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역사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미국과 나치에게 이런일도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되었네요 역시 교육채널 ㄷㄷ
@mogleyc Жыл бұрын
포로 학살을 막으려고 목숨까지 내놓은 독일 지휘관은 정말 군인중에 군인이었네요
@enjoypanda Жыл бұрын
그저 낭만😮
@MWG Жыл бұрын
1945년 5월 6일 "이터성 전투" 서부전선의 마지막 전투이자 역사적으로 최후의 공성전 추가로 죄수중에는 샤를 드골의 누나도 있습니다. 강글 소령은 실제로 프랑스 총리를 지키다가 몸 날려서 제대로 저격당해 전사 했습니다. 강글소령의 이름을 딴 거리도 현재도 있습니다.
@MWG Жыл бұрын
@oyhpenguin5+ 빌헬름 호젠펠트
@에스키모-q2i8 ай бұрын
현직 프랑스 총리는 아니었고 레노 전 총리였다고 합니다.
@pqb3475 Жыл бұрын
이터 성은 오스트리아 이터 마을 근처의 작은 성으로,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독일이 공식적으로 임대한 성이었다. 이 성을 임대한 이유는 VIP들의 전용수용소로 쓰기 위함이었다. 즉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인사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이 곳에는 특히 프랑스인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는데 막심 베이강 육군 원수, 모리스 가믈랭 육군 원수, 에두아르 달라디에 전 국무총리, 폴 레노 전 국무총리, 우익계 정치인 프랑수아 드 라 로크, 노조 운동가 레옹 주오 심지어는 샤를 드골의 누나와 테니스 선수 장 보로트라 까지도 수용돼 있었다. 이 외에도 다하우 수용소에서 분리된 수감자들이 유지보수와 잡일을 위해 수용되어 있었다.
@pqb3475 Жыл бұрын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하고 전쟁은 거의 끝나자, 교섭용으로 잡아두고 있었던 이들 프랑스인들이 쓸모가 없어졌다. 일반적인 군대라면 자신들은 항복하고 포로들은 평화롭게 인도하는게 정상이겠지만, 이터 성은 그 악명 높은 다하우 수용소의 소관 지역이었고 관리자들은 무장친위대였다. 그래서 당연히 이들은 쓸모가 없어진 포로들을 처형하고자 했다. 한편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로 활동하다가 포로로 잡혀 들어온 즈보니미르 추치코비치 (Zvonimir Čučković)라는 크로아티아인이 있었는데 윗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는지 성의 지휘관인 제바스티안 비머(Sebastian Wimmer) SS 대위의 명령에 따라서 마을로 심부름을 나가게 되었다. 기회를 잡은 추치코비치는 인근까지 진격한 미합중국 육군에게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근처 아무 미국인에게나 줄 심산으로 영어 편지를 가지고 성이 위치한 산에서 5km 거리의 뵈길 마을로 내려갔으나 아직 독일군이 점령중인것을 확인, 곧장 인스브루크로 향했으며 인스브루크 시 외곽에 진주해 있던 연합군인 미 육군 제6군단 소속 103보병사단 409연대와 만났다. 비보를 전해들은 409연대는 이터 성으로 향했으나, 뵈길 주변을 경계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군의 포격이 격렬했기에 진격을 중단했다.
@pqb3475 Жыл бұрын
비머 대위는 심부름 삼아 내보낸 추치코비치가 돌아오지 않자 연합군을 만나러 갔다고 판단, 친위대원들과 함께 도망쳤으며, 비머 대위는 이후 잠적해 오늘날까지 생사 불명 상태이다. 남아있는 포로들은 무기를 접수해서 무장했고 이터성으로부터 5km 거리의 뵈길 로 가 레지스탕스와 협력을 시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게오르크 보크만 SS 상급대령이 지휘하는 무장친위대 부대가 접수한 상태였고, 그들은 이미 처형을 계획하고 있었다. 포로들에게는 천만다행히도 엉뚱한 곳에서 구원이 내려왔다. 바로 독일 국방군 육군 병력들로, 독일군이지만 레지스탕스에 합류한 요제프 강글 육군 산악 소령이 지휘하는 반나치군이었다. 이들은 소수병력이었기에 이터 성을 공격할 수가 없었는데, 연합군인 미 육군 제12사단에 항복을 했고 제23기갑대대의 존 잭 리치 육군 기갑대위와 함께 이터 성 공세를 하게 된다. 하지만 성으로 가는 길목과 가교가 너무 부실했다. 때문에 증원된 부대는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고, M4 셔먼 전차 1대와 14명의 미 육군 보병, 그리고 독일육군 10여 명과 함께 성으로 향했다. 이들은 SS 병력을 격파하며 성에 도착했고, 무장친위대 장교 출신이지만 포로들과 협력하는 쿠르트지크프리트 슈라더 (Kurt-Siegfried Schrader) SS 대위와 함께 수성을 하게 된다. 5월 5일이 되자 150명 규모의 무장친위대가 이터 성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1차공격직전 독일육군 병력 몇몇이 몰래 탈영하는 일이 발생, 그들 가운데 일부는 당연히 자발적으로 항전파 SS 부대에게 정보를 불거나 탈영길에 우연히 마주쳐서 심문 끝에 실토당하는 등, 이터 성 내부의 방어병력에 관한 정보가 상당수 누설이 되는 참사가 벌어져서 성 내부의 '미군+항복파 독일군' 연합부대에게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셔먼 전차가 있었으나 셔먼을 격파하기 쉬웠던 무장친위대의 8,8cm FlaK에 격파당하고, 무전시설까지 파괴되며 위기가 찾아온다. 다행히 격파당한 셔먼 전차는 무전수가 부상당한 것 외 전사자가 없었다. 12시가 되어 증원인력인 미 육군 142연대가 왔지만 무전시설 고장으로 적 위치를 도통 알릴 수가 없었는데, 장 보로트라가 농부로 변장, 무장친위대의 감시망을 뚫고 포화를 피하며 142연대에 알렸다. 해당 전투를 다룬 넷지오의 다큐에 따르면 장 보로트라는 이전에도 농부로 변장해서 이터 성을 빠져나가려다 딱 걸렸던 적이 있었는데, 일전에 실패한 방식으로 성공한 셈이다. 결국 오후 4시가 되자 무장친위대는 142연대의 공격을 받고 괴멸되었다. 이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항복파 독일육군을 이끌던 강글 소령은 폴 레노 총리를 보호하다가 제대로 저격당해서 전사했다. 이로 인해서 강글 소령은 사후 미국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는다.
@윙욋-p8n Жыл бұрын
뭐야 실화였음??
@지나가던누군가-t9w Жыл бұрын
@윙욋 이분 영상은 거의 다 실화임
@이준수-v1d Жыл бұрын
실제 실화고 해당 전투에서 SS부대 제외 유일한 사망자는 강글 소령분만 나왔습니다
@앤드류리카르도 Жыл бұрын
항상 개그나 풍자가 나오던 영상에서 진지하게 그날의 역사를 보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아주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m.t.2 Жыл бұрын
마지막 "제이슨" 이라고 해석된 단어는 독일어로 "Schieße" 으로 "씨발" 이라는 뜻으로 해석됨
@카누류Tv8 ай бұрын
이배신자들 끝가지 독일을 지키지 나같으면 지킨다
@아이아이-r8z Жыл бұрын
1:57 그거 참 개같은 생각이네 "당장 하자"
@uos2213 Жыл бұрын
6:56 "Scheiße" (제기랄)
@해골군대9 ай бұрын
당신…..그걸 어케 안거야,…
@Eich_koru Жыл бұрын
존나 높은 성의 존나 쿨한 사나이
@Dkdjeksnd Жыл бұрын
강글 소령….참군인그자체
@TwomImoKing Жыл бұрын
나치성 전투 사실 독일에 히틀러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군부 조직이 있긴 했다는거네 규모가 작아서 그동안 기회만 보고 있다가 미군이랑 같이 싸운거네
@현준강20 күн бұрын
그런것도 있지만 독일이 패전에 가까워 졌을때 히틀러의 친위대가 민간인을 사실하고 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싸운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joosegeneral1359 Жыл бұрын
참고로 미군과 독일군외에도 소수의 항복한 무장친위대원들과 오스트리아 저항군등도 같이 싸웠습니다.
@zc2300 Жыл бұрын
마지막 나치볼이 번개맞고 제이슨! 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제이슨이 아니라 샤이셰!(정확한 발음표기는 모르겠습니다😂) 라고 외치는 장면 같습니다. 독일어로 야발 쯤 되는 말이라고 들었어요
@박주영-h2c Жыл бұрын
Scheiße!
@정성현-f7i Жыл бұрын
오역 이 대령이 아니라 리 대위고 캡틴 Captain은 대령이 아니라 대위입니다. 대령은 커널 Colonel 마지막으로 이타가 아니라 이터입니다.