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가 망하고 400년이 지나도. 그힘이 강력하게 존재한게 몽골의 역사이다 청나라가 괜히있는게아니다
@피치크러시-i5b5 ай бұрын
드디어 소장님이 돌아오셨다!
@mangwonfish5 ай бұрын
임용한의 콘텐츠는 재미도 있고 학술적 품격도 있음
@frostfirex5 ай бұрын
위화도에서 회군하듯 뛰어왔습니다
@위장염5 ай бұрын
개무섭네ㅋㅋ
@음유기5 ай бұрын
장졸들은 들으라! 우리는 이 길로, 임박사TV로 직진한다!
@머니올라5 ай бұрын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구독자님들 뵈러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미제드론5 ай бұрын
내레 머니올라로 가갔수다
@PsychoWatchDog5 ай бұрын
기무사 아져씨!! 여기예요 여기!!
@cz_line90515 ай бұрын
kbs드라마와 함께해서 항상 생동감이 넘치고 재밌습니다
@user-xh8tw9su8f4 ай бұрын
언제까지 침략한일본은 나쁜나라, 배신한 청나라도 나쁜나라 이런내용만 전달할건가요 팩트가없어요 팩트는 조선을 망하게한건 일본도 청나라도아닌 쿠데타로 나라를세운 조선이씨왕가가 책임이 가장큽니다. 왜 고려시대 문건을 다 태워버렸는지( 역사가들 공통적으로 고려시대는 잘살았다고 함 문화재등등 ) 왜 당시에 안동김씨가 왜 국민들에게 더 명망있었는지 힘이있었는지, 왕은 항상 비판받고 국민의 지지를 못받았는지 그런 내용은 전달하지않은채 그냥 있었던 일만 설명할뿐입니다. 고작 40년으로 망했다고요? 헛소리죠 500년간 천천히 내려앉고있었다가 맞는표현입니다 결국 500년 후 국민의 반이상이 굶어죽고있었고 명성황후와 그 쿠데타전주이씨(조선왕)세력은 초콜렛과 케이크를먹으며 국고에 30%를썼고요 참지못한 국민들은 동학농민운동을 벌였고 삽,곡괭이 든 농민 2만명을 막지못해 청나라, 일본 군대에 도움을요청하는것만봐도 얼마나 국력이약해져있는지 알수가있죠 국가의왕이 다른나라에게 도움요청해 국민들이 때로죽임당했구요. 국가의 왕이 몰라서 그냥 강화도조약을 맺었다? 외교할때 왕 혼자하는것도아니고 허무맹랑하죠 돈과뇌물이있었으니 강화도조약을맺었다고 보는게 더 합리적일겁니다 교과서에는 사실만적시할뿐입니다.(교과서는 친일파논란이많죠) 간단히 요약하자면 조선은 일본이 침략해 망한게아닙니다. 이완용 혼자 팔아먹었다? 말도안되죠 조선쿠데타이씨왕가가 500년간 나라를 쥐락펴락하다 나라는 망했고 일본에 팔아먹었다 그렇게보는게 더 합리적입니다..
@vetym025 ай бұрын
이성계도 흥미진진해 할 컨텐츠네요. 기자님 박사님 감사합니다.
@belleepoquela32715 ай бұрын
갓용한🎉
@최진규-b3v5 ай бұрын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머니올라5 ай бұрын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Montana-b2d5 ай бұрын
박사님 설명대로 어렸을때는 이바보 같은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 했던 일들이 아 그럴수고 있겠다 어쩔수 없었구나 하게 생각하게 되는경우가 많아지는거 같습니다.
@yongeekang24945 ай бұрын
그쵸.시간여행의 느낌이죠.
@kklee40984 ай бұрын
박사님께는 역사도 배우고 지혜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youngkwonjeon5 ай бұрын
이성계는 회군 저는 회식 주말에 다시보기 할게요 늘 감사합니다 기자님도 박사님도 사랑 아니다 그냥 우리 좋아요 누를게요 ㅎㅎㅎㅎㅎㅎ
@머니올라5 ай бұрын
수요일 회식ㅜ 언능 들어가시고 주말에 꼭 시청해주세요! ㅎㅎ
@임경조-l3m5 ай бұрын
기다리고있었습니다.
@hardbaguette16245 ай бұрын
두 분 캐미가 너무 좋습니다
@MinervaChart5 ай бұрын
최영은 정말 멋있다....
@ppk91255 ай бұрын
기자님 진짜 진행이 좋으시다
@달콤한부드러움5 ай бұрын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과 독소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보면 4불가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전 보면서 병력, 병기, 물자의 손실분을 보충하는동원능력이 전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감하게 되더군요. 외신으로 거의 실시간으로 전쟁 소식을 접하니 옛날 전쟁을 책으로 볼 때와는 다르더군요.
@southmeas5 ай бұрын
전쟁 얘기만 나오면 지원도 못하고 꽁무니부터 빼는 사람들이 작은 나라 큰 나라 드립치는게 참 우스운 얘기임. 미국 아니고 당장에 국력 떨어지는 북한이랑만 전쟁해도 멸망전임.
@문미-m3l5 ай бұрын
임박사님 얘기들으면 귀에 속속 들어와요 역사, 전쟁사 등 계속 찾아 다니며 듣고 있어요 넘 감사드려요
@@머니올라 장혜진기자가 기초학식이 있어서 좋네요. 중고등학교때 공부한거 안 까먹은 듯.
@yunjinlee78562 ай бұрын
너무 재밌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한별-n3t5 ай бұрын
이게 참 그 뭐라 그러지. 입체적이라고 해야 하나? 이게 주입식 역사가 아니라서 참 좋아요
@자두-n4f5 ай бұрын
와...행군과정 설명듣는데 옛날에는 행군도 장난이 아니었네
@dietman7545 ай бұрын
말&소를 쓰면 건초까지 가져가야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물 입니다. 강따라 행군하던지 행군로에 우물을 확보했지요. 저 당시 최소의 운송 수단은 돗과 노를 사용한 배였습니다. 내연기관의 등장은 거진 혁명이지요 ㅋ 항공역학도 마찬가지고 제트엔진도 마친가지고
@bunningshouse26 күн бұрын
지금도 빡새죠 물론 점점 유치원이 되가는 육군이 안타까울뿐이네요...
@jihokim07284 ай бұрын
기자님이 역잘알이시라 질문수준이 높다보니더 재밌습니다~
@mrk43615 ай бұрын
23:14 뜨끔!!!
@머니올라5 ай бұрын
ㅋㅋㅋㅋㅋ
@yunj3845 ай бұрын
이번 영상도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역시 박사님 여말선초 주제로 나오니까 날라다니시는군요. 뭐 더 새로운 얘기가 있을까 싶었는데 감탄했습니다. 기자님 주제 진행하고 문답 이끌어내고 리액션하시는 것까지 전부 멀티 태스킹하는데 정말 잘하고 계십니다. 지난번에 한강 관련 영상도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재밌게 봤는데 조회수가 상대적으로 덜 나와서 괜히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너무 조회수에 일희일비 하지 마시고 꾸준히 다양한 내용으로 시리즈를 축적해 가시기를 응원합니다!
@머니올라5 ай бұрын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응원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
@lineroh15 ай бұрын
드라마로 보면서 역사 비평하는거 의외로 재미있어요. 새로운 장을 연 컨텐츠 인가요.
@머니올라5 ай бұрын
ㅎㅎㅎ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shinshinshin93485 ай бұрын
1분전 1등 조쿠요~
@역사잼4 ай бұрын
재밌어 박사님이 최고야❤
@MIND_table5 ай бұрын
임용한 박사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수집쟁이드라하카5 ай бұрын
이야, 소원성취하긴 했네요 드디어 요동정벌 이야기가 나오니까요 원하는 만큼은 안니지만 예컨데 밀직제학 박의중을 보낸 진짜 이유, 고려 32대 우왕 치세 군주가 서경 행재소를 만들고 지휘하는데 일거수 일투족을 감독해도 모자란 판에 놀자판을 벌인 이유등 궁금한게 더 있기는 해도 몰랐던 이야기, 관점과 시점을 들을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특히 왜 고려는 사불가론을 말한 이성계를 굳이 구태여 참전 시켰는가가 의문이였는데 철령위 위치를 생각할때 이성계도 싸울 명분과 이유가 충분하기에 참전시킨 계산도 깔렸다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사불가론을 들고 나오는 양반이 회군은 절대 하지 않을거란 착각은 여전히 의문이지만 여러모로 재밌는 영상입니다 다음 영상도 기대합니다 기다리는 김에 몇글 더 써봐야겠네요
@FM킹왕짱5 ай бұрын
임용한 박사님 강의 들으면 딴 유사 역사학자들 못봄 ㅋㅋㅋ
@홍길동-b4b5 ай бұрын
시간 순삭! 정말 재밌습니다.
@머니올라5 ай бұрын
시청 감사합니다 ^^
@ddrj2906Ай бұрын
드라마 정도전 정말 재밌게 봤어요. 제일 쫄깃한 회차였죠.😅
@푸른혜성-z6k5 ай бұрын
요동을 가지면 좋지만 요동을 지키려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잊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병력과 자원이 투입되어야 하죠. 고구려는 수당의 침략을 막아내었지만 결국 패하여 사라졌습니다. 고구려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죠. 이성계의 고려군은 요동을 장기적으로 굳건히 영토화 하기에는 너무도 역량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1차 요동정벌에 성공하고도 보급 문제로 되돌아와야 했던 경험을 해 본 사람이 바로 이성계 입니다. 단순히 국가적 자존심 때문에 강대국을 공격한다? 나라 망하기 딱 좋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KrMorgan125 ай бұрын
고구려처럼 심양까지 먹는게 아니라서, 요동일부만 진출하고, 방어에다가 온 힘을써서, 조선초기의 북진은 없을거고, 영토는 비슷했을꺼임. 다만. 초석광산까지 진출하면 화포무기체계에 더 자신감을 얻어, 군사체계는 더 발달했을거라고 생각함.
@KrMorgan125 ай бұрын
@@DoJM-y 맔? 그런거 따지면, 명나라도 완전지배 못해서, 여진족들이 통치함...
@김김김-c2d3y5 ай бұрын
특히 후방의 왜가 빈번하게 침략하여 남부 지역이 초토화가 되는 상황에서 대군을 요동방어에 투입해야 한다? 나라 망하라고 고사지내는 것과 같죠. 모든 전쟁의 기본은 후방의 위협을 없애고 전진을 하는 것인데 왜가 창궐하는데도 북진을 시킨 것 부터가 정신나간 선택이라고 봐야죠. 그런데 정확하게는 그냥 이성계 군대를 조지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행한 행위라고 보면 될겁니다. 후방의 왜구보다 고려에 더 위협이 될 세력을 이성계로 봤을테니까요.
@user-inyourface5 ай бұрын
35:19 저도 당시 어째서 우왕과 최영이 이성계에게 요동정벌군이라는 패를 내어주는 하이리스크를 감당했는지 약간의 미스테리가 있었는데 정말 흥미롭고 새로운 관점인 것 같습니다.
@@머니올라 공영방송의 클라스를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ㅎㅎ 머니올라 화이팅, 임용한 파이팅!!
@kdyu1785 ай бұрын
15년전에 단둥 가본적 있는데 위화도 근처 압록강 하구에 크고 작은 모래톱이 엄청 많은 거 보고 놀랐음. 2월이라 아직 많이 추웠는데 강물이 군대군대 얼어 있어서 그냥 도보로도 도하가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싶었음요.
@집사콩이네5 ай бұрын
비가 적게 오는 겨울과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의 강 수위는 매우 달라요. 현대에 와서 한강을 넓히고 댐을 만들고 해서 수위 조절이 일정하게 되는 거래요. 예전에는 10배 이상의 수위차이가 심했었다 들었어오. 압록강쪽도 장마철과 비가 적은 겨울의 강 수위도 많이 달랐을 수 있을 것같아요.
@juns59515 ай бұрын
용한업!!
@no-vg8nr5 ай бұрын
위화도 회군 말은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해석하는건 처음들어보네요 꿀잼
@이브이-x4y5 ай бұрын
임박사님 계시니 구독 좋아요
@TV-fg9sc5 ай бұрын
전쟁에서 이길려면 내부적인 요인들이 충족되어야 하고 폭발적인 힘이 있어야 가능한데..영혼끌어모아서 치는 건 전투는 가능하지만 전쟁에서 이기진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느낍니다
@CultureChampion_kr4 ай бұрын
38:38 왼쪽 3번째 분~ 진짜 칼을 거두려고함~ㅋㅋ 미래를 볼 줄 아시는 듯~🪄🔮
@히히힝-f7n4 ай бұрын
와우 멋진 관찰력이세요😊
@행행행-p6s4 ай бұрын
KBS가 자원 활용을 잘하네 ㅋㅋㅋ 드라마 썩히지 말고 바로바로 자료로 쓰는 센스보소
@백살공주-t5z5 ай бұрын
아직도 환단고기 규원사화 믿는 사람들이 있구나..ㅎㅎ 잘 보겠습니다 !!
@tkpaco5 ай бұрын
한둘이 아님... 역사유튜브 올린지 좀 된 영상에서 댓글 최신순 정렬누르면 그런 댓글 수십개가 절 반겨줌 ㅋㅋ
@hofffnung5 ай бұрын
@@tkpacoㅋㅋㅋ 믿는건 그렇다 치는데 당당한게 더 웃김
@목격자냥이5 ай бұрын
프사보면 586들임ㅋㅋㅋㅋ 쉰내 오지게 남
@천사들을부탁해Angelsont5 ай бұрын
해뜰때쯤 같이 가시죠!! 😅
@머니올라5 ай бұрын
가시죠!!
@yongeekang24945 ай бұрын
객관적으로 검증되어야 하는 부분,역사학자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기록과 싸우시는지는 몰랐습니다.
@송명진-q1l5 ай бұрын
혹시 주제별로 영상 나눠주실수 있나요?
@김톰-s3n5 ай бұрын
다른 질문입니다 드라마 등 보면 고려시대 왕궁 및 고관들의 생활 양식은 중국식 입식 가구이고 관복은 송나라식으로 보 입니다 근거가 있나요? 그리고 조선시대로 접어들면 갑작스럽게 좌식 생활양식으로 변화된것으로 드라마상 보입니다 생활앙식및 관복의 갑작스런 변화 사실일까요? 어떻게 ? 평민 생활도 입식에서 좌식으로 바뀐 것 일까요?
@jeongjaesoon5 ай бұрын
진행자분이 지식이 많고 이해가 높아서 더 진행이 깔끔하고 내용이 영양가 있는 것 같아요. 질문도 딱 적정한 선에서 던져주시는 듯.
@jp55005 ай бұрын
kbs에서 가자님과 같이 등반 하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ㅋㅋ
@머니올라5 ай бұрын
여름 지나서 하면 안 될까요...? ㅎㅎ
@kimco77895 ай бұрын
13:42 ㅋㅋㅋㄱㅋㅋㄱㄱㄱㄱㅋㅋㅋㄱㅋㅋㅋㄱㅋㅋㅋ현실말투같아서 웃기네요
@Tradesoul20255 ай бұрын
요동을 안정적으로 가지기 위해서는 결국 만주에 있는 여진족과 하나의 세력으로 묶여야 하는데 그 당시 조선이 그걸 해낼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은 없었죠. 이성계도 여진족 일부에 영향력이 있었을 뿐이고요. 무엇보다도 그 당시 조선인들이 여진족을 같은 국민으로 받아들일 마음이 있었을까요? 고구려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죠.
@팡빈스5 ай бұрын
kbs님. 역사저널그날 다시 방영해주세요ㅜㅜ. 예전멤머그대루요
@김혜란-x2d5 ай бұрын
앗 기자님 7월에 다시 뵐 수 있는 길까요ㅠㅠ 안 됩니다아. .. ......ㅠㅠ 아껴볼걸 그랬어요...ㅠㅠ
@머니올라5 ай бұрын
ㅜ 두 번 보시면 됩니다!! ^^
@David-g9i9x5 ай бұрын
저러고 세운 조선이 역사내 강한국가였다면 위화도 회군에 대한 인식이 나쁘진 않았을것 같은데... 역사내내 조선 전기를 제외하곤 항상 호구같은 면면들만 보여주다가 조선말 식민지로 전락한 역사때문에 더욱더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것 같내요..
@수집쟁이드라하카5 ай бұрын
그런 경향이 크죠
@kcastnet5 ай бұрын
한글 한개는 건졌다는..... ^(^
@hyeonsseungsseungi3 ай бұрын
조선은 세조 이후로는 개막장인 것 같습니다.
@수집쟁이드라하카3 ай бұрын
진짜 조선은 한글하고 이순신 빼면 시체라니깐 이 둘이 없었으면 진짜 있는 욕, 없는 욕 다 처먹었을듯
@포도사탕-i7r5 ай бұрын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 정말 대단했군.
@아르마딜로-w8z5 ай бұрын
최영장군이 정말 몰랐을깤
@maemasid90925 ай бұрын
2부는 아직인가요
@bgkhan44755 ай бұрын
철령위가 어디인지 얘기해주시죠
@doodaebal5 ай бұрын
We are the 회군
@user-ae5pa5 ай бұрын
50분이 후딱 지나갑니다
@Matou-Sakura5 ай бұрын
정의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이 없는 정의는 의미없음을..... 임용한 교수님 영상은 항상 재밌고 알찹니다~~
@고대경-b6d5 ай бұрын
1차 요동 정벌 당시 성공은 했지만, 군량 창고가 불에 타는 상황, 보급을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철군한 경험을 보면 회군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죠. 요동 정벌을 해도 그 후에 어떻게 지키고 유지할지가 더 큰 문제고 그 다음이 어떻게 활용할지죠.
@CHOI원배5 ай бұрын
지키는 건 그때 정세를 보고 판단 하는거지....ㅋㅋㅋㅋ. 시작도 안하고 꽁무니 빼냐? ^^
@user-sumackps4 ай бұрын
조선의 탄생이 자국민을 노예 국민으로 만들고 유교가 폐쇄적인 국가를 만든 것을 왜 감추는가? 고려는 중국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후예라는 사실을 그리고 망해가는 명나라를 섬긴 이성계가 이조 5백년 회한의 조선을 만들었다. 그대는 아는가? 최영과 조순의 절개를..
10:13 '1387년에 명군이 요동에 처음 들어왔다.. 그전까지는 명이 요동까지 못왔다..' 요동도지휘사사 명나라는 1371년(명 홍무 4) 요양(遼陽)으로 진출하면서 정료지휘도지휘사(定遼指揮都衛使司), 약칭하여 정료도위(定遼都衛)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1375년(명 홍무 8) 군제의 개편으로 정료도위를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 약칭하여 요동도사(遼東都司)로 개편하였다. 요동도사는 원의 요양행성(遼陽行省) 행정 중심지였던 요양에 설치되었으며 요동도사 아래 25개의 위를 두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1차 요동정벌 실패뒤 유익의 명나라 귀부뒤에 암살당하지만 요동지역 군지도를 넘기면서 이걸 토대로 명이 요동을 접수한게 1371년임. 위화도 회군당시까진 12~13개위가 설치되어있어서 주둔군이 6만이던 시절임. 명이 나하추를 칠려고 20만동원한것도 기록에 보면 요동에 나아가서 병참기지 4곳 만들고 여길 기점으로 통주로 나아갔다고 나옴. 요동까지 싸우면서 나간게 아님 왜냐면 이미 요동은 명이 접수한 지역임.. 이에 대한 근거는 그냥 고려사만 봐도 수두룩하게 나옴. 요동도사가 정몽주 등의 입국을 거부하다 1383년 01월 미상 (음 정몽주(鄭夢周) 등이 요동(遼東)에 도착하였으나, 도사(都司)가 입국을 거절하라는 칙서(勑書)가 있다고 하면서 진헌(進獻)하는 예물만 받았다. 정몽주가 명에 사신으로 갔지만 요동에서 요동도사에게 입국거절되서 돌아왔다는 기록.. 요동도사 = 요동도지휘사사임. 요동도사가 한 역할이 고려랑 나하추랑 연결못되게 견제했었슴. 나하추는 만주일대에 있었고 고려랑 중간인 요동엔 명나라군이 들어와 있어서.. 명이 요동 접수하고나선 나하추가 여러번 요동공략했었지만 거의 전멸까지가는 피해입고 그뒤로는 시도도 안했었슴. 애초 최영이 요동칠려고한건 당시 주원장이 남옥에게 15만대군주면서 북원치라고해서 군대끌고 북상했다는 소식이 고려에도 전해졌었고 그래서 요동이 비었다고 생각해서 요동칠려고 했던거였슴. 근데 위화도에 이성계가 당도했을때 상황은.. 북원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급습당해 전멸당한때였슴. (5월 18일.. 양력이면 위화도 회군 한달전이고 음력이면 위화도 회군 4일전임) 북원과 손잡고 명과 맞선다는계획은 애초부터 빗나간셈임. 역사학자들 국내기록만 보지말고 외국기록과 대비정도는 해야하는거 아닌지..
@newbie-k6e5 ай бұрын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있는 글은 제가 직접 확인을 안해서 잘 모르겠지만, 역사 잘 모르는 사람도 알기 쉽게 정리한 글일겁니다. 님이 원하시는 글은 논문을 읽으시면 나올겁니다. 역사관련 기관 홈페이지에 있는 글들은 대부분 한눈에 알기쉽게 정리한거지 학술적인 의미는 적습니다. 당장 역사학자들은 개개인의 주장과 생각이 다르고 하나의 사건에도 의견통일이 잘 안됩니다. 당연히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내기록뿐 아니라 외국기록을 가져오는건 기본중의 기본이고요. 님이 국내랑 외국기록을 역사학자들이 대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마 논문들을 쉽게 접하시지 못 했기 때문일겁니다. 논문 아무거나 찾아봐도 서로 대비하는건 나오고 특히 고대사 같은 경우엔 기록이 너무 없어서 고고학이나 해양학, 기상학 같이 다양한 학문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니 역사학자들 폄하하지 말아주세요. 저분들 다 한평생 공부 엄청 많이 하신분들입니다.
@신명진-n6t4 ай бұрын
지금은 물자 수송이 원할하지만 과거에는 소국이 특정지역을 강대국으로부터 공격할 수 있다.
@빈티지시계사랑4 ай бұрын
우왕.최영이 미처 생각못한것은 견성계집안의 전통은 반역이라는것!
@숲-y8n5 ай бұрын
이성계는 완전 구테타죠?
@MAIHAMA73295 ай бұрын
5분정도 지난줄 알았는데... 48분이 삭제되었습니다.
@htd55555 ай бұрын
쿠데타는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반역이야!
@시골의원5 ай бұрын
위화도가 더 위 라는 썰이 있던데 맞는거 같아요
@환석배-z3iАй бұрын
임요한박사님? 당신이 바로 사대주의자네요
@kibaeklee11214 ай бұрын
솔까 이거 잼씀 ㅋ 나에겐 영원한 삼국지아저씨ㅋㅋㅋ
@shinepark30045 ай бұрын
저 타이밍에 요통을 친다는건 국제정세를 너무 모른거고, 대고구려를 본받는 다고는 하지만 그 고구려도 외교적인 이유로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다시 싸우기도 했었는데 마냥 고구려가 싸우기만 한 것 마냥 프레임 씌우면 안됨, 그리고 결국 고구려도 중원은 들어가지도 못했음 민족 역사상 가장 큰 나라이긴 했지만 중국땅에 비교하면 크다고 말하기가 힘든 크기임 너무 뽕에 씌인 눈으로 역사를 보면 이상하게 해석할 수 있음
@김김김-c2d3y5 ай бұрын
민족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키운게 신라임. 신라의 후손인 금나라와 청나라가 바로 그 표본.
@남긴5 ай бұрын
진창은 답이없지 ㅠㅠ
@수집쟁이드라하카5 ай бұрын
우선 이 영상만 한해서 궁금증이 1. 요동정벌을 결심할때 칭제건원을 한다는 기록이 있나요? 2. 진창에 대한 이야기는 미처 생각도 못한 이야기라 매우 중요한 점이라고 보는데 이미 동녕부 정벌을 위해 1차 요동정벌때도 장마로 힘들어 하는데 성공을 하는데 차이점이 무엇이죠? 홀골산성이란 거점을 만들어둔 덕분인가요?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게 동녕부를 정벌한 1차 요동정벌때 일단 홀본산성(지금의 오녀산성, 고구려 첫번째 수도)을 점령하고 이때 이오르테무르가 합세하고 숨을 고르고 요동을 친거기에 속전속결로 요동을 공략한게 아닌 텀을 두어 나누어 행동하죠 근데 최영이 주장하는 2차 요동정벌때 이러지 않고 그냥 직진으로 갔거든요 이런 차이가 승패의 차이로 귀결되는 건가요? 3. 악조건은 다 같을진데 왜 이성계의 위화도 쿠데타만 다르게 말하는걸까요? 기록만 보면 마치 이성계는 쿠데타 마음이 없는데 조민수및 다른 제장들이 종용하고 어쩔수 없이 이성계가 마지못해 쿠데타를 한것마냥 써놓으니 너무 의심이 간단 말이죠 4. 그리고 제일 궁금한 위화도 진격로 오늘날만이 아닌 옛 사람들도 위화도로 가는 길은 택하지 않는데 왜 험한 위화도로 진격로를 잡았는지 의문입니다
@수집쟁이드라하카4 ай бұрын
@@붉은전장 응? 아니 왜 붉은 전장님이 여기서?.......... 일단은 뭔가 반갑기는 한데 어안이 벙벙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