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채 송편은 저희 할매가 살아계실때 종종 해서 먹었는데요 무 특유의 삶았을 때 나오는 시원한 국물이 떡 안에 들어 있어서 생각보다 괜찮았었습니다
@dmddoCryingtlqkf Жыл бұрын
아이구 조부모님의 생전 음식은 기억에 남기 마련이죠.... 힘대십쇼
@freshever571911 ай бұрын
한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겠네요.
@voicepoo9 ай бұрын
⁶66⁶⁶6@@dmddoCryingtlqkf
@DellonKim6 ай бұрын
탄수화물이랑 매콤한 거 묶으면 맛없기 힘들죠 진짜...
@김재혁-w2o Жыл бұрын
역시 이런 모음은 빠퀴님이 갑퀴!!
@한시령-x9b Жыл бұрын
무생채 송편은 오독오독한 식감이 좋아요 저희 집은 옛날에 반죽은 감자 전분 넣어서 쫀득하게 하고 소는 콩이랑 무생채랑 같이 해서 단맵단맵으로 즐겼습니다
@데스나이트-n8q8 ай бұрын
누가 물어봤나여? 삼식이 없으시네요... 서더린가..,
@서동일-x3u6 ай бұрын
@@데스나이트-n8q누가물어봣나? 바보인가? 댓글은 왜달어?
@doopal012 Жыл бұрын
난 솔잎으로 찌는 이유가 걍 향때문인줄 알고있었음
@sung-ze7go Жыл бұрын
ㅈㄴ 멍청하네 ㅋㅋㅋ
@cookiboi1234 Жыл бұрын
ㅇㅈ 저도
@손성민-l1v Жыл бұрын
저는 무슨 약효있는줄 알고있었는데ㅋㅋㅋ
@patrickchoi9120 Жыл бұрын
그 이유도 있긴함 ㅋㅋ 뜻은 사람들이 부여한거고
@candykrith1232 Жыл бұрын
소독작용합니다
@colliethedachs Жыл бұрын
물림상 설명이 좀 잘못되어 있는데요. 왕실도 그렇고 반가도 그렇지만 웃전이 식사를 하고 물린 상을 아랫사람. 쉽게 말하면 궁인이나 그 집안의 남녀 종이 먹는건 맞지만 밥까지는 아닙니다. 정확한 물림상은 웃전이 남긴 상에 오른 모든 음식에 밥과 국을 좀 더 해서 아랫사람이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실도, 반가도 똑같이 기본 식사상만 해도 밥, 국, 찬의 양과 가짓수가 꽤 많습니다. 여기에 왕실과 반가에서는 아이라 해도 밥과 국, 찬을 깔끔하게 먹도록 가르치고요. 그들이 신분이 나보다 아래이긴 해도 그들 역시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왕실의 궁인이나 반가에서 부리는 종들이 양인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기도 했습니다.
@8xsoldier8 ай бұрын
그때도 어지간한 자영업보단 대기업 직원이 나았네요. 자유는 좀 없나?
@colliethedachs8 ай бұрын
@@8xsoldier 그 자유가 현대 기준으로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만. 일반적인 주인을 모시는 노비라면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일을 일찍 마치고 쉬어도 되고, 남녀간에 알아서 연애해도 되고. 그랬던 것으로 압니다. 사실 저 시대에 자유라고 하면 오늘 밥 반찬 뭐 먹지? 라던가 오늘 논에 김매기 싫은데 내일 할까? 이런거라서요. 아니면 옆집 순이가 좋은데 순이한테 내가 너 좋아한다고 말해볼까? 이런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대 이전 사회사의 자료를 보다보면, 일반 백성이 자발적으로 누군가의 종이 되길 원하고 실제 누군가의 종이 되어 살아가던 시대도 있거든요. 그 이유가 세금납부, 군역, 신역. 이것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서 저 모든 의무가 없는 남의 집 종살이를 택했던 시대도 있습니다.
@polyonomata7 ай бұрын
그래서 종노릇을 하더라도 대감댁 종이 되라는 말이 있지요. 모시는 상전의 권력에 따라서 그 아랫사람들도 떵떵거리면서 살았거든요. 가령 뇌물을 바치든 청탁을 하든 대감댁에 찾아가면 제일 먼저 만나야 하는 사람은 그 집 문지기였고, 문지기에게도 뇌물을 좀 나눠주지 않으면 아예 집주인을 만나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겼으니... 물림상 문화는 시골동네같은데는 1990년대까지도 존재했습니다. 먼저 집안 제일 웃어른이 식사를 하면 그 남은 반찬으로 남자들이 먹고, 거기서 남은 반찬으로 여자들이 먹고
@polyonomata7 ай бұрын
그리고 이 물림상 문화때문에 반찬 뒤적이는걸 금기시하는 예의도 존재하는 것이지요. 암만 아랫사람이라지만 양반체통에 함부로 이놈 저놈하고 하대하는 것도 당대에는 다른 양반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보는 눈도 있으니 자제하는 분위기였답니다.
@4차원제니 Жыл бұрын
진짜 빠퀴님의 영상들은 모두 꿀잼입니다~!!취향저격~~!!ㅋㅋㅋㅋ
@이름성-l7i Жыл бұрын
평양냉면은 슴슴한 맛으로 먹어야 한다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평양으로 공연하러 간 가수들이 평양에서 냉면 먹었는데 북한 사람들이 냉면에 양념을 팍팍 넣어 먹는 모습을 보고 평양냉면 슴슴하게 먹어야 하는거 아니에요? 물어보니 그렇게 먹음 맛없어서 어떻게 먹냐고 했다고...
@patrickchoi9120 Жыл бұрын
힙스터들의 폐해 ㅋㅋㅋㅋㅋ 그저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재료를 줄이기 시작한 것인데...
@vazirakkalguksu Жыл бұрын
그것도 김부자 돼지새키들이 바꾼 거지 원조는 슴슴한 맛이 맞음
@8xsoldier8 ай бұрын
오 마이 갓
@8xsoldier8 ай бұрын
양념비용을 줄이기 위해 누군가 퍼트린것 아닌지. 원래 슴슴한거라고
@Forkkifoki8 ай бұрын
라기엔 고려족들 국시도 매콤새콤하던디@@8xsoldier
@yj810104 Жыл бұрын
노비 전용 음식이 맛잇어보이네요.. ㅠㅠ 베고픈가봅니다. 이거보고 수제비 시켰습니다.
@jaa2948euf3 ай бұрын
혹시 조상이..
@김규식-fx Жыл бұрын
저희 외할머니 44년생이신데 요즘요리도 잘하고 옛날요리도 잘하셔요 얼마전 추석에 감자전분으로 송편해주셨는데 맛있었어요 그리고 피자 치킨 중식 초밥 다 좋아 합시니다. 그리고 햄버거를 제일 좋아하시는데 1달에 한번은 꼭드세욬ㅋ
@jiyongkim4513 Жыл бұрын
할머니 분이.. 해방전에 태어나셨네요. 와.. 존경스럽네요.
@AmurTigro-9 ай бұрын
할머니 대단하시다
@fuuspj-zn5rg3uo9t Жыл бұрын
노비 인구의 팽창은 고려시대 입니다 노비의 세습이 그 이유였죠 노비는 시대에 따라 전란과 평화가 계속되며 그 비율이 천차만별이였으며 조정에서는 세금도 안내는 노비를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노비비율 30~40% 얘기는 양란때 피해가 심했던 지역의 추정 비율이지 조선의 평균 노비비율은 그보다는 훨씬 적었습니다 돈많은 양반은 세금을 안내고 그 양반이 소유한 노비조차 세금을 안내는데 노비가 상당수를 차지한 나라가 과연 500년씩이나 유지되었을까요?
@sunggus4922 Жыл бұрын
고려시대때는 노비개념이 아닌 일꾼이지만 조센징 시대때는 노예 수준임
@신준용-h1k Жыл бұрын
그 노비 비율도 대체로 수도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는 노비 비율은 더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보입니다.
@SeaKing_Bonobono Жыл бұрын
정확히는 세종의 노비종모법 시행 이후 노비 비율이 감소하다가 세조~성종대 시행한 노비 종부법과 일천즉천의 시행으로 노비 비율이 급증하였고 양란이후로는 경제적으로 몰락한 양인계층이 노비로 들어가 생계를 잇는 경향이 많아져서 40%까지 치솟았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노비계층에서도 자산을 축적하여 공명첩의 일종인 면천첩이나 관직을 사는 고신첩등을 사서 면천되는 비율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신분제가 해체되는 경향을 띄고있으며 서양의 노예와 조선의 노비가 같은 유형의 종속신분이 아님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김효경-o1b Жыл бұрын
@@sunggus4922 어디 뉴라이트 틀닥 유튭 보시지말고 제대로 된 역사 채널이나 역사책 읽을시길 권합니다
@물멍-d8b Жыл бұрын
@@SeaKing_Bonobono 맞습니다. 또 한가지 원인을 더 보자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인구가 적을 때는 노동력 하나 하나가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아예 에속시켜서 노비 또는 농노로 만들고 도망가더라도 뒤쫓아서 어떻게든 땅에 결박시키려고 했다면, 인구가 증가하고 상공업이 발달하게 되면 노비를 땅에 강제로 결박시키고 추노로 노비를 잡아오기 보다는 그냥 임금 주고 고용하는 게 훨씬 비용도 절감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조선 후기로 갈수록 경제의 발달과 인구의 증가로 노비의 유용성이 사라지므로 노비 계층이 급격히 해체되어갔죠.
@4차원제니 Жыл бұрын
호박모양 송편 맛있겠네요!!ㅠㅠ 모양만 호박모양인 게 아니라 진짜로 호박이 들어갔다고 하니깐 더 먹어보고 싶어집니닼ㅋㅋㅋ 인터넷 판매하는 곳 찾아서 구매해봐야겠다~!!^^
@gang-kkul Жыл бұрын
최애 채널 빠퀴 ㅋㅋ 항상 감사합니다
@aaa-p6s1n Жыл бұрын
이채널 진짜 좋음❤
@광영김-d7w6 ай бұрын
재미있어요 😊
@박희선-j4s Жыл бұрын
옛날엔 짜장면만 유일하게 배달하는 음식이였죠. 지금 같이 다양한 음식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배달이라고 해봐야. 다방과 짜장면이 전부였던 시절입니다. 그나마 치킨집이 있었지만 배달이 아니라 포장해서 먹는게 전부였습니다. 먹거리가 고구마 감자 옥수수 삶아 먹었던 시절하고 지금하고 배달을 비교하기엔 세대가 너무 차이가 납니다.
@bangjohn9307 Жыл бұрын
설렁탕이 배달원조 아녔음?
@틱기간 Жыл бұрын
일제시대, 대한제국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설렁탕이 최초입니다. 배달은.
@유줘11 ай бұрын
@@bangjohn9307설렁탕.냉면 배달은 가까운 주변 상인들이나 돈많은 사람들 전유물이였습니다 저 어렸을때만해도 배달은 중국집.후라이드정도였고 가끔 시장에서 장사하는 친구집가면 한식.국수같은 음식들은 주변 가게에서 전화나 직접가서 시키면 아줌마가 머리에 음식 올려서 배달... 아님 소규모 공장 주변 식당에서 배달하는정도 머리에 큰 쟁반 올려서 배달하는..TV에서 보셨을지도 일반가정에서 한식.냉면 배달 본적이 거의없었습니다...
@김병진-p6p Жыл бұрын
잘볼께요^^
@excellent9020 Жыл бұрын
ㄹㅇ 무생채송편은 먹어보고싶다
@짱윤Yun6mm9l Жыл бұрын
쫄깃쫄깃한 냉면의 집. 냉면의 역사도 생각할 것 같네요..
@신중용 Жыл бұрын
아 여름 끝나서 냉면 못 먹어 아쉽....
@eejion Жыл бұрын
3:28 공수空輸 : 물건이나 사람 따위를 공중 교통수단으로 옮김. 이라고 하더라고요ㅎ 그래서 배송 등이 나을 거 같슴다ㅎ
@shyoky1 Жыл бұрын
냉면은~~ 틀도 있어야되고~ 사람 몸무게로 눌러야 국수가 나올만큼 만들기가 힘들었는데 어떻게 처음에 만들 생각을 했을까~~~참 먹는데는 진심이야...
@patrickchoi9120 Жыл бұрын
남는 곡식을 어떻게 보존할까 생각해서 나온것들중 하나죠 ㅎㅎ
@이도연-m3u Жыл бұрын
강원도 올챙이 국수가 원조겠죠? 옥수수를 강원도서는 강냉이라 하는데 그 가루를 묽게 범벅으로 만들어 송곳으로 구멍을 숭숭뚤은 바가지에 퍼담아 끓는물에 떨어뜨리는 거죠. 모습이 올챙이를 닮았다 해서.. 올챙이 국수라 하는데... 묽은반죽 수제비 보다 더 묽었던거죠. 줄줄 흐르도록.... 쫄깃한 맛이 없죠. 쫄깃한 면발을 추구하다 보니.. 홍두깨 방망이로 밀어 얇게 편후 둘둘말아서 송송 썰으면 칼국수. 틀에넣고 강하게 꽈악 눌러빼면 냉면 그러다가 로울러 압착기로 빼낸면이 기계국수고... 접어 늘이고 두두려 빼면 수타면이죠. 수타 짜장...ㅎㅎ
@trezle4547 Жыл бұрын
4:58 님 덕분에 잘못 알고 있었던 거 고쳐 알아 갑니다 "도시락은 일본어 벤또를 고쳐 부르기 위해 해방 이후 생긴 말이다" 이렇게 알았는데 찾아보니 도시락이란 단어 자체를 옛날부터 썼었네요. 일본어 어휘가 많이 들어오면서 벤또라는 말이 강세를 가진 거였고, 그러다가 옛날의 도슭, 근대 시기의 도시락이라는 단어를 찾아내 다시 복원해서 한국어로 부르게 된 거였군요 나는 이 영상 보기 전까지 1. 옛날에는 새참이라고 부르다, 2. 일제시대 때 벤또가 유행하다가, 3. 해방 이후 벤또를 대체할 도시락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 이렇게 잘못 알고 있었음
@러북슬8 ай бұрын
무생체 송편 진짜 어렸을 때 먹어봤는데 메밀전병 느낌이랑 약간 비슷한데 피가 떡이다보니 되게 쫄깃합니다 강원도 음식 자체가 좀 자극적이라 맵고 짭짤했던 걸로 기억해요ㅋㅋㅋ
@비에고-e8r Жыл бұрын
모싯잎 송편도 있어요
@시간의남자 Жыл бұрын
잘 못 된게 노비가 제사를 못 지내는게 아니라 노비의 주인이 양반이 제사를 대신 지내 주는 경우임 대신 노비 모두를 불러 함께 제사를 지냄 특히 군역 같은 경우 노비의 주인이 되는 양반이 노비가 군역을 다녀 올 동안 노비의 가족을 돌 봐주는게 원칙 엿슴 심지어 생일이나 제사를 양반이 음식이나 돈을 주는게 잇엇슴.. 노비에 날에만 주는게 아님
@truckfire168 Жыл бұрын
근데 cctv있고 통화녹취해도 법 어기는 사람이 태반인데 조선시대에 그걸 지켰을까?
@서동일-x3u Жыл бұрын
@@truckfire168 안그런 양반들도 소수 잇겟지만 체면을 중요시하는 양반들이 대부분 일거임 노비가죽자 죽은노비 제사상 챙기는 양반들도 있엇고 베풀면 나중에 도움받을때가 옴 지역에 양반 집안의 영향력이 커지는거임 우리 집안도 평소에 주변지역에 잘대해줘서 6.25때 북한군 놈들이 지주 집안이라고 애기들까지 몽땅 처형하려고 저녁먹으면서 정햇는데 북한군 지휘소에서 밥해주던 아줌마가 남편한테 말하고 남편이 그동안 신세진거 갑는다고 겨울밤에 산타고 할머니집까지 와서 알려줘서 야반도주해 살아남음 이분들도 다른 동네지만 할아버님께 신세졋던 분이라함 춘궁기때나 집에 쌀떨어진 지역 사람들이 하루 한두번 할아버님 집에와서 한끼씩 먹고갓다함
@서동일-x3u Жыл бұрын
아주 어릴때 기억나는게 봄에 농사 시작할때 한달정도? 점심시간에 할머니가 지휘해서 밥상을 차리는데 3번을 차림 1차 증조 할아버님과 할아버님세대, 2차 아버님세대, 3차 아줌마들+애들 지역 사람들이 한30명 먹는걸로 보였음 인원은 그때그때 변하고 그때 집에 쌀떨어진 집안들은 업는데 옛날에하던 습관으로 일도 도와주고 밥먹고 갓다함 나 어릴때 평소에는 그냥 할머니가 습관적으로 지나가던 사람 불러서 밥먹이는거라 4~5명정도로 밥손님이 줄엇다함
@kaych3087 ай бұрын
@@truckfire168 그럼 cctv 없고 통화녹취 없었던 시절은 사람들이 법 어기고 민심 없고 살기 팍팍했나? 오히려 없던 시절이 민심 더 좋지 않았음? cctv 없어도 서로 감시하는 북한의 공산주의적인데가 더 민심도 없고 또 오히려 한 장소에 오래 머물러 사니까 소문 나면 손해임 그런 사례는 기록도 남아버리고, 실제로 어느 마을에 어린 '여자' '노비'가 죽은 사건이 왕한테까지 소식이 전해져서 의금부가 출동해서 사건을 마무리한 기록도 남아있음
@김도현-o9t4s3 ай бұрын
감자송편싯고 무생채 송편 ㄱ맛있습니다 꼭 먹어보세요(강원도 토박이)
@정형복-o5w10 ай бұрын
노비는 색 다른 음식..뭐를 먹고 살았을까? 했는데 보통 보다 큰 송편이었네요. 그 들도 동족이고 사람이것만 그 좋은 음식들은 모두 양반들이 먹고 노비는 별 다른것이 없네요. 뒤 이어 나오는 수제비... 이렇게 귀한것을 노비들에게 주었을까요??? 어째. 제목에 코 꿰어 낚여온. 피라미 같은 생각이 드네요.ㅎㅎ
@정윤서-c9t Жыл бұрын
옹 굿
@dew7091 Жыл бұрын
재밋당
@jilco027 Жыл бұрын
7:35 입짧은 양반이였음 노비가 잔치했을듯
@프링글스-e2v Жыл бұрын
옛날엔 손님상을 받았을 때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면 예의없는 걸로 봤다는 게 저 물림상 때문인가…? 그냥 물림상을 받기 위해 양반들 밥상에 워낙 많이 담아주니까 남기는 게 당연한 일이었던 건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 자체가 식사예절로 왜곡된…?
@이화세계수 Жыл бұрын
ㅇㅇ 왠만하면 그럼 이슬람도 그렇잖어 히잡 여자 사막 허허벌판에 나가면 성폭력 당할까봐 가리고 다녀라 그럼 좀 덜하겠지 라는건데 현대에 야만인이나 도적 없잖아 근데 습성은 남아서 여성인권에 타격이 가는것 처럼 비슷한
@까마귀용 Жыл бұрын
크~ 멋진분들!
@jamesqing872910 ай бұрын
남이 먹다가 남긴거 먹는게 멋있다고?
@오감자-p2d11 ай бұрын
어느 영상에서 봤는데 송편이라는 떡은 백제의 멸망과 관련된 떡이라는 기원도 있습니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 시절 괴이한 일이 도성이든 궁안이든 끊이지가 않았는데 어느 날 궁안에서 어느 귀신이 백제는 망한다라고 외치고 사라지자 그 곳을 파보았더니 돌로 된 거북이가 나왔고 그 등껍질에는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라는 글귀가 새겨져있었답니다. 이후 우여곡절끝에 백제는 끝내 망했고 신라는 그 글귀에 새켜진 초승달에 관련해 비슷한 모양의 떡을 빚었다는 전승이죠. 추석이 아니라 연중 어느때에도 송편을 만들어서 먹으라고 나눠준거보면 어느 명절에 국한되지 않고 먹었던 모양입니다.
@alicerodney7 ай бұрын
평양냉면 슴슴한 맛은 잘못알려진 정보입니다. 양념다해서 먹어요.
@뾰롱이-j7g11 ай бұрын
솔잎 살균효과?? 로 알고있는데~고기 삶을때 소주 넣는거처럼
@아름다운중년TV..드라 Жыл бұрын
해주냉면도 있나?
@wonhong828711 ай бұрын
한국인이지만, 작은 영토와 많지 않은 인구를 가진 나라이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근본 있는 문화를 가진 나라의 국민이란게 자랑스러워요. 눈을 감고 오래전의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떠올리면, 나름 신기하고요, 맥락속에서 더욱 그 시절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muchsoso84686 ай бұрын
영토는 대부분의 유럽 강국들도 20-40만 제곱킬로미터라 한반도(22만 제곱킬로미터)가 특별히 작은 건 아닙니다. 일본도 인구가 희박한 북해도를 빼면 28만 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랑 별 차이 없구요, 영국의 브리튼 섬도 한반도 정도의 면적입니다. 중국이 우라지게 크고, 유목민족들의 국가가 엄청 커서 그에 비해 작아 보일 뿐이지 특별히 작은 건 아니에요. 그리고 인구는 남북한 합쳐 7700만으로 이게 작은 수준은 아니죠. 인구문제는 고령화와 저출산이 문제지 인구 수 자체가 작은 편은 아닙니다. 이보다 인구 많은 나라는 아시아에선 인도, 중국,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일본, 월남, 필리핀 정도고, 미주대륙에선 미국, 브라질, 멕시코 뿐이고, 유럽에선 러시아, 독일밖에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콩고 정도밖에 없으며 중동에선 이집트, 이란, 튀르키예가 있습니다. 즉 남북한 합산 인구면 세계 20위권 안에 드는 수준입니다.
@드키무티 Жыл бұрын
떡소로 찐감자를 넣으면 맛있을 것 같은데 떡에 넣어서 찐득하기만 하더군요.
@結城十代-n5s Жыл бұрын
4:07 평양냉면은 원래 슴슴하게 먹는 음식이 아닙니다.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참석팀이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는 영상이 올라왔습니다만, 옥류관 직원이 "그냥 먹으면 맛이 없다"면서 면에 식초와 양념장, 겨자를 듬뿍 넣는 장면이 드러났죠. 평양냉면은 심심하게 먹는 것이란 그들만의 공식이 완전히 깨져버렸단 겁니다 애초에 실제 평양냉면은 고기육수 맛이 진하면서도 깔끔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부리는 부심처럼 국물맛이 심심한 게 오히려 이상한 거
@user-el5jc4vf3o Жыл бұрын
솔잎을 안 깔면 떡이 들러붙어서 못 만듦 솔잎이 가장 흔하고 잘 떨어지니 썼을 거로 보임 다른 떡도 떡고물이나 기름을 바르는데 떡의 맛보다 떡이 들러붙지 않게 하는게 더 중요 맛은 그 다음
ㅋㅋ 진짜 맛없어요.. 깨설탕 없음 안먹었던 어린시절... 간혹 낚여서 콩송편 먹기도 하고 ㅋㅋ
@한진영-y4f Жыл бұрын
자료들이 다 좋은데 노비 부분이 아쉽네요
@evileye6664 Жыл бұрын
저도 얼마전에 에스토니아 여행가서 처음 사슴 고기 스테이크 먹어봤는데 인생 1/4 손해 본 맛이었습니다 ㅠㅠ
@이성현-f9m Жыл бұрын
지금도 전북진안에가면 애저요리가 있습니다. 애저가 그 애저가 아니라 이미 태어난 새끼돼지를 잡은겁니다 오해없으시길
@sjjangw7 ай бұрын
솔잎은 향균 작용과 향이 좋아 넣는것이지 별다른 뜻은 없어요
@jaeholee38165 ай бұрын
요즘도 노비일이 있죠..."근로자의날"
@얌얌쩝쩝-z6z6 ай бұрын
저때 고추장, 고춧가루가 없다고 보셔야 합니다아...
@권학수-w2n11 ай бұрын
송편에 솔잎을 넣고 찌는거는 쉽게 쉬지 말라고 넣는거지 누가 귀찮게 소나무 정기 받고 싶어서 그렇게 해
@all-in4673 Жыл бұрын
선조들이 즐겨드시던 음식이최고!
@말하는늑대 Жыл бұрын
경상도인데. 어른 손바닥 만한 송편 먹었음. 팥소를 넣엇는데, , 조선시대에 하삼도 경상도 사람들을 북쪽으로 이주시켰다는 정책이 있어서 그런듯.
@드키무티 Жыл бұрын
세종 때 4군6진 개척하면서 사민 정책을 시행, 충청·전라·경상 삼개도에서 백성들을 착출해서 평안·함경 양북의 변경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음. 사민 과정에서 죽는 사람도 꽤 있었다고 함. 함경도에 명태 식해가 있는 이유가 조선 초엽 사민 정책의 유산일 지도...
@연-u5o Жыл бұрын
김치수제비먹고싶당 ~~
@백백교마귀 Жыл бұрын
*해장떡 먹어보고 싶다*
@자운저택 Жыл бұрын
그것도 오버이지요. 과거 우리나라(조선시대)에는 선비의 나라이지요. 조선시대는 호구조사 잘 되지 않아서 아니 일반 시민들이 호구조사에 동의하지 않아 500년 동안 양ㆍ천 숫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백정를 제외한 노비와 양민들은 같이 살았기 때문에 더욱 구분하기 힘들었음.
@김다원-o3w Жыл бұрын
배고프다!
@Happyong-i1n Жыл бұрын
오ㅏㅇ❤❤❤
@오윤채-o5l Жыл бұрын
평양냉면 오리지날ver는 면발 다 부숴지고 국물은 딱 빨래비누로 비벼서 걸레빤물이랑 냄새 똑같아요. 신라호텔 라연'에서 기가 막히게 재연해서 내놓는데... 진짜 그 맛이..
@tridentinumc.8365 Жыл бұрын
11:43
@heresy485 Жыл бұрын
하지만 정작 평양에선 온갖 양념을 때려부어서 먹는 평양 냉면 담백하고 심심한 맛에 먹는 거라는 건 잘못알고 있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