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70년대 삼기초등학교 출신으로 소풍갈때는 무조건 미륵사지로 나녀온 기억이 솔솔 합니다. 그때도 탑주변에 초가집이 있었고 우물이 있었는데 두루박으로 물을 떠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 오랜시간이 흘러도 자랑스럽습니다.
@costadelsol14287 ай бұрын
진짜 일제에 약탈 안당한게 부처님의 가호네요. 마을 이름도 괜히 왕궁리가 아니었네
@user-o8jf68ut6g3g7 ай бұрын
일본 이 아니라 몽골 중국 신라 조선이 약탈 파괴했겠죠
@shinh.2174 ай бұрын
뻑하면 반일이냐? 역사도 존나 모르네. 1400년전에 일본의 고대 국가를 세운 주세력이 누군지나 알아? 그때 일본 원주민 도래인에게 개빅살 났겠지, 일본천황은 누구의 후손? 그 도래인이 누구냐고? 모르면 인터넷에서 찾아봐라!
@TV-gi7vi7 ай бұрын
5:27 미륵사지 왕궁탑과 왕묘는 국민학교때 학교에서 단체로 걸어서 학교 소풍을 자주 가던곳이라 익숙하다 보물찾기도하고 추억이 가득한곳
@소설-p5k7 ай бұрын
저 쪼꼼한구멍에서 이렇게 많이 나왔는데 왕묘를 하루만에 발굴끝내 버리다니 ㅠ
@Whatareyoulookingat-j9e3 ай бұрын
그래서 ㅜㅜ 무식하면 용감 하다는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알았더라면 그렇게 못했겠죠 안건드니 못한일이 되었어요 ㅜㅜ
@썬타-f7v2 ай бұрын
@@Whatareyoulookingat-j9e 인간의 욕심은 추악하네요네
@hermess27207 ай бұрын
백제 신라 고려 문화재 보면 엄청나게 뛰어난데 왜 조선으로 오면서 다운그레이 된거 같음....
@김흐그귝7 ай бұрын
@@Silla_Gates5 이 븅은 뭐지?
@captain53957 ай бұрын
유교의 영향이 아닐까 합니다.
@zirimong7 ай бұрын
여기도 개가 하나 설치네
@아놔키스트-e4f7 ай бұрын
@@Silla_Gates5 빙고
@TV-gs2gg7 ай бұрын
성리학을 국교로 삼아서가아닐까요? 군자타령에 여자는 여필종부로 가두는 삶만 강조했던 조선시대
@0773kim7 ай бұрын
백제 왕족,귀족들의 반대에 결혼하기 힘들었을것이다, 그러나 선화공주가 사택적덕의 수양딸로 들어 갔다면 혼인 할수 있었을것이다, 무왕이 선화공주를 지극히 사랑했다면, 총리급 사택적덕과 의논 끝에 사택적덕의 수양딸로 들어가서 백제의 풍습도 배우고 백제의 왕족으로서 학습하고 혼인 했으리라 생각 된다 ! 당연히 개명 했을것이고 !
@TV-gs2gg7 ай бұрын
동감입니다
@타이요-j3g7 ай бұрын
새롭게 입증할 정사가 없는 이상은...소설에 무게가 실리는건 어쩔수 없죠
@foodvideo37817 ай бұрын
사리함 언제 개봉 하나 영상 봐도 X레이에서 끝나고 나중에 열었나 봅니다. 부처님 사리 보기 힘드네요. 백제 개국공신 후손이라 그런지... 미륵사지 4번은 방문 했던 거 같네요. 부여 갔을 때 박물관 학예사한테 수도라면서 무슨 탑이 작고 미륵사지 탑은 엄청 크던데요. 질문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에게도 교토에서 나온 문서 보니 충격이면서 이해가 좀 가네요... 그런데 미륵시지도 왕후 파워라니...
@키요하-z7u7 ай бұрын
우와 금세공기술 진짜 대단하다
@박성광-k8t7 ай бұрын
제 생각엔 무왕의 아내가 사택왕후 선화공주외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데~ 아마 그 왕비가 의자왕의 어머니가 아닐까싶네요~ 즉 선화나 사택왕후 두분다 의자왕의 어머니는 아니라는거죠~ 전 그렇게 압니다
@jufit48655 ай бұрын
:그예기는 ~어디서 줒서들엇는지.. 그런과학적 근거 어디있는지.. 의심스러운.. 의자황제 의 모후가 :선화황후 라 믿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편..🔥🌋
@박성광-k8t5 ай бұрын
@@jufit4865 역사서에도 선화공주가 의자왕을 낳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MX_Korea7 ай бұрын
진짜 역사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댓글 남깁니다. 의문투성이인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민족의 역사에 다가가시고 싶으신 분들은 Sumin Park님과 책보고님 영상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제의 중심은 북경과 산동 반도입니다. 백제 귀족 성씨 8개 중 대다수가 현 산동 반도에 있습니다. -천문학으로 당시 고대 수도의 위치 기록을 보면 고구려는 몽골, 백제는 북경, 신라는 초기 신라: 중국 동부 양자강 일대, 후기 신라: 한반도로 나옵니다. -백제는 패망 후 열도로 건너가 신라+가야+빙하기 전 건너온 고대 한반도인을 통합해 만든 게 '일본'입니다. 당시 일본 열도는 가장 강했던 세력이 신라, 가야의 철기병이었는데 여기에 건너온 백제인들은 철기+'철기마병'까지 운용해 백제가 지배 세력이 됐습니다. -교토 쪽에 있는 '나라'현도 우연이 아닙니다. '나라'는 신라어이고 '국'은 백제어입니다. 이 나라 현은 신라-가야 세력이 지배하다 열도로 온 백제가 지배하게 됩니다. 일본어의 뿌리는 한민족의 백제어입니다. 대륙과 한반도에 사는 우리 한민족은 신라어를 쓰게 됐고 '조선의 한글 창제'까지 겹쳐 현재에 이르게 됐습니다. -또한 '대진국'을 '발해'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 이는 한족이 '진국', '후고구려'를 낮추어 부르던 말입니다. -역사서 '고려사'에서 고려는 동서가 2000리 남북은 1500리로 동서가 남북보다 길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 교과서에선 남북이 더 길다고 가르칩니다. 고려 역시 진짜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는 말할 것도 없고 북경과 산동 이남까지였습니다. -'환빠'라고 비아냥 거리는 상식 이하는 역사 도둑질 하는 한족이나 매국노라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우리 한민족(동이족:동쪽의 큰 활을 든 민족)은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에서 뛰어난 역사(홍산 문화)를 가진 민족입니다.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가도 됩니다. -예맥(우리) 동호(선비[수, 당]-거란[요]-몽고족[원]) 숙신(말갈-여진[금]-만주족[후금,청]) 모두 한민족의 갈래이며 특히 원나라(동호)와 금-청나라(숙신)가 들어서면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관계가 역전됩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몽골이 다 쓸어버리면서 고려만 살려둔 건 당시에도 형제국이라는 걸 간접적으로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현 중국에 사는 한민족의 갈래(특히 산동 반도와 만주), 조선족, 고려인 모두 몇만년에서 몇천년을 함께 살아왔고 떨어진지는 고작 몇백년 밖에 안 됐습니다. -한족의 역사 왜곡으로 우리의 형제들은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몽골과는 진정한 형제국으로 통일 후 가장 유대감을 가져야 하고 연합해야 합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또 다시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날진 모르겠지만 진짜 역사를 알고 있는 이상 올바른 역사를 알리려는 노력은 해봅니다. 대한민국 만세.
@썬타-f7v2 ай бұрын
역사학자신가요?😢
@HdtygvddАй бұрын
역사를 모르는건 당신인듯 이미 역사학자나 국제적으로도 삼국의 수도가 한반도로 되어있는데, 한 두명이 뇌피셜로 말하는걸 가지고 믿음? ㅋㅋㅋㅋㅋㅌㅌㅌ
@MX_KoreaАй бұрын
@@Hdtygvdd 일제가 만들어놓은 거 그대로 가져다 쓰는 식민사학자들 덕분이지만 그게 진실은 아님. '민족 말살 정책' 펼치던 애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기록했을까? ㅋㅋ 올바른 역사 찾아가려는 건 문제가 안 됨. 너 같이 닫혀있는 애들이 문제임 ㅋㅋ '본인이 배운 거랑 다르다?' 내용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아니다" 하는 애들 ㅋ 너도 일제나 식민사학자들과 다를 게 없는 애들임 ㅋㅋ
@MX_KoreaАй бұрын
@@Hdtygvdd 뭐 아니꼬운 거 있음 반박을 하지 ㅋㅋ 두루뭉실하게 그렇게 말하는 게 오히려 '난 역사에 대해 잘 몰라요' 하는 거 같네 ㅋㅋ
@MX_KoreaАй бұрын
@@Hdtygvdd 다른 댓글에서 정치 이야기 하는 수준 잘 보고 왔음 ^____^ ㅋㅋㅋ 너 같은 애들한텐 뭐 더 이상 ㅋㅋ
@송인관-j9rАй бұрын
무왕의 첫번째 부인은 선화 공주이고, 왕위에 즉위한 후 왕비는 사택 가문의 여성이다. 이렇게 정리할께요.
@yrk20967 ай бұрын
아나운서님 59:26초 진평왕의 첫째따님은 승만공주가 아니고 "덕만공주"이신 선덕여왕이십니다~~수정요청바랍니다
@박성광-k8t7 ай бұрын
근데 서동요 드라마보면 신라 진평왕의 세 딸 중에서 둘째 천명공주와 셋째 선화공주의 사이가 안 좋은걸로 나옵니다 즉 천명공주는 선화공주를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거죠~
@mingkisu88097 ай бұрын
2009년 방송이라는거 안보이시나요?
@yrk20967 ай бұрын
@@민트-f9r 화랑세기에는 첫째가 천명공주,둘째가 선덕여왕인 덕만공주라고 되어있고요 삼국사기에는 첫째가 선덕여왕인 덕만공주라고합니다 이렇듯 의견이분분한데 삼국사기가 더 유력하다고합니다~~
@LetsTalk-hu5pj4 ай бұрын
일본에 남아있는 기록에서 의자왕이 사택씨 죽고나서 그녀의 측근들 다 유배보낸거 보면, 의자왕은 선화공주의 아들이었을 거란 추측이 맞을듯. 적국이더라도 신라의 아름다운 공주와 자신을 조종하려하는 사택씨 가문의 딸, 둘다 겉으로 보기엔 정략 결혼인데, 결과적으로 무왕의 아들이 의자왕인거 보면 선화공주를 더 사랑한게 아닐까. 자신과 처지도 비슷하고. 게다가 이쁘고. 사택씨는 선화공주의 아들인 의자왕이 얼마나 꼴베기 싫었을까요. 아들까지 낳았으니.
@hdcho44867 ай бұрын
시대적 배경이 맍질 않네. 무왕때 14회 이상 신라를 공격했는데, 선화공주랑 사귀다니?
@yeonna20057 ай бұрын
@@Silla_Gates5 얘는 또 뭐지??
@ss-wi1nb7 ай бұрын
@@Silla_Gates5 신비성1도 안보이네
@이성민-d9v7 ай бұрын
@@Silla_Gates5 식민사학에 홀딱 반하신 모양일세.
@올리고당-o3w7 ай бұрын
@@Silla_Gates5 일본서기 자체가 개구란거 전 세계가 다 아는데 님만 모름? 마치 삼국사기에 일본서기를 써 놓은 것처럼 글을 쓰는데 실제로 백제가 일본을 정벌한 기록도 있고 일본왕이 우리의 뿌리는 백제인 이라고 말도 했어 도래인 설도 있고 일본을 좋아 하는건 알겠는데 구라는 치지말자 알고도 그랬다면 간첩 이고 모르고 그랬다면 멍청한거지
@이슬-y2v5 ай бұрын
신라 입장에서 썼으니 정략결혼이 아닌 사랑이라고 썼겠지
@mykang6574Ай бұрын
소정방이 새겨놓은 치욕...😢
@임태우-q7v7 ай бұрын
미륵사지 사리구명문발견을 통해서 선화공주와 서동얘기는 설화라는게 밝혀짐
@hdcho44867 ай бұрын
애고고....한가지 밖에 모르는 예수 신도님아. 임금이 부인이 1명이겠냐? 서동이 임금되어 15~16년간 재위 기간중에 왕비가 1명이겠냐고. 선화공주는 총각때 사귀었으니 첫번째 왕비일테고, 미륵사를 건립하기 위해 시주한 사택적씨 부인은 몇번째 부인인지는 모르지.
@saywhat77 ай бұрын
@@Silla_Gates5 바보임?
@예쁜나-v8s5 ай бұрын
선화공주의 실존 여부도 알 수 없고 삼국유사에 언급된 건 그냥 설화죠.
@pandapink88044 ай бұрын
@@예쁜나-v8s 유력한 설 로써는 선화공주가 일찍죽고 그뒤에 왕후로들인게 사택왕후라는거
@youngcho21827 ай бұрын
구전만 있는데 구전도 나중에 보면 진실이 많았음! 버려질수도 있음
@SKYq-c7p6 ай бұрын
내생각ㅇㄴ 정략결혼인데 둘이 잘 살고 두 나라에 평화가 깃들길 바람에서 약간 조작된듯
@속속미러6 ай бұрын
잘 관리 해주세요 일본 간첩들이 언제 훔처갈지 모르니 침바르고 있을껍니다 중국 간첩도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