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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의 한국사] 고구려가 전성기에 삼국통일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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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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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жыл бұрын

우리 역사에 가장 넓은 영토와 진격의 정복전쟁을 남긴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그런데 그들은 왜 전성기에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나?
#임용한 #고구려 #광개토대왕 #장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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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1 100
@user-wn5rt8ip3q
@user-wn5rt8ip3q 2 жыл бұрын
몇몇 유명 유튜브 방송하는 학자 분들은 인기를 얻으려고 사이다식 발언을 많이 하는데, 임용한님은 조금은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사실을 최대한 전달하여 주려는게 너무 좋아요. 개혁에 관한 이야기 할때는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도 떠올라서 많이 씁쓸하네요. 늘 잘보고 있습니다. :)
@tes___
@tes___ 11 ай бұрын
저도 그 부분이 너무 호감이고 뭔가 신뢰감도 생기고 객관적이신거 같아 팬입니다ㅎㅎ
@user-cz8he9uq4w
@user-cz8he9uq4w 11 ай бұрын
그래서 다른 학자들 말은 않들음
@Bee-xs8jn
@Bee-xs8jn 10 ай бұрын
보통 역사학자라고 나와서 강의하는걸보면 열에아홉은 국뽕임.조금만 다른의견을내면 짱깨 조선좃 일제네 온갖비난을 받고 매국노취급함 ㅋ
@fff-mv3jf
@fff-mv3jf 9 ай бұрын
그런 사람들은 사학과 나온게 아니라 연영과 나왔죠 사실.
@kph665
@kph665 9 ай бұрын
역사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듣는 사람이 평가하게 둬야하는 역사가가 진짜라 봅니다 본인의 사상, 정치적 판단, 대중들의 원하는 답만 하는 역사해설가라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음
@user-ew6mo9gz5b
@user-ew6mo9gz5b Жыл бұрын
참으로 객관적인 말씀이십니다.....이런분이 진정한 교수님이시지요
@latenight5865
@latenight5865 Жыл бұрын
지금 기준으로는 같은 민족인 삼국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있는거지만 그 당시에야 그런 당위는 없었을듯. 같은 민족이라 통일이 되었다기보다는 그 나라들이 합쳐지면서 하나의 민족이 형성된거라고 보는게 더 타당할 것이고...
@gg51767
@gg51767 Жыл бұрын
6세기 후반즈음 가면서 조금씩 삼한일통이라는 개념이 생기기는 하죠. 이 개념이 정복을 위한 정당화일뿐인지, 아니면 정말로 느꼈던건지는 모르겠지만요
@user-km9mj8tr2t
@user-km9mj8tr2t Жыл бұрын
신라는 몰라도 부여 고구려 백제는 한뿌리임. 따라서 고구려 백제는 동질감이 있었겠죠.
@HotSoil510
@HotSoil510 Жыл бұрын
@@user-km9mj8tr2t 같은 민족? 개뻥력사.
@user-vx6he1rc2i
@user-vx6he1rc2i 11 ай бұрын
같은민족도아니고 그개념자체도없었고 기냥 나제동맹때는 고구려도 함부로못내려왔음
@mulkachi
@mulkachi 11 ай бұрын
​@@user-km9mj8tr2t같은 민족이라기엔 한인도 예전엔 부여계 예맥계 남방계로 나뉘어져있었고 상류층만 같은 부여계여서 피지배층은 동질감 같은건 딱히 없었을거 같음
@OYT0724
@OYT0724 Жыл бұрын
역사 유투버 채널 중에서 가장 객관적인 관점을 지닌 사람이 바로 교수님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OYT0724
@OYT0724 Жыл бұрын
@@hm.knou.official 철령위라는 지명은 명나라의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에서 등장함으로 요동지역의 땅이었음을 증명합니다. 님도 제대로 모르면서 남을 그렇게 자신있게 헐뜯나요. 인터넷에는 참 여러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하네요.
@boyin4404
@boyin4404 Жыл бұрын
지리적으로 보면 고구려는 접해있는 유목민족 국가가 여러곳이 있어 남쪽에만 총 전력을 투사 할수 없는 상화이고 반면 백제와신라는 정복 안당하려고 두나라가 힘합쳐 대응 하기에 고구려가 남쪽만 바라보기 쉽지 않았다고 봅니다.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 жыл бұрын
최근 중국 북망산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민들의 묘지명에 보면, 스스로를 "요동 조선인" 또는 "요동 삼한인" 이라고 표현한걸 알 수 있다. 다시말해 그당시 고구려인들은 자기들을 고조선의 후예, 삼한의 후예라고 생각했다는 소리다.
@athanasius1124
@athanasius1124 Жыл бұрын
아마 조선이나 한이라는 단어는 고대 한국민족을 지칭하는 단어였을 겁니다.
@itaciturn
@itaciturn Жыл бұрын
삼한이라는 말은 가야, 부여가 망한 6세기에는 고구려, 백제 , 신라 삼국을 뜻하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user-uy3xr8fx3i
@user-uy3xr8fx3i Жыл бұрын
하지만 그 후손들은 중국화 되었다 지금 영토라도 잘 지키자
@samc9725
@samc9725 Жыл бұрын
​@@user-uy3xr8fx3i 순혈이니 족보니 뭐 그런건 아무의미 없는듯 중요한건 정체성인것같음
@jeong-eunking5981
@jeong-eunking5981 10 ай бұрын
한국인은 거짓말을 하는데 눈을 깜박일 줄 모릅니다
@arnshutain
@arnshutain 23 күн бұрын
0:54 사료부족 1:45 기대,로망 3:58 정신차려 4:57 그럴듯한 이유 6:06 박사님의 부탁 6:26 평양천도,북위의 북연공격 7:41 북연멸망 8:35 20년의 공백 9:12 개로왕의 노력 11:00 백제의 내부분열 12:43 사신파견 14:03 왜의 신라침공 17:19 장수왕의 구원. 18:47 일본서기. 19:07 삼년산성. 20:45 위례성 함락. 22:34 개혁 실패 23:33 웅주천도,나제동맹 24:47 통일실패 이유1 26:10 이유2 28:35 이유3(국경선 길이) 31:00 인구,언어 33:41 제국이 될려면 34:17 결론
@aris4rum
@aris4rum 11 ай бұрын
안좋은쪽으로 풀리면 중국이나 유목민족한테 고구려가 멸망하고 한민족의 구심점이 없어져서 타 국가에 복속되거나 동화되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장 생각나는 위기만 해도 수당 침입, 거란 침입, 말갈 반란(여진), 몽골 침입 이런 위기들을 다 넘겨야 하는데 말이죠.
@user-hk3un7sz5z
@user-hk3un7sz5z 10 ай бұрын
우리나라 산악지형의 특수성도 있다고 생각함.. 일본,중국의 사천성같이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가파른 산은 아니고 중부유럽 같은 완만한 고지지형도 아니고 그렇다고 터키,인도같은 고원지대도 아닌 가파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낮지도 않은 애매한 높이의 산이 엄청난 길이로 연결되어 있음. 냅두면 산속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저항하고, 막상 점령하자니 엄청난 병력수가 필요한 지형임. 이런 산들의 특징으로 우리나라는 산성이 매우 발달함. 고양이과 맹수도 많고. 그렇다고 완전히 점령하자니 투입되는 병력에 비해 수확할 이득도 적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세의 공격은 항상 이런식으로 약세화 됨. 같은 민족인 고구려라고 이 과정을 안거쳤을리가 없음. 한반도가 단순 농토로 보면 굉장히 작은땅이지만, 산을 평평하게 펼쳤을땐 군사를 투입하기엔 굉장히 넓은 땅이 되어버림.
@daegue_sangnamja
@daegue_sangnamja 11 ай бұрын
좋은 영상 항상 감사합니다
@user-uy6hd5gz7x
@user-uy6hd5gz7x Жыл бұрын
유투브 하시면서도 학자의 모습을 유지하시는 모습 감탄스럽습니다.
@changyang2105
@changyang2105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통일 못한건 시류와 시운 때문일 뿐이겠지. 역사에서 "what if.."라는 건 어리석은 말이야. "당신은 왜 그때 재벌이 되지 못했나?"라고 묻는 것과 같아
@violet1945
@violet1945 2 жыл бұрын
어떤 나라든, 군대가 가서 깃발만 세운다고 내 땅이 되는 게 아니고, 정복 후엔 정말 내 땅으로 소화하기까지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한 법이죠.
@user-kk3wm8zu4k
@user-kk3wm8zu4k 2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것은 신라 백제보다 농경에 불리한 땅, 위치가 중국과 신라, 백제 사이 끼여 있는 점,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낮은 점, 언어가 하나가 아닌점 등일 것이고, 고구려가 한반도를 통일하였다면 우리나라가 만주까지 넓어지기 보다, 후금처럼 나라와 민족 언어가 없어졌을 가능성이 훨씬 더 컸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봐야 할듯.
@allem49
@allem49 2 жыл бұрын
제 생각에도 고구려가 통일 했으면 우리나라만의 민족성이 사라졌을 수도 있었을 꺼 같음
@King_Cider
@King_Cider 2 жыл бұрын
이게 찐입니다..정답입니다!!
@edwardreesekimhappton5844
@edwardreesekimhappton5844 2 жыл бұрын
농경에 불리하다는건 무슨 소리죠 한반도에서 제일 넓은 평야가 평양이고 함흥도 물산이 풍부해 조선이씨왕가가 별장까지 짓고 살던곳인데 거기다 지금도 만주에 길림성이 숲이라는 뜻인데 목재 자원은 얼마나 많았고 .,... 철도 많이나서 말한테도 갑옷입히던게 고구려인데
@user-gh3ye2kf9h
@user-gh3ye2kf9h 2 жыл бұрын
제가봐서는 둘이 백제 신라. 싸움부치고 생각이없었던거같음
@user-kk3wm8zu4k
@user-kk3wm8zu4k 2 жыл бұрын
@@edwardreesekimhappton5844 기온이 더 낮고 산지 비율도 더 높아서 농경에 불리하다고 한 것입니다.
@user-sk7sy2ky6k
@user-sk7sy2ky6k 2 ай бұрын
광개토태왕때 장수왕때 충분히 삼국 통일 가능한 시점 있었는데 북방도 신경 썼어야 했던 고구려 입장에선 남쪽에만 집중 할수가 없었던거 같음.
@user-sh8ye8qb8k
@user-sh8ye8qb8k Ай бұрын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광개토대왕때는 모두 제후국으로...남겨둔거라 봅니다.
@Daldal-ing
@Daldal-ing 2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군사력도 강하고 땅도 넓었지만 땅이 넓다 = 지켜야될 땅도 많다는 뜻이라서 병력을 한군데로 집중을 못시키고 분산이 될수밖에 없었습니다. 백제 신라쪽으로만 군사력 몰빵했다가는 북쪽에서 유목민족들이나 중국한테 뒤통수 털릴수도 있는일이고요 따라서 당연히 1:1로 맞짱뜨면야 압도적으로 고구려가 이기겠지만 국가대 국가간의 전쟁은 1:1이 아니라 전쟁중에도 뒤통수 털릴대비를 해야되기때문에 군사력을 백제나 신라쪽으로 몰빵할수가 없고 일부의 병력만을 가지고 싸웠어야했습니다. 다만 그 일부만 가지고는 백제 신라를 압도하기에는 좀 부족했다는 뜻이죠.
@user-ql4ec6jv4d
@user-ql4ec6jv4d 2 жыл бұрын
1:1 도 이긴다는 보장 있나여 ㅎㅎ
@dontyoudareidiot
@dontyoudareidiot Жыл бұрын
@@user-ql4ec6jv4d 고구려군이 신라 왕궁을 지키던 시절도 있는데 당연히 이기죠 ㅋㅋㅋㅋㅋ 일제가 경복궁 지키던 시절 생각해보세요
@snrkqkqh
@snrkqkqh Жыл бұрын
사실 이런 논리는 중요한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전선을 이중화하지 말라는 명제는 군사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만, 같은 논리로 수나라나 당나라 역시 전방위의 침략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흉노와 여진의 침략은 고구려뿐 아니라 당나라에서도 심각한 위협이었고, 지금도 긴장관계에 있는 인도는 당시에는 굽타제국으로 인도에서도 역사적으로 전성기라고 부를만한 시기입니다. 오히려 수나라 시기가 마우리아제국이 분열하여 위협이 덜했지만 중국대륙이나 인도나 서로 힘을 키워가면 통합하던 시기였죠. 즉, 당나라로서는 전선을 축소시키기 위해서 가장 약하면서 고구려를 공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를 꾸준하게 공격한 것도 같은 이유죠. 즉, 당나라도 전선의 이중화에 대해서는 고구려와 같은 문제를 앓고 있었다는 것이죠. 게다가 중국대륙은 역사적으로 전선의 이중화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오죽하면 진나라때부터 만리장성을 쌓았겠어요? 저는 오히려 고구려의 패배원인이 동맹관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제는 왜, 신라는 당이라는 주변국과 동맹으로 연합할 수 있었고, 정복을 위한 적극적 동맹관계에 있었으나 고구려는 동맹이랄 것이 없었습니다. 여제동맹이 신라에 의해 조작된 허구였다는 의견이 주류가 되었는데, 설령 허구가 아니었더라도 신라와 당의 원조를 차단하는 소극적 동맹 수준이라 사실상 혼자서 여기저기 찌르고 다니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강성기에는 위협에 버틸 수 있었지만 내정까지 무너지고 국력이 소모되어 약해진 시점에서는 위협에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항상 고구려를 생각하면 영토에 대한 아쉬움이 남지만, 그렇게 뛰어난 국가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user-xj7ro3bl9d
@user-xj7ro3bl9d Жыл бұрын
실제있었다죠. 원래신라 구원하러 가는정예병이 우회해서가야햐는데 백제영토를 가로질러 백.왜연합군을 격파하고 왜까지가 토벌했었으니.
@user-vx6he1rc2i
@user-vx6he1rc2i Жыл бұрын
풋 .. 고구려는 최전성기에 영토가가장넓고 군사적으로 강력할때. 장수왕 문자명왕시대때도 나제동맹연합때문에 함부로 못내려왔음
@user-C4eYGdM8xkw
@user-C4eYGdM8xkw Жыл бұрын
국군방송인가 너무 재밌게 강의해주셨던 분 같네요. 바로 구독.
@user-hk3un7sz5z
@user-hk3un7sz5z 10 ай бұрын
5:55 너무 간단하고 정확한 비유네요 ㅋㅋㅋ
@user-sv5so8zi3b
@user-sv5so8zi3b 2 жыл бұрын
유럽으로치면 프랑스 같은 위치였을까요. 강하긴 하지만 둘러싸이면 못이겨내는 힘의 차이
@user-bf8lx9nn7m
@user-bf8lx9nn7m Жыл бұрын
폴란드급같은데. 내부귀족들 개아리트는것도 그렇고, 힘은 나름 있는데 주변 강대국이 더 강하고. 프랑스는 자력으로 주변 휘어잡을 국력을 엄청 오랫동안 유지했고, 지금도 갖고 있잖아요.
@user-px1xg7uk4c
@user-px1xg7uk4c Жыл бұрын
@@user-bf8lx9nn7m 폴란드가 그나마 더 비슷한거 같네요. 프랑스는 전국시대 통일한 일본 정도??
@user-cc5ic8yj9p
@user-cc5ic8yj9p 10 ай бұрын
교수님의 과거 명언: 4:00 일어나지 않은 일에 생각을 두는 것보다 자기 앞에 주어진 역할에 대해서 가장 진지하게 사는 것이 일생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truth1472
@truth1472 2 жыл бұрын
박사님 제가 재시청으로 공부를 할 영상입니다. 감사합니다.
@treepark1783
@treepark1783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삼국통일 못한이유는 지킬땅은 넓은데 사람은 적고 자원도 한정적임.. 지형지물을 잘 이용해서 잘막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자원과 인구가 많은 적세력쪽이 유리할수 밖에 없음. 거기에 내부 왕권 다툼등으로 내적으로 보나 외적으로 보나 고구려는 현상유지하는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음.
@GangUn_Ryu
@GangUn_Ryu Жыл бұрын
저는 거기에 굳이 점령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다는 것도 컸다고 생각해요 미국이 전세계 모든 땅을 점령하지 않고 다 아군으로 삼으면서 세계 최고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고구려 또한 당시 북위, 북연, 백제, 신라, 왜 등의 땅을 점령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 없이 그들의 경제, 자원을 쥐어짤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user-sw1lj9qh5y
@user-sw1lj9qh5y Жыл бұрын
@@GangUn_Ryu 맞아요 그리고 백제 신라에 해당했던 곳이 그렇게 좋은 땅이었느냐? 그런것도 아닌 것 같네요
@HotSoil510
@HotSoil510 Жыл бұрын
통일??? 원래 고구려 백제 산라 사람들이 같은 종족 같은 나라였나??? 통일하게??....왜 통일을 못했나? 이런 주제가 멍때리는 드립임.
@HotSoil510
@HotSoil510 Жыл бұрын
@@scvmatt5243 민족이 아니라 종족이겠지 민족은 1900년 무렵 닛본서 들어온 왜나라 말 개념임 고구려가 신라백제랑 같은 말쓰는 같은 종족임?
@HotSoil510
@HotSoil510 Жыл бұрын
@@scvmatt5243 왜 혈연언어 같은 종족이면 하나의 나라로 살아야함? 사고방식이 왜식 아닌가,? 닛본 특유의 민족 개념에 세뇌된거 아님?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카나다 등등 정치 종교 생각이다르면 나라도 다르게 살면 되는 거임.
@user-gj1vp1lo8k
@user-gj1vp1lo8k 9 ай бұрын
역시 최고의 강의 입니다.
@Matou-Sakura
@Matou-Sakura 2 жыл бұрын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킨것은 결국은 자충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력을 너무 많이 소비했고, 또 고구려만큼 만주유목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솔한 나라가 역대 전무하죠. 30년후 발해가 들어서는걸 막지도 못했고 이후 당은 주변나라에 계속 시달리고 중국은 만주 유목민들에게 계속 시달리게 됩니다.
@user-tq4jq4zv7i
@user-tq4jq4zv7i 2 жыл бұрын
신팍하고 합리적인 말씀이네요 새로운 견지로 역사를 볼수있네여
@King_Cider
@King_Cider 2 жыл бұрын
고로 역사는 만약이 없지만 일단 통일신라가 아주 잘 한일임.그 때 통일 못했으면 지금 한반도는 사라지고 없음..ㅋㅋ
@drkw7918
@drkw7918 2 жыл бұрын
복어독을 다스릴 능력이 없으면 함부로 복어를 잡아먹어선 안 되지요
@kjseo84
@kjseo84 2 жыл бұрын
근데 애초에 예맥족 즉 현대 한민족의 뿌리가 농경민족은 아니었죠....고구려도 부여계통의 유목민족이 주류 지배층이 된것일 뿐입니다.
@David-nu8gx
@David-nu8gx 2 жыл бұрын
@겁없는선비 고구려를 농경민족으로만 보는 것은 역사를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광활한 유목민족의 기동력과 기마전술 그리고 해양술을 빼면 안될 것입니다.
@orion4195
@orion4195 7 ай бұрын
조선의 10만 양병설을 보자면 당시 한반도의 gdp 대비 모병 능력 의 최대치라 할수 있는데 고려 시대 30-40만 모병은 참 쌩뚱 맞다. 고려 와 그 이전 백제 신라가 정말 한반도 안에서만 아옹 다옹 했다는게 의심 스럽고 당태종이 중원에서 변방의 위치에 있는 곳을 점령 하러 직접 전쟁을 치렀다는 명분이 무엇인지 의구심이든다.
@ghostfly4960
@ghostfly4960 2 жыл бұрын
왕권파라도 다 같은 단일 세력이 아니라는 점은 새롭게 배웠네요. 흥미롭습니다. 민족성이 바뀌었는지 제대로 된 당시의 역사책 하나 없다는 점은 항상 아쉽습니다.
@buckston201
@buckston201 Ай бұрын
의도치 않은 일들로 인해 기록이 말살됐다고 봐야죠 특히나 백제는 신라에 의해 멸망당했다고는 하나 정작 상당기간 백제의 수도권 지역은 당이 점령하고 있었고 고구려는 말할것도 없고요 거기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후반에 전국각지에서 도적떼와 호족세력들이 거병하거나 약탈과 방화등이 극심했고 그후 바로 후삼국전쟁은 물론이고 후고구려인 발해는 거란에 의해 멸망당하고 이후 두만강 이북지역은 완전 우리역사에서 사라졌으니까요 뭐 이후 거란의 개경함락과 약탈, 70년간 몽고의 침입과 약탈, 고려후기 홍건적의 침입, 왜구침입, 조선창업과 더불어 과거 기록 유실, 조선시대 임진왜란으로 기록물 소실, 영조시절 궁내에 있던 문서고 대화재, 1910년 경술국치, 6.25전쟁등 그나마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라도 남아 있다는게 진짜 대단한 행운이라면 행운이라고 할수 있는거죠...
@InOS-ex6hb
@InOS-ex6hb 6 ай бұрын
솔직히 혼자 상상하다가 한글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user-wg3dk8zd9y
@user-wg3dk8zd9y 2 жыл бұрын
영상 감사합니다
@user-gs7ip6my2v
@user-gs7ip6my2v 2 жыл бұрын
저도요 임용한 박사님 쵝오!!!!!!!
@Dragon-lee5558
@Dragon-lee5558 9 ай бұрын
잘봤습니다.
@user-ol9zy3hp5v
@user-ol9zy3hp5v 7 ай бұрын
조선에 대한 정보가 과잉이라 이전 역사를 모두 조선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 아닐까요? 조선 때 만큼 중앙집권이 강한 때가 별로 없었는데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중앙집권 국가로 착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백제나 고구려 신라 모두 연맹형태로 귀족이 사병을 가지고 있었고 전쟁은 왕과 귀족이 상호 이득이 있을경우 일으킨거니까요.
@koleanan1001
@koleanan1001 Жыл бұрын
무엇보다 고구려는 해양력을 안키운게 가장 큰 패착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구려도 왜와 정기적인 교역을 할 정도로 수준급 항해술을 보유했지만 기마군단 증강 및 유지에만 집중했지 수군 양성엔 많은 신경을 안썼지요. 그러다 보니 백제와 신라가 중화대륙 왕조 및 동남아, 서역간 무역으로 부를 쌓는걸 차단하지 못해서 백제와 신라을 정복시키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신라가 불교공인, 율법 제정을 통해 왕권강화 및 국가내부세력 총결집을 이뤄낸 이후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수, 당과 교역을 하면서 엄청난 국부를 쌓았는데 고구려는 해양력을 키우지 못해서 신라의 해양력 강화를 견제하지 못했지요. 그로 인해 나당연합군의 해상진공을 못막아서 끝내 고구려가 멸망했다고 봅니다. 덤으로 해양력은 자연환경과도 밀접한데요 선박제조에 적합한 목재는 침엽수보다 활엽수입니다. 침엽수는 활엽수에 비해 불에 잘타고 충격에도 약한 반면에 활엽수는 내구성이 강하고(침엽수는 파괴시 산산조각나지만 활엽수는 금만 그어짐) 불에도 잘 안타서 활엽수가 선박제조에 많이 쓰입니다. 실제로 영국의 잉글랜드 지역, 스페인, 포르투갈은 활엽수가 잘 자라는 곳이라서 활엽수로 선박을 많이 건조했고 특히 화포가 발명된 이후 침엽수 선박은 피탄시 산산조각나고 불탄 반면에 활엽수 선박은 피탄시 틈새만 커지고 불에는 잘 안타서 침엽수로 선박을 제조한 바이킹 민족 국가들은 해양력을 서서히 상실했지요. 오스만제국이 해전에서 대패하여 국운이 꺾인 레판토해전도 오스만제국이 고지대가 많아서 고지대에 잘자라는 침엽수로 선박을 건조했는데 활엽수로 선박을 건조한 유럼함대와의 맞대결에서 대패한걸 보면 신라가 고구려보다 해양력 강화에 좀 더 유리했던 지리적 요인도 있다고 봅니다.
@user-rv7tf6bg5y
@user-rv7tf6bg5y Жыл бұрын
지금의 북한처럼 해안이 두쪽으로 나뉘어 해군력을 유지하고 관리하는게 쉽지 않았을거 같아요
@user-ud8do4ri2g
@user-ud8do4ri2g Жыл бұрын
​@@user-rv7tf6bg5y 그게 대륙국가인 고구려의 결정적인 한계였죠..
@moonjae246
@moonjae246 Жыл бұрын
​@@user-ud8do4ri2g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프사 개역겹다 진짜
@arcyoon
@arcyoon Жыл бұрын
열도도 치고 후계국인 발해가 산동도 치고 한 것을 보면 약하거나 없었던 것은 아닌 듯.
@MiReukGungYe
@MiReukGungYe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해양강국이였다는 연구자도 계십니다. 윤명철 교수님의 '고구려 해양사 연구' 라는 책 추천드립니다. (윤 교수님은 고대사, 특히 고구려를 많이 연구하신분)
@hyeonsseungsseungi
@hyeonsseungsseungi 2 жыл бұрын
지금 입장에서야 삼국이지 당시 입장에서는 사방에 널린게 나라인데 삼국이 어디 있음?
@tojimari23
@tojimari23 2 жыл бұрын
열국시대죠
@user-bl2xk3wq9c
@user-bl2xk3wq9c Жыл бұрын
그 사방에 널려있는 주변나라들을 차려대로 쳐서 점령하고 땅넓히면서 세나라가 국경지대에 마주치면서 삼국이 성립된거임.
@nagien8158
@nagien8158 6 ай бұрын
하고 싶은 말이 뭔지
@honeybreadjo8512
@honeybreadjo8512 11 ай бұрын
한민족사에 길이 남을 대첩 중 하나인 살수대첩의 명장 을지문덕에 대해서도 대첩 당시 정황과 이름자만 알려져 있을 뿐 그 외 정보가 아예 없죠. 그 시대에 총사령관을 맡을 정도면 권력 중심부의 대귀족이거나, 그게 아니면 신분을 초월하는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였을 텐데 아무 것도 기록된 게 없습니다. 초기 뿐만 아니라 자료의 절대량이 너무나 부족한 게 고구려라서 같은 시기 서양은 로마 제국의 전성기였는데 켈트족 침략 당시에 수많은 자료가 불탔는데도 1차 사료가 많은데 고구려는... 정말 사료가 답이 없을 정도로 없습니다.
@cahmahkkang63
@cahmahkkang63 Ай бұрын
임용한 교수님의 박학다식에 혀를 내두르고 갑니다
@user-kdg3hsjab8n
@user-kdg3hsjab8n 11 ай бұрын
고구려도 대단하지만 사실은 경주 도시국가로 시작해서 한반도 전역을 통일하고 팍스 신라 시대를 열었던 신라를 재평가해야함 신라는 군사 외교 강국이었음
@wetube7500
@wetube7500 Жыл бұрын
삼국 중에서 가장 피곤한 나라가 고구려였지 않았나 생각함.대륙에는 중국, 반도에는 백제와 신라,북쪽으로는 북방 유목민족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고구려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인 광개토대왕 때도 백제와 신라를 공격하여 부분적으로 이기기는 했지만 완전 점령하지는 못했음.심지어 신라가 왜의 공격을 받았을 때도 지원을 해주고 서열만 확인했을 뿐 신라를 복속시키지 못함.중국과 북방을 견제해야 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한 군사력 투사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됨.이런 배경을 고려해보면 당과 연합한 신라가 통일한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정도임.고구려.연개소문의 전횡으로 국가 혼란과 국력 쇠퇴.백제.의자왕의 병환으로 정치 사회 혼란 국력 쇠퇴.이 틈을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 비집고 들어감
@spogolfer
@spogolfer 11 ай бұрын
선비족 출신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을듯
@user-bf8lx9nn7m
@user-bf8lx9nn7m 9 ай бұрын
대신에 강성하면 유목민 복속시켜서 좋은 목장 겸 기마군으로 동원할 수 있었잖음. 만주철광은 지금도 유명하고. 쌍너메거 중앙집권을 못해서 내부갈등 망국직전까지 봉합못한게 큰 원인인듯. 가정만 봐도 할배가 아무리 훌륭하게 일가족 경영했어도 자식새끼들 유산쌈하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나고 서로 소송하고 죽이려들듯이.
@user-jj7tf8uu3t
@user-jj7tf8uu3t 9 ай бұрын
ㄴㄴ 광개토태왕 땐 충분히 신라 복속시킬 수 있었음.. 5만의 기병을 이끌고 센라땅으로 가서 왜구를 섬멸했었을 정도니까. 그때가 마지막 기회. 광개토왕이 죽고나선 고구려가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이 지속되었고 그래서 장수왕이 즉위하고서 20년 동안이나 별다른 기록이 없었음. 20년 후 평양성 천도가 첫번째 기록이었고 장수왕이 그뒤부터 남진정책을 펼친거. 아마 귀족간이나 귀족과 왕족간에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혼란의 시기였으리라 추정되고 있음. 암튼 골든타임 20년동안 아무것도 못했던게 컸음.. 광개토왕이 20년만 더 살아있었으면 신라나 백제 둘 중 하나는 멸망시켰을거고 그 여세를 몰아 삼국통일 가능했을거라고 봄
@himchage
@himchage Ай бұрын
[청정심(평기허심) 박치우] 역사는 겨레의 정신이다 바른 정신을 가져야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처럼 바른 역사를 가져야 겨레가 바르게 살아간다
@dagadaoh7065
@dagadaoh7065 11 ай бұрын
애초에 하나의 나라에서 분리되어 삼국이 된 것이 아닌데 통일이라는 개념을 그 당시 상황에 대비시킬 수 있을까요? 통일보다는 복속시키지 못한 이유가 올바른 주제라 생각됩니다.
@user-ud4qb9qq3k
@user-ud4qb9qq3k 2 жыл бұрын
살아 남은자가 강자군요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2 жыл бұрын
그게 어쩔수가 없는데 기술과학이 발전하니 나중되면 민족이란 언어란 가치가 없어지는 시대가 오고 그러면 과거도 당연이 모순으로 이익집단이 선동질 하는게 아니라 진실을 알게되겠죠... 지금은 역사를 알아간다는 정도에 만족해야겠죠.... 그전은 그것도 몰랐던 시대가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은 같은 지구행성에 사는데 미개하다니 원시인이니 이 지랄을 했거든요 같은 미개하고 원시인이면서....
@user-qy6nw1cy7m
@user-qy6nw1cy7m 2 жыл бұрын
스키타이 아리아인 서흉노 신라 김씨 왕족들이 강했기 때문에 끝까지 살아남아 일통 삼한을 이룩한 것임
@Werewolf_IX
@Werewolf_IX Жыл бұрын
제아무리 강력한 제국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다양한 원인으로 무너져간 것이 역사에 다 나온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했다 하더라도 그 이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 잘 풀려서 중국까지 집어삼켰다고 생각해본다면, 결국은 그냥 중국 역사책에 나오는 역대 왕조들 중 하나가 되었을 수도 있다
@user-op1ph4wt9w
@user-op1ph4wt9w 7 ай бұрын
금나라 청나라가 바로 고구려후손이 중국통일한 것입니다
@user-ld5iz6fm9q
@user-ld5iz6fm9q 10 ай бұрын
1. 3국은 같은 민족 2. 중국과 세력싸움으로 그런 여유가 없음 3.고구려의 역량의 문제-만주와 한반도를 모두 통치하기 어려움
@bumsunyoon1500
@bumsunyoon1500 8 ай бұрын
나의 조상님의 경기도 파주는 고구려성이 있었던곳.
@user-hj8md1ij3j
@user-hj8md1ij3j 2 жыл бұрын
임용한 최고~!!!!!!!!!!!
@dnddldy
@dnddldy 2 жыл бұрын
너무 유익한 영상입니다 감사합니다.
@baekmamok
@baekmamok Жыл бұрын
다른 영상들에 비해 많은 조회수만 봐도 한국인들이 고구려 주도의 통일을 못내 아쉬워하는 속내가 느껴지는군요 한반도에 실재했던 고대국가이면서도 이방인 취급 당하며 사랑받지 못하는 신라의 역사가 안타깝고 씁쓸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역사이니 겸허히 받아들여야죠
@user-ox1qm3os2j
@user-ox1qm3os2j Жыл бұрын
미스테리라 생각함 보통 정복전쟁이라는 것도 자기 민족 통일 후 하는데 삼국통일을 하지 않은채 북벌이라니 뒤에 적을 두고 북벌한다는게 이해가 안감 결국 그래서 당나라 신라가 연합해서 고구려가 망했고
@Dog-xl7ms
@Dog-xl7ms 2 жыл бұрын
굿굿
@lucaslee5680
@lucaslee5680 Жыл бұрын
너무 유익합니다~ 추가 말씀드리면 보급도 엄청 중요한데 백제와 신라에 비해 고구려의 보급선과 식량 문제도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싶습니다.
@user-kw9nz9jw8c
@user-kw9nz9jw8c 2 жыл бұрын
처칠은 개인적으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런 류의 질문과 이에 대해 답하는 것에 매우 회의적이라고 했죠. 한 번씩 시간을 되돌려 선택을 달리했다면 더 나아졌겠지라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지만, 설령 그런 기회가 주어지고 새로운 선택을 한다면 경우의 수 체계가 완전히 달라질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우리가 바란 오늘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 였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고민과 상상이 갖는 의미는 곧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라 봅니다. 대체로 현재의 국제정치학에서 배우는 많은 이론과 사례가 유럽 중심으로 발전해왔는데, 한국사에서도 이런 체계를 적용하여 보다 신뢰도 있는 접근이 가능해지리라 봅니다.
@Delmn
@Delmn 2 жыл бұрын
뱅골에서의 학살과 갈리폴리전투 생각하면 시간돌리고 싶어할듯 ㅋㅋㅋ
@entos82
@entos82 2 жыл бұрын
222
@yacht-responce
@yacht-responce Жыл бұрын
같은 나라 사람이면 아픈 역사에 갖는 감정이 비슷한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출발점은 같아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랑 상상만으로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비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대체역사물처럼 "이건 허구야" 라고 선을 긋는 것도 아니고 감정을 싣는 순간 정말 추해집니다.
@yacht-responce
@yacht-responce Жыл бұрын
@@Delmn 처칠과 망상충의 차이는 처칠은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는 적어도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는것
@youngsamsong9993
@youngsamsong9993 Ай бұрын
고구려는 신라와 백제은 서로 민족,문화적으로 차이가 많습니다. 고구려는 부여독, 예맥족,한족 등 다양한 북방민족이 살아가는 나라였고, 신라,백제는 주로 삼한인을 주로 하면서 이주민인 부여족 등이 혼합된 국가로 생각합니다. 통일도 신라와 백제가 했던 것이고, 고구려는 발해가 계승했지요.
@user-xn4mj1wl5r
@user-xn4mj1wl5r 2 жыл бұрын
데카르트의 악마처럼 역사에도 악마가 있어서 그렇게 if가 없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도 다들 if라는 함정에 쏙쏙 빠지죠. ㅎㅎㅎ
@faceface2039
@faceface2039 2 жыл бұрын
조선, 고려, 신라 어쩌고 등등등: 온갖 if로 논쟁이나 이야기를 꽃피움 / 고구려: 역사에 if는 없습니다(엄근진)
@user-jjy1015
@user-jjy1015 2 жыл бұрын
@@faceface2039 ?
@moviemaker1188
@moviemaker1188 2 жыл бұрын
@@faceface2039 이중잣대 오지긴함
@user-qy6nw1cy7m
@user-qy6nw1cy7m 2 жыл бұрын
역사에는 만약이 없음 ㅋㅋㅋ 그리고 고구려는 중국사이며 고구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니였음 ㅋㅋㅋ
@user-jjy1015
@user-jjy1015 2 жыл бұрын
@@user-qy6nw1cy7m 고구려가 중국사이면 중국은 당나라 이후에도 분열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중국인들이 전성기때였음에도 한나라를 정복 못해서 한민족나라에게 원군요청해 겨우 때려잡고도 관리못해서 후에 발해가 들어서는등 당나라가 답이 없었다는게 되는데?
@user-qs9no5bx5c
@user-qs9no5bx5c Жыл бұрын
신라도 사실 계속 위협하는 백제만 목표였지 고구려는 우선순위는 아니었죠 그래도 북쪽의 위협이기에 나당군사동맹에 맞춰 평양성을 제일 먼저 뚫었지만, 무조건 땅이 넓은게 좋은게 아니라 관리할 수 있는 인구, 자원, 기술, 재정, 기구 등이 필요합니다. 신라도 고구려 멸망 후, 북진을 안 한게 아니라 못 한거죠. 즉 발해가 생겨서 신라가 안 올라간게 아니라 신라가 안 올라가서 발해가 생긴겁니다.
@user-bl2xk3wq9c
@user-bl2xk3wq9c Жыл бұрын
고구려 멸망후 신라도 북진했는데? 나당전쟁 초기때 고구려부흥세력이랑 손잡아서 압록강 건너 오골성쳤던거 모르냐? 시간이 흐르면서 고구려부흥세력의 내부갈등과 말갈족출신인 이근행의 당나라군의 지속적인 압박에 결국 오골성포기하고 한강전선으로 다밀려난거고....그리고 발해가 생기든 안생기든 고구려땅은 요동전선일대만해도 이미 잦은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되서 땅가치도 떨어졌고 수도인 평양도 털렸지, 서라벌간의 거리가 멀어서 영토의 가치적이나 지리적으로봤을땐 대동강이남까지는 먹어도굳이 요동까지 먹을필요도 없었지.
@buckston201
@buckston201 11 күн бұрын
솔직히 신라의 삼국통일은 당시 신라가 소화할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간거였죠 거기다 통일직후 당과의 전쟁도 해야 했고 내부적으로도 백제계, 고구려계의 반란을 생각해야 했던것은 물론 왜의 침공까지 있었던 상황이었던터라 신라의 입장에서는 평양 이남까지가 한계였죠 거기다 북진까지 했다면 분명 당이 또 몰려 왔을거라 신라입장에서는 모험을 할 이유가 없었죠
@user-uk2un3zl3x
@user-uk2un3zl3x 2 жыл бұрын
잘봅니다
@mailnet21
@mailnet21 2 жыл бұрын
신라가 규정한 9오랑캐 중에 백제, 고구려가 들어 있음 ... 이러한 인식체계가 고구려라고 별다르지 않았겠지 . 군사력으로 일시적으로 신라, 백제를 붕괴시킬 수는 있어도 둘을 품을 수는 없었음 .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2 жыл бұрын
9층목탑도 그렇고 광개토대와에 비문에 왜도 그렇고... 저도 그렇게 공감은 함.... 예전도 씨족이 어디있음 전부 싸우고 죽이고 그랬죠....즉 니편내편이 정해지지 않았죠 지금도 패권싸움을 주야장천 하지만 니편내편이 없죠.... 그렇지만 전부 외교에서는 지구 끝까지가서 외교는 한게 들어나죠 신라도 무덤에서 서양적인물 석고상이 많고 마지막 화랑도 분칠한게 피부 좋아라고가 아니고 그 투명피부 조상피부를 바라는거죠....고구려도 기본 중앙아시아쪽은 갔고....대륙에 신라방 백제방을 보면 개인적 백제가 한반도에 유물이 그렇게 찾지를 못한게 북한에 막혀있더라도 백제는 아무리 봐도 대륙에 있는거 같아요 천문상 전기 후기로 보아 전기에만 있었다고 하는데.... 신라는 전기에는 대륙에 천문상이 있었지만 후기에 경상도 경주에 있는거보아....무덤도 어느시점은 원주민에 무던이 많고 그이후부터 신라무덤이 있는걸로보아.... 동신라 서신라로 있었는가 아닌지.... 일본에 규슈 지방만 봐도 고구려 백제 가야에 유민들이 많은데 간사이로 갈수록 백제비율이 많고 신라도 조금 있고 고구려는 교토지방 위 부분에 많이 분포한거보아 그래서 왕권이 늦게 나타나지 않았나 봅니다... 개인적 한국 일본은 같은민족이라 보기에...추가로 여진족은 다르게 보는 경향도 있지만 전 여진족까지 밉든 싫든 같은민족으로 분포도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선비족 거란족 이런게 나가면 무리겠지만 그래도 뭔 조상은 맞구요.... 즉 범아시아계로 보면 중앙아시아도 조상에 한 부분으로 보아야지 같은민족으로 해석하면 안되죠.... 터키가 형제나라 하는데 솔직히 형제나라는 아니죠 저 위에 조상에 한 뿌리정도이니.... 종교쓰레기들이 자꾸 이스라엘과 우리와 섞는게 그 부분이죠....그게 지구가 한조상에서 갈라져서 그런건데 그게 한민족으로 묶어버리니 문제죠.... 샤머니즘으로 가면 비슷한게 많은 이유가 그때문이구요....
@user-qy6nw1cy7m
@user-qy6nw1cy7m 2 жыл бұрын
@사용자 그런데 고구려 백제는 중국사들이며 전라도 왜국 임나는 일본사라는게 문제임 ㅋㅋㅋ
@donghokim73
@donghokim73 Жыл бұрын
조선 이섬계 자체가 여진족 하고 혼혈
@user-co7jg5gl8t
@user-co7jg5gl8t 5 ай бұрын
@@donghokim73 이성계는 고려계 몽골인이었던거지 혈통 자체는 고려였는데 뭔 헛소리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뇌에 우동사리 낀 사람들이 왜이리 나불거리는거지
@meatmore6261
@meatmore6261 Жыл бұрын
어디서 봤는데 고구려와 백제의 인구가 비슷했다는 글을 봤습니다. 이유가 고구려가 땅은 넓었지만 농지는 적었다는 거죠. 말하자면 고구려는 실속 없이 땅만 넓었고 백제 신라는 땅은 좁았지만 한반도 남부의 농사가 잘되는 알토란 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구 부양력이 비슷해서 서로간의 국력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었다는 이야기인 겁니다. 괜히 삼국 체제가 700년이나 지속됐던게 아닌 거죠.
@user-nadaungemonde
@user-nadaungemonde Жыл бұрын
삼국시대는 밭농사(조,피,수수,콩,기장 등등) 중심이고 또 중국과 가깝고 고조선과 부여 등 국가형성이 비교적 빠른 만주와 한반도 북부가 농사에 더 적합했습니다. 한반도 중남부 백제와 신라는 미개간지가 많았고 한강유역은 하상계수가 커서 농사에 불합리하고 특히 호남평야는 존재하지 않았고(전주 삼례까지 바다였음) 낙동강 하구의 김해조차 바다였습니다. 물론 고구려가 산악지역이 많아서 농사가 안되는 곳이 많았지만 그만큼 영토가 크기에 농경지도 많았던거죠. 위지 동이전의 기록만 봐도 낙랑군과 진번(대방)군의 인구가 마한의 인구와 엇비슷했습니다. 대입하자면 평안도와 황해도를 합한 인구가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인구와 같았다는거죠. 근데 고구려는 평안도와 황해도 뿐만 아니라 요동과 송화강유역까지 영역을 확장했으니 인구가 백제와 신라에 비해서 훨씬 많은거죠.
@user-hk3un7sz5z
@user-hk3un7sz5z 10 ай бұрын
@@user-nadaungemonde 우리가 너무 간척,퇴적이 진행된 현재 지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과거에는 오히려 하상계수도 안정적이고 낙동강으로 촘촘히 연결된 신라쪽이 생산력에서 뒤쳐지지 않았을것임. 죽령이북 먹고부턴 신라도 각성수준으로 국력늘어남.
@user-nadaungemonde
@user-nadaungemonde 9 ай бұрын
@@user-hk3un7sz5z 그 신라의 전신인 진한조차 인구는 마한보다 더 적었습니다. 생산력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땅조차 당시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잡초가 무성한 지역이 상당했죠. 결국 사람이 들어가서 농토로 개간하고 가꿔주고 관리를 해줘야만 생산성이 나오는 농토로 탈바꿈 합니다.
@JH-ek5bn
@JH-ek5bn 8 ай бұрын
​@@user-nadaungemonde기후는 생각안하나요 생산력은 토질과 개간면적으로만 고려할 수 없죠
@user-nadaungemonde
@user-nadaungemonde 8 ай бұрын
@@JH-ek5bn 님은 기후가 무조건 따뜻해야만 농사가 잘된다고 생각하죠? 그쵸? 그렇게 따지면 전근대시기 동남아시아가 농사가 잘돼서 인구가 많았어야겠죠? 그런데 어쩌죠? 동남아는 인구가 증가한 시기가 근대 농업기술의 발달로 인구가 증가한거지 그전까지는 인구가 턱없이 적었는데요? 농사는 무조건 따뜻하고 무더워야 잘되는게 아니에요. 봄에 씨뿌리고 무더운 여름에 자라고 선선해지는 가을에 수확합니다. 그리고 겨울에 농토를 쉬게 해주고요. 이런 사이클이 가장 이상적이죠. 여름이 길어봤자 병충해와 전염병이 창궐해서 농사를 망치게되죠. 비료도 없고 농약도 없던 시절 이런 자연재해를 어떻게 관리했을까요? 못했죠. 겨울이 찾아와야 병충해가 창궐을 못하고 자연 방역이 되어서 다음 농사도 수월해진답니다. 세상 일을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지 마세요.
@user-gs2fb8tw2i
@user-gs2fb8tw2i 2 жыл бұрын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 아닌 요동에 존재한, 동천왕이 관구검에 의해 옥저로 피난 간 후 천도한 평양으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이라는 것이 현재 한반도의 평양이라는 근거는 어디에 입각한 근거인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 박지원 선생도 열하일기에 옛 고려(고구려)때는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 아닌 요동반도에 있는 평양도 있었다고 하시는데, 박사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2 жыл бұрын
일단 삼한과 한사군 평양을 애기할때 한반도 운운하면 다 세뇌교육이라 보면 됩니다... 만리장성?처럼 고려장성도 마찬가지구요.... 한반도 고려성 얘기한 사람 중 그 위치가서 성잔재도 확인되면 공감이라도 하죠...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 жыл бұрын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은 지금의 안악궁성 맞죠.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안악궁성을 만들었다는 소립니까? 그시대, 그곳에 그런 대규모의 궁을 만들수 있는 세력이 없죠.
@user-gs2fb8tw2i
@user-gs2fb8tw2i 2 жыл бұрын
@@davidjacobs8558 개소리좀 쳐 하면서 돌아다니지 말구요. 그리고 안악궁이 아니라 안학궁입니다 ㅋ 장수왕이 지었다는 근거는 하나도 없구요. 사료도 없습니다 ㅋ
@goldenknowledge4051
@goldenknowledge4051 9 ай бұрын
고구려가 땅이 넓은 것 같지만, 박사님 말씀하셨듯 인구가 많지 못했읍니다. 한반도 남부는 농사 짓기가 좋지만 북부는 대부분이 산악 지역입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영토 개념이라고 보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냥 듬성듬성 떨어져 살았고, 대국이라고 하면서도 거의 멸망 때까지 중앙집권을 이루질 못했읍니다.(아마 박사님 말씀하셨듯 유목민과 연합한 그런 섞인 무리라서 그런 면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의 러시아와 비슷한 느낌인데, 지금 러시아 영토를 보면 엄청나게 넓은 것 같지만 사실상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은 많지가 않습니다.
@dammsonchaosuser6187
@dammsonchaosuser6187 Жыл бұрын
멋져!~ 12/26
@ht30
@ht30 2 жыл бұрын
뭐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군사력도 월등히 앞서고 북한 점령 및 간도 및 만주 회복 할 수 있지만.. 안하고 못하고 있는거지 뭐..
@user-bl2xk3wq9c
@user-bl2xk3wq9c Жыл бұрын
군사력 월등? 군사력 월등해서 북한한테 찍소리못했었냐? 군내에 방산비리,부실급식에 성추행등이 빈번하게 터졌는데다가 전투헬맷, 수통조차 6.25때썼던거 그대로 쓰고있는데 뭔 만주회복? 정작 동원령 우편이 집으로 날아오면 가기싫다고 생떼 쓸게 뻔한데.. ㅋㅋㅋ
@nagien8158
@nagien8158 6 ай бұрын
​@@user-bl2xk3wq9cㄹㅇ 사병 월급도 제대로 못주고 50년전 무기 여태쓰는 국방력이라 ..
@user-jk7gh5yi9c
@user-jk7gh5yi9c 3 ай бұрын
비 대칭 핵이있는 북한이 훨씬세다. 북한이 최후에 핵쏜다 할때 핵안쓰고 이길나라 없다. 미국도 이작날 수있어
@sungminkim6309
@sungminkim6309 7 ай бұрын
강한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은 것이 이기는 것이다!
@user-bs3cq8tk7p
@user-bs3cq8tk7p 2 жыл бұрын
우리가 삼국시대라고 말하지만 사실 삼국인 시기는 고구려 백제 멸망전 100년정도밖에 안됨 여러나라가 있었고 그나라들을 하나하나 정복하고 통합해서 삼국이 된것임 삼국이란 표현보다는 열국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듯싶네요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2 жыл бұрын
맞아요 이것도 조금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인들이 단어 만들줄 잘 모르니.... 주야장천 오토바이 그러고 남중국해 동중국해 중국 그러고 있고.... 사투리도 아님 할렘가 말투 같은 오라이 빠구 빵구 오줌 똥 비싸다 싸다 지리다 존나 이러고 있고 국어사전은 외래어라고 콩글리쉬도 외래어 취급하고.... 일단 한국인은 한반도 한민족이란 표현 자체를 없애야 됨.... 신라 경상도 무덤만 봐도 어느시기 이후부터 신라무덤이 나오지 그전은 원주민무덤이 많구요.... 전라도는 백제 유물 거의 안나오지 않음.... 대륙은 신라 백제 지명들도 수두룩한데요...
@user-wi3gd3lg8e
@user-wi3gd3lg8e 2 жыл бұрын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뭐래 미췬련이 ㅋㅋㅋㅋㅋㅋㅋㅋ말좀 제대로해라
@하늘사나이광타
@하늘사나이광타 2 жыл бұрын
@@user-wi3gd3lg8e 니가 미쳤쥐
@user-th2bu7hv2n
@user-th2bu7hv2n Жыл бұрын
@@user-wi3gd3lg8e 모든 문장이 다 동의할 수 있는 문장은 아니지만 문장의 뜻은 이해가 됩니다만?
@qkdhrwifh1436
@qkdhrwifh1436 Жыл бұрын
@@user-th2bu7hv2n 저게 이해가됨? 맥락이 없는데
@MIN-U
@MIN-U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지않은 이유는,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없었기때문이지, 그래서 굳이 정복할 생각도 없었던거고. 백제지배층은 고구려계라고 쳐도 신라랑 고구려는 전혀 한민족이라는 접점이 없음. 한민족이라는 생각이 그때당시 있었을까? 통일신라가 되어서도 끊임없이 독립운동이 있었고, 결국 후고구려, 후백제가 나타난이유는 통일신라때까지는 한민족이라는 의식이 없었다는 반증. 고려시대때나 되서야 한민족이라는 의식이 생겼다고 보면됨. 우리가 고구려 백제 신라를 3국시대라고 하는것은 만약 일본에게 우리가 독립을 못했다는 가정하에 1500년뒤에 후손들이 조선이랑 막부를 반도-열도 이국시대라고 표현하는거나 마찬가지임
@HotSoil510
@HotSoil510 Жыл бұрын
고려시대때 한민족??? 민족은 19세기 만들어진 닛본말인데??? 비문임.
@youngsamsong9993
@youngsamsong9993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왜 통일을 할 생각을 해야하나요? 그 당시 삼국이란 의식이 있었을까요? 한반도 통일신라도 백제만 복속시킨 2국 통일이었을뿐...
@GNG45
@GNG45 Жыл бұрын
고구려위치자체가 통일해도 통치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중앙세력,북방유목민족과 직접 국경이 맞붙어있고 아래쪽으로 백제,신라,왜까지 있어서 아래,위를 다 통치하기에는 고구려 인구자체가 너무 적어요.
@user-nadaungemonde
@user-nadaungemonde Жыл бұрын
7세기에 69만호면 당시 전세계 탑7 안에는 들텐데.. 인구가 적은건 아니죠.
@user-ie4xs5lt2v
@user-ie4xs5lt2v 11 ай бұрын
ㅋㅋㅋ 몽골은 그럼 어찌설명할껀가요?
@HDC-gg1ph
@HDC-gg1ph 7 ай бұрын
@@user-ie4xs5lt2v그래서 몽골제국이 몇년간 지속되었는지요? 200년도 못 가고 찢어지고 독립했습니다
@user-ie4xs5lt2v
@user-ie4xs5lt2v 7 ай бұрын
@@HDC-gg1ph 중국왕조는 평균60년입니다 200년이면 아주오랫동안통치한시간입니다 고구려700년 신라1000년 조선왕조500년하니까 짧아보이죠? 전세계에 로마정도빼고 이렇게 길게유지한역사가 없습니다 한반도왕조가 유일합니다
@HDC-gg1ph
@HDC-gg1ph 7 ай бұрын
@@user-ie4xs5lt2v 뭔 200년이 아주 오래동안 통치한거야 300년 이상이면 몰라도 200년은 꽤 많다. 그리고 찾아보니까 원나라는 100년도 지속 못함. 몽골제국 성립 후 4칸국 분열까지 걸린 시간은 50년도 안됐고
@user-ob8bi9pi8o
@user-ob8bi9pi8o 2 жыл бұрын
공감이 되는 의견입니다..위 나라가 , 쉽게 오,촉을 통합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위치가 큰듯.
@jayjun7987
@jayjun7987 9 ай бұрын
형님 썸네일 존잘이네요
@---qn2dw
@---qn2dw Жыл бұрын
영토가 넓으면 적도 많아짐.한쪽으로만 군사를 뺄수없음.그힘으론 3국을 통일할수 없었음.당시 기준으론 한강이남이 고구려전체 영토보다 더 가치가 있었음.그런데도 통일을 못한건 그만큼의 힘이 없었음
@sinnarae4998
@sinnarae4998 11 ай бұрын
고대의 만주가 똥땅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대 북한과 만주의 기후는 남한 지역보다 평야도 풍부하고 농사가 더 잘되는 곳이었습니다. 장마전선이 만주 북쪽까지 올라갔고 해수면도 지금보다 6~7m 높았습니다. 괜히 부여가 오곡이 풍부한 땅이고 한서에 낙랑의 인구가 40만명이라고 기록된게 아니죠. 반대로 한반도 남쪽은 갯벌과 습지가 많고 당시 김해평야 호남평야가 바다였던 시절입니다. 삼국지의 오나라 지역이 장강주변을 제외하면 미개척 삼림 정글 지역이였는데 한반도 남쪽은 그런 기후와 지형에 가까웠죠. 고구려가 압록강 상류의 소국시절에는 농사가 잘 안되는 곳이 맞지만 낙랑과 요동 부여와 함흥과 두만강 하류를 차지하면서 백제 신라보다 농경이 훨씬 잘됐습니다
@sinnarae4998
@sinnarae4998 11 ай бұрын
또한 북부여보다 훨씬 북쪽 소흥안령 산맥 아래에 두막루라고 농경을 하던 정주국도 있었습니다. 농경한계선이 굉장히 고위도에 있었죠
@sinnarae4998
@sinnarae4998 11 ай бұрын
군사동원력에서도 엄청 차이가 나는데 백제나 신라나 존속기간 내내 전쟁에서 5만을 초과하는 병력을 동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고당전쟁 시절에 전방에 배치된 병력을 제외하고 지원군만 15만을 동원했죠. 그만큼 인구에서도 월등히 앞섰다는 증거입니다.
@asdfrss2740
@asdfrss2740 Жыл бұрын
남송도 군사력으로는 원나라에 비교 불가 열세였지만 강남의 가공할 경제력으로 45년이나 버텼던걸 생각하면 고구려 역시 땅덩이는 넓었지만 그 생산성은 비옥한 호남평야를 낀 백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는걸 감안해야 할 듯 합니다. 그렇기에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려면 한강유역이 필수였는데 안장왕, 안원왕이 희생되는 혼란기를 틈타 나제동맹의 연합공격으로 햔강유역을 상실한 것이 결국 고구려의 삼국통일에서 멀어진 결정적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user-bl2xk3wq9c
@user-bl2xk3wq9c Жыл бұрын
한강유역 상실보다 위 아래 로 다스리기에는 인구가 적은게 컸죠.
@user-bl2xk3wq9c
@user-bl2xk3wq9c Жыл бұрын
나제동맹군의 공격이전에 고구려는 양원왕 때부터 왕족, 귀족세력들간의 잦은 내부갈등문제에 북방에서는 돌궐이 성장하기 시작하여 국경지대까지 위협하는등 내부 외부적으로 골머리 앓고있었던터라 한강유역 내주더라도 돌궐의 위협을 막아내는게 우선시하였죠. 남방지역보다 북방패권을 우선시한게 고구려였으니까요.
@user-bp2uj2kx4e
@user-bp2uj2kx4e Жыл бұрын
호남평야는 삼국시대에는 그냥 다 갯벌이었습니다 고려 시대 이후에 간척사업을 통해서 농경지가 된거에요
@user-nadaungemonde
@user-nadaungemonde Жыл бұрын
삼국시대엔 '호남평야'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허위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네요. 전주삼례 코앞까지 바다였어요. 당시 백제 신라는 고구려의 개간된 요동과 평안도 지방에 비해서 미개간지가 많아서 농업생산성이 그렇기 높지 않았습니다. 백제+신라 인구가 고구려보다 한참 적었죠.
@user-hb2ek6ys5x
@user-hb2ek6ys5x 2 ай бұрын
고구려가 전성기에 삼국을 통일하지못한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방어 전선이 너무길어서 신라나 백제를 공격하면 북쪽의 국경의 병력을 빼와야하고 그럼 그쪽 방어력은 취약해짐.. 고로 내가 한쪽을 공격하면 내뒤쪽은 취약해지는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함부로 전병력을 투입시키는 통일전쟁을 실행하지는 못함.
@user-uz7zo8hz6c
@user-uz7zo8hz6c 11 ай бұрын
반도사관에 갇혀서 판단하는것임. 고구려는 강력한 왕권을 가지지 못한게 원인임. 광대한 국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리지 못했고 기후로 인한 먹거리 문제등이 원인임. 기마민족들이 괜히 중원을 침략한 것이 대부분 먹거리 문제였음.
@ksi960709
@ksi960709 2 жыл бұрын
언제나 감사합니다
@user-bg4hb2bj2m
@user-bg4hb2bj2m 2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국력이 강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현실적인 이유가 있네요 뭔가 한번에 통일하기보다 떠받들어주는 약소국이 있어야 위상이 서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는데
@user-qy6nw1cy7m
@user-qy6nw1cy7m 2 жыл бұрын
고구려는 중국말을 쓴 중국사이며 고구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니였음 ㅋㅋㅋ
@civ_27
@civ_27 2 жыл бұрын
@@user-qy6nw1cy7m 짱
@ego6929
@ego6929 2 жыл бұрын
@@user-qy6nw1cy7m 고구려가 중국말을 썼다면 고구려인과 신라인의 말이 서로 통했고 당나라에 갔을때 통역을 해주었다던기 일본승려의 기록등에 나온건 왜일까요? 중국말을 썼으면 통역없이 당나라사람들과 대화가 되어야지 않나요?
@user-qy6nw1cy7m
@user-qy6nw1cy7m 2 жыл бұрын
@@ego6929 양나라 양직공도에 보면 고구려 백제는 중국말을 썼다라고 나옴 ㅋㅋㅋ
@user-qy6nw1cy7m
@user-qy6nw1cy7m 2 жыл бұрын
@@ego6929 그런데 중국 문헌들인 삼국지 양서에 보면 오직 신라와 삼한 특히 마한은 통역을 거쳐야지만 중국과 말이 통했다라고 나옴 ㅋㅋㅋ
@itaciturn
@itaciturn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당나라한테 멸망당하지 않고 몇 백년 더 버텼다면, 아니면 더 나아가 만주와 반도를 통일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지금 만주와 한반도에는 하나의 국가가 있을 수도 있고, 두 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아주 많이 다른 상황이 되어 있을 거란 얘깁니다. 고구려가 더 오래 존속했다면 우리가 아직 만주땅을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가정일 뿐이예요. 그 경우 결국 (15-20세기에) 만주와 한반도에 2 개의 국가가 성립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kkongkyung
@kkongkyung 11 ай бұрын
발해??????
@user-ph5co2pb3x
@user-ph5co2pb3x Жыл бұрын
고구려는 유목민이 중심이된 기마국가였고 한반도는 산악지형이 많아 기마민족으로서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강 이남으로 공격할 의미가 적었죠. 또한 유목민족들은 한때 크게 번성했다가도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원나라 금나라 청나라 등이 유목민족의 잔인함과 호전성을 바탕으로 강력한 국가를 세웠으나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죠. 고구려 또한 짧은 번성기를 지나 급격히 쇠퇴했고 고구려를 계승해 말갈족을 지배했던 발해도 오래가지 못했어요. 만약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지금의 한민족은 남아있지 않았을겁니다. 이유는 유목민족은 내부 분열이 너무 많아요. 뿌리의식이 없으니 유대감도 없고, 호전적이라 싸우길 좋아해요. 외부의 적이 있으면 그 호전성과 잔인함으로 인해 타민족 정벌을 하지만 나라가 융성해서 적이 없으면 내부에서 싸움을 합니다. 그래서 망가지죠. 고구려도 그렇게 망한것이죠. 망할 나라가 망한거지 아쉬움을 가질 필요는 단 한가지도 없어요.
@user-eq4pb1is4y
@user-eq4pb1is4y 2 жыл бұрын
방구석 박사들 훈수 진짜 오지네 ㅋㅋㅋㅋ
@Delmn
@Delmn 2 жыл бұрын
고구려의 기반이 있던땅들이 백제 신라 합친것보다는 생산력이 떨어져서 그런거 아니었을까 생각을 했었죠
@treepark1783
@treepark1783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가진땅들중에 대부분이 농사짓기 적합한 땅들이었음..
@treepark1783
@treepark1783 Жыл бұрын
@@smow7777 오타났네 부적합
@davylee1369
@davylee1369 Жыл бұрын
결국 우리나라 가방 꿀땅은 한강하류 서울 근처인데.. 고구려가 거기 영향력 잃으면 결국 경쟁력에서 밀리게 됨
@treepark1783
@treepark1783 Жыл бұрын
@@davylee1369 결국은 물리적 한계가 가장큼.. 삼국지의 촉나라도 위나라 북벌에 연달아 실패한 이유도 근본적으로 물리적인 한계였죠. 군대규모, 보급물자규모 등등 작은나라가 큰나라를 치는게 상당히 무모했음.. 가장큰 문제는 관우가 형주땅을 모두 잃어버린것이었고 두번째가 유비가 이릉전에서 대부분의 인재와 군대를 소모해버린 탓이 큼. 세번째가 상용을 위나라에 빼앗긴것도 큰 문제였고.. ㅇㅇ
@user-nadaungemonde
@user-nadaungemonde Жыл бұрын
@@davylee1369 한강하류는 하상계수가 커서 농경지로 불리했어요. 중국과 무역에 유리한 지리적 요충지이지 농업으로는 부적절했죠.
@morphous
@morphous Жыл бұрын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같은 민족은 언제나 통일합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데 통일 했으면 신라의 영토가 만주까지 갔어야죠. 근데 안 갔다는건, 이는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안했다는 거죠.
@mizu5115
@mizu5115 10 ай бұрын
고구려는 삼국중에 내분이 가장 심한 나라입니다 고구려왕이 태왕이니 뭐니해도 왕을 시해한 흔적이 가장 많은것도 고구려고 심지어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죽여서 시체를 아무데나 버려도 아무런 정치적인 부담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오래됐는데도 그만큼 왕권이 바닥이였던거죠 그렇기때문에 국가적으로 뭉쳐서 통일사업같은걸 하는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거라 봅니다
@goldenknowledge4051
@goldenknowledge4051 9 ай бұрын
그렇죠. 멸망할 때까지 중앙집권이 잘 안 됐던 나라라고 봅니다. 물론 진정한 의미의 중앙집권은 조선에 와서야 완성이 되긴 하지만...
@user-fs7zz1bm6i
@user-fs7zz1bm6i 2 жыл бұрын
고구려, 백제, 신라는 서로 동족으로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우선 서로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했는지 궁금합니다.
@leociel0414
@leociel0414 2 жыл бұрын
고구려 백제 신라는 서로 말이 통했다고 합니다.
@user-fs7zz1bm6i
@user-fs7zz1bm6i 2 жыл бұрын
@@leociel0414 확실한 역사적 증거가 있나요?
@leociel0414
@leociel0414 2 жыл бұрын
@@user-fs7zz1bm6i 삼국지 위서 동이전, 구당서, 신당서 등등 여러 사서에 나옵니다. 그리고 민족의 개념은 없었지만, 같은 뿌리라는 동족의 개념은 있었습니다.
@user-up3hk3oh5c
@user-up3hk3oh5c Жыл бұрын
여러 중국 문헌들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나아가 발해와 신라 또한 상당한 친연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GNG45
@GNG45 Жыл бұрын
@@user-fs7zz1bm6i 일본서기에 통일신라 사신이 오거나 유학생이 오면 통역을 발해사람들이 했다고 합니다.발해는 고구려계 후손이라서 어느정도 말이 통해야 통역이 가능한거죠. 지역사투리특성이 휠씬 심했으나 어느정도 말은 통했다고 봐야합니다.그리고,삼국사기에는 삼국시대 통역을 통해서 협상하거나 김춘추가 고구려 갔을때도 통역을 대동했다는 기록이 없고 감옥탈옥할떄도 김춘추와 고구려 병사 대화가 가능할정도였다면 말이 통했다고 봐야죠
@user-qy8ex9hx8y
@user-qy8ex9hx8y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통일을 했더라면 우리가 중국에 합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ㅎㅎ 재밌는 상상
@moot6911
@moot6911 Жыл бұрын
못한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라구요 그리고 그걸 못한 대상한테 만약을 걸쳐서 더 나은 결과를 상상하는건 망상같아요 애초에 그 단계조차 못넘어선 대상한테요
@perusnog5660
@perusnog5660 10 ай бұрын
단계? 그건 잘 모르겠고, 고구려가 한반도 정복은 충분히 가능함 이유가 다 있다 광개토가 신라를 도와줄 때 고구려 혼자서 애들 다 패고 다니고 도와준 걸로 기억하는데, 이정도 능력이면 충청전라경상강원 깃발 다 꽃았지
@messilionel3667
@messilionel3667 2 жыл бұрын
오 이거 궁금했던
@chajaemyung
@chajaemyung 2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통일을 했으면 우린 한글을 쓰지 못했음 ㅎㅎㅎ 어릴 때부터 천자문을 외워야 함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2 жыл бұрын
님아 그건 아닌데요 제일 멍청한 인간들이 세종대왕 한글 창제는 알지 발취는 모르죠.... 만약이 괜히 있는게 아님.... 그 한글에 기본이 예전에도 남아있음... 자료도 안 찾아보고 그런글하면 안됨.... 그리고 천자문 하면 어때서요 동이족이 만들었고 일본도 신라에 글을 쓰면서 그것도 안되서 아직도 자기한자를 쓰고있지않음....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또 다른 세계관이 나왔겠죠.... 그래서 만약이란 게 있는겁니다 만약이 꼭 자기생각대로 가는 만야갸이 아니라....
@user-pd9kr2ez2o
@user-pd9kr2ez2o 2 жыл бұрын
뭐 역사에 만약을 생각하면 변수가 많으니 그럴수도 있죠. 근데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세종대왕이 한글 창조에 실패한 세상은 지금도 한자 써야 할걸요?
@user-bj4ju2qn4o
@user-bj4ju2qn4o Жыл бұрын
그럴일 없음 베트남 필리핀 외의 수많은 국가들이 라틴 알파벳으로 한글 없이도 잘 살고 있음
@user-tp6ce3ko3c
@user-tp6ce3ko3c 2 жыл бұрын
맞말 맨날 고구려가 통일 못했다고 징징대는 사람이 많은데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후에 중국까지 쳐들어가서 원나라나 청나라처럼 중국화됐을지도 모르는 일임 아니면 중국한테 망하거나 징징대는 것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
@youngsamsong9993
@youngsamsong9993 11 ай бұрын
그 당시에 삼국시대라고 생각했을까? 서로 다른 부족, 문화와 혈통, 역사, 문화가 다를 수 있는 나라였을텐데...
@HotSoil510
@HotSoil510 Жыл бұрын
통일??? 원래 고구려 백제 산라 사람들이 같은 종족 같은 나라였나??? 통일하게??....왜 통일을 못했나? 이런 주제가 멍때리는 드립임....왜 차이나와 통일 못했나?? 이렇게 문제 제기하는 것과 같은 것임.
@kellyjoe8896
@kellyjoe8896 2 жыл бұрын
일제 식민사관에서 못 벗어나네ㅋ 이런 사람들이 박사라고ㅋ
@user-on7km3sy2k
@user-on7km3sy2k 2 жыл бұрын
선비족, 거란족은 고대 한국어를 했음. 漢족은 베트남어와 같은 중국어를 한 민족임. 유전학에서 중국 漢족은 필리핀과 같은 그룹임.
@jimmy7903
@jimmy7903 Жыл бұрын
통일했더라도 금새 분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실제 신라통일후에도 고구려 벡제 유민들의 부흥운동은 계속 되었고 결국 후삼국 까지 연결될만큼 오래 민족 통합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보는데 만주 유목민족 까지 통합이 가능 했을까요? 제도적으로으로는 그게 불가능 했기에 왕건도 지방 호족들과 수많은 결혼동맹으로 통합한것을 생각해보면 힘들었을거 같아요
@user-bl2xk3wq9c
@user-bl2xk3wq9c Жыл бұрын
고구려, 백제부흥운동은 둘다 5년이상 못넘기고 저마다 내부갈등으로 다 와해됐었음. 그리고 말이 후삼국이고 후고구려, 후백제 가 옛땅에서 일어난거니까 그럴싸하지 견훤, 궁예 둘다 신라인들이였었고 민족통합 못한게 아니라 진성여왕때 잦은 사치와 관리들의 폭정에 사방에서 도적들이 일어나고 중앙정부의 통치약화로 인해 지방에서는 호족이라는 신흥세력들이 등장해 저마다 자기세력을 갖추고 있었을정도로 신라는 거의 쇠퇴했었음. 그리고 민족이라는 개념은 삼국자체에 성립되지도 않았었고 고려말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지으면서부터 민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함.
@HotSoil510
@HotSoil510 Жыл бұрын
@@user-bl2xk3wq9c ...........삼국유사 지으면서부터 민족이라는 개념................
@cjjsjcnhskfkj
@cjjsjcnhskfkj Жыл бұрын
국가가 탄생하고 망한데는 이유가 있는법인데 자료가 없어서 설명을 못한다해도 대체로 망국은 단순 외세의 침략 때문만이 아니고 안에서부터 썩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겁니다 즉 망국을 찬양하는건 매우 어리석은 판단일 수 있다고 봅니다
@user-yl8hv2xj6w
@user-yl8hv2xj6w 2 жыл бұрын
지금 다민족 국가들 나라상황들 보면 진짜 개판인 경우가 많은데 고구려가 만약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그 다민족 국가들처럼 허구헌날 내전하고 독립한다고 난리칠수도 있었겠음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2 жыл бұрын
반대로 러시아 미국처럼 자원부국으로 내부에 문제는 문제고 잘 살수도 있었음.... 다민족 국가들이 엉망이라 하는데 지구 어디가도 제대로 된 나라 없음.... 그냥 후진국 선진국이란 이면으로 경제관념이 존재할뿐 그렇게 보이지 않음.... 어디에 제대로 된데 있음 그냥 유지하는거지.... 내전은 하는건 영길리국처럼 끼어들어서 자원 빠아먹을려고 아무데나 국경선 그은데가 주류 아님....제대로 보시기 바라....
@pq6543
@pq6543 2 жыл бұрын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러시아는 애초에 다민족 국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미국은 역사가 길지 않은 신생 국가인데다가 그마저도 남북전쟁을 겪은 나라죠
@snrkqkqh
@snrkqkqh Жыл бұрын
@@pq6543 러시아는 다민족 국가가 맞습니다. 애초에 민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지만, 러시아는 ethnic nationalism 으로도 civic nationalism 으로도 다민족국가입니다. 대한민국조차 ethic nationalism 으로 인식되는 이유가, 순수하게 단일 혈통에 의해 민족적 구성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혈통의 유입에도 지역적 배타성에 의해 단일한 유전적특성으로 고착화된 것에 기인합니다. 애초에 민족주의 자체가 전체주의에서 파생되었고, 통치수단으로서 사용되어진 이데올로기이기에, 현대에도 정치의 도구인 민족주의에 휘둘리는 것이 괜찮은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습니다만, 통합을 위한 도구였던 민족주의가 분열을 조장하고 폭력의 도구로 전락한 시점에서(비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국제결혼에서 드러나는 배타성도 민족주의의 산물) 인간의 근본적 자유는 과거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지배하기 위해 사용한 이러한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담이 길었는데, 결론은 첫줄에 있다시피 러시아는 다민족국가입니다
@Quidam12
@Quidam12 10 ай бұрын
​@@snrkqkqh동감합니다 단지 주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백계러시안이라서 그렇죠
@하늘사나이광타
@하늘사나이광타 2 жыл бұрын
아재요 ???????? 고려 최소영토 어디 ???????? 모르는 거요 아는데도 모르는 척 하는 거요
@user-vg6pk9fx4x
@user-vg6pk9fx4x 8 күн бұрын
전선도 길어지고, 그만큼 병참선도 길어짐. 병력도 남쪽에만 집중해야 되는것도 아니고 대중국방면, 한반도 남부방면 양분해야됨. 그렇기에 백제-신라를 완전히 멸망시키는게 시스템적으로, 영토학 측면으로도, 국가 재정시스템상으로도 시간과 비용이 오래걸림. 그래서 아예 신라처럼 외부 끌여들어 무력통일 하고나서 뒷통수치거나, 고려처럼 최소 신라가 나라넘기곧 그상태로 후백제 멸망에 집중해야 통일이 되는거임.
@user-mi8ln4pe3f
@user-mi8ln4pe3f Жыл бұрын
삼국을 통일한 기회가 없었음. 광개토대왕이 5만명의 신라 원군을 보낼때에도,. 고구려는 후연과 피튀는 전쟁을 하였고, 일진일퇴라서, 남쪽에 군사들을 오래둘 수가 없었다. 장수왕때는 백제 한성을 점령했지만, 백제가 후에 동성왕과 무령왕으로 이어지면서 한강유역을 다시 회복하였다. 남쪽에서는 백제와 한강유역에서 계속 전쟁중이엇고, 백제와 신라를 압도하지 못했음.
@HotSoil510
@HotSoil510 Жыл бұрын
삼국통일?? 중국과는 왜?? 통일하지 않았는지??? 물어봐라...ㅋㅋㅋㅋ
@wooyounglim9168
@wooyounglim9168 2 жыл бұрын
고구려 전성기(장수태왕기)에 천도한 도읍, 평양은 정말 어디였을까? 그리고 왜 이러한 중요하고도 구체적인 문제를 외면하면서 추상적인 문제를 제기해 논하고 있을까?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 жыл бұрын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은 지금의 안악궁성 맞죠.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안악궁성을 만들었다는 소립니까? 그시대, 그곳에 그런 대규모의 궁을 만들수 있는 세력이 없죠.
@bgkhan4475
@bgkhan4475 2 жыл бұрын
@@davidjacobs8558 세종실록 35권, 세종 9년 3월 13일 신축 1번째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정사를 보았다.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계하기를, "삼국(三國)의 시조(始祖)의 묘(廟)를 세우는데 마땅히 그 도읍한 데에 세울 것이니, 신라는 경주(慶州)이겠고, 백제는 전주(全州)이겠으나, 고구려는 그 도읍한 곳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 북한 평양성(장안성?) 석각에는 한성이라는 명문이 존재.지금의 평양이 장수왕의 평양이라는 근거 없습니다. 안학궁을 장수왕이 축조했다는 기록 없습니다. 지금의 성이 안학궁이라는 근거는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 안학궁이라는 기록이 존재는 하지만 고구려 도읍지도 몰랐던 조선이 안학궁을 고구려와 결부지은거 이외에는 사료적 증거나 고고학적 증거가 없습니다.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 жыл бұрын
@@bgkhan4475 조선왕조실록이 맞다면, 신라는 경주고, 백제는 전주 인데, 그럼 평양의 안학궁성은 누가 만들었다는 건가? 귀신이? 안학궁성이 경주와 전주에 남아있는 어떤 건물터 보다 훨씬 규모가 큰건 알거고.
@kkt9719
@kkt9719 2 жыл бұрын
가장 궁금하고 미스테리한 애기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네요. 1. 장수태왕이 직접 한성백제를 점령하고, 개로왕까지 죽이고 나서 왜 군사를 충정, 전라까지 파견해서 백제를 왜 완전히 정복하지 않고 평양성으로 물러갔는지 그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미 수도점령, 왕까지 참수했음 멸망아닌건지??? 그 부분이 제일 이해가 가질 않아요. 그 힘으로 백제 잔당 소탕하고 더 나아가 신라까지 점령했으면 되는데, 전 추측하기로 충주고려비(장수태왕때 국호를 고려라 바꾸었음)에 나오는 신라처럼 여형여제? 형제처럼 지내길 원했는데 너무 이상과 현실이 크지 않았을가요? 또하나 전 수당전쟁으로 고구려가 멸망한건 맞는데 그 이전에 백제, 신라가 있음으로 고(구)려가 지켜야할 전선이 크게 요동라인과 한강라인으로 전선이 2개라 지키고 방어해야 할 곳이 너무 많아서 패망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모든 전쟁사 가까운 2차세계대전을 봐도 전선이 2개이상 나뉘는 순간 독일, 일본 등 모든 전쟁에서 패망했습니다. 전 장수태왕때 백제, 신라를 복속시키고, 백제, 신라 , 고구려의 군사력으로 요통라인(천리장성)을 지키고 한강 관미성을 강화하고, 남해안에 왜구 침략을 대비해서 고구려의 비사성처럼 해군기지 남해안에 여러곳 구축하고, 아니면 대마도 정벌했으면 어땠을까? 세계사가 달라졌을텐데...쓸데없는 상상입니다. 왜 장수태왕이 개로왕을 죽이고 백제를 완전 굴복시키지 않고 군사를 돌렸는지 누구 아시는 분???? 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6688023 제가 가장 재미있고 감명깊게 읽은 책입니다. 많이 읽으세요.
@phomr.9485
@phomr.9485 2 жыл бұрын
영상에서 다 설명했는데 왜.. 백제와 신라가 강력하게 저항했습니다. 장수왕의 군대가 지금의 대전 인근까지는 내려왔는데 백제의 저항에 막혀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장수왕의 고구려군은 481년 동해안을 따라 오늘날의 경북 포항 흥해까지 몰려왔으나, 백제-가야의 연합군이 극적으로 도착하면서 신라 멸망도 실패했습니다.
@user-ql4ec6jv4d
@user-ql4ec6jv4d 2 жыл бұрын
당시.. 삼국시대는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한성 주변에 세력인 개로왕을 죽인다 한들 나머지 지역까지 한 번에 넘어오진 않았을거 같네요 ㅎㅎ 고구려는 결국 백제를 굴복시키려면 나머지 충청지방의 호족들과 또 전쟁을 벌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당시 그러지 못했죠? 그걸 우리는 "국력의 한계"라고 부릅니다
@user-fw3td3ed4b
@user-fw3td3ed4b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광대한 땅을 가져다고는 하지만 그게 농사를 하기엔 쓸모 없는 땅이 였지 중국이나 러시아가 땅 자랑 안하듯 고구려도 ㅠㅠ
@hbsci0204
@hbsci0204 2 жыл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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