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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은 그대 자신을 포기하고 내주는 것입니다. 더 고차적인 표현으로는 그것을 무집착이라고 합니다.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비는 떨어지는 것이 그 성품이고, 바람은 부는 것이 그 성품 아닙니까? 몸-마음과의 동일시가 있는 한 무엇을 원한다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것을 초월하고 나면 어떤 원함도 없을 것입니다.
초연해진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이미 초연하니까요. 에고가 완전히 해소되면 그대는 무수한 몸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일체가 현현되지만 어떤 개인성도 없습니다. 그것은 일체에 두루하기 때문에 알면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지요.
이런 갈등이 왜 늘 일어납니까? 우리 사이에 왜 논쟁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깨달음법의 어떤 심오한 개념을 가지고 여기 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제가 그들에게 분명한 인가를 해 주기 바랍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의 개념을 박살냅니다. 그래서 언쟁이 벌어집니다.
몸 의식 없이 이야기하십시오. 그대가 방 안으로 저절로 흘러나온다고 말하는 의식은 방과 우주를 완전히 점합니다.
안정되는 과정에서 그것은 우주로 확장됩니다. 그것이 충분히 확장되고 나면 브라마-란드라(Brahma-randra), 즉 브라마의 혈穴 안에서 안정됩니다.
진인은 꾼달리니에 대해 전혀 어떤 흥미도 없습니다. 그대가 태어나기 전에 꾼달리니가 어디 있었습니까? 이 꾼달리니는 다 그대가 지각하는 것이고, 다 그대가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뿐입니다. 일곱 개의 차크라, 그대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뭔가를 수련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해도 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뭡니까? 제로, 무無이지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태어나고자 한 우리 자신의 의지 때문입니까, 아니면 모르는 가운데 이 앎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까?
이 존재성은 그대가 모르는 사이에 그대에게 다가왔지만, 그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개인성을 사형에 처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 형을 선고하는 것이 정의 아닙니까? 그러니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 개인성이 사라져야 합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 자신의 의지 때문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대는 하루 동안이나 한 달 동안 삼매에 들 수도 있지만, 정상으로 돌아오면 의식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는 삼매를 성취했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는 자는 이미 있지, 그대가 선택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