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내용이네요. 하지만 수정해야 할 부분들이 적지 않네요. 1. 용어 설명 오류 총(塚)은 “왕과 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의 무덤”이 아니라 →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다른 무덤과 구별되는 특징을 따서 붙이는 이름” 예) 천마도의 천마총, 무용도의 무용총 2. 역사적 고유명사와 오자 김정희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금동대향로 → 백제 금동대향로 풍납 토성 → 풍납토성 을총년 홍수 → 을축년 홍수 3. 설명과 자료 화면이 일치되지 않는 장면 금관총 부분에 천마총과 황남대총 화면이 등장
@김앙드레-l7g2 жыл бұрын
총은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왕과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의 무덤, 각 무덤의 특징을 따서 이름을 지음." 이래야 가장 정확하겠죠.
@ChangHyunKim92 жыл бұрын
@@김앙드레-l7g 맞습니다~~
@o.o54633 жыл бұрын
금동대향로에 향을 피우면 향 연기가 뚜껑 여러곳에서 올라와 안개처럼 표현이되며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 된다고 합니다.
@끄떡이3 жыл бұрын
이기환기자님 감사합니다~
@파란나락2 жыл бұрын
금동대향로 정말 대박입니다 정말정말..... 꼭 가셔서 보세요 사람없는 평일 감상하시는게 좋을꺼에요
@helookscool3 жыл бұрын
백제 금동대향로는 진짜 나라의 보배지.......저런 아름다운 걸작이 어딧겠어......중국 동시대 그어떤 유물도차도 대적할수 없는 아름다움이지....
@MalangMolang3 жыл бұрын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맨티스트로3 жыл бұрын
@@MalangMolang 그래서?
@MalangMolang3 жыл бұрын
@@맨티스트로 ㅇㅉ????????????????
@Black_Dove993 жыл бұрын
발견하게된 사연도 스펙타클해서 그 감동이 더 한듯
@Buzhidao123 жыл бұрын
풉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반도족들 미개족들이 중국과 비교하는 자체가 아주 엽기적이고 코미디이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저기 나오는 문자도 모두 한자이구만 무슨 ㅎㅎㅎㅎㅎㅎㅎ
@끄떡이5 ай бұрын
이기환기자님 ... 모습은 처음 뵙네요...'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때부터 팬입니다...항상 건강하세요~
@야옹이-f5h2 жыл бұрын
기사로만 만났던 이기환님을 여기서 뵈니 반갑네요. 짧은 시간이 조금 아쉬웠지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감독판도 있으면 합니다.
@jjkk51865 ай бұрын
금동대향로가 일제시대 때 발굴되지 않은게 정말 너무나도 다행입니다ㅠㅠㅠㅠㅠㅠ
@자녀교육최경선-m3p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발굴 유적에 대한 유익한 영상 참 좋았어요~
@김현수-z4n3 жыл бұрын
학생때 부모님이 박물관 진짜 많이 데리고 다니셨었는데 여기나온것들중 반은 가서 본것같네요 ㅋㅋ 살면서 한국 박물관은 전부 가보고싶네요....버킷리스트중 하나인데...
@Black_Dove993 жыл бұрын
와 우연치않게 봤는데 진짜 재밌다
@chloekim79823 жыл бұрын
한때 고고학도를 꿈꿨는데 ㅎㅎ 유익한 내용 감사합니다!
@3suns922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역사 대발견 유물은 전곡리 주먹도끼,금동 대향로, 무령왕릉,석굴암, 팔만대장경, 직지,훈민정음 해례본,인사동 갑인자 등등이 역사를 바꾼 위대한 유물인것 같아요.
@manggoddang2 жыл бұрын
다뉴세문경이 없네요
@rere58612 жыл бұрын
@@manggoddang 출토품은 없고 다 도굴품임.
@거솔-q6i2 жыл бұрын
훌륭하군요.
@연두-y1j Жыл бұрын
도굴해서일본에팔아먹엇죠ㅡ 우리어려서도엿장수가. 국채팔라고떠들고다녓는데
@문한국-o7s Жыл бұрын
순위에 의미가 전혀 없음..그쵸
@happyart.j79943 жыл бұрын
백제 금동대향로 직접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크기도 생각보다 큽니다
@권오희-n2p2 жыл бұрын
역사 공부는 참 재밌어요ㅎㅎ
@koreanheritage2 жыл бұрын
즐거운 역사공부를 할 수 있는 콘텐츠로 느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태극무궁화3 жыл бұрын
우물정자 # 하늘의 우물 이라는뜻이고 하늘의 태왕 이라는뜻 이라고 합니다 즉 왕의 표시 이라고 합니다
@MalangMolang3 жыл бұрын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tonsk2k3223 жыл бұрын
태왕이 아니고 호태왕임. 호는 강조의 뜻을 태왕 위의 호태왕 즉 황제급
@YOGAPILATV3 жыл бұрын
감사해요🎁🎉
@robertgarcia13713 жыл бұрын
어렷을땐 이런거 진심 지루했는데 왜 이젠 재미있지 ㅋㅋ
@한숨두숨-c9g3 жыл бұрын
그때는 개세끼여서, 지금은 소세끼라서
@menssanoincorporesano3 жыл бұрын
어린 시절 한옥에 살 때 뭔가 격이 떨어지는 느낌으로 양옥이나 아파트 사는 사람 보며 부러워하고 선망하다가 기둥마다 주련이 부착되어 있던 수려한 한옥이 철거되고 난 그 자리에 대형 식료품상이 들어 있는 것을 보는 중년이 아련히 옛 추억을 더듬으며 새삼스럽게 한옥에 대한 애착을 느끼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별의커피-e6j2 жыл бұрын
유투브 채널의 순기능. 이런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잘 보고 갑니다 👍🏼
@koreanheritage2 жыл бұрын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니 뿌듯한걸요~😄 앞으로도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냥이수염3 жыл бұрын
만드신 분들 수고하셨는데 중요한 내용중 빠진 내용이 많네요~
@ypj52752 жыл бұрын
와... 이분이 이기환 기자님이시구나... 경향신문에 역사 기사 올리시는데 진짜 재밌던데 ㅎㅎ
@한귀남-c9s3 жыл бұрын
주차장에서 금동대향로 아무리봐도 감동
@sangkyu01013 жыл бұрын
8:27 을총년 -> 을축년 대홍수
@박지영-k5f7m2 жыл бұрын
너무 감사합니다
@koreanheritage2 жыл бұрын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
@inthenameoffatherholyspiri93012 жыл бұрын
전 부여 갈떄마다 항상 보고옵니다.
@koreanheritage2 жыл бұрын
우와 부럽습니다~! 저도 부여 넘 가고 싶어요>.
@THANKCUE2 жыл бұрын
#은 우물 정자입니다. 우물은 우주생성의 원리인 태극(불과 물)에서 물을 상징하죠. 또한 우물 井자는 열 십자 두개를 겹쳐 놓은 겁니다. 신을 상징하는 숫자가 10입니다.
@alanshore84403 жыл бұрын
최인호 선생은 저 해쉬 태그를 '하늘 우물' 즉 백두산 천지라고 보고 '호태왕의 싸인' 으로 보셨죠 ... 저는 '고구려 국기' 정도로 생각 합니다.
@daug_jang Жыл бұрын
저도 故최인호선생님의 "왕도의 비밀", 전권을 다 읽었습니다. 저 당시에는 국기가 존재하지 않았죠. 공식적으로 알려진 국기의 시초는 13세기 네덜란드의 단네브로(Dannebrog)입니다. 아마도 고구려에서 비공식적으로 사용했던 문장(紋帳)같네요. 그러나 이런 것이 동아시아에 유래가 없기에 신기할 따름이죠.
@의열단-q7r3 жыл бұрын
#은 광개토대제의 문장이라고 배운 기억이 나네요
@헨섬보이-k7w3 жыл бұрын
태왕을 대왕으로 읽습니다
@지현손-k6g2 жыл бұрын
금동대향로는 그냥 세계 유산 넘버원 넘사벽이다!!!
@낭만사나이-i6m3 жыл бұрын
백제는 백제 금동대향로 아버지 그리움과 효심 입니다 (성왕과 위덕왕(창왕)) 신라에는 감은사지 아버지 그리움과 효심 입니다(문무왕과 신문왕)
@김중한-s2t3 жыл бұрын
호우총을 열개를 제작해서 네번째 호우를 신라에서 확보한 것으로 고구려가 통치 하던 지역에 즉.총독이 주재하던 곳에 광개토 대왕을 제사용도로 썼던 그릇으로서,신라도 신묘년 광개토 대왕의 원정으로 당시 왜를 물리치고 신라를 구하여 신라는 고구려의 보호국 되었다. 따라서 신라로서는 광개토왕의 죽을 후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제기로서의 용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강산-k8q3 жыл бұрын
참조은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shinkunil62473 жыл бұрын
부여박물관에 가서 한가지만 봐야 한다면 '백제금동대향로'를 보시면 될듯 느낌은? 경이롭다. 끝!!
@sarasoliz99022 жыл бұрын
Grasias me ase bien escucharlos tanto queria este idioma publicidad ahora se cumple mi sueño
@이길상-l8m2 жыл бұрын
대향로는 부여 국립 박물관에 진품이 전시되어 있어요. 꼭 보세요. 몇번 보세요... 문화재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그냥 보자마자 와...소리가 나옵니다.
@존윅-q2y3 жыл бұрын
향로는 불교제사에도쓰이지만 대대손손이어간다는의미도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황제의향로가꺼지다는 자손이없다는의미도있어요 즉망한다는뜻
@0019-i8p2 жыл бұрын
중국인은 아직도 대다수가 조상들 위패놓고 아침마다 향불 올리며 절 하잔아요,,명절 제삿날만 조상 찾는 우리보다 훨 나은듯,,,
@cinemool723 жыл бұрын
08:28 을총년 -> 을축년 육십갑자는 좀 알고 자막 다셔야죠 문화유산 채널인디
@귀여운밀크-y5k2 жыл бұрын
백제나 신라가 금 유물이 많은 이유는 해상무역으로 비단을 수출했습니다. 유대인들과 거래를 하며 비단이 로마에도 수출됐다고 합니다. 유대인 경제사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JuveSup9 ай бұрын
그냥 그 시대엔 기술만 있으면 강에서도 쉽게 금을 캘 정도로 흔했던거 아닌가요 지금은 당연히 그때 다 캐버리고 없으니 귀한 취급이지만
@hyekyo-pv8op2 ай бұрын
정말 좋아하는.울 나라 국보~! 정말 멋진듯....^^
@hyekyo-pv8op2 ай бұрын
정말 좋아하는.울 나라 국보~! 정말 멋진듯....^^
@KiKi-zo9fc3 жыл бұрын
예전 TV에서 고구려의 모든 자기에는 바닥에 우물정자 #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백두산 천지를 의미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고구려는 백두산 천지를 신성시 여겼고, 고구려의 상징으로 생각했었다네요.. 광개토대왕 비석돌도 백두산에서 채취했고요..
@미제드론2 жыл бұрын
고구려 첫 도읍지 오녀산성 정상부의 연못도 천지라고 하더군요
@nythomaskwon3 жыл бұрын
그때나 지금이나 기자들은 특종만 하면 된다. 문화재 파괴, 질서파괴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의 알권리를 앞세워 온갖 불법을 저질러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언론이다. 권력자도 언론을 이길 수 없다. 언론이 바로서면 나라가 바로 선다.
@decipherQ2 жыл бұрын
井, 十, △, ▽,│, ─, □, ○... 우리 유물에 나타나는 도형(?)은 문자의 초기 상형문자들입니다. 약 4,500년 경부터 나타나는 글자들이죠. 즉, 당시의 문자로 기록해서 특정인물을 나타내는 '씨칭'입니다.
무녕왕릉의 발견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왕의 사망.날짜까지 정확한것을 확인함. 삼국사기의 신뢰성이 만천하에 드러남.
@측백과인동3 жыл бұрын
그래도 좋아요 눌렀고 순위에도 동의합니다.
@mincris70602 жыл бұрын
井자문양은 고구려를 상징하는 표식입니다. 최인호의 소설 [왕도의 비밀]에 나오는 내용인데 하늘의 우물을 뜻하는 말이며 고구려 건국신화에 나오는 해모수설화에서 기인했습니다.
@김창현-x4o2 жыл бұрын
천마총이 아니고 대릉원이라 부릅니다 최악의 발굴은 무령왕릉 빗자루 삽으로 유물을 쓸어담는 무지 취재경쟁
@cyoomail2 жыл бұрын
좋네요 역사를 재미있었어 읍니다. 이른프로가 절실팔요합나다
@jambread8483 жыл бұрын
백제는 일본말에서도 '대단하다, 훌륭하다'라는 뜻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대단한 나라.... '쿠다라'가 백제인데, 쿠다라나이 하면 그저 그런, 변변찮은 이지요 그럼 '쿠다라'는? 쿠다라는 대단한, 변변한 것이란 말이지요.
@Black_Dove993 жыл бұрын
그런 백제를 지들이 지배했다는 말도안되는 소리를 하기도 했죠..
@0019-i8p2 жыл бұрын
@@Black_Dove99 / 대체 역사를 어디서 배운건지,,,, 당시 일본은 마한,변한,진한의 삼한처럼 수많은 토호세력으로 분열된 상태엿으며 일본의 서남해안, 한국의 서남해안+남해안 일부에서 해적질하면서 살던 집단들을 왜라고 불럿으며,,, 가야지역에서는 왜에게 돈을주고 용병으로 쓰고 부족전쟁+신라의 공격을 막아내었기에 그게 빌미가되어 일본놈들이 왜 라는 이름으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거죠,, 천황도 백제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데 일본 극우들이 주장하는것만 기억 하나보넹 ㅋㅋ 또한 백제가 일본의 역사라고 하는건 무령왕의 출신 성분이 불분명해서 그게 빌미가되어 백제가 일본 역사라고 우기는건데,,,, 아니 1명이 특정지역 출신이라면 그게 그나라 역사가 되나? 그러면 중국의 청나라,금나라,제나라는 한국 역사게?
@최동규-u9x11 ай бұрын
백제와 일본은 한나라 였다
@djp27084 ай бұрын
그들이 존중하는 백제 구다라에서 세기의걸작이 나왔으니 일본사람들이 얼마나 보고싶겠어
@닉샷2 жыл бұрын
성대현은 가수 입니다
@JustRandomWonderer3 жыл бұрын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bgkhan44753 жыл бұрын
레고랜드 밑에 다시 매몰되버린 한반도 유일 최대 환호유적지도 있습니다...
@NaN_OTL2 жыл бұрын
금동대향로는 발굴당시 사자보는데 눈물이났어요.
@koreanheritage2 жыл бұрын
금동대향로 발굴을 그야말로 '기적'이라 할 수 있죠..💫 따뜻한 댓글을 보니 저도 뭉클해지네요😢
@dreamfreeker Жыл бұрын
다뉴세문경이 없어서 의외네요;;; 한반도에선 '괴베클리 테페'급 발견인데..
@Lustellar11 ай бұрын
방송 기획자의 수준 차이 이겠지요
@jonggulee46073 ай бұрын
몇해전에 숭실대 박물관에 전시중인 국보 114호인 다뉴세문경을 직접 관람 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의 세공기술과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실보다 가느다란 잔금과 동심원을 보시면 관람객들의 입이 쩍 벌어지는지 아시게 됩니다.😅
@jaeokElang3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북쪽지역을 기반을 둔 나라여서 남쪽에 너무 기록이 없다는게 한이네요 아 그리고 석기시대 유물중에 주먹도끼 역시 엄청난 발견인데,,, 세계사를 다시쓸 만큼,,, 그게 안나오네요
@0019-i8p2 жыл бұрын
단군,고구려,부여,발해,옥저,동예 등은 한강이남과 별 상관 없는 역사죠,,,,삼국시대에 고구려,백제 지배층만 연관있구요 마한지역이 경기도,충청도,전라도에 걸쳐잇엇는데 기원후 500년까지는 호남지역 마한이 백제와 피터지게 싸웟다가 정복 당했고 경남지역 변한은 신라와 600년 가까이 피터지게 싸웟다가 김해김씨 김수로 후손이 가야지역 주민들 뒷통수 치고 신분보장 조건으로 진한 지역 경주김씨 김알지후손인 진흥왕에게 세금걷은것 몽땅 신라에 바치고 항복해서 진흥왕 왕비로 들어가고 가야는 신라에 정복당했죠,,, 그 후손이 가야지역 김해김씨 김수로 후손 김춘추 잔아요,,, 김춘추가 처음부터 왕족 대접 못받은이유가 그 조상이 가야국 지역사람들 뒷통수 쳐서 그런것임 그리고 진흥왕+왕비의 후손이 남북극 통일신라 + 고려시대에도 계속 왕족집안으로 대접받고 살았슴,,왕건이 장가를 26번이나 갔잔아요 그 대접받던 경주 김씨 김알지의 사촌인 김알평 후손이 경주이씨며,,김해김씨 김수로의 후손이 전주이씨임 또한 전세계에 고인돌이 6만개가량 있는데,고조선 지역포함인 만주에는 1만개, 한반도에 3만개중 호남 지역에만 2만개가 있슴 변한지역 여러개의 가야가, 통합 되지 못한이유중 한가지가,,, 고구려,백제,신라는 철기 문화를 도입하고 도입되지 못해서 주변에 상대적으로 좀 약한 부족들을, 주변1개 점령하고 > 2개 점령하고 3개 점령해서 키웟는데,,, 가야지역은 철기제조술이 뛰어낫기에 주변모두가 동급의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소수부족들을 통합을 못함,,강자가 주변에 널렷었다는거죠 호남 마한은 여러 부족이 단합+ 통합 못해서 백제 무녕왕에게 정복 당햇고,,, 김해지역 가야 변한은 단합+통일도 안되었고 + 왜를 용병으로쓰다가 김수로 후손이 전재산 들고 항복해서 진흥왕에게 정복 당한거죠 또 왕건이 죽으면서 훈요10조 말하면서,,호남사람을 인재로 등용말라고 한것은 거짓말이죠,,,,전라도 까기위한것임 왜그러냐면 왕겅의 뒤를 이은 혜종이,,나주부인 오씨 아들이거든요,,,왕위를 호남출신 아들에게 물려 줫는데,,,호남 사람을 멀리하라는게 유언? ㅎㅎㅎ
@미제드론2 жыл бұрын
파주 호로고루성 양주 불곡산보루 포천 반월성 서울/구리 용마산보루군 이천/음성 망이산성 안성 도기동산성 청원 부강면 남성골산성 대전 월평동산성 등이 고구려가 처음 쌓았거나 고쳐쌓거나 점령해서 사용했던 군사시설들 입니다.
@gjochoi36502 жыл бұрын
호우총 발굴 그릇의 명문 상단에 그려진 "샆" 표시는 광개토왕의 문장입니다. 최인호 작가님의 추리소설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 보시면 그 문장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있습니다.
@myrmoi Жыл бұрын
그건 최인호 작가의 상상이고.... 상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시면 안됩니다.
@김성겸-i2j Жыл бұрын
흰소리... 을묘년애 재위한 고구리 제왕은 시호가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인 고국원왕이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 아닌 것을 어찌 알랴... 고구리 번국인 부상국의 인접 속국 녀국의 사신이 부상국 사신을 따라서 고국원왕을 알현한 때에 선물로 하사한 요강일 것이다. 공주 사마의 릉이 무녕왕릉이라면 아들 명농 즉 성왕에게 독살되고 명농이 사람을 시켜 사후귀양지에 땅을 사서 묻힌 것이겠다. 무녕이 신하의 처를 배앗아서 명농을 낳았다고 한다. 명농의 생모는 옛 지아비와의 정을 잊지 못하고 사마 즉 무녕을 독살한 것이다. 기록? 고구리사락!!
@시사랑-g5v11 ай бұрын
저도 최인호작가님이 나오는 다큐를 본 적 있는데 거기에서 #을 우물정자로 보고 한민족의 성지 백두산 천지를 성징하는 것으로 풀이한 기억이 납니다.
@쿠르쿠르롱2 жыл бұрын
7:30 초 가지들이 > 기자들이 자막수정 필요해보입니다
@naramansin3 жыл бұрын
금동대향로는 직접보면 멍~~~~때리거될거임
@MalangMolang3 жыл бұрын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juokhan62 жыл бұрын
해시테그라고 얘기하시는 것은 가야의 도기에 표시된 것과 혹시 연관 있지는 않나요? 무슨 이유로 도기를 대량 생산해야하면서 그들의 기호도 단순화된…
@Kevin-br6wd3 жыл бұрын
꿀잼~
@남희정-m6r2 жыл бұрын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올립니다.손오공과삼장 저팔계.이야기가 중국의이야기인가 라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우연히 어느산에 바위로 자신의모습을 정확하게 드러나서 개인적으로 나의궁금증이 풀려서 적어봅니다. 손오공이야기가 우리정신세계이야기이며 시대는 아주오래된 이야기였다 라고합니다. 삼장과손오공이야기 바위로 정확하가 모습이 있습니다.
@tothehappiness44693 жыл бұрын
8:28 을총년-> 을축년 으로 수정해야 할듯요
@손원식-d4n3 жыл бұрын
역사 소식 감사합니다~^^ 역사를모르면 나라가망한다!!??
@gotrade212 жыл бұрын
샵 문양은 고구려의 문양의 하나로 군대의 깃발에 사용되었음. 다른 문양 하나는 원과 그 원을 통과하는 선이 있는 모양이 있음
@keithcho45352 жыл бұрын
우물 정(#)은 고구려 유물들에서 꾸준히 발견되는 문양 아닌가? 최인호의 역사소설에서 #을 따라서 중국 땅에 들어가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중국공안이 훼방을 놓고, 역사당국이 폐쇄한 고구려 유물장면이 나오던데... 하백의 딸 유화와 해모수가 만났고 고구려는 그들의 자랑스런 후손이란 의미라던데... 해시태그라니.
@최우정-x8b Жыл бұрын
십여년전 부여박물관에서 일본인인듯한 남자분께서 한참동안 향로를 보고계시던게 기억나네요.
@sarasoliz99022 жыл бұрын
Quisiera saber quien es que manda esta publicidad si yo rogaba tantos años que me gustaba esto quue estoy viendo resien me mandan eso estoy confundida quien esta interesado saber lo que pasa aqui me asombro como saben que me gusta esvucharlos su idia eso no lo se como fue que esta susefiendo lo que mas me gusta nobelas publicidafes peliculas todo con este idipma me encanta🤞👌👩❤
@fiatmihi24533 жыл бұрын
무엇보다 성대현씨 올만에 봐서 반갑네요
@심심풀이-g7v2 жыл бұрын
무령왕릉 순위는 더 높여야 됨. 신라왕릉은 도굴 불가능한데 무령왕릉은 도굴되기 쉬운 무덤인데도 완전한 모습으로 발굴됐으니까 더 높아야
@koreanheritage2 жыл бұрын
심심풀이님의 마음 속 1위...💗
@phkair3 жыл бұрын
금동대향로 하나로 부여박물관의 품격이 몇 단계 올라갔지....ㅎ 원래 국박에 넣으려고 했다가 부여로 갔다는....
@andrewcho59813 жыл бұрын
#물결모양. 하백을 의미. 태조의 어머니. 하백의 딸. 고구려의 국기.상징
@b.s-luck9 ай бұрын
금동대향로의 모습도 현재 대전연고지 대전시티즌 엠블럼에도있죠 그만큼 충청도의자랑중하나임 세기의발견bb 솔직히 대향로처럼 은닉해서 다숨겨놨다면 많은유물들이 약탈당하치않고 온전히우리가보존했을듯..
@정토-s3v11 ай бұрын
부여가서 보고 왔음. 너무 아름답고 정교해서 놀랐음
@세계여행자-m4i2 жыл бұрын
나도 금동대향로...가 1픽... 정말 놀랍긴 하지...
@tv-rv2fy3 жыл бұрын
#표시는 우물정자로 생존시는 정안수용 물그릇이나 사후는 제기용 물그릇 아닐까요?
@oz1h33 жыл бұрын
무령왕릉은 발굴 전 입구의 훼손이 있어서 유물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지요. 백제지역에 희귀한 벽돌무덤양식임에도 저런식으로 발굴된 것은 정말 처참합니다.
당시 국립박물관장이던 김원룡 박사 일생의 오점으로 남았죠. 고고학자로서 치명적인 실수를 했으니까요.
@김성현샘 Жыл бұрын
금동대향로는 진짜 다보탑을 만든 아비지의 숨결에 비견할 만하네요. 을축년 대홍수 아닌가요?
@celsius200do3 жыл бұрын
성대현은 아직도 방송 잘하는데 왜 공중파에 안나오는지 미스테리네..
@DanJJSTChoi2 жыл бұрын
사고 한번쳤지 기억도 안나지만요
@구피-z3f2 жыл бұрын
솔직히 공중파급은아니죠ㅡ
@참직-c5r3 жыл бұрын
무령왕릉을 발굴하신분이 말하셨는데 평생한이 무령왕릉이라고 하셨습니다,,,안타깝네요,,,
@seyeul-b6p2 жыл бұрын
금동대향로를 발굴 당시, 그전까지의 모든 유물과 바꾸지 않을 정도였다고...
@롤로토마시-n7e3 жыл бұрын
# 기호는 첨성대에도 있고, 절의 우물에도 있고, 삼국의 성터의 우물에도 있어요. (고대 시대의 우물에는 다 저런 문양이 있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겠죠.) 즉 우물 위에 설치된 틀 입니다. 물론 첨성대는 우물이 아니지만, 이 우물 자체가 단순히 우물이 아니라, 하늘을 거울처럼 비추므로 하늘과 연결된 매개체입니다. 첨성대는 비추지는 않지만 다이랙트로 하늘을 보는 곳으로 우물과 같은 의미로 작용하고, 첨성대 꼭대기가 # 자 틀로 되어 있는 것이 바로 그 이유죠. 즉, 이 우물은 단순히 물리적 개념의 우물이 아니라, 신앙적 측면에서 북두칠성을 담는 그릇 입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장독대에서 정수물에 물 떠놓을 때, 그 그릇 안에 북두칠성이 비추게 하고 기도를 했더랬죠. 그러니까 저 솥단지의 문장들이 제례적 성격이 강한 거죠. 즉, # 기호는 바라옵 건데~ 비나이다 비나이다~ 라고 시작되는 기도 문처럼 제례용 호우라는 표시 입니다 . 그러므로 저 솥단지의 문자들 내용은 을미년에 광개토태왕님의 제례에 사용된 호우십 (열 개의 솥과 병이나 열 번 째 솥)이라는 뜻이죠.
@taratara65883 жыл бұрын
# 표식은 제가 연구하고있는 곳의 유물을 이탈리아 학회에 의뢰한 연대측정 결과16.500 년것이라는 석판에도 각인되어 있음니다 십자표식과 # .이두표식은 한반도에 존재하엿던 역사이전의 문명 중에서 최고의 권위자에게 내려젓던 인장임니다 광개토대왕은 그들의 혈통이라서 # 표식을 사용할수 있엇던 것임니다
@bill---gates3 жыл бұрын
무령왕릉 발굴은 차라리 하지 말았어야 후대에 제대로 발굴 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김창남-x5w2 жыл бұрын
min cris 1개월 전(수정됨) 井자문양은 한민족의 성지 백두산의 천지를 의미한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9전10승-g5s3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만들듯이 정부는 "바른 역사 쓰기 청"이라도 만들어 우리의 올바른 역사를 다시 써 정립을 해야 한다.
@박봉팔-q6j2 жыл бұрын
금동대향로 이상세계 그림은 7,80년대에 형ㆍ누나 책들 중고등학교 관련서적 표지에도 나왔는데 발견은 늦게 했네.
@최동규-u9x11 ай бұрын
그건 백제 산수문전
@youngkimkim8433 Жыл бұрын
큰 그림을 작게 만드는 방법이 있을 거 같은데 그런 금속제작법이 있었지 않을까
@파닥파닥-c4s2 жыл бұрын
금동 대향로는 진짜 엄청나게 중요하고 멋진 유물임... 거기에 철기병 나옴 참고로 백제유물 90%는 일본이 가져감 ㅋㅋㅋㅋ 왜 그럴까??? 백제는 왜나라의 상국임... 그러니 그 역사를 보여주고싶지 않은거임 백제영토는 엄청나게 큰 나라인데;; 유물이 다 사라져서 증명하기가 힘듬;;; 안타까움 제발 우리역사서는 반도사관을 지웠으면함.... 우리역사는 대륙의 역사이고 배달의민족의역사인데 자꾸 삼한의 역사로 인식하게 만듬... 그러면 중국한테 고구려 역사도 뺏기게됨...우리역사의 시작은 지금의 바이칼 호수지역에서 부터 시작한 거의 만년의 역사임 오쳔년이 아니고;;; 그리고 엄청난 영토였음 지금의 터키 지역이랑 국경을 맞닿고있었으니깐 중국은 오랜 역사가 있는 국가가 없는 이유를 생각하면 됨 어느 전세계 어느나라역사도 천년이상의 역사가있는 국가는 거의없음 그러니 대륙의 거의모든 문화를 우리가 지배했던 시대가 3천년이상임!!! 제발 정신차리고 역사를 제데로 봐야함.... 우리나라는 절대 반도역사가 아님
@이현학-v3f3 жыл бұрын
자막이 오류 투성이네요...
@깐나-w5n3 жыл бұрын
그거 유투브 본인꺼 자막 설정하는거에요
@lpc_mirror3 жыл бұрын
땅속에 저런 말도안되는 향로가 파묻혀있었다는것도 놀랍고... 그걸 땅파다가 우연히 발견한것도 놀랍고... 계속 묻혀있었다던가... 아니면 땅팔때 흙이랑 같이 퍼져서 어디 버려지거나 했다면,.... ㅜㅜ
@말죽거리호랭이11 ай бұрын
자막에 을총년이 뭡니까? 문화유산채널에서 저런 말도 안되는 자막을 쓰다니요. 2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정정을 안했네요.
@azure3973 жыл бұрын
백제금동대향로......라고 안하고 왜 금동대향로.....라 표기하는거죠?
@Kwansan13 жыл бұрын
일제식민사관을 목숨걸고 사수하는 서울대역사학과 교수놈들을 비롯한 소위 강단사학자놈들을 참수하라
@유튜브채널-p9s10 ай бұрын
ㅋㅋ 언제적 식민사관이노? 환빠들 본인이 꼬우면 다 식민사관으로 몰아가는게 개꼴받음
@uhmmaa33 жыл бұрын
국민이 문화재에서 자긍심을 찾을까봐 쉬쉬하며 확대촬영본도 감추는 문화재청 ㅋㅋㅋ 문화재를 국민이 볼수있게 모든 문화재를 확대 초근접 촬영화보집 부터 발간하라.
@michaelhong57743 жыл бұрын
위대한 유산들의 행진. 기리기리 그 유업 보전 합시다. 스스로.....
@빠로로-x1p Жыл бұрын
4위 금관총 첫 자료화면영상은 천마총,황남대총 입니다 잘못된 자료영상입니다
@wincup3 жыл бұрын
저 # 무늬 90년대말인가에 방영되었던 고 최인호작가의 고구려관련 다큐에서 다뤘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내용은 약간 너무 상상이 가미된 대담한 가설이라 반감도 있었지만, 적어도 저 마크가 '광개토대왕'의 (혹은 특정시대 고구려의) 특유 마크였다는 내용은 꽤 신빙성이 갔었는데, 그 이유가 호우총 청동기만이 아니라 옛 고구려 고토지역(만주근방)에 직접 최 작가가 가서 발굴하던 고구려 토기등에서 저 마크가 나오더군요. 당대 백제나 신라 토기에선 전혀 없었구요. 하여간 신기했습니다. (관련 영상- kzbin.info/www/bejne/kHSnp2tnrZJglas)
@정자연-b3c2 жыл бұрын
8:28 을총년? 자막 오타 을축년(1925년) 대홍수~
@이도연-m3u3 жыл бұрын
우물정자 아닌듯.... 우물 정자는 옛 우물의 위에 설치된 사각의 나무틀 모양을 상형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저 문양은 사각이라기 보다는 마름모꼴 문양이죠? 마름모꼴도.. 하백과의 관련성은 충분합니다. 하백은 부여시대에 직함 이름이죠? 그러면서도 하백이 부여왕 금와의 소속은 아니였다고 여겨집니다. 강을 관리하던 수장이라 하죠? 무슨 의미냐 하면 나룻터를 지키던 세력의 수장 명칭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상단 소속이라 볼수있지요. 하백의 근본은 풍백일 것이라 봅니다. 風伯. 河伯. 풍백은... 운사. 우사와 더불어 단군의 수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사 운사는 師자를 씁니다. 스승이란 얘기죠? 사부(師父). 반면에 풍백만 맏백자를 쓰며 가장먼저 일컬어지지요. 백부(伯父)라는 말은 아직까지도 쓰입니다. 큰아버지 라는 의미죠. 물론. 후대에 벼슬명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공작. 후작. 백작. 남작... 아뭏튼지.... 단군의 친족이 아니였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즉. 단군왕검의 종친이였다는 것이죠. 신석기시대부터 왕권의 정통성과 버금가는 왕족은 세력 견제를 받았겠죠. 또... 왕권 경쟁에서 밀려나면? 무리를 이끌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납니다. 주몽이 그랬고 비류 온조도 같은 패턴이죠. 새로운 터전을 찾아 새나라를 건국하기도 하지만. 그럴만한 장소나 여건이 없으면? 상단이 되는 것이겠습니다. 비류 온조의 어머니도 상단세력 이였다 하지요? 이렇게 볼때 풍백은 상단세력의 수장에 직함이고 국제무역을 담당 했으므로... 특정 국가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볼수 있습니다. 각각의 나라에서는 국제무역을 필요로 했으니 상단세력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그에대한 견제와 비난과 질시의 풍토도 의도적으로 조성 했겠습니다. 즉. 그때부터도 천시되고 차별 받았다는 것이지요. 안그랬다가는... 경험 풍부하고 재력 빵빵하며 인맥넓은 상단세력을 무슨수로 당해내겠어요? 후대에.... 환향녀들이 화냥년이라 혐오되던 까닭도 그녀들이 외국물을 먹었던 탓이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근세에 신여성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견제심리가 있었고요. 자유 연애주의자 등으로 매도되었죠. 주몽이 도강할때 물고기와 자라가 도와주었다. 물고기와 자라는? 하백의 부하들이겠죠? 사람 취급을 안했던 겁니다. 극심한 혐오 감정이 만연되어 있었다 볼수 있습니다. 고려 왕건도 상단세력이라 보고요. 조선왕조 인수대비 부친 한확은 역관 출신으로 명나라 벼슬까지 받았던 재력가죠? 정인지가 술취한척 하고 뺨을 갈겼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상단세력에 대한 견제심리와 혐오감이죠. 천한 장삿꾼놈들..... 그래서.... 사농공상의 맨 끝자리에 두었고 상것들이란 표현도 있었겠지요. 상민..... 상나라 유민들 상당수는 말 그대로 상단세력이 되어 장삿길에 나섰습니다. 이런 역사풍토로 볼때.... 풍백은 단군의 종친 세력으로 국제무역을 담당했을 거라는 합리적 추정입니다. 이 풍백이 중원에서의 복희씨라 봅니다. '복희씨의 성씨가 풍이였을 것'이라는 설도 있지요. 국제무역에 있어서 나루터는 매우 중시됩니다. 어쩌면 '나라' 의 어원이 나루일수도 있겠다 여겨지니요. 백제.... 건널 제(濟)자를 쓰죠? 초창기에 십제(十濟)로 불리기도 했고요. 백제가 상단세력이니 나룻터를 중시 한것이겠죠. 백제나루. 일본어로 쿠다라나루 나라현도 있죠? 자연히 물과도 깊은 연관성이 나타나죠. 그래서 하백 아니겠습니까? 나룻터의 수장 하백. 상단세력의 수장 풍백. 그게 복희씨죠. 한대 화상석에 묘사된 복희와 여와 모습은 그들의 정체성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하체가 뱀이라는것. 복희와 여와의 하체는 흡사 교미하는 뱀의 형상으로 돌돌 감겨있죠. 비늘을 보면 잉어등 물고기나 용의 비늘과 흡사합니다. 거기서 나타나는 것이... 결승 문양이죠. 뱀꼬리가 서로 감긴모양. 물고기나 용의 비늘모양. 밧줄을 맺은모양. 이것이 노리개 매듭에서도 나타나는 마름모꼴 결승문양 이라 봅니다. 복희씨의 하체가 뱀으로 묘사된것은 그가 입었던 갑옷에서 비롯된 것이겠죠. 실제로 옛적 물고기 껍질로 만든 갑옷을 사용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커다란 잉어의 비늘이라면? 충분히 갑옷의 효과가 있었겠지요. 자! 풍백은 중원에서 복희씨가 됩니다. 한대 화상석 묘사에서 복희는 곡척 기역자를 들고있고 여와는 컴퍼스나 디바이더 같은것을 들고있죠. 디바이더.... 해도를 펼치고 항해루트를 계산할때 사용하죠? 곡척은? 목장. 목수 대목장들이 쓰는 것이고요. 당연하죠. 배를 건조하려면? 목공기술이 필요하니요. 이들 상단세력은 유럽까지 들어가죠. 최초에 등장하는 것은? 아담과 이브의 정원에 등장하는 뱀! 하체는 뱀 상체는 사람. 사탄입니다. 갑옷입은 사람이죠. 이브를 꼬득입니다. 지혜를 주겠다고....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하죠. 동양에서 상단세력을 멸시하고 혐오하던 것과 유사 패턴이죠? 뱀으로의 묘사도 동일하고요. 해모수는 유화를 유혹하여 주몽을 낳았고 사탄은 이브를 유혹하여 낙원에서 추방 당하게 만들었죠. 바람족들의 행태가 손에 잡힐듯 하지 않은가요? 돈과 기술과 인맥과 풍부한 견식으로 바람피고 다닌겁니다. 로비리스터죠. 다음으로 유럽에 등장하는 풍백족은? "프리메이슨" 자유로운 석공! 성당 건축이 유행할때 각국을 넘나들며 건축술을 뽐내었죠. 기독교 풍토에서 이들에 대한 견제와 핍박은 더욱 교묘하고 악랄했습니다. 사탄취급 하는거죠. 그래서 지하 비밀조직으로 잠적하죠. 지하무덤 생활할때 기독교 표식이 물고기 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죠. 결승문양. 마름모꼴 상징과 통하는거죠. 풍백. 하백의 문양이 원조라고요. 또.... 성모마리아의 남편은요? 목수였죠? 그래서 예수를 '목수의 아들' 이라고 하기도 했고요. 복희씨가 곡척을 들고 있잖아요? 여와는 컴퍼스를 들고있고요. 프리메이슨을 나타내는 로고에서도 곡척과 컴퍼스를 찾아볼수있죠? 결론적으로.... 풍백/하백 ㅡ 복희/여와 ㅡ 사탄/프리메이슨 연금술사. 마녀. ㅡ 과학자. 이런것들이 글로벌 상단문화 라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호우총 유물 문양은. 물고기 비늘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표식이며 갑옷에서 발원되어 자와 컴퍼스로 발전한 첨단 테크놀러지 문양이다. 첨단기술을 상징하는 문양이라는 겁니다. 신라에서는 풍월주라는 직함으로 나타나죠. 인맥. 재력. 기술. 지식등을 갖춘 인물상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