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궁정동 사람들 -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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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곤

이문곤

Күн бұрын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이토-히로부미를 쏴 죽였다. 그로부터 70년, 1979년 10월26일 김재규는 다카기-마사오를 쏘아 죽였다. 안중근은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김재규는? 영웅인가, 역적인가.
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가 나왔다. 그동안 10.26과 관련한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김재규와 10.26에 대해 철저하게 드러난 사실만을 바탕으로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한 책은 없었다. 이 책은 김재규 변호사들이 34년간 고이 간직해온 자료와 기억, 가족의 증언, 김재규와 운명을 함께 한 박흥주·박선호 등 5명의 충직한 부하들이 남긴 이야기들, 그 외 방대한 자료들의 토대 위에 있다. 이 책은 김재규 변호사들이 검증한 최초의 10·26 정사(正史)라고 할 수 있다.
김재규. 1976년 12월4일부터 1979년 10월26일까지 34개월 동안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사람. 그는 1979년 10월26일 대통령 박정희를 저격하여 살해하고, 1980년 5월24일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박정희의 심장을 쏴버린 박정희의 오른팔. 유신을 허물어 버린 유신의 핵심.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우발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치밀하게’ 일을 저지른 사람. 모순으로 가득한 그의 행동 탓에 그동안 그와 관련해 너무나 많은 구구한 억측과 오해가 뒤따랐던 것이 사실이다.
5·16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를 김재규가 총으로 쏘아 살해한 사건이 10·26이다. 그 뒤 군부의 전두환·노태우 일파가 다시 군을 이끌고 권력을 장악한 것이 12·12 쿠데타.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고 국헌을 문란케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성립하는데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쿠데타는 두말할 나위 없는 내란죄다. 그러나 김재규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하지 않았다. 권력을 잡으려고 움직인 흔적도 없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군사독재를 끝내려고 거사를 했는데, 내가 집권하면 역시 군사독재가 되기 때문에 나는 집권할 생각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전두환·노태우는 나중에 내란죄로 기소돼 각각 무기징역과 12년형을 받았지만 사면됐다. 박정희는 기소조차 되지 않고 국립묘지에 묻혔다. 내란죄를 저지르지 않은 김재규만 사형당했다. 김재규는 내란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도 못 되고 내란죄로 처형된 셈이다. 김재규 사건 자체가 우리 역사의 모순이다.
전두환의 합수부가 주도한 군사법정이 의도한 대로 김재규가 단순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박정희를 살해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시각에서부터, 우리 현대사가 일그러지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박정희에 저항했던 민주화 세력이나 정치인조차 김재규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폄하했다. 혹시라도 그가 민주화의 공을 독식할까 탄원서에 서명하는 것조차 꺼렸다. 당시 모두가 그가 제대로 된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사형당하는 것을 방치하여 신군부가 다시 등장할 빌미를 주지 않았는지 저자는 의심한다.
김재규가 민간법정에서 법의 보호를 받으며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면, 김재규가 말하고 싶었던 진실을 자유로운 언론이 국민에게 알렸다면, 우리 역사는 지금과는 훨씬 달라지지 않았을까.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피를 흘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사람들은 여기게 되지 않았을까. 저자가 굳이 10·26을 끄집어내 햇빛 아래 말리고자 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김재규를 직접 만나본 이들은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국선변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김재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던 인권 변호사도 당연히 처음에는 그를 변호하는 데 시큰둥했다. 하지만 그를 만난지 30분 만에 자신의 생각이 180도 바뀌는 것을 의식하며 당혹스럽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들은 지금도 마치 오래 전에 떠나보낸 연인을 그리듯 고인의 묘를 찾는다. 거사 30분 전에야 김재규의 뜻을 전해들은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신군부의 갖은 유혹과 협박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 한마디도 김재규를 비난하지 않고 묵묵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단순히 김재규의 인품이 고결해 그랬을까. 그들은 박정희가 왜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또 그 일을 할 사람은 김재규뿐이었음을 이해했기 때문일것이다. 중앙정보부를 채홍사로 삼아, 한 달이면 열흘이나 여자 연예인이나 여대생들을 강제로 끌어다 주지육림의 파티를 벌이면서, 부마사태 유혈진압을 계획했던 박정희와 그의 졸개들은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짐승이었다. 저자는 김재규를 둘러싼 이 같은 모순에 분노하는 이들이 있는 한, 김재규가 그토록 원했던 제4심, 정당한 문민의 재판이 열릴것이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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