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태종 이방원이 나오는데 이거보고 있으니..게임도 안되네 왐건.조선왕조실록등 역대급 사극들중에서도 단연 최고다
@user-qj3ur8we2j4 жыл бұрын
무학이 말한 명당자리는 북악산이 아닌 인왕산아래 필운대인 배화여고와 배화여대가 지나는 자리. 이곳에서 정동향으로 궁을 지으라고 하였음. 여학교가 결국 명당을 차지하게 됨.
@lIlIllIIlIlIlllIIlI4 жыл бұрын
그딴거 없음. 애초에 무학은 한양에 대해선 별 조언도 안함
@user-mq9mp9ow2v4 жыл бұрын
@@lIlIllIIlIlIlllIIlI 잘 알지 못함 그냥 있는게 좋아. 왕십리 답신리 면목동 이러한 지명이 나온지도 모르잖아. 무학대사의 방위대로 였다면 조선은 골육 상쟁이 들했어. 이론 풍수를 바탕으로 조선이 방위를 했기에 응용 풍수를 몰랐든거야
@user-kt8yp5ho2y3 жыл бұрын
그걸 막은게 바로 삼봉 정도전...
@lIlIllIIlIlIlllIIlI Жыл бұрын
@@user-mq9mp9ow2v 다 민간에서 떠드는 소리지 실제로는 없는 소리임. 왕십리만 해도 이미 고려때부터 왕심리라고 기록돼있음
@MegaAmoled8 ай бұрын
조선의 근간인 성리학은 군자는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는다며 미신을 배격했는데, 21세기에도 풍수 운운하는걸 정도전 같은 사람들이 보면 기겁할 듯. 살면서 길흉화복을 번갈아가며 겪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고사가 있는거고, 높은 신분이거나 부유한 삶을 사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나름의 고충이 있고 때로는 하루아침에 천당과 지옥을 오고가는게 인생인데 집터니 조상 무덤이니 하는거 가지고 미래가 결정된다는 소리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거임. 조상 무덤은 언제나 똑같은 곳에 있는데 후손들 일이 잘풀리면 명당이 되고 안풀리면 흉한 곳이 되니 뭔 ㅋㅋㅋ 저 시절에 풍수가 어쩌고 하는 것도 걍 설화처럼 전해내려오는 민담을 결과론적으로 짜맞추기한 것들일 뿐임.
@user-er4yf8hb5p Жыл бұрын
10:24 거듭된 질문에 버럭하는 무학대사 ㅋㅋㅋㅋㅋㅋ
@Joon923 жыл бұрын
여기서 무학대사가 정도전에서 또 무학대사로...😂
@user-rd3ze7pc1r3 жыл бұрын
스님 전문배우 전설의 고향 에서도 스님으로
@MegaAmoled2 жыл бұрын
태조왕건에서도 형미 대사, 징비록에서도 사명 대사 등등 고승 전문 배우이심
@user-em9kq9rh3l11 ай бұрын
천도가 내려가면서 나라가 작아지네요
@ALZZIM4 жыл бұрын
양녕대군 양위도 꿀잼이지
@user-mx2em1kt4n Жыл бұрын
퉁두란은 지장 퉁소 후손~
@fcsunbsv19913 жыл бұрын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의 전신 한양으로 천도가 오늘날에 서울까지 이어짐
@user-kt8yp5ho2y3 жыл бұрын
백제부터 서울을 도읍이니 천년 도읍 이지요.
@user-xj4dh8vz1y7 ай бұрын
4:07 하륜이 계룡산은 수파장생의 땅이라며 막았다.
@JohnSmith-mr8wcКүн бұрын
4:10 도선비기
@ma-druking-jaeyun5 ай бұрын
3:01 계룡산 부근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인가? 그리고 고려시대때도 현재의 서울(당시 남경)로 천도를 추진할려고 했다고 함. 그게 남경길지설.
@koei88kr4 ай бұрын
지금 신도안면. 신도안이라는 지명 자체가 새로운 도읍지로 논의 되었던 곳이라는 뜻. 실제로 공사하다가 맘 당시에
@user-boros4 жыл бұрын
만년은 에바고 500년간것도 기적임 중간 중간 일터진거 생각하면 물론 다른나라들도 그런적 있긴 하다만 크흠...
@Supergolem123453 жыл бұрын
괜히 옛말에 열흘 붉은 꽃 없다는 게 아닙니다
@user-boros3 жыл бұрын
@@Supergolem12345 그건 먼소리죠?
@Supergolem123453 жыл бұрын
@@user-boros 쉽게 말해서 권력도 영원하지 못하다는 거죠
@user-boros3 жыл бұрын
@@Supergolem12345 아하 그렇죠 어떤거듣 영원한건 없죠
@Supergolem123453 жыл бұрын
@@user-boros 문제는 권력이란 게 한 번 잡는 순간 없는 욕심도 만들어버리는 물건이라... 그래서 정치 참여가 중요하다는 거죠
@user-ic4rr8up9z5 ай бұрын
고인이되신 김무생씨는 영원한 이성계 그자체이다.
@user-dk8ct5jh3e4 жыл бұрын
어? 저 무학대사 연기하신 분 드라마 정도전에서도 무학대사 연기하신거 같은데...맞나? 아닌가...?
@누리사4 жыл бұрын
@신한철 기적이네요. 그때까지 살아계셨다니.. 80대쯤 되셨을것같은데.. ㅎㅎ
@HBJR872 ай бұрын
사실상 이방석은 유씨 중전 강씨 이성계 정도전 남은의 통장계좌였을 뿐이지
@dwl84944 жыл бұрын
신도안 계룡산일대라!! 물이 있었다면 대전주변이 조선의 수도가 될뻔했구나
@rjfjfxsehhb3 жыл бұрын
계룡산이왜요?
@topjimmy96873 жыл бұрын
계룡산 닭백숙👍
@user-yg2gi2oq8j2 жыл бұрын
@@rjfjfxsehhb 서울은 바로 앞에 한강이라는 큰 강이 흐르지만 계룡산은 바로 앞에 큰 강이 없음.
@rjfjfxsehhb2 жыл бұрын
그럼 공주가 수도가딱좋은데 계룡산잇지 금강이잇지
@user-xr2ki9bv7t7 ай бұрын
@@rjfjfxsehhb산이 많아도 너무 많은게 걸림돌이죠 산 많고 물 있고 쓸 땅까지 많아야 하는데 공주는 쓸 땅이 없어요
lk ent 일부러 특별히 그렇게 캐스팅 했다고 하더라구요. 이 분 아니면 하실 분이 없다 하셔서 ㅎㅎ 대신 배우분의 건강 문제로 분량은 많지 않습니다 ㅜ
@arbiaasia93354 жыл бұрын
جميل بارشا.بليز.اسم.مسلسل
@user-bo1cb6yx8b2 жыл бұрын
딱태조다운 이성계
@user-ob6dz5sm4v4 жыл бұрын
역시 조선에 최고에 천재는 정도전이었구나
@user-hk8in4mw9t3 жыл бұрын
조선 최고의 천재는 정도전 이었구나...
@user-ni5bo3nr5q3 жыл бұрын
정도전이요?? 조선 최고의 역신이 아니고요??ㅋㅋㅋ
@user-hk8in4mw9t3 жыл бұрын
@@user-ni5bo3nr5q 이방원이 봤을때는 그랬죠.. 하지만 조선을 건국하고 디자인한건 정도전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방원도 실상 재상정치 외에는 정도전의 디자인모델을 그대로 계승한것도 많아요..
@user-ni5bo3nr5q3 жыл бұрын
@@user-hk8in4mw9t 단순히 이방원의 시각뿐만 아니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정도전은 역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유가 바로 님이 말한 저거 때문입니다 조선을 건국하고 디자인했다???이건 누가봐도 이성계와 그 가족들이 한 거죠 정도전은 그냥 참모 정도로 만족해야되죠 신료가 저런 평가를 받으려면 국정설계자의 위치에 있어야하는데 그러려면 다른 신료들의 인정과 합치가 필요로 하는데 정도전은 건국전엔 정몽주와 건국후 조준등과 계속 불협화음을 냈고 이 과정에서 독단적인 전횡을 여러차례 보였습니다 마치 본인이 왕이라고 착각이라도 한 걸까요?? 즉 지나친 욕심이라는거죠 그리고 정몽주 문제는 더 심각한게 많은 기록들이 이방원이 독단적으로 종몽주를 죽였다라고 나오지만 20대 젊은혈기에 다소 급한 성격을 가진 평소 자기를 믿고 따르던 정치를 잘 모르는 젊은이는 충분히 조종이 가능하죠 사실 누가봐도 이성계는 정몽주를 좋아하고 존경했으며 신뢰했고 꼭 자기진영에 합류시키길 원했죠 과연 정몽주가 이성계진영에 합류하면 정도전은 자기의 입지가 보장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조선조에도 여기에 재미있는게 많죠??정몽주가 가세했다면 어떻게 됐을까??과연 이방원이 진짜 독단적으로 정몽주를 죽였을까??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고 따르던 아버지의 노여움까지 불사하고????글쎄요..... 이방원도 재상정치를 제외하고 정도전의 다자인을 그대로 채용했다라,,,이게 우리나라에 가장 대표적으로 잘못 알려진거죠 대체할 제도가 없었기때문에(그렇다고 망국인 고려의 제도를 사용할수도 없겠죠??) 초기엔 그대로 사용됐지만 실권을 쥔 이방원은 즉시 하륜을 중심으로 내각을 재개편했죠 그러자 하륜은 빠르게 대체할 제도를 내놓고 정도전식 제도를 지워버립니다 후일 세종에 의해 일부 되살아났지만 대부분은 영원히 사라졌죠 이건 누가봐도 이방원의 정치적 승리죠 명분과 실리 둘다 이방원이 가졌으니까요 이때만 해도 건국 초기 불안정한 정국에 아직 정도전식 모델을 따라가려던 유생들도 많이 남았고 또한 명예와 업적을 중요시 하는 유학자들에게 죄가 있어 죽이긴 하지만 공은 인정해준다라는 사인을 보내 명분을 만들어 조정에 입시시킬수도있었고 하륜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제도로 빠르게 대체하면서 결국은 자기들이 만든 제도로 국정을 운영했으니까요 정도전은 자기가 아니면 누구도 해내기 어렵다라고 발상을 가진거 같은 행태를 곳곳에서 보이는데 그건 신권정치를 추구하던 사람이 할 행동들이 아니죠 마치 독재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곳곳에서 보이는데 그게 어떻게 역신이 아닐수 있습니까???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실 권력은 자기가 쥐고 흔들려는 모습에 오죽하면 이성계도 견제하던 모습이 곳곳에 기록으로 남아있는거 모르십니까??? 이성계가 정도전이 올린 결제를 무조건 해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만은 않아요 이성계도 나름 제법 큰 군대와 가문을 운영했고 고려 막판에 재상자리에서 국정을 운영해본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론 이성계도 이 시기에 있었던 일에대해 막후에서 조종한 일도 있었을거고 정쟁에서 진것도 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상대가 꼭 이방원만 아니고 정도전도 포함 해서요
@user-hk8in4mw9t3 жыл бұрын
@@user-ni5bo3nr5q 의견의 다양성에 대해서 존중합니다 헌데 정말 이성계가 정도전을 역신이라고 생각했다면..정도전을 때려잡은 이방원을 자신의 후계자로 바로 임명했을것이고 함흥으로 가지도 않았을겁니다 이성계가 이방원이 얼마나 미웠으면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겼겠습니까 님말씀대로 정도전이 정말 역신이라면 그를 때려잡은 이방원을 이성계는 오히려 잘했다고 바로 후계로 삼지않았을까요????
@user-hh8jr2we7h3 жыл бұрын
무학대사는 궁궐지을때 뒷말하지말고 제대로 짓게 하지 아쉽네 정도전은 무슨생각으로 그리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