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_개혁내용을 중심으로(feat.일본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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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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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흑선의 일본방문 후 청일전쟁 전까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참고문헌)
- 처음읽는 일본사. 전국역사교사모임.
- 아틀라스 일본사. 일본사학회.
- 세계사능력검정시험. 이만적.

Пікірлер: 260
@iljoongkim9291
@iljoongkim9291 3 жыл бұрын
사실 세계적으로도 제일 중요했던 시기가 1500년대랑 1800년대 인데 일본은 그때 그때 서양열강들과 대비해서 잘 따라 간 케이스인데 한국은 정말 너무 세상보는 눈이 없었다는게 안타까움...
@jino78
@jino78 3 жыл бұрын
일본개항은 서양열강들과 대비해서 잘 따라간 케이스가 아니라 굴복개항이었음 이말은 곧 원치않는 힘에 눌린 개항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 운이 좋았던건 미국이 일본을 개항직후 남북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일본은 미국의 아무런 정치적 이해관계없이 미국의 기술들을 무한대로 받을수 있었고 영국또한 미국이 먼저 개항시킨것이기 때문에 실력행사를 사실상 하기 힘들었고 기술과 신식군대를 전수해서 자기편으로 끌여들이려 했던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격변의 시기에 다른나라의 아무런 간섭없이 메이지유신을 완수할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본은 서양의 식민지 희생양의 대상에서 면할수 있었고 미국과 영국같은 서양의 강력한 뒷배경을 통해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면서 미국 유럽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된겁니다 그당시 조선을 포함한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세계를 보는눈은 다 비슷했으며 단지 서양세력을 경계하기에만 급급했던거죠 일본또한 아편전쟁으로 패한 청나라를 보면서 서양국가들을 경계하고 거부했습니다 이는 그당시 모든 아시아국가들이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user-bm9pd7mh4t
@user-bm9pd7mh4t 2 жыл бұрын
@@jino78 댓글마다 그렇게 다는데 일본이 운이 따른건 맞지만 단순히 운만 좋았을가요??? 어떻게든 일본 과소평가하려는 모습이 전형적인 한국인의 일본에대한 열등감 같네요 ㅋㅋㅋㅋㅋㅋ 중국의 양무운동하고 달리 메이지유신의 완전 서양 체제 모방은 지금으로 봐도 엄청난 동양에서의 혁신입니다. 누가보면 일본도 조선처럼 부분부분 개항만하다가 운좋아서 잭팟터져서 개항한줄 알겠네요 ㅋㅋㅋ 왜 사카모토 료마가 일본에서 그리빨리는지 생각을 하세요 남이 잘한건 보고 우리가 배워야할것이지 쓸데없는 존심만 내세워서 남 깍아내리는게 전형적인 근대의 조선이랑 다를게 뭐가있나요?? ㅋㅋ 역사는 과거를 바라보고 배워서 현재를 대비하는 창이라고 그렇게 울부짖으며 반일하면서 정작 하는짓은 근대 조선이랑 다를게 없는데 지금도 반미하면서 자국방위 하자는 꼬라지보니 이 나라는 이재명이 함 다스려줘야 할거 같네요 ㅋㅋㅋ
@jino78
@jino78 2 жыл бұрын
@@user-bm9pd7mh4t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읽고 읽다 말았나보군 그 격변의 시기에 일본은 정치적 이해관계없이 서양의 기술을 무한대로 받을수 있었고 가장중요한 점은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았다는것이 중요한거죠 글 읽다말고 댓글을 달지 말고 끝까지 읽으세요 그리고 열등감? 아직도 80년대인줄 아나 ㅋㅋ 일본에 대한열등감 일도 없어요 ㅋㅋㅋ 그 치아 뻐드렁니 앞툭튀를 내가 왜 부러워 하나요 ㅋㅋㅋ 하긴 너는 일본을 신으로 섬기니 다른 사람이 그렇게 보이나보다 ㅋㅋ
@user-no8wz6xl3b
@user-no8wz6xl3b 2 жыл бұрын
@@jino78 노부나가 부터 서양에 우호적이었는데 뭔 서구열강 강제개항 앞잡이 드립치노. 애초에 지도자 마인드부터가 달랐는데. 일본은 에도막부 설립 이전부터 후까지 서구 선진문물을 받아 들이고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었고 막부 붕괴직전 개혁 거부할 때도 개혁파 번주들은 제한없이 꾸준히 교류했음. 조선은 기존 지배층의 이익에만 급급했던거고 그나마 일본따라 갑오개혁 하려다 망하고 대한제국에 실망한 지식층들 상당수 친일파로 돌아섬
@user-kt3zg9nl3u
@user-kt3zg9nl3u 2 жыл бұрын
@@user-no8wz6xl3b ㄴ 우호적이진않았음 삿초의 두 번도 애초에 양이였고 막부도 우호는아니었음 각 영지들이 피해를 입고나서야 개혁 토막노선으로 전환한것이고 봉건제라 각기 세력이 있었기에 개혁이 용이했던것
@Hamini_jipsa
@Hamini_jipsa 3 жыл бұрын
재밌게 봤어요! 개인적으러 역사공부에 지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자료들이 깔끔해서 보기 좋네요. 다른 영상들도 많군요~ 보려니 기대가 됩니다. 구독 누르고 갑니다 👍
@jongil1111
@jongil1111 3 жыл бұрын
정말 좋은 내용입니다. 내용도 "썰"이 아닌 논문에서 보는 정통 역사서 급으로 느껴지니 제작의 공이 더욱 .. 감사드립니다.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잘봐주셔서 감사합니다!
@user-jy2qx5rn4v
@user-jy2qx5rn4v 3 жыл бұрын
유익한 영상 만드시느라 고생하셨어요. 항상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언제나 관심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이학선님~^^
@한별한별
@한별한별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평소관심있는 내용이어서요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somethinggood2167
@somethinggood2167 3 жыл бұрын
메이지 유신하면 일본 애니 바람의 검심이 떠오르는데,, 낭만적인 배경에 비해 실제로는 냉혹한 격변의 시대였던거 같아요^^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네. 바람의 검심을 한번 사용해 볼까도 생각했었는데, 참았습니다.~^^
@lilillliilililll6088
@lilillliilililll6088 3 жыл бұрын
격변의 시대는 항상 냉혹함
@pineapplecake9365
@pineapplecake9365 3 жыл бұрын
메이지유신 신식무기들도 구두룡섬이면 사라짐
@youctube
@youctube 3 жыл бұрын
바람의검심도 그렇게 낭만적인 배경은 아닌데 .ㄷㄷㄷ
@user-le7gb2gn4z
@user-le7gb2gn4z 3 жыл бұрын
양아치집단 신선조를 미화한것만 봐도 읽을 가치는 없음.
@note20ultra5ggalaxy4
@note20ultra5ggalaxy4 3 жыл бұрын
항상 감사합니당 ~~~^^ 잘보고있어용 ^^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항상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명준님~^^
@user-pw5rk4mb3g
@user-pw5rk4mb3g 3 жыл бұрын
선추천 후감상. 즐거운 주말되세요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콩사탕이싫어요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user-mb1wu5vt8e
@user-mb1wu5vt8e 3 жыл бұрын
메이지유신보고 우리나라사람들이 제발 좀 배웠으면 우리나라를 지배한 나라고 지금도 우리보다 법 문화 경제 분야에서 훨씬 앞서있는나라가 일본인데..반일감정때에 일본 무시하는 나라는 참 우리니라밖에없을듯 이러다가 또 얻어터지는 레파토리 무한반복
@tva6445
@tva6445 3 жыл бұрын
노벨상만 무려27개
@srchoi4937
@srchoi4937 3 жыл бұрын
상대방을 존중하는 문화가 부족하네요 존중해야 좋은건 받아들일 수 있는데
@arthurwoo5145
@arthurwoo5145 3 жыл бұрын
좋은 컨텐츠 감사합니다.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nd6jg2vf4c
@user-nd6jg2vf4c 2 жыл бұрын
대학교 일본사 수업 듣는데 교수님 수업보다 알찬듯 하네요.. 이걸로 공부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당
@justice20000
@justice20000 2 жыл бұрын
말씀 감사합니다. 윤규진님~
@TV-cl9ot
@TV-cl9ot 3 жыл бұрын
1873년에 이미 신분에 관계 없이 군대입대... 조선은 세금도 양반,노비는 안내고 평민만 냈음. 이 시대에 일본은 철도건설, 산업혁명. 조선은 공인과 상인을 무시하고 유교 사회이념이나 이야기하고 일본을 왜놈이라고 욕하고 객관성 없이 일본을 그냥 무시한 결과로 식민지가 된 것임.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newginkgo8771
@newginkgo8771 3 жыл бұрын
와 일본사까지..!!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New ginkgo님~^^
@user-ne9jf4kr8t
@user-ne9jf4kr8t 3 жыл бұрын
일본 메이지유신은 근대시기에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수용적 자세로 변화를 인정한 일본이란 나라의 정세를 잘 봐야 될 듯,,동유 운동과 메이지 유신 사이에만해도 꽤나 긴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졍
@jino78
@jino78 3 жыл бұрын
일본개항은 수용적 자세라기 보다 굴복개항이었음 이말은 곧 원치않는 힘에 눌린 개항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 운이 좋았던건 미국이 일본을 개항직후 남북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일본은 미국의 아무런 정치적 이해관계없이 미국의 기술들을 무한대로 받을수 있었고 영국또한 미국이 먼저 개항시킨것이기 때문에 실력행사를 사실상 하기 힘들었고 기술과 신식군대를 전수해서 자기편으로 끌여들이려 했던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격변의 시기에 다른나라의 별다른 간섭없이 메이지유신을 완수할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본은 서양의 식민지 희생양의 대상에서 면할수 있었고 미국과 영국의 서양세력의 강력한 뒷배경을 통해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면서 미국 유럽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된겁니다 아시아국가들이 변화를 인정하지 않은게 아니라 당시 서양과의 대립, 경제적 이권, 침략식민지를 피하기 위한 싸움이었지 변화가 아닙니다
@user-ne9jf4kr8t
@user-ne9jf4kr8t 3 жыл бұрын
@@jino78 음 막번체제 붕괴와 근대 일본의 산업화가 개항 하나로 이뤄줬다면 그 동안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교류하고 지속적으로 해외 정세에 관심을 가진 나라와 일절 교류를 막고 선교사 박해를 위함을 빌미로 이전 체제를 고수하던 나라, 두 나라 차이가 뭘까요?
@jino78
@jino78 3 жыл бұрын
@@user-ne9jf4kr8t 문화의 차이는 있습니다 한중일 삼국이 전통관습 사회에 굉장히 엄격했지만 일본은 동아시아 문화의 신생국이라 해도 될 정도로 조선과 중국에 비해 문화 사회적으로 전통과 관습에 얽매이지않고 받아들이는것에 좀더 유연했던것은 맞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보면 알수있습니다 유럽이 아직도 전통적 관습의 영향이 많은것에 반해 미국은 좀더 자유분방하고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나 받아들이고 수용하는것에 주저함이 없죠 전통과 관습을 지키고자 하는것은 아마 조선이 전세계 최고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것을 바꾸거나 변화시키려면 왕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것이 조선이었으니까요 아 그리고 선교사 박해는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user-ne9jf4kr8t
@user-ne9jf4kr8t 3 жыл бұрын
@@jino78 선교사 박해는 핑계였죠 대원군도 프랑스와 외교 관계를 위해 카톨릭 선교사와 교류한 흔적들도 그대로 남아있고요 그리고 관습의 차이라기엔 공행무역을 하던 청이나 데지마를 통해 교류하던 에도막부와 다르게 조선은 서양세계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말 뒤늦게 19세기 후반즈음이 되서야 필요성을 느끼게 되죠 청에는 많은 서양인들이 학자들을 대동해 교류해왔었고 건륭제를 끝으로 내리막길을 가던 청과 조선은 결국 이권 침탈의 길에 놓인 것도 마찬가지죠 지도층의 무능함이 제일 컷지요, 자국 백성들을 학살하기 위해 외국을 동원해 물리치고 이전 체제를 고수하던게 결국 실책이죠
@jino78
@jino78 3 жыл бұрын
@@iskim7857 다 맞는데 꼭 세도정치의 문제라고 할수만은 없습니다 조선왕국 자체가 전통과 관습에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겁니다 왕조차도 선대의 전통과 관습을 바꾸거나 변화시키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까요
@belleepoquela3271
@belleepoquela3271 3 жыл бұрын
메이지 유신하면 항상 미국 남북 전쟁이 생각납니다. 운이 따랐는지, 일본을 개항시킨 미국이 역사상 최대의 내전을 겪어버렸으니. (미국 기준으로 남북 전쟁의 사상자가 남북 전쟁 이외의 모든 전쟁의 사상자보다 많다고 하죠. 세계 대전까지 포함해서요) 만약 남북 전쟁이 없어서 메이지 유신에 미국의 입김이 더 들어갔으면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랬다면, 태평양 전쟁이 없었을 수도 있지 않을지.
@kisear455
@kisear455 3 жыл бұрын
그것보더 미국의 대외정책을 봐야돼서요
@user-yl6wh1jz2d
@user-yl6wh1jz2d 3 жыл бұрын
영상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ㅎㅎ 화이팅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신마적님~^^
@johnkim9156
@johnkim9156 3 жыл бұрын
유익한 영상 잘봤습니다!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note20ultra5ggalaxy4
@note20ultra5ggalaxy4 3 жыл бұрын
저스티스님 즐주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명준님도 즐주~^^
@user-cu3kj2qu8u
@user-cu3kj2qu8u 3 жыл бұрын
청일전쟁 통수먹고 일본이 나쁜줄만 알았는데 다 일본도 생각이 있는놈들이였구나 우리랑 생각하던 수준이 달랐네
@niceya
@niceya 3 жыл бұрын
좋은것은 금방 받아들이는 일본과 본인들의 사상만 고집하는 조선. 왜 지배를 당했는지 알수있다
@user-bu3qw1fi2l
@user-bu3qw1fi2l Жыл бұрын
선각자들의 시대 통찰력과 추진력이 국력의 근간임을 느끼게 해주네.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
@highcollars1
@highcollars1 3 жыл бұрын
진짜 일본은 저때부터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꾸역꾸역하고 있었던거네요 그에 비하면 세도정치 이후 흥선대원군 시절 거꾸로 역사를 만든 조선ㅜㅜ 아쉬운 부분입니다
@user-rm5rn8cq3p
@user-rm5rn8cq3p 2 жыл бұрын
일본은 중국을 버리고 서구권 들어선게 신의 한수 였죠 그에 비해 조선은 중국 눈치나 보고 발전 할 생각 은 안 하고 왕족 이나 신하 들이나 양반 이나 지들 밥 그릇 챙기기 바쁘고 서구 를 멸시 하고 우물안 개구리 자처 하니 무슨 나라 지킬 생각 을 했겠나요 그래놓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 나라 빼앗긴 상태에서 독립을 외치질 않나 다른 나라 도 이미 조선은 나라가 아니고 편 들어줄 국가도 없었는데 근데 문제는 지금도 중국 눈치나 살살 보면서 공산주의 국가 들이랑 쳐 놀고 있으니 진심 조선은 독립 자체가 사치 입니다
@user-bm9pd7mh4t
@user-bm9pd7mh4t 2 жыл бұрын
일본이 개항을 잘할수있었던건 에도시대때 쌓아온 막강한 경제력이 뒷받침을 해주어서 그런겁니다 사농공상을 중시하던 조선의 경제력은 이미 죽을대로 죽어서 흥선대원군은 그런 중국이 개항해도 뒤지는것을보고 개항을 막았던 겁니다 서양문물을 싫어했던 흥선대원군이 과연 서양의 문물인 사진을 찍었겠습니까?? 그당시 사진은 사람의 영혼을 빼간다는 서양의 악한 물건이라 여겨졌는데 흥선대원군은 찍언던것을보면 서양문물의 발전성은 알고있었습니다.
@user-no8wz6xl3b
@user-no8wz6xl3b 2 жыл бұрын
에도시대 전부터 국력은 조선이 일본한테 발렸어요. 비슷한 급이 아니었음 애초에
@freesia4597
@freesia4597 2 жыл бұрын
일본 공장짓고 산업 일어날 때 조선은 소달구지 끌고다님.. 고종 즉위 때 영국 지하철 개통함..
@user-px1qt9bm7m
@user-px1qt9bm7m 2 жыл бұрын
@@freesia4597 그러니까요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개빡치네요
@user-pg7dr2zh5g
@user-pg7dr2zh5g 3 жыл бұрын
어우깔끔해
@user-ul3tq9pb8j
@user-ul3tq9pb8j 3 жыл бұрын
아편전쟁이라는 외부의 환경 변화를 조선과 일본이 다르게 인식하네요. 조선은 동서양의 대립이라는 초점을 두어 쇄국정책을 시행했던 반면, 일본은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네요(그것도 메이지 유신 정권이 아닌 막부 정권이요...)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중화의 질서에 복속되어 있던 조선은 청나라만 바라봤고, 그렇지 않았던 일본은 해외를 봤죠.
@junkim4735
@junkim4735 3 жыл бұрын
메이지 연호 전에는 잠깐 동안 전임 고메이 텐노의 연호인 게이오(경응)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그래서 지금도 게이오를 곳곳에 사용하고 있습니다.일세일호 원칙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user-zf8eq6gt6v
@user-zf8eq6gt6v 3 жыл бұрын
일본 메이지 유신할 때 우리는 쇄국정책이나 했으니 ㅜㅜ 😭😭
@user-pi5ox2vb2z
@user-pi5ox2vb2z 3 жыл бұрын
핵졸잼...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gwkang5699
@gwkang5699 3 жыл бұрын
오!~ 드디어 일본까지...감사합니다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nf7jg1ts6w
@user-nf7jg1ts6w 3 жыл бұрын
청나라의 몰락을 알린 아편전쟁에 대해 조선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일본은 국가의 체질을 바꾼 역사죠.. 40대 초반인 1800년에 죽은 정조가 20년만 더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가정하게 됩니다.
@user-dc3tk6jh4w
@user-dc3tk6jh4w 3 жыл бұрын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겁니다.낡은 부대에 담아 보아야 썩고 말조 즉 새로운 이념과 철학을 가진 나라가 새워저야 가능한 것이조 일본처럼요 일본은 개항으로 막부가 무너지고 새로운 이념과 철학을 가진 나라가 생겨났조
@user-pq6ml1wz6y
@user-pq6ml1wz6y 3 жыл бұрын
정조가 쇄국정책 시초임 정조가 20년아니라 100년을 더 살았더라면 러시아나 일본에게 먹힐꺼임
@user-hj7hd5dm9u
@user-hj7hd5dm9u 3 жыл бұрын
당시 아편전쟁 결과를 모르던 사대부가 태반이고 보부상들한테서 들려와도 응 구라즐 ㅗ 이런던게 조선임 ㅋ 그리고 1903년에 고종 이 ㅂㅅ은 영일동맹 맺고 한반도 니 묵으라 이렇게 되있었는데 중립국이라는 ㅈㄹ떨던 나라
@johnnyzone72
@johnnyzone72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재밌게 봤습니다.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잘봐주셔서 감사합니다.~
@user-tu9yj8vt4j
@user-tu9yj8vt4j Жыл бұрын
일단 미국이 개항시켜놓고 먹을려고 했는데 정작 남북전쟁때 지들끼리 쳐싸워서 못건드는 사이에 빠르게 근대화한 대단한 국가... .타이밍을 이용하는것도 능력이죠
@user-yf9ch8vj8o
@user-yf9ch8vj8o Жыл бұрын
잘못 알고있는 왜곡된 역사. 우리는 쪽팔리니까 그럼 쪽팔림을 어떻게든 정당화시키기위해 그런식으로라도 가르치는데... 그당시 미국군사력으로 절대 일본을 식민지 못시킴. 먼저 우리가 가르친 거짓역사. 일본이 미국 흑선와서 증기선을 보고 꼬랑지ㅡ내렸다고하는데 그건 거짓말이야. 페리제독이 오기전에 일본도 자체기술로 증기선 만들었음. 증기선을 원리 구조 다 깨우친 상태. 단 서양보다 마력에서 조금 뒤지는 정도임. 조선??? 원리자체를 이해못했고 결국 조선끝날때까지 증기선 만드는데 실패한게 조선.. 글고 미국에서 일본까지 건너와서 일본을 어떻게 점령하지?? 신미양요때 미국 전사자 1명 조선군 전사자 400명 이정도의 살상비율이 날정도로 전력차가 나는데도 미국이 조선점령은 엄두도 못내고 돌아감. 단순히 성몇군데를 폭격하고 초토화 시키고 일부를 단시간 점령하는거랑 영토를 점령하는건 다른문제. 참고로 미국이 군함 몇대로 조선 초토화 시킬때 일본은 그당시 세계최강 영국 군함을 아작낸 나라라서 ...그것도 일본정부군도 아니고 30여개의 번 중 하나가 그런 전과를 올림. 유럽식 소총 몇만정을 가지고 있던 나라가 일본이고 지방의 난공불락 방어진지 구축이 가능한 성들이 수십개가 존재하며 거기서도 벽에 구멍내어 대보총 거치시키고 쏘아대면 .... 글고 에도말기 인구가 4천만이 넘는 대국임. 소총을 들고 수만명이 상륙도 안될뿐더러 설령 상륙해도 성에서 유럽식소총 대보총으로 방어만 해도 못 뚫어요. 그렇다고 전차 대포를 육지에 가져올수도 없는데. 불가능.. 일본은 조선이랑 완전 다른 나라였음.
@user-ly5de4nz8f
@user-ly5de4nz8f 3 жыл бұрын
일본은 저렇게 역동적으로 국가를 개혁하고 잇을때 조선은 뭐햇는가 참 부끄러운 조선의 역사
@michael66naver
@michael66naver 3 жыл бұрын
역사를 단순하게만 보게되면 나타나는 일반적인 우愚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외부세력의 침입에 전국을 철저히 통제하며 왕조의 멸망까지 결사항전. 당시 청나라도 마찬가지. 일본은 봉건국가. 죠슈아번과 사쓰마번처럼 가장 낙후된 최전방 자치번에서 빵구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 그 구멍난 빵구를 통해서 서양문물이 꾸역꾸역 기어들어와서 결국 개항으로 이끌게 된 것.
@user-dc3tk6jh4w
@user-dc3tk6jh4w 3 жыл бұрын
구조적 한계임 조선 같은 중앙집권 국가의 기득권은 변화를 두려워함 왜 변화가 생기면 기존 체제가 흔들릴 수 밖게 없기 때문에 그래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막을 수 밖게 없는 것임 흥선대원군이 아둔한게 아님 이양반은 자기 위치에서 나름 최선책인 쇄국을 했던 것임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열강들의 침입으로 청나라 개막장 일본은 정권교체가 된 이 사실을 알고 있고 국내는 세도가들 득세로 왕권은 약해질대로 약해진 상태의 본인이 왕족이고 어린 왕의 대리인으로서 정권을 잡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잇을까 하는...
@IlIllIIllIIl
@IlIllIIllIIl 3 жыл бұрын
태생부터 잘 못 됐네
@su5842
@su5842 3 жыл бұрын
@@michael66naver 정확히 말하자면 "강력한" 양반 사대 중심 노비국가였죠. 국민의 절반이 노예인 노예국가. 산의 나무껍질이 남아나지 않았던 국가.
@su5842
@su5842 3 жыл бұрын
@@user-dc3tk6jh4w 그러니깐 양반와 왕조의 기득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한거죠. 백성을 말 그대로 개돼지 취급했던 것입니다. 백성이 굶어죽든 말든 자신의 기득권을 최우선 안위로. 뭐 이거는 흥선대원군뿐만 아니라 이씨왕조 전반에 걸친 부패죠
@billyhobbysalon2458
@billyhobbysalon2458 3 жыл бұрын
역사지식에 조아요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MarieZorroIndiana
@MarieZorroIndiana 3 жыл бұрын
비슷한 시기, 비슷한 사건을 겪었음에도 청, 조선, 일본의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는걸 보면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않되는게 참... 아직 배움의 길은 멀다는걸 느낍니다. 정치(위정자)를 펼치는 지배층의 자세도 중요하겠지만 국가를 구성하는 주요 계층의 입장도 중요한듯. 왜 일본은 성공하였을까? 자꾸 되뇌네요. 항상 느끼는거지만 교육이 제일임은 부정할 수 없네요. 지금 일본의 상황을 보면 메이지 시대의 초심으로 가야할 듯 싶은 생각도 드네요. 마치 늙고, 변화를 거부하던 청나라나 조선을 보는 듯... 오늘은 새로운 역사를 많이 알게 되어 찾아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ㅋ.ㅋ 겨울이 다가온듯 합니다. 기온차가 크니 목감기 조심하세욧! 멋찐 목소리 아픔 않되요~~ㅋ ㅋ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멋찐 목소리..ㅋㅋㅋ 네. 개인적으로는 중화사상의 중국, 소중화사상의 조선.. 그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도 분명 자국중심주의가 있었지만, 대륙보다 절대적이진 않았고 막부시절부터 외국문물을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있었죠.... 척박한 땅에서 해외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던 DNA가 19세기에도 여실히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초록별청개구리님~^^
@belleepoquela3271
@belleepoquela3271 3 жыл бұрын
새로운 것을 수용할 줄 아느냐가 매우 중요한 거 같습니다. 에도 막부 초반부터 네덜란드와의 무역을 유지했던 일본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었기에 서양의 제도도 아주 단시간에 받아들일 수 있었던 반면, 서구를 몰랐던 조선은 개화기에 문물은 받아들일 지언정 제도는 받아 들이는 데 실패했죠. 이런 적응력은 개개인도 일맥상통하는 듯 합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은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지언정 조금씩 변하는데, 새로운 것을 찾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새로운 것과 맞닥뜨릴 때, 거부감을 먼저 보입니다. 아마 살아오면서 많이 보셨을 거예요. 그렇기에, 교육을 통해 지식을 주입하는 것 만이 아닌, 직업이 공부가 아닐 때에도 새로운 것을 주도적으로 찾아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belleepoquela3271 네. 동의합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벨르님~
@kisear455
@kisear455 3 жыл бұрын
@@justice20000 걍 근댛하 성공한게 거리및 강대국이 신경을 안쓴게 주 성공요인임 그리고 러시아하고 어느정도 거리가 떨어져있어서 영국이 전략적으로 전급한것도 있고요
@talkertalker0
@talkertalker0 3 жыл бұрын
일단 세계관이 달랐고, 세계관이 다르니 위정자가 꿈꾼 이상이 달랐고, 이상을 실현시키는 여건이 달랐다고 생각함. 중국은 중국이 최고라는 세계관을 못버려서 서양인의 하드웨어만 가져오면 된다는 착각을 했고 일본은 일본의 문물이 세계에 비하면 하잘것없다고 생각을 결국 하게되어 미친듯이 서양인을 흉내내서 따라갔고 (그 과정에서 외국정세도 파악해서 외교도 잘 함. 난학자란 존재가 서양이해의 창구가 됨) 조선은 개화의 필요성을 너무 늦게 느꼈고, 그마저도 세계 정세를 몰라서 청이나 제정러시아같은 반영국 세력에 의지하려고 하고, 근본적으로 조선의 농본주의 유교사회는 중상주의 계몽사회의 특질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사상적인 유연성이나 이해도가 부족했고.....
@user-oj9yb1bm4e
@user-oj9yb1bm4e 3 жыл бұрын
일본 민중의 잇키. 저항운동이 궁금하네요. 징병을 피해 절에 숨고 그랬다는 데..
@usakim4140
@usakim4140 3 жыл бұрын
우리가 메이지유신 같은걸 먼저 했어야하는데
@user-xi4xn6fl4s
@user-xi4xn6fl4s 3 жыл бұрын
우리도 할 기회는 많았지만 흥선대원군이 문 걸어잠궈 버림
@rainbowsea9679
@rainbowsea9679 3 жыл бұрын
1800년 초부터 시작된 외척인 안동김씨부터 시작된 세도정치 . . . 어렵게 권력을 잡은 외척들의 부정부패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됨 . 1700년대부터 중국(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심양에서 볼모생활을 하며 간접적으로나마 천주교와 서양문물을 경험한 소현세자(왕세자)와 봉림대군(소현세자의 동생 , 훗날 효종)을 포함한 종친,그리고 청나라를 자주 왕래했던 상류 관리들 . . . 이들이 귀국해 집권을 시작해 개방정책을 시작했지만 달콤한 권력의 맛을 본 안동김씨들이 개방시 권력을 잃을께 명약관화해지자 본격적으로 왕의 개방정책을 방해함 . 심지어 교묘하게 흥선대원군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자신들은 죄가 없다며 교묘히 빠져 나감 . 물론 안동김씨 후손인 김옥균같이 일부 양심적인 사람들은 안동김씨가 권력을 잃은 상황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다행스럽게 개방(갑신정변)을 시도하기는 했음 . 결과론적이지만 만약 갑신정변이 성공했더라도 중장기적인 로드맵이 없던 터라 길게 가지 못했을거라는 생각은 든다 . 그러나 이후 발생된 너무나 많은 불행한 역사를 훨씬 줄였을거라고 개인적으로 유추한다 .
@user-bm9pd7mh4t
@user-bm9pd7mh4t 2 жыл бұрын
@@user-xi4xn6fl4s 일본이 개항을 잘할수있었던건 에도시대때 쌓아온 막강한 경제력이 뒷받침을 해주어서 그런겁니다 사농공상을 중시하던 조선의 경제력은 이미 죽을대로 죽어서 흥선대원군은 그런 중국이 개항해도 뒤지는것을보고 개항을 막았던 겁니다 서양문물을 싫어했던 흥선대원군이 과연 서양의 문물인 사진을 찍었겠습니까?? 그당시 사진은 사람의 영혼을 빼간다는 서양의 악한 물건이라 여겨졌는데 흥선대원군은 찍언던것을보면 서양문물의 발전성은 알고있었습니다.
@lagrange1013
@lagrange1013 8 ай бұрын
단순히 흥선대원군 한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사회 전체가 서양을 받아들일 준비는 커녕 내부적으로 너무나 썩어있던 나라였음. 일본도 쇄국했다 하지만 완전한 쇄국도 아니었고 이미 오래전부터 나가사키를 개항하고 네덜란드로 부터 서양문물을 접하고 있었고, 상업도 사회 구조적으로 엄청나게 번성하고 있었음. 조선처럼 사농공상 ㅇㅈㄹ 하며 흙만 파먹던 국가가 아니었음요.@@user-xi4xn6fl4s
@Bobnyamnyam
@Bobnyamnyam 3 жыл бұрын
일본의 시스템은 이미 이렇게 발전 트리 쌓아는데.. 당시 조선은 ㅠㅠ
@user-fn3lg5jt5f
@user-fn3lg5jt5f 3 жыл бұрын
저언언하~ 아니되옵니다!
@user-bw7sz1gb7f
@user-bw7sz1gb7f 3 жыл бұрын
공자왈~맹자왈~
@BogleVanguardZealot
@BogleVanguardZealot 3 жыл бұрын
서양은 오랑캐이옵니다~
@migibyo2392
@migibyo2392 2 жыл бұрын
재밌네요
@user-ln3jf8og4i
@user-ln3jf8og4i 3 жыл бұрын
ㅉㅂㅇ들은 저렇게 각성하지만 조선은 열라 깨지고도 이겼다고 정신승리만 하고 끝
@user-pk8un2me3e
@user-pk8un2me3e 3 жыл бұрын
아편전쟁을 보고큰충격을 받은 조선과 일본이 간 길은 천지차이였죠 일본은 료마의 중재 그리고 메이지유신 청일전쟁 조선은 천주교박해 척화비쇄국정책 민씨집권 그나마 대한민국이후 각성에 의한 삼성 LG로 대변되는 경제발전이 있어서 그나마 반일이라도 할 수있지 않나 싶네요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네. 메이지유신도 어차피 국가주도 발전이었고, 우리도 삼성이나 금성을 포함하여 경제발전 자체가 모두 국가 주도로 이루어진 점... 중국도 마찬가지였고요... 오로지 자유경쟁에 의한 시장경제는 먼저 이륙한 영프미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프로파간다로 사용된 거죠... 후발주자들은 일정부분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이 필수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인권문제에서 아쉽긴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공은 그 지점에서 찿을 수 있죠.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상민님..~~
@user-tm8ni2sx1j
@user-tm8ni2sx1j 3 жыл бұрын
우리도 기회는 있었다 일본은 잡았고 우리는 놓았습니다
@user-pk8un2me3e
@user-pk8un2me3e 3 жыл бұрын
@@justice20000 중국의 반도체굴기 성과가 거의없이 보조금빼먹기로 전락하고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국가주도의 발전도 시장경제 에 대한 철학과 지도력 창의력 그리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중국이 그랬다는 것은 몰랐네요. 네. 당연히 국가주도 발전도 시장경제의 바탕 위에 있어야 겠죠. 창의력과 시스템도 필요하고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ve9lp6zr5o
@user-ve9lp6zr5o 3 жыл бұрын
일본은 어떻게 제국주의로 나아갔는가.
@TV-cl9ot
@TV-cl9ot 3 жыл бұрын
메이지유신 배경의 라스트 사무라이를 같이 보심도 추천드려요~~~
@user-iu6fx4zv2q
@user-iu6fx4zv2q Жыл бұрын
메이지 유신은 결국 전쟁으로 완성되었다
@user-yy8ql9xy8y
@user-yy8ql9xy8y 3 жыл бұрын
일본 인물들은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사카모토 료마는 대단한 인물이네요
@user-bw7sz1gb7f
@user-bw7sz1gb7f 3 жыл бұрын
사카모토 료마에 대한 의문점은 아직도 논쟁중인...
@user-lf9gv4vf9w
@user-lf9gv4vf9w 3 жыл бұрын
13:00
@williamahn7093
@williamahn7093 3 жыл бұрын
다음엔 일본역사를 많이 다루어 주세요. 특히 일본의 전국시대.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llem49
@allem49 3 жыл бұрын
전국시대개꿀잼
@user-gr4ew5zd6c
@user-gr4ew5zd6c Жыл бұрын
의원은 누가 뽑았나요?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이 있었나요?
@YBKim-yd7vm
@YBKim-yd7vm Жыл бұрын
일본, 일본어, 일본사, 일어과, 일어일문과, 공부하는, 학생들이 반드시, 꼭, 시청해야 할, 동영상으로, 강추합니다. 😮😮
@user-bw7sz1gb7f
@user-bw7sz1gb7f 3 жыл бұрын
일본은 조총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죠
@user-vc5ye2pp7g
@user-vc5ye2pp7g 3 жыл бұрын
원래 인류발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그 결을 같이하죠...지금 일본은 과거 우리 조선처럼 변화에 대해 매우 수동적이지만, 저때는 매우 능동적이엇는데, 전쟁대한 동기부여때문인것같습니다....그런데 반대로 당시 조선인들은 왜 그런 욕망과 동기부여가 없엇을까요? 지배층이 부패해서? 기득권을 지키기위해 신문물을 안받앗다? 일본은 달랏을까요? 당시 일본 지배층도 썩은건 마찬가지엿는데...
@마구로
@마구로 2 жыл бұрын
진짜 시기가 너무 안좋았다....일본에서 메이지 텐노같은 제대로된 인물이 나올때 우리는 그 쓰레기나라 조선이 쇠국정책이나 하면서 아직도 지들세상인줄 알고있었으니...
@user-iv6wk7kp3d
@user-iv6wk7kp3d Жыл бұрын
서양인들의 주도하에 움직여지는 세상.. 우리끼리 엣헴놀이 하고있을때 살아생전 처음보는 무기들로 뒤에서 우릴 겨누고 있었다는것 세상을 알고 나를 알자
@HNL-uf5le
@HNL-uf5le 3 жыл бұрын
한편 이웃나라 조선에서 왕위에 오른 고종은 왕이 되자마자 어릴 적 자신에게 군밤을 공짜로 주지 않은 군밤장수를 처형하란 명을 내렸다
@user-bw7sz1gb7f
@user-bw7sz1gb7f 3 жыл бұрын
그 마누라는 돈을 펑펑 쓰면서 나라를 망하게... "나는 조선의 국모다!" 외척들까지 나라를 어지럽혔죠
@gobaek6432
@gobaek6432 3 жыл бұрын
메이지 유신의 교훈은 사실 지방분권의 중요성이 아닐까 봐요~ 중앙집권 중국이나 조선은 실패했는데 일본만 왜 성공했을까... 조슈번이나 사쓰마번같은 제후들이 경쟁을 해서 아니였을까요... 그러니까 분열된 유럽에서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산업혁명이 발생했는데 각국이 경쟁을 했기 때문이라 봐요 중국도 사실 춘추전국시대에는 공자 맹자 제자백가의 시대였고 유비 관우 장비 나오는 삼국시대에는 흉노 선비 오환 패고 다녔는데.. 통일되니까 5호 16국처럼 맞고 다녀서요... 울나라도 차라리...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가... 고려 조선보단.... 신라왕관이나 무령왕릉같은 유물 보면 세련되고 나아보이기두 하구요~ 르네상스조차도 분열된 이탈리아에서 발생했죠 ㅋ 암튼 통일의 시대 각국간 경쟁이 사라져 문명의 발전이 퇴보하는 현상은 굉장히 흥미롭기도 해요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go baek님~
@user-ql1kp4uj9k
@user-ql1kp4uj9k Жыл бұрын
거기에 일본은 전부터 해상교역을 많이 했고 데지마를 통한 수백년간의 난학의 습득으로 서양문명에 대한 이해도가 중국이나 조선에 비해 월등히 높았던게 결과적으로 큰 차이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난학의 배경이 없었다면 일본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던 인물들도 나올 수 없었다고 생각함
@user-mi7vi1ke6k
@user-mi7vi1ke6k 3 жыл бұрын
그냥 도쿠가와 막부시대에서 조슈 사쓰마로 정권이 바뀐거지 중앙집권이 아니기에 오히려 가능했던 일본이기에 가능했던
@michael66naver
@michael66naver 3 жыл бұрын
엥? 제대로된 시각을 가진 인간이 있네?
@user-ms5di7dg8p
@user-ms5di7dg8p 2 жыл бұрын
일본은 근대화를 하고있을떼 우리는 오랑캐타령하며 쇄국정핵 하고 있었구나 ㅠㅠ
@jayk6803
@jayk6803 3 жыл бұрын
한국학생들은 메이지유신부터 배워야함 근대사중 젤중요한사건인데 반일에 미쳐 일본역사는 가르치지 않쥬 메이지유신으로 인한 신체제가 결국 조선에도 이식되어 한국근현대체제의 뿌리가 됨
@johnkim9156
@johnkim9156 3 жыл бұрын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는 자세히 배웁니다. 국사 시간에도 짚고 넘어가구요. 쓰신 댓글 보니까 ‘주제 파악 못하는 한국인은 한족의 정신적 후예아닐까’라는 댓글 남기셨던데 한국인을 굉장히 싫어하시는 한국인이신가봐요~
@dks6sim969
@dks6sim969 3 жыл бұрын
뭔 메이지부터 배우냐? 배울려면 서양 과학기술 발달 시기부터배워야지. 기술적으로나 전투적으로 동양이 100년넘게 앞서다가 왜 뒤쳐졌는지 배워야는거 아닌가? 전형적인 닛뽕추종자군 ㅋㅋ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네. 메이지유신이 국가주도의 성장이었음을 감안한다면, 한세기 후에 한국에서도 메이지유신과 비슷한 성격의 경제발전이 있긴 했죠. 그런 측면에서 하신 말씀 같네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le7gb2gn4z
@user-le7gb2gn4z 3 жыл бұрын
아이디보니..전형적인 일뽕...근데 한국인은 아닌거 같네.
@kevingo5864
@kevingo5864 8 ай бұрын
무지성 반일충들은 메이지유신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자성해야한다
@user-hq9xe4kd8f
@user-hq9xe4kd8f 3 жыл бұрын
삿쵸 동맹의 죠슈번은 폐번치현 이후에 야마구치현이됩니다 이 지역 국회의원이 바로 아베신죠이며 청일 전쟁이후 맺어진 시모노세키조약도 바로 이 지역입니다
@user-nz2gx7yw6w
@user-nz2gx7yw6w 3 жыл бұрын
일본이 저렇게 개혁할 동안 조선은 뭐했냐?
@BogleVanguardZealot
@BogleVanguardZealot 3 жыл бұрын
"서양은 오랑캐이옵니다. 화친은 아니 되옵니다~" 하고 있었죠.
@tva6445
@tva6445 3 жыл бұрын
그전에 안동김씨60년 세도정치
@Jerome_H_Powell
@Jerome_H_Powell 3 жыл бұрын
프리메이슨이 개입하였음.
@user-pu1gx3yg2g
@user-pu1gx3yg2g 3 жыл бұрын
땅도 넓고 봉건제가 남아 있었던 일본이 개혁에 더 유리했었던거 같네요. 그에 반해 조선은 물리적, 정신적으로 중앙집권이 확고해서... 메이지 유신 같은 개혁의 기회조차 잡을 수 없었던거 같네요.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네. 말씀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윤식님~
@sungbae_vvs2234
@sungbae_vvs2234 2 жыл бұрын
무엇보다 성리학에 매몰됬던 정신문화가...
@user-gw2zu5do2r
@user-gw2zu5do2r 3 жыл бұрын
잘 봤습니다. 1주일 제도는 서양에서 도입되었겠지만 옛날에도 하루는 24시간 아니었나요? 자시(23시~01시)에서 해시(21시~23시)까지 12시에서 0:00~24:00로 바뀌었다는 뜻인가요? 국민의 3대 의무로 교육, 병역, 납세를 든 것이 명치 신정부 시대에서부터였군요. 명치 신정부의 개혁이 오늘날 대한민국에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네요. 이번 영상에서 나온 여러 전쟁의 승패를 가른 요인으로 무기 성능의 우열을 드셨는데, 그 부분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서고금 역사에서 무기 성능이 전쟁 승패에 직결된 전쟁이 오히려 소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기 성능이 안 좋은 쪽이 승리한 전쟁이 부지기수였더군요. 이번 영상에 나온 세이난 전쟁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덴노 조정군의 무기보다 가고시마 반군의 무기 성능이 오히려 좋았다더라구요.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아서 더 이상 강하게 주장은 못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얼핏 들었고, 그렇게 '얼핏' 역사에서 전쟁에 승리한 쪽의 무기 질이 패배한 쪽의 무기 질보다 떨어진 경우를 많이 접해서 나름 신빙성 있다고 생각해서 제보 드립니다.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말씀 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려요.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서 쓴 것은 메이지 유신부터라고 합니다. 제가 참고문헌으로 표시한 책 두권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네요. 세이난 전쟁 관련하여서도 처음읽는 일본사 p247에서 [신무기와 체계화된 전술로 무장한 정부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저도 안강현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 영상을 만들기전 위키와 나무위키를 읽어봤는데 두 곳에서도 반군의 장비가 신식이긴 했어도 정부군보다 더 좋았었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wnbawkbl2106
@wnbawkbl2106 3 жыл бұрын
제가 읽어본 책과 메모해뒀던 것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당시는 일단 엔필드소총(전장식) 시대였습니다, 화약,탄약, 뇌관 쓰는. 그런데 정부군측(경시청의 가와지 도시요시)이 사이고의 가고시마 육군성 포병창고에서 무기와 탄약을 오사카로 밀반출하다가 이건 싸우자! 네 하면서 세이난 전쟁이 발발했다고 합니다. 그 곳에 있었던 것이 스나이더 소총과 탄약이었습니다. 후장식으로 가고시마 공장에서 유일 국산화에 성공해 독점공급하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놋쇠탄피도 수압프레스로 성형하는 전용대량설비가 있었다는. 이 부분을 사이고 측 무기 성능이 더 좋았다라고 하는 건가 봅니다. 그렇지만 세이난 전쟁 다큐를 보면 사스마가 후장식 총을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정도 언급만 하더군요. 그리고 다른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정부군은 5만이고 사이고 측은 3만8천인데, 핵심전력은 1만3천이고 포병은 겨우 200명이었다고 합니다. 전쟁방법도 정부군과 거리 좁히고 일제 사격 후, 칼 들고 돌진이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징병제 군대가 사족들이 '전쟁 전문가'라는 환상을 깨고 봉건 복고를 차단했다 는 식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user-gw2zu5do2r
@user-gw2zu5do2r 3 жыл бұрын
@@wnbawkbl2106 소중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참고하겠습니다.
@georgebaek1541
@georgebaek1541 3 жыл бұрын
미국 너히들이 우릴 건드려 시작을 햇다. 피어리어드.
@nickn1991
@nickn1991 3 жыл бұрын
참고로 이 영상에선 제외시킨듯 한데 3:11 전에 일본도 서양 열강에 충분히 피해를 주긴 했음. 그래서 영국이 당장의 무력으론 힘들겠다 라고 생각하던 참에 일본에서 화친하자고 해서 맞아 떨어진 것. 일본은 신미양요 같은 일방적인 학살이 일어난 적이 없음을 깨닫고 가야 함.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네. 말씀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daaniee3757
@daaniee3757 3 жыл бұрын
이거 보니 일본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한거 같네요 그에 비해 조선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michael66naver
@michael66naver 3 жыл бұрын
5:59 신교를 국교로 삼아 덴노의 권위를 강화하였습니다 신교 X 신토[ 神道 신도] - 덴노를 신격화한 일본의 재래종교
@nabe4987
@nabe4987 3 жыл бұрын
신토를 신교라고도 부름 아는체 할거면 제대로 알고
@michael66naver
@michael66naver 3 жыл бұрын
@@nabe4987 ㄱ소리 할 때는 근거를 드래댄 마
@nabe4987
@nabe4987 3 жыл бұрын
@@michael66naver 神教 라고 한번만 쳐보면 나오는걸 벌레같이 모르는거 보니까 내가 미안하다. 장애인학대해서 미안해 하등생물아 ㅠㅠ
@bigboyb3961
@bigboyb3961 3 жыл бұрын
@@nabe4987 위키백과에 보면 신교라고 하지않고 신도라고 부른다하면서 나옴. 즉 신교는 잘못된 단어. 구글검색하면 바이두 사전에 신교는 일본의 종교가 아니라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불교용어임.. 신교라는건 중국인들만 사용하고 신도가 맞는말..구글검색하면 다 나옴..
@bigboyb3961
@bigboyb3961 3 жыл бұрын
구글 검색해봣는데 신도가 맞는말 맞네요.. 신교는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불교용어..신교 baike.baidu.com/item/%E7%A5%9E%E6%95%99 신토ko.wikipedia.org/wiki/%EC%8B%A0%ED%86%A0
@stivejin9281
@stivejin9281 3 жыл бұрын
당시 일본 메이지유신의 성공은 미국의 남북전쟁이라는 천운도 어느정도 따랐습니다. 일본과 비슷하게 개항했지만 식민지화를 피하지못한 여타 많은 국가들이 증명하듯 일본도 미국의 식민지가 될확률이 높았죠. 다만 개항후 미 남북전쟁이 터져 미국이 일본에 간섭할 여유가 사라져버렸고 이 기회를 일본은 아주잘 활용한케이스죠. 반면 조선은 신미양요때 말도안되게 털리고도 정신승리하며 개항을 거부했고, 훗날 일본에의해 개항후에는 메이지유신때의 미국남북전쟁같은 운도 없었을뿐더러 더 안좋은 개혁조건에서도 고종, 민비와 그 일가들이 국가개혁보단 자기들의 권력을위해 외세를 이리저리 갈아타다 망국의 길로 들어섰죠.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yhansookim7850
@yhansookim7850 3 жыл бұрын
미국도 청에 아편빨대 꽂고 잘 빨아먹고 잇엇는데 일본도 충분한 먹이감(?)이 될수 잇엇죠. 남북전쟁으로 개판만 안됫다면...
@user-gw4vf1ke9p
@user-gw4vf1ke9p 3 жыл бұрын
일본의 국민성 때문인듯 약자에게 한없이 강하지만 강자에게 약하고 경외심마저 보이죠 덕분에 근대화가 빨랐음
@user-vw5cu7yr2y
@user-vw5cu7yr2y 3 жыл бұрын
국민성 운운은 좀;
@user-tg7ir9vj5c
@user-tg7ir9vj5c 3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 그런 나라한테 식민지배당한 조선 ㅋㅋ
@user-le7gb2gn4z
@user-le7gb2gn4z 3 жыл бұрын
@@user-tg7ir9vj5c 왜그리 불편하냐? 니뽕이냐?
@josammosa98
@josammosa98 3 жыл бұрын
@@user-tg7ir9vj5c 네 다음 토착왜구
@user-oo2sf1uw6g
@user-oo2sf1uw6g 3 жыл бұрын
@@josammosa98 저말이 왜 토착왜구지?ㅋㅋㅋㅋㅋ
@kayadong1520
@kayadong1520 3 жыл бұрын
침략국 알아서뭐하나 만행만 배우고기억하면되지ᆢ웃기내 ᆢ
@hwana90
@hwana90 3 жыл бұрын
저보다 똑똑하신 분들이 일왕을 덴노라 말을 하시니 ...
@user-tg7ir9vj5c
@user-tg7ir9vj5c 3 жыл бұрын
그냥 니가 존나 빡대가리인거
@hwana90
@hwana90 3 жыл бұрын
@@user-tg7ir9vj5c 뭐라고
@hwana90
@hwana90 3 жыл бұрын
@@user-tg7ir9vj5c 말참 뭐같이하네
@hwana90
@hwana90 3 жыл бұрын
@@user-uo5el1fu6q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BogleVanguardZealot
@BogleVanguardZealot 3 жыл бұрын
@@hwana90 그럼 대한민국을 소한민국으로 부르는 게 더 정상이겠군요? 일본보다 땅도 작고 인구도 작고 경제도 작으니까? "무슨 개소리야?"라고 느껴진다면 천황 일왕도 그냥 표현로 자유로 넘어갑시다.
@hwana90
@hwana90 3 жыл бұрын
중국역사이 황제들은 무슨제라 하면서 덴노라고부르니 ...ㅈ
@user-hj7hd5dm9u
@user-hj7hd5dm9u 3 жыл бұрын
일왕이란 표현은 잘못된거 맞지 괜히 낮춰부를 필요 없음
@mmmm2050mmmm
@mmmm2050mmmm Жыл бұрын
일본의 역사도 참...
@hwana90
@hwana90 3 жыл бұрын
덴노란 표현보단 일왕이어떠실지...천황
@justice20000
@justice20000 3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명시한 호칭은 '천황'입니다. 차르, 카이저와 같이 고유명사로 사용하는 것이죠. 그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굳이 깎아내리지 않고 인정해 주는겁니다. 다만, 우리 정서가 '천황'을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영환님 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이해합니다. 따라서 이원복 교수님은 고유명사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 '덴노'로 표시하자고 주장하셨는데, 저는 제 영상에서 그 정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제가 아무생각 없이 '덴노'라 호칭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핵심만 말씀드렸지만, 위키와 나무위키에서 "천황"이라 검색하셔서 한번 읽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관심 감사드립니다.~
@yhansookim7850
@yhansookim7850 3 жыл бұрын
몽골 칸, 러시아 차르. 그나라 언어로 불러주면 그만. 꼭 중국식으로 왕이냐 황제(천황)이냐 구분할 필요가 없죠
@user-ri9uu1id9l
@user-ri9uu1id9l 3 жыл бұрын
전 크게 개의치는 않았는데 이왕 나왔으니 영환님 의견을 지지합니다. 황제가 되기위한 요건이 있는걸로 알고있고, 일본제국시절에는 한국과 대만, 중국의 일부 등 다른민족을 점유함으로서 황제의 요건을 갖추었으나, 패망하고는 그 다른민족의 영토를 상실함으로 황제가 아니게 된 것이죠. 다른국가에 패퇴했으면 왕이나 공으로 격하되거나, 왕정 자체가 폐지되고도 남는데, 미국에서 통치하기 편하게 하려고 인간선언만 하고 그냥 써먹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은근슬쩍 황제의 명칭을 계속 쓰고잇을뿐이죠. 참칭이라 마땅하다고 봅니다.
@nabe4987
@nabe4987 3 жыл бұрын
@@user-ri9uu1id9l 똥싸고 있네.. 고려는 다민족이라서 초기에 칭제건원했었냐. 한반도의 왕조들은 중국의 제후국(책봉국)이라 칭제건원 못한거지. 일본은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만들어도 중국이 감히 징벌할수 없으니까 칭제건원한거고
@nabe4987
@nabe4987 3 жыл бұрын
@@user-ri9uu1id9l 일본의 전통적 행정구역이 ~국(國)이고 덴노의 아들은 "왕"인건 알고나 헛소리 하나? 그리고 시황제는 왕중의 왕으로서 황제를 칭한거지 다른민족을 점유함으로서 황제로 불리는건 서양 엠퍼러다 멍청아
@user-wx8cg2zs3d
@user-wx8cg2zs3d 3 жыл бұрын
덴노가 가짜라는 말이 있는데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모르것네.. 이토히로부미도 조선계란 말도 있고..? 누가 아는 분 설명 좀 해주세요..
@user-nh5cl1bq4i
@user-nh5cl1bq4i 3 жыл бұрын
메이지유신의 결과는 패전일뿐
@user-le7gb2gn4z
@user-le7gb2gn4z 3 жыл бұрын
일본역사관련영상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일뽕들..극혐이네.. 메이지시대 니뽕에 빙의해 조선비하하면 즐겁냐? ㅋㅋㅋ
@user-tg7ir9vj5c
@user-tg7ir9vj5c 3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 채널에 댓글단 수준 잘봤고~
@lagrange1013
@lagrange1013 8 ай бұрын
상대를 이해하고 연구할 생각은 1도 안하고 조선시대 씹선비 비행신 마냥 그저 부정하고 조롱하고 비아냥질이나 하고 있으니. 조선시대에도 너처럼 일본은 쳐들어올 깜냥도 안됩니다 하며 무시하던 비행신들 덕분에 7년동안 전국토가 유린당하며 탈탈 털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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