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거 저장했어요 어릴때 할아버지께서 김해김씨 삼현파라고 하시면서 손녀였지만 김수로왕 제사에도 데리고 가주시고 그려셔서 관심이 있었는데 오늘 방송 보고 너무 유익해서 애기들 교육용으로 저장해둘려구요. 자신의 뿌리가 무엇이고 조상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 안다는거, 건조하다못해 치열한 현재에 ”나“ 에 대해 좀더 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유익한 방송 많이 만들어 주세요!
@Jeong-eun Жыл бұрын
가야사는 다시 연구되어야 합니다. 가야사가 아니고 가라사 ㅎㅎ
@GUkkki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 이제안만들고잇음ㅋㅋ
@랑시에르 Жыл бұрын
오호 저역시 삼현파 47대손이고, 김수로왕72대손입니다. 3개의 파 중에 하나가 삼현파라고 하는데 구한말 쯤 해서 족보를 샀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워낙 유명한 김해 김씨이니 가장 많이 팔린 스테디 족보집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bin2ggo Жыл бұрын
투후 김일제의 후손 중 마지막 기록인 김당 과 신나라 왕망의 어머니는 자매였으며 김일제 후손은 신나라에 의거했으며 신나라 멸망 후 주 외교지였던 가야에 가락국과 신라에 후손리 머물었고 마한의 우측은 여진부족에도 의탁하여 상 하 2갈레로 나뉘어짐 그래서 신라는 멸망 후 여진으로 간 왕족이 많음 그 예로 금행의 후손은 여진으로 가서 금나라 청나라 그리고 징기스칸(금국왕)까지..
@서동순-d5g Жыл бұрын
😊😊
@koreanoasis Жыл бұрын
역사에서 미래를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
@배경도-h5s8 ай бұрын
😅배경도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
@배경도-h5s8 ай бұрын
😮배경도 😮😅😂😂😂😂😂😂😂😂😂😂😂😂
@김상곤-k8w2 жыл бұрын
정말 직계후손으로서 ㆍ 가슴 벅차고 뿌듯함을 느끼고 ㆍ 열심히 살아가도록 ㆍ다짐ㆍ또 다짐 합니다 ㆍ !
@ll-tg7xz2 жыл бұрын
무슨 직계후손이야.;;;
@아나르코스2 жыл бұрын
직계후손 ㅋㅋㅋ
@bmcap5102 жыл бұрын
천민출신 2마리 부들부들 댓글다노
@선-h6g2 жыл бұрын
@@ll-tg7xz 김해김씨 중 김유신 직계 파 있습니다.
@TaeGyeongKim-i2b2 жыл бұрын
네다음 개족보ㅋㅋㅋ
@hhj4232 Жыл бұрын
재밌네요 감사합니다
@lamech15702 жыл бұрын
역시 우리조상님 멋집니다 👍
@익명-u8h7q6 ай бұрын
ㅈㄹ
@밤하늘의별따기-p7i6 ай бұрын
옛 유익하고 좋은 영상을 유튜브로 볼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김재목-x3j Жыл бұрын
참으로훌륭하신.우리나라의.성웅.영웅이십니다.
@리버티3 жыл бұрын
뭐.. 김유신 정도면 왕보다도 더 공이 크지
@gn78933 жыл бұрын
엄청난 퀄리티의 다큐 재밌다
@hdcho44862 жыл бұрын
퀄리티? ㅋㅋㅋ 무슨 뜻인지나 알아?
@gn78932 жыл бұрын
@@hdcho4486 왜? 니 생각에 수준 낮다고 생 각함? 근거가 뭐임?? 알려줘
@hdcho44862 жыл бұрын
@@gn7893 정신 차려라
@gn78932 жыл бұрын
@@hdcho4486 ㅋㅋㅋㅋ 아니 퀄리티의뜻을 모네 ㅋㅋㅋㅋ 물어보면 답을 할줄도 모르는 모지리가 왜 깝침. 본인의 생각을 조리있게 말못하는거 인증을 왜 사서하는지 ㅋㅋㅋㅋ
십대후반에 화랑까지 했는데 그때 아마 천관녀를 사귀었고 어머니의 질책에 가문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했을 거고 가문을 살리기 위해서는 승리뿐이라는 걸 알고 산으로 들어가 지략과 병법을 10여년 수련했다고 본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겨서 30넘어서 정치에 뛰어 들었다고 본다.
KBS HD역사스페셜 - 김유신이 왕이 된 까닭은 / KBS 2005.10.28. 방송 혹시 김춘추 아닌가요?
@손원식-d4n2 жыл бұрын
김유신장군 김춘수 김무력 삼국통일 태실 묘지 삼국사기 충북 진천군 도당산성 양왕릉....
@김상곤-k8w2 жыл бұрын
나도 직계 후손인데 ㆍ 정말 놀랍고 ㆍ 신비 스럽다 ㆍ !
@김상곤-k8w2 жыл бұрын
자발적으로 전국에서 사당이 생겄다니 ㆍ 정말 직계후손로서 놀랍고 존경스럽다 ㆍᆢ !
@차무식-v1j Жыл бұрын
니 조상도 김유신 댁 노비엿구나 오늘 노비출신들 반창회하냐
@sunyoungkim1934 Жыл бұрын
고무심 선생님...!!! 고맙습니다....!!! 김선영 드림.
@승승장구-c2q Жыл бұрын
고두심 고무신이 아니고 ㅎ
@강대봉-e9d3 жыл бұрын
이 역사스페셜에선, 김유신이 흥무대왕으로 추서되었다는 내용을 가십꺼리로 다루어 흥미진진하긴 하지만 그 경위에 얽키고 설킨 정치적 목적 내지 정치적 배경은 전혀 도외시하여 오히려 의문들만 증폭시킨 바가 없지 않은 성 싶습니다. 저는, 김유신이 흥무대왕으로 추서된 배경엔 단순히 3국통일의 영웅이라서 죽은지 160여년이 지나서 추서된 게 아니라 오히려 3국통일 이후 150여년이 지나서도 신라 내부엔 이질적인 출신으로 말미암아 진골급 귀족들간에 치열한 헤게모니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그 다툼 속에서 김유신의 후손들 즉 가야계도 양분되었지만 여전히 권력향배를 가름하는 캐스팅보트 세력으로 위세를 떨치던 차, 가야계가 분열되는 바람에 780년 무열왕계 혜공왕이 피살되고 내물왕계인 김양상(선덕왕)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가야계를 통합하여 중앙정계를 탕평책으로 아우를 필요성이 제기되어 가야계의 대부인 김유신을 '왕'급으로 추존할 정치적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것이고, 당현종이 공자를 '문선왕'으로 추존하는 정치적 묘수를 본받아 흥덕왕 즉위년에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하고 자신은 '흥덕왕'으로 등극하는 신의 한수를 둔 셈이라 추정됩니다 ^^ kzbin.info/www/bejne/e3maZ3iej8qhhck 이 영상은, 서기 780년 전후 즉 신라 혜공왕 시절 전후 무열왕계. 내물왕계가 사활을 걸고 격돌하던 모습을 탐정수사하듯 되짚어보는 역사추론입니다^^ 국어 교과서에서도 배웠던 수로부인과 어느 노인의 헌화가에 얽힌 역사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을 짚어보고 그게 혜공왕의 죽임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신라를 중대와 하대로 나눌 정도로 큰 정치적, 사회적 변동을 가져온 그 사건에 얽힌 '가야계'의 캐스팅보트가 어떤 위력을 발휘했는지를 짚어보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공부할 좋은 기회로 사료됩니다^^ 즉 무열왕계는 김알지 후손 김씨가 아니라, 중국 5호16국 중 초기에 강력했던 북연 출신 모용 선비족 계열의 창씨개명 김씨(모용씨>모씨>김씨) 즉 모용씨인 법흥왕 계열이고, 780년 쿠데타를 일으켜 혜공왕을 죽인 김양상 등은 김알지 후손 김씨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분석됩니다. 중국 5호16국 시대가 통일되어가는 과정에서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던 모용씨 선비족(예맥족의 후예?) 북연이 탁발선비족 북위에 멸망당할 때 북연 왕과 더불어 100만명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투항(망명)해 왔다고 합니다. 북연 왕은 "실은 고구려 땅은 우리 선조들인 예족의 땅이다"는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장수왕이 죽여버렸다네요. 북연에서 망명해 온 100만명(당시 100만명은 나라를 세울 수 있는 인구라 합니다)의 처리에 골머리를 앓던 고구려 장수왕은 이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기에, 광개토왕 때부터 관리해 오던 신라 땅 수비군사를 북연 군대와 교대시켰고, 일부 북연 군사들은 백제로도 들어가 용병 비슷하게 또 실권을 장악하기도 하는, 사서(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용, 흑룡. 황룡, 이리떼~"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세력들이 이 북연 출신 세력이고 백제의 '곤지', 신라의 법흥왕이 대표주자라는 설이 있습니다^^ '곤지'가 왜(일본)를 정벌하러 가면서 형식상은 형수인 개로왕의 왕비가 임신한 상태임에도 ㅡ 나중에 무령왕이 되는 ㅡ "부인으로 삼아 데려가는" 기괴한 행동은 왕비가 인질이면서 일종의 '마복자' 역할이 아니었던가 추정됩니다. 실제 무령왕은 핏줄은 '개로왕의 아들'이지만 '곤지의 아들 자격'으로 일본 섬에서 자라고 나중에 백제 왕이 되거든요. 화랑세기 필사본에 언급되는 '마복자'는 신라 전통이라기보다는 모용선비족(예맥족?) 북연의 전통이었수도 있지 않을까요? 법흥왕의 뒤를 이은 진흥왕은 '황룡사'를 짓는데. 북연은 스스로 "황룡국"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습니다. 김알지 신라 김씨 왕통(대표주자는 내물왕)과 북연 출신 모용씨가 마복자로 양위받아 김씨로 창씨개명한 가짜? 김씨 왕통(대표주자 법흥왕, 진흥왕)은 대대로 경쟁하면서 거기에 김유신의 가야파가 어디로 캐스팅보트하느냐에 따라 향배가 갈렸던 듯 추정됩니다^^ 가야파도 알곡인 김유신파, 상대적으로 쭉정이였던 가야파도 있었겠지요?^^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다시 양지되는 모습을 "(헌화가의 주인공) 수로부인의 딸로 왕비가 되었다가 이혼당한 삼모부인"과 "김유신 손자의 딸로 수로부인 딸인 왕비를 제끼고 새 왕비가 되었지만 아들 혜공왕과 함께 죽임을 당한 또 다른 가야파 만월부인"의 운명이 뒤바뀌는 데서도 찾을 수 있고, 창씨개명한 김씨인 법흥왕의 후손들은 780년 혜공왕을 끝으로 무대에서 일단 내려온 듯 싶습니다. 이 시점에서, 혜공왕의 엄마인 만월부인은 에밀레종을 만들어 부처님의 가피로 국난을 타개해 보려 했다고들 그동안 역사에선 평해 왔는데, 제 소견으론 거대한 종을 만든다는 핑계로 귀족들에게 삥을 왕창 뜯어내(최우가 8만대장경 조판 핑계로 어마어마한 정치자금을 강화도로 끌어들였듯) 그 돈으로 군사력을 길러 당시 굴기하던 김알지 김씨 계를 척결하려다가 김알지 김씨계인 김양상이 상대적으로 소외받던 가야계ㅡ 같은 김유신 후손들이었지만 ㅡ와 손잡고 되치기한 성 싶습니다. 요즘 차기 대선 예비후보들 레이스와도 너무 흡사해 소름이 끼치네요^^ 흥덕왕의 핏줄에 대하여 논란이 있으나 선덕왕 김양상의 쿠데타 성공 후 50여년이 지난 흥덕왕 즉위년에 김유신을 '왕'으로 추존하여, 혜공왕 지지 김유신계와도 화해하고 동시에 재갈을 물려버리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탕평책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유신을 '왕'으로 추존한다고 해서 '큰 돈'드는 것도 아니고, 참 재미있는 신의 한 수로 보입니다^^ 당나라 현종이 공자를 '문선왕'으로 추존시킨 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아닐까 싶네요. 당나라 때 노자를 '황제'로 추존하자 유학자들이 난리 난리를 쳐댔는데 공자를 '왕'으로 추존해 주자 그 뒤론 찍 소리 안했거든요. 조선 시대 왕들이 성균관에 와서 공자에게 제사지내면서 '절'을 했던 건 공자가 왕으로 추존되어서입니다. 고려 땐 왕을 폐하라 부르면서 황제로 자칭했기에 고려 왕들은 공자에게 절을 하지 않았던 걸로 들었습니다 ^^ 석가는 왕도 아니고 왕자였을 뿐이기에, 신라든 고려든 석가모니 불상 앞에서 왕은 절을 하지 않았고, 중국에선 "출가한 승려는 속인이 아니라서 왕. 황제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고 왕이 부처님에게 절을 하지 않는 걸 디스했지만, 통일왕조가 들어설 땐 먼저 가서 절을 하고 아부를 떨었다는 속설도 있더군요~ ^😳^
@청솔향-g9u2 жыл бұрын
마복자 전통이 어디서 왔다굽쇼? 마복자 그러니까 상위 계급과 관계한 여자가 잉태한 아이를 상위계급 남자의 자식으로 인정하는 제도는 결국 노예혼입니다. 물론 그 하위여자의 결혼은 그대로 지속됩니다. 만약 하위 계급의 여자가 상위계급 남자의 처첩으로라도 들어간다면 이 마복자제도는 유명무실 할테니. 즈기 상위계급 남자가 남의 청의 배를 빌린 셈입니다. 한데 이것은 전~혀 북방민족스러운 제도가 아닙니다. 북방민족중 유목을 주로하는 쪽 자식이 장성하면서 재산의 일부를 내주며 다른곳으로 보내는 즉, 우리가 흔히 그 내용을 착각하는 말자상속을 주로합니다. 이것은 한정된 자원과 공간(흔히 땅이 넓다고만 착각하지 목초지로서의 땅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을 혈족이 분배하는 방식인데 여기서는 자식마자도 가능성이 없다면 매정하게 죽여야하는 적자생존의 투쟁이 여일 합니다. 그런데 함부러 군 입을 붙이는 마복자제도가 북방민족의 것이라...... 초원에도 양자제도가 잇으나 이는 자기의 자식을 교환하는 형태이지 함부러 남의자식을 주워 양자라 하는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마복자제도 그 진위조차 불분명한 '화랑세기 필사본'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게다가 마복자 제도를 끄집어내면 즉각 미실-색공 즉, 포르노로 이어지죠! 꺼낼 가치도 없습니다. 게다가 가야는 북방계가 아닌 남방계문화 입니다. 인도와의 커넥션도 그러하고 가야의 철이 왜에서 발견되는 이런 일들은 가야의 남방설의 증거이죠! 한데 법흥왕이 북방계라면 어째서 어떠한 문화적 변혁이 없는 겁니까? '신라 흉노설'의 대표적 일례로 진행되는 내물 마립간의 경우만 봐도 그의 등극으로 신라전반의 문화적 색체가 바뀌었습니다. 한데 북연에서 내려온 유민들이 왕권을 거머쥐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 김유신은 이러한 김씨사회와 망해버린 가야유민이 어떻게 합작하여 무열왕 혁명을 이루었는지를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열왕계야말로 북방이 아닌 남방과 신라의 융합정권일 터인데 어째서 혜공왕을 죽인단 말입니까? 언어도단! 후연과 북위는 분명히 모용씨기 권력을 쥐었지만 고씨가 왕이엇던 북연은 사정이 다릅니다. 건국자 모용운은 원래 고구려 사람으로서 개국후 스스로 성씨를 고씨로 되돌렸으며, 이후 등극한 풍씨계 왕들은 한족입니다. 게다가 북연의 건국지가 부여와 고구려인들이 많이 살던 곳입니다. 선비족 모용씨가 권력층에 있었다지만 결국 고구려계와 한족계에 밀려나죠! 어딜 보던간에 선비족 정권이라 말 할 순 없습니다. 장수왕이 3대풍홍과 유민을 받아들인것은 동족의 예였지만 풍홍이 배신하고 다른쪽으로 붙으려 하자 죽여버린 것입니다. //북연 왕은 "실은 고구려 땅은 우리 선조들인 예족의 땅이다"는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장수왕이 죽여버렸다네요. //라는 주장은 단지 일면적인 것입니다. 사로국 6촌으로 시작한 신라는 고대 오아국이 그렇듯 그 형세도 강약을 거듭하며 변동 했습니다. 마침내 신라가 금관가야를 정복한 것은 신라로서는 큰 성취이자 행운이었지요. 금관가야는 6개의 가야대국들의 우두머리엿으니까! 당연히 유민을 흡수하고 그 지배층을 다독여야 했지만 신라자체의 형세가 그리 시원치 않아 망국의 왕자들이 남의나라 전쟁터에서 장군으로 뒤어다녀야 했습니다. 즉, 신라의 가야계는 군공으로 중앙으로 진출한 것입니다. 이러니 사묵통일이 김유신과 김춘추의 공동작품이라 하는 겁니다. 게다가 문무왕은 이 두 혈연의 합작품이죠. 이런형편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뭔가를 쥐어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권력 투쟁에 천착한것은 흥미잇지만 그 주역이 달랐습니다. 모용씨라뇨???????????
@Jeong-eun2 жыл бұрын
선덕왕은 37대 780~785년 이고 흥덕왕은 42대 826~ 836인데 선덕왕이 추봉했거나 원성왕이면 한참 뒤 흥덕왕은 좀 삼국유사에는 경명왕이 흥호대왕으로 추봉했다고도 하는데요.
@romanticist6403 Жыл бұрын
진흥왕 진지왕 법흥왕 아닌가? 김유신이 왕이 된건 진골인 가야계가 왕권을 가졌다고 봐야 되는거 아닌가요.신하가 왕이 된다.자손이 왕이 되어야 가능 한것이 아닌가
@finegap6243 Жыл бұрын
금관가야가 고구려 5만 원병에게 패하고 신라에게도 밀리면서 결국 신라에 투항은 했지만 그 당시 열도에 진출해있던 가야세력들과 금관가야 망하고 왜 열도로 넘어간 이주자들과의 결속력은 무너졌을거 같아요. 한쪽은 신라에서 통일신라 후손으로 한쪽은 왜에서 일본으로 이어지는 계통이 있을거 같은데 이 부분도 파헤치면 뭔가 나올거 같거든요. 하지만 한.일 양국에서는 왠지 금기시할거 같습니다.
@Silla__Kim.Yu-shin Жыл бұрын
님의견이 맞음 중국 일본 한국은 다 같은 핏줄임 삼국대륙설이 맞다면 우리 아시아 동양계는 중국에서 한반도 반도에서 열도까지 이렇게 나감 즉 쉽게 예를들면 중국이 고구려 백제가 일본 신라가 한국
@김명곤-l7q3 жыл бұрын
구형왕 가야를 신라에 받침(진골)>신분은 진골이지만 가야계라는 차별 때문에 신라계 진골 공주와 도망가 결혼 이후 각관까지>김유신으로 오면서 저물어가는 종교의 신녀와 사랑에 빠짐>신분혼 때문에 신녀를 버림>통일신라 이후 성골 출신의 남자가 없어서 진골이 왕이 됨>공이 뛰어난 진골 김유신도 자연 스럽게 왕으로 추서됨
김유신은 고대사 우리 역사의 가장 유대한 인물이라 할까? 이순신은 조선의 장수! 두분 다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윤재희보물섬2 жыл бұрын
도대체 엄청나게 긴 내용의 대사를 어떻게 이렇게 외울 수 있을까? 참 신기하네 혹시 눈앞에 대사 내용이 적혀 있나? 아는 사람 알려주세요. ... 단순히 암기?
@승승장구-c2q Жыл бұрын
네 앞에 자막 다 설치되어 있습니다
@Jeong-eun3 жыл бұрын
진흥왕이 무력할아버지 형 세종이던지 아님 조카 같은데
@아이스망고-k6c3 жыл бұрын
난 개인적으로 신라하면 매소성전투에서 당나라기병20만명을 신라보병3만명으로 이긴거 제일 미스터리함 그것도 공성전이 아닌 평지에서 싸워서 이긴거라ㄷㄷ
@박광수-v6m3 жыл бұрын
으스왕.목에서 핏물남수다잉.
@호야-h7r3 жыл бұрын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정확한 증거를 좀 가져오셈 맨날 개소리하지마시고
@j.c.s77623 жыл бұрын
부풀려진 부분이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당시 당이 20만을 동원할 여력이 안되었거든요 당고종 병에 시달리고 당태종때 공신들인 기득권 세력과 신흥세력의 지지를 받는 무측천의 파벌싸움이 심각했고 돌궐,거란,고구려 부흥세력들에 신경쓰느라 당태종때처럼 국력이 하나로 모이질 못했습니다
@강지원-z4s3 жыл бұрын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임나 그거 허구인거 다 밝혀졌고 그리고 고구려 백제가 왜 중국사냐 그럼 니는 한국전쟁 북한이 남침한거 아니라고 중국애들이 그러는데 그말도 믿겠다 그리고 전라도 비하발언 하지마라 일본이랑 전라도가 한통속이라고
@이관호-f7t3 жыл бұрын
아이스망고 그러면 고구려 수나라 120만대군 몰살시킨건믿고 학술대회서 한국역사학자들이 중공 역사학자들한테 고수전쟁 고구려승리 말하니까 전부배를잡고 웃었다는데 이머저리야 이전쟁 기록도 고려중기 삼국사기의 김부식이가 기록했다 너거들이 말하는 중화사관이라고 하는사람이 좌발들역사 희한하게 가르쳐놨어
@김유성김12 күн бұрын
김용호
@user-oh9hh8rp9d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역사상 한나라가 여러나라와 동시에 전쟁을해서 이긴것은 김유신장군의 힘이컷다고 봐야죠 일본은 군대규모로 수시로 침범하였고 당나라는 서해와 북쪽에서 끈임없이 몰려와서 전쟁중 김유신의 늙어사망도 국가적 큰위기였고 죽어가는 김유신에게 전쟁조언을 구하고 위대한 전쟁을 마무리한 문무대왕도 대단함
@Silla__Kim.Yu-shin11 ай бұрын
맞음 이순신보다 더 대단하고 뛰어난 인물임 낭비성 무쌍부터 군량수송까지 백제의 브레인 성충을 무너뜨린 것도 김유신의 첩보전략이고 사실 의자왕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과장됐고 김유신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중국 삼국지로 치면 주유+육손+제갈량+관우를 합쳐 놓은게 김유신임 통찰 통솔 무력 지력 정치 매력 모든것을 갖추었음 거기다 단명이나 전사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80세 가까이 장수했고 고구려 백제가 내분의 난으로 망할때도 그불리했던 비담의 난을 연을날려 역전시킴 거기다 여왕들과 김춘추까지도 김유신을 의지했고 고려거란전쟁 고당전쟁보다 문무왕의 라당전쟁이 더 치열했고 대단함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역사를 찾아봐도 김유신같은 인물은 없음 일단 가야+신라=태생부터가 범상치않고 관산성전투의 영웅 할아버지 김무력의 손자라는 것부터가 예사롭지않음
@clubking4849 ай бұрын
김해김씨는 어느 성씨보다 시조 두분의 묘가 생존하고 그 후손중에 왕의 칭호를 받은 분이 있으며 또, 김대중대통령을 배출한 어느 성씨보다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겠지요 단,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거울삼아 우리 후손들은 더욱 정진 노력해야 부끄럽지 않겠지요
@팩트퍼6 ай бұрын
김돼중외? 가는 아니다 돼중이는. 원래. 유 씨다 엄마가 재혼해서. 새 아빠가 김씨라서 김씨성. 따온거다
@sarahfox8639 Жыл бұрын
김유신이 없었다면 통일신라도 없었다. 김유신을 왜 깎아내려서 그의 공을 축소시킬까.
@johnathanha9340 Жыл бұрын
김유신의 부모들이 신분을 초월한 사랑으로 김유신을 낳았고 김유신은 천관녀를 사랑했지만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상승함에 따라 고유 신앙을 믿었던 천관녀를 사회적 지위가 사라짐에 따라서 출세해서 국가를 위해 공을 세우는 게 먼저였던 김유신은 천관녀를 멀리할 수 밖에 없었군요. 존귀한 가치를 위해 사랑마저 버린 김유신 장군의 절개를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늘-m1j2 күн бұрын
😂😂전어릴때 위인전 보고 엄청좋아하게 😢😢백제는 싫겠네😂😂위대한 김유신량 김해 가야는부산
@문무대사3 жыл бұрын
김유신장군은 태를 명당에 뫼셨드라구!
@ddanddanrani3 жыл бұрын
천관녀는 기생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신녀(무속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일때 토속종교와 함께 융합했습니다. 왕족은 불교를 공인했는데, 토속종교를 받드는 천관녀를 만명부인은 허락해줄수가 없는거죠...
@하하-s7e9l20 күн бұрын
진짜 신라가 굴욕외교를 시작안했더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어유 망국의길로간 시발점이 김춘추딸래미복수였다니 ㅠㅠㅠㅠㅠ
@마속산악회5 күн бұрын
그 굴욕외교 안했으면 나라가 뒤졌을 판국이라. 신라 입장에선 애초에 타국 땅이었던 백제랑 고구려 땅에서 당나라가 좀 떼가더라도 신라 위협요소는 사라지고, 국토는 넓어지는거여서 손해볼게 없었음. 그리고 김춘추 입장에선 당장 자기 딸 복수+자기 고국 안위가 중요할까 1000년후에 신라가 있을지 없을지도 장담 못하는데 미래 후손들 땅 손해보는게 중요할까?
@813기김동혁필승2 жыл бұрын
김해김씨 할아버지
@김치맨-f5e Жыл бұрын
저자인 김부식이가~ 김유신이가~ 영웅대접~~ 은근 빡침이 느껴지심.ㅋㅋㅋ
@Jeong-eun3 жыл бұрын
8월에 폭우에 태령산 갔는데 비오는데도 매미가 많이 울어서 할아버지께서 반겨주는 거 같았는데. 편안하고 경주는 그런거 없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Jeong-eun3 жыл бұрын
백전 백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뼈를 깍는 수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박흥식-e9d2 жыл бұрын
고구려도 없이 어떻게 삼국통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유승두-c8t3 жыл бұрын
장군은 장군 왕은 왕이다 어찌 장군이 죽은후 왕으로 불린단말인가? 이해하기어렵다 차라리 대 장군 이라고칭하는게 옳을듯! 그렇다면 이순신장군은?
@해민-k8z9 ай бұрын
😊
@Kraftwerk-vf8ej3 жыл бұрын
2005년?
@JD-hd1vq Жыл бұрын
우리할배가 말했다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 남는자가 강한기라 어이!"
@kyumanyang69413 ай бұрын
혹시 할아버님 함자가 장자 필자 호자(아명 김범수)이신지요?
@Jeong-eun3 жыл бұрын
가야가 최후의 승자지 후손이 제일 많으니까
@hyeonjunkaya43543 жыл бұрын
맞죠 일부러 왕관 금관을 내려놓구서 1선 전투를 한거죠 ㅎㅎㅎㅎ 신라 그자체 왕도 자신이 만듬
@김민제-o7v3 жыл бұрын
뭔 말도 안되는 소리세요... 그 후손이 정말 다 진짜 김해김씨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Jeong-eun3 жыл бұрын
@@김민제-o7v 진짜가 아니라는 증거는 뭐지? 성씨 콤플렉스 있는지 함 돌아보세요.
@Ross6437-k2w2 жыл бұрын
가짜 김씨들 믾은건 사실이지
@제이에스홀드-e1r2 жыл бұрын
아주 도배를 하네
@kchurh0.042 жыл бұрын
가야
@jgjt22213 жыл бұрын
달마가 동쪽으로 간 이유겠지
@kyungsookoh18937 ай бұрын
만약 고구려가 이나라를 장악했다면 만주땅도 대한민국 땅.. 그리고 남과 북이 갈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정수영-f7s4 ай бұрын
지도가가..업는데 만주를 먹는다 ㅋ
@정수영-f7s4 ай бұрын
..만약 김구같은 사람이 고구려 있으면 .ㅡ건드려볼만a
@김유진-e1m3 жыл бұрын
중시조님!
@zxcv0155 ай бұрын
진쳔 보탑사 밑에 생가가 있다
@구르미-t9y3 жыл бұрын
우리 할아버지....ㅎㅎ
@Jeong-eun3 жыл бұрын
신라를 위해서 목숨을 건 유신 할아버지께서 가야를 찾을 시도도 안했다는 것이 나는 가야가 신라로 국호를 개명했다고 보는 것이기도 하고
@Silla__Kim.Yu-shin Жыл бұрын
어무니가 신라면 왕발인데 굳이 시도할 명분이 없지 증조부터 무력의 관산성 성왕 참살 1등공인데 가야를 세우면 조상들의 업적을 한순간 모순이지
대한민국 식민사학의 계繼 보保 자者놈들... 제1세대 이병도 신석호 손진태 제2세대 김철준(전 서울대 교수) 제3세대 노태돈(서울대) 이기동(동국대) 주보돈(경북대) 잊지말라 한국 🇰🇷 역사왜곡 🇰🇷 바로 세우는 혁명입니다
@johnathanha93403 жыл бұрын
김유신이 사후에 왕이된 것은 온전히 그의 업적 때문이 아니라 그의 가문의 힘도 있었쬬
@hyeonjunkaya43543 жыл бұрын
업적때문인데 신라그자체인데 백제 고구려 당 왜 까지도 신라하면 김유신인데 왕들은 그져 국가를 지키기 위해 세운애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실제 힘은 가야왕족
@saru53273 жыл бұрын
김유신 후손들 나중에 처형됨 ㅋㅋ
@위장염3 жыл бұрын
망국 가야 왕족 가문이 뭐 그리 엄청난 스펙인지
@hyeonjunkaya43543 жыл бұрын
@@위장염 대단해서
@hyeonjunkaya43543 жыл бұрын
@@위장염 대단한 나라 왕족 이니까요
@user-kdg3hsjab8n9 ай бұрын
한국역사상 현대들어서 가장 저평가된 천년의 리더 흥무대왕 태대각간 김유신
@금아무르3 жыл бұрын
김유신,김춘추.. 위대한 김씨에 의해 우리나라는 경상도 변방에서 확장하여 광활한 백두산까지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우리 한국은 위대한 신라김씨의 후예국이다..
@금아무르3 жыл бұрын
@폭행몬스터 예. 하지만 고려가 껍데기는 고구려를 계승한다 하였으나 속은 신라김씨가 운영한 나라였고, 조선이 다시 그 신라김씨에 의해 지속된 것이니.. 그런 의미입니다..
@최준철-o6z3 жыл бұрын
얜 도대체가.....ㅠ
@sungbinee83 жыл бұрын
현실은 왕건에게 참교육 당하고 고려에 흡수됨 현재 한국인중에 신라후예는 존재하지 않음 경주김씨도 전부 신라인이 아닌 고려인임 왜냐? 왕건이 흡수해놨거든 한국의 영어명 korea도 고려임 뿌리를 왜곡하지마 꼬우면 왕건처럼 후신라 만들어서 고려 신라로 흡수시켰어야지 ㅋㅋ
@fdasjd3 жыл бұрын
목이 안말랐나부징...
@두혁임-g4z3 жыл бұрын
가이
@김종국-h9q3 жыл бұрын
나의중시조님이다 후손으로 삼국통일를 한민족에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광수-v6m3 жыл бұрын
누구여?
@이관호-f7t3 жыл бұрын
김춘추 김유신 아녔음 우린중공 조선족자치구다 이민족의정체성을 만든분이시다
@김종국-h9q3 жыл бұрын
전 신라김않입니다 가야인입니다
@김용재-q5k3 жыл бұрын
잘못된 전교조 선생들의 억지를 믿으시는군요. 역사는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않됩니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야지요.
@강지원-z4s3 жыл бұрын
역시 전교조가 학교 다 망쳐놓네요 제가 초 중 고 다닐때 학교 멀쩡했거든요
@yidoyoungful3 жыл бұрын
김유신 장군을 듣다보니 미라클작전이 보인다 앞장서는 장군!
@청석-s1x Жыл бұрын
가야 후손 김해김 당나라에 나라를 넘긴 김유신 우리 집안이다 쪽팔리긴하지만
@Silla__Kim.Yu-shin Жыл бұрын
고구려를 넘긴거지 나라를 넘긴게 아니고 한반도에 같이 있던 외세들이 싸운것을 왜 한민족이니 외세니 따지지 7세기동안 물고뜯고하다 이제와서 한민족 외세타령 신라가 통일후 한민족 개념이 생긴건데 여튼 바보들이 항상 내세우는 주장 민족을치고 외세를 끌여드렸데 그럼 지금 남한은 미국도움 받아서 민주주의 이룬건데 그것도 참 쪽팔리는 일이지? 무식한게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더니 그리고 백제는 가야 일본 고구려는 말갈 외세 끌여드려 5:1로 신라 한민족 공격안했나? 바보들이 많이 믿고있는 진흥왕 신라 통수설도 실상은 그반대인데 그리고 고구려 백제가 망한것은 1차적으로 내분으로 썩어서 말아먹은거지 예식지 개소문이 같은 쓰레기들이 판을치고 신라도 비담의 난이 있긴한데 영웅 김유신이 진압했고 역시 신라는 드라마틱하고 클라스가 달라 가야병합에 이사부 김무력 걸출한 무장도있고 화랑에 여왕까지 고구려 백제는 부여계 형제국인데 왜 둘이 싸우지? 그러다 또 둘이 손잡고 신라 공격하고 그러다 둘다망하고 ㅉㅉ 고구려백제랑 가야신라는 근본적으로 태생부터가 차이나지
@김준석-l3x11 ай бұрын
백제쳐부술때 당나라와 잠깐동맹한거외에는 당나라에 나라를 넘겼다는건 모르겠고 오히려 김해김씨면 김유신 장군님을 가문의영광이자 영웅으로 추앙해야 하는거아님? 김유신 장군님의 위대한 업적들과 명예덕분에 망국으로 실추된 가야계 왕국 후손들의 명예가 그나마 사니까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