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곳에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이었고 외야 백스크린근처에 있었죠. 어두웠던조명,엄청났던 응원열기,끝나고 동대문에서 버스타고 집에오던 기억.. 혹시나 40여년전에 내모습이 보일까싶어 한참봤네요..ㅎ 30년 이민생활로 몇안되는 어릴적 한국기억중 하나입니다. 고마워요~
@입장의동일함4 жыл бұрын
조계현 인터뷰 보니 고등학생때부터 말주변도 좋았구나. 내가 제일 좋아했던 야구선수 조계현. KIA 타이거즈 단장으로도 좋은 성과 거둘 것으로 맏는다. 조계현 화이팅.
@아이아이-e9v4 жыл бұрын
정말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어요 3등이라니!!
@careforcure4 жыл бұрын
내 마음속에 항상 남아있는 그 경기! 1982년 청룡기 결승 야간 재경기. 천안북일고등학교의 빨간색 유니폼... 그리고 너무도 좋아했었던 안성수! 서울 운동장 야구장(동대문 야구장) 1루측 상단에서 가슴 졸이며 응원했던 그 밤이 너무도 또렷이 기억이 나네요. 1회 유격수 조양근의 실책으로 실점, 2회초 역전에 성공했으나 다시 2회말 조양근의 연속된 실책으로 다시 실점. 어수선 했던 경기 초반 이후 반전이 없었던 경기 중반 조계현의 호투. 승부가 기울었던 경기 후반 옆자리 아저씨가 중학생이던 나에게 권했던 소주. 경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안타까워 했던 그 마음까지... 그 밤의 추억이 아련하네요. 3학년 이동석의 조력을 받았던 2학년 조계현에 비해 홀로 고군 분투했던 3학년 안성수! 떡 벌어진 어깨에 잘생긴 외모...그리고 강속구,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어디에서라도 그에 관한 자료를 보고싶었는데 이런 귀한 동영상을 보게 되다니 다시 한번 감격스럽네요.
@kbssports4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KBS스포츠]채널 담당자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예전 고교야구 영상을 더 찾아내서 지속해서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지마이클-u8c4 жыл бұрын
@@kbssports 예전 고교ㅡ대학야구 중계한것 많이즘 올려주세요 농구 축구 배구 도 올려주세요
@직진어쨌든-z6i4 жыл бұрын
사실 고교야구의 진짜열기는 70년대죠. 특히 TV의 보급이 일반화 되었던 70년대 중반 이후 79년까지 멋진 경기들을 안방에서 즐겨보던 소싯적의 추억이 생생하네요. 74년 대통령배 결승전 광주일고 김윤환의 국내 공식최초 3연타석 홈런,76년 군상상고 김용남, 경남고 최동원, 대구상고 김시진과 이만수, 77년 광주상고 김대식,신일고의 김정수, 78년 양상문의 부산고, 봉황대기인가 아무튼 윤학길의 부산상고와 윤석환의 선린상고의 조금은 싱거운 승리로 끝난 결승전, 79년 봉황대기 서영무감독의 서울고와 대구고의 난타전, 중앙고의 안언학과 군산상고의 역전의 재역전의 명승부, 만년 준우승팀 인천고의 최계원과 이순철의 광주상고의 봉황대기 결승전등 일일이 열거할려면 엄청나죠.표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 당시 고교야구의 인기는 프로야구 이상이었죠. 이것도 나쁜화질은 아니지만 기억속의 그림은 선수들 가슴의 주로 한문이었던 학교명과 백넘버의 테두리 실밥과 언더셔츠의 색상등이 아직도 생생히 UHD급보다 더 선명히 뚜렷합니다. 잔디의 풀내음과 바람에 실려 전해지는 쏘주향, 담배내음, 각자 휴대용 라디오로 직접보고 듣는 중계멘트는 스텐드 여기저기서 울렸고 교가며 동문들의 응원등.. 일본은 60년대말 70년대초 고시엔 중계영상도 있던데 부럽더군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sevastika4 жыл бұрын
@@kbssports 조성민 선수 강혁 선수 있던 신일고 전성기 94년 대통령기 대전고 우승 보고 싶습니다
@참말꾼4 жыл бұрын
@@직진어쨌든-z6i 만년 준우승팀 인천고의 에이스는 최계원이 아니라 최계훈 아닌가요?
@K방구석기타쟁이3 жыл бұрын
마음이 아파요. 안성수는 이미 돌아가셔셨어요, 계현이형이라도 오래 사셨으면 ㅜㅜ
@iluwaba12594 жыл бұрын
조계현 진짜 잘 던지네 ~ 어떻게 저게 고교선수냐? ㅋㅋㅋ
@최영묵-v5u4 жыл бұрын
1980년 봉황대기 결승전 깜짝선발로 나오셨던 성수형! 중학교때 완전 우상 이었었는데 그후로 82년 대통령배 군상전 1대0 완봉승 잊지 못하고요 너무 멋있었는데 고인이 되셨다니 너무나 슬픔니다 혹사에는 장사가 없읍니다
@Juanseo702 жыл бұрын
아 80년 배재고와의 결승전에서 당시 1학년 안성수 투수가 선발등판한 거 기억하시는군요. 하지만 1회 배재고 깅현찬한테 중전안타를 허용하자마자 바로 에이스 이상군으로 바뀌었죠.
@Alex-v1i3t Жыл бұрын
저도 안성수선수 참 좋아했는데 혹사로 꽃피지못하고 일찍 가신게 넘 가슴아프네요
@하성군-x7c4 жыл бұрын
그시절 라디오 TV로 조계현선수 나오는 경기는 다 본듯 정말 위대한 선수
@hansooyoo4 жыл бұрын
저 당시 이틀연속 경기를 거의 시청했습니다. 저 당시에 북일고의 "안성수 투수"도 정말 좋은 볼을 던졌는데 너무 혹사를 당해서 나중에 대성하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 너무 안타깝네요...............
@Since_NineteenSixtyFour3 жыл бұрын
고교야구 마지막 전국구 스타 조계현. 1학년 때부터 날아다닌 야구 천재.
@페소아러브4 жыл бұрын
프로가 생겨서 좋은게 중고등학교에 혹사가 줄었다는 것. 당시엔 괜찮지만 후유증은 나중에. 대학가도 혹사당하는 건 마찬가지. 감독이 말하는 정신력= 하루종일 운동하며 맞으며 운동하는 것.
@허영준-g7y4 жыл бұрын
공감 합니다
@스카이다이버-n5z4 жыл бұрын
저 당시는 우승한 고교의 교가를 틀어주고 선수들과 관중들이 함께 교가를 부르면서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gunwoonam11644 жыл бұрын
승부가 갈린 1, 2회 장면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너무나 소중한 자료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습니다. 이틀내내 공을 던진 안성수, 조계현 두 선수의 모습이 당시에도 지금도 너무 안타깝네요. 82년 당시 최고 투수는 조계현, 안성수 투수에 부산고의 왼손 김종석 투수까지 세명으로 볼 수 있었는데, 세명 모두 지나친 혹사로 마지막 대회인 황금사자기에선 부진한 모습을 보여 이를 지적하는 신문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계속 당시 고교야구 중계화면을 올려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kbssports4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KBS스포츠]채널 담당자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가장 중요한 1,2회 영상이 없어서 저희도 많이 아쉬웠습니다ㅠㅠ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옛날 야구 중계 영상은 지속적으로 발굴해서 앞으로도 자주 업로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경택-x9d4 жыл бұрын
@@kbssports 83년 청룡기 결승전 영상도 보고싶습니다. 가능할까요?
@kbssports4 жыл бұрын
@@김경택-x9d 안녕하세요. [KBS스포츠] 채널담당자입니다. 말씀 주신 이후에 저희 아카이브를 찾아봤는데 아쉽게도 83년 청룡기 천안북일고:포철공고 결승 영상은 없었습니다ㅠㅠ
@김경택-x9d4 жыл бұрын
@@kbssports 저희 아버지가 83년도 청룡기대회 결승전에서 최우수선수상 받으셨는데 영상이 없어서 무척 아쉽더라구요 ㅠ
@지마이클-u8c4 жыл бұрын
@@kbssports 축구 농구 배구 경기 도 예전 자료즘 많이즘 올려주세요
@billychoi14694 жыл бұрын
안성수 정말 아까운 투수.저당시 완전 팬이였는데 ㅠㅠ
@심규훈-j5w7 ай бұрын
저도 엄청 팬이엇는데, 보시다시피 저렇게 혹사를 했으니... 한양대 진학하고 한화에서 잠시 뛰었던것 같은데, 혹사탓인지 구속이 안나오면서 고교때같은 활약을 못했습니다. ㅠㅠ
@미스터토고4 жыл бұрын
이닝시작할때 투수가 외야보면서 화이팅 한번씩 외치고 시작하는거 왤케 멋있지...저 시절을 겪어보진않았지만 뭔지모를 날것의감성 너무좋다
@user-sungepil02195 ай бұрын
조계현 엄청났죠. 자신감과 배짱도 최고!
@유씨네추억4 жыл бұрын
전 날 낮 경기로 펼쳐졌던 1차전이 참 명승부였던 기억이 납니다. 군산이 1대0 으로 리드를 하다가 9회말 투아웃 2루에서 북일 김명주? 가 친 조금 솟구치는 땅볼을 군산의 유격수가 놓쳐 동점이 되고 연장으로 갔었죠. 조계현 공에 3루타를 쳤던 북일의 9번 타자 오효근, 2학년으로서 4번타자였던 장창문이 특히 인상적으로 떠오릅니다. 장창문은 당시 세광고에 있던 송진우와 절친이었다는 기사도 읽은 기억이 있네요. 군상과 북일은 81년 대통령배 결승에서도 만나는데 그 때도 에이스는 조계현과 안성수 였었죠. 안성수가 초반에 일찍 무너져서 하인수라는 투수로 교체되고 뒤늦게 추격했지만 5-3 으로 패해 군상이 우승했었죠. 감회가 새롭네요.
@minto8084 жыл бұрын
조계현 조계현 판타스틱 그자체. 조계현 레전드 love you. 💕💕💕💕💕💕💕💕💕💕💕💕💕
@sanmicheal67544 жыл бұрын
7:52 1982년 당시 군산 인구 17만 천안 13만 ㅎㅎ 천안 지금 60만 정도 되지 않나? 군산은 25만인가 그렇고
@sanmicheal67544 жыл бұрын
안성수 선수 찾아봤는데 1987년 빙그레 입단 후 통산 3승하고 91년 은퇴 후 야구와 관련없는 일을 하다 2008년 5월에 심장마비로 요절을 하셨다네요 ㅜㅜ
@최창락-d3e4 жыл бұрын
그랬어요 아이구ㅜㅜ
@지니부미4 жыл бұрын
천안에서는 유명한 분이셨죠
@saenoh10134 жыл бұрын
그때 당시의 학교명예 승리집착과 혹사 아까운인재 그당시에 시원한직구로 우승트로피 수없이들어올렸지만 돈벌을나이에는 어깨고장으로 빛을못보고 영면하십시오. 그때 당시 추억의 명품투수 안성수 ....
@K방구석기타쟁이2 жыл бұрын
인성수님, 지방소도시에서 많은 부담드렸을 거예요. 은퇴하시고 고생하시다 일찍 돌아가셨다네요. ㅜㅜ
오늘 마지막으로 추억하나만 떠올린다면 저 해 82년은 잠실 야구장이 개장한 해였죠. 개장 기념으로 고교 4강팀을 초청하여 친선대회를 여는데 경북고, 부산고, 군산상고, 천안북일이었습니다. 이 친선 대회에서 홈런이 터지는데 경북 류중일이었습니다. 류중일 감독은 그래서 잠실 야구장 1호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죠.
@이정환-x7p3 жыл бұрын
기말고사 끝나는 날 그경기 보러갔었습니다.
@도고산-m6x4 жыл бұрын
나에겐 참으로 가슴아픈 결승2차전이였음. 경기 끝나고 잠을 못잤음
@박운록6 ай бұрын
시대와 지도자를 욕할수도 없고 안성수 저 강속구투수 고교 탑클래스 투수는 뼈를 갈아넣어 성인 프로야구에선 빛도못보고 사라져갔다! 근데 조계현투수는 프로에서 다승왕 2회를 하며 부활했다 조계현에 새삼 존경심을 표한다! 좌절하지않고 다시 서는 인간적 강인함에!
@ComedianZorba4 жыл бұрын
개인이 무시되고 조직과 '정신력'이 강조되던 시절 어른들의 만족을 위해 애들을 갈아먹었음. 관중난입도 그렇고 야만적 시대였음.
저당시 지역예선전에서 저의 모교와 항상 라이벌이었던 천안북일. 하지만 저 경기는 열심히 북일고를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안타깝게도 해설 맡은 하일성 선생님(환일고)을 비롯한 50대 중반이 되었을 주력선수들이 많이 세상을 달리했네요.
@유씨네추억4 жыл бұрын
대전고 출신이신지요? 이효봉 투수 잘 던졌던 기억납니다. 충남은 대전고 와 천안북일 이 충북은 청주와 세광이 지역 예선라이벌이었죠.
@검언정상화4 жыл бұрын
조계현 그때도 제구력 칼
@Yuki-n9s3 ай бұрын
조계현 쓰리쿼터였네. 저때 조계현 안성수 김종석 이상훈 좋은 투수 많았슴. 청대 구성할 때나 한일고교정기전 할 때. 근데 조계현이 다했슴
@jmurm27224 жыл бұрын
제가 초등5학년때 이 두경기를 보면서 안성수.조계현 투수가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도 투수혹사라면 극렬반대하는 사람이구요, 개인의 행복보다 조직의 성공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아주 싫어합니다. 암튼 두 선수 정말 대단했고, 전 비록 조계현선수의 팬이었지만 안성수 투수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네요 ㅠㅠ
@Alex-v1i3t4 жыл бұрын
82년 초5학년이면 저와 동갑이네요 저도 당시 이 경기 가슴 졸이며 봤던 기억이 나네요 천안북일고 안성수선수 응원했는데 안타까웠죠 조계현선수 저때의 혹사로 구속을 잃은대신 팔색조로 변신 프로에서 성공한거 정말 대단한거죠 안성수선수는 가슴 아프구요
@검언정상화4 жыл бұрын
초딩때 그런생각을 조숙하셨네요
@하지마라-u1k4 жыл бұрын
지랄하네 니가 걱정하는 고교때 혹사선수들 돈과명예 다 얻고 레전드로 대접받으며 살고있다 니 인생이나 혹사당하지말고 앞가림 잘해라
@seongsupark54704 жыл бұрын
@@Alex-v1i3t 잘못알고
@Juanseo702 жыл бұрын
안성수, 1차전에서 무려 12이닝을 완투하며 4안타로 막아놓고도 바로 이튿날 또 선발 등판했으니 난타당하고 이후 그 후유증으로 한양대 진학해서도 더 이상 꽃피지 못했을 수밖에요. 안성수.투수는 이후 한점 더 실점하고 진정필 투수한테 마운드를 넘기죠. 그런데 화면에 나온 구위는그래도 상당하네요. 저때가 저 국민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Alex-v1i3t4 жыл бұрын
그때는 가슴을 졸이며 봤던 명승부였는데 지금 다시보니 두 투수의 혹사가 너무 심했네요 차라리 북일이 첫날 동점 만들지말고 9회에 졌더라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무지개바다-t2e4 жыл бұрын
관중이 헹가래를 다 치네. 추억의 시대네요.
@cacophony2364 жыл бұрын
잡지책에서 조계현 장호익 배터리 사진 본 기억이 나는군요 당시 조계현은 초고교급 투수로 명성이 자자했죠
@나한길-w4i4 жыл бұрын
趙啓顯선수는 고등학교시절에는 대한했어요 감사드려요
@kimjsk014 жыл бұрын
안성수 정말 혹사 많이 했다.. 대학가서 폭망..
@낭만야객4 жыл бұрын
몇년도 경기였는지만이라도 표시 좀 해주세요 중딩때였는지 고교야구에 흠뻑 빠져 있었는데 반갑네요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조계현 선수도 좋아했고 아마 그 전 세대가 박기수 선수인가 그랬을건데 서울 살면서도 좋아했을만큼 전국전으로 인기있었던 학교였죠ㅋ
@kbssports4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KBS스포츠]채널 담당자입니다 ^^ 저희 영상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상 앞부분에 (0:04) 1982년 청룡기 고교야구 결승전 재경기라고 자막 올려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참말꾼4 жыл бұрын
@@kbssports 1981년 봉황대기 경북고교 vs 선린상고 경기, 그리고 경북고 류중일 선수의 잠실구장 1호 홈런치는 영상도 보고 싶습니다.
박기수를 아시는군요 당시 청소년 한일전 경기 1번타자였고 군상에서 유일한 대표ᆢ 그해에는 우승 한적 없슴ㅠㅠ
@낭만야객4 жыл бұрын
저도 어릴때라 가물가물....군산과 전혀 상관없는 서울 사람이 고교 야구 선수를 아직까지 기억하는것만 해도 당시 군산상고 야구부의 인기를 알만하죠ㅋ
@jimlim5367 Жыл бұрын
저건 명승부가 아니라 한국야구의 슬픈 자화상... 30년 후에도 김성근같은 인간이 아직도 활개치는 세상..ㅋㅋ
@Hyunilssi4 жыл бұрын
아 좋다 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
@iluwaba12594 жыл бұрын
근데 우승도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제 고등학생을 2틀간 출전시켜서 투구하냐? 미친거 아니냐? 첫 날도 6회이상 던졌고 둘째 날은 완투를 시키네...
@jcpohuy82802 жыл бұрын
07:51 천안 시민이 13만, 군산이 17만이라... 당시엔 군산이 인구가 더 많았구나... 지금은 천안이 67만, 군산은 26만...
@monsterhunter253 жыл бұрын
팔색조 조계현..선발은 조계현 마무리는 선동렬..최고의 조합이였죠...
@레온-l9e8 ай бұрын
내가 천안 사람인데….당시 조양근,안성수 모르는 사람 없었음.
@돌허벅-b3h4 жыл бұрын
ㅋㅋㅋ 세상에 이런일이 선수들은 다 도망가고 우승 감독을 관중들이 행가레 치다니..ㅋㅋ
@hybridtouch4973 жыл бұрын
7080년대 고교 야구 보면 눈물 난다 각팀 에이스 1명씩 죄다 혹사시켜가지고 선수 생명 끝장 나게 하는 게 다반사였지 안성수 조계현도 무지 혹사당했지만 뭐니 뭐니해도 최동원의 혹사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대학 가서도 실업에 가서도 프로에 가서도 줄곧 이어진 대혹사 시리즈의 완결판이었다
@youngkim77873 жыл бұрын
와우! 옛날의 명경기... 경북고의 문병권까지 투수 3인방이 기억나네요..
@마테판스워스4 жыл бұрын
조계현은 진짜 고교,대학에서 혹사 당했는데도 프로에서 날렸네. 진짜 무쇠팔이었네. 같이 고교,대학에서 날린 애들은 이름도 모르겠는데. 천안북일의 안성수? 처음 들어본다.
@DogBrothers7773 жыл бұрын
제가 해태선수중 제일 좋아했던선수가 조계현선수였는데 예전 해태시절 김성한 조계현 선수가 정형외과 가서 어깨 검진 받았는데 김성한선수 와 의사가 조계현선수 어깨 보고 놀랬답니다 깅성한 선수 어깨 강도 가 일반인 2배였다는데 조계현선수는 5배수준이었다고 그시절 기사 나온걸 아직도 제 기억에 있네요 조계현 왕팬이어서 조계현 선수 선발 나오면 경기장 직관 또는 기사는 빼놓지 않고 봤었던 1인입니다 ㅎㅎ 진짜 고교때부터 대단했었죠 고교때 한일 친선경기때 혹사당해 강속구 투수에서 기교파 투수로 거듭나긴 했지만요 ㅎ 그시절 고교 에이스 3인방은 군산상고 조계현 천안북일고 안성수 부산고 김종석 이었습니다 ㅎㅎ 셋중 프로에서도 성공한 투수는 조계현이 유일합니다
@루르-y8k Жыл бұрын
당시 경북고의 문병권(MBC), 부산고의 김종석(롯데), 군산상고 조계현(해태), 천안북일 안성수(빙그레) 4명이 탑글래스. 물론 프로가서는 조계현만이 뚜렷한 족적을 남겼지만...
정신만 승리하고 육체는 파괴돼가던 시절. 두 투수 모두 팔이 고장나서 안성수는 야구계를 떠났고 조계현은 프로에 와서 몇 년 후에야 조금 회복되었다.
@마테판스워스4 жыл бұрын
고교야구에 목숨을 걸던? 시절이었죠. 그만큼 인기도 많았고. 그때만해도 지역감정으로 더 흥행했죠. 앞뒤 없던 시절.
@닻내림3 жыл бұрын
이때가 좋았는데☺☺☺
@규선-i7q4 жыл бұрын
조계현. 장호익 정말 잘했는데....
@참말꾼4 жыл бұрын
이동석 백인호 고장량 한경수도 잘했습니다.
@슛도리-f1r3 жыл бұрын
백인호 이동석 한경수 동국대로 진학해서 대학야구도 날렸죠
@kkim472010 күн бұрын
투수 어깨 갈아대던 야만의 시절 아까운 선수들 당연한줄 알고 혼을 바쳐 던지고 이른 나이에 투수로서 수명이 끊어져 버려서 너무 안타깝다 조계현선수는 그야말로 천재성으 프로에서도 대투수로서 한획을 그었지만 그렇다고해서 안타까움이 없어지진 않는다
@baseboy51524 жыл бұрын
당시 중계화면도 상당히 역동적이네 그라운드 마이크도 있고
@fcpark9544 жыл бұрын
성수형..ㅠㅠㅠㅠㅠㅠ
@바른말쟁이4 жыл бұрын
천안북일고는 이상군투수가 정말 잘던졌었죠?
@나한길-w4i4 жыл бұрын
조계현성수잘한다
@SJ-lr5gt4 жыл бұрын
하일성 해설위원님 그립습니다
@김종훈-n1b4 жыл бұрын
천안13만 군산17만 ㅋㅋㅋ 현재는 천안이 군산 3배는돼겠다 ㅋㅋㅋ
@박지현-n1k2g2 жыл бұрын
천안시 65만 넘음.....군산은 27만도 안됨
@맛꽝4 жыл бұрын
조계현 1학년때 대통령때 우승 시킴 그리고 청룡기때 박노준의 선린상고와 1차전때 1대영인가 짐 2학년때 2개대회 우승 3학년때 썩쓸이 가능하다 예측했는데 2학년 하반기때 부상 참고로 3학년 대통령배 예선전 전주고에 패해 본선 진출 못함 이때는 전주경기장 수리관계로 학교 홈어웨이 경기 함 그리후 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우승 못함 마지막 전국체전 조계현 등판함 우승 시키고 연대 진학 참고로 고교시절 인기는 시기가 좀 틀리지만 박노준 조계현순임 선동렬 미안하지만 인기는 한수 아래임
@tur73214 жыл бұрын
박노준 당시 고교야구 스타 별명 독일병정, 김건우 좌우 쌍두마차, 봉황기 인연 없는 당시 최강 선린상 경북고 결승에서 박노준 홈 슬라이딩 부상으로 또 불운 당시 엄청 여학생들 팬레터, 당시 경북고 잠수함 문병권, 좌완 성준 등, 70년대 80년 초 까지가 고교야구 전성기, 그땐 아무 생각없이 봤지만, 지금보니 그라운드 상태, 중계화면 특히 투수 뒤쪽 카메라 각도가 공포! 시대상황을 감안하지만
@Since_NineteenSixtyFour3 жыл бұрын
박노준=조계현 박은 여자쪽 우세, 조계현은 남자쪽 우세. 박노준은 3년 내내 조명을 받은 반면 조계현은 프로야구 출범으로 관심이 이동하는 중에 얻은 인기라 불리한 면도 감안해줘야. 82년(2학년)부터 급격히 프로 야구로 관심 집중. 선동렬은 그냥 A급 투수 중 한 명. 성남인가 어딘가 재창단 일이 년에 봉황대기 아니면 출전도 못하는 학교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 한 건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님. 다른 팀 같으면 후보 투수 내보낼 경기.
@yesygh2 жыл бұрын
고2때 출전한 한.일 친선경기에서 부상 안당했으면 고3때 두개대회정도는 더 우승시켰을듯....
@joonyoungyoo89763 жыл бұрын
안성수 투수 가슴아픈 이름
@뿌요세나2 жыл бұрын
조계현선수 진짜 탈고교급이네
@쿠스코-p1j4 жыл бұрын
재경기를 하는데 전날 9이닝 던진 투수를 또 선발로 내세운거야? 미친거아냐?
@koleanan10014 жыл бұрын
그당시 KBS 야구 중계하신 아나운서의 아들이 아버지 따라서 KBS 아나운서가 될줄 누가알았겠습니까
@마테판스워스4 жыл бұрын
누군데?
@통통이삼촌3 жыл бұрын
@@마테판스워스 중계아나운서 이규항 아나운서 아들 이상엽 kbs 아나운서
@묘암골-x6v2 жыл бұрын
@@통통이삼촌 이규항 아나 '네잎크로버'란 노래 히트시켰죠.
@통통이삼촌2 жыл бұрын
@@묘암골-x6v 맞습니다^&^
@Juanseo702 жыл бұрын
이상엽 아나운서는 현대문학을 통하여 시인으로도 데뷔하였습니다.
@Since_NineteenSixtyFour3 жыл бұрын
이삼 개월 뒤 봉황기도 끝내줬지. 조계현 만세!!!
@6pm62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가 참 순수했던 시절
@ggk21804 жыл бұрын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저 시대 때만 해도 참 미개했지. 어린 선수들 혹사시키는 거나, 경기 다 끝나고 관중석에 있던 놈들 경기장으로 다 쳐들어 와서 난리 치는 거나.. 선수들이 괜히 도망치는게 아님. 근데 고교야구뿐 아니라 프로야구 초창기 때도 저랬음. 그나저나 조계현은 다 아는 유명선수출신이지만 안성수는 전혀 못 들어본 인물인데 이 선수도 프로에서 뛰었었나..
@유씨네추억4 жыл бұрын
81년 82년 참 강팀이었던 군산상고와 불세출의 조계현인데, 이런 조계현에게도 당시 천적이 있었습니다. 잘 나가는 팀도 아니었던 대구고였는데 (이만우라고 곧잘 하는 선수가 있었음) 이 팀만 만나면 중요고비에서 어처구니 없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청룡기에서 대구고에게 7-1 덜미를 잡히고 봉황기에서도 2-0 으로 리드하다 9회말에 역전당하는데 한참 동안 마운드에 주저 앉아 있던 조계현 선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hansooyoo4 жыл бұрын
저도 당시에 군산상고를 응원했던 고교야구 팬으로서 경기를 꽤 많이 시청 혹은 청취했습니다. 당시의 대구고가 최강의 팀은 아니었지만 강기웅, 염창무등 초고교급 강타자들이 즐비했던 무시무시한 팀이었습니다. 조계현투수도 리틀야구 시절부터 전국구인 슈퍼스타로 아마도 나이가 동급생들보다 한살 위였을 겁니다. 저도 당시 봉황기에서 군산상고가 대구고에 역전 당하던 순간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그 게임은 조계현 투수가 운이 없었는지 잘풀리지 않았었습니다. 1982년도의 고교야구 최고투수는 누가 뭐래도 조계현이었습니다. 그해 가을에 만일 당시 우리 한국팀 감독이던 경북고의 구수X씨가 1,2차전을 조계현투수가 완투는 아니지만 호투해서 일본에 승리했으니 더이상 마운드에 올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생각인지 3차전까지도 3일연속 마운드에 올려 지나치게 혹사해서 어깨가 고장나 평생 고생했습니다. 1976년의 최동원도 3차전은 등판하지 않았었는데......................
@frombeing35534 жыл бұрын
이만한 명승부가 또 하나 있는데 단국대와 한양대의 결승전, 전날 연장까지 완투한 구대성 승부를 못 내고 다음날 경기하는데 또 나와서 결국 한양대 우승시킴. 상대 투수 단국대 김홍집
@MrZugul4 жыл бұрын
고등학교때 안성수 잘 던졌었는데 프로 진출 했는지도 모르겠다... 고딩때 혹사 당해 빛을 못본 케이스...
마지막 아웃카운트 잡고 1루수가 왜 덕아웃으로 뛰어가나? 혼자 뭔짓 이라 생각했는데 경기장 안으로 난입하는 선배들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이 넘 재미있네요
@인디아나-i4b4 жыл бұрын
연투? 말이 됨? 우승도 좋지만 멀리 안 보고.
@victor-wt2qr4 жыл бұрын
안성수 선수는 혹사로 인해 그냥 그냥 선수로 전락....
@하지마라-u1k4 жыл бұрын
그럼 조계현은 철저한관리받으며 선수생활했냐?
@참말꾼4 жыл бұрын
@@하지마라-u1k 조계현은 연세대시절에는 타자로 많이 출전하면서 어깨를 아꼈습니다.
@하지마라-u1k4 жыл бұрын
@@참말꾼 그건아님
@하지마라-u1k4 жыл бұрын
@Douglas aldrich 혹사네뭐네 개지겨워서.. 안성수는 혹사당해서 찌그러지고 조계현은 관리받아서 성공한 케이스라는 좃같은 뉘앙스가 같잖아서 그럼 그렇게 결정 지으면 조계현이 억울하지 않겠냐? 조계현의 성공이 혹사당하지 않아서 라면 조계현 본인은 얼마나 기가차겠냐?
@adobemastertutorial49244 жыл бұрын
이 당시 세 투수 모두 혹사당했음. 특히 김종석이 111이닝이나 투구했는데, 이 해 고교야구 최고 투수들이 안성수, 조계현, 김종석. 조계현은 변화구와 기교파로 변신했고, 김종석은 부상 후유증으로 부진했으나 제 기량을 되찾았음. 그러나 프로에서는 별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안성수는 87년 빙그레 1차 지명자였으나 88년 1게임 2이닝만 투구하고 은퇴했음. 잘 던졌는데도 진짜 안타까웠다고 봐요.
@이동원-z7h Жыл бұрын
안성수 선수가 출전하는 모든경기 영상을 보고 싶네요~ 어깨가 망가진 상태로 한양대 유니폼을 입고 경기도중 배성서 감독의 교체 지시를 불응 하니까 ~ 라커에 불러놓고 임마 건우도 좀 던져야 하잖아 하면서 야단치던 모습을 서울 운동장 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너무나 않타까운 선수 입니다
@최창락-d3e4 жыл бұрын
이후 어떻게됐지
@minholee41543 жыл бұрын
우승감독 헹가레를 관중들이 ㅋㅋ 완전 굴려버리는데
@구이통4 жыл бұрын
천안북일고 수비 수준이 지금 칰 수준이네
@ksooh514 жыл бұрын
안상수 혹사로...끝. 대표팀 감독 당시 북일고 감독 조계현 혹사....어깨 맛 이 가서 구속 떨어지고 투수 생명 끝날뻔...그러나 조계현은 칼날 재구와 팔색구로...위대한선수로 기억 됌~ 선수 혹사 시키는 감독은 영원히 퇴출 시켜야 함~
@윤정근-n2c4 жыл бұрын
조계현 팔 갈아먹은 경북고 구수갑 감독.
@summit8848-l1f3 жыл бұрын
결승1차전 1대1 결승2차전 9대5 모두 18이닝. 야구는 투수놀음이라 의존도가 크죠. 군상은 그나마 이동석과 이어던졌지만 북일은. 1년생 김길선과 진정필이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죠 이보다 더한건 79년 고교야구에서 23회연장이 있었어요 상문고와 대구상고로 기억하는데 당시 상문의 애이스는 김봉근(MBC청룡) 대구상고는 초고교급 좌완투수이자 당시 최계훈에 이어 2인자급으로 평가받았던 권기홍투수...결국 상문고가 3대1로 이깁니다 두투수 대단....23회연장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