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은 추운겨울에는 적군이 눈과 추위로 인하여 침략이 어렵고 평야가 넓어 식량이 풍부함 특히 철 생산이 많이서 무기 생산에 유리해서 도읍을 정한것 같음
@2f5lofbread572 жыл бұрын
그곳은 지금 료녕성 철령 입니다~고려의진짜 강역
@조원익-o4u Жыл бұрын
환단고기 개씹구라 믿는사람이 요기있네
@벅스스타-l9q2 жыл бұрын
이거 방송할때 20살이었는데 참 세월빠르다..그립다그리워
@임태우-q7v3 ай бұрын
저랑 동갑이시군요
@바쁜사나이3 жыл бұрын
궁예의 권력기반이 약했다는거죠 그러니 자주 국호를 바꾸고 철권통치한거죠.권력은 있는데 정치기반이 약하거나 정통성이 흐릿한 경우 강압 아님 폭압통치한 경우 많아요.
@진성김-b6z Жыл бұрын
궁예의 고구려 구토회복을 위한 북진정책은 긍정적으로 칭찬해야할 듯...
@왕건-d5v5 ай бұрын
구토보단 고토
@뉴행운-c1c3 жыл бұрын
역사는 승자의 기록
@능가라2 жыл бұрын
이 프로그램 다시 부활하자
@KSG-Catyear3 Жыл бұрын
부활했다가 코로나로 망했는데 다시 할까? 역사저널 그날이나 봐라
@기준송-f2x3 ай бұрын
망함😊
@잭팟-l3v3 жыл бұрын
결국 견훤과 마찬가지 운명이었지 지역 귀족세력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강압적이고 비상식적 방법으로 귀족세력의 힘을 억누르려고 하니 반발이 생기고 결국엔 쿠데타로 쫒겨나게 되는 과정... 역사적으로 폭군이라 평가받는 왕들의 대부분이 이런 귀족세력과의 권력쟁탈에서 패배하여 물러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해 악인으로 깍아내리는 경우가 많음
김두한(1972년 김두한은 오랜 지병이였던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빵하나 훔치고 감옥감 (궁예)맞아 죽음
@wena093 жыл бұрын
남은역사서가 죄다 고려조에나온건데 궁예한테 좋은소리를 할 이유가 없지...
@doraekim67083 жыл бұрын
ㅡㅡ9
@youtube郎人3 жыл бұрын
그류.
@예쁜나-v8s3 жыл бұрын
고려사는 조선이 썼어요
@wena092 жыл бұрын
@@예쁜나-v8s 고려조에서 나온역사서 토대로 쓴게 고려사 아무것도 없이 고려사를뚝딱 쓸수는없는일이니
@무명작가의인생강의3 жыл бұрын
나름대로의 철학이 깃듬
@조환-r6j Жыл бұрын
종간, 수양제 하면 김갑수
@사과-x7h4 ай бұрын
수양제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납니다 물론 종간도요😂😂
@경제적자유-p6s4 ай бұрын
종간나
@scbaek248 ай бұрын
궁궐은 언제 누가 허물었을까요? 조선시대에도 궁터밖에 안 남았다는데
@이동연-c6d3 жыл бұрын
썸네일 부터 관심법 사용할 기세 오오.
@kimjoonman75033 жыл бұрын
64
@terrrnia3 жыл бұрын
궁예의 침전바위 12:26 올라가보면 조망이 아주 좋음
@hazelnut37942 жыл бұрын
마구니
@멍자-f5x3 жыл бұрын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궁예를 쌩양아치로 묘사한 왕거니 세력이 오히려 교활하다고 생각됨
@나그네설움-b7y3 жыл бұрын
왕건은 왕이 되려고 14년을 준비 햇었다고 에전 학습지 총력테스트에서 본적이 있네요 ,, 궁예가 양길 밑에서 힘을 키우고 제거한 것 처럼 궁예도 똑같은 케이스가 된 겁니다
@gojeon-j1j2 жыл бұрын
ㅈㄹ하네 왕건은 명군인데 ㅉㅉ 궁예는 폭군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무능한 인간인데
@kanghyunyoo66903 жыл бұрын
김두한이 보입니다...
@무명의역사더쿠3 жыл бұрын
누구인가??
@Jnn-ef5zd3 жыл бұрын
태조왕건 보고온사람 손
@일론머스크-l2l3 жыл бұрын
짐이 국호를 마진으로 했으나 마진이 남질 않았네구려
@user-oj4fq5gg1b2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중 신라는 비단과 나침반으로 유명했던 나라입니다. 양자강 근처에 경주,팔공산,토함산,등이 있고,신라가 양자강에 가까이 있었기에 배기술과 항해술이 발전했고, 비단을 만들어 냈고, 나침반을 만들어 무역을 할 수 있는 나라 였죠. 이름 자체도 비단:신, 나침반:나 신라 입니다.(구당서 ) 이런 신라가 1000년간 중국대륙에 강성하게 존재했기에 아랍에 신라=신나= 실라=실나=지나=CHINA 로 아랍에 알려줬죠. 장보고의 청해진이 산동반도 이며, 그 곳에 장보고의 기록과 같이 나오는 법화원이란 절이 존재하고, 해상왕 장보고 동상을 모셔 놨죠. 장보고는 재물의 신이 되어 아직도 사랑 받고있습니다. 신라1세기 신라의 남쪽에 금관가야가 나라를 세웠다.(삼국유사) 금관가야도 초기는 중국대륙에 존재했다는 증거죠. 그리고 백제가 해상왕국으로 22담로를 거느린 대제국이 됐고요. 백제도 황하부근에서 배기술과 항해술을 발전시켜 무역과 국방력을 강화시켰죠. 백제가 위나라를 쳐들어가 격파했다(남제서), 고구려,백제 전성기에 유,연,제,노,오,월나라를 빼앗아 취하였다.(삼국사기) 백제가 강성해지자 한반도, 일본,타이완(와=왜) ,마카오,홍콩,등 22담로를 두어 다스렸죠. 일식기록은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기록입니다. 그 나라 일식기록은 다른 나라, 다른 땅에서 관측할 수 없습니다. 그 일식이 일어나는 그 지역에서만 관측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이 일식기록은 과학적 증거입니다. 백제가 패망하자, 그 땅을 고구려의 전신 발해와 신라가 나누어 가졌다.(구당서) 백제가 망하고 당나라가 백제땅에 5도독부를 두었다.(구당서) ㅡ대륙백제의 영토영역인 지역에서 (산동반도와 산동반도의 서쪽,남쪽,서남쪽) 5도독부중 덕안과 동명이 존재하며, 그 주위에 당항성,침구(탄현),무녕이 존재합니다. 계백장군이 전투하다 전사한 곳 황산벌이 한반도에 없습니다. 황산벌이 있다는건 황산이 있다는 것입니다.산동반도에 황산이 있고, 웅진성이 있고, 백제의 강 -백강(백마강)이 존재합니다. 이 지역에서 수 많은 백제의 유적,유물,지명이 나옵니다. 전주,기린봉,태평,안덕,화산,원산이 대륙백제의 영토에 똑같이 존재합니다. [삼국의 일식기록 고구려-바이칼호수부근 백제-황하부근 신라-양자강부근(삼국사기)] 요는 태행산맥입니다. 북에서남으로 흐르는 황하의 동쪽에 북에서남으로 길고 아주 험하게 뻗은 태행산맥이 요입니다. 태행산맥 (요)동쪽에 요동성이 있고,고려성,고려진,고려영, 안평,동황성,평양,고려촌,바닷가에 고려포,가 있고, 태행산맥 남쪽끝에 아버지 광대토대왕을 기리는 영락궁이 있고,역락성,영락진,영락영 이 있고, 태행산맥 (요)서쪽에 태원이 있습니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산동반도에서 남진하여 한성을 빼앗은 겁니다.한성,한수가 회수서쪽에 있습니다.양자강 근처지요. 한나라가 있었어야 한수가 존재하고,한성이 존재하는 겁니다. 이 시대에 한반도에는 한성이란 지명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황하에서 양자강까지 차지한 남진정책이죠.수 많은 고구려 유적, 유물 ,지명 이름, 등 존재합니다. 이세민이 연개소문에게 쫓겨 우물에 숨어 목숨을 건졌다고 당나라가 탑을 세운 곳인 몽룡보탑위치 산동반도 남쪽에 있고요-(현존) 살수대첩에서 살수의 뜻은 누렇다는 뜻의 투르크어 사르와 같습니다. 즉 누런 물을 뜻합니다.(아직도 사용하는말 -살구,살색 의 살과 같습니다.-살는 누런색 입니다. 황하는 누런바다이고, 누런 바다로 연결된 지류중 누런물이 흐르는 물줄기 입니다. 이 곳이 살수입니다. 서해바다 북쪽 바다는 "발해만" 이라고 표기(구당서) 그리고 후삼국, 신라,후백제,후고구려를 통일한 고려(고리) 또한 신라와 백제의 배기술과 항해술을 이어받아 무역을 통해 고려(고리)의 부국강병을 이루는 요소중 하나가 됐죠. 그래서 고려(고리)도 아랍에 알려지며 고리=KOREA 로 알려졌죠. 이렇듯 우리나라는 배기술과 항해술이 뛰어나서 아랍까지 무역을 하던 나라입니다. 고려는 요의 10만대군,40만대군과 싸워 이긴 나라 입니다. 송나라는 졌죠, 고려가 송보다 크고 강하다는 겁니다. 명나라 주원장이 송과 고려의 땅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송은 망하고 없어 인사를 못했지만, 그때까지 고려는 존재했기에 주원장이 고려왕에게 , 옛 주인에게 인사를 한겁니다. 조선에 와서는 고려때의 배기술의 하나인 거북선을 이순신 장군이 활용했고요. 우리나라의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왜,발해,고려는 강성해질때 마다, 육지로 이어지지 않아도 배로 진출하여 동떨어진 지역을 차지하기도 하고, 땅이 넓거나 멀어 서경,동경,남경,북경을 두기도 했습니다. 일식기록 지역에 가면 그 곳에 유물과 유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한반도에 메여서 연구하면, "모른다, 알수 없다"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 많습니다. 한반도와 중국대륙, 일본 등 모든 곳을 연구해야 합니다. 동이족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왜 이다. 왜는 와다.(구당서) 왜의 초기 일식기록 타이완(=타이와=대와) 고대(고조선)로 가면 더 넓은 영토가 우리나라 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이 우리나라의 제대로된 역사를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나라 역사는 가르치지 않고, 알려하면 역사들을 두죽박죽 섞어서 알지 못하게 하죠. 그런 일을 하는 곳이 교육부,강단사학계,국사편찬위원회,문화재청,등 이죠. 그래서 교육부,강단사학계,국사편찬위원회,문화재청 등을 개혁해야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일제시대때 일본식민사학자놈들 쓰다소키치,이케우치 히로시,이마니시 류,가루베 지온,등이 써준 역사입니다. 일제식민사학자 놈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교육부,강단사학계,국사편찬위원회,문화재청,등을 완전히 장악하여 100년 가까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가들은 한곳에만 그 나라가 있는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도 우리나라의 영토가 있었기에 일제식민사학자 놈들이 조작하기에 그 럴듯하게 보이기 좋았죠. 그리고 한반도에서 못 찾으면 억지로 지정하거나 모른다고 하는 겁니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이 깨어나서 역사를 지켜줘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일제 마지막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우리나라를 떠나면서 한말이 "조선은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은 더 걸릴 것이다. 조선의 역사를 섞어서 재창조해 놨거든.... 우리 일본은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놨다.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정말 아베노부유키가 있는 듯이 똘뚤 뭉쳐서 일제식민사학자 놈들이 써준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매년 일본 천황 생일잔치에 인맥 쌓으려고 참여하는 정치인도 있고, 일본 군대창립기념일에 참여하는 정치인도 있겠습니까! 이런 글을 보면 공격하는 놈들도 있고요, 우리나라 사람이면 좋은 정보 공유받아 좋아하는것이 당연한 마음인데....... 그 놈들은 이런 글 조차 단속 차원에서 공격하는 거죠. 아베노부유키 후손이나 다름 없는 놈들이죠. 얼마나 개혁이 필요한 부분인지 공유합니다. 많은 분들이 역사 채널 시청 할 때마다 이 글을 올려주어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하고 역사계쪽 개혁에 동참하길 바랍니다..ㅂ
@대권1위3 жыл бұрын
수도이전은 송악은 왕건의 성지라 철원으로 옮긴거지
@기준송-f2x3 ай бұрын
자신의 권력기반 강화+ 북진정책 때문에 철원으로 간게 맞을겁니다. 송악은 솔직히 발전 된 곳이지만 자신의 기반이 약했거든요.
@corea.3 жыл бұрын
왕건이 통일해서 다행 고려가 고구려 발해 이어져 오기 좋음
@산바다-f8j3 жыл бұрын
그러나 영토까지 얻지못한것은 아쉽네요
@corea.3 жыл бұрын
우리 생각은 한반도 통일해서 북벌 했을텐데 고려가 약했 거나 귀족들이 안 도와줬 거나 했겠네요
@김태호-j4d2z3 жыл бұрын
@@corea. 거란한테 정복안당한게 천만다행이지요 발해가 멀리 있습니까 거란이 고려정복하고 발해를 계승했다고 주창하면 그게 곧 발해지
@corea.3 жыл бұрын
@@김태호-j4d2z 강대국은 항상 있으니까요...
@j.c.s77623 жыл бұрын
@@corea. 고려초기에는 불안정한 내정을 외부로 돌리기위한 북벌이 필요한 시점도 있었는데 안하죠 득이 많았다면 시도했을건데 당시 전성기이고 세력 확장중인 요나라를 건들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을거라 봅니다
@한글닉네임좋아3 жыл бұрын
이방원 하면 유동근, 궁예 하면 이영철.. 진짜 역대급ㅋㅋ
@ggjs95613 жыл бұрын
김영철
@신관5층3 жыл бұрын
역대급이군
@카스-o4m3 жыл бұрын
이영철 은 누구인가?
@빈티지시계사랑3 жыл бұрын
@@카스-o4m 모욕감을 주는구만ㅋㅎㅋㅎ
@랄프-u4y2 жыл бұрын
이영철이 누구냐구???거침없이 하이킥 박해미의 첫사랑ㅋㅋ
@주상희-d6l3 жыл бұрын
미륵불을 자쳐한 궁예는 백마를 타는 등 겉으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노력도 했지만 결국 쫒겨 났음 ~~선군정치하다가 쫒겨날 뻔하다가 선당정치로 돌리다가 쫒겨나게 되는 누구와 비슷합니다.
@토마스-r3v3 жыл бұрын
아이패드 유익점!
@킹바보3 жыл бұрын
역사는 승자만의 전유물
@lcy03055 ай бұрын
현재 후고구려 태봉국 궁궐인 태봉국 철원성은 태봉이 고려에 멸망한 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알수 없다. 조선시대 인물 정철(1537~1594)의 관동별곡에서도 태봉 철원성은 빈 터만 남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태봉국 철원성은 현재 남북한 군사분계선을 정확히 관통하며 지금은 남북분단으로 끊어져 있지만 해방 이전 경원선은 남북 방향으로 관통했다. 3번 국도 역시 마찬가지. 최전방인 탓에 역사학자들조차도 접근이 쉽지않은 상황. 남북통일이 되면 궁궐 조사를 위해 경원선의 월정리~평강 끊어진 구간이 새로 이설되면 3번 국도 역시 새로 이설될 것이다. 태봉국 철원성 중에 가장 유명한 유물이 팔각형 오층석등(약칭 궁예 석등으로 강원 철원군 동송읍 중강리 소재)이 있었으나 6.25 이후 행방불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