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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초.
북한군 잔존병력은 3만. 반면에 국군과 미군은 총 33만.
누가 보더라도 전쟁은 곧 끝날 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의 군대인 중공군과의
처절한 전투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 때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도대체 중공군은 왜 참전했을까?
단순히 미군이 압록강으로 다가오는 것이 싫어서였을까?
1950년 10월 4일.
6.25전쟁 참전이 결정된 중국 중앙정치국 확대 회의.
마오쩌둥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참전에 반대했습니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오직 마오쩌둥 혼자 뿐.
그런데 마오쩌둥의 참전 요청에 적극적으로 찬성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후에 중공군 총사령관이 되는 펑더화이.
"어짜피 싸워야 할 거라면 우리가 먼저 때려야 합니다!"
펑더화이의 이 말에 용기 백배하여 참전을 결정한 마오쩌둥.
그러나 마오쩌둥이 참전을 결정한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자신의 큰 아들 마오안잉을 러시아 통역원으로 펑더화이에게 맡기는 마오쩌둥.
그러나 1950년 11월 25일, 오전
마오안잉의 부주의로 인한 미군의 네이팜탄 폭격!
결국 마오안잉의 죽음은 펑더화이의 운명까지 바꿔버리게 되는데...
※ 6.25 전쟁 컨텐츠 재생목록: • 6.25전쟁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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