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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 3년 동안 조선이 국가총력을 기울인 도적과의 전쟁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각인된 임꺽정의 모습은 ‘의적’이다.
그렇다면 역사속의 실제 임꺽정은 어떤 인물일까? 실록에는 임꺽정이 무려 3년에 걸쳐 관군과 전면전을 벌였다고 기록돼 있다.
임꺽정의 본거지인 황해도는 공권력이 무력화된 무법지대에 가까웠다.
바짝 애가 탔던 당시 조정의 성화에 공을 세우려는 고을 수령과 토벌군들이 가짜 임꺽정을 잡아 올리는 사건까지 속출했다는데...
임꺽정이 도적이 된 이유는 ‘갈대밭’에 있다?
당시 권문세가들 사이에서는 간척지 개발 붐이 인다. 백성들의 터전은 개간의 대상지가 되어 강제로 빼앗겼다. 임꺽정의 주 활동무대였던 황해도 봉산 역시 갯벌로 갈대밭이 무성했던 지역. 특히 이곳의 간척을 주도한 사람은 당대 최고 권력가였던 문정왕후의 동생이자 명종의 외삼촌이었던 윤원형.
간척으로 토지를 확장한 권문세가들은 부를 더욱 축적해가고 농민들의 삶은 피폐해져 가는데...
조선의 사신, 명나라 과거시험문제에 등장했다?
권세가들은 상인들과 결탁, 간척지에서 생산한 쌀을 매점매석으로 판매해 폭리를 취했다. 대외무역으로까지 확장된 정경유착. 명나라에서는 당시 조선의 사신을 ‘달자’ 라 부르며 장사치 노릇에만 혈안인 사신의 행태를 비꼬았다. 당시 명나라 과거시험에는 이러한 조선 사신의 행태에 관한 시험문제가 출제될 정도. 이렇게 국제적 망신을 당해가며
수입된 사치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 양반들.
16세기 조선판 양극화의 실체를 조명한다.
양반지주보다 한 술 더 뜬 왕실의 횡포
당시 왕실의 실권은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쥐고 있었다.
문정왕후는 어린 명종을 대신해 20여 년 동안 척신정치를 주도한 절대권력자. 문정왕후는 환관들이 왕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던 내수사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켜 불법을 자행했다. 명종실록에는 내수사에서 땅을 빼앗은 사례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벼랑으로 내몰린 백성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명백한 도적 임꺽정, 왜 의적으로 기억되는가?
16세기는 도적을 양산했던 그야말로 ‘도적의 시대’였다. 그리고 임꺽정은 그 많은 도적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임꺽정을 의적으로 기억하게 됐을까? 임꺽정을 제압하기 어려웠던 것은 일반 백성이나 하급관료들이 임꺽정을 도왔기 때문이라는데... 그들은 왜 그저 도적에 불과한 임꺽정을 지지했던 것일까?
HD역사스페셜 49회 - 임꺽정, 조선의 로빈훗인가(2006.6.2.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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