 걸맞지 않게 드골 정부와 서방의 각종 탄압과 견제에 시달렸어야 했습니다. (공산당원이였던 사르트르는 드골을 새로운 히틀러라면서 까기도 했죠.) 정작 가장 적극적이여야 할 소련은 이를 방관하고 있었는데 서방 간 채결한 협정도 있었겠지만 정통성(사회주의 발상지, 파리 코뮌)이나 국력이나 세계적 위상으로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소련의 자리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어서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sukkil218
@sukkil218 Жыл бұрын
드골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user-hc3iz6hx3o
@user-hc3iz6hx3o Жыл бұрын
드골 등골이 오싹하네요 나라를 위해 싸워야죠 감사합니다
@user-uk1je1iv5k
@user-uk1je1iv5k Жыл бұрын
드골 연기한 주인공이 매트릭스 시리즈의 메로빈지언이라니... 정말 역할에 따라서 느낌이 확 다르네요
@ConfusedKat
@ConfusedKat Жыл бұрын
빨간약 먹기 전, 메로빈지언. 극변했군옄
@user-gv1el5xx6p
@user-gv1el5xx6p Жыл бұрын
사실 드골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처칠의 지원때문이죠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사실 소설 자칼의 날에서도 자칼을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지원이 영국에서 나왔는데 그 당시 시대상을 보면 처칠이 수상에 재취임을 한 시기라서...... 만약 자칼의 날이 현실적인 상황이었다면 충분히 드골의 암살을 막기 위해서 처칠이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드골과 처칠은 앙숙중의 앙숙이었답니다.
@Justin-cw3sp
@Justin-cw3sp Жыл бұрын
독일에게 항복한 프랑스는 너무나 평화로워서 시골에 살던 프랑스인들은 전쟁중인지도 몰랐을 정도였다. 영국인들이 미국이 지원한 깡통조림을 먹고 있을때도 프랑스인들은 신선한 우유와 달걀 햄과 치즈 바게트와 고기와 포도주로 부족하지 않는 정찬을 즐겼을 정도였고, 히틀러 입장에서는 쉽게 항복해준 프랑스가 고마워서 죽을 지경이였는데, 프랑스인들에게 대한 우호적인 태도는 결사 항전한 폴란드와는 하늘과 땅차이였다.
@user-yf4ph9py4e
@user-yf4ph9py4e Жыл бұрын
이런 소리의 출처를 모르겠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 프랑스가 항복한 1년 뒤에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행되고 그 다음해 연합군이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횃불작전이 성공하자 비시 프랑스 권역은 나치가 군을 이끌고 점령, 직접지배를 시작함. 그 전부터 독소전쟁을 위한 물자와 인력징발이 있었고 직접지배 때는 동원이 더 심해짐. 이래도 평화롭게 정찬을 즐겼다고? 심지어 1차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가뜩이나 소비재가 부족하고 경제가 힘들던 프랑스였는데.. 시골의 상위 1퍼면 모를까!
@user-ts8vq1zd5r
@user-ts8vq1zd5r Жыл бұрын
분열된 정부땜시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Жыл бұрын
그래서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에게 그렇게 잔인하게 굴었대? 어디서 개구라를 치고 있으?
@Beak7861
@Beak7861 Жыл бұрын
@@user-zs7eb5uc9r2머전때 독일이 프랑스한테 한거 정도면 양반임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Жыл бұрын
@@Beak7861 멀 근거로요?
@kalbcplomy
@kalbcplomy Жыл бұрын
영 상 잘보았습니당 혹시 트로츠키 암살 도 올려주실수있나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드골! 저도 2차대전 전쟁사 매니아이고 2차대전 관련 채널도 운영 중인데 씨네모리 채널의 주 시청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드골" 이런영화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쥐스킨트의 주말이란 영화", 개인적으론 덩케르트크보다 프랑스전투의 절박감을 더 잘 묘사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그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인것 같긴 한데 드골은 최근에 나온 영화로 보이는군요! 나치독일의 프랑스 전역을 다룬 영화가 많지 않은데 드골이라는 영화에서 그 시절을 잘 묘사했네요. 꼭 찾아서 원본을 봐야겠습니다. 당시엔 드골 대령이었죠. 4기갑사단을 이끌고 유일하게 프랑스 기갑사단 중에서 구데리안과 정면승부를 벌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과는 구데리안에게 무참히 깨지는데 탱크도 탱크지만 독일군 전차병 사격술이 너무나 뛰어나서 한발 쏠때마가 프랑스군 전차 환기구로 꽂혀서 다 박살이 났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을 구데리안 시리즈에 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어서요. 잘 봤습니다.
@cinemory
@cinemory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님 채널 유익하게 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jhsong3600
@jhsong3600 Жыл бұрын
오오 그런 역사가 있었군요. 혹시 쟈칼의 날 이라는 영화를 리뷰해 주실수 있나요? 미국영화 쟈칼 말고 오리지날 쟈칼의 날.. 드골 암살을 하려는 내용..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실제적인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실제로 드골 대통령 암살 음모가 18건이나 있었는데 본인이 자존심과 자부심이 남달랐다고 하지요. 그래서 자신에게 쏘는 기관총을 직접 보면서 하는 말이 '또 시작이군! 저놈들은 총도 제대로 쏘지도 못하나!' 라고... 사실 본인이 근시라는 것을 숨기고 싶어서 공식석상에서도 연설문을 읽을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안경을 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 난 뒤 프랑스 정부에서 드 골에 대해서 가장 골치아파 한 부분이 바로 신변경호 문제였습니다. 진짜....... 자신을 보호한다고 경호원들이 밀착경호를 하면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한 번은 그런 문제 때문에 각료회의장에서 진짜 군대 이등병이나 쓰는 거친 군대말로 마구 욕설을 퍼부어댔는데 진짜..... 이등병이나 쓰는 그런 군대식 욕설에 그 자리에 있던 각료들 전원이 데꿀멍 했다고........ 그리고 암살위협도 엄청나게 받았다고........ 그나마 프랑스 경호팀이 그 당시 세계 최정예 급이라서 드골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짜로 힘들었을 겁니다. 자신을 경호하는 것 자체를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지켜야한다는 것은 진짜......... 오죽하면 그 당시의 미국 대통령이 케네디였는데 결과적으로 케네디는 길거리에서 비명횡사했지만 드 골은 은퇴 후 자신의 집에서 영원히 쉬게 되었으니까 말이지요. 말 그대로 그 당시 프랑스 경호팀이 미국 대통령 경호대보다 더 나았다는 말 아닐까요? 그런 부분은 영화 자칼의 날에 조금이나마 묘사되고 있습니다.
@myoungkim1680
@myoungkim1680 Жыл бұрын
드골은 돌+i 같으면서도 존경해야할 부분은 있는 듯. 반면 패탱은 항복문서에ㅡ서명한 희생자 이미지도 일부 매체에서는 있던데 그것까진 아닌 듯하군요.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사실 페텡도 어떻게 보자면 애국자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저 당시 페텡은 스페인에 군사고문 자격으로 있었는데 프랑스 침공 직전 페텡이 프랑스로 간다고 하니까 그 당시 스페인의 독재자인 프랑코가 "장군님, 가지 마세요. 저 자들은 자신들의 실책을 모두 장군님께 떠넘길 작정입니다. 여기에 계세요. 귀국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간곡히 만류했지만, 페탱은 "알고 있소, 장군. 하지만 이것이 내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오."라 대답하고 끝내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오욕인지 반역인지 그 당시는 정의하기는 힘들어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다시 위기의 조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파리 해방 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페텡이 민족반역자 신분으로 법정에 섰을 때 본인에 대한 비난이 공개적으로 들끓었고 그런 모습을 본 본인이 이렇게 지쳐있었음에도 페탱은 프랑스 육군 원수 정복을 입고 재판정에 서는 등 시종일관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가 재판정에 입장하기 전까지 방청객들은 "반역자 페탱을 죽여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으나, 재판장에 입장한 페탱이 청중을 향해 경례를 하자 청중들이 모두 일어서서 답례를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오죽하면 그 소식을 들은 드골은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라고 촌평했다고 하니........ 영관급 시절 드골의 직속상관이 페탱이었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해야 할지도....... 페탱은 드골을 매우 아꼈고 드골 역시 페텡을 존경해 따랐으나 결국 두 사람은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나중에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사실은 페탱은 방데 주에 있는 일드외 섬의 교도소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51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향년 95세. 시신은 일드외 섬의 공동묘지에 매장되었고 말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 페텡이나 드골이나 프랑스를 구하려고 했던 애국자라는 생각이 듭니다만은 다만 서로의 생각이 틀렸고 나중에 그 둘 중 한 사람은 승리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패배자가 되어서 지금도 역사는 승리자의 부분만 강조하고 패배자의 부분은 무시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그레서 과거 현인의 말씀 중 하나가 지금도 적용되는 진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myoungkim1680
@myoungkim1680 Жыл бұрын
@@daewookkim4795 패탱은 프랑스의 어떤 미래를 그렸는지도 궁금해지네요.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myoungkim1680 그는 미래보다는 현실을 중요시한 그런 인물입니다. 병사들이 지금 개죽음당하는 것을 막는 것만 신경썼지 미래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은 그런 인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전후 전범재판 당시 그 드골조차도 왜 그런 인물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개인적으로나마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고........
@YOPY-mu7gh
@YOPY-mu7gh Жыл бұрын
@@myoungkim1680 페텡+당시 프랑스 입장에서는 1차 대전의 어마어마한 청년 장병들의 떼죽음에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이고, 당대에서는 프랑스의 정치혼란에 염세적인 인식이 강했겠지요. 1차 대전의 주요 전장이었던 프랑스에서 죽어나간 장병은 종래의 어떤 전쟁보다 많이 죽어나가 나라가 휘청일 정도였는데 이 상황은 내가 내린 명령과 지시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고, 차라리 반공주의인 독일에게 항복(휴전)하여 정치적 혼란을 잠재우고 내실을 다지자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대전쟁(1차 대전)에서 멈춘 채 시간만 흐른 노인에게 이 선택은 프랑스의 미래를 지키려 한 최선이었겠지만, 현대의 시각에서는 나치부역자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이 됩니다. 드골처럼 끝까지 싸운다는 선택을 했다면 나치독일의 악명과 그 악명을 뒷받침하는 홀로코스트는 훨씬 가벼운 수준에 그쳤을테니까요.
@user-bf3ze7sl8l
@user-bf3ze7sl8l Жыл бұрын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패전 책임. 반역자 계열로 새우는 건 전쟁을 모르는 무지한 이들이라고 생각함.
@jyj193
@jyj193 Жыл бұрын
좋은 영화 소개,리뷰 감사합니다. 직접 봤음 하는데 파일이나 dvd 구할 수 있을까요? 팁좀 ^^;; 한국어 번역이 안된 거 같은데 말입니다.
@ConfusedKat
@ConfusedKat Жыл бұрын
풀영상으로 보고싶은데, 하는 곳이 없네요 ㅎㅎ
@user-hj1jo5pv6v
@user-hj1jo5pv6v Жыл бұрын
배틀필드 1, 아니 제1차 세계대전이 프랑스의 모든 세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군요.
@user-oj8sn3mx7g
@user-oj8sn3mx7g Жыл бұрын
배틀필드1 ㅋㅋ 명작이죠
@user-rg3wh9fq3e
@user-rg3wh9fq3e Жыл бұрын
@@user-oj8sn3mx7g 근데 후속작들이......... 5 외팔군인 군필여고생 2042 백지수...... 처참한 퀼리티
@user-oj8sn3mx7g
@user-oj8sn3mx7g Жыл бұрын
@@user-rg3wh9fq3e 적어도 5는 재미는 있었고 메인테마는 개인적으로 5테마가 좋았는데...2042는 재미도 없고 테마도 개판..ㅋㅋ
@user-rg3wh9fq3e
@user-rg3wh9fq3e Жыл бұрын
@@user-oj8sn3mx7g 배필 말고도 콜옵 뱅가드도 참..... ㄹㅇ로 제가 스토리쓰고 소재만들어도 뱅가드보단 나을거같다는 생각을 함ㅋㅋㅋㅋㅋ
@user-rg3wh9fq3e
@user-rg3wh9fq3e Жыл бұрын
@@user-oj8sn3mx7g 1은 진짜 명작이라 느낀게 다이너마이트로 사막같은 평지지역 폭파시키고 거기서 간이참호만들어서 싸운게 기억이 납니다.....
@jkt2299
@jkt2299 Жыл бұрын
구독자입니다 씨내모리에서 소개한 영화는 어디에서 다운받아 볼수있나요? 영화싸이트에선 없는 영화라 해서요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저 영화를 보면 저 당시의 드골의 심리를 진짜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나치 독일의 침략군이 파리를 초토화시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끝까지 싸워야 하나.... 아니면 항복이라는 굴욕을 감수하는 상황에서도 미래를 위해서 도망치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나은가 하는 그런 인간적인 고뇌........ 진짜........ 개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나라의 굴욕을 무시하느냐 아니면 개인의 자존심을 버리고 살기 위해서 도망쳐도 나중에 조국을 다시 되찾을 거라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지만 동시에 저 당시 적에게 투항한 정부에게서 갖은 모욕과 욕설을 듣는 것을 감수하느냐............... 진짜 선택하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당장의 굴욕을 감수하고서라도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당장에 국가의 모든 국민이 개죽음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적에게 고개를 숙이고 굴욕을 감수하는 것이냐......... 진짜 이런 부분은 지금에서도 누가 옯고 누가 틀리다고 단정을 짓는 것이 진짜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악과 선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악은 벌을 받고 선은 칭찬을 받는다는 그런 윤리의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지 않고는 말입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윤리의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았다고 하는 표현이 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정치는 흑과 백을 명확하게 나누는 것이 진짜 힘드니까 말입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샤를 드 골........ 아라스 전차전 당시 그 롬멜도 찔금하게 만들었던 인물....... 하지만 머리에 곰팡이만 끼어있는 돌대가리 프랑스 군부 때문에 결국 영국으로 탈출해서 자유 프랑스 군을 이끈 인물....... 그리고 결국 1944년에 자유 프랑스 군을 이끌고 파리를 해방시킨 인물....... 그 일로 인해서 그는 프랑스 그 자체를 손에 넣게 된 인물...... 여담으로 진짜 키가 엄청나게 컸다고 합니다. 케네디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케네디가 거의 키가 작은 것이 아닌가 착각을 할 정도로 엄청나게 키가 큽니다. 그리고 자존심과 자부심이 남달랐다고 하지요. 본인이 근시라는 것을 숨기고 싶어서 공식석상에서도 연설문을 읽을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안경을 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 난 뒤 프랑스 정부에서 드 골에 대해서 가장 골치아파 한 부분이 바로 신변경호 문제였습니다. 진짜....... 자신을 보호한다고 경호원들이 밀착경호를 하면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한 번은 그런 문제 때문에 각료회의장에서 진짜 군대 이등병이나 쓰는 거친 군대말로 마구 욕설을 퍼부어댔는데 진짜..... 이등병이나 쓰는 그런 군대식 욕설에 그 자리에 있던 각료들 전원이 데꿀멍 했다고........ 그리고 암살위협도 엄청나게 받았다고........ 그나마 프랑스 경호팀이 그 당시 세계 최정예 급이라서 드골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짜로 힘들었을 겁니다. 자신을 경호하는 것 자체를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지켜야한다는 것은 진짜......... 오죽하면 그 당시의 미국 대통령이 케네디였는데 결과적으로 케네디는 길거리에서 비명횡사했지만 드 골은 은퇴 후 자신의 집에서 영원히 쉬게 되었으니까 말이지요. 말 그대로 그 당시 프랑스 경호팀이 미국 대통령 경호대보다 더 나았다는 말 아닐까요? 그런 부분은 영화 자칼의 날에 조금이나마 묘사되고 있습니다.
@user-in4ni8lk7m
@user-in4ni8lk7m Жыл бұрын
후에 드골주의란 단어를 만든 인물... 오죽했으면 알제리에 주둔하던 프랑스 제1외인공수 부대원들이 쿠데타로 드골을 납치할려고 했을까요. 사전에 쿠데타가 발각되어 주모자는 사형당하고 제1외인공수는 해체 그래서 외인부대엔 제2 외인공수만 남아 있죠.
@user-mt6qf5ls7e
@user-mt6qf5ls7e Жыл бұрын
아라스 전차전이 아니라 스똔느 공방전이나 몽코르네 반격전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아라스는 영국군 주도로 이후 프랑스군이 공습과 보급때문에 1일 늦게 지원나가서 북쪽에서, 드골은 남쪽 몽코르네에서 치고 들어갔고, 그때 드골이 조금 더 밀어버렸다면 독일 7기갑은 토막났을거라는게 사실이었죠. 다만 변수가, 당시 드골의 주력인 B1전차의 경우 장갑과 화력은 그 마틸다 2를 부분적으로 능가했지만, 하늘에서의 수투카는 막지 못한데다, 무엇보다 연료 보급이 계속 막히면서 그 공세는 1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jhsong3600
@jhsong3600 Жыл бұрын
오오 쟈칼의 날. 명작이죠
@karlmarx4574
@karlmarx4574 Жыл бұрын
​@@user-mt6qf5ls7e 애초에 4기갑사단이 완편사단이 아니라서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user-mt6qf5ls7e 전쟁역사학에 조예가 깊으신 분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는 취미로 전쟁학, 군사학을 연구하는 아마추어라............
@user-dq6tf9ms6q
@user-dq6tf9ms6q Жыл бұрын
함께 선전포고한 프랑스가 냉큼 항복하니 영국으로서는 개짜증 났을듯 자칫 프랑스까지 덤으로 상대하게 생겼으니 영국이 멘탈 나가지 않고 혼자 버틴게 대단한듯 ㅎㅎ
@Peter-ij5wu
@Peter-ij5wu Жыл бұрын
미국이 없었다면 영국도 멘탈 나가고 무너졌겠죠. 몇백년전만 해도 서로 원수처럼 싸운 나라가 최우방이 된다는게 참... 그러고보면 다른 2차대전 영화에서 미국 남부출신군인과 북부출신군인이 몇백년전 우리 선조들은 서로 적이였겠다는 말을 웃으면서 하는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ㅎㅎ
@user-gq1jc7fr5k
@user-gq1jc7fr5k Жыл бұрын
식민지 국가들은 자유 프랑스를 지지했지만... 전후 프랑스는 다시 식민지배 유지와 식민지인 차별 정책 유지하는 통수...
@user-bb3cl3fg1h
@user-bb3cl3fg1h Жыл бұрын
근데 저것도 만약 나치가 이겼으면 드골이 이상주의 병신취급 받고 페탱은 국가의 피해를 최소화한 영웅취급 받았을거라 참
@klausfeuermann3825
@klausfeuermann3825 Жыл бұрын
처칠역은 목소리가 비슷하네요...글고...매트릭스 때부터 저 양반 불어를 듣고 싶었는데...시를 읊는 것 같군요...
@kangsj1977
@kangsj1977 Жыл бұрын
프랑스는 육군 강국이었지만 구세대 교리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에 독일 침공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죠...드골은 그나마 깨어있었던 장군이었고, 결국 자유프랑스군이 죽어라 노력했고, 제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죠..
@hcaru6499
@hcaru6499 Жыл бұрын
전차가 보병하고 같이다닌다고 전차속도가 뒤지게 느렸어서 옆구리 뚫리는데도 아무것도 못한게 큼 그상황에서 독일이 전투기 갈아넣으면서 보급차량 터치니깐 아예 못움직였지 반면 독일은 차량화로 편재짜고 돌파해서 빠른속도로 움직였지 소련은 전쟁 초부터 공군 증발하고 육군도 싸그리 증발했는데(프랑스보다 심각했음) 프랑스와 정반대 결과가 나온이유는 땅떵이가 제일크지만 바실례프스키 같은 교리를 재창조한 사람과 그걸 수용했기 때문임
@karlmarx4574
@karlmarx4574 Жыл бұрын
​@@hcaru6499 사실 독일군은 차량화 비율이 매우 낮은 군대였는데 그 차량화된 16개 사단으로 낫질한거임
@karlmarx4574
@karlmarx4574 Жыл бұрын
​@@hcaru6499 독일은 임기응변에 대처한 반면 프랑스는 딜 계획만 고집한 것도 큼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Kein Plan überlebt die erste Feindberührung." 적과의 첫 접촉 이후까지 살아남는 계획은 없다. 전 세계 참모본부 시스템을 만든 헬무트 폰 몰트게의 금언입니다. 저 당시 프랑스는 그런 부분을 몰라서 결국 된맛을 본 셈이니..... 사실 마이크 타이슨이 직설적인 표현으로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주둥이에 한 방 얻어맞기 전까지는." 으로 고쳐서 말한 것이 유명해졌다고나 할까요.....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사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면 만약 2차대전 당시 대한광복군이 저 때 같이 자유 프랑스 군이 파리를 해방시킨 식으로 한국의 서울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면...... 과연 지금의 우리나라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누구든지 확실하면서도 명확한 답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
@user-su9gq7pz1k
@user-su9gq7pz1k Жыл бұрын
요즘 우리나라도 어찌보면 비슷한 현실같습니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인간들을 사상만 같으면 맹목적 추종... 이러구도 나라가 유지되는게 신기할 뿐입니다...
@LVCIVSBRVTS
@LVCIVSBRVTS Жыл бұрын
프랑스의 지도부가 파리에 저리 급급한것도 나름의 사정인것이... 전쟁 외적인 맥락에서 파리는 당연 공화국의 상징이기도 하나 프랑스라고 하는 하나의 경제 .지역 시스템을 유지하게 만드는 유일한 축이기도 했습니다. 파리는 고래로부터 국가 통합의 상징이며, 서유럽의 끝에서 유럽 안쪽으로 끌여들여주는 지정학적 추의 역할이기도, 모든 산업 구조의 종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파리의 부르주아부터 시작한 공화국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프랑스의 중앙부는 수차례의 사건들로 더욱 공동화되고 파리는 모든 것이 되어가는 불균형적인 상황에서 정치적 역량또한 파리로 과밀하게 모이기 시작합니다. 파리가 아니고서야 정치를 할 수 없는 것이죠. 빵모자를 눌러쓴 코쟁이들이 파리는 프랑스인들의 영혼이라고 자찬하는것이 사실은 파리에 구속되어있는 프랑스의 사상적 취약함이기도 한것입니다. 프랑스라는 국체에 있어 파리는 대체할수없는 유일무이한 도시였기 때문에 이 전쟁에선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잃어야한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해버리는 것이죠.
@woilcooks
@woilcooks Жыл бұрын
마지막 멘트가 많은 생각을 남기게 하네요 둘다 애국자였지만 서로 다른결과에 베팅했을뿐...
@kunufelix
@kunufelix Жыл бұрын
두 지도자가 나름대로의 노력과 애국심을 발휘했지만.... 희생을 감수한 '의지의 승리'로 결과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히틀러의 집권을 도운 위대한 영화 '의지의 승리'가 있지.
@Jorjia425
@Jorjia425 Жыл бұрын
웃긴 얘기지만 비씨프랑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파리는 없었다. 총대를 메고 역사의 죄인이 되었지만 그는 파리를 지켰고 모든 그의 공로와 업적은 드 골이 가지게 되었다.
@정몽규_축협퇴출추진
@정몽규_축협퇴출추진 5 ай бұрын
적국에 수도를 내준게 파리를 지켰다고 할수있나?
@Hamzeeeeee7
@Hamzeeeeee7 4 ай бұрын
​@@정몽규_축협퇴출추진 적어도 암스테르담처럼 파리의 파괴는 막을 수 있었음. 독일에게 굴복당한 국가 치고도 꽤 괜찮은 삶을 살게 됐고
@정몽규_축협퇴출추진
@정몽규_축협퇴출추진 4 ай бұрын
@@Hamzeeeeee7 파리는 지켰으나 역사책에는 영토의 반이나 내준 굴욕적인 수모를 당했다고 기록되있죠. 그리고 드골이 해외에서 외교적으로 맹활약해서 다행이지, 비씨프랑스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었으면 승전국은 커녕 오히려 나치독일 동맹국으로 남아 종전후 연합국들을 상대로 불리한위치에서 외교를 맞이했을겁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지금의 유엔상임이사국 지위도 없었을테구요.
@user-ys7kr8jc6h
@user-ys7kr8jc6h 2 ай бұрын
너무 버팅기면 약올라 더파괴한다는
@user-zo6pl3vj8i
@user-zo6pl3vj8i Жыл бұрын
드골 주장대로 최후항전 했으면 소련인 대신 프랑스인이 수천만명 죽었겠죠 소련은 결국 전쟁에서 이겼지만 프랑스는 어짜피 질게 뻔하단걸 생각하면 과연 전후에도 살아남은 프랑스인들에겐 드골이 해로웠을지 페탱이 해로웠는지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결국 승자는 드골이고 페텡은 패배자니......... 역사는 이긴 자가 쓰는 법이니까 말입니다.
@user-bf3xg2yw3k
@user-bf3xg2yw3k Жыл бұрын
역사에 만약은 없음 드골이 맞음
@user-v385bad38glj
@user-v385bad38glj Жыл бұрын
프랑스 항복으로 독일이 유럽 석권하고 그 자원으로 수천만명 죽은건데요
@user-hp8hl5gb2v
@user-hp8hl5gb2v 4 ай бұрын
굳굳
@user-sv6pi3fz4h
@user-sv6pi3fz4h Жыл бұрын
이거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너무 보고싶어요 ㅠㅠ
@kittyjohn1629
@kittyjohn1629 Жыл бұрын
역시 베트남전쟁보단 2차 대전이 더재밌어요
@user-uu2si9ud3o
@user-uu2si9ud3o Жыл бұрын
페탱덕분에 에펠탑같은 프랑스의 문화유산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거 인듯
@duk8075
@duk8075 Ай бұрын
씨네모리님 드골 영화 볼려면 어디서 봐야하나여?
@user-ty8be2jc5b
@user-ty8be2jc5b Жыл бұрын
단순한 미래를 보는 시각이 좋다는 평으로는 안된다. 드골은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이다. 참략자와 동침하는 것은 불의라는것을 아는것이죠.
@san4609
@san4609 Жыл бұрын
남한산성이 생각나는 영화네요
@user-cf2yz7pu2h
@user-cf2yz7pu2h Жыл бұрын
보고 싶은데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유튜브나 네이버 영화에 없어서요.
@user-fu2in9tt8e
@user-fu2in9tt8e Жыл бұрын
사실 영, 프가 공격을 못했던건 영, 프도 전쟁 준비를 안해서 선전포고 후 동원령 내리고 무기 생산하고 재배치하고..등등의 일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user-qu6cr8ug1z
@user-qu6cr8ug1z Жыл бұрын
드골이 기회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도있지만 그당시에 할수잇는 행동이엇다고 봄 . 파리수복후 히틀러에 충성햇던 사람들을 무조건 처벌하고 많이 죽엿지만 욕은 드골이 먹고 후세는 편하게됫음
@norangalmagi1394
@norangalmagi1394 Жыл бұрын
드골에 대한 평은 좀 생각해봐야지. 연합군이랍시고 이름을 내세웠지만 초기에는 한줌도 안되는 병력에 요구하는 사항은 많았고, 독불장군 스타일이었으니.
@Kevin-ps9yf
@Kevin-ps9yf Жыл бұрын
0:59 히틀러: 겁쟁이들 ㅋㅋㅋㅋㅋㅋ
@user-qx4rb6oq8g
@user-qx4rb6oq8g Жыл бұрын
프랑스 국민들은 드골과 패탱 모두 존경함 드골의 아들의 이름도 패탱의 이름을 땄음 드골이 왜 패탱을 죽이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다른한편으로는 프랑스인을 구해준 존경심이었음
@user-zz9yn9ev2g
@user-zz9yn9ev2g Жыл бұрын
넷플은 없고 어디서 볼수 있을까요?
@Ooooookokos
@Ooooookokos 8 ай бұрын
독일전 저서 "낫질작전"이라는 서적에서도 프랑스군은 전쟁수행 의지가 전혀 없었고 프랑스군보다 열심히 싸운 게 영국원정군임. 오죽하면 영국원정군이 왜 싸우기보다 도주하는 프랑스군이 많은 상태에서 우리가 더 피를 흘려야 하는가라고 프랑스군부를 힐난하였음. 결론은 프랑스는 지금 이 영화상황에서 패탱의 판단이 옳았음. 저항????
@user-kh1rk3rw6n
@user-kh1rk3rw6n Жыл бұрын
이거 몇년도작 인가요 평점은 몇점 정도 일까요?
@shim112498
@shim112498 Жыл бұрын
근데 패탱덕에 프랑스 문화유산들이 지켜지고 땅이 피폐해지지않았다는게..... 아이러니... 패탱은 프랑스에서 아직도 뜨거운 감자라지요
@passecompose7484
@passecompose7484 Жыл бұрын
지키기위해 남은 페탱, 구하기 위해 떠난 드골
@ClearCitrn
@ClearCitrn Жыл бұрын
0:41 '분열된 정부' 아 빨리 중점 찍어서 뗐어야 하는데...
@user-vl2vt2bc7r
@user-vl2vt2bc7r Жыл бұрын
프랑스는 예나 지금이나 수도권 중심의 경제에 북부에 산업시설이 다있기에 항전은 의미 없음
@user-we5hb5ge6k
@user-we5hb5ge6k Жыл бұрын
HOI4에서 프랑스가 엘랑스가 되는 과정....
@user-rs3zf8er4c
@user-rs3zf8er4c Жыл бұрын
독일이 낫질작전으로 프랑스로 밀고들어올때 프랑스원수 가물랭은 울었다고 해요. 이미 게임 끝난거지 국가.군리더들이 공황에 빠진거죠.
@jihwanhwang387
@jihwanhwang387 Жыл бұрын
영화를 어디서 볼수 있을까요? 네이버엔 없네요.
@user-mw9fo7uf7x
@user-mw9fo7uf7x 5 ай бұрын
사람들에게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프랑스는 지난 1차세계대전에서 20대 젊은 세대가 증발 해버렸습니다. 2차세계대전에는 여전히 젊은세대가 부족한 지경이었고, 반대로 독일은 인구가 증가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전투한방에 주력부대가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 더이상 보충할 병력이 없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설령 보충을 한다고 해도, 군수공장이나 기타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을 빼서 군대로 보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보급이 박살납니다. 이리저리 해봐도 답이 안나오는 상황이었던 거죠. 1차세계대전에서 얼마나 젊은 세대를 잃어버렸던지, 프랑스는 늙은남자와 젊은여자의 연애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 프랑스 영화를 보면, 늙은남자와 젊은여자의 로맨스가 많이 나오는데, 젊은세대 증발이 이런 문화가 생기게 된 배경입니다. 뤽베송 감독의 영화 레옹에도 나오는데,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는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이상한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전쟁으로 젊은세대증발이 가져온 프랑스의 문화죠. 인구가 한번 증발하면 복원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쏘련도, 2차세계대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증발해버렸는데, 그 여파로 아직도 여초사회라고 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번 초저출산이 일어났기 때문에, 인구소멸은 절대 필할 수 없을 겁니다. 한국은 과거 사례보다 훨씬 심각하고, 더구나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도 않고 있기 떄문에, 앞으로도 희망이 없습니다. 지금 정치권에서 내놓는 정책은 금융권이 원하는 미래세대에게 빚을 지게 해서 이자받아먹게 해주는 사업이나, 부동산투기꾼이나 건설회사를 위한 집값 대출등에 정책이 쏠려 있습니다. 아무런 도움이 안되고, 부자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 소멸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user-fe4ft4rz9t
@user-fe4ft4rz9t Жыл бұрын
프랑스는 없는 살림으로 마지노선 만드느라 힘 다뺌
@user-sd8fe8ij7l
@user-sd8fe8ij7l 6 ай бұрын
프랑스의 경우는 국민보다는 군인들이 더욱 저항했음. 흔히 2차대전 프랑스하면 레지스탕스라는 상징이 있지만, 폴란드나 유고에 비하면 한줌에 불과
@user-vn3mp7bl4f
@user-vn3mp7bl4f Жыл бұрын
프랑스의 실수와 구세대적 교리와 무기+독일의 장군들 실력과 전술이 만들어낸 미친 결과
@karlmarx4574
@karlmarx4574 Жыл бұрын
무기 자체는 프랑스군이 절대 우위. 독일이 20mm 2호 쓸때 소뮤야 갈은 전차는 파괴력도 크고 장갑도 좋았음
@karlmarx4574
@karlmarx4574 Жыл бұрын
88mm가 중전차 잡는데 캐리함
@user-bx5vs4lc2p
@user-bx5vs4lc2p Жыл бұрын
당시 3호 4호 초기형이 쓰레기라서 프랑스 먹고 개량 좀한것도 떼 34보고 개량했쥬
@user-vn3mp7bl4f
@user-vn3mp7bl4f Жыл бұрын
무기 자체성능이 프랑스가 우위인건 맞았는데 그 설계상 목적이 구세대적이였음 포탑회전속도나 작전가능연료량이라든지
@user-ci2bp5de4y
@user-ci2bp5de4y Жыл бұрын
제목에서 말하는 두 지도자란 한명은 전후 프랑스의 대통령까지 됬고 현재 프랑스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원자력 항모의 이름 이기도 한 드골이고 또다른 한명은 이 영상에서도 말했듯이 1차대전 때는 프랑스의 영웅 이었지만 비시정부의 수장이 되서 우리나라의 친일파 처럼 프랑스의 민족반역자가 된 '필리프 페텡'을 말함이군요. 저 때 드골의 주장대로 프랑스엔 아직 독일군에 점령되지 않은 영토가 있었고 항복하지 않은 병력도 많았기에 당시 유럽 최대의 육군 보유국 이었던 프랑스가 항복하지 않고 계속 싸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user-ci2bp5de4y
@user-ci2bp5de4y Жыл бұрын
@mc아베 여기서도 나온거 같이 이미 전세가 독일군에 많이 기울어진 상태였으면 프랑스에 여전히 많은 병력과 무기가 남아있었어도 말하신 대로 프랑스가 전세를 역전시킬 승리를 거두기는 힘들었을지도요. 다만 프랑스가 당시 보유하고 있던 공군력은 숫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독일공군에 비해 나았으면 나았지 절대 못할게 없었기에 프랑스가 초반부터 공군력을 적극적으로 운영해 제공권을 장악하고 적군에 대한 공격에 나서 독일군을 무찔렀더라면 승기를 잡았을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게 독일군에게 승기를 빼앗기는 결과를 낳았죠.
@yoonkim3198
@yoonkim3198 Жыл бұрын
이거 영화 혹시 어디서 볼 수 있나요??
@user-qh4pm3ft8b
@user-qh4pm3ft8b Жыл бұрын
둘 다 있어서 지금의 프랑스가 된거네. 한쪽으로 치우쳤으면 여기저기 욕처먹었을텐데
@user-pb5up3lx6g
@user-pb5up3lx6g Жыл бұрын
드골 입성 이후 혼란한 상황도 영화로 나왔으면 함 페텡은 80의 나이에 온갖 굴욕을 당하면서 할 수 있는 거 하다가 사형 선고받고 섬인가 유배되서 죽었고 그에 대해 개인적으로 참배도하는 냥반, 드골은 반공산은 정말 잘했지만 입성 직후 약한 프랑스인만 골라 조지는 모습을 보이며 지금도 쉬쉬하고 있는 실정임
@user-ob3gs9ef1q
@user-ob3gs9ef1q Жыл бұрын
처칠 수상은 본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다키스트 아워)랑 비교하면 되게 회춘하신 느낌이네요ㅋㅋㅋㅋㅋㅋ
@gregryu2782
@gregryu2782 Жыл бұрын
이 영화를 볼려면 어디서 봐야하는가요 (한글자막)
@user-nt8me1si8z
@user-nt8me1si8z Жыл бұрын
결국 싸운건 레지스탕스고 드골이 그 공적까지 꿀꺽해버린 느낌임 레지스탕스들의 업적이 조금더 잘 알려지면 좋겠는데
@user-dl8jr3lt3c
@user-dl8jr3lt3c 11 ай бұрын
그냥 둘다 거품임 결국은 영국 미국없었으면 파리 땅은 커녕 노르망디도 못 밟음
@HyperInsomnia_
@HyperInsomnia_ Жыл бұрын
10:30 갑자기 나오시면...
@user-ek3pc7sc1i
@user-ek3pc7sc1i Жыл бұрын
드골 지 살자고 뛰어다니다 얻어 걸린운명
@user-gg6su2yp3u
@user-gg6su2yp3u Жыл бұрын
패탱 행동으로 힘이 남아돌아 인도차이나 알제리독립 전쟁이 발발
@user-fd8eh5sl1t
@user-fd8eh5sl1t Жыл бұрын
근데 페탱의 뜻대로 안했으면 프랑스는 소련처럼 엄청난 인명손실을 겪었을 상황임........ 다들 그당시 상황을 이해해야 함. 그래서 현대 프랑스역사에서도 실제로 페탱을 반역자로 규정하지는 않는다고함.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지금에 와서야 그런 부분이 제대로 연구가 되어서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2차대전 직후에는 말 그대로 반역자라고 매도되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길로틴에 세워서 목을 잘라버리라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나올 정도면.......
@user-et2cw8gh1n
@user-et2cw8gh1n Жыл бұрын
그래서 페텡을 프랑스 내 부의 방패, 드골을 외부의 창이라고 칭하기도 함
@beat56
@beat56 Жыл бұрын
소련마냥 끝까지 버텨서 2500만 넘게 죽던가 ㅋㅋ 소련은 그래도 그렇게 죽고도 이겼으니 망정이지 프랑스가 그렇게 희생을 하고도 이길 수 있었겠냐 ㅋㅋ 어떻게든 평화적으로 가는게 낫지 지 목숨 아니라고 현실 못 보는 우매한 놈들이 한 트럭임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위대한 프랑스. ..드골...!
@redprisoner
@redprisoner Жыл бұрын
4:51 그럼 그쪽의 애국심은 없는건가요?
@ab810041
@ab810041 Жыл бұрын
근데 이 영화 어디서 보나요? 찾아봐도 없던데....
@user-ll1ty9mv4o
@user-ll1ty9mv4o Жыл бұрын
호란때 주전파와 화친파간 논쟁에 대해 최명길에 우호적 평가를 하는 일반적인 평가와 드골과 패탱에 대한 드골에 우호적 평가가 다른것이 흥미롭군요 결과론적으로 덮어씌어서 그런가요 미래를 알수없는 당시의 현재로서는 이런 문제 쉽지 않은 영역입니다.
@housekeeper7910
@housekeeper7910 Жыл бұрын
그래서 식민지 지역 독립은 왜 그리 안해준건대요 드골?
@jedenxtr
@jedenxtr Жыл бұрын
드골은 대전이후 식민지를 프랑스와 동격으로 만들었죠(하지만 식민지 토착민은 프랑스시민 대접은 못받았죠) 결국 베트남 독립 및 알제리 독립운동이 있어납니다. 그리고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서 알제리는 프랑스땅이 아니다라고 라디오 발표이후 알제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당시 알제리에 본부를 두었던 외인부대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프랑스본토로 옮기게 되죠. 그 당시 알제리에서 한쪽눈을 잃은 르 펜이 국민연합을 형성하고 아랍인 배척에 목소리를 높인 이유죠.
@user-nr3hl6iy4n
@user-nr3hl6iy4n Жыл бұрын
1차대전때 프랑스청년 3백만4백만죽었는데 2차대전 폐탱이 프랑스20대청년들 목숨 최소 3백만은 살린듯. 독일은 최소 청년남성4백만 죽음.
@m9966321
@m9966321 Жыл бұрын
아직도 드골공항의 그 화려함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페텡도 영웅이였지만 한표 차이로 그는 조국의 반역자로 사형을 당하게 되죠. 아직도 페텡의 죽음에 프랑스인들의 연민과 의견이 분분하죠.
@user-xg5mk8wo4p
@user-xg5mk8wo4p Жыл бұрын
이완용도 일본의 힘을 알기전까지는 누구보다 애국자였습니다
@sungkchun
@sungkchun 2 ай бұрын
Two losers, until USA rescued their lost positions
@layneryu
@layneryu Жыл бұрын
근데 한편으로는 이미 털린마당에 더큰 손해를 보기전에 항복한다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독일군의 날이 바짝 서있을때 아닌가요? 가망이 없는 전투라고 보는게 맞겠죠
@dorianfa4209
@dorianfa4209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임진왜란때 수도인 한양 털리고도 항복 안했는데, 님의 논리면 항복해야지.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원균이 조선수군 말아먹고 다 털렸는데도 왜 항복 안했을까 ? 님 말처럼 가망도 없어 보였는데. ㅋㅋ
@user-dj5bb9of5y
@user-dj5bb9of5y Ай бұрын
임진왜란은 명나라도 지원하고 백성들 사기도 있었으고 하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엇음 하지만 프랑스침공은 이미 국민들도 사기를 잃은판이고 가믈랭이 장비를 강에다가 다버리고왓고 영국애들도 장비 프랑스에 다놓고 왔음 싸울려면 무기가있어야하는대 재정비할시간이 길었음 그래서 나온게 스텐기관단총이고 임진왜란 지원이라도 있지만 프랑스는 이미 버릴거 다버리고 독일군에 밣혀죽어 할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엇음 본국에선 패탱은 프랑스재건할 인력들지키고 드골은 나가서 영국 미국이랑 협력하고 열심히 외교하면서 승전국올리고 패탱이과 드골이라는 인물이 있기에 지금에 프랑스가 있었다고봄 레지스탕스 말하는대 레지스탕스는 공산주의 계열들이 많앗는대 독일에 소련침공이후로 전면적으로 활동함 그냥 프랑스를 남아서 지킬사람과 나와서 프랑스를 살릴사람이 정해질수밖에없엇던거임
@fdaddy6617
@fdaddy6617 Жыл бұрын
유럽판 남한산성!!!
@LVCIVSBRVTS
@LVCIVSBRVTS Жыл бұрын
2차대전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이가 39년 한 독재자의 서슬퍼런 결단을 주목하겠지만 이 영화는 39년 두 애국자 시민의 고민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해주네요. 민주정부가 수도를 버리고 파리는 함락되고 3공은 무너졌지만 패탱과 드골 모두 애국자였다는 사실은 공화국에겐 다른 강점이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독재자 단 한사람과 과두 세력 한 그룹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국가의 운명과는 달리 공화국은 타협할 수 없는 두 평행선 위에서 누군가는 꿋꿋히 의지를 다잡을 수 있다는 것, 운명을 모두가 공유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죠.
@sfry7884
@sfry7884 Жыл бұрын
6주 엘랑의 전설
@sangheepark9350
@sangheepark9350 Жыл бұрын
2차대전때 정치인들의 저런삽질로 인하여 프랑스는 기존 의원내각제를 폐지하고 의원내각제+대통령제를 합친 전세계에서 특이한 제도를 유지중인데..... 총리는 내정에 치중하고 국방과 외교는 대통령에게 절대적권한을 주고 비상시에 대통령이 판단및 모든걸 할수 있는 체계로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user-wv5xh9mw4n
@user-wv5xh9mw4n Жыл бұрын
프랑스가 폴란드 만큼의 항전만 보여주었다면 단순 독프 전쟁으로 끝났을 것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넷플릭스 영화인 뮌헨 전쟁의 서막을 보시면 저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국민들 전원이 다 전쟁 반대! 평화 우선! 이라는 그런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다고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여론이 모든 것인데 국민들 스스로가 전쟁이 싫다고 전쟁을 주장하는 정치가는 투표로 끝장내자 하는 상황인데 어느 정치가도 전쟁을 대비하자고 하기는 좀...... 그 윈스터 처칠도 전쟁 전에는 전쟁이나 주장하는 술주정뱅이 정치꾼이라는 욕설을 매일같이 듣고 오죽하면 전쟁광을 죽이겠다고 하는 그런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몇번이나 죽을 뻔 했다고 하니.............
@YOPY-mu7gh
@YOPY-mu7gh Жыл бұрын
@@daewookkim4795 1차 대전의 영향 하에서 영프의 분위기를 살펴보는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1차 대전으로 영프 모두 한 세대가 전멸(군에서 전멸은 1/3이 통제 불가능이면 전멸로 칩니다)했습니다. 군의 기준보다 더 크게요. 전간기와 2차 대전 후 영국의 몰락을 1차 대전 참호와 노맨즈 존에서 미래 주요 세대(옥스포드 등 고급인력)가 죽어나갔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엘랑 6주 전설은 우스갯거리지만, 당대인의 시각에서는 페텡의 선택은 고려할만한 옵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1차 대전을 겪고도 전쟁의지를 꺾지 않은 처칠이 대단해보이기도 하고, 사람 맞나(미스터 갈리폴리)싶기도 합니다. 만약 프랑스가 굴복하지 않고 항전했다면 원댓 님 말씀처럼 독프전쟁...은 아니고 독프폴(체) 전쟁으로 마무리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user-bx5vs4lc2p
@user-bx5vs4lc2p Жыл бұрын
@@YOPY-mu7gh 이것도 무리가있는게 친추축 중립국 스페인. 이탈리아ㅡ알프스. 북프리카 독일 사실상 4면전선이라서 본토 항전을 했다고해도 밀릴가능성이 큽니다. 스페인빼도 3면에 당시 연합군의 수장인 영국이 스탠 찍어냈던거 생각하면 군수사정도 열악했고 프랑스는 b1같은 좋은 전차는 있었다만 주요 공업지들이 파리와 인접한 지역에 있어서 보르도지역이나 북서부 돌출된 반도로 빼면서 결사항전한다고 한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도 사수는 힘들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차라리 자유프랑스군을 살리고 내부 파르티잔 첩보를 이용할수있던게 프랑스에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되네요
@user-jp2bb1pe3w
@user-jp2bb1pe3w Жыл бұрын
해방후 프랑스는 재판 없이 부역자 10만여명을 학살하고 10여만명을 재판대에 새웠다는 사실
@pedrogim6952
@pedrogim6952 Жыл бұрын
독일이 지난 20년전 패배를 그대로 콩피에뉴 열차에서 프랑스의 항복 조인을 받아낸 역사입니다.
@jiyoon1070
@jiyoon1070 Жыл бұрын
저 드골아저씨 혹시 메트릭스에서 흰색 양복입고 나온 아저씨 아닌가?? 그 예쁜 누님하고?
@goldeneagle3218
@goldeneagle3218 Жыл бұрын
프랑스군 6만이 전사 했다고? 38만이 단 6주만에 사라졌습니다. 매일 약 1천명씩 전사 했습니다. 의지 와 상관없는 사실상 완패 였습니다. 계속해서 전투 했으면 더 욱 참담 했을 겁니다. 당시 상황으론 패탕이 옳았습니다.
@truth1472
@truth1472 Жыл бұрын
프랑스의 군사력이 나찌보다 강했는데도 패배를 한 건 페탱과 장군들의 무능입니다.
@user-dv5gi7hv5f
@user-dv5gi7hv5f Жыл бұрын
@@truth1472 그것도 맞는 말씀인데 그렇게 졸전이 되면 책임지고 항복하는 건 우리자 병신이라 전쟁진거다라는 것 같은 엄청난 불명예이지만 그걸 각오하고 실행한다는 것도 엄청난 용기죠. 드골은 그냥 억지부린 것이지만 그 억지를 종전까지 끌고가며 성공시켰고 페탱은 우리 국민이 죽지 않으면 만사오케이였던 거죠. 실제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활동은 동유럽에 비해 하지 않았다고 평해도 될 정도로 미미했고 헐리웃 영화에 의해 미화되어 엄청나게 활약한 줄 알았던 시기가 있어서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user-yp6oz8zs2l
@user-yp6oz8zs2l Жыл бұрын
틀렸다 맞았다로 정의내릴수 있는 주제가 아닌데 뭔 깡으로 옳았다고ㅋㅋㅋ
@user-dq9gn7gm5p
@user-dq9gn7gm5p Жыл бұрын
네덜란드, 벨기에, 노르웨이도 참패했지만 영국으로 지도부가 이전한 뒤 끝까지 싸웠습니다. 프랑스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근데 1차 대전 이후 프랑스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이 맛이 가서 저 때 오판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드골이 옳았다고 봐요. 물론 사후통찰력(hind sight bias) 이겠지만요.
@yaha7236
@yaha7236 Жыл бұрын
이래서 좌파 PC주의 정치인을 경계 배척해야함
@user-dq6tf9ms6q
@user-dq6tf9ms6q Жыл бұрын
전승국둘 자리에 프랑스가 앉아있자 항복하러 온 독일 장군이 프랑스가 왜 저기 있냐고 프랑스는 저기 앉아 있을 자격이 없다고 외쳤다는 일화가 일본이 항복하는 저리에 조선이 전승국으로 있는 거나 비슷한듯 ㅎㅎ
@true5826
@true5826 Жыл бұрын
일본과 조선의 관계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관계가 좀더 맞지 않을까요? 프랑스는 독일과 전쟁을 하다가 패했지만 조선과 오스트리아는 전쟁도 없이 나라를 넘겼으니까요? 2차대전후 조선은 남북으로 오스트리아는 동서로 분단됩니다. 분단10년만에 오스트라아는 통일되어 중립국이 됐지만요. 2차대전후 조선과 오스트리아는 승전국도 패전국도 아닌 특수지위국이 되었습니다
@skyyu8777
@skyyu8777 Жыл бұрын
히틀러도 적어도 연합군이 독일본토로 들어오기전에 항복했으면 그 수많은 독일 사람들이 무의미 하게 죽지는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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