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 참전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의 죽음.

  Рет қаралды 24,628

Everything Box TV, [God of War

Everything Box TV, [God of War

4 ай бұрын

1950년 10월 초.
북한군 잔존병력은 3만. 반면에 국군과 미군은 총 33만.
누가 보더라도 전쟁은 곧 끝날 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의 군대인 중공군과의
처절한 전투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 때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도대체 중공군은 왜 참전했을까?
단순히 미군이 압록강으로 다가오는 것이 싫어서였을까?
1950년 10월 4일.
6.25전쟁 참전이 결정된 중국 중앙정치국 확대 회의.
마오쩌둥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참전에 반대했습니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오직 마오쩌둥 혼자 뿐.
그런데 마오쩌둥의 참전 요청에 적극적으로 찬성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후에 중공군 총사령관이 되는 펑더화이.
"어짜피 싸워야 할 거라면 우리가 먼저 때려야 합니다!"
펑더화이의 이 말에 용기 백배하여 참전을 결정한 마오쩌둥.
그러나 마오쩌둥이 참전을 결정한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자신의 큰 아들 마오안잉을 러시아 통역원으로 펑더화이에게 맡기는 마오쩌둥.
그러나 1950년 11월 25일, 오전
마오안잉의 부주의로 인한 미군의 네이팜탄 폭격!
결국 마오안잉의 죽음은 펑더화이의 운명까지 바꿔버리게 되는데...
※ 6.25 전쟁 컨텐츠 재생목록: • 6.25전쟁 (한국전쟁)
※ [자발적 시청료계좌]: 국민은행 442802-01-064997 (예금주 : 이X민)
※ 광고 및 비즈니스 문의: lwc76@naver.com
💛회원가입을 통한 혜택과 커피한잔 후원💛
👉 / @war-history
#마오안잉#중공군참전#인해전술

Пікірлер: 125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마오쩌둥이 6.25전쟁에 개입했던 진짜 속마음. 1950년 당시 중국은 UN 상임이사국은 커녕 UN 회원국도 아니었습니다. 미국이 주도가 되었던 당시 UN은 중국 대신에 대만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09:13에 나오듯이 마오쩌둥은 미국과 UN이 중국을 인정하게 만드는 방법은 미국과 정면으로 싸워 이기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user-vg4ki4cx2g 채널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중국 찬양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실제 역사만을 다룰 뿐입니다.
@user-if6ov1sb9f
@user-if6ov1sb9f 4 ай бұрын
오늘 저녁은 계란볶음밥이다.
@Panorama-memory
@Panorama-memory 4 ай бұрын
역시 맥아더의 주장대로 중국에 핵폭탄 투하를 했었어야 했음.
@mma3144
@mma3144 2 ай бұрын
지금도 늦지않았죠. 베이징, 상하이, 칭두, 그리고 도쿄, 나가사키, 히로시마에도 다시 한번 ㅋㅋ
@jhesu5849
@jhesu5849 2 ай бұрын
한반도에 원폭투하 절대. 하지못할이유 유엔군 에게 도.큰 피해 입음
@user-ph7ws4qv2j
@user-ph7ws4qv2j 2 ай бұрын
@@mma3144 미친 사람 아니야?
@CoreanStacker
@CoreanStacker 2 ай бұрын
​@@mma3144😂 That's a great idea!
@CoreanStacker
@CoreanStacker 2 ай бұрын
How did Fung die? How was he executed?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4 ай бұрын
펑더화이는 1.4후퇴 후 국군, 유엔군이 다시 반격해 전선을 현재 휴전선 근처까지 올린 후 김일성이 다시 서울을 북한 수중에 넣고 더 아래로 전선을 내리고 싶어하자 현실적인 이유들을 들어 강렬히 반대했죠 ㅋㅋ. 다시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필요한 병력 숫자가 얼마인지는 아냐, 지금 유엔군의 엄청난 화력을 감당할 수 있겠냐, 설사 서울을 다시 먹고 전선을 남하시킨들 저쪽에서 서울을 빼앗긴 채로 휴전에 응할 리가 있겠냐 등등
@rlee4805
@rlee4805 4 ай бұрын
영상 해설 철저한 고증 *감사합니다*
@nano04386
@nano04386 4 ай бұрын
만물상자님 영상 참 잘 만드시네요. 잘 보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여.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user-op6en9wz9g
@user-op6en9wz9g 4 ай бұрын
마오쩌둥이 전쟁에 참여 한 이유 중에서 만주세력인 가오강의 힘을 빼려고 한 것도 있다고 하네요..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그 원인도 분명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중국에서 가장 공업이 발전한 지역이 만주지역이었습니다. 6.25전쟁 기간 동안 각종 무기와 보급물자를 생산한 지역이 만주지역이기도 합니다.
@user-km5xv9bk4f
@user-km5xv9bk4f 4 ай бұрын
진짜 재미있다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감사드립니다!!
@dghiufdxssfvg67tjc
@dghiufdxssfvg67tjc 2 ай бұрын
재밌네요~ 나레이션도 좋고~~~
@war-history
@war-history 2 ай бұрын
응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jp5500
@jp5500 2 ай бұрын
영상 좋네요 구독 하고 갑니당!!!
@war-history
@war-history 2 ай бұрын
응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user-ci8ns6tf3q
@user-ci8ns6tf3q 4 ай бұрын
아니~ 최전선에서 중대한 실수를.....🙏🙆‍♂️🙋‍♂️💕💕
@user-sy9kf9kc7l
@user-sy9kf9kc7l 4 ай бұрын
오늘 동영상 실제 주인공은 마오쩌둥이 아니라 펑더화이고 왜 한국전쟁에 찬성하고 직접 참전했으며 왜 문화대혁명 때 숙청을 당할 수밖에 없는지 알게되었고,이렇게 생각도 하게 됩니다.”“내가 옳은 말을 해도 그건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는데 따라 틀리다는 것이다!“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물론 그것만이 숙청의 주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큰 아들을 전투병과도 아닌 사령부의 러시아어 통역요원으로 펑더화이를 믿고 맡겼는데 네이팜탄에 숯덩이가 되어 바로 사망했다면 그 누구라도 섭섭한 감정이 없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user-sy9kf9kc7l
@user-sy9kf9kc7l 4 ай бұрын
@@war-history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 강직한 펑더화이에게 아들을 맡길께 아니라 후방으로 보내면서 후계수업을 시키고 가끔 수행원으로 참가시키는게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도 하지만 자신의 부주의로 죽은거 오래 마음을 품다가 숙청한걸 보면 진짜 마오쩌둥 자신의 책임은 안중에도 없구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정확한 말씀입니다. 자신의 책임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은 스탈린, 히틀러의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user-sy9kf9kc7l
@user-sy9kf9kc7l 4 ай бұрын
@@war-history 그래서,오늘 동영상의 교훈!선을 넘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아무리 내 친구,지인,부하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숙청할 수밖에 없다!그게 권력의 속성이고 독재자들의 성격이라는 것을!
@longtelegram3389
@longtelegram3389 3 ай бұрын
@@user-sy9kf9kc7l 마오가 펑더화이를 숙청한 가장 큰 이유는 펑이 대약진운동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수천만명이 사망한 대약진운동의 실패는 전적으로 마오의 책임이지만 독재자는 절대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습니다.문혁 시절에 홍위병이 펑을 폭행하면서 조리돌림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살인마 마오가 얼마나 무서운 사이코패스인지 실감이 되더군요.
@user-qx2vn8vc7d
@user-qx2vn8vc7d 4 ай бұрын
볶음밥 먹다 죽은 지능 덕분에 죽어버린 펑더화이
@androin3435
@androin3435 3 ай бұрын
내전이후 리더가 권력강화를 위한 가장 좋은방법이 병력을 바깥에 적과 전쟁을 벌이는것이다. 모택동도 김일성도 자신의 독재구축을 위한 욕심
@user-gd3if9st8r
@user-gd3if9st8r 4 ай бұрын
아, 모택동군이 쳐들어 오지 않았더라면...
@user-no7uj6uk3r
@user-no7uj6uk3r 4 ай бұрын
계란볶음밥 노릇노릇 하지만 공습에 직화구이 노릇노릇 사망~
@user-wy5de9ti2o
@user-wy5de9ti2o 4 ай бұрын
계란탕 끓어먹다가 불빛보고 미군의 폭격으로 죽은 모택동 아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user-sy9kf9kc7l
@user-sy9kf9kc7l 4 ай бұрын
계란탕이 아니라 계란볶음밥이라니까!
@user-nz5dj3zb5m
@user-nz5dj3zb5m 4 ай бұрын
김일성이 준 계란
@docter.yangban
@docter.yangban 4 ай бұрын
재료와 훈연일체가된 ㅎㅎ
@user-wj3ud7lv5n
@user-wj3ud7lv5n 4 ай бұрын
중공 마오쩌둥과 마오안잉의 이념과 저의와는 별개로 애국 안보 타령하면서 본인과 자기 자식은 군면제로 째는 어느 나라 입만 산 치킨 호크들보다는 나은 것 같군요..
@user-rg3wh9fq3e
@user-rg3wh9fq3e 4 ай бұрын
문제는 아들이 아버지의 바람을 채우지못했다는거ㅋㅋㅋㅋ Ex) 마오가 안잉한테 내 자랑하거나 겸손하게 살라고했는데 은근슬쩍 내 아빠가 마오아빠임 하고 거들먹거리거나 부상병한테준 간식들 꿍쳐먹다가 폭탄맞아죽음ㅋㅋㅋㅋ
@user-dd9mg6bo4b
@user-dd9mg6bo4b 3 ай бұрын
계란 볶음밥 먹고 싶다.. 볶음밥 먹던 마오안잉... 미군 폭격으로 죽음..
@ulrichkesler1220
@ulrichkesler1220 4 ай бұрын
미제국식 직화구이가 나오는 편이군요 ㅋㅋㅋㅋ
@17park19
@17park19 2 ай бұрын
계란볶음밥이 제 최애 메뉴입니다.
@jeyji2534
@jeyji2534 4 ай бұрын
역전다방을 보면 중공군 참전이유에는 많은 주장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영상을 보니 모택동은 일찍부터 미국의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예방전쟁차원에서 참전을 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중국의 산업기반이 만주쪽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참전이 필요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소련이 북한을 돕는다는 이유로 만주로 진출? 할수도 있다고 걱정했을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주쪽 실권자 가오강도 모택동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참전에 찬성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반대했다고 하는군요. 다만 참전한다면 소련의 지원을 받기위해 주은래를 소련에 파견하기도 하면서 참전하기 싫은척 소련과 밀당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중공군 참전 이유에 대해 뻔한 이야긴 하지 않았습니다. 뻔한 이유보다는 마오쩌둥 개인의 성향에 집중했습니다. 또한 여기에 나온 가오강의 의견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가오강은 만주지역의 실권자입니다. 그리고 만주는 일본이 건설해놓은 군수산업 공장들이 많았기 때문에 1950년 당시에는 중국에서 그나마 공업력이 가장 발전된 곳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지리적 위치가 가깝다보니 만주에 있던 모든 역량이 한국전에 모두 투입되었고 가오강은 한국전쟁 후에 거덜이 나게 됩니다. 제가 가오강이라도 한국전쟁 참전에 소극적이 될 것 같습니다. 6.25전쟁 개입을 논했던 당일 오직 마오쩌둥 혼자 찬성했다는게 정설입니다.
@pmike8060
@pmike8060 4 ай бұрын
오늘저녁은 계란볶음밥이다!!
@user-sy9kf9kc7l
@user-sy9kf9kc7l 4 ай бұрын
차라리 계란탕이나 드셔요!!
@shanestory3879
@shanestory3879 4 ай бұрын
마오쩌둥, 정말 상종을 못할 인간이네요... 벤 플리트 장군과 진짜 비교가 돼요... 그쪽에서 보면 펑더화이만한 충신이 없고 동지가 없는건데,,, 아니 마오쩌둥 진짜 사람이 맞긴 한가요? 애초에 마오쩌둥이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낼 때 펑더화이는 반대했다고 했잖아요? 끝까지 아들 참전을 결정한건 마오쩌둥 본인이었고... 그랬는데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펑더화이를 숙청해?... 와, 화딱지 나네...
@jaeseonsong6605
@jaeseonsong6605 4 ай бұрын
냅둬유 ~~짐승같은놈들 뭐하러생각혀유~~~~~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물론 아들이 죽은 것이 숙청의 전부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11:56 에 나오는 것처럼 나는 대가 끊기게 생겼다는 말을 하며 펑더화이를 원망합니다. 마오쩌둥이 아들을 사령부에 보낸 것은 펑더화이에게 잘 좀 데리고 있어달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user-rt1xt6qm8u
@user-rt1xt6qm8u 4 ай бұрын
만물상자님 마오쩌둥 아들 왜 6.25전쟁에 참전했을까요😮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10:21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마오쩌둥으로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셈이었습니다. "내 아들을 전장에 안보낸다면 내가 누구더러 전장에 나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grimreaperkim9433
@grimreaperkim9433 4 ай бұрын
계란볶음밥을 해먹으려다 죽었다고 하더군요. 다른 병사들은 방공동(폐광 갱도 등등)으로 대피하는데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1950년 11월 25일 중공군 2차공세 상황... 당시 중공군 병사들이 명령을 어기고 불을 피웠다면 총살이었을 것입니다. 마오안잉은 불을 피웠습니다. 말씀하신 계란 볶음밥을 해먹기 위함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미군이 중공군의 무선 신호를 잡아내어 폭격을 했다는 설이 퍼지고 있지만 당시 중공군 장교가 증언을 했습니다. 불을 피웠다가 죽었다고 말입니다.
@TV-iv4bc
@TV-iv4bc 2 ай бұрын
악인과 악국들의 비참한 결말을 보게 하소서!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4 ай бұрын
스탈린은 자신의 아들이 최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우다가 포로가 됐고...독일군이 "포로가 된 자신들 정보장교"와 교환하자고 하니.. 스탈린은 거절했죠. 소련, 중국, 미국, 영국, 독일 등...이런 나라의 윗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한국역사에서는 드뭅니다.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스탈린도 그랬고 심지어 미군의 밴 플리트 장군의 경우도 아들이 북한지역에 추락했는데도 수색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고위층이 자식을 포기했다는 말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Mordereeee
@Mordereeee 4 ай бұрын
맞습니다. 조선 역사는 피지배층의 피로 지배자들의 뱃기름을 채웠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지배층의 자손들이 싸워서 나라를 지키나, 지금의 조선은 99.9%의 민중들의 자손이 나라를 지키고 0.1%의 자손들은 그 위에서 피로써 목욕을 합니다.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Mordereeee 옛날부터 그런말이 많았죠. 내부에서의 싸움은 귀신, 외부와의 싸움은 등신.
@jp5500
@jp5500 2 ай бұрын
@@war-history 진짜 조선군이 반란 진압할때... 이괄의 난이나 홍경래의 난 등등 보면 잘 진압하죠..
@KoreaLawSchool17
@KoreaLawSchool17 2 ай бұрын
이거 무슨 영화 인가요?
@bmkim8565
@bmkim8565 4 ай бұрын
민족의 천년 원수 중국
@user-gv8pc3on6p
@user-gv8pc3on6p 4 ай бұрын
예전에 열린 글방이 유행하던 시기에 우연찮게 팽덕회(펑더화이)의 '6.25참전 회고록' 번역본을 접하게 되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모택동이 큰 아들을 한국전에 참전 시켰고 그 아들이 미군 폭격에 죽음을 맞이한 장면에 처음엔 거짓인줄...그 후 여러 서적에서 확인하였지요 모택동이 비록 사상도 다른 적의 수장이였지만 큰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 대국의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인정 안할수가 없더군요. 우리나라 현대사에 시골 면장만 되어도 자기아들 빼돌리기 바빴고 6.25때, 월남전 당시에 자기아들 친척을 전쟁터에 보낸 사례는 듣도 보도 못하였기에 참으로 큰 울림의 사례였습니다. 그 후에 미 장군의 아들이 한국전에서 전사하였고 영국 왕실의 왕자가 포클랜드전에 참전하였고 와 같은 사례들을 보면 그들이 왜 강국이고 선진국인지를 알게 되더군요. 좋은 포스팅에 감사 드립니다..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중공군도 미군도 모두 이런 사례가 많습니다. 미국부터가 아이젠하워의 아들이 참전했고 장군들 아들들도 상당수가 참전했습니다.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밴 플리트 장군만해도 외아들을 한국에서 잃었습니다. kzbin.info/www/bejne/kHq7Za2hrthmb7s (한국을 사랑했던 밴플리트 장군 )
@goldenboy6826
@goldenboy6826 4 ай бұрын
우리에게 원수같은 존재이지만 팽덕회는 명장이죠.북괴군이 아니었다는게 그나마 다행스러움
@leo-cu3hg
@leo-cu3hg 4 ай бұрын
마오안잉을 왜 데리고 가라고 했죠?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10:12 에 나오는 것처럼 마오쩌둥은 내 아들을 조선전쟁에 안보낸다면 내가 누구더라 전쟁터로 나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마오쩌둥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은 독소전쟁에도 참여했던 인물입니다. 때문에 러시아어가 능통했기에 전투부대가 아닌 사령부에서 통역 업무를 시킨 것입니다.
@mx1012377
@mx1012377 3 ай бұрын
사실 마오쩌둥 아들은 계란 볶음밥 해 먹다 죽은게 아니고 폭격중에 계란을 챙기다 죽은거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보니 그거나 그거나 똑 같은 것 같네요ㅎㅎㅎ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기록에 나온 확실한 내용은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은 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즉 불을 피워서는 절대 안된다! 라는 규정을 어겼습니다. 당시 중공군은 불을 피우면 무조건 총살이었습니다. 미 공군이 벌떼처럼 하늘을 날아다녔기에 불을 피우면 발각의 위험이 컸습니다.
@user-tt4fk1ji1i
@user-tt4fk1ji1i 4 ай бұрын
한국 전쟁💥 모택동 아들 사망
@user-ei9zy9cs9k
@user-ei9zy9cs9k 2 ай бұрын
제2.3의쩌둥이가 나왔어야하는데
@user-gd3if9st8r
@user-gd3if9st8r 4 ай бұрын
彭은 feng이 아니라 peng... 펑입니다. 그냥 팽덕회, 모택동, 임표가 낫지요.
@user-sanaekochiya
@user-sanaekochiya 4 ай бұрын
4:28 중공군 2G vs 미군 5G
@user-sanaekochiya
@user-sanaekochiya 4 ай бұрын
결론 - 산속이라 5G 안터짐😢
@user-sanaekochiya
@user-sanaekochiya 4 ай бұрын
한마디로 중국의 방호산
@user-oh7mc9rg3g
@user-oh7mc9rg3g 20 күн бұрын
대체 황금계란볶음밥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전설의 중국볶음밥
@ChrisTennis
@ChrisTennis 3 ай бұрын
우리가 평양선까지만 점령하고 휴전을 제안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중공이나 소련이 미군과 국경을 맞대는 것을 절대로 용남할수 없었을 테니 말이죠....
@user-xc8ej1vw9v
@user-xc8ej1vw9v 2 ай бұрын
역사에 만 약에 없지만 여기서 더 붙 히면 첨 중국 참전 했을떼 맥아더나 그이하 장군들은 다들 대스럽지 않게 생각 했지요 첨 중국참전 했을떼 백선엽 장군은 중공군이 어마무시 대군을 이끌고 압록을 넘어서 왔는데 미군은 무시 했지요 만약 맥아더나 그이하 장군들이 중공군을 무서움을 알앗더라면 어떡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user-os1sl9nm9m
@user-os1sl9nm9m 3 ай бұрын
계란볶음밥의 전설
@ogaso46
@ogaso46 Ай бұрын
저 때 만주를 폭격해서 보급로를 끊어 버렸어야 했는데~
@jeheehan7234
@jeheehan7234 2 ай бұрын
매년 11월 25일은 게란 볶음밥 먹는날
@hillofwind4629
@hillofwind4629 3 ай бұрын
김일성이 힘내라며 가져다준 계란에 맛이간 마오 아들이 수칙 어기고 열심히 계란볶음밥에 군침을 흘리다 바베큐가 된 사건ㅋㅋ😂😂😂
@CoreanStacker
@CoreanStacker 2 ай бұрын
😂
@user-zu1xp4jp5l
@user-zu1xp4jp5l 2 ай бұрын
꼬시다 까불면 이리된다
@user-xf1ei1nv4w
@user-xf1ei1nv4w 2 ай бұрын
ㅋㅋㅋㅋㅋ엌 통구이
@mcdonnelldouglas4261
@mcdonnelldouglas4261 3 ай бұрын
네이팜맛 계란볶음밥
@user-fe4ft4rz9t
@user-fe4ft4rz9t 2 ай бұрын
그 놈의 계란볶음밥이 뭔지 ㅋㅋ
@user-ph5wl4xv9e
@user-ph5wl4xv9e 2 ай бұрын
살쩟둥
@jmo8703
@jmo8703 4 ай бұрын
펑더화이의 숙청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약진 운동이 실패하고 그 책임이 모택동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정치적 입지가 취약해지고 있을 때 당대회에서 대약진 운동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람이 펑더화이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시 세우기 위해 문화대혁명을 일으키고 자신의 정책을 비판했던 펑더화이를 숙청한 것입니다. 모택동이 자기 아들의 전사로 펑더화이를 숙청한다? 그 정도로 사리분별 없는 인간은 아니라고 봅니다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11:16 부분에 국방부장이 되어 세력이 커진 펑더화이를 견제할 필요성.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펑더화이의 성격으로 인한 직언이 마오쩌둥의 눈 밖에 난 원인임을 밝혔습니다. 널리 알려진 그 이유 외에 아들의 죽음도 펑더화이에 대한 섭섭한 감정에 영향이 있었을 거라는 점을 추가했을 뿐입니다. 실제로 마오쩌둥이 자신에겐후세를 이을 자식이 없다는 한탄이 바로 그 근거입니다.
@user-gb5un9bs3r
@user-gb5un9bs3r 2 ай бұрын
영상 다 좋은디 굳이 주선율영화 쓰는 이유는 뭐임… 항미원조라고 짖어대는 영환디
@war-history
@war-history 2 ай бұрын
구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차원입니다. 주선율 영화지만 단 하나도 고증에 어긋난 장면은 없습니다.
@bes4448
@bes4448 Ай бұрын
종이호랑이ㅋㅋㅋ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사실 마오쩌둥이 정확히 본 것입니다. 그가 종이호랑이라고 얘기한 것은 말장난이 아니라 미국이 작은 나라인 한국을 위해 끝까지 가지는 못할거라는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마오쩌둥 예상대로 행동했습니다.
@suwhalcha5034
@suwhalcha5034 4 ай бұрын
중공군 ㅡ 아편전쟁에 당한 수모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말씀하신 것은 중공군 병사들의 수기에 직접 언급이 됩니다. "나는 국민당군 병사다. 나는 솔직히 공산당 이념을 주입받은 것은 없다. 내가 싸웠던 이유는 서양 제국주의 대표국가인 미국으로부터 우리 중국을 지키고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kzbin.info/www/bejne/jIPYaGiVd7WSoNU (중공군 병사들이 처절하게 싸웠던 이유)
@user-nk5hb6bt1n
@user-nk5hb6bt1n 2 ай бұрын
트루만 바이든 절대 역사는 못이긴다 짧은역사는 결국 짧다 긴역사는 왜긴지 모른다 잠시 힘이있을뿐 미국은 모래성이다
@cypress5310
@cypress5310 3 ай бұрын
중공 공산화 후 군사적 힘의 압력을 느낀 모택동! 한반도에서 6.25가 한국과 미군의 통일의 압력이 두려웠던 모택동! 공산화 주역 8로군의 군사력이 두려웠던 모택동! 8로군의 에너지를 6.25에 투입해서 8로군의 에너지를 소산해버려 군부의 힘을 빼고 싶어했기 때문! --- 6.25는 해리트루먼의 멍청한 전략 때문에 맥아더를 해임! 멍청한브래들리에게 미군을 맡긴 멍청한 해리! 모택동과 해리의 악수가 지금 이 나라의 비극! 토사구팽 펑더화이!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 남한출신공산주의자 김원봉 숙청!
@jhesu5849
@jhesu5849 2 ай бұрын
반일 만만치.하게.반중해야 일...
China's Cultural Revolution : The worst decade that completely ruined China
14:50
현재사는 심용환
Рет қаралды 253 М.
Did you find it?! 🤔✨✍️ #funnyart
00:11
Artistomg
Рет қаралды 120 МЛН
ХОТЯ БЫ КИНОДА 2 - официальный фильм
1:35:34
ХОТЯ БЫ В КИНО
Рет қаралды 2,3 МЛН
WHY DOES SHE HAVE A REWARD? #youtubecreatorawards
00:41
Levsob
Рет қаралды 31 МЛН
우크라이나 전쟁 총정리 [원인부터 최신전황까지]
22:18
써에이스쇼 sirace show
Рет қаралды 302 М.
2회, 펑더화이의 한(恨), 중국현대사
19:29
북연TV-한중부동산
Рет қаралды 13 М.
6.25전쟁 발발 직전에 있었던 미스테리한 일들/한국전쟁5
10:12
조선 제 7대 왕, 세조 이유 - 종합본 [역주행의 조선왕조실록]
1:45:00
역주행-한국사, 세계사
Рет қаралды 610 М.
맘껏 쌍욕하라고 올립니다 "영화 장진호 결말포함 리뷰"
17:16
찐사부 金师傅 kccl
Рет қаралды 400 М.
아시아 사상 최대의 시가전 [중일 전쟁, 상하이 전투]
17:53
전군의지식나눔방
Рет қаралды 612 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