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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명실상부 전국민이 인정하고 사랑하는 ‘가황’ 나훈아 선배님은 1965년 데뷔한 이후
폭풍같은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사실, 가수가 노래 한 곡을 히트시키기도 힘든 게 현실이지만, 나훈아 선배님은 1969년 한해 동안 ‘사랑은 눈물의 씨앗’ ‘님 그리워’ ‘강촌에 살고싶네’와 같은 노래들이
사랑받으면서 전국에 ‘나훈아’ 열풍을 일으켰고요. 그로부터 3년 후인 1972년에는
무려 11곡의 노래들이 동시에 히트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고향역’ ‘머나먼 고향’ ‘찻집의 고독’ ‘가지마오’ ‘바보같은 사나이’ ‘흰구름 먹구름’
‘해변의 여인’ ‘낙엽이 가는 길’ ‘너와 나의 고향’ ‘두 줄기 눈물’이 모두 1972년에
발표해서 사랑받았던 나훈아 선배님의 노래들이고요.
그중에서 오늘 소개해드릴 노래 ‘물레방아 도는데’는 고향의 향수를 불러오는 곡으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곡입니다.
‘물레방아 도는데’는 작사가 정두수 선생님의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937년 경남 하동군 고천면 상평리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고향에서 보낸 정두수
선생님이 8살 되던 해.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유학중이었던 정두수 선생님의 삼촌이 열아홉 나이에 일본군으로 징집되어 전쟁터로 떠나게 됩니다.
사지로 떠나기 전, 정두수 선생님의 삼촌은 고향인 하동 상평리에 들러 부모님께
하직인사를 드린 후, 사랑하는 아내 순이의 손을 놓고 마을 어귀 징검다리를 건너 손을 흔들며 떠났는데요. 이듬해, 열아홉의 삼촌은 전쟁터에서 꽃같은 목숨을 잃고 한줌의 재가 되어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순이’라는 이름의 젊은 아내는 백발노인이
되도록 수절 과부로 살았다고 하는데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잃은 삼촌의 이야기는 정두수 선생님과 가족들에게 오랫동안 가슴 아픈 슬픔으로 남았구요.
훗날,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작사가가 된 정두수 선생님은
그때 느꼈던 안타까움과 울분과 슬픔을 가사로 써내려갔고요. 그 가사에
박춘석 선생님이 곡을 써서 나훈아 선배님에게 주었던 노래가
바로 ‘물레방아 도는데’입니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 갈 때 뒤돌아 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 타향 멀리 가더니
새 봄이 오기 전에 잊어버렸나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두 손을 마주 잡고 아쉬워하며
골목길을 돌아설 때 손을 흔들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 타향 멀리 가더니
가을이 다 가도록 소식도 없네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 가는데”
정두수 선생님은 진송남 선배님의 ‘덕수궁 돌담길’을 시작으로 대중가요 작사가로
활동하면서 3,500여곡의 노랫말을 쓰셨는데요. 워낙 사랑받은 노래들이 많아서 전국 각지에 정두수 선생님의 노랫말이 적혀있는 노래비가 있습니다.
고향인 하동에는 나훈아선배님의 ‘물레방아 도는데’ 노래비와 하춘화 선배님의
‘하동 포구 아가씨’ 노래비가 있구요. 흑산도에는 이미자 선배님의 ‘흑산도 아가씨’,
서귀포에는 역시 이미자 선배님의 ‘서귀포 바닷가’, 마포에는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 경남 사천시에는 ‘삼천포 아가씨’ 등의 노래비가 있는데요.
그만큼 정두수 선생님이 작사한 노래들은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시골에 가도 물레방아와 징검다리가 놓여있는 풍경은 찾아볼 수 없지요.
세월은 구름처럼 흘러가고, 삼촌의 슬픈 이야기도 이제는 한줌 바람결로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비록 사람은 떠나가고 없어도 그 슬픈 사연은 여전히
노랫말 속에 남아서 우리의 심금을 깊이 울려주지요. 그리운 고향의 풍경 역시
‘물레방아 도는데’라는 명곡 속에 남아서 이 가을, 아련한 그리움을 전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